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하의 검
- 감독
- 임권택
- 제작년도
- 1969
- 출연
- 김지미, 윤양하, 김명진, 허장강, 김순철, 한은진, 박경주, 이훈, 독고성, 강민호, 전숙, 김지영, 김경란, 김수천, 김승남, 김기범, 박병기, 추봉, 김세라, 지방열, 주일몽, 이예성, 임생출, 고설봉, 임운학, 최일, 이정애, 김신명, 홍동은, 임해림, 윤일주, 임성포
1967년 홍콩 쇼브라더스의 <대취협>(호금전)이 한국 시장에 처음 등장했을 때 이 새로운 ‘장르’ 영화가 이후 한국에 미칠 막강한 영향력을 예상했던 자는 거의 아무도 없었던 것 같다. 이 낯선 장르영화는 당시 한국 영화시장의 강력한 흥행 장르인 마카로니 웨스턴 풍의 제목을 빌려서야 이 시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셀지오 레오네의 A Fistful of Dollars(1964)가 ‘황야의 무법자’로 개봉, 대히트를 기록하며 불붙기 시작한 이 이탈리안 웨스턴들의 제목은 거개가 원제와 상관없이 황야, 석양, 결투, 무법자를 선호하곤 했다). 그리고 이 영화 <대취협>=< 방랑의 결투 >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파상적 흥행기록’을 세웠다. 곧이어 쇼브라더스산 무협영화 세 편이 이 시장을 강타했다. 1968년 신필름이 수입한 <독비도>(장철, 한국 개봉제목 <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 <변성삼협>(장철, 한국 개봉제목 < 삼인의 협객 >), <금연자>(장철, 한국 개봉제목 < 심야의 결투 >)의 총 관객수는 무려 65만 명에 이르는 것이었다 이 중에서 단연 압권은 <독비도>였다. 홍콩영화 최초로 백만 달러의 수익을 거둬낸 이 영화는 1960년대 중반 ‘무협 신세기’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새로이 무협영화를 일신함으로써(모더나이제이션) 시장을 확대하고자 한(글로벌라이제이션) 쇼브라더스 ‘신파 무협영화’ 전략의 혁혁한 성과이자 1960, 70년대를 풍미한 한국의 수많은 신체상해 히어로의 액션활극이라고 할만한 것들에 강력한 영감의 기원이 되었다.(아마도 이 중 가장 ‘급진적’인 실천의 사례를 들자면 1969년에 발빠르게 만들어진 < 팔없는 검객 >(임원식)이 될 것이다. <독비도>의 내러티브를 고스란히 차용한 이 영화는 한쪽 팔이 아닌 양팔을 모두 잃고 입과 발가락으로 검을 휘두르는 주인공을 선보인다!) 또한 <독비도>의 외팔이 왕우는 한국 관객들을 열광시킨 최초의 홍콩 스타가 되었으며, 한국에서 홍콩영화가 차지하는 독특한 위상과 소비의 방식을 보여주는 첫 번째 이름이 되었다(그리고 알다시피 이 스타를 향한 열광은 홍콩영화의 장르 변천 속에서 이소룡, 성룡, 주윤발 등으로 이어질 터이다). 이 새로운 열광을 자국 내 영화로 흡수하고자 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게다. 게다가 당시 ‘중국검객영화’ 혹은 ‘검객활극’이라고 불려졌던 이 장르영화는 자국 시장을 넘어서는 가능성으로 충만한 것이었다. 간단히 말해 이 영화들은 어떤 계층, 어떤 젠더, 어떤 세대, 즉 도시의 젊은 하위계층 남성들에게 강력히 어필하는 것이자 이 지역 공통의 산업화 속에서 발생한 이 관객들은 국경을 넘어 이곳과 저곳에 모두 존재하고 있었다. 곧이어 어떤 한국영화들이 일시에 ‘검’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여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 쌍용검 >, < 비호 >, < 대검객 >, < 유랑의 검호 >, <신룡검객>, < 무정검 >, < 3인의 여겸객 >, < 괴도의 검 >, < 단장의 검 >, < 필살의 검 > < 팔도검객 >...... 리스트는 끝없이 이어진다. 임권택은 < 뢰검 >, < 월하의 검 >, < 비검 >, < 요검 >을 만들었다. 어떤 영화들은 단독으로 만들어졌고, 어떤 영화들은 홍콩 혹은 대만과 합작으로 만들어졌으며, 어떤 영화들은 한국 국적의 감독이나 배우를 빌미로 합작을 주장하였다. 어떤 영화들은 재편집과 한국어 더빙을 거쳐 합작영화라고 주장되었다. 이를테면 장철의 < 철수무정 >과 <십삼태보>(한국어 개봉제목 < 13인의 무사 >)는 한국어로 더빙되어 한국-홍콩 합작영화로 공개되었다. 당시 쇼브라더스 전속 감독이었던 정창화가 만든 < 아랑곡의 혈투 >는 그의 국적을 이유로 합작영화라고 소개되었다. 식자들은 근심과 탄식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 누군가는 “한결같이 잔혹성에 의한 쇼킹도”로 극장 가를 석권한 이 “국적도 고증도 없는 검객물”의 홍수를 한탄했으며, 누군가는 “관객들의 양식을 뒤집어 보게끔” 할만한 것이라고 아연실색했다. 누군가는 “한국 배우가 중국식 칼장난이나 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며 “우리의 얼을 모독하는 무의미한 상행위”에 불과하다고 분노하였다. 요컨대 이 영화들은 도저한 내셔널 시네마의 담론 내에서 긍정되기 쉽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너무 폭력적이라는 점에서 문제적이었다.(덧붙이자면 홍콩영화의 폭력성에 대한 이 식자들의 우환은 1990년대 초까지 줄기차게 반복될 터이다.) 1968년의 영화 <쌍용검>은 이 영화의 원작인 『정협지』까지를 포함하여 말하자면 ‘무협’이 어떻게 한국의 남성 하위문화에 기입되고 있는지, 한국영화에 도착한 트랜스내셔널한 실천의 양상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사례이다. 먼저 김광주의 『정협지』. 김광주가 대만 작가 위지문(尉遲文)의 동시기 소설 『검해고홍 劍海孤鴻』을 번안한 이 소설은 1961년 경향신문에 연재된 이래 이 신문의 지가를 올렸으며 1963년 신태양사에서 출판되어 당대의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았다. 소설가이자 루쉰의 한국어 번역자였던 김광주가 어떻게 무협소설을 번안해오고 있는지 그 구체적 경위까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가 무협 장르가 가지고 있는 대중적 파급력에 그 누구보다 민감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김광주는 1920년대 중후반 상하이 문예비평계의 주류에서 활동하였다. 이 시기 상하이는 지난 글에서 다뤘던 바, 무협이 대중문화의 자원으로서 등장한 바로 그 시공간이기도 하다. 쇼브라더스가 그러한 것처럼(이 영화사의 전신인 천일영화사는 1920년대 후반 무협영화를 양산했던 상하이의 주요 프로덕션 중 하나였다) 김광주 또한 이 시기 무협에 대한 대중의 열광, 그 매혹의 한 가운데를 통과해갔다. 즉, 그는 이 장르의 효용성을 그 누구보다도 실감했던 자이다. 『정협지』가 누린 인기를 염두에 둔다면 무협영화의 저 붐 속에서 이 텍스트가 재빨리 불려져 나온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실제로 『정협지』의 영화화를 둘러싼 영화사들 간의 치열한 경합이 벌어졌다. 한국영화사의 이재명과 제일영화사의 홍성칠이 영화화 판권을 둘러싼 공방을 벌였는데, 한국의 김광주와 대만의 위지문, 한국 내 에이전트, 친우 등이 복잡하게 얽힌 이 공방은 흐지부지되었지만 그 와중에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제일영화사였다. 이 영화사는 홍콩의 옥련영화사와 손을 잡고 <쌍용검>과 또 한편의 김광주의 번안 무협소설 『비호』의 동명영화를 동시제작하였다. 이 영화들은 검술영화 열풍으로 달아오른 자국 시장 뿐 아니라 동남아 시장에도 예상대로 어필 가능하였다. 제일영화사는 1969년 한해에만 네 편의 합작 무협영화를 만들었으며, 이 해에 이 영화사의 수출액은 30만불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었다. 1968년의 전체 한국영화 수출액이 8만불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숫자의 크기가 얼마나 놀라운 것이었는지 짐작 가능하리라.(1969년의 한 영화잡지 기사는 대종상에 올해의 수출상이 있다면 이 영화사가 받아야 할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이 사례는 1970년대 횡행하게 될 한국과 홍콩과 대만과 여타 동남아시아 영세 영화제작자들의 합종연횡이라고 할만한 소위 ‘합작’의 계기들이 어떤 식으로 등장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 외화수입 쿼터라는 정책이 마련해놓은 구조, 정기적으로 가해지는 홍콩산 무협영화의 수입규제 하에서 자국 영화로 카운트될 수 있는 합작은 충분히 선호될 만한 것이었다. 종종 그것이 소위 ‘위장합작’의 형태였다고 하더라도. 어쨌건 이제 막 이런 영화들에 호응하는 관객집단이 발견되었으며, 변두리 싸구려 극장에서 환호하는 이들을 통해 무협은 한국 대중문화의 이디엄으로 화려하게 등극할 수 있었다. 무협이란 그리 오래된 단어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단어는 동아시아 근대의 산물이다. 무(武)에 협(俠)이라는 오래된 개념을 조합시킨 최초의 인물은 일본의 초기 모험소설가인 오시카와 슌로로 알려져 있다. 오시카와 슌로는 1903년 『무협의 일본』이라는 소설을 발표하였고, 『무협세계』라는 소년잡지를 만들었다. 이 열렬한 ‘군인칙유’의 신봉자는 무(武)와 이미 무를 포함하고 있는 협(俠)을 겹쳐놓음으로써 근대 일본의 무력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담아내고자 했다. 그러나 이 단어는 일본 내에서 정착되지 못했으며, 일본의 중국인 유학생들에 의해 중국으로 전파되어간 이래 전술한 것처럼 1920년대 중반 상하이라는 장소에서 드디어 강력한 대중문화의 이디엄으로 기입되었다. 일본에서 이 단어는 1970년대 이전까지 거의 쓰이지 않았다. 왜 이 조어는 일본이 아닌 근대 중국에서 정착할 수 있었는가? 무가 말 그대로 무력을 뜻하는 것이라면, 협은 이보다 좀더 복잡한 정의를 필요로 한다. 이 오래된 개념은 한비자에 의해 가장 처음 정식화되었다. 그에 따르면 협(俠)은 무로써 禁(法)을 범하는 것이다(俠以武犯禁). 법가 한비자에게 이 개념은 두 가지 점에서 부정적인 것이었는데, 왜냐하면 협객이란 현존하는 법질서를 깨고 자신들만의 룰로 움직이는 도당의 무리이기 때문에 그렇다(『수호지』의 양산박을 떠올려보라). 이 개념에 의(義)를 개입시킴으로써 정치적 의제로 이동시켜온 것은 사마천이었다. 사마천은 「유협열전」에서 “무로써 법을 범하고 권위를 무시하지만 언신행과(言信行果)의 행동규범에 입각하여 약자와 액곤(厄困)한 자를 도와줌에 있어서는 자신의 생사를 돌보지 않는’ 자의 속성으로 이를 정의내림으로써 협을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개념으로 전화시키고자 했다.(『사기』) 그러나 유협의 유(游)와 자객의 객(客)이라는 명칭이 이미 보여주듯 시스템 바깥의 행위자들에 의한 시스템의 파괴라는 의미에서 여전히 협은 잠재적으로 위험한 개념이다. 즉, 현존 법질서를 초과하는 폭력으로서 협에는 언제나 법정립적 폭력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할 때 제국의 패권적 질서를 위한 강력한 무력을 상정하는 일본이 아닌 반(半)식민지 중국에서 힘(武)을 통해 이 상황을 깰 수 있는 협에 대한 상상은 보다 적극적으로 개진될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무협의 핵심 공간은 현실 세계의 법과 무관한 강호-무림의 세계이다. 이 상상적 세계란 1920년대 근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장이었던 중국에서 발견된 판타지 공간에 다름 아닌 것이다. 아마도 협이 내포하고 있는 어떠 시스템의 파괴, 폭력의 가능성이야말로 무협영화가 1960년대 홍콩에서 홍콩영화 최초의 영컬처로서 재등장하고, 나아가 한국과 같은 장소에서 이제 막 하나의 관객층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젊은 하위계층 남성들에게 그토록 어필할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또한 이 지점이야말로 이 영화들에 쏟아졌던 저 식자들의 우환의 진짜 이유인지도 모른다. 홍콩에서 무협영화는 그 장르적 후신으로 1970년대 초 맨몸의 싸우는 영화, 이후 ‘쿵푸영화’로 이름붙여질 영화로 옮겨갔다. 홍콩영화의 장르 변동과 민감하게 연루되어 있던 한국의 어떤 영화들은 검술영화에서 권격영화, 당시 용어로는 ‘태권도 영화’로 이름붙여질 장르로 넘어갔다. 이제 유신 시대 한국의 변두리 극장에서는 정책과 장사꾼들과 특정 관객들의 욕망이 단단하게 엉킨 채로 소위 위장합작의 복마전이 펼쳐질 터이다. 다음에는 여기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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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공포영화가 아니다. 아마 제목을 보고 먼저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 원한의 두 꼽추 >는 무협영화이다. 그렇게 부르기는 했지만 그 시절 충무로에서는 일부러 (해서는 안 될 유치한 짓을 하고 있다는 자괴감으로) ‘칼쌈’ 영화라고 부르거나 칼 소리가 부딪친다고 해서 의성어를 빌려 ‘짠짠바라’라고도 불렀다. 물론 이 표현은 일본영화에서 시대활극이나 임협물(任俠物)의 ‘殺陳’ 활극 시퀀스를 부르는 짠바라(チャンバラ)에서 온 말이다. 임권택 의 영화에서 무협영화는 1967년 < 풍운의 검객 >으로 일시적으로 나타났고 그런 다음 < 잡초 > ‘이후’ 그의 목록에서 완전히 사라진 장르이다. 종종 무기력한 방향상실. 나는 지금 < 뇌검 > < 월하의 검 > < 비검 > < 요검 >, 그리고 < 삼국대협 >을 떠올리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이 제목들을 연도별로 순서대로 썼다. 이 영화들이 기괴해 보이는 것은 시행착오를 통해 자기의 세계를 확장시켜나간 임권택의 영화 중에서 유일하게 점점 나빠져 갔다는 것이다. 임권택은 이 영화들에 거의 공감하지 못했다. 그가 아무 거리낌 없이 그 시절 연달아 서울에서 개봉한 호금전의 < 용문의 결투 >와 장철의 <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獨臂刀 )>를 흥미진진하게 보았다고 대답하긴 했지만 영화적으로 아무런 공명을 하지 못했음이 틀림없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임권택은 이 실패들을 이미 준비된 결과처럼 받아들였다.