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노인의 회갑잔치
- 감독
- 박정근
- 제작년도
- 1978
- 출연
- 김석훈, 김남일, 이경희, 전영주, 민욱, 오경아, 안진수, 최남현, 김동원
© 지식을만드는지식 2026년 1월에 후고 뮌스터베르크의 『영화. 심리학적 연구』가 번역, 출간되었다. 1916년에 쓰인 이 책은 영화가 인간의 주의, 기억, 감정을 어떻게 조직하는지 묻는다. 출간된 지 한 세기가 훌쩍 넘은 지금, 영화가 스크린 바깥의 디지털 환경으로 확장된 시대에 나는 번역자로서 이 오래된 질문과 대답을 한국에 소개하고 싶었다. 이 글은 한 권의 고전을 번역하기로 결심한 이유, 110년 전의 낯선 이름들과 장치들 사이에서 길을 찾던 과정, 그리고 무엇보다 번역이 학문 공동체에 남길 수 있는 것에 대한 개인적인 단상이다.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며 독문학을 전공했던 나는 대학원 수료 후 독일에서 10년 동안 영화학을 공부했다. 독일에서 공부하기로 결심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 중 하나는 발터 벤야민,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루돌프 아른하임, 벨라 발라즈와 같은 독일어권 출신의 영화이론 선구자들이었다. 1920년대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 활발하게 활동했던 이들의 저작 중 일부는 당시에 이미 한국에도 번역되어 있었고,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 )」(1935), 『예술로서의 영화( Film als Kunst )』(1932), 『영화의 이론( Theory of Film: The Redemption of Physical Reality )』(1960) 같은 거대한 제목은 어딘지 모르게 독일의 학문적 전통에 대한 믿음을 부여했다. 영화사 초기부터 영화를 새로운 예술형태로서 진지하게 다룬 저작에 대한 경이로움이라고도 할 수 있다. 독일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책을 통해서만 알던 영화를 일주일에 서너 편씩 보며 영화학의 다양한 분야에 관한 강의와 세미나에 참여했다. 학과에서 대여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영화인들을 초청해서 진행하는 수업을 듣는 일은 특히 즐거웠다. 한 학기 수업을 마치고 학업 평가는 기말 리포트로만 진행한다는 사실은 새로웠다. 매 학기 여러 편의 기말 리포트를 작성하면서 자료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단과대 도서관에는 영화학 관련 서적만 따로 모아둔 서가가 있었고, 영상자료실에서는 독일에 소개되었던 거의 모든 영화를 비디오테이프와 DVD로 볼 수 있다. 신문, 잡지에 실린 개별 영화평이 필요하면 내가 공부하던 곳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독일영화연구소로 갔다. 그곳에 있는 도서관은 최근 수십 년 동안 대중매체에 실린 영화평을 감독별로 스크랩해서 대여해주기 때문이다. 독일에서의 영화학 공부는 그동안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자료를 찾고, 리포트의 형식으로 답을 구성하는 훈련이었다. 영화 연구에서도 자료는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임을 실감했다. 뮌헨 영화와 텔레비전 대학(Hochschule für Fernsehen und Film München)과 학내 도서관 (사진: 필자 제공) 해결해야 할 질문이 처음에는 아무리 거대하게 보여도 결국 관련한 핵심 자료만 충분히 제공된다면 나름의 답을 낼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핵심 자료란 고전으로 간주되는 단행본과 논문들, 그리고 한 분야의 축적된 지식과 방법론을 집대성한 대형 총서·개론서를 말한다. 이런 자료들이 충분히 번역되어 있다면 많은 경우 유학이 굳이 필요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다. 긴 시간 동안 외국에서 공부하다 보면 한편으로는 공부를 끝낼 수 있을까 걱정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학업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내가 학계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한국의 영화학이 학문으로서 발전하기 위해서는 독일의 여러 대도시마다 있는 영화연구소처럼 제도적인 지원도 필수적이지만, 개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기여는 좋은 원서를 번역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원서 읽기가 꼼꼼하고 깊이 있는 독해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한글로 된 글을 읽을 때처럼 많은 정보를 좀 더 쉽고 빠르게 얻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나의 첫 번역서는 토마스 엘새서와 말테 하게너의 『영화 이론: 영화는 육체와 어떤 관계인가( Filmtheorie zur Einführung )』(2007)였다. 아직 독일에 있을 때 번역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출간한 이 책은 저명한 영화학자인 토마스 엘새서와 그의 제자 말테 하게너의 공저인데, 내용도 물론 좋지만 하게너가 마침 내가 재학 중이던 학과의 교수로 부임해온 것도 번역을 결심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저자에게 직접 질문할 수 있었던 경험은 번역이 단순한 언어 변환이 아니라, 원저자·번역자·미래의 독자 사이에 새로운 독해의 통로를 만드는 작업임을 알게 했다. 출간 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책을 찾는 독자가 있다는 사실은, 학술 번역의 가치는 출간 직후의 판매량만으로 측정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귀국 후에 잠시 강의했던 영상이론 대학원 학생들에게 어떤 책이 번역되면 좋겠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나온 답이 나에게는 좀 놀라웠다. 