8월의 일요일들
- 감독
- 이진우
- 제작년도
- 2005
- 출연
- 임형국, 오정세, 양은용, 조한철, 이지수, 손영순, 정우혁, 김도식, 최윤형, 형영배, 서승원, 옥재은, 송자연, 강병식, 손정섭, 이수영, 송진열, 김순용, 김대옥, 지윤정, 고해미, 박상준, 김수진, 유희정, 이복란, 이용석, 정세교, 공지영, 노미란, 유나, 최국희, 유정현, 김화섭, 천혜정, 원승환, 함주리, 오류미, 오주은, 이수진, 이민희, 심보영, 모성진, 정민성, 권성구
한국영상자료원의 '영화인 구술사' 시리즈를 바탕으로, 자료가 없어 실체를 알기 어렵던 사건과 인물,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인의 입을 빌려 흥미진진하게 전달합니다. 박: 애니메이션영화제 했었을 때, 아까 <에반게리온> 얘기했었지만. <에반게리온>이나 < 공각기동대 >, 뭐뭐 < 에스카플로네 > 이런 거 했었거든요. 근데 잘 됐었어요. [1] 해당 구술채록문을 읽다 보면, “아까 <에반게리온> 얘기했었지만”이라는 말에서 이상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말이 나오기 이전까지 구술에서 단 한 번도 < 에반게리온(新世紀エヴァンゲリオン) >(안노 히데야키, 1995)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여기서 말하는 ‘아까 한 이야기’는 인터뷰 사이 잠시 쉬는 시간 동안 나눈 대화를 말하는 것이다. 구술담당자로서 인터뷰에 참관하면서 구술자의 이야기를 듣다가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이 생기면 이렇게 쉬는 시간에 살짝 물어보곤 한다. 그리고 당시 구술자에게 <에반게리온>에 대해 물어본 것은, 내가 에바팬이라거나 그래서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 이유는 이제부터 천천히 풀어갈 것이다. 닫힌 영화, 열린 영화제 사실 광주 ‘ 영화로 세상보기 ’ 운영자였던 박상백 구술(2024년 10월 17일 진행) 이전에 그와 관련된 재미난 이야기를 들은 바 있었다. 황: 일본영화 같은 경우는, 사실은 광주 기획을 좀 본따고 그랬는데. 광주 ‘영화로 세상보기’에서 그때 돈을 막 많이 벌었더라고요. 한: 재패니메이션으로? 황: 그래서 액정도 바꾸고. 이게 그때 ‘소년 탐정’인가? <에반게리온> 시리즈. 저는 뭐 내용도 아직도 모르는데, ‘야, 저런 매니아층이 또 있구나.’ 그래서. 저희도 해보니까 아닌 게 아니라 사람이 꽤 오더라고요. [2] 대전 ‘ 씨네마떼끄 컬트 ’의 운영자였던 황규석 (2024년 6월 29일 인터뷰 진행)에게서 이 이야기를 듣고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에반게리온> 상영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라는 사실보다도 ‘저런 매니아층이 있다’라는 깨달음에 있었다. 이러한 관객층을 지금의 관점에서 그냥 ‘오타쿠(オタク)’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에반게리온>이 등장했던 시기만 해도, 국내에서는 ‘오타쿠’에 대한 뚜렷한 사회적 인식도 없었고, 특정 애니메이션 작품에 대한 열렬한 지지층의 활동이 눈에 띄지도 않았었다(존재는 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적어도 외연적으로는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구술자가 이들을 ‘저런 매니아층’이라고 표현한 데에는, 어느 정도 오늘날 재패니메이션 ‘오타쿠’에 대해 사후적으로 형성된 느낌도 내재되어 있다. 그러나 어쨌든 이 사후적인 인식을 제외하더라도 평소 이상의 어떤 관객층들이 <에반게리온> 상영 당시 몰려왔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들은 누구이고 왜 여기 왔을까? 정: 제 세대뿐만 아니라 바로 윗세대들도, 제 바로 다음 세대들도 너무나 보고 싶었던 영화가 있었어요. 너무나 보고 싶었던 영화. 일본영화. … 유학을 가지 않으면 그건 접할 수가 없는 거니까. 사실은 프랑스영화・독일영화에 대한 갈증보다 일본영화에 대한 갈증이 훨씬 컸어요. [3] 한: 혹시 그런 건 없었나요? 선호하는 영화 통계 같은 거. 조: 있었죠. 한: 아, 있었어요? 조: 네. 일본영화, 뭐 (사이) 제일 많이 봤던 영화가 아마 < 러브레터 >. 수입되기 전에. 그리고 피터 잭슨 < 데드 얼라이브 >, < 천상의 피조물 > 이런 게 공식적으로 소개 안 됐었거든요? … 되게 압도적으로 피터 잭슨 영화하고 일본영화하고 미국의 인디영화들, 이런 영화들이 사람이 많이 왔었어요. [4] 영화평론가 정성일 과 1990년대 문화학교 서울 의 운영자로 일했던 조영각 은 당시 시네마테크를 찾아오는 관객들은 근본적으로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영화를 보고 싶다는 욕구를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당시에 한국 극장에서는 보기 힘든 프랑스영화, 독일영화, 미국의 인디영화들을 실제로 보고 싶다는 마음도 강했지만, 이 영화들이 수입자유화와 함께 쏟아지는 미국영화들 속에서 틈새를 찾아 소규모의 예술영화전용관들을 채울 때조차도 들어오지 못했던, 원천적으로 수입 자체가 금지되어 있던 일본영화, 그리고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욕구는, 그것이 문화적・심리적 거리가 가까울수록 더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기에 시네마테크의 운영자들의 근원적인 고민 역시 있었다. 