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은 없다
- 감독
- 정진우
- 제작년도
- 1989
- 출연
- 송영창, 김승환, 김선경, 한영수, 남성우, 우연우, 김희라, 방희, 윤일봉, 김보성
9월의 < 박서방 >( 강대진 , 1960), 10월의 < 마부 >(강대진, 1961)에 이어 11월에도 또 한 편의 ‘ 김승호 영화’를 소개한다. 김승호는 < 로맨스 빠빠 >( 신상옥 , 1960), < 서울의 지붕 밑 >( 이형표 , 1961), < 삼등과장 >( 이봉래 , 1961), < 월급쟁이 >(이봉래, 1962) 등 60년대 초에 대중의 사랑을 받은 대표작들을 통해 한 시대를 풍미했고 지금도 그 영향력이 다했다고는 할 수 없을 소시민 가장의 초상을 그려냈다. 그가 연기한 아버지들은 한 집안을 경제적으로 부양하고 있지만, 전통적인 가부장의 권위는 바람 앞의 등불 신세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그가 담당하는 경제 활동의 토대가 흔들리는가 하면, 자식 세대는 새로운 가치관을 내세우며 불화를 일으킨다. 대체로 사람만 좋을 뿐 기민함과는 거리가 먼 아버지 김승호는 이런 변화 앞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러나 김승호 영화에서 이런 시대의 변화와 세대 갈등이 치명적인 지경에 이르는 경우는 드물다. 아버지의 곤경은 곧잘 웃음기 어린 해프닝으로 마무리되며, 가장 절망적인 경우라도 아랫세대에서 구원자가 등장한다. 구원자의 역할을 맡는 이는 주로 장남이나 맏사위 등 아랫세대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남성인데, 그는 가장의 자리를 물려받음으로써 아버지의 곤경을 해소하며 분열될 것처럼 보였던 가족은 다시 하나로 뭉친다. 이러한 봉합은 주로 인기 라디오 드라마를 바탕으로 스타들을 내세운 상업 영화로서 피할 수 없었던 보수성에서 기인하기도 할 테고, 한국전쟁 이후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을 거치며 끝없이 질서가 뒤바뀌는 과정에서 낡은 것을 타파하고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한편 그 과정이 폭력적인 뒤엎기가 아니라 성실하고 화목한 승계의 형태를 취하기를 열망했던 대중의 절충적 무의식이 발현한 사례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 해바라기 가족 >( 박성복 , 1961)은 다소 색다른 빛을 띤다. 우선 김승호가 연기한 정진구는 소시민이 아니라 잘 나가는 기업의 회장이다. 영화 말미에는 그가 경영하는 회사가 브라운 상사와 8천만 원 규모의 계약을 진행 중이라는 대사가 등장하는데, 이는 요즘 화폐 가치로 따지면 약 30억 원에 해당한다. 거기서 추측할 수 있는 부유함에 걸맞게 그의 가족은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을까 의심할 정도로 울창한 숲에” 둘러싸였으며 도로에 면한 대문에서 집이 보이지 않고 정원에서는 공작새가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살고 있다. 정진구의 사업에는 어떤 문제도 없으며, 부가 위협받는 일도 없다. 소시민이 아닌 상류층의 대부호인 그는 사회 및 노동 환경의 변화에 아무런 위기도 느끼지 않는다. 영화는 정진구의 집에 새 입주 가정교사로 여대생 미원이 찾아오며 시작된다. 미원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무언가 집안 전체에 감도는 비극적인 분위기”를 느낀다. 비극적인 분위기의 원천은 다름 아닌 정진구의 가족들이다. 첫째 아들 창식은 6.25에 참전했다가 다리를 다친 뒤 술과 염세 철학에 빠진 채 방에서 두문불출 중. 첫째 딸 영애는 전후의 자유주의적 향락에 몰두하는 아프레 걸. 둘째 아들 정식은 신경이 날카로운 권투선수. 셋째 아들 인식은 학업보다 트럼펫을 좋아하는 고등학교 졸업반. 