학생들이 언급한 책은 당시에 주목받고 있던 인지 및 정동이론이나 디스포지티브 등 최신 이론과 관련한 서적이 아니라,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의 『칼리가리에서 히틀러로( Von Caligari zu Hitler )』(1947)나 『대중의 장식( Das Ornament der Masse) 』(1927)과 같은 고전이었다. 영화 공부를 하면서 입문서를 통해서 간접적으로만 접한 작품에 대한 갈증이 있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처음에 언급한 것처럼 나 자신도 1920, 30년대 저술들에 큰 매력을 느꼈던 것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크라카우어의 두 권의 책은 다행히 한국의 독문학자들에 의해 오랜 준비를 거쳐 각각 2022년과 2026년에 출간되었다). 나는 『영화 이론: 영화는 육체와 어떤 관계인가』 다음으로 영화이론의 고전으로 간주되는 『영화. 심리학적 연구』를 번역했는데, 두 번역서 사이에는 14년이라는 긴 시간이 있다. 그 사이에 여러 편의 논문과 두 권의 책을 쓰고, 두 건의 번역에도 참여했지만, 영화서는 번역하지 못했다. 변명하자면 고전의 경우 분량이 많고 내용이 난해해서 긴 호흡으로 작업을 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번역은 연구업적으로 거의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선뜻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 한 가지 이유다. 또 다른 이유로는 최근에 독일에서 나온 책 중에서 번역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지만, 학술적 성격이 강하고 분량도 적지 않아서 출판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을 들 수 있다. 『칼리가리에서 히틀러로』, 『대중의 장식』, 『영화 이론: 영화는 육체와 어떤 관계인가』 (사진: Princeton University Press , 교보문고 , Routledge ) 뮌스터베르크의 『영화. 심리학적 연구』는 영화이론사에서 최초의 체계적 이론서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이 책에서 영화를 인간 정신의 작용을 반영하는 예술로 규정했다. 그는 클로즈업, 몽타주, 플래시백 등을 지각·기억·주의 같은 심리 과정과 연결 지으며 영화 형식의 고유성을 설명했다. 특히 연극과 달리 영화는 외적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정신적 현실’을 조직하는 매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관점은 이후 형식주의 영화이론과 인지적 영화연구의 중요한 선구로 평가된다. 아마 대부분의 영화학도들은 뮌스터베르크의 유일한 영화책에 대해 이 정도의 지식을 이미 입문서를 통해서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책의 전체를 소개할 필요가 있을까? 이 점에 대해서 확신이 없었던 내가 뮌스터베르크 저작 번역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배경에는 독일 출신의 미디어학자 프리드리히 키틀러가 있었다. 키틀러는 자신의 매체이론을 펼치면서 뮌스터베르크를 인용한다. 특히 뮌스터베르크가 인간의 정신작용과 기술적 매체가 결합하는 지점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키틀러는 영화가 인간의 지각, 기억, 주의 등 정신 작용을 조율하고 시각화하는 방식, 영화관이라는 기술적 공간이 인간의 내면적 의식 구조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에 대해서 뮌스터베르크의 설명을 언급하며 자신의 매체유물론을 펼친다. 나는 키틀러가 뮌스터베르크를 다시 불러내어 자신의 이론을 정립해간 방식에 주목하게 되었다. 독일 미디어 이론의 역사에서 가장 최근의 거장으로 간주되는 키틀러가 영화이론의 초기 텍스트를 소환해서 자신의 이론을 펼쳐나갔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던 것이다. 키틀러에게 뮌스터베르크는 영화 초기의 낡은 이론가가 아니었다. 기술 매체가 인간의 지각과 기억, 주의를 어떻게 재배치하는지를 사유하기 위해 다시 읽어야 할 동시대인이었다. 이 독해를 통해 나는 고전이 이미 결론 난 과거가 아니라, 후대의 질문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내는 텍스트임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영화. 심리학적 연구』를 번역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분량이나 난이도 면에서 접근하기 쉬웠던 것도 번역 결정에 도움이 되었다. 후고 뮌스터베르크(Hugo Münsterberg)와 『영화. 심리학적 연구(The Photoplay: A Psychological Study)』 (사진: Harvard University , Internet Archive ) 번역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뮌스터베르크가 인용하는 많은 낯선 고유명사들보다, 그것이 당대 독자에게는 상식이었을 맥락을 오늘의 독자에게 어느 정도까지 설명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뮌스터베르크는 초기 영화의 장치와 상영 환경, 당대에 널리 알려진 배우와 영화들을 설명 없이 호출한다. 이를 모두 본문 안에서 풀어 쓰면 저자의 논지가 흐려지고, 아무 설명 없이 두면 책은 지나치게 멀어진다. 나는 가능한 한 본문의 호흡을 보존하되, 독해의 문턱이 될 만한 지점에는 각주를 두는 방식을 택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90개의 각주로 1916년의 영화 관객과 2026년의 한국 독자를 연결하고자 했다. 또한 오늘날의 영화 용어와 당시의 용어가 완전히 겹치지 않는 문제와 뮌스터베르크의 문체(단정적이거나 반복적이며, 때로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시대의 문체적 특징이 드러나는 문장)를 어디까지 보존할지의 문제 역시 꽤나 고민한 부분이다. 책에 덧붙인 해설에는 이런 고민에 대해 내가 내린 나름의 답을 설명했다. 번역이 실제로 완성되는 순간은 책이 출간될 때가 아니라, 누군가가 그 책에서 자기 질문을 발견할 때일 것이다. 영화가 우리의 주의와 기억, 감정을 어떻게 이끌어 왔는지 묻는 이 책이, 오늘날 스크린과 플랫폼, 영상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연구자와 학생, 그리고 영화 관객에게도 새로운 질문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키틀러가 한 세기 전의 뮌스터베르크에게서 자신의 문제를 발견했듯, 이 한국어 번역본 또한 누군가에게 다음 사유를 시작하게 하는 자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총서와 같이 상업성이 없는 학술서도 많이 번역될 수 있도록 한국연구재단과 공공도서관의 적극적인 역할도 꿈꾸어본다. 