시네마테크를 찾는 관객들이 원하는 것이 한국사회로부터 ‘닫힌 영화’들 이기 때문에, 이들의 자료 확보와 상영 활동은 불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한: <러브레터>는 처음에 어느 쪽에서 구하셨어요? 곽: (목소리를 낮춰서) 어디서 구했을까요? 어디서 구했을까. [5] 후지이 이츠키 스트레이트 플러쉬! 조: 영화를 보려면 무조건 회원가입을 해야 돼요. 그게 저희 문턱이었고. 저희는 그렇게 운영해야지 여기가 안전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사실 불법이잖아요. 비디오를, 영화를 트는 게 심의를 받은 것도 아니고 우리도 저작권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회원제라는 규정을 만든 거고. … 그런 규칙들이 있어서 내부 결속력은 되게 탄탄했던 반면에 다른 데서 보기에는 “좀 폐쇄적이다” 이런 얘기들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6] ‘회원제로 운영되는 폐쇄적 시네마테크를 통해 극장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영화들을 본다’라는 것이 어쩌면 ‘특권’처럼 읽힐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정반대였다. 음지화된 공간에서 불법적인 방법으로 들어온 작품을 보고 있다는 사실, 즉 ‘ 모두 함께 모여 허락되지 않은 것을 보고 있다 ’라는 비밀(?)은 시네마테크를 찾는 관객들의 소속감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이들의 응집력을 높이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개인용 컴퓨터 통신전용망을 이용해 취미와 관심이 같은 사람 또는 전문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정보를 교환하거나 토론을 벌이는 개인용 컴퓨터 통신동호회들이 많이 결성돼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동호회 회원들은 시간을 정해놓고 특정 주제에 대하여 온라인 토론을 벌이는 외에도 전자게시판 기능을 이용, 알리고 싶은 소식을 회원 모두에게 공개하거나 공동 자료실을 만들어 쓰고 있다. - “PC통신 동호인 모임 활발”, 《한겨레》 1990. 8. 14. 8면 기사 “이 영화가 < 미져리 >보다 무섭다는 ‘ PC통신 ’을 보셨습니까?” (《조선일보》 1994. 6. 10. 18면 광고) 1990년대 초 PC통신 이 본격적으로 국내에 도입되면서,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났다. 사실 이 새로운 공간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시켜주고 정보를 준다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김: ‘이제 그런 영화들이 인정받는 세상이다’ 이런 부분에 대한 어떤 각인? 취향을 드러내게 되는 거죠. … 팬과 마니아라는 거에 대한 나의 소속감 ? 그게 굉장히 컸던 거 같아요. [7] 이 온라인 공간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을 더욱 공고히 하는 동시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영퀴’를 풀면서 소속감을 다져갔다. 이러한 소속감이 커질수록, 각자의 취향은 숨기거나 혼자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와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겨났고, 그렇게 자신들이 보고 싶은 영화를 어디에 가면 볼 수 있는지 정보를 공유하며 시네마테크로 자연스럽게 모이게 되었다.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나는 쉬는 시간을 빌어 구술자 박상백에게 ‘영화로 세상보기에서 <에반게리온>을 상영했을 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왔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 관객을 동원할 수 있었는지’를 물었다. 그는 본 인터뷰 때 이야기한 것처럼 그 시기가 “닫힌 시대이기는 했지만 좀 알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다 알려져 있던 것들”이었고, 소문만 무성한 그 ‘화제작’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답했다. 그리고 덧붙여 ‘왜 <에반게리온>에 당시 관객들이 그토록 열광했다고 생각하냐’라는 질문을 이어 했고, 이에 대해 “<에반게리온>은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작품이라 당시 시네필뿐만 아니라 많은 대중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답했다. 