그리고 둘째 딸인 윤애와 윤애의 어머니까지. 정진구가 좀처럼 집에 들어오지 않는 가운데 이 여섯 가족은 매일 같이 서로를 비방하거나 무시하며 살아간다. 이 가정불화의 원인은 무엇인가? 우선 가난이 야기한 조급함일 리는 없다. 그렇다고 전통적 가치관과 현대적 가치관을 둘러싼 세대 간의 불화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영애가 자신을 소개하면서 “금년에 졸업을 하면 도미 유학을 할 예정인데 봉건적인 가정의 인습 때문에 아까운 재능을 썩힐지도 모르는 숨은 천재”라는 농담을 던지기는 하지만, 사실 부모 세대가 자녀들의 삶을 좌우하면서 삶의 방식을 강요하거나 자식들의 남다른 가치관 앞에 쩔쩔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가족 구성원들 간의 이해관계나 성격 차이가 가정불화를 낳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서로에게 가하는 언어적, 물리적 폭력은 매번 특별한 명분이나 목적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몸에 익은 생활 습관처럼 보이며, 한두 장면 앞에 다투었던 이들이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대화를 나누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결국 남는 것은 정진구, 더 정확히는 그의 엽색 행각뿐이다. 그는 창식과 영애를 낳은 첫째 부인을 평양에 버려두고 왔다. 중식을 낳은 둘째 부인은 기생이었는데 정진구의 비서와 눈이 맞아 도망갔다. 인식을 낳은 셋째 부인은 가정부였고 살인죄로 복역 중이다. 넷째 부인은 윤애의 어머니는 창식, 영애와 같은 연배인 스물아홉에 불과하다. 더구나 이 넷째 부인이 집안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별장에 휴양하러 가겠다면서 하는 말을 들어보니 정진구는 요즘 또 낙원동에 새 애인을 두고 있는 모양이다. 이런 복잡다단한 가족 구성의 결과 창식은 6.25 당시 평양에서 아버지가 버린 어머니를 찾으려다 다리를 다친 뒤 방에 틀어박히고, 중식과 인식은 서로의 어머니를 들먹이며 서로 신경을 긁고, 영애는 고작 다섯 살 연상인 넷째 부인을 비웃는다. 결국 가족들의 다툼은 자신의 잘못을 책임지지 않은 채로 부재하는 정진구를 향한 분노가 변형된 결과인 셈이다. 김승호는 이런 인물을 평소의 김승호처럼 연기한다. 그는 가족들의 비난에 인상을 쓰거나 큰소리를 내는 법 없이 늘 조곤조곤하게 말한다. 그렇잖아도 이제 가정에 충실하려고 생각하고 있으니 앞으로는 함께 잘 해보자고. 그러나 그것은 말뿐이며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없다. 이토록 무책임하고 무기력할 뿐만 아니라 위선적으로까지 보이는 김승호를 본 적이 있던가? 영화는 그런 그를 꿈속에서나마 기어이 지옥으로 끌고 가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전 부인들과 대면하도록 하는데, 거기에는 이자에게 말뿐인 속죄와 봉합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결기마저 느껴진다. 결국 정진구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는 새로운 관객들이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언급을 삼가겠지만, 대중적인 홈드라마로 나아가기 위한 각종 타협적인 장치에도 불구하고 그 결기가 완전히 꺾이는 일은 없으며 오히려 안정적인 서사를 훼손해서라도 불편함을 남기고야 말겠다는 서슬이 남아 있다는 점만은 말해두기로 한다. 가부장의 지위는 만장일치로 복권되거나 승계되지 않으며, 가족에 불완전하나마 화합의 가능성을 가져오는 것은 전적으로 다음 세대의 의지 덕분이다. 때로는 끌어안고 함께 나아갈 수 없는 가족도 있는 법이다. 그것이 돈 많고 사람만 좋아 보일 뿐 다음 세대에게 원죄와도 같은 고통을 남긴 채로 자신의 죄과를 전혀 책임지지 않는 가부장이라면 특히 그렇다. >> 해바라기 가족 VOD 보러가기 <<