윤종욱(영화 연구자 및 번역자) l 독일에서 영화학을 공부하고, 한국의 독문과에서 일하고 있다. 토마스 엘새서·말테 하게너의 『영화 이론: 영화는 육체와 어떤 관계인가』와 후고 뮌스터베르크의 『영화. 심리학적 연구』를 한국어로 옮겼다. 최근에는 켄 로치 영화와 독일영화사를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 디깅룸 2026년 4월 12일, 나는 파주에 있는 한 출판 물류 창고를 찾았다. 고(故) 임재철 선생님의 제자들과 함께 이모션북스의 재고를 차에 실어 충무로의 옛 사무실로 옮기기 위해서였다. 충무로로 간 우리가 마주한 사무실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 건물이었고, 우리는 계단에 줄지어 서서 책과 유품을 옥상까지 손에서 손으로 올렸다. 4월인데도 날이 제법 더웠다. 존경하던 평론가의 책을 나르는 일은 영광스러웠지만, 책을 받아 올릴 때마다 이 책들은 왜 이렇게 무거운가 싶었다. 선생님은 존경스러운데 책은 자꾸 원망스러웠다. 내 옆에서 책을 나르던 사람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통성명을 할 겨를도 없었다. 오후 늦게 유품 정리가 끝나고 식당에 둘러앉았을 때에야 함께 일했던 분들과 인사를 나눴다. 나와 같은 라인에서 책을 옮기던 분은 자신을 1인 출판사 디깅룸을 운영하는 백지윤 편집자라고 소개했다. 백지윤 편집자가 고다르에 관한 책을 냈다고 하자, 나는 반가운 마음에 외쳤다. “아, 『고다르×고다르』 내셨구나!” 식탁의 사람들이 당황하며 정정해 주었다. “그게 아니라 『고다르처럼 보기』예요, 일남 님…” 나는 성격이 급하고 조심성이 없다. 아는 책 이름이 나왔다 싶으면 확인도 하기 전에 입부터 연다. ‘아, 이분은 나를 절대 신뢰 못 하시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두 달 뒤, 백지윤 편집자가 우리 팟캐스트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 녹음이 끝난 자리에 찾아왔다. 디깅룸에서 새로 낸 크리스틴 스몰우드의 『샹탈 아케르만, 갇힌 여인』(2026)을 들고서였다. 함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그는 그날 자리에 없던 윤아랑 평론가에게 전해 달라며 한 권을 내게 맡겼다. 그 책은 이 글을 쓰는 9월 27일 현재까지도 내 손에 있다. 아마 그는 평생 나를 신뢰하지 못할 것이다. < 호프 >(나홍진, 2026)가 개봉한 지 두 달이 넘었다. 그때 주고받은 카톡과 메일을 다시 읽으며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지금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 잘 모르겠다. 영화 한 편을 보고 왜 이렇게까지들 했을까. 내가 보던 트위터 타임라인에는 <호프> 이야기가 연신 올라왔고, 블로그에는 긴 글들이 쌓였다. 개봉 전부터 영화가 어떻게 나올지 떠들던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도 할 말이 남아 있었다. 나도 블로그에 글을 쓰고, 트위터에서 떠들고, 카톡으로 같은 이야기를 또 했다. 같이 영화를 보며 떠들 사람을 찾겠다고 오픈채팅방을 팠더니 하루 만에 50명이 들어왔다. 임재철 선생님 프로필 사진을 달고 들어와 새 사람이 들어올 때마다 욕을 하는 정체불명의 인물도 있었다. 나는 가족과도 영화를 보러 다니기 시작했고, 영화에 몸을 던지기 위해 회사를 그만둘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물론 그러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다. 그즈음 이광호 평론가는 나를 주변의 극장 관계자에게 소개해 주며 리액션 상영회를 구체적으로 의논해 보자고 제안했다. 이상했다. <호프>라는 영화 한 편 때문에 이렇게 사람들과 서슴없이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이. 극장에서는 홍보 일정을 고려하면 새로 행사를 열기에는 시기가 조금 늦었다는 답을 보내왔다. 나는 그 입장을 이해했지만, 이 영화가 시장에서 그리 달가운 존재는 아닌 모양이라는 생각에 조금 슬퍼지기도 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이렇게 단시간에 사람들이 연결되는 풍경을 기이하다고 느낀 건 나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트위터에는 이때 나온 글과 트윗을 모아 책으로 냈으면 좋겠다는 게시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그 글들을 보면서 혼잣말을 하곤 했다. “아이고, 이보세요. 책이 그렇게 쉽게 나옵니까?” 그러던 7월 27일, 회사 점심시간에 백지윤 편집자에게 메일을 받았다. 함께 <호프>에 관한 책을 만들자는 제안이었다. 가제는 ‘호프 호들갑’ 혹은 ‘호프 지키기’. 백지윤 편집자는 8월 10일까지 원고를 받아 그달 안에 책을 내겠다고 했다. 선인세와 이후 판매에 따른 인세 정산 조건도 적혀 있었다. 내 블로그 글을 보고 연락했다며, 지금 <호프>를 보고 몸에 남은 것을 자유롭게 써 보자고 했다. ‘이 사람 미쳤네.’ 첫 번째로 든 생각이었다. 백지윤 편집자가 보내온 <호프> 관련 도서 출간 제안 메일 선인세 금액을 보고는 한 번 더 그 생각을 했다. 이 출판사는 정말 이 금액으로 우리를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그렇다면 대단한 야심을 품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때 <라디오스타>에서 김흥국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 기억으로는 이렇다. 김흥국이 정준호 와 축구를 하던 중이었다. 정준호가 손가락 다섯 개를 펴 보이며 물었다고 한다. [1] “형, 요새 행사 좀 있어?” 김흥국은 오랜만에 들어온 행사 생각에 축구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김흥국이 되물었다. “와, 진짜 다섯 개 가 맞아?” 정준호가 답했다. “아, 알았어. 맞다니까.” 그런데 쉬는 시간에 정준호가 김흥국에게 이렇게 말하더란다. “형, 많이 약해졌네. 진짜 50 에 되는 거야?” 김흥국은 500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때 나는 김흥국들을 찾아야 했다. 