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직업감독으로 그저 제안을 받으면 찍어야 했던 그런 시절이 내게 있었던” 영화들이다. 그렇게 말은 했지만 임권택은 이 영화들을 만들면서 반대로 직업감독으로서 자신의 위치에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내가 사라져 가는 과정에 놓인 증명은 아닐까. 몰락해가는 영화산업. 참혹한 이중검열. 한국영화에서 1970년 혹은 1971년은 설명하기 까다로운 시간이다. <뇌검> <월하의 검> <삼국대협> 이 영화는 제목이 두 개다. 다른 제목은 <흑룡가의 쌍검>인데 (영진공 시절에 정리한) 예전의 감독 연보에는 두 편의 제목이 마치 다른 영화처럼 각각 등재되어 있었다. 같은 영화사. 같은 감독. 같은 배우, 같은 각본, 같은 촬영. (정리된 문헌에 따르면) 거의 같은 내용. 그래서 처음에는 한 편의 영화 스텝들과 배우들을 이끌고 동시에 두 편의 영화를 만들 줄 알았다. 1970년대에는 종종 그렇게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내가 들은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 감독이 제작자일 때 스텝들과 배우와 한 편의 영화 계약을 한 다음 시침 뚝 떼고 한 편의 영화를 찍는 척하면서 약간씩 대사와 세트를 바꾸면서 두 편의 영화를 찍고 나중에 편집해서 둘로 나누어 개봉했다가 분쟁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다시 정리된 자료에서 <흑룡강의 쌍검>이라는 제목은 사라졌고 영화 자막에 올라오는 대로 < 원한의 두 꼽추 >만 남았다. 그런데 사라진 제목도 잘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우선 이 영화에는 중국 동북부와 내몽고 국경 사이를 흐르는 헤이룽강(黑龍江)은 고사하고 강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쌍검은 한 명의 무사가 두 자루의 검을 지니고 다니는 것인데 아무도 두 자루의 검을 지니고 다니지 않는다. 그렇다고 두 자루의 검이 각자 나뉘어서 운명을 따라 순환하는 것도 아니다. 이 영화에서 문제가 되는 천검(天劍)은 단 한 자루의 명검이다. 구태여 말하자면 기구한 운명으로 서로 헤어져 자란 두 쌍둥이 형제를 비유하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조롱하듯이 말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좀 기묘한 방식으로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사실도 덧붙여야겠다. 내 관심은 여기에 있다. 한걸음 뒤로 물러난 < 원한의 두 꼽추 >는 마치 물구나무를 선 것처럼 임권택 에 대해서 미처 다른 영화들이 말하지 못한 것을 거의 외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자포자기가 항상 가로막고 있던 어떤 방어선을 일시적으로 치워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떤 방어선? 그렇다. 내가 1960년대 임권택의 영화를 보면서 반복적으로 발견하는 것은 약간 추상화된 할리우드 고전 영화의 문법과 다소 두렵다는 듯이 공동체의 운명에 복종하기라도 하는듯한 굴복 사이의 좁힐 수 없는 공백이다. 서로 비대칭인 둘 사이의 거리는 임권택이 그것을 조선 시대, 혹은 한국전쟁의 전쟁터, 그리고 휴전 이후의 남한 사회에서 할리우드 장르영화들이 요구하는 것을 수행하려는 데서 발생한 것(들)이다. 그런 다음 그 공백을 메우는 과정에서 임권택은 풍경을 발견했고,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가혹한 삶을 보았고, 다시 한 번 그 둘 사이에서 벌어지는 모순의 시간이 근대의 역사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으로 밀고 나아갔다. 나는 먼저 임권택이 이상할 정도로 웨스턴 영화들에 대한 열렬한 애호가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싶다. 물론 웨스턴이 일본 시대활극 영화들을 경유하여 홍콩에 도착했고 그런 다음 대만 무협소설과 결합하여 무협영화가 만들어졌지만 임권택은 그런 계보에 관심이 없었다. 분명히 거의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 돌아온 왼손잡이 > < 황야의 독수리 >나 <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 > <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마라 >를 만들었을 때 임권택은 틀림없이 자신이 본 웨스턴 영화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물론 그의 영화에서 누군가는 안소니 만을 볼 것이고, 누군가는 오토 플레밍거를 찾아낼 것이며, 아마 대부분은 윌리엄 와일러와 조지 스티븐스를 떠올릴 것이다. 이 영화들은 웨스턴 영화들의 거의 끝나가는 종말기에 마주할 수 있었던 거의 모든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악당들은 이제 더 이상 바깥에서 찾아오지 않으며, 주인공은 불안에 떨고 있고, 정의가 지켜지는 것은 종종 서사의 차원 바깥에서 이루어진다. 거기서 계보를 그려보는 것은 좀 더 나중에 할 생각이다. 하지만 임권택에게 좀 이상한 방법으로 할리우드영화의 고전주의가 지닌 우아한 아름다움이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을 뛰어넘어 승리를 거두는 순간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순간을 목격할 때마다 다소 당혹스러워진다. 이를테면 드라마를 따라가다가 갑자기 한순간 그 신을 어떻게 찍을 것인지를 몰두하는 것만 같은 시간과 마주하게 된다. 그때 예상치 않은 상황이 나타난다. 임권택은 고전적인 가치들에 대해서 어떤 두려움을 가진 것처럼 보존하고 싶어 한다. 단지 이것은 권선징악이라든가 아니면 비극을 수행하기 위하여 하여튼 결말을 맺어야 한다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오히려 그의 비극은 다른 데서 온다. 임권택은 어떤 경우에도 차라리 주인공이 희생될지언정 세상이 몰락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물러난다. 어쩌면 이것이 그의 영화에서 기쁜 엔딩이 드문 이유인지도 모른다. 약간 과도할 정도로 단순하게 말하고 싶다. 임권택의 영화에서 보여주는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가끔 기이하게 보이는 것은 그가 이미 바로크 시대에 접어든 웨스턴 영화에서 자기 자신도 모르게 감명받은 데서 오는 흔적일 지도 모른다. 그런 다음 이 바로크적 미장센들은 1969년 혹은 1972년을 통과하면서 대부분 망가져 버렸다. 장기적인 과정에서 그 자신의 탈색과정, 하지만 일시적으로 그것이 이 시기의 임권택을 우울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원한의 두 꼽추>는 이 시기에 놓인 영화이다. 첫번째 시간: 약을 탄 술을 마시는 지원필 두번째 시간: 꼽추가 된 지원필 다음 질문은 그렇다면 여기서 산산조각 났다고 생각한 파편 속에서 무엇을 물구나무 세울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설명하는 것은 몹시 번잡한 작업이 될 것이기 때문에 다소 따분하지만 도식적으로 분류하는 방식을 택할 생각이다. 우선 세 개의 시간. 첫 번째 시간은 이야기 속의 이야기이다. (이 장면은 이야기 도중에 흑백으로 되돌아간 다음 (flash_back) 진행된다) 검술의 한 유파에서 다음 장문을 가리는 자리인데 사형인 지원필은 가장 무술이 뛰어나지만 장문의 딸인 달래는 그의 경쟁자인 진수왕을 사랑한다. 그래서 장문을 가리는 자리에서 진수왕이 이길 수 있게 음모를 꾸며 지원필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척하면서 정신이 혼미해지는 약을 탄 술을 권한다. 지원필은 대결을 하다 쓰러지고 진수왕은 그의 등을 내리쳐 꼽추로 만든다. 뛰어난 무술을 가진 남자의 약한 마음을 파고든 사악한 계획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 그 여인의 비열한 애인. 공모 앞에서 좌절한 미래의 시간. 그러므로 이 남자는 이제 미래의 시간을 되찾고자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불구가 되어버린 이야기. 두 번째 시간은 첫 번째 시간으로부터 일정한 간격을 벌려놓은 다음 다시 이어진다. (그리고 여기가 영화의 첫 장면이다) 꼽추가 된 지원필이 돌아와 진수왕에게 대결을 신청한다. 무술로는 지원필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진수왕에게 그의 아내가 된 달래가 그의 친구인 정태성을 찾아가 모든 검을 잘라버리는 명검 천검(天劍)을 빌려오면 된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그렇게 아끼는 검을 빌려 줄 리가 없다고 하자 그러면 빼앗아오면 되지 않느냐고 재촉한다. 새로운 음모. 새로운 적. 새로운 복수의 계열이 여기서 생겨난다. 진수왕은 그의 친구를 죽이고 후환이 두려워 마침 절에서 아이를 낳은 그의 아내까지 참하려 한다. 그의 아내는 쌍둥이 청과 용을 낳았는데 진수왕의 부하들이 절에까지 찾아오자 자신은 청을 감싸 안고, 그리고 하인은 용을 안고 도망친다. 낳자마자 헤어진 형제, 그들의 기구한 사연. 그들은 성장한 다음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해결하기 위해 돌아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두 번째 시간의 복권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그들은 둘로 나뉜 그들 사이를 확인하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어야 할 것이다. 하나를 둘로 나누고 그런 다음 이중으로 동여맨 세 개의 이야기. 아내는 부하들에게 쫓기다가 청을 절에 숨겨놓은 채 자신의 몸만 피신하고, 하인은 용을 나무에 숨겨놓고 부하들의 눈을 자신에 돌린 다음 죽음을 맞는다. 마침 진수왕과 대결을 하러 가던 지원필은 숲에 숨은 진수왕의 부하들과 싸우다가 그만 나무에 숨겨놓은 아이를 적으로 오해하는 바람에 상처를 입히고 급히 달려간 의원으로부터 이 아이가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꼽추가 되었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미처 계산에 포함되어있지 않았던 실수. 자신의 원수에게 꼽추가 된 이 남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를 이번에는 자신이 꼽추로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야만 하는 운명에 떨어진다. 무엇이 무엇을 삼켜버리고 있는 것일까. 비극 안의 비극. 참극 속의 참극. 죄 값을 받기 위해 찾아간 자가 새로운 죄 값을 치르는 자리에 간다. 지원필은 진수왕과의 대결에서 천검에 그의 칼이 잘리자 몸을 피신한 다음 꼽추가 된 아이와 함께 산에 묻혀 살아간다. 여기까지 영화가 시작된 지 17분 동안의 이야기이다. 세번째 시간: 꼽추가 된 용 그런 다음 세 번째 시간이 시작한다. 마치 이제까지의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될 이야기의 서론이기라도 한 것처럼 여기서 갑자기 긴 시간을 건너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벌어질 사건들은 시간의 기호들을 놓고 다투는 해독의 능력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꼽추가 된 용은 어른이 되었고 지원필을 아버지로 삼아 산속 오두막에서 살아간다. 청은 산사의 절에서 스님으로부터 무술을 전수받고 속세로 돌아온다. 당신이 상상하는 다음 이야기는 이렇게 진행될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청과 용은 형제임을 알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여기에 지원필이 가세해서 진수왕에게 복수를 할 것이다. 그렇게 풀려나간다면 < 원한의 두 꼽추 >가 당신을 안심시키기는 하겠지만 너무 진부해서 더 이상 볼 이유를 찾지 못할 것이다. 물론 이 세 번째 시간이 복수의 활극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임권택 은 차례로 우리의 기대를 차단시킨다. 우선 지원필은 용에게 복수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러면서 그 자신도 진수왕에게 복수를 포기하고 살아간다. 그는 그냥 주어진 세계 자체를 인정한다. 그는 마치 복수 대신 다른 어떤 것을 하면서 살 수도 있는 것 같은 태도를 취한다. 어떤 것? 아버지의 자리. 단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자리. 그는 용이 자기 품에 안겨 꼽추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게 자신의 진정한 운명인 것처럼 받아들인다. 그래서 용은 지원필로부터 어떤 무술도 전수받지 못했다. 청은 (아마도 과거를 알고 있는 것만 같은 태도를 취하는) 스승으로부터 자신의 부모가 일찍 돌아가셨으며 속세에 나가서도 자신보다 뛰어난 무술을 지닌 고수들이 있으니 함부로 나서지 말라는 충고를 듣는다. 그러므로 청은 자신의 부모뿐만 아니라 동생에 관한 어떤 정보도 얻지 못한다. 그 둘이 쌍둥이이기는 하지만 둘 사이를 오간 재빠른 이미지의 교환을 통해서(parallel_editing) 서로 전혀 닮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좀 더 중요한 순간은 스승의 교훈이다. 늙은 노승은 청이 지닌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지만 그에게 복수 따위란 처음부터 청이 해야 할 의무가 아니라는 기회를 준다. 의무로부터 풀려난 자유. 하지만 영화가 이제부터 할 일은 당연히 청의 자유를 다시 의무로 되돌리는 것이다. 그때 여기에는 정말 그 의무가 자유를 포기하고서라도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라는 질문이 뒤따라 올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두 사람을 셈에서 빼놓으면 안 된다. 한 사람은 물론 복수를 하기 위해 두 번째 시간에 돌아온 지원필이다. 