임권택 의 < 왕십리 >(1976)는 내게 기이한 몽환적 경험을 전해준 영화다. <왕십리>가 임권택의 초 중기 장르 영화 걸작 중 한 편이라는, 혹은 그의 필모그래피 전체에서도 수작에 속한다는 공인된 평가와 나의 그 몽환적 경험이 어떠한 관련성을 맺고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 어쩌면 거의 관련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잊히지 않는 그 몽환의 경험 때문에, 동시에 임권택 영화 세계에 대한 나의 무지를 인정하면서, 나의 첫 번째 임권택 영화의 걸작으로 <왕십리>를 꼽고 싶다. < 왕십리 >에서 나를 혼미하게 만든 건 이 영화에서 한 차원 더 발전되었다고 평가받는 임권택 식 회상 장면들의 쓰임새가 아니라, 그 회상 장면들 이후에 찾아오는 기괴한 ‘출현과 재출현’의 장면들이다. 그리고 그 장면들은 예외 없이 여주인공 정희( 김영애 )의 등장과 전부 관련이 있다. 주인공 준태( 신성일 )는 14년 만에 돌아온 고향 왕십리에서 옛 연인 정희를 다시 만나 보기를 원한다. 정희는 부잣집에 시집가서 아이 셋을 둔 행복한 귀부인이 되었으니 만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친구들이 말리지만 준태는 신문에 광고를 내고 마침내 정희가 나타난다. 그녀는 듣던 대로 귀부인이 된 것도 같고 영화가 회상 장면을 통해 보여 주었던 그 모습 그대로 여전히 청순함을 지닌 것도 같다. 이제 첫 번째 출현의 시간이 온다. 사기꾼 정희의 출현이다. 그녀는 사실 배다른 아이를 셋이나 키우는 왕십리의 소문난 바람둥이이며 빚을 지고 도망 다니는 사기꾼이다. 14년의 세월이 정희의 순진함을 더럽혔거나 준태가 그녀를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이리라. 남편의 사업이 망하고 홀로 어렵게 아이들을 키우는 것처럼 위장한 그녀는 준태의 유년 시절 친구이자 자신의 현재 애인인 충근( 백일섭 )과 짜고 준태에게서 돈을 뜯어내려는 것이다. 방금 전까지도 준태에게 연약하고 쓸쓸한 애정의 눈길을 보내던 정희는 준태가 떠나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아휴 살기 힘들어”하며 성질을 내면서 천박하게 병째 소주를 들이켜고는 아이들에게 입조심들 하라며 주의를 준다. 사기꾼 정희의 정체가 드러나는 이 순간은 너무 갑작스럽고 노골적이어서 잠시 어리둥절하다. 이 장면의 ‘결’은 적지 않은 상영시간을 들여 과거의 그녀를 소개하던 회상 장면의 ‘결’과 너무 다른 탓에 거의 우격다짐으로 여겨지거나 서사적 위반 혹은 거친 속임수처럼 느껴진다. 회상 장면의 정희는 순박했는데 이 장면의 정희는 천박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 이 충격 요법이 전부였다면 < 왕십리 >는 그저 범작에 그쳤을 것이다. 정희는 그치지 않고 다시 출현한다.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준태 앞에 또 나타난다.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나는 이 이상한 가정을 마치 홀린 듯이 연거푸 읊지 않고서는 <왕십리>의 감동을 말할 능력이 없다. 정희의 사기 행각이 전부 드러난 뒤 그녀는 준태를 다시 만나고 싶어 한다. 곱고 수수한 차림새를 하고 왕십리역 광장 목재들이 쌓인 그 좁은 틈 사이에서 그녀가 준태를 기다리고 있다. 정희가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리 없다. 그럼에도 영화는 앞 장면의 천박한 정희와 지금 이 자리의 정희가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확연히 다른 톤으로 그려낸다. 