손가락 다섯 개만 보고도 단위를 묻기 전에 가슴부터 뛰는 사람들, 돈 이야기보다 <호프> 이야기에 먼저 몸이 반응하는 사람들 말이다. 다행히 나는 그런 사람들을 몇 알고 있었다. 나는 메일을 받은 지 십여 분 뒤에 답장을 보냈다. 반가운 제안이라며 그날 바로 필진을 꾸리겠다고 했다. 섭외할 사람들을 떠올리며 허풍도 떨었다. 그때 내 말을 기억대로 옮기면 이렇다. “이 사람들 아무도 거절 안 할 겁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살이 떨렸다. ‘거절당하면 어떡하지?’ 그날 오후는 지금 돌이켜봐도 기억이 잘 안 난다. 가장 수락할 것 같던 이광호 평론가가 제일 먼저 수락했다. 필진을 모으면서 윤아랑 평론가와는 우리끼리 아는 사람들로만 채우지 말고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제안해 보자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나는 김해솔 시인을 떠올렸다. 트위터에서 그가 <호프>를 보고 미쳐 있는 걸 보고 이분에게 글을 부탁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이 책이 단순한 비평 모음집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그 부분을 채워 줄 사람이라고 느꼈다. 여기서만 밝히지만, 그날 퇴근길 지하철역에서 실제로 김해솔 시인을 마주쳤다. 그전까지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월간차지》의 신포도와 유유민은 이광호 평론가가 연결해 주었다. 두 사람이 참여하겠다는 답을 전해 듣고도 나는 그들이 실제로 누구인지 몰랐다. 이렇게 재치 있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왜 갑자기 등장한 걸까,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이광호 평론가가 그들의 정체를 알려 주자 나는 연달아 답장을 보냈다. “오, 맙소사…” “대스타들이시네…” 이런 일이 만 하루 만에 벌어지다 보니 내게는 온 세상이 <호프>일 수밖에 없었다. © ㈜포지드필름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한상희 평론가의 글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그가 <호프>를 보고 무엇이라고 말할지 하루 종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이 영화에 관해 떠들 때마다 머릿속 한편에는, <호프>가 대체 영화로서 어떻게 성립하고 있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해 줄 사람은 상희 씨일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래서 그가 영화를 본 뒤 블로그에 글을 올렸을 때 정말 반가웠다. 내가 좋아해서 반복하고 있던 말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왜 이 이상한 영화가 영화가 되는지를 말해 줄 사람이 나타난 기분이었다. 자연스럽게 이 책에도 그의 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배은열의 경우에는 조금 달랐다. 그가 <호프>를 보고 신정원 감독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좋았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온갖 영화와 감독을 떠올리고 있었지만, 거기서 신정원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순간에는 유난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호프>를 외국 장르영화의 맥락 속에서만 이야기하지 않고, 우리가 좋아했던 한국 장르영화의 이상한 계보 한가운데에 슬쩍 밀어 넣어 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이 영화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그렇게 말해 줄 수 있는 글이라면 꼭 책에 남기고 싶었다. 금동현 평론가는 8월 10일까지 원고를 쓰기는 도저히 무리라며, 포지드필름스 쪽 인터뷰가 성사된다면 진행자로 들어오겠다고 했다. 윤아랑 평론가는 직접 필진으로 참여하는 대신 정미파를 추천했다. 나도 정미파의 글을 꼭 싣고 싶었다. 정미파를 처음 만난 건 내가 <호프>를 본 날, 키니마에서 열린 ‘시네마 지옥’ 행사에서였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그 자리에서 틀어 주는 영화는 안 보고 게임 피파 시리즈 이야기와 <호프> 이야기만 했다. 그날의 대화를 기억나는 대로 옮기자면, 30분에 한 번꼴로 둘 중 누군가가 같은 말을 했다. ‘시네마 지옥’ 행사 중 “호프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아.” 아직 〈호프〉를 보기 전이었던 한상희 연구자가 우리에게 물었다. “아니, 대체 호프가 뭐길래 그런 소리를 계속 하는 거야?” 그러면서도 한상희 연구자는 정미파가 나홍진 에 관해 풀어놓는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다며, 그 이야기를 꼭 비평으로 써 보면 좋겠다고 했다. 그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정미파가 비평가로 데뷔할 책으로 이보다 잘 어울리는 책이 있을까 싶었다. 박동수 평론가에게는 <호프>의 차기작을 상상해 보는 대담을 원고로 싣자고 제안했다. 대담 상대에게도 그날 바로 인스타그램 DM과 섭외 메일을 보냈다. 그날 저녁, 나는 아홉 명의 명단을 백지윤 편집자에게 보냈다. 금동현, 김해솔, 박동수, 배은열, 신포도, 유유민, 이광호, 정미파, 한상희. 점심시간에 메일을 읽고 저녁에 명단을 보낼 줄은 나도 몰랐다.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은 모두 흔쾌히 함께하겠다고 해 주었다. 이름들을 모아 놓고 보니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 책이 시장에 나온다면 사람들을 절대 실망시키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책을 일종의 <호프> 동인지로 만들어 줄 만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이 영화가 대체 어떻게 영화로 성립하는지를 설명해 줄 사람도 있었다. <호프>를 다른 영화들의 계보 속에 놓아 볼 사람도 있었고,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에서 들이받을 사람도 있었다. 