확실히 <에반게리온>은 지금까지도 말도 많고 해석도 다양한, 참 어려운 애니메이션이다. <에반게리온>에 대한 세기말 관객들의 관심이 상당 부분 이 ‘해석놀이’에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에반게리온>만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시기 재패니메이션의 인기를 이끌어가는 또 다른 한 축으로는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있었다. 구술자 송정환은 평택의 ‘ 시네마드리밍 ’에서 <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平成狸合戰ポンポコ) >(다카하타 이사오, 1994)을 상영했을 때 많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러왔고, 특히나 평택시민아카데미로 공부를 하러 오던 청소년들이 애니메이션 영화들을 재미있어했으며, 이에 같은 공부방에 있던 아이들끼리 상영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고 함께 감상을 했던 일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었다. [8] 누가 뭐래도 지브리 최고 남주는 ‘ 아시타카 ’다. (필자 개인 의견임) 뿐만 아니라, 시네마테크 운영자들은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과 호응을 한국 단편 애니메이션 쪽으로 이끌고 갔다. 지금도 사정이 크게 다르진 않지만, 단편 애니메이션의 경우 영화제가 아니면 일반 관객에게 상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극히 드물었다. 시네마테크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전국적인 시네마테크 배급망(전국씨네마떼끄연합은 1997년 결성되었다)을 이용해,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애니메이션 창작자들의 작품을 모아 순회상영을 하거나 장편 사이에 단편 작품들을 끼워 넣어 함께 상영하는 등 프로그램을 다양화했다. 박: 그때 해외에서 들어온 독립영화하고 국내 독립 애니메이션을 붙여 가지고 긴 독립영화, 해외 독립영화 장편에 앞서서 마치 인트로를 열듯이, 국내 단편 애니메이션을 상영하고 그다음에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가 딱 이렇게 된다든가, 데이비드 린치의 < 이레이저 헤드 >를 상영하는 데 앞서서 나기용 감독의 단편이 상영된다거나, 이런 식으로 하는 시도들도 있었고. 그리고 독립영화협회하고도 좀 같이하는 활동들이 있었고. 문화학교 서울이라고 지금은 없어졌는데 거기하고 저희랑 같이 해서 상영회를 조그맣게 한다든가 이런 활동들이 더러 있었죠. [9] 손: 저기 문화학교 서울인가, 정말 하꼬방 같은 그런 극장에서. 기억나네. 완전히 다락방 같은 극장이었는데, 거기서 < 생존 > 틀고 이랬을 때 무렵이었거든요? 그러면서 교류를 하게 된 거죠. 그러니까 저는 모션&픽쳐에 있으면서 독립영화, 시네마테크 이런 쪽 하는 사람들 하고 교류가 되기 시작한 거죠. … 자체 영화제가 이런 때 서울에 있는 작품들 가져올 때도 지역 뭐 같이 해서 틀기도 하고. 그러면서 교류가 많이 일어나기 시작했죠.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시네마테크 활동하던 분들이 독립영화협회를 만들기 시작한 시기가 맞물린 거죠, 대구도 . 그래 가지고 대구에서도 원승환 이라는 친구하고 이렇게 해서 협회를 만들어보자라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 그렇게 이제 모션&픽처하고 독립영화 하는 친구들하고, 시네마테크 하는 사람들하고 이렇게 해서 ( 대구독립영화협회를 ) 만들게 되었죠. [10] <생존>(손영득, 1997)의 한 장면 물론 < 아키라 >(오토모 가츠히로, 1988)나 <공각기동대>(오시이 마모루, 1995)를 보러 왔던 관객들, <에반게리온>의 팬들, ‘지브리 애니메이션’이나 한국 단편 애니메이션을 보던 관객들이 모두 같은 성격의 관객층이라고 뭉뚱그릴 수 없다. 심지어 <에반게리온> 상영회를 보러 왔던 관객들조차도 하나의 성격을 가진 집단으로 묶을 수 없다. 개중에는 정말 <에반게리온>을 좋아하는 오타쿠도, 그저 심도 깊은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시네필도 있을 것이고, 혹은 ‘워낙 화제가 되는 작품이라니 나도 구경이나 한번 해볼까’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네마테크를 찾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너무 보고 싶지만 좀처럼 볼 수 없는 작품이 상영되는 곳 , 그런 작품을 찾는 이들이 편안하게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며 모일 수 있는 곳, 배급 경로를 찾지 못한 창작자들이 자신의 작품을 들고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곳으로서 시네마테크가 다양한 관객층을 끌어모으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관객층들이 2000년대 초반, 흔히 ‘한국영화의 화양연화’라고 이야기되는 시기를 불러오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킹덤>의 팬덤 1990년대 가장 ‘힙한’ 공간이었던 이 민간 시네마테크들은 어떻게 사라지게 되었을까. 