그녀는 지금 천박하기는커녕 낮고 떨리는 음성으로 사랑을 배신한 것에 슬퍼하고 죄를 지은 것에 속죄하는 청순의 여인이다. 이 순간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아름답고 연약한 여인이다. 준태는 정희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충근과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싶다며 결혼식까지 올려준다. 정희에 대한 이러한 양립된 인물 묘사가 투박한 서사적 결함에 불과하다고 지적할 순 있다. 그런데 그것이 결함이라 해도 그 결함을 능가하고 주관하는 기이한 무드가 정희의 출현 때마다 솟아난다는 걸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정희의 기이한 출현과 재출현마다 그 무드가 어김없이 생성된다. 그걸 잠재적 가능성의 무드라고 불러도 될 것인가. 가령 < 왕십리 >에는 앞서 말한 것처럼 두 명의 정희가 출현한다. 천박한 정희, 순수한 정희. <왕십리>는 기승전결을 지닌 내러티브 영화이므로 우리는 이 천박함과 순수함을 한 인물이 지닌 양면적 성격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상식적이다. 하지만 나는 그 두 명의 정희의 출현을 좀 더 비상식적으로 받아들였다. 한 인물의 두 가지 성격이 아니라 한 인물이 가질 법한 삶의 두 가지 잠재적 가능성이 번갈아 출현하는 대목으로 느꼈다. 그 때문에 출현이라고 내내 말하고 있다. 정희가 그녀의 인생에서 가졌을 법한 두 개의 삶의 가능성의 출현인 것이다. 준태는 왕십리로 돌아와 정희라는 한 인물의 두 측면을 만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희가 가졌을 법한 두 개의 삶의 가능성을 차례로 혼란스럽게 겪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준태를 따라 왕십리에 도착한 관객인 우리 역시 혼란에 빠지지 않기란 어려운 상황이다. 마침내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 밤에 준태가 자신의 숙소 방문을 열었을 때 정희는 또 다시 홀연히 출현한다. 충근과 신혼여행을 떠났어야 할 정희가 준태의 방에서 그를 기다린다. 이번에는 누가 찾아온 것인가. 천박한 정희가 온 것인가. 순수한 정희가 온 것인가. 정희의 어느 쪽 삶의 가능성이 온 것인가. 이날 밤만큼은 애매하고 모호해서 확신할 수 없다. 그녀의 자태 그리고 고백의 말들이 후자라는 걸 말해주는 것 같지만 정희는 끝내 준태가 잠든 사이 그의 지갑을 털어 조용히 방을 나선다. 그렇다고 온전히 사기꾼 정희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정희는 이날 밤 자신의 진심을 말한 것 같다. 그녀는 순수했다. 방을 빠져나온 정희는 마침내 새 삶을 다짐하며 이 날의 범죄를 모의한 충근에게도 헤어지자고 말한다. 정희와 정희의 삶은 잠재적 가능성을 짐작할 뿐 끝내 정의될 수 없다.“세월을 거슬러 그때로 돌아갔으면... 이대로 시간이 멎어 버렸으면...”그날 밤의 정희가 준태와의 첫 정사를 떠올리는 장면에서 영화는 그녀를 위한 한 치의 회상 장면도 허락하지 않는다. 애틋한 밤의 이 냉혹한 판단, 이것은 어디에 기인한 것일까. 영화의 도입부에서 준태는 회상 장면을 따라 자신의 주관적 기억을 갖게 되고 자연스럽게 영화적 주체로 상정된 인물이다. 영화는 정희가 그와 같은 방식으로 주관성의 경로를 갖게 되기를 원치 않는다. 그녀의 주관적 기억이 형성되어 그녀 또한 준태와 같은 주체적인 인물로 상정될 때, 우리가 느껴온 그녀의 모호한 잠재적 가능성은 허물어지고 그녀는 정박될 위험에 처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오로지 왕십리라는 기이한 고향의 땅에 출몰하는 가능성의 유령, 가능성의 정희로 머물다 떠나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새해가 밝는다. 