모두가 같은 말을 하는 책이 아니어서 좋았다. 다음 날부터 백지윤 편집자가 필진 일동에게 정식 제안 메일을 보냈다. “저도 말이 안 되는 일정이라는 걸 알지만, 아마 모두가 같은 심정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답장은 곧바로 이어졌다. 김해솔 시인은 벌써부터 신이 난다고 했고, 유유민은 이번 기획은 스피드가 생명이라며 윤문도 하지 않은 메모를 그대로 보내왔다. 나는 같은 날 포지드필름스에 인터뷰 협조 메일을 보냈고, 대담 역시 정식으로 제안했다. 7월 29일 아침, 백지윤 편집자가 카톡을 보내왔다. “<호프>가 외세의 침략을 받기 시작한 아침입니다…” <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디스틴 크리튼, 2026) 개봉일이었다. 예매율이 꺾이기 시작했으니 오늘부터 책 소식을 조금이라도 풀어야 한다고 했다. 곧 책 제목도 보내왔다. 『호프 끝장』. 표지는 이미 만들어져 있었다. 그 역시 미쳐 있던 게 분명했다. 사람을 모으고 방향을 잡는 일은 내가 할 수 있었지만, 원고를 조율하고 계약서 같은 행정 절차를 꼼꼼히 살피기에 나는 부족했다. 그래서 동료 윤아랑 평론가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는 흔쾌히 공동 기획자로 함께해 주겠다고 했다. 윤아랑 평론가는 계약서를 밤새 읽고 분석해 필진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나는 그 메일의 마지막 문장을 지금도 좋아한다. “여기서 이런 프로젝트에 휘말리듯 참여하게 될 줄 알았던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겁니다.” 물론 일이 계획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았다. 대담을 제안받은 분은 며칠을 고민한 끝에, 지금은 이런 일을 진행할 여력도 위치도 아닌 것 같다는 성의 있는 답장을 보내왔다. 포지드필름스로부터도 아직 답장이 없다. 하긴 연락받은 쪽에서는 ‘이 미친 사람들은 왜 이러지’ 싶었을 것이다. 영화 한 편 보고 갑자기 책을 만들겠다며 연락해 왔으니. 외부와 연결하려 했던 두 기획이 하나씩 멀어지자 오히려 분명해졌다. 기왕 시작한 거, 우리 손으로 끝내야 했다. 그러는 사이 원고가 오기 시작했다. 정미파는 60매를 보내왔고, 배은열의 수정고는 올 때마다 파일 이름이 길어져 결국 ‘수정수정수정수정수정’이 되었다. 8월 7일, 알라딘 북펀드가 열렸다. 나는 바이럴 마케팅 회사 우수 직원 출신이라고 떠벌리며 시간차로 게시물을 올렸다. 마케팅의 생명은 호들갑이다. 백지윤 편집자는 그날 오전 단톡방에 이렇게 썼다. “오늘 200 뚫으면 발 뻗고 자겠습니다…” 윤아랑 평론가도 한마디 보탰다. “200 뚫으면 에어컨 켜고 자겠습니다…” 기적처럼 그날 오후 모금액이 200만 원을 넘겼다. 백지윤 편집자는 저녁에 <호프>를 한 번 더 보고 빅맥 라지 세트를 먹었다고 한다. 이 얼마나 감동적인가. 『호프 끝장』 필진 단체 채팅방 8월 11일, 금동현 평론가의 원고가 도착했다. 이 책을 팬진(fanzine)으로 이해했다며 장난을 쳐 봤다는 원고를 읽고 기획진은 박수를 쳤다. 다음 날까지 나머지 원고도 모였다. 대담과 제작진 인터뷰가 무산되는 바람에 급히 원고를 부탁해야 했던 박동수, 금동현 평론가도 훌륭한 글로 답해 주었다. 그날 밤 나는 단톡방에 썼다. 책을 만들기로 했을 때와 펀딩을 열었을 때의 불안이 싹 씻긴다고. 기한이 워낙 빠듯해 원고를 고쳐 달라고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윤아랑 평론가는 정미파와 함께 원고를 다듬느라 고군분투했다고 전해진다. 나는 대부분의 원고를 받은 그대로 넘겼지만 유유민에게만은 한 가지를 부탁했다. 처음 받은 원고가 조금 방어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책은 무언가를 방어하기보다 일단 들이받는 쪽으로 가고 있으니, 비판받더라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더 과감하게 고쳐 달라고 했다. 다음 날 도착한 수정고는 근사하게 방공호를 벗어던지고 있었다. 8월 13일, 백지윤 편집자가 조판 PDF를 보내왔다. 각자 보내온 글이 170쪽짜리 책의 모습으로 묶여 있었다. 그날 윤아랑 평론가가 말했다. “이렇게 하고 싶은 거 막 하는 기회가 살면서 얼마나 더 있겠어요.” 나도 답했다. “저도 혼자서는 이걸 뭔가 절대 못 했을 것 같아요. 꿈도 못 꿨고.” 그 말을 들으며 문득 이 작업의 이상한 점을 생각했다. 돈도 넉넉하지 않았고 시간은 더더욱 없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이 일을 하지 않을 이유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아니면 못 한다는 생각이 우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같은 시기,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에서 단편영화 심사를 하던 기간에는 정종호 감독과 <호프>에 관한 찬반 토론도 했다. 책의 출간 소식이 나오자 정종호 감독이 사악하게도 행사 이름을 ‘호프 끝장 토론회’로 지어 버렸다. 정말 별의별 일이 다 생기는구나 싶어 웃음이 났다. 나는 이날 <호프>를 방어하는 쪽이었다.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의 비판을 듣다 보니 할 말이 술술 나왔다. 그날 김영광 평론가의 말을 내 기억대로 옮기면 이렇다. “<호프>는 게임으로 치면 계속 파티원을 부르는 영화예요.” 그 말을 듣고 보니 나도 잠시 함께할 파티원을 불러 모아 책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앞으로 평론가로 활동하면서도 이런 파티의 개념을 계속 생각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토론이 끝날 무렵, 처음부터 조용히 듣고 계셨던 김홍준 감독님이 갑작스레 나서셨다. 잘 들었다며 말을 건네시더니, 이 책을 꼭 번역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한국영화사에는 한국영화의 운명을 건 작품들이 간간이 등장하는데, 그 역사성도 분석해 주었으면 한다는 부탁도 덧붙이셨다. 이런 일들을 겪고 있으니 이 책에 관한 어떤 의심이나 비관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8월 18일, 백지윤 편집자가 제작처에 파일을 넘겼다. 8월 23일 밤, 펀딩은 200%를 달성하고 410부가 선판매되며 마무리되었다. 우리 입장에서는 대성공이었다. 