결론을 대신하여 2024년 주제사에서 가장 핫했던 작품 < 킹덤(Riget) >(라스 폰 트리에, 모턴 안프레드, 1994)과 < 킹덤 2(Riget II) >(라스 폰 트리에, 모턴 안프레드, 1997)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를 짓고자 한다. 두 작품의 상영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은 시네마테크의 관객층이 갖는 응집력의 폭발 인 동시에 이들이 주류의 문화 안으로 흡수되는 과정 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가 개최된 이후로, 부천의 판타스틱영화제・서울여성영화제・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영화제(SICAFF) 그리고 2000년 전주국제영화제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만들어진 영화제 들은 영화팬들에게 또 다른 놀이터였다. 영화제는 ‘합법적’으로 새로운 영화를 제공했고 관객들은 그곳에서 마음껏 놀았다. 그리고 영화제에 참여하지 못한 이들에게도 신문 기사나 PC통신 동호회 등등을 통해 참석자들의 뜨거운 후기는 전해졌다. 수보다 중요한 것은 관객들의 열기. < 브레이킹 더 웨이브 >의 감독 라스 폰 트리에가 연출한 무려 4시간 반짜리 영화 <킹덤>이 대표적인 경우. 지난달 30일 자정에 열린 첫 상영에는 4백여 석 극장에 2천여 명이 몰려 급히 다른 극장을 잡아 시차를 두고 두 곳에서 상영했으며 그러고도 수백 명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 “시네마 부천, 9만 관객 갈채”, 《동아일보》 1997. 9. 6. 26면 기사 영화제가 끝난 뒤에도 <킹덤>과 심야영화 의 붐은 계속 이어졌다. 당시 <킹덤>과 심야상영을 찾던 관객 안에는 좋은 작품을 찾아 헤매는 시네필들도 있었지만, 단순히 심야상영 문화를 즐기고 그 열기에 섞이고 싶은 젊은이들도 모여들었다. 최근 들어서는 심야시사회로 일반화되는 추세.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던 예술영화의 재상영 기회 로도 그 몫을 한다. 심야상영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우선 값이 싸기 때문이다. 일반영화 한 편 값으로 서너 편의 영화를 볼 수 있는 IMF형 문화상품. 단순한 영화관람에만 그치지 않고 젊음과 영화를 매개로 한 일종의 공동체 의식을 형성한다는 것도 한 이유. 여대생 박진아 양(22)은 “영화관에 있으면 한배에 탄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전율과 긴장, 공포와 웃음으로 밤을 지샌 뒤 인적없는 새벽거리로 나설 때의 쾌감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말한다. - “값싸고 젊음・마니아 상징에 만원사례, 심야상영 신세대문화로 뿌리”, 《경향신문》 1998. 5. 29. 22면 기사 상대적으로 수도권에 비해 문화적 전파가 더딜 수밖에 없는 지역에서도 뒤늦게 <킹덤>과 심야상영을 즐기려는 관객들이 자신의 지역에 위치한 시네마테크에서의 재상영을 찾았다. 박상백은 “전라도의 모든, 이런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이 다 왔던 것 같다”라고 당시의 분위기를 표현했는데, 이런 엄청난 관객 동원은 기존 시네마테크를 찾던 시네필들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이었다. 박: 그때 부천영화에서 이미 상영을 했었고, 필름으로. 저도 그때 가서 봤고. 열기를 봤었고. 자연스럽게 볼 수 없는 상황이 되니까 비디오테이프로 그거를 작업해서 돌았었어요 . 그래서 그거를 가져다가 이제 상영을 한 건데. … 심야 문화가 없었기 때문에 그게 또 사람들은 새로운 거에 대한 호기심이나 그런 걸 경험해보고 싶은 충동이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것들이 잘 이렇게 융합이 돼 가지고 아마 그렇게 많은 관객분들이 오시게 된 단초가 되지 않았나 싶은데. 잘되니까 다른 시네마테크에서도 했었던 걸로 알고 있고. [11] 원: 그중에서 관객들이 제일 많이 봤던 영화가 <킹덤>이라는 영화였어요. 그 영화가 97년도 부천영화제에서 매진이 되고, 그해 12월에 동숭씨네마텍에서 개봉을 했는데, 대구에는 이 영화가 내려올 일이 없다고 생각을 한 것죠. 그래서 2월쯤에 그 영화만 가지고 상영회를 했어요. 근데 어느날 배급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우리가 그 영화 권리를 가지고 있는 회사인데 무단으로 틀었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지금 재산상 손해를 이렇게 봤으니까 만나자.” … “그러면 대구에서 <킹덤>이 개봉되는데 홍보를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 을 주셨는데, … <킹덤>이라는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흥행했던 영화들하고 다르게 전국 로드쇼를 했던 영화고. 서울 상영이 대박이 터지면서 부산 상영을 했고, 부산에서도 대박이 터지면서 대구로 이제 상영이 옮아온 거고. 그게 12월이었는데 대구가 2월이니까 한 3개월 뒤에 오는 거잖아요. 