만일 그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진수왕은 친구 정태성의 명검 천검을 빼앗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청과 용은 헤어질 이유가 없으며, 그렇게 되면 용은 꼽추가 될 이유가 없으며, ...으로 이어질 연쇄적인 사건들. 그런데 세 번째 시간이 되자 용을 키운 지원필은 정반대로 복수를 완전히 포기한다. 그는 용에게 마을로 내려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그 이유는 다시는 진수왕과 다시 얽히는 순간을 피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고 용이 모피를 팔기 위해 마을에 내려가 진수왕의 아들과 만나면서 마찰이 벌어지고 지원필은 자기 발로 진수왕을 찾아가게 된다. 여기서 그 둘 사이의 멋진 대결의 순간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지원필은 이미 대결할 수 없는 자신의 육체를 드러내기라도 하듯 지팡이에 의지하고 몸을 불균형하게 뒤뚱거리면서 가까스로 진수왕의 성에 이른 다음 보자마자 무릎을 꿇고 용을 풀어달라고 하소연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복수를 포기한 지 오래이며 이미 그럴 수도 없는 처지임을 몇 번이고 호소한다. 여기엔 나중의 결정적 장면을 위한 카타르시스를 상승시키기 위해 무언가 우리를 괴롭히면서 준비된 어떤 카드도 없다. 정말 그는 복수할 의사가 없으며 또한 그 순간을 위해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다. 오로지 감옥에 갇혀있는 용을 구하겠다는 생각뿐이다. 말하자면 지원필은 여기서 완전히 아버지가 되어있다. 그가 겉보기에는 비루해졌지만 오히려 지원필만이 유일하게 복수의 의무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그 새로운 의미에 누구보다도 충실해진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지원필만이 유일하게 두 번째 시간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원한의 두 꼽추 >가 몹시 우스꽝스러워 보이긴 하지만 여기에는 원인이 있자 그 결과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전통적인 주인공으로부터 벗어나 자기에게 부여된 의무를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된 고전적인 주인공에로의 어떤 점핑이 있다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임권택 은 분명 여기서 카타르시스와 냉소적으로 대결하고 있다. 청과 용의 어머니 두 번째 인물은 아마도 당신이 잠시 잊었을 청과 용의 어머니이다. 그녀는 두 번째 시간에서 청을 버리고 무사히 도망쳤으며, 그런 다음 의미심장하게도 용과 청이 진수왕의 마을에 들어섰을 때 그녀도 마을의 주막을 찾아온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해야겠다. 그녀는 청과 함께 마을에 들어선다. 물론 아직 그 둘은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마치 거기에 모성의 직감이 작동하기라도 한 것처럼 갑작스러이 그녀 얼굴로 다가간 카메라(zoom_in)를 통해 드러난 약간의 놀라움을 담은 표정이 말없이 그것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 다음에야 용이 빼앗긴 모피를 찾기 위해 주막에 찾아오면서 세 사람은 처음 한자리에 모인다. 여기서 이상한 것은 두 쌍둥이의 어머니는 청을 보자마자 한 눈에 알아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용을 볼 때에는 그저 사태를 구경하듯이 쳐다본다. 이 장면만을 떼어놓고 보면 잘 설명이 안 된다. 그런데 한참을 더 지난 다음 이 영화에서 가장 이상한 롱 테이크와 마주하게 된다. 문제의 신. 마침내 지원필과 용의 어머니이자 정태성의 아내를 만났을 때의 장면은 내가 알고 있는 한 임권택 의 모든 영화중에서 가장 이상한 장면 중의 하나이다. 다소 길긴 하지만 이 장면의 대사는 전부를 인용할만한 가치가 있다. 임권택은 수없이 잘게 쪼갠 이 영화에서 이 장면을 끊지 않고(long_take) 한 번에 찍었다. 지원필은 그녀의 주변을 빙빙 돌면서 대사를 하고 두 번 마치 심리적인 마음의 동요를 찍는다는 듯이 그녀의 얼굴에 다가간(zoom_in) 다음 다시 물러난다(out). 01:06:59 ~ 01:08:18 롱테이크 _ “용을 어디다 숨겼나?” _ “당신이 가진 검법을 용에게 전수해준다는 약속을 해주면 만나게 해드리죠” _ “그래서 어쩌자는 거지?” _ “용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야 합니다. 진수왕을 죽여서 억울한 죽음을 당하신 남편의 원혼을 위로해드려야죠” _ “용은 그 사실을 알고 있소?” _ “아직은...” _ “댁이 어머니라는 사실도?” _ “물론...” _ “댁은 내가 용을 어떻게 키웠는지 잘 모르실 겁니다. 핏덩이 어린 것을 그저 안고 비바람 눈보라 치는 긴긴 세월 헤매면서 이집 저집 돌며 동냥젖을 빌어 먹이며...” _ “말씀을 안 하셔도 짐작은 갑니다. 하지만 용은 아버지 원수를 갚아야 합니다” _ “어린 것을, 그 불쌍한 어린 것을 죽음 속에 몰아넣을 수는 없지 않소” _ “그게 자식 된 도리입니다” _ “내가 대신 원수를 갚아 드린다면?” _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용을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_ “당신이 어머니라는 사실도 비밀에 부칠 수 있겠소?” _ “...물론” 나는 처음에 이 장면 앞에서 몹시 당황한 나머지 이제까지 영화를 보면서 이들 사이의 인물 관계를 잘못 파악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라는 생각마저 했다. 대사를 따라가면서 차례대로 열거해보자. 우선 첫 번째, 어머니는 지원필을 만난 다음 용을 그동안 길러준 것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감사의 표시를 하지 않는다. 두 번째, 용을 납치한 사람은 그를 낳은 어머니이다. 그런 다음 기른 아버지를 협박하고 있다. 그녀는 용에게 단 한 번도 자신이 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히거나 혹은 따뜻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세 번째, 어머니는 지원필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용에게 검술을 가르쳐줄 것을 요구한다. 누구라도 반대의 판본을 떠올릴 것이다. 만일 여기서 지원필이 이제 생모가 나타났으니 내가 할 일은 다 했으며 내 갈 길을 가야겠소, 그러니 나머지 일은 당신들이 서로 알아서 처리하시오, 난 이미 복수를 포기했소, 라고 해도 사실 그를 붙잡을 명분이 없다. 그런데도 용의 어머니는 용을 볼모로 삼으면 지원필이 반드시 자신의 요구를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장의 이상한 주술관계를 유심히 들여다보기 바란다. 여기서 마치 그 두 사람은 부모의 자리가 바뀐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넷째, 용의 어머니는 용이 아버지의 복수를 해야 한다면서 그에게 출생의 비밀을 이야기할 생각이 없다. 그렇다면 용은 왜 복수를 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 차라리 그의 행위는 복수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일까. 게다가 용의 어머니는 자신의 정체를 밝힐 생각조차 없다. 그렇다면 용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다섯 번째, 더 이상한 것은 지원필의 반응이다. 그는 생모가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버지 역할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심지어 두 사람의 대화에서 용의 부모는 그를 낳은 어머니가 아니라 그를 키운 지원필인 것처럼 보인다. 여섯 번째, 가장 이상한 대화는 마지막 순간에 벌어진다. 지원필은 차마 용이 피를 보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내가 대신 원수를 갚아준다면?”이라고 말을 한다. 잠깐만. 그런데 진수왕은 동시에 지원필의 원수가 아니었던가. 그는 자신이 꼽추가 된 사연을 완전히 잊은 것처럼 행동한다. 이렇게 말하겠다. 여기서 지원필에게 첫 번째 시간의 계열은 완전히 삭제되었다. 이제부터 지원필은 그 자신이 아니라 오로지 용을 위해서 진수왕과 “죽음 속에 몰아넣는” 대결로 뛰어든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용의 어머니이다. “그 불쌍한 것을 죽음 속에 몰아넣을 수는 없지 않소”라고 물을 때 그 질문은 복수에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그 행위는 사실상 자살적 몸짓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단호하게 “그게 자식 된 도리입니다”라고 대답한다. 나는 이 대답을 계산해보고 싶다. 지원필은 복수가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고 경고하는 데 그래도 그걸 해야 한다고 말할 때 용의 어머니는 만일 그걸 할 수 없다면 자식으로서 차라리 죽는 편이 나은 선택이라는 말을 하는 중이다. 그런데 그 죽음이 어머니로서의 그녀뿐만 아니라 죽은 남편의 아내로서의 그녀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런 다음 가장 이상한 질문과 대답이 등장한다. 지원필은 그래서 자신이 대신 복수를 하겠다는 질문을 하자 용의 어머니는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용을 당신께 드리겠습니다”라고 대답한다. 나는 이 대답 앞에 약간 멍해졌다. 용은 물건이 아니다. 혹은 금은보화가 아니다. 용은 사람이다. 사람일 뿐만 아니라 그녀의 아들이다. 그런데 그녀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심지어 그런 제안을 한 것도 아닌데, 자신이 먼저 지원필의 뜻을 잘 알기라도 하듯, 그가 차마 꺼내지 못한 말을 대신하기라도 하듯, (한 번 더 반복하자면)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용을 당신께 드리겠습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심지어 지원필은 그 대답을 받아 “당신이 어머니라는 사실도 비밀에 부칠 수 있겠소?”라고 다시 묻는다. 용의 어머니는 약간 망설이는 표정을 지은 다음(zoom_in) “...물론”이라고 대답한다. 물론, 이라고 했나요? 그 질문에 대해서 용의 어머니의 올바른 대답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이라는 일망의 망설임이 거기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도대체 그 요구에 대해서 “...물론”이라는 대답이 가져오는 의미의 반사적인 메아리는 얼마나 이상한가. 그 대답에는 만일 당신이 아들을 대신해서 남편의 복수를 수행한다면 나는 기꺼이 아들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라는 말이 압축되어 있다. 그건 남편의 복수가 아들의 의미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뜻인지, 아니면 용의 존재가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인지, 잠시 동안 그 둘 사이에서 어리둥절해진다. 지금 이 두 사람의 거래는 얼핏 보기에는 장르의 규칙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는 것 같으면서 한편으로는 완전히 벗어나 있다. 서로의 대사를 따라가면서 이런 거래를 보는 영화는 무협영화가 아니라 멜로드라마이다. 그때 이 두 사람은 언제나 아이를 사이에 놓고 낳은 어머니와 기른 어머니의 만남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아이가 보고 싶어서 낳은 어머니가 찾아오고 기른 어머니는 차마 기른 정 때문에 아이를 떠나보내지 못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다소 아이러니한 심정으로, 희미하게라도, 하지만 누구라도, 정소영 의 < 미워도 다시 한 번 >을 떠올렸을 것이다. 1968년 7월 16일에 개봉한 다음 가장 유명한 멜로드라마 중의 한편이 된 영화. 어린 아들 김정훈을 사이에 둔 두 엄마 문희와 전계현. 물론 둘의 거래는 여기서 갈라선다. 가난한 형편의 낳은 어머니는 부잣집 기른 어머니를 만난 다음 그녀가 착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아이를 부탁하고 돌아선다. 아이를 낳지 못해 기른 엄마는 낳은 엄마에게 그 아이를 잘 기르겠다고 맹세한다. 물론 그다음 다시 우여곡절이 있다. 하지만 지원필과 용의 어머니는 기른 아버지와 낳은 어머니라는 비대칭을 사이에 둔 다음 고통스럽게 대중들에게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공감의 감상적인 눈물을 냉소적으로 뒤틀기 시작한다. 낳은 어머니는 기른 아버지에게 그 정을 미끼로 하여 자기의 목표를 이루려고 한다. 얼핏 보면 그녀는 아내로서 충실하기 위해 어머니의 자리를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이 비대칭을 좀 더 심층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죽은 남편은 아내가 자신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포기하는 것과 이제 돌이킬 수 없게 이미 죽은 자신의 헛된 복수를 하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느 쪽을 권했을까. 지금 지원필이 빼앗으려는 것은 사실상 용의 아버지의 자리, 그러니까 용의 어머니의 남편의 자리인 것이다. 차라리 그녀는 용을 지원필로부터 빼앗아 강제로 삭제된 남편의 자리에 돌려보내서 가문을 잇게 만드는 것이 진정해야 할 일이 아닌가. 