8월 26일, 책이 물류창고에 들어왔다. <호프> 개봉 47일 만이었다. 9월 2일 아침, 백지윤 편집자가 단톡방에 캡처를 올렸다. 알라딘 종합 베스트 17위, 예술 부문 1위. 북펀드를 열 때 우리가 잡은 목표 금액은 200만 원이었다. 그날 오후 5시에는 대중문화 실시간 2위, 6시 21분에는 실시간 1위가 되었다. 알라딘 종합 베스트 17위, 예술·대중문화 부문 1위 기록 화면 책은 ‘와, 사람들이 저걸 읽나 봐’ 하는 분위기가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 9월 9일에는 하루에만 120부가 나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백지윤 편집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책이 제 기능을 발휘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하는 건 편집자 생활 처음이라, 참 묘합니다.” 며칠 뒤 다른 영화의 제작기를 쓰러 경주에 갔을 때였다. 촬영장 스태프가 물었다. “어떻게 <호프>로 책이 나와요?” 나는 웃으며 이 책이 알라딘 종합 베스트 17위라고 이야기했다. 주위에 있던 스태프 모두가 그 사실을 믿지 못했다. 9월 중순, 이번 주면 끝이겠거니 했는데 『호프 끝장』의 순위가 또 올랐다. 진짜 좀비 같은 책이구나 싶었다. 이광호 평론가는 학급문고를 만든다는 느낌으로 참여했는데 이렇게 인기 있을 줄은 몰랐다고 했다. 나는 극장에 갈 때마다 영화가 끝나고 의아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지금 내가 본 게 뭐지, 하는 표정. 그때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 이야기다. 『호프 끝장』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 같은 책이 되기를 바랐지만, 내가 기획한 것은 그 너머에 있었다. 영화가 극장에 걸려 있는데 비평은 반년 뒤에야 도착하는 방식 말고도 다른 방식이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영화가 개봉하고 시장이 아직 그 가치를 판단하지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을 때, 바로 그 옆 진열대에 비평을 올려놓을 수 있다면 그 비평은 충분히 읽힐 수 있다. 그러려면 속도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번에 알게 된 건, 그 속도가 단순히 서두른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 속도는 신뢰에서 나왔다. 내가 이 일을 하기 전까지 쌓아 온 관계와, 누군가가 보내 준 원고를 믿는 마음과, 누군가가 자기 역할을 해줄 거라는 기대에서 나왔다. 혼자였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속도였다. 앞으로도 나는 이런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 백지윤 편집자는 《기획회의》에 실은 「운명페이」에서, 4월 12일 충무로에서 받은 환대가 없었다면 7월에 내게 출간을 제안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썼다. 그날 나는 이름도 모르는 사람과 책 상자를 나르며 눈치를 보고 있었고, 이모션북스의 책들은 왜 이렇게 무거운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자기 책 이름도 제대로 몰라보는 사람을, 책을 전해 주기로 해 놓고 석 달째 안 준 사람을 믿고 이 책을 만든 것이다. [2] 백지윤 편집자는 자신을 제작자 정도로 생각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이 책을 윤아랑과 함께 기획한 나로서는, 평생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친구를 만난 기분이다. 아무래도 샹탈 아케르만 책은 이번 달 안에 윤아랑 평론가에게 전해 주어야겠다. *** [1]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 2010년 7월 28일 방송분에서 김흥국이 소개한 일화를 필자의 기억에 따라 재구성했다. [2] 백지윤, 「운명페이」, 《기획회의》, 2026. ※ <호프> 스틸 외 사진: 필자 제공 Behind the Book : 저자에게 아직 남아있는 이야기 한 사람의 질문이 늘어나고 깊어진 끝에 수백 쪽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마침내 책 한 권으로 독자에게 닿은 저자가, 치열하고도 가치 있던 여정을 들려줍니다. 조일남(영화평론가) l 영화를 두고 놀기를 좋아하고, 그 놀이가 남기는 것에 대해 쓴다. 아내와 두 강아지와 함께 파주에 살고 있다. 팟캐스트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 진행. 『호프 끝장』(2026) 공동 기획 및 서문,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2023) 공저. 머니그라피 인스타그램 매거진에 영화 칼럼 연재 중.
<백룸> 중 (사진: IMDb / © A24) 기억에 남는 불안이 있다. < 1917 >(샘 맨데스, 2019)에서 데번셔 연대의 무모한 돌진을 막아낸 스코필드가 블레이크의 형을 찾아 야전병원 막사에 당도했을 때, 나는 영화가 쌓아온 서스펜스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불안에 사로잡혔다. 막사 저 멀리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온 순간부터 고개를 가로저었다. 영화 내내 스코필드에게 밀착해 있던 카메라가 거의 유일하게 인물을 놓아두고 홀로 날아오르기 시작했고 끝내 그 나무 아래서 이야기의 문을 닫는다. 눈을 뜬 남자가 한바탕 소동을 끝내고 다시 나무 아래서 눈을 감는 이야기. 헛웃음이 나올 만큼 도식적인 수미쌍관 구성은 경탄스러운 카메라 무빙을 한 편의 허탈한 동화로 바꿔놓았다. 극장을 나서며 이렇게 적었다. “대체로 무용(無用)한 것들을 사랑하는 편이다. <1917>은 카메라의 쓸모, 자신의 효용을 수다스럽게 떠들어대는 것 같아 왠지 안쓰러웠다. 문득 침묵할 줄 알았던 카메라들이 그립다.” 당시 편협한 판단을 요약하면 이렇다. <1917>은 촬영 방식이 제일 앞자리에 놓인 영화다.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 스스로 밝혔듯 이 영화에서 물리적인 아날로그 롱테이크는 최장 7분 남짓, 나머지는 교묘한 트릭으로 이어 붙인 착시다. 끊어지지 않는 카메라를 위해 서사가 설계됐는데, 결과적으로 이야기 구성은 기이하리만치 게임에 가까워졌다. 참호에서 트럭으로, 불타는 마을에서 강물로 이어지는 여정마다 이름난 배우들이 마치 게임 속 NPC처럼 배치되어 병사를 다음 구간으로 안내하는 방식이다. 