그래서 서울에서 홍보가 이미 다 끝났고 지역에서 개봉할 때는 지역 언론사에 별도로 홍보를 해야 되는 필요가 생겼는데. … 또 <킹덤 2> 할 때는 아예 처음부터 ‘지역에 있는 시네클럽들, 시네마테크들하고 홍보를 같이 하자’ 라는 계획을 세웠어요. … 대구에서는 그걸 제가 했던 거고, 광주에는 뭐 광주극장에서 워낙 잘하시니까 그걸 했던 거고. 부산은 뭐 부영극장에서 잘하시니까 그랬던 거고. 대전은 이제 ‘컬트’가 그거를 하게 된 거고. [12] 대전 씨네마떼끄 컬트에서 개최된 ‘킹덤 상영회 포스터’ ※황규석 기증자료 박상백이나 원승환의 말처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킹덤>을 향한 관객들의 뜨거운 열기를 확인한 시네마테크들도 앞다퉈 <킹덤> 상영회를 추진했고, 그 열기에 동참하고, 함께 즐기고자 하는 이들이 찾아오며 시네마테크에서도 연이어 흥행에 성공했다. 이들은 이듬해 <킹덤 2>의 상영회도 추진하고자 했지만 <킹덤 2>의 정식 수입사인 KJ엔터테인먼트에서는 이 시네마테크의 불법적 상영에 제동을 거는 한편으로, 오히려 이들이 갖고 있는 지역에서의 홍보 노하우를 적극 활용하여 전국 상영을 진행했다. 그렇게 <킹덤 2> 역시 흥행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이제 시네마테크들의 입장에서는 합법적 상영 공간에 자신들의 역할을 내어줄 때가 되었음을 깨닫게 되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2000년대에 들어서서 일부 시네마테크 운영자들은 멀티플렉스에 자리를 빼앗긴 소극장이나 각 지역 대표 단관극장들과 손을 잡고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을 운영하거나, 자신들의 특기를 살려 독립예술영화 배급 쪽으로 자리를 옮겨 활발히 활동을 이어갔다. 그렇게 은밀한, 그래서 더 자유롭고 끈끈했던 관객들, 그리고 그들에게 아지트가 되어준 문화공간들은 사라져 버렸지만, 각 지역의 민간 시네마테크들이 남긴 유산은 여전히 한국영화 산업 내에서 여러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이 지역의 영화문화와 독립・예술영화 산업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자세히 알고 싶다면, KOFA컬렉션을 통해 공개된 2024년 주제사 ‘1990년대 전후 지역 영화문화의 변화와 네트워크’ 에서 직접 확인해보도록 하자! *** [1] 공영민 채록연구, 『2024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1990년대 전후 지역 영화문화의 변화와 네크워크> 1권: 정희섭・박영정・박상백・송정환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4, 217~218쪽. [2] 공영민・한나리 채록연구, 『2024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1990년대 전후 지역 영화문화의 변화와 네크워크> 3권: 이진이・원승환・황규석・강민구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4, 192쪽. [3] 공영민・한나리 채록연구, 《2023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영화문화의 변화와 사설 시네마테크의 활동> 2권: 정성일・이하영・손주연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3, 37~38쪽. [4] 한나리 채록연구, 『2023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영화문화의 변화와 사설 시네마테크의 활동> 3권: 안정숙・곽용수・조영각・김영덕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3, 188~189쪽. [5] 한나리 채록연구, 앞의 책, 101쪽. [6] 한나리 채록연구, 위의 책, 147~148쪽. [7] 한나리 채록연구, 『2023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영화문화의 변화와 사설 시네마테크의 활동> 3권: 안정숙・곽용수・조영각・김영덕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3, 224~226쪽. [8] 공영민 채록연구, 『2024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1990년대 전후 지역 영화문화의 변화와 네크워크> 1권: 정희섭・박영정・박상백・송정환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4, 295쪽. [9] 이문주 채록연구,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생애사 18권: 박보경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1, 69쪽. [10] 유은정・박지윤 채록연구,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생애사 21권: 손영득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1, 95~96쪽. [11] 공영민 채록연구, 앞의 책, 한국영상자료원, 2024, 216~217쪽. [12] 공영민・한나리 채록연구, 앞의 책, 한국영상자료원, 2024, 142~147쪽.