좀 더 도식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유령이 되어버린 남편의 빈자리를 메울 수 있는 사람은 그의 아들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 아들인 용이 가문으로 돌아와 공백을 메울 때 비로소 그녀의 진정한 역할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미워도 다시 한 번>(1968) <마더>(2009) 그러나 우리를 좀 더 복잡한 심경으로 이끄는 것은 그 둘의 자리 그 자체이다. 우리들에게 모성애는 거의 신성불가침의 영역처럼 문화의 거의 모든 코드에서 가장 보수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자식에게 희생적이며, 자애롭고, 언제든지 자신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는 가족 안의 희생양. 이 사랑의 과잉을 실재의 자리에서 가까스로 다룬 영화가 봉준호 의 < 마더 >이다. 그러나 임권택 은 이 자리에 아버지를 가져다 놓은 다음, 그것도 낳은 아버지가 아니라 기른 아버지를 가져다 놓은 다음, 그 자리에서 낳은 어머니를 대립시킨다. 그런데 그 대립은 성립하는 것일까. 누구라도 여기서 멈칫 한 다음 그 둘 사이에 어떤 비밀이 담긴 서사가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의심을 가질지 모른다. 그런 건 없다. 이 설명을 위해서 여기에 미처 등장하지 않았지만 셈에 포함시켜야 할 세 번째 등장인물을 생각할 차례이다. 그건 이 자리에 없는 다른 한 명의 쌍둥이 청이다. 내가 영화를 다 본 다음 다소 의아하게 여긴 것은 청과 용 둘 사이에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인지 단 한 번도 구분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 장면에 이르기까지는 물론이고 이 순간을 지난 다음 마지막 장면까지 그들은 서로를 부른 적이 없다. 더 이상한 것은 이 형제는 끝내 힘을 합쳐 아버지의 원수 진수왕과 싸우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지원필이 힘겹게 진수왕과 그의 아내 달래와 그의 아들과 싸우는 동안에도 청은 자신의 원수를 위해 용과 싸우다가 (이미 그럴 필요가 지난 서사의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팔목 하나를 잘라버리기까지 한다. 청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하면서 어떤 때는 지원필과 용을 돕고, 어떤 때는 진수왕의 식객으로 머물면서 그의 편을 든다. 마침내 청이 용의 칼에 찔려 숨지면서 그의 옷 속에 숨겨져 있는 형제임을 밝히는 문신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 둘은 비로소 포옹한다. 그리고 둘 중 하나만 살아남는다. 여기서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 중인 것일까. 임권택 에게는 기이한 계산법이 있다. 너무나 이상한 계산법. 누군가는 이걸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공감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당신이 어느 쪽에 서서 바라보건 계산법 자체를 무시한다면 그 이후를 더 이상 따라오기 힘들지 모른다. 마지막 장면에서 내가 신기하게 바라본 것은 청과 용이 힘을 합치는 대신 죽을 때까지、장르의 컨벤션 따위는 완전히 무시하고 정말 죽을 때까지, 그 둘이 마주 싸운다는 사실이다. 마치 하나만 남아야 한다는 듯한 칼부림. 이때 이 장면을 거슬러 올라가서 물어보고 싶어진다. 혹시 처음부터 둘 중 하나만 남아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표현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어머니는 용에 대해서 별다른 욕심이 없다. 그녀는 두 명의 쌍둥이 중에 청은 알아보면서 용은 알아보지 못한다. 그런 다음 용이 자기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그 사실을 숨기는 것은 지원필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다. 심지어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 아들을 담보로 하여 지원필을 협박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자신의 아들이라는 걸 알아본 청에게는 단 한 번도 복수를 요구한 적이 없으며 그걸 전달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다. 마치 지금으로 충분하고 앞으로도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달라는 것만 같은 태도. 자식과 어머니 사이에 벌어진 이 이상한 채무관계. 이와 비슷한 관계를 임권택 의 영화에서 십 년 후에 다시 보게 된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그 영화는 < 길소뜸 >이다. 물론 <길소뜸>과 < 원한의 두 꼽추 > 사이에는 단순하게 시간적인 간극 이상의 복잡한 설명을 요구하는 차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나는 요점에 도달하기 위해서 사태를 단순하게 만들고 싶다. 줄거리의 환기. 낳은 어머니 화영은 한국전쟁 때문에 그만 아들을 피난통에 잃어버린다. 그런 다음 그녀는 재혼을 하고 다른 자식들을 낳는다. 그 아이의 아버지 동진은 그녀를 오랜 시간 찾아 헤매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다른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역시 그녀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낳는다. 그런 다음 KBS 방송국이 벌인 이벤트인 ‘이산가족 찾기’를 위해 여의도에 펼쳐놓은 만남의 광장에서 우연히 (필연적으로?) 다시 만난다. 잃어버린 자식을 함께 찾던 두 사람은 어쩌면 아들일 지도 모르는 석필이라는 사내를 만나러 춘천에 간다. 석필도 결혼을 했고 자식이 있다. 그런데 그동안 석필은 고아로 함부로 자랐으며, 교양도 없이 거칠고, 사사건건 화영과 부딪친다. 아니, 그보다 화영은 석필을 보자마자 자기 아들이라는 사실을 느끼면서도 이 사내가 자기에게 다가오는 것을 거부한다. 단지 세월이 이 두 사람을 낯설게 만든 것이 아니라 그 둘 사이에 놓인 계급이 어머니와 아들을 갈라놓는다. 그 둘 사이엔 어떤 정도 없다. 석필에게는 어느 날 갑자기 돈 많은 여자가 나타난 것이며 자신을 어떤 조건도 없이 단지 아들이라는 이유로 경제적인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한다. 화영은 그걸 느낀다. 이 사내가 지금 자기에게 필요로 하는 것은 어머니(와 자식이라는 관계의 복원 혹은 화해)가 아니라 돈이라는 사실을 본다. 화영은 유전자 검사를 요구해서 그걸 구실로 하여 석필이 아들이라는 사실을 부정한 다음 현재의 가족들을 만나러 떠난다. <원한의 두 꼽추>의 아들과 어머니 <길소뜸>의 아들과 어머니 두 어머니는 거의 동일한 이유로 자기가 낳은 아들을 부정한다. 그것은 그 아들의 사회적으로 추락한 지위이다. 그리고 그 추락의 과정을 통해 학습된 행동이 즉각적으로 거부의 태도를 불러일으킨 다음 그 둘 사이의 간극은 점점 더 멀어지기 시작한다. 좀 더 괴상할 정도의 유사한 장면을 지적할 수 있다. (< 원한의 두 꼽추 >에서) 용은 죽은 동물의 껍질을 벗긴 모피를 들고 와 진수왕의 아들과 흥정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어머니와의 첫 번째 대면이다. 좀 더 정확하게 용은 어머니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고, 어머니는 그가 용이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한 채 쳐다본다. 서로에 대한 지식의 바깥에 놓여있지만 총체적인 국면의 지식 속에 놓인 그들. (< 길소뜸 >에서) 화영과 동진, 그리고 석필은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길을 지나가던 개를 그만 치어 죽인다. 석필은 피 흘리며 죽은 개를 안고 횡재를 한 표정으로 보신탕을 해먹자고 할 때 화영은 그 모습을 보고 치를 떨며 내다 버리라고 소리 지른다. 여기서 단지 두 사람 사이의 차이만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그 사이에는 세월의 간극이 이 둘 사이에서 공백의 정치학을 작동시키고 있는 중이다. 물론 임권택 은 그 과정을 사회학적으로 설명하거나 역사적인 인과관계로 환원시키지 않는다. 그 대신 현존재의 시간이 자기 앞에 놓인 공백의 간극과 마주쳤을 때 그 앞에 놓인 가늠할 수 없게 깊은 심연의 무시무시한 재난을 임권택은 영화라는 방법을 동원해서 그 두 개의 시간을 오간 다음 몸서리치게 쳐다본다. 내 질문은 여기에 있다. 한쪽은 논리적으로 완전하게 설명되는데(< 길소뜸 >) 다른 한쪽은 어떻게 해서도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 두 개의 장면에서 작동하는 모성애의 기계는 완전하게 동일하게 작동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여기서 기계라는 말은 다소 부담스럽긴 하지만 완전하게 (캉길렘에서 출발하여 푸코를 경유한 다음 가타리를 거쳐 흘러들어 간) 들뢰즈에게서 빌려온 개념이다. 무언가 잘못 배치된 것 같은 이 장치들은 얼핏 보면 오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임권택 의 영화 안에서 그것은 제대로 활동하고 있는 중임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같은 순간에 전혀 다른 맥락 안에서 동일하게 작동할 리가 없지 않은가. 나는 이 대답을 임권택의 전기로 덮어쓰고 싶지 않다. 그건 아무 해결도 아닐 것이다.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그러므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기괴해 보이기까지 한다. 물론 복수는 성공적이었다. 지원필은 진수왕이 여전히 천검을 지니고 있는데도 대결 끝에 죽이는 데 성공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고 진수왕과 결혼한 달래를 죽이는 데도 성공한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낳은 아들을 죽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청이 죽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때 청은 이 대결 끝에 죽은 것이 아니라 용과의 싸움에서 죽은 것이다. 그는 죽기 전 끔찍하게도 용의 한쪽 손을 자르는 데 성공한다. 용은 이기기는 했지만 미처 알지 못했던 그의 다른 형제로부터 한쪽 손을 잃는다. 이제부터 용은 마음으로는 자신의 형제를 죽였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할 것이며, 다른 한 편으로 그 형제로부터 자신의 한쪽 손을 잃었다는 분노를 안고 살아갈 것이다. 그런데 청은 지원필과는 아무 사이가 아니다. 그러므로 청이 죽은 것은 지원필에게 어떤 감정도 끌어내지 않는다. 남은 또 한 사람. 쌍둥이의 어머니는 자신의 소원대로 복수에 성공하긴 하지만 자신이 한눈에 알아본 아들 청을 잃고 기꺼이 지원필에게 양보하기로 약속한 용은 살아남는다. 그녀는 분명히 지원필에게 약속했다. 만일 지원필이 대신 복수를 한다면, 그녀 자신의 입으로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용을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다음 “당신이 어머니라는 사실도 비밀에 부칠 수 있겠소?”라는 지원필의 요구를 지키지 못했다. 그만 대결 중에 자신이 어머니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영화가 끝난 다음이다. 용을 볼모로 지원필을 협박했을 뿐만 아니라 복수를 해준다면 자신이 용을 포기할 의사가 있음을 알게 된다면 용은 어떤 태도를 취할까. 지원필과 용, 그리고 용의 어머니가 무수한 시체를 뒤로하고 떠나가는 뒷모습이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긴 하지만 이 장면 ‘이후’에 기다리는 것은 유사 가족의 성립이 아니라 이들 사이의 완전한 파국이다. 마지막 장면, 은실의 시선, 참혹한 쇼트들 아직 설명이 끝나지 않았다. 이 마지막 신에서 가장 이상한 점은 그들의 행위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pont_of_view)에 있다. 나는 아직까지 거의 이 영화의 서사에서 얼룩에 가까운 한 인물을 소개하지 않았다. 그건 진수왕과 달래 사이의 딸 은실이다. 은실은 지원필이 용을 풀어달라고 호소하기 위해 성을 찾아왔을 때 갑자기 등장한다. 그런 다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저 영화에 의지해서만 이야기한다면 오로지 인도적인 차원에서, 지원필과 용의 편을 들면서 아버지에게 자비를 요구한다. 나는 이런 장르에서 적의 딸이 갑자기 주인공 혹은 그이 아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순간을 수없이 알고 있다. 다만 이 서사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새로운 계열의 탄생. 거기에는 예상치 않게 두 사람 사이에, 혹은 둘 중 한 사람에게, 사랑이라는 변수가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괴이하게도 여기엔 그런 코드가 발생하지 않는다. 은실은 용에게 사랑의 감정을 전하는 어떤 기호도 제공하지 않으며, 용은 그녀의 호의에 대해서 단 한 순간도 의심의 제스처를 보이지 않는다. 마치 그 둘 사이는 어떤 감정의 계산도 없이 휴머니즘이 요구하는 희생만이 있는 것만 같은 윤리적 행동을 한다. 그러므로 지원필과 용과 그의 어머니가 은실웰염≠랜옇泉飴句옅개ぐ?#영?사이에서 나눌 감정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임권택 은 사실상 이 서사에서 완전히 외곽에 놓여있는 은실의 시선으로 어느 순간부터 이 마지막 신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이 시선의 논리에 아주 엄격하게 대응하듯이 차례로 쇼트를 소개한다. 그래서 구태여 서사의 관점으로나 혹은 감정선의 흐름에서나 아니면 리듬의 화음에서 무언가 불균질 하거나 불편해지는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죽은 진수왕과 그의 아내 달래와 그 둘 사이의 아들의 시체를 은실의 시선으로 차례대로 보여준다. 