요컨대 서사를 위한 카메라가 아니라 카메라를 위한 서사가 되어버렸다. 말하자면 <1917>의 연결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의 결과가 아니라 ‘연결시키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산물이다. 그 유려한 롱 컨티뉴이티 숏은 전장을 재현하는 대신 관객을 안전한 가상현실로 소환해 버린다. 영화적인 것, 영화만이 할 수 있는 것을 극한까지 추구한 결과가 역설적으로 영화로부터 멀어지는 기이한 종착지에 다다른 셈이다. 2020년 무렵의 나는 그 어긋남을 두고 ‘영화를 향한 향수병’이란 딱지를 붙였다. 한없이 가까워지고 싶지만 끝내 다다를 수 없는 곳을 바라보며 앓는 병. 향수병은 애초에 돌아갈 수 없음을 전제로 성립하는 상태이므로 그리움에 사로잡히는 순간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뒤늦게 고백한다. 그땐 일말의 허세와 더불어 형식주의자를 향한 결벽 비슷한 감정이 작동했던 것 같다. 형식과 내용의 불일치에 유난히 위화감을 느끼는 편이다. 스타일에는 목적과 필연성이 있어야 한다고, 하고 싶은 말이 어떤 결과물로 이어진 형태가 곧 형식이어야 한다고 믿어왔다. 그렇기에 방향과 결과, 의지와 형태가 어긋난 순간들을 만나면 한참 생각에 잠기곤 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원래 하고 싶었던 게 뭘까. 시간이 흘러, 정확히는 새로운 세대의 물결을 겪으며 질문의 방향이 슬며시 바뀌는 중이다. 그렇게 마르고 닳도록 입에 올리던 ‘영화적인 것’이란 대체 무엇일까. 그런 고정불변의 대상이 있긴 한 걸까. 영화가 무엇인지 묻는 것만큼 본질적이고 동시에 바보 같은 질문도 없다. 그건 목적지라기보단 그저 지향에 불과하다. 본래 큰 질문에서는 답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법이다. 현 시점 내가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건 ‘영화적인 것’이란 지표에 절대성 따윈 없다는 믿음이다. 아주 협소한 경험에 근거하여, 영화적인 것의 실체는 ‘경험에 근거한 익숙함’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달리 말하면 한 시절의 관습이다. 심지어 이 관습의 수명은 길어야 20~30년, 대체로 한 세대보다 짧은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의 체험을 절대적인 것이라 믿는 경향이 있다. 1950년대에 완성된 몇몇 형식들을 ‘시네마틱’이라 일컫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거칠게 말해 오늘날 영화적인 것이라며 유통되는 상당수의 기법은 1950년대 이후, 좁게 잡으면 1970~80년대에 유행하거나 영향을 미친 스타일에 가깝다. 이를테면 슬로우 시네마가 롱테이크를 거쳐 시간을 활용하는 방식이 그렇다. <1917>의 롱 컨티뉴이티 숏이 증명하고자 한 ‘영화적인 접근’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어쩌면 로저 디킨스의 카메라도 그저 본인이 만들어온(그리고 지나온) 영화라는 영토에 대한 향수에 잠긴 게 아닐까 싶은 의심. <1917> 중 (사진: IMDb / © Amblin Entertainment, ㈜스마일이엔티, ㈜씨제이이엔엠) 의심을 심화시킨 건 < 남매의 여름밤 >(윤단비, 2019)이었다. 그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내내 윤단비 감독의 심경을 상상했다. 이 젊은 창작자가 그리워하는 대상은 무엇일까. 윤단비 감독의 영화에는 지난 세기의 끝자락, 그 언저리의 여름이 고여 있다. 2층 양옥집과 낡은 선풍기, 대야에 담긴 수박, 한없이 늘어지는 오후. 흥미로운 건 영화가 재현한 그리움에 정확한 원본이 없다는 점이다. 적지 않은 시네필들이 직접 살아보거나 겪어본 적 없는 1980년대 대만 뉴웨이브의 골목을 그리워한다. 요컨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추억하기, 원본 없는 노스텔지어라고 해도 좋겠다. 엉뚱한 고백 하나 하자면, 나는 이 영화를 보다가 헤어진 적 없는 연인을 그리는 노래들을 떠올렸다. 최신 K팝, J팝을 들으며 애틋한 이별을 앓는 요즘 세대와 마찬가지로 돌이켜보면 나 역시 신승훈의 노래를 들으며 아직 겪은 적 없는 사랑을 먼저 배웠다. 그 감정은 가짜인가. 당연히 아니다. 경험의 원본이 없을 뿐, 패턴과 표현 방식을 공유하는 순간 감정은 실제로 발생한다. <남매의 여름밤>의 공간이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인식 하에서 존재한다는 것처럼. 지정학적 시간에 얽매이지 않은 채 그리움의 새로운 층위를 만들어내는 것. 그리하여 그 여름밤은 감독의 것도 나의 것도 아니면서 결국 우리 모두가 지나온 무언가를 자극한다. 직접 겪지 않아도 향수병을 앓을 수 있다. 이 단순한 사실이 내게는 작지 않은 균열을 남겼다. <남매의 여름밤> 중 / © 오누필름 최근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유튜버들을 보며 다시 생각에 잠긴다. < 백룸 >(케인 파슨스, 2026)과 < 옵세션 >(커리 바커, 2026)은 흥미롭게도 모두 고전적 문법의 영화다. 10대의 침실에서 태어난 유튜브 영상 <백룸>은 캐릭터도 서사도 없이 노란 방과 형광등 소음의 이미지를 가운데 두고 해석과 재창작을 댓글창과 위키트리에 맡긴 열린 텍스트다. 반면 영화 <백룸>은 오리지널 각본 위에 배우의 얼굴을 세우고 트라우마라는 주제를 정면으로 통과하는 닫힌 이야기다. 배우 중심의 단단한 서사, 처음과 끝이 닫힌 세계. 하지만 정작 케인 파슨스는 <백룸>을 영화화하면서 자신을 스타로 만든 유튜브의 작법을 따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니 그럼에도 젊은 관객들이 극장으로 몰려들었고 함께 집단체험을 공유했다. 누군가에게는 이 영화가 극장에서 본 인생 공포영화로 기억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장소가 주는 경험의 확산은 바야흐로 새로운 세대가 극장영화로 융합되는 신호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든 것이 한 번에 변하는 경우는 없다. 어떤 것은 바뀌고 어떤 건 바뀌지 않으며 디졸브 된다. 기성영화는 크리스토퍼 놀란이 그러하듯 프리 프로덕션 중심의 예술이다. 현장에서 찍는다는 행위 자체에 무게가 실린다. 반면 디지털 미디어는 포스트 프로덕션 중심이다. 