오늘날 영화관의 주류 모델이 된 기업형 멀티플렉스에서 상영할 영화를 선정하고 스크린과 상영 시간을 배치하는 일은 과거의 영화관들이 했던 일과는 전혀 다른 일이 된 듯하다. 지금 멀티플렉스의 프로그램 담당자는 한두 개의 스크린을 운영하며 관객에게 소개할 만하거나 관객이 좋아할 만한 영화를 선정하는 (낭만적인) 일을 한다기보다, 서로 다른 좌석수를 가진 여러 개의 스크린에 큰 수익을 창출할 가능성이 있는 영화들을 배치하고 실제 수익률에 따라 영화의 스크린 수와 좌석 수, 상영 시간대와 연장 상영 여부 등을 조절하는 일을 한다. 어쩌면 이런 일은 투자신탁회사의 펀드매니저의 업무와 비슷하다. 펀드매니저가 하는 일을 설명하자면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펀드매니저는 고객이 위탁한 자산을 성공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투자해 수익을 내는 일을 한다. 기업형 멀티플렉스의 프로그램 담당자가 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수익을 낼만 한 영화를 골라서 스크린과 상영 시간을 배치하는 일을 한다. 하지만 펀드매니저가 성공 가능성이 있는 기업을 골라내는 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펀드매니저들은 나름대로 기업과 시장을 보는 안목을 갖추고 미래를 예측하려고 노력하지만, 그 판단이 항상 성공적이지는 않다. 기업형 멀티플렉스의 프로그램 담당자도 마찬가지다. 선택하는 영화가 항상 관객의 관심을 얻는 것도 아니고 구매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안정적인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최대한 위험 요소를 피하면서 투자해야 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해리 마코위츠는 이 질문에 해답을 내놓았다. 마코위츠가 내놓은 해답은 자산을 분산투자하여 포트폴리오를 만들게 되면 분산투자 전보다 위험을 감수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흔히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로 설명되는 분산투자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오늘날 펀드매니저들은 고객이 위탁한 자산을 한두 기업의 주식에 몰아서 투자하기보다 서로 다른 종류의 기업의 주식에 투자하며, 주식 외에도 채권이나 다양한 금융상품 등에 분산투자한다. 기업형 멀티플렉스의 프로그램 담당자가 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여러 개의 스크린을 가진 멀티플렉스이기에 여러 영화를 상영한다기보다, 스크린의 좌석 수나 상영 시간의 선호도에 따라 영화들을 분산 배치하면서 최대의 수익을 올리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모든 투자자가 분산투자를 하는 것은 아니다. 분산투자는 위험을 회피하며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지만 기대만큼 큰 수익을 내지는 못한다. 유명한 투자가인 워렌 버핏은 분산투자가 효율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분산투자는 안전할지는 모르지만 수익률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워렌 버핏은 달걀로 닭을 키우려면 가능성 있는 몇 개의 달걀에 집중적으로 노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큰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집중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실제로 워렌 버핏은 집중투자로 큰 수익을 올렸고 그 결과 높은 평판의 투자가가 될 수 있었다. 영화는 뉴미디어가 등장할 때마다 사양 산업으로 대우받는다. 따라서 영화 상영업자에게 지속적인 성장 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게다가 분기별로 수익률을 평가받아야 하는 상장기업이라면 성장 가능성에 대한 신뢰확보를 위해 수익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위험을 회피하는 것 이상의 수익을 내야 한다. 기업형 멀티플렉스의 프로그램 담당자가 분산투자 방식에 만족하지 못하고 집중투자 방식으로 영화를 선정하고 배치하는 것은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더 큰 수익을 만들어내기 위함이다. 2006년 영화 < 괴물 > 이후 10년간 특정 영화의 스크린 독점이 문제시되었지만 여전히 지속되는 이유는 기업형 멀티플렉스의 영화 선정과 배치 방식이 분산투자가 아니라 집중투자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만고만한 여러 편의 영화를 상영하기보다 성공 가능성이 높은 (블록버스터) 영화 한 편에 집중하는 것이 보다 높은 수익으로 이어졌다. 게다가 영화의 흥행 여부가 단기적으로 결정되며 상영시장에는 매주 새로운 영화들이 공급된다는 특성도 단기적 집중투자를 선택하는 주요한 배경이 되었다. 이번 주에 집중 투자한 영화가 실패하더라도 곧 개봉할 다음 영화로 투자 대상을 바꾸면 된다. 다음 영화가 성공한다면 지금의 실패는 곧바로 만회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성공 가능성이 불확실한 영화보다 이미 성공한 영화에 보다 집중하는 것이 더 높은 수익을 가져온다는 것을 확인한 것은 중요한 성과였다. 매년 1천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성공한 영화에 더욱 ‘몰빵’하는 전략의 결과다. 매년 성장한 박스오피스 통계는 이런 집중투자 전략이 꽤나 성공적이었음을 증명한다. 하지만 집중투자가 짧은 시기에 반복적으로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위협이다. 분기별로 최소한 서너 편 이상의 성공작이 나와야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시장이 받는 충격은 엄청나다. 