세 개의 참혹한 쇼트. 딸이 바라보는 부모의 시체. 여동생이 바라보는 오빠의 시체. 그런 다음 떠나가는 지원필과 용과 그의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은실을 보여준다. 그때 우리는 은실이 어떤 마음인지 전혀 가늠할 수 없다. 그녀는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그녀의 호의는 가장 나쁜 형식으로 돌려받은 것인가. 이 마지막 신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은실이라는 점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가장 불쌍한 사람의 시선.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그녀의 가족 모두를 잃었으며 뿐만 아니라 성의 태수의 딸로서 안락하게 살아가던 삶 전체를 상실한 것이다. 만일 그녀가 이 결말 ‘이후’에 복수를 맹세한다 할지라도 아무도 그녀를 탓할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더 밀고 나아가면 즉각적으로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 원한의 두 꼽추 >는 아직 충분한 대답을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그러므로 표면의 설명에 머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임권택 의 이상한 계산법에는 어떤 메타 서사가 있거나 아니면 반대로 아주 은밀하게 감춰진 네트워크가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 계산법 아래 숨겨진 침묵은 무엇일까. 대부분 숨은 듯이 가려져 있다가 때가 되면 갑자기 나타나 셈을 치르기 시작한다. 나는 수없이 예를 들 수 있다. 이 계산법은 < 화장 >의 마지막 시퀀스에까지 이어진다. 김훈 작가가 미처 쓰지 않은 오상무와 추은주 사이의 마지막 작별인사. 그 이상한 작별의 방식, 이때 거의 대립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선택의 전도가 있다. 여기에 감정의 카타르시스가 있는가? 없다. 그러기는커녕 이야기를 더 이상 진행하는 것이 위태로울 정도로 어리둥절해진다. 기른 아버지 지원필은 용을 위해서 모든 희생적인 요구를 받아들인다. 그는 용이 자기의 충고를 듣지 않고 마을에 내려와 소동을 벌인 끝에 진수왕에게 붙잡히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옛 원수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용서해달라고 빈다. 달래가 황금불상을 훔쳐오면 교환하겠다는 제안을 하자 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도둑질을 오로지 용을 위해서 한다. 하지만 황금불상을 훔쳐오는 데 성공을 했음에도 진수왕은 교활하게 지원필이 그 과정에서 무공을 되찾은 것임을 걱정한 나머지 그의 한쪽 팔마저 잘라버린다. 하지만 꼽추에 한쪽 팔마저 잃은 지원필은 이 지경이 되어도 단 한 번도 용을 원망하지 않는다. 당신은 임권택의 계산법이 이 모든 우여곡절을 치르고 난 다음에 낳은 어머니에게서 나온 제안이라는 것을 셈에 포함시켜야 한다. 이 계산법은 어떤 법칙에 근거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간극 사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환상이 침입하는 과정처럼 보인다. 이때 이 말을 오해하면 안 된다. 여기서 환상이란 말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 계산법이 현실에서는 맞지 않는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현실에서 모든 계산법은 하나의 이데올로기의 수식화이다. 핵심은 이 계산법이 어떤 이득을 취하느냐가 아니라 이 이득을 취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드러내고 있느냐는 것이다. 임권택은 자신의 계산 과정에 진실이 있다고 믿는다. 그때 진실이란 실재의 일부가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계산속에서 우리는 임권택이 드러내는 진실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대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실재의 형상이 무엇인지를 보아야 한다. 영화의 방법이란 자신의 계산에 충실해지는 것이다. 임권택은 여기서 힘겹게 그 셈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용은 꼽추가 되고 한쪽 손이 잘려나가면서 기꺼이 그 계산의 미끼가 되었다. 나는 <원한의 두 꼽추>를 가혹한 영화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임권택은 점점 더 가혹해질 것이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이 영화는 공포영화가 맞을지도 모른다. 감정의 공포. 진실이라는 네트워크의 공포. 찢어진 네트워크 사이의 실재의 공포. 무엇보다도 방법의 공포. (계속) 1971년 78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태창영화 각본 박철민 촬영 구문석 안길원 김택수 한숙 김청자
사태가 대단히 복잡하지 않은가. 상징적인 것은 직접적인 것이고, 현전은 부재이며, 지연되지 않은 것이 지연되며, 희열은 죽음의 위협이다. 더구나 이런 체계, 대리보충의 이 이상한 경제에 추가되어야 할 특징이 하나 더 있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이미 판독할 수 있었다. 무시무시한 위협인 대리보충은 또한 최초의 가장 확실한 보호라는 점이다. 그 위협 자체에 대해서 말이다. 이 때문에 대리보충을 포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이 말은 내가 아니라 데리다가 「그라마톨로지」의 제2부 두 번째 장 ‘이 위험한 대리보충...’에서 루소의 「참회록」을 설명하며 꺼내 든 것이다. 너무 유명한 문장이라 모두들 이미 잘 알고 있을지 모른다. 나는 구태여 대리보충(la supplement)에 대해서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지 않겠다. 다만 아주 제한적으로 이상하게도 우리를 막아서면서 환원 불가능하게 버티어선 그 흔적을 설명해보고 싶다. 왜냐하면 그 자리는 결정을 가로 막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인가, 저것인가. 결정의 망설임. 그 흔적이 무언가 더해진 잉여의 덧셈에 따라 보충된 것인지(le supplement) 아니면 다른 무언가와 바꿔치기 당한 다음 대리하는 것인지(la suppleance) 그저 하염없이 멈춰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장소. 물론 루소를 경유하여 데리다가 말하려는 것은 예술과 자연 사이의 대차대조표이다. 나는 거기서 물러나서 단지 이 텍스트 안에서 활동하는 저 텍스트가 왜 항상 환대받지 못하는지를 물어보고 싶다. 왜 스스로 충만하지 못한 채 그 틈새 사이에서 출몰하는 저것은 여기서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저 안의 외침. 바깥이라는 안. 안에 있는 바깥. 무엇이 부족함을 대신하고 그런 다음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일까. 「그라마톨로지」 사태를 좀 단순하게 만들고 싶다. 임권택 의 영화들, 그중에서도 불편한 영화들을 볼 때마다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참조 틀의 어딘가가 부서져 나갔다는 인상을 받는다. 내가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단지 1967년 그 어딘가에서 1977년 어디까지에 한정 지어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 욕망의 결산 >(1963), 혹은 < 달빛 길어 올리기 >(2009), < 신궁 >(1979), 그리고 < 아다다 >(1989). 단지 그 부서져 나간 표면의 범위를 따분하게도 바깥과의 대화라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충분한 알리바이가 아니다. 여기에는 어떤 과정이 있을 것이다. 각자의 영화는 영화사에 대한 각자의 은유라고 고다르가 말했다. 그걸 단지 어디선가에서 빌려온 영향이라고만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반대로 처음부터 거기 있었기 때문에 안에서 생산되었을 뿐만 아니라 바깥에서 뛰어 들어왔을 것이다. 나는 이 논리를 좀 더 밀고 나아가고 싶다. (스피노자의 표현을 빌리면) 핵심은 안에서 긍정하기 위해 그것은 바깥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전도를 위해서 방법의 전위(轉位)와 그 수순에 따른 재평가의 결과로 나타난 영화에로 다시 되돌아가야 하는 요구를 순순히 따라야 한다. 여기서 왜 내가 까다로운 데리다의 전술적인 용어를 내세웠는지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다. 나는 임권택의 영화에서 이 불편함을 말할 때 종종 그 영화에 제한적으로 주어진 데서 설명을 시작하는 것이 잘못된, 아주 잘못된, 그래서 임권택의 진정한 시작의 지점을 놓치는 실패를 항상 가져온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반대로 이것을 최종 결과의 효과라는 데서 시작해보면 안될까. 이유들의 순서에 종속되지 않은 대리, 그사이에 재빨리 끼어드는 보충. 우리는 올바른 시작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만 불편한 실패들 속에서 자기원인의 동어반복 안으로 이끌려 들어가는 악순환을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임권택의 영화 안에서 진화론적인 모델을 거부한다. 그건 그 영화들 사이에 놓인 영향 관계를 과도하게 단순화시킬 뿐만 아니라 자꾸만 그 어딘가에서 어슬렁거리는 목적론적인 설명의 함정에로 이끈다. 나는 영화들 사이의 관계에서 서사를 만들어내고 싶지 않다. 임권택의 영화들은 내게 그런 설명이 결국에는 왜 불가능한지를 알려주는 목록이다. 월하의 검 (1970) < 월하의 검 >을 가장 단순하게 말하면 재난에 가까운 실패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임권택 에게 의미 있는 실패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는 여기서 무언가를 의식하고 있지도 않다. 그 어떤 것을 하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그 무언가를 해본 것도 아니다. 1970년은 임권택에게 그런 해이다. 그 해에 임권택은 여덟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 애꾸눈 박 > < 이슬 맞은 백일홍 > < 비내리는 선창가 > < 그 여자를 쫓아라 > < 밤차로 온 사나이 > < 속눈썹이 긴 여자 > < 비검 > 그리고 < 월하의 검 >. 어떤 일관성도 없는 영화들. 하지만 이 실패가 나에게는 의미가 있다. 사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그것을 임권택의 무능력에로 돌리기에는 그에 앞선 영화들을 생각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그의 첫 번째 영화 < 두만강아 잘 있거라 >의 마지막 시퀀스 전부. 혹은 세 번째 영화 < 망부석 >. 나는 자꾸만 그의 실패한 영화들을 실패한 작품들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실패한 상황이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그 영화들은 실패라는 조건 속에서 자기들의 방법으로 실존하는 중이다. 실패와 부딪쳐서 부서져 나가는 영화의 모습. 나는 그 모습을 지금 바라보는 중이다. 그때 부서져 나가는 참조 틀 사이로 드러나고, 재생산되고, 존재하는 잉여들의 혼란스러운 모방과 마주친다. 잠깐. 모방이라고 했나요? 물론이지요. 그건 다른 무언가가 이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서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니까요. 그때 모방은 나에게 효과라는 최종 결과라는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나는 그것을 거기서 멈춰 세우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결과는 여기서 무엇보다도 과정이기 때문이다. 멈추지 않는 최종이라는 종착지. 임권택 은 공식적으로 자신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감독으로 언제나 정창화 를 이야기한다. 그는 정창화 밑에서 전형적이고 고전적인 의미에서 충무로 도제 수업을 받았다. 영화는 기계군의 활동이며 조직이다. 공장과도 같은 시스템. 그 안에서 개념의 추상화와도 같았던 이미지를 세계 안에서 찍은 다음 배열해야 한다. 여기에는 규칙과 문법이 있다. 그것을 쳐부순다고 말해도 그 안에서 진행되는 부정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임권택이 정창화를 말하는 것은 그 인정의 테두리 안에서이다. 그런 다음 (펠리니의) < 길 >과 네 명의 할리우드 영화감독, 존 포드와 빌리 와일더, 윌리엄 와일러, 조지 스티븐스를 언급했다. 나는 여기 세 명의 이름을 더하고 싶다. 임권택이 언급하지 않는 이름. 그의 영화 전체는 아니지만 우리들이 실패작이라고 부르는 영화들이 만들어지던 시기, 실패의 상황이라고 내가 명명한 조건 아래서 만들어진 영화에서 마주치는 그림자들의 이름. 셀지오 레오네와 끌로드 를루슈, 그리고 장철. 물론 그 이름들은 잠시 후에 임권택의 영화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실패의 상황 속에서 남과 여를 주연으로 한 영화들과 < 남과 여 >, 그리고 쇼 브라더스 영화들은 마치 그림 안의 그림처럼 거기 그림자로 남았다. 영화가 한참을 자신의 서사를 진행하면서 이야기하고 있을 때 나타나는 이미지들. 