렌즈가 포착한 진짜보다 소프트웨어로 빚어낸 진짜를 신뢰한다. <백룸>의 VHS 질감이 아날로그 카메라가 아니라 무료 3D 소프트웨어의 후반작업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파슨스가 극장에 가져온 것은 유튜브의 문법이 아니라 유튜브의 프로세스였다. 문법이 아니라 프로세스의 융합. 무엇보다 그는 새로운 문법에 집착하지 않았다. 새로움을 향한 과도한 집착이 오히려 길을 가릴 수도 있는 법이다. 디지털 네이티브가 소프트웨어로 아날로그의 유령을 위조해낸 이 제작 방식이야말로, 겪지 않은 것을 그리워하는 우리 시대의 뒤틀린 향수에 대한 완벽한 은유 아닌가. <백룸>의 배경은 1990년, 화면의 질감은 VHS다. 주 관객층인 20~30대는 그 시대를 살아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백룸>의 모방된 질감이 의도와 달리 그들에게 기이한 안락함을 주었으리라 짐작한다. 왜냐하면 <백룸>의 리미널 스페이스는 연결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쓸모를 강요받지 않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디지털에는 그리워할 게 참 많다. 사진을 지브리풍으로 바꾸는 필터가 유행하고, 멀쩡한 고화질 영상을 VHS 질감으로 되돌리는 레트로 변환이 놀이가 된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아도 상관없다. 질감 그 자체가 그리움의 대상이, 마음을 눕힐 안정감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남매의 여름밤>으로 대표되는 시네필 세대 창작자들과 본질적인 패턴은 다르지 않다. 사실 이건 봉준호 , 박찬욱 같은 앞 세대도 마찬가지였다. 비디오 가게와 시네마테크에서 자란 이들에게 영화는 태어나기 전의 시간까지 소급되는 고향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영화라는 고향에서 시간을 초월해 만난다. 심지어 디지털은 이 영토를 무한정 확장해 우리 앞에 소환 중이다. <백룸> 중 / 사진: IMDb( 1 , 2 ) / © A24 <백룸>을 극장에서 본다는 건 시간의 때가 묻은 노란 벽지와 형광등 불빛, 낡은 카펫에서 안식을 찾는 세대가, 인류가 가장 오래 사용해 온 어두운 방에 모여 함께 악몽을 꾸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극장이야말로 현실에서 두 시간 동안 잠시 미끄러져 나가는 이행의 공간,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리미널 스페이스다. 그리하여 출구 없는 방은 무섭고, 동시에 그립다. 아무도 없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 공간이 과잉 연결의 시대를 사는 세대에게는 지옥이면서 동시에 도피처가 되는 셈이다. 무서움과 그리움이 한 몸이라는 이 양가성이야말로, 겪지 않은 것을 추억하는 마음과 함께 한 세대를 극장으로 데려온 힘일 것이다. 그리하여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고전적인 영화는 그리워할 대상인가. 그럴 수 있다. 그럼 그 시절의 감각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향수병에 빠진다, 고 생각했다.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향수에 빠진 사람들은 가만히 병을 앓는 대신 온갖 것을 시도한다. 로저 디킨스는 끊어지지 않는 카메라로, 윤단비는 원본 없는 여름밤으로, 파슨스는 위조된 VHS의 유령으로. 어쩌면 새로움은 바로 그 발버둥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도달할 수 없지만 계속 향할 수밖에 없는 욕망. 일치할 수 없음에도 한없이 가까워지고자 하는 마음. 그것은 영화와 현실의 관계이기도 하고,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창작의 동력이 될 수도 있다. 돌이켜보면 <1917>을 향수병이라 명명했을 때 내 감정의 바탕은 안타까움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겪어보지 못한 것을 얼마든지 추억할 수 있는 시대라면, 돌아갈 고향이 없다는 사실은 더 이상 병의 조건이 아니라 창작의 조건인지도 모른다. 달리 말하자면 애잔함보다는 멈추지 않는 도전과 활력을 느낀다. 그 시절 나는 극장을 나선 뒤에도 질척거리며 달라붙어 있는 영화를 더 보고 싶다고도 썼다. 어쩌면 그건 시대를 구분하며 벽을 치는 태도였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실시간으로 마주하는 건, 매체 간 문법이 섞이면서 공유되는 확장의 순간들이다. 침묵할 줄 알았던 카메라들이 그립다는 문장은 지금도 유효하다. 다만 이제 그 그리움은 앓는 소리가 아니라 무언가를 빚어내는 소리로 들린다. 향수병은 나을 수 없다. 하지만 어떤 불치병은 도리어 불사의 동력이 되기도 하나 보다. 문득 윌 스미스 주연의 < 나는 전설이다 >(프란시스 로렌스, 2007)가 떠오른다. 이것이 절멸의 길인지 아니면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길인지 아직 단언할 순 없다. 내가 서 있는 장소가 구 인류의 땅인지, 신 인류에 편입될 수 있는 길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이미 무언가 변했고 부지런히 더듬어가며 뒤따르는 중이다. <백룸> 중 (사진: IMDb / © A24) 다시, 비평 과거에 봤던 영화가 요즘은 달라 보인다면, 관점은 언제부터, 어떻게, 어떤 이유로 달라진 걸까. 시간을 따라 서로 다른 형태와 색깔을 남긴 비평의 궤적을, 필자가 직접 뒤따라가 봅니다. 송경원(씨네21 편집장) l 영화 논문, 비평, 기자 글쓰기까지, 영화에 대한 서로 다른 리액션 사이에서 흔들리고 방황한지 15년. 이제야 영화 글쓰기가 나의 직업이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2023년 《 씨네21 》 편집장이 되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할 때, 밤하늘의 별자리를 찾듯 영화를 보고, 읽고, 쓴다. 2009년 《씨네21》 영화평론상 수상, 2011년부터 부일영화상, 부천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서울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심사위원 등 역임. 『프로듀서』(2019), 『만화 웹툰 작가 평론선―이충호』(2021), 『마음의 일렁임은 우리 안에 머물고』(2021, 공저), 『얼룩이 번져 영화가 되었습니다』(2024) 등 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