하지만 집중투자라는 성공 방식의 레일에 올랐고 이미 가속도가 붙은 이상 여기서 내려서는 것은 쉽지 않다. 단기적으로 실패한다고 해도 갑자기 레일에서 내려설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흥행 성공작을 ‘인위적으로라도’ 만들어야 한다. 2016년 초 CGV가 아이맥스에 < 쿵푸팬더 3 >를 예매한 관객에게 ‘극장 사정’으로 인해 상영이 어렵다며 취소를 종용하고 곧 같은 시간에 < 검사외전 >을 배치해 상영하는 무리수를 둔 것은, 보다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영화에 더욱 ‘몰빵’해야 하는 상황에 이미 내몰렸음을 증명하는 사례다. 상영영화를 교체하는 소동을 일으킨 CGV는, 2015년 4분기 관객이 2014년에 비해 줄었고 이에 따라 티켓매출과 매점매출도 모두 하락했다. 2016년 1분기에 이를 만회하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2016년 1월 관객 수는 전년 대비 25%나 감소했다. 설 연휴가 있는 2월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감소한 수익을 만회해야 했다. 계열사인 CJ E&M이 배급하는 작품이며 같은 시기 흥행 2위 작품이었던 < 쿵푸팬더 3 >의 상영 스크린까지 빼서 1위 작품인 < 검사외전 >에 ‘몰빵’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은 이런 것이었다. 스크린을 ‘몰빵’한 <검사외전>의 최다 스크린 수는 1,812개였다. 이는 2015년에 각각 1천3백여만 명과 1천2백여만 명을 동원한 < 베테랑 >(1,115개)과 < 암살 >(1,519개)의 최다 스크린 수보다 많았고, 경쟁 영화 없이 독점 상영된 <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의 최다 스크린 수 1,843개에 필적하는 어마어마한 수치다.(하지만 <검사외전>의 최종 관객수는 9백7십여만 명으로 1천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으는 데는 실패했다.)2016년 상반기 기대작들의 반복적인 흥행 실패와 전년 대비 감소한 관객 수와 매출액은 스크린 독점현상을 보다 가속화시키고 있다(2016년 1월~4월까지 누적 관객 수와 매출액은 전년 대비 6% 가량 감소했다). 흥행 영화의 가뭄 속에서 큰 기대를 받았던 <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은 1,708개 스크린에서 독점 상영되었지만 흥행에 실패했다. 이 실패는 <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의 기록적인 스크린 독점(최다 1,990개)으로 이어졌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흥행이 잠잠해지자 스크린들은 곧바로 < 곡성 >으로 몰려갔다. 1,122개 스크린에서 개봉된 <곡성>의 스크린은 1,481개까지 늘어났다. 스크린 독점 현상이 단기간 폭발적으로 확대되고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상반기의 저조한 흥행실적은 하반기에 보다 큰 성공으로 만회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이어질 것이며, 흥행 성공 영화에 대한 스크린 ‘몰빵’은 보다 거대해질 것이다. CGV, 롯데, 중앙일보(메가박스) 3개 대기업이 수요독점하고 있는 현재의 상영시장의 환경은 인위적으로 시장 독점 상황을 만들어내는 든든한 배경이다. 사실상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CGV 혼자의 힘으로도 특정 영화의 시장 독점을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다. 2016년 여름, 우리는 스크린 독점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목도하게 될 것이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집중투자 전략을 쓰는 것을 마냥 부정적으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집중투자 방식이 항상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을 망각해선 곤란하다. 반복적인 집중투자는 투자가 아니라 도박이다. 기업형 멀티플렉스가 한 편의 영화에 단기적으로 ‘몰빵’하는 사이, 영화흥행은 위험한 폭탄 돌리기로 바뀌어가고 있다. 흥행작이 2분기 이상 나오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현재의 전략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영화는 선호의 사이클이 짧은 상품의 성격만을 가진 것이 아니라, 문화이며 예술 작품이기도 하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건강한 문화를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양성이 필요하다.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취향의 소비자가 존재할 때, 다양한 상품이 개발되고 유통되며 시장이 안정적이고도 건강하게 성장할 것이다. 영화시장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일부 영화(예를 들어 < 명량 >)가 자연스럽게 독점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특정 사업자가 인위적인 독점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독점과 다르다. 독점사업자가 인위적으로 특정 영화의 독점을 조장하며, 배급사 간의 경쟁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고 영화들을 지나치게 차별 편성하는 것은 시장의 미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사업자들은 한 영화에 집중하는 도박 같은 상영전략 외에 다른 전략을 만들고 실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현재와 미래의 건강한 시장을 위해 독점에 대한 규제 방안을 고민하고 실행해야 마땅하다.