그것이 다시 나타날 때 종종 지나치게 실패해서 그것을 분간하기 어려워진다는 느낌을 받기조차 한다. 미처 예기치 않았던 출현. 주인공이 자기의 몰락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때, 그가 놓여진 상황이 다른 영화 안의 반복을 향해 나가기 시작한다. 나는 여기에 약간의 주석을 달고 싶다. 셀지오 레오네는 이탈리안 네오리얼리즘이 끝난 다음, 그것도 거의 끝난 다음, 그래서 펠리니가 그 방법을 버린 다음, 안토니오니가 리얼리즘을 거의 추상에로 밀고 나아간 다음, 황무지에서 할리우드 영화의 장르에 대한 아이러니로 시작하였다. <길>을 자신의 거의 유일한 걸작이라고 말하는 (게다가 전형적인 한국 고전영화문법 안에서 배움을 얻어온) 이 사람은 < 석양의 무법자 >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정창화에게서 충무로의 영화문법을 배운 임권택의 영화에서 잠시 동안 <남과 여>에서 무차별하게 사용된 시네마 베리테의 촬영과 누벨바그의 데쿠파주에 대한 키치적인 활용이 홀연히 등장하는 순간을 몇 차례이고 반복해서 마주칠 때 나는 어떤 쇼크를 받았다. 구체적으로 <남과 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시기의 한국영화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하나의 경향이었기 때문이다. <남과 여>는 한 시기의 한국영화들을 거의 쑥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미처 < 히로시마 내 사랑 >과 < 비브르 사비 > < 어느 여름의 연대기 > <사촌형제> < 롤라 > < 활주로 > < 쥘과 짐 > <사자좌> < 5시에서 7시까지의 클레오 > < 파리는 우리의 것 > <아듀, 필리핀> <산타 할아버지는 푸른 눈을 가졌다>를 보지 못했다. 그저 < 네 멋대로 해라 >와 <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를 보았을 뿐이었다. 그런 다음 그들의 경험은 중단되었다. 아마도 오직 김기영 만이 영화‘歷’사의 시간을 좇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김기영은 (인터뷰에 따르면) 1960년대 그 부근 언젠가부터 기회가 닿을 때마다 오로지 영화를 보기 위해서 도쿄에 방문했다. 풍문으로 누벨바그의 이야기를 듣기는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은 일본을 경유하여 각색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시기의 글 자료들을 읽은 내 독후감은 그렇다. 그들은 말 그대로 무방비 상태였고, <남과 여>가 굉장한 영화라고 믿고 있었다. 왜냐하면 거의 법칙과도 같았던 고전영화 문법을 무시하면서 그저 그렇게 떠오르는대로 찍고, 연출하고, 편집하고, 그래도 괜찮은 영화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임권택은 거기서 어떤 자유를 느꼈을 지도 모른다. 자신을 지배했던 도제제도로부터의 해방. 그때 임권택은 모던 시네마의 방법에 가까이 다가갔다. 실패한 상황. 예기치 않은 보충, 혹은 무엇이 무엇을 대리하기 시작했을까. 이 위험한 대리보충. 어쩌면, 정말 어쩌면, 여기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면 그의 영화가 모두 부서졌을지도 모른다. 임권택은 재빨리 다시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런 다음에도 방법의 흔적은 완전히 소멸되지 않고 다소 기형적인 양태로 분산되고 분할되어 머물렀다. 우리는 임권택 안에 들어서기 위해서 방법을 잘 따라야 한다. 무엇이 멈추자 무엇이 활동하기 시작했을까. 거기서 우리는 영화의 어떤 역량이 표현되기 시작했는지를 관찰해야 한다. 때로는 긍정적인 역량. 때로는 실패해버린 표현. 거기에 적합한 개념. 거기서 멈춰버린 기능. (위) 정창화 와 <길>, (아래)셀지오 레오네, 끌로드 를루슈, 장철 나는 여기서 세 번째 이름에 대해서 길게 설명할 생각이다. 장철. 張徹. 1968년 5월 23일 서울 파라마운트 극장에서 <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가 개봉하였다. 처음에는 이 영화가 그렇게 큰 대중적인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홍콩 쇼 브라더스 무협영화는 한국 영화문화 안에서 하위 장르의 하위 장르이면서 동시에 재개봉관을 중심으로 컬트영화가 되었다. 임권택 은 이 이름에 대해서 단 한 번도 길게 언급하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그저 스쳐 지나갔다. 내 질문은 왜 그것을 받아들인 다음 버렸느냐는 것이다. 나는 이 시기의 임권택을 이야기하면서 그의 영화 안에서 장철을 수 없이 다시, 거듭해서 다시, 호명할 것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셀지오 레오네와 < 남과 여 >를 불러낼 것이다) 이것이 단지 불균등한 위계적 관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임권택은 장철과 셀지오 레오네, 그리고 <남과 여> 없이 더 나아갈 수 없었고, 아니, 차라리 그것들의 대리보충 없이 참조 틀을 부술 수 없었고, 그런 다음 거의 불순물과 다름없는 그것들을 버리지 않고서는 다시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 실패해버린 상황 속에서 다시 한 번 실패하기. 더 잘 실패하기. 위험한 명제. 임권택에게 그가 실패하고 있는 상황에서 충무로는 참을 수 없는 문법이었고, 그런 다음 부서져 가는 그의 영화 안에서 셀지오 레오네와 <남과 여>, 장철은 다시 견딜 수 없는 대가가 되었다, 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이 설명을 따분하게 변증법적 통일이라는 방식으로 도식화시키지는 말아주기 바란다. 내가 신기하게 생각하는 대목은 바로 여기이다. 갑자기 여기서 새로운 쟁점이 나타난 것이다. 임권택은 오류 안에 자기가 찾고 있는 진정한 목표가 있는 것처럼 다가가기 시작했다. 아니, 이렇게까지 말하고 싶어진다. 임권택은 오류 안에서만 견딜 수 있는 형식을 찾고 있는 중이(었을 것이)다. 그때 장철이 단지 쇼 브라더스 무협영화를 찍었다는 사실에서 멈추지 말고 그 영화들이 광동오페라의 영향 아래 만들어진 감상적인 멜로드라마의 판본 위에서 시작했다는 사실 안의 사실까지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임권택과 장철이 공유하는 것은 무협활극이라는 표면적인 약속의 장르 사이에서의 트랜스 내셔널 네트워크가 아니라 피와 시체들, 복수의 정념과 의리의 도덕 뒤에 수줍게 숨어있는 감상적인 멜로드라마의 비극적 운명에 대한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매혹이다. 더도 덜도 아닌 매혹. 그 속에서 그들이 즐기는 기쁨. 바로 거기서, 마치 그것을 쥐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것을 참조했다기보다는 차라리 그것에 대한 참조라고 할 정도로 < 월하의 검 >은 장철의 영화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그것도 아주 구체적으로 < 대협객(大刺客) >과 (부분적으로) < 심야의 결투(金燕子) >의 영향을 받았다. 심지어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몇몇 장면에서는 거의 같은 구도, 같은 활극동작을 빌려온 살진(殺陣)이 등장하기까지 한다. 여기서는 단지 오마주라거나 두 영화 사이에서의 상호 텍스트성이랄까, 이런 설명과는 완전히 다른 교차가 나타난다. 나는 실패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실패한 오마주라고 말해버리면 어떨까. 이 말을 잘 음미해주기 바란다. 오마주를 실패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효과로서 나타나 버린 오류라는 실패한 오마주, 그 안에서 이행의 대리보충을 붙잡아야 한다. 무언가 저 영화가 이 영화에 구멍을 내고 그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은 단지 거기에 동의한다거나 혹은 이미 해놓은 것에 대해 가질 수밖에 없었던 감흥의 복종과는 다른 것이다. < 대협객 >(1967) < 심야의 결투 >(1967) < 대협객 >은 쇼 브라더스에서 장철이 왕우를 주연으로 하여 1967년에 만든 홍콩영화이다. 무협영화 팬들 사이에서도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영화이다. 아마도 이 영화가 다른 장철 영화들과 달리 긴 드라마가 장황하게 이어진 다음 아주 잠깐, 그래서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하지만 몹시 인상적인 무협활극 장면이 나오는 절정의 클라이맥스를 맞이하고 나면 서둘러 끝나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에서는 1969년 10월 4일 종로 3가에 있었던 파라마운트 극장에서 개봉하였다. 이 이야기는 사마천의 <사기>에도 등장하는 자객열전 중의 하나이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백성이었던 섭정은 출중한 무인이었다. 그러나 그 재능을 시기한 동문 서식의 음모로 인해 스승은 당시 제나라와 적대관계에 놓인 나라의 첩자로 몰리고 무술 도장은 쑥밭이 된다. 이에 섭정과 그의 친구 두파는 복수를 한 다음 섭정은 모든 걸 포기하고 백정이 되고 두파는 옆 나라인 한나라로 피신하여 거기서 한나라의 충신 엄중자의 자식 무술 사범이 된다. 그런데 엄중자는 재상 한괴가 끊임없이 그를 음해하고 임금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보며 몹시 괴로워한다. 그러다 보다 못한 엄중자가 두파에게 도움을 청하자 그는 자기보다 훨씬 무술이 훌륭한 섭정을 추천한다. 제나라까지 찾아온 엄중자의 마음을 알고 그와 의형제까지 맺은 섭정은 다만 자기에게는 아직 병상에 누운 어머니가 살아계시고 누이가 있으니 기다려달라고 말한다. 몇 해 후, 어머니 상을 치루고 누이가 시집을 가자 섭정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엄중자를 찾아온다. 그리고 하얀 백의에 백마를 타고 귀공자로 분장하여 혼자 수백 명의 병사들의 호위를 받는 한괴를 찾아가 그를 처단하고 자결한다. 나는 주변에 있는 섭정과 그의 연인, 그리고 누이와의 이야기는 모두 그냥 지나쳤다. 그런 다음 < 월하의 검 >. 이 이상할 정도로 기괴한 우울함으로 가득 찬 이야기가 임권택 이 직접 쓴 시나리오라는 점을 먼저 염두에 두고 읽어주기 바란다. 물론 임권택은 첫 영화를 만들 때부터 끊임없이 영화를 찍으면서 시나리오를 고쳤다. 그건 ( 송길한 이 시나리오를 쓴) < 만다라 >를 찍을 때도 그러했고 ( 이청준 이 시나리오를 쓴) < 서편제 >를 찍을 때도 그러했다. < 취화선 >을 찍을 때는 심지어 시나리오를 탈고한 다음에도 계속해서 매일 아침에 새로운 대사를 쓴 시나리오를 나누어주었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다시 고치는 것과 처음부터 쓰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여기서 임권택은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야기에 뒤 이어 와서 그것을 닮은 다른 이야기가 이미 앞에서 포위하고 있을 때 그는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 하나가 다른 하나의 대리보충이 될 때 어느 쪽이 앞에 있고 무엇이 뒤에 있는지 그렇게 쉽게 분간할 수 있을까. 후렴구. 나는 지금 실패에 대해서 말하는 중이다. 아마도 조선 시대. 하지만 그런 다음 더 이상 어떤 것도 분명한 지표가 없는 사극의 무대. 유감스럽게도 당신은 < 월하의 검 >을 볼 방법이 없고 잘 정리된 줄거리도 없기 때문에 이 글을 먼저 읽을 수밖에 없다. (...) 임금은 무능하기 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연화당 최씨의 미모에 빠져 헤어 나오지를 못한다. 그러는 동안 나라의 권세를 포도대장 최걸에게 모두 넘겨준다. 최걸은 자신을 비방하는 충신들을 모두 척살하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 그래서 빼어난 무술을 지닌 장무력을 고용하여 마치 연화당 최씨를 암살하기 위해 잠입한 것처럼 꾸민 다음 최씨를 지키는 호위무사 박필에게 붙들리는 계교를 꾸민다. 임금 앞에 잡혀간 장무력은 자신을 고용한 자들의 명단으로 충신들의 이름을 차례로 열거하고 곁에서 통곡을 하며 연화당 최씨는 그들을 모두 참해달라고 간곡하게 호소한다. (여기가 영화의 시작이다) 무자비한 탄압이 시작되고 이에 가까스로 살아남은 충신들은 심산유곡에 자리한 절로 피신하여 이제 남은 방법으로 연화당 최씨보다 더 빼어난 미모를 지닌 여인을 궁궐로 보내 임금의 총애를 받은 다음 진실을 알리고 간신배들을 벌할 것을 상소하자는 계획을 세운다. 그런 다음 이들은 이미 참수당한 충신의 딸 향아가 이에 적합한 미모를 가졌으며 그녀의 효성이 이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데 합의한다. 문제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행방이 묘연한 향아를 찾는 것인데 우연히도 위험에 처한 그녀를 연화당 최씨의 호위무사 박필이 구하게 된다. 박필은 천애 고아로 어려서부터 최걸이 돌보면서 무술을 배우고 그 아래서 최걸의 자객이자 누이인 연화당 최씨의 호위무사가 된 몸이었지만 자신의 신세에 대해 처량함을 느끼며 그저 시간 날 때마다 조선팔도를 이리저리 떠돌며 그림을 그리면서 허송세월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무술만은 조선 최고라 부를 만한 것이었다. 박필은 향아의 정체도 모른 채 그녀를 보자마자 한눈에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변장을 하고 궁에 잠입한 향아를 보고 모든 계획을 깨달은 박필은 부디 이 위험하고 허망한 복수를 중단하고 자신과 멀리 떠나자고 말하지만 향아는 반대로 자신을 도와 복수를 이룬 다음 함께 멀리 떠나자고 부탁한다. 우여곡절 끝에 향아는 임금의 처소에 들고 그의 마음에 들지만 (여기서 나는 그사이에 향아의 정체가 탄로 나고 연화당 최씨의 인두질로 얼굴이 망가져 궁궐 바깥으로 내쳐지지만 심산유곡 절의 주지스님이 지극정성으로 치료한 묘약으로 미모의 얼굴을 고친 다음 다시 궁궐에 입궐한 사연을 둘러싼 대목을 건너뛰었다) 하룻밤 정사를 치르고 나서 증거가 없으니 연화당 최씨와 그 오빠를 벌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한편 최걸은 이제 유일하게 증언할 수 있는 장무력을 제거하면 모든 것을 용서하겠다고 박필에게 제안한다. 