꽃집을 하며 평범하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는 ‘전모’의 가족, 하지만 어느 날 걸려온 전화 한 통에 이 행복은 깨진다. 딸이 유괴되었고, ‘전모’는 딸을 돌려받기 위해 범인의 요구대로 행동하기 시작한다. 유원상 감독의 < 보호자 >는 인상적인 영화다. 평범한 유괴영화처럼 시작하지만, 곧 영화는 다른 유괴영화와 전혀 다르게 전개되기 시작한다. ‘아이를 구하려면 다른 아이를 유괴하라’는 유괴범의 요구 때문이다. 유괴 사건의 해결을 위해 또 다른 유괴 범죄를 저질러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 그리고 시작된 두 번째 유괴사건. <보호자>는 두 개의 유괴가 맞물리는 플롯 덕분에 ‘아이를 유괴당한 부모와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경찰 vs.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범인의 대결’이라는 전형적인 유괴영화의 틀을 넘어선다. <보호자>가 이렇게 흥미로운 영화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게임이론이 플롯에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보호자>에 도입된 게임이론은 장 자크 루소의 이야기를 따서 만들어진 ‘사슴사냥 게임’이라는 사회적 딜레마 게임이다. 사슴사냥 게임에는 두 명의 사냥꾼이 등장한다. 두 사냥꾼은 각각 토끼나 사슴을 잡을 수 있다. 토끼는 사냥꾼 한 명이 잡을 수도 있지만, 사슴은 두 사람이 힘을 합쳐야만 잡을 수 있다. 그리고 토끼를 잡는 것보다 사슴을 잡는 것이 훨씬 더 이익이 크다. 둘은 상대의 선택을 알지 못하고 하나의 행동만 선택해야 한다. 만약 사슴을 잡고자 한다면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상대와 협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한 쪽이 배반하는 경우 토끼를 쫓는 사람만 작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이런 딜레마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 보호자 >에는 두 부모가 등장한다. 그리고 유괴범은 딜레마를 만들었다. 아이를 유괴당한 각각의 부모는 범인의 제안을 따를 것인가 말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자신의 가족만의 이익을 위해 상대를 배신할 것인가, 아니면 함께 더 큰 이익을 얻는 방식으로 행동할 것인가? 사슴사냥 게임은 ‘이익은 적지만 안전한 선택’과 ‘더 큰 이익을 위한 사회적 협력’ 사이의 갈등 관계를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경제학은 인간이 이기적으로 행동할 때 더 큰 이익을 얻는다고 주장하지만, 이 딜레마에 따르면 이타적으로 행동할 때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사슴사냥 게임에서는 상대가 협력한다면 나도 협력하는 할 때 가장 큰 이익을 얻는다. 하지만 상대의 선택은 알 수 없다. 이는 공포가 되고, 협력보다는 작더라도 자신의 이익을 좇게 만들 수도 있다. 자신의 선택만이 아니라 파트너의 선택이 무엇인지도 중요한 순간, 영화의 인물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게임에서는 토끼 혹은 사슴이지만, < 보호자 >에서는 나의 아이다. 협력이냐, 배신이냐? 당신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 보호자 >는 사적 이익과 윤리적 선택 사이에서 인간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이 딜레마 속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끈질기게 질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