박필은 장무력을 찾아가 일대 결전을 벌이지만 막상막하의 실력을 갖춘 두 사람은 결국 승패를 가리지 못한다. 지친 두 사람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자신과 대결을 하면서도 결정적인 한 수를 쓰지 않는 박필의 마음속 진심을 본 장무력은 기꺼이 그를 위해 임금 앞에 가서 진실에 관한 증언을 하기로 마음을 바꾼다. 하지만 박필은 그 증언이 모두 끝날 때까지 바깥에서 임금의 처소를 향해 수 없이 몰려드는 병사들과 홀로 싸워야만 한다. 장무력이 모든 증언을 마쳤을 때 박필은 수백 명의 병사들의 시체 곁에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가는 중이다. 그 곁에 온 향아는 그를 비로소 여보, 라고 부르며 품에 넣어둔 극약을 먹고 그와 같은 운명의 선택을 한다. 그 시간에 연화당 최씨는 모든 비밀이 밝혀지자 자결을 한다. 무능하기 짝이 없는 임금은 홀로 남겨진다. 이 이야기를 읽고 난 다음 포스터에 있는 주연배우들의 명단을 보면서 당신은 포도대장 최걸을 허장강이 연기할 것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배역의 컨벤션이라는 약속. 하지만 김지미 는 향아가 아니라 악독하기 짝이 없는 연화당 최씨를 연기한다. 향아는 김명진 이 연기한다. 물론 배역은 일종의 수건돌리기 게임이다. 영화 바깥의 여러 가지 복잡한 변수가 있긴 하지만 누구든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 내가 여기서 하려는 질문은 이야기 안에서 이들 사이의 오류를 불편하게 만드는 문턱에 관한 것이다. 먼저 이 영화에는 어떤 카타르시스도 없다는 사실을 지적해야겠다. 아마 이 말이 당신을 당황시킬지 모른다. 그렇다고 무언가 정의가 실현되었다는 결말을 주지도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마지막 순간은 결말이 다가왔다기보다 무언가 종말을 맞이했다는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투명하고 선악이 분명하며 우리가 누구 편에 서야 할지 따분할 정도로 잘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점점 그 경계는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그런 다음 마지막 시퀀스 전체는 우리를 혼란에 빠트린다. 무언가를 주장하기는커녕 오히려 우리를 비웃으면서 보편적인 믿음을 우스꽝스럽게 처리해버린다. 여기서 이 모든 등장인물들의 정박지인 임금은 단지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과도하리만큼 색욕에 빠져 있다. 그 역을 연기하는 김순철 은 다른 배우들과 전혀 달리 의도적으로 과장되고 어색한 코미디의 연기를 한다. 김순철은 단 한 장면에서도 다른 배우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심지어 김명진 과 침소에서 운우지정을 나눌 때조차 그러하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는 홀로 존재한다. 불편한 고정점. 나는 당신에게 임권택 이 영화 연출을 할 때 언제나 연기를 교정하는 것에서 그 인물의 형상화를 시작한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 정창화 감독은 나를 카메라 옆에 앉혀놓고 배우를 보라고 시키는 거예요, 어떤 배우도 유심히 들여다보면 약점이 보이는 거예요, 그게 내가 시나리오와 인물 사이의 오차 범위를 줄이는 방법이었어요.” (「임권택, 임권택을 말하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해야겠다. 임금은 만월이 뜨는 밤이면 내시 한 명을 데리고 홀로 비원에 행차해서 그 달을 보면서 술을 마신다. 이건 궁중의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며 그래서 향아는 임금이 혼자가 되는 그 시간에 그를 만나게 해달라고 박필에게 애원한다. < 월하의 검 >이라는 제목은 달빛 아래서 대결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시간에 거기에 가야만 하는 향아와 그녀를 거기에 보내야 하는 박필의 애처로운 사연의 알레고리이다. 하나의 시간. 만월의 밤. 세 개의 선. 임금과 향아와 박필. 서로 맞지 않는 정념들 사이에서 운명적으로 짜 맞춰져야 하는 매듭 사이로 벌어진 틈. 그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이야기가 흘러가기 시작한다. 애초부터 그 자신들이 짓지도 않은 죄를 짊어진 상태란 무엇일까. 말하자면 비극의 수순. 그런 다음 매듭을 자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임권택은 (장철과 마찬가지로) 결국에는 이 이야기가 죽음에로 귀결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박필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면서 역설적으로 스스로 운명 앞에서 수동적인 태도를 취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그녀의 간절한 소원. 하지만 그 소원이 이루어지면 내가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한 저 사람은 임금의 침소에 들어 육욕의 대상이 될 것이며 그에게 벌거벗은 살을 내주어야 할 것이다. 임권택은 거의 기술적으로 감당이 안 되는 1970년의 한국영화 촬영기술을 바탕으로 무리할 정도로 반복해서 몇 번이고 만월(滿月)의 밤을 찍는다. 미첼 카메라의 둔중함과 값싼 아그파 필름, 그리고 조악한 조명은 한밤중에 만월을 찍는 것이 불가능한 장비들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모든 만월의 밤은 한낮에 밤 장면을 찍었다. (day_for_night) 종종 잘못 색 보정된 다음 무성의하게 현상된 필름들은 이 만월의 밤 장면들이 낮에 촬영되었음을 잔인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월하의 검>은 기술적으로 거의 재난에 가깝다. 그걸 임권택이 모를 리가 없다. 그는 자신이 여기서 실패할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면서도 그냥 그걸 지금 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그걸 의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그것이 의도라면 그건 나쁜 의도이다. 여기에는 처음부터 그래도 상관없다, 는 자포자기가 무겁게 내려앉는다. 나는 임권택의 심리적인 상태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그걸 설명하는 것은 전기 작가의 몫이지 내가 할 임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임권택은 여기서 무엇을 따라가고 있는 것일까. <월하의 검>은 미학적 기준으로 무자비하게 설명하기를 단 한 순간도 망설일 필요 없는 영화이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하려다가 실패하기는커녕 그걸 먼저 알아차리고 실패라는 조건을 받아들인 다음 거기서 더 밀고 나아가기 시작할 때 우리는 기묘한 실패의 정식화를 끌어낼 수 있다. 그건 실패가 외재적 조건일 때 이미 내재적으로 존재하는 부정에 대한 긍정이라는 역설이다. 이때 영화는 임권택에게 일종의 자기 심문과 같은 것이 되어간다. 마치 영화가 자기의 속살을 내보이듯이, 정말 부끄럽게, 필름의 한계와, 촬영의 제한적인 조건과, 제작의 무성의한 진행에 관한 모든 과정을 적나라하게 노출하기 시작한다. 얼마나 끔찍할까. 속수무책으로 그것을 수수방관해야만 할 때, 그때 거기서 할 수 있는 방어의 기술이 전혀 없을 때, 임권택은 반대로 그냥 내버려두고 있다. 바로 거기서 위험천만한 상실이라고 할까, 그 자신의 영화의 내부적인 멜랑콜리가 불연속적인 질문을 반복해서 던지기 시작한다. 영화 안의 질문. 지금 이것은 그래도 성립되고 있습니까. <월하의 검>은 거의 부서진 영화이다. 그런데도 가까스로 버티고 선 무언가가 이 영화에 이상할 정도로 집요하게 그것을 방어하면서 성립시키고 있다. 재앙을 피해야만 해. 폭력으로부터 보호해야만 해. 여기서 나는 그럴 때마다 아무 상관도 없는 장철의 < 대협객 >이 유령처럼 출몰하는 것을 쳐다보게 된다. 그때 그건 영화라기보다 차라리 제도 바깥에서 나타난 부정성이다. 몹시 사악하고 거의 지켜지지 않는 규칙들. 강제적인 영화의 속도. 쇼 브라더스 영화의 처음 보는 기이한 문법. 거기서 섭정의 삶은 자유자재로 스튜디오 속을 거닐며 자기의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 다음 마지막 순간 중력을 무시하고 날아오른다. 그렇게 사람이 날아가도 상관없는 것일까. 새로운 동선. 영화에서의 새로운 선, 하지만 아주 특별하고 예외적인 선. 그 자신의 학습을 통해 얻어낸 경험을 앞지르는 건너편의 방법이 나타나서 부서져 가는 참조 틀 사이로 대리하고 보충하는 시간은 이 영화가 발작하는 순간들이다. 상감,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옵니다. 사실이옵니다. < 월하의 검 >을 보다가 누구라도 멈춰 서게 될 두 장면, 그런데 거의 마지막 장면, 그래서 이야기가 멈추는 두 장면을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여기서 임권택 은 장르 안에서의 연쇄를 갑자기 끊어버린다. 그런 다음 이야기를 밀어내고 어떤 대체의 구조를 찾기라도 하듯이 인물에서 그것을 보충하려 든다. 어떤 절단. 그런 다음 그것을 떠안아야 하는 부담을 감수하기라도 한 듯한 결정. 장무력이 임금의 앞에 가서 진실을 고하고 나자 포도대장 최걸과 연화당 최씨를 불러 그 말이 모두 사실이냐, 라고 묻는다. 그러자 최걸은 그 모두가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로 시작하는 사극에서의 마지막 장면에서 만나는 상투적인 대사를 시작한다. 물론 악인들이 사악할 뿐만 아니라 비겁하기 짝이 없다는 강조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사약을 내리기에 조금도 자비심이 필요 없다는 것을 확인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그때 최걸 의 말을 자르면서 연화당 최씨가 조금도 뉘우치지 않는 표정으로 모두 사실이옵니다, 라고 대답한다. 임금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본다. 왜냐하면 자기에게 생명을 구걸하는 요구를 거절하는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권리를 되찾는 동시에 권리와 정의를 일치시키는 제스처를 취하려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임금과 국가의 (상투적인) 변증법. 하지만 연화당 최씨는 이 일련의 자동적인 연쇄를 중단시킨다. 그런 다음 임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질문한다. 저년과 저, 둘 중에 누가 더 예쁜가요? 목숨이 걸려있는 순간에 이 질문은 적절치 않은 내기이다. 왜냐하면 임금의 대답은 어느 쪽을 선택해도 그녀의 목숨에 대한 결정을 바꾸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의 생명에 무관심한 듯한 질문. 하지만 이때 임금은 여기서 그 자신의 대답이 결정의 이해관계로부터 바깥에 놓이기 때문에 연화당 최씨의 질문은 임금의 자리로부터 그녀의 침소에서 몸을 탐했던 한 남자에로 임금을 추락시켜버린다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그런 다음 연화당 최씨는 임금으로부터 그건 물론 네가 더 예쁘긴 하지만, 이라는 대답을 듣자 거기서, 바로 그 대답의 거기서, 만족한 듯한 웃음을 짓고 옆에 서 있던 신하의 칼을 빼 들어 그 자리에서 자결한다. 대답이라는 패배. 대답을 통한 권리의 상실. 정의의 연쇄적인 추락. 자기 목숨에 대한 연화당 최씨의 스스로의 결정. 임금은 순식간에 결정에 대한 자기의 권리를 빼앗긴다. 그러므로 거기서 임금의 명령이 대상을 놓칠 때 그렇게 많은 희생을 요구하고 얻어낸 진실은 끝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다. <월하의 검>에는 표면적인 결론과 달리 드라마의 효과가 만들어내는 사필귀정의 카타르시스가 없다. 주인은 자기의 권리를 빼앗기고 주인의 주인은 그 권리를 죽음으로 돌려준다. 바로 그 순간, 그러니까 연화당 최씨가 자살을 할 때 향아는 임금께 고하는 장무력의 고백을 위한 시간을 지키기 위해 수없이 밀려드는 병사들을 상대로 희망 없는 칼부림 끝에 죽어가는 박필에게 달려온다. 물론 이 장면은 장철의 < 대협객 >의 마지막 장면의 변주이다. 혹은 < 심야의 결투 >의 마지막의 마지막 장면, 그러니까 대결을 끝낸 다음에도 여전히 남아서 피를 흘려가며 끝없이 밀려드는 무사들과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필사적인 결투를 계속하는 은봉황이 어쩔 수 없이 떠오른다. 박필은 너무 많은 상처를 입었고 그가 입은 옷은 피로 범벅이 되어 계단에 쓰러진 채 죽어가는 중이다. 달려온 향아는 그를 껴안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를 여보, 라고 부르며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자고 말한다. 박필은 향아에게 이제는 만족하느냐고 묻는다. 그는 반복해서 향아의 복수를 말렸고 그녀의 희생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설득했으며 단 한 번도 그녀의 결심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녀를 도와 지금 이렇게 죽어가는 중이다. 그리고 향아는 복수에 성공했고 그녀는 마침내 원하는 것을 얻었다. 그때 향아는 박필의 질문에 대답한다. 저 탐욕한 무리들을 떠나 당신과 함께 떠나겠어요. 연화당 최씨의 대답과 마찬가지로 여기까지 향아의 동선을 쫓아온 당신은 갑자기 멈춰 설 것이다. 탐욕한 무리들. 그 대답에서 가리키는 탐욕한 무리들은 최걸과 연화당 최씨가 아니라 그들에게 희생당한 충신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향아를 궁궐에 보내 자신들의 억울함을 탄원해달라는 명령을 내렸던 아버지의 친구들. 대의를 위한 희생. 향아는 그 충신들을 최걸과 연화당 최씨 남매와 별 차이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단지 그들은 서로 권력을 잡은 자와 잃은 자의 반대의 자리에 놓여있을 뿐이다. 향아는 자기가 바라는 것을 얻었고, 그런 다음 연화당 최씨가 자살을 한 그 빈자리, 임금의 옆자리에 가면 된다. 하지만 그녀는 그 말을 한 다음 품에서 언제나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만일의 경우를 준비한 독약을 아낌없이 자기 입에 털어 넣는다. 두 개의 자살. 즐비한 시체. 여기서 자살은 어느 쪽도 자포자기가 아니다. 그녀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살을 선택하면서 무언가를 항의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임권택 의 영화에서 가장 반복적으로 대하는 행위는 자살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길고 긴 영화의 목록 끝에 자신의 영화에 대한 철학적 정식화가 인본주의(人本主義)라고 말한 이 사람의 영화에서 끈질기게 자살이 반복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심지어 그 자신의 자서전이라고 부를만한 < 취화선 >에서조차 마지막 장면에서 오원 장승업은 그 자신의 예술에 대한 결론으로 자살을 선택한다. (그런데 장승업에 관한 전기에 따르면 그는 말년에 그저 실종되었다고만 기록되어 있다.) 임권택의 영화에서는 각자의 이야기에서 살고 있는 각자의 주인공들이 살아온 삶의 결론에 이르러 각자의 죽음을 선택한다기보다는 그들이 어디서 시작했건 결국에는 자살이라는 어떤 (텅 빈 상태의 공허한) 중심에로 이끌려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을 가까스로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자기의 책임을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것뿐이다. 이를테면 역사 그 자체. 나는 <취화선>에서 바로 이어지는 또 한편의 전기인 < 하류인생 >의 마지막 장면을 유심히 바라본다. 여기서 자기의 자리를 텅 빈 구멍으로 만들어버리는 행위는 무엇을 목표로 한 것일까. 나는 임권택에 관한 논의를 더 멀리 밀고 나아가기 위해서 실패한 선택으로서의 장철의 쇼 브라더스 영화를 경유할 필요를 느낀다. 거기서 시작했고, 거기 머물지 않기 위해서 비극적인 것에서 진정한 비극에로 점핑하면서 도약하는 과정이, 오로지 그 과정이, 임권택의 목록을 쫓아가는 내게 감동을 준다. 방법론으로서의 소용돌이의 심연. 무한정한 회의. 그 안에서 탄식하는 부자연스러운 매혹. 먼저 덧셈을 한 다음, 보충한 다음, 그다음은 빼내는 것이다. 거기서 원래의 자리를 차지해버린 대리를 다시 바꿔야한다. 대리보충에 대한 대리. (데리다의 표현을 빌려) 이중의 세션. 물론 모든 문제 안에는 대답이 포함되어 있다. 그때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미 얼마나 주어져 있는가. 이제까지 나는 < 월하의 검 >에 대해서 불만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에서 모든 장면들이 보고 난 다음 내곁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임권택 은 내가 보고 있는 이야기 안에서 어떤 장면을 종종 바늘처럼 찌르듯이 불쑥 내밀 때가 있다. 이건 바르뜨가 말하는 푼크툼과 전혀 다른 것이다. 나는 이야기 안에서, 라고 말했다. 그 장면을 따로 이야기에서 때어놓고 보면 별로 대단하지 않을뿐더러 이미지 자체가 훌륭한 것도 아닌데 정말 갑자기 그 장면이 이야기 앞으로 나올 때가 있다. 그때 이 장면을 이야기에 놀랍도록 적절하게 조응한다거나 혹은 이야기를 압도하면서, 라고 설명하는 것은 사태를 완전히 오해하는 것이다. 여기서 장면은 이야기에 대해 몹시 불길하고 축축한 외설성을 갑자기 드러내듯이 출현한다. 여기서 방점은 갑자기, 에 놓여있다. 그건 무언가 더 이상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 것만 같은 불만에 빠졌을 때 그 이면에 감추어져 있던 장면이 앞에서 상연되는 것이다. 나는 상연, 이라고 말했다. 무언가를 의도적인 장면으로 보여주는 것. 누구에게? 우리에게. 왜 그런 상연이 필요해진 것일까. 그건 이야기의 표면만으로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박필과 향아의 이야기는 어느 지점에 이르자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제 자리를 맴돈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마침내 박필은 향아를 그녀의 원대로 한밤중에 비원으로 데려다준다. 비원에 깊은 밤이 오면 임금이 내시 한 명만을 대동하고 술을 마시며 이 시간을 홀로 즐기기 위해 나들이를 한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아직 향아는 그 밤이 만월의 밤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녀는 한밤중의 비원에 홀로 앉아 오지 않을 임금을 기다리며, 아무도 듣는 이 없는 장소에서, 그 누구도 들을 리 없는 피리를 거기 없는 임금을 향해 불기 시작한다. 물론 여기까지는 이야기 안에서 오인의 청각 기호가 작동하는 중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밤은 깊어가고 아무리 기다려도 임금이 나타나지 않자 향아는 피리 불기를 중단한다. 이때 화면에서 향아가 중단을 했는데도 영화는 계속해서 피리를 분다. 그때 이 피리는 향아의 몸과 분리되어 이야기 바깥으로 나가버린다. 그런 다음 마치 장면의 사운드 트랙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거기 홀로 남은 향아를 위해서 영화가 불어주는 풍경으로서의 청각 기호가 된다. 이 이행의 순간은 순식간에 벌어져서 단지 실수가 아니라 마치 이야기 전체가 어떤 오작동을 일으킨 것만 같은 인상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임권택은 텍스트라고 정의 내려진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거기에 마치 어떤 맹점(blind_spot)이 존재하기라도 한 것처럼 이야기의 가시성이 만들어내는 한계 가장 가까이에 다가간다. 우리는 이걸 단지 속임수라고 지나쳐버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는 갑자기 이야기 바깥에서 운명이 찾아온 것만 같은 인상을 준다. 이야기 바깥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 이야기를 조정하는 끈. 이때 운명은 비극을 상연하기 시작한다. 왜 그런 장면이 필요해진 것일까. 임권택은 자신이 다루는 이야기에서 역사를 삭제하는 대신 역사 안의 실재적인 질서가 작동시키는 운명이 비극이라는 것을 고스란히 남겨놓는다. 여기서 조선 시대의 구체적인 배경은 알 수 없지만, 아니 차라리 그런 임금의 존재를 역대 왕조에서 누구로부터도 유추할 수 없지만, 이 이야기는 조선 시대가 아니라면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된다. 대리된 가상의 임금. 그 안에서의 광동 멜로드라마의 보충. 이때 임권택은 거의 초현실주의적인 상황에서 다시 이야기의 현실 안으로 되돌아올 때 소름 끼치게 무서운 장면을 준비해놓고 있다. 향아는 아무리 기다려도 비원에 임금이 나타나지 않자 실망하여 자기 방으로 돌아온다. 이때 향아가 방에 앉는 장면은 무언가 이상한 구도로 잡혀있다. 지나치게 멀리 물러난 카메라와 향아의 거리. 그녀를 둘러싼 어둠. 그런 다음 호롱불을 켜자 방 안이 밝아지면서 이제까지 그 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연화당 최씨와 그녀의 궁녀들, 그리고 야경을 돌며 궁궐 안을 순찰하던 포졸들이 마치 유령처럼, 그림자처럼, 병풍처럼 향아를 둘러싸면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 장면이 우리를 경악(驚愕)이라는 공포의 상태로 몰아넣는 것은 세 가지 이유에서이다. 하나는 여기가 궁궐 안에서의 향아의 유일하게 사적인 공간이자 그 어떤 위험으로부터도 안전한 것처럼 여겨진 그녀의 방이기 때문이다. 임권택은 이 방을 마치 향아에게만 개인적으로 허락된 장소처럼 다루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여기를 향아의 안전한 피난처처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연화당 최씨가 여기에 나타났을 때는 습격을 당했다기보다 갑자기 피난처의 베일이 찢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다른 또 하나의 이유는 여기에 이를 때까지 연화당 최씨는 향아의 행동반경에 대해서 거의 관심이 없거나 마치 그 둘 사이에 교집합이 없는 것처럼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두 개의 원. 각자의 운동. 그런데 가장 이상한 세 번째 이유가 남아있다. 여기까지 이야기의 진행이 향아와 연화당 최씨 두 인물에 대해서 거의 대부분의 진지함을 상실한 채 지나치게 나태했기 때문에 하나가 다른 하나의 동선 안으로 개입할 것이라고 거의 생각할 수 없었다. 이 순간이 의도된 연출이라는 가정을 하는 것은 이후의 진행을 생각하면 거의 희박한 가능성으로 남는다. 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이 장면에서 깜짝 놀란 우리들은 그만 이 순간에 불쑥 찾아온 예기치 않은 방문객을 맞이한 심정이 되어 버렸을 것이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임권택은 그 효과를 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여기가 이 시기의 임권택의 마지막 방어선이었을 것이다. 그런 다음 영화는 다시 참혹한 기술적 수준의 장면들과 진부한 이야기에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이야기는 두 개의 자살을 향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그 둘이 자살을 맞이할 때까지 다시 마주칠 일은 없을 것이다. < 월하의 검 >에서 그 두 사람의 죽음이 애처롭게 느껴지는 까닭은 이 영화가 ‘끝난 다음’의 이야기 속의 요지부동의 세상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수많은 죽음 끝에 정의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사실상 이 영화의 무대가 된 존재한 적이 없는 조선 시대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다. 여전히 임금은 새로운 여자를 찾을 것이며, 그는 정사에 관심이 없으며, 충신들의 무리는 자신들의 복권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이루어진 다음에는 어떤 변화도 요구하지 않을 것이며, 세월은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임권택 은 그의 세 번째 영화 < 망부석 >에서 (각색을 거치긴 했지만)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런 다음 계속해서 조선 시대를 무대로 하여 사극을 만들었다. 구체적인 왕조와 역사적인 실록은 이야기에 개입하였으며, 실존했던 인물들은 자기의 자리를 버티고 앉았으며, 외세는 이 시대를 수수방관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임권택은 역사 안에서 자기의 이야기를 발전시켜야만 했다. 그때 그는 우아한 화면과 그 안에서 살아가야 했던 그 자신의 할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연출하였다. 우리는 임권택이 1934년에 전라남도 끝자락 아직 조선 시대의 향취가 남아있던 시대에 자라났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마도 1965년에 만든 < 왕과 상노 > 혹은 그 무렵부터 실록 바깥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이 시기부터 임권택의 영화가 부서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남은 것은 시대의 조건과 역사라는 이름으로 부여한 최소의 이치였다. 제도와 계급. 의상과 호칭. 마치 게임의 규칙처럼 되어버린 역사의 매트릭스. 역사는 형식이 되었으며, 그 안에서 임권택이 누린 것은 자유가 아니라 절망적으로 고립된 상황과 공허한 유교에 바탕을 둔 감상적인 남녀 사이의 희생과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전근대적 향수의 눈물이었다. “그때 그 영화들을 만들면서 내 영혼이 다 부서지고 무언가 잘못되어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내가 살아본 시대는 아니지만 이게 무어가 진짜고 무어가 가짜인지는 집안 어른들로부터 다 들어본 세상 이야기란 말이에요. 그리고 그런 어른들에게서 법도와 예절을 배웠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걸 내가 내 손으로 좋았던 유산을 다 부수고 있으니 만들면서 내내 참 몹쓸 짓을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임권택, 임권택을 말하다」) < 월하의 검 >은 정확하게 그 말에 대한 대답이다. 임권택은 먼 길을 돌아와야 했으며 다시 역사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서 자기에게 강요된 조건을 수락해야만 했다. 그러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참으로 참혹하게도 임권택이 다시 역사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 증언 >을 경유하여 그해 여름 한국전쟁을 마주 보면서, 다 부서져 버린 고향을 바라보면서, 흩어진 친척들을 찾아다니면서, 서로 총을 쏘고, 고발하고 신고하고, 죽고 죽이는 세상을 보면서, 그렇게 돌아왔다. 하지만 잠시만, 아직은, 아직은 좀 더, 나는 임권택의 그 시간에 머무를 생각이다. 그러므로... (계속) 1970년 108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제일영화주식회사 각본 임권택 촬영 최호진 조명 윤창화 편집 장현수 음악 황문평 김지미 윤양하 김명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