애틋한 밤이 지나고 정희는 떠나고 냉혹한 현실의 낮이 준태를 기다린다. 준태는 자신을 짝사랑해온 젊은 호스테스 윤애( 전영선 )를 찾아가 함께 일본으로 가자고 말하려 하지만 오히려 윤애는 티 없이 밝게 웃으며 말한다. 고향 출신의 남자와 맞선을 볼 것이라고. 영화 내내 정희의 과거태로 현존했던 그녀조차 준태를 거부했을 때 비로소 준태의 정착이 결정되고 정희와 윤애가 떠난 자리에 준태가 대신 남는다. 그러니 우리의 가정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될 수도 있다. 시간이 흘러 14년 뒤 정희와 윤애가 돌아와 준태를 만나는 그때에 그들이 매 장면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출현하는 서로 다른 준태들, A라는 준태와 B라는 준태를 만나지 않으리라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일련의 감상의 과정을 겪고 나면 < 왕십리 >에서 왕십리는 순박한 회귀적 고향보다는 흥건하게 무드에 젖은 몽환의 땅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그 때문에 <왕십리>가 임권택 영화 세계의 본류에 속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다. 많이 언급되어 온 한국 문화의 전통성이나 감독 자신이 강조해 온 인본주의 사상은 <왕십리>에서 희미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그러한 희박함이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하는 부분이다. 임권택 영화에 무수하게 출몰하는 어떤 명장면들, 예컨대 돌출적이고 기괴하고 매혹적으로 무질서한 감각적 차원의 명장면들과 연계되는 비밀 통로가 <왕십리>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느껴지기 때문이다. <왕십리>의 길이 이후 임권택이 주력해서 걸어간 길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왕십리>가 지금보다 더 높은 주목과 재평가를 받아야 하는 걸작인 것은 더 확실하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에 대한 논의는 그동안 ‘한국성’ 자체를 탐구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왔다. 그는 자신의 영화에서 한국의 역사, 종교, 예술에 대해 줄기차게 질문했고, 한국의 정체성을 탐구해왔으며 그래서 가장 한국적인 감독이라고 회자되어왔다. 그가 한국적인 것이란 무엇인가와 한국인이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천착해서 빚어낸 한국의 본래성과 정체성은 동학혁명과 분단의 역사, 불교라는 종교, 그리고 판소리와 한국화라는 예술을 제 속성으로 하고 있다. 특히 1980년대부터 임권택 감독은 < 태백산맥 >, < 개벽 >, < 만다라 >, < 아제아제 바라아제 >, < 서편제 >, < 춘향뎐 > 등을 통해 ‘한국성’을 본격적으로 탐구해왔다. 특히 외국 비평가들과 지식인들은 1980년대 이후 임권택 감독의 일련의 영화에 열광했고, 국내 학자나 평자들 또한 이 시기의 임권택 영화에 가장 많은 관심을 보여왔다. 그의 영화는 국경 밖에서는 이국적인 문화에 대한 관심과 색다른 취향을 자극했고, 국경 안에서 그의 영화는 점점 더 인터내셔널해지는 시대에 필연적으로 요청되는 내셔널의 장벽을 굳건하게 마련해주고 있다는 점 때문에 환영을 받았다. 따라서 임권택 감독의 영화가 한국영화 역사에서 갖고 있는 존재감은 만만치 않다. 그의 영화는 한국영화의 역사를 민족주의, 인본주의, 사실주의의 틀거리로 읽게 해주는 원형 텍스트와 같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로 인해 한국영화의 역사는 다른 국가, 특히 식민지와 전쟁의 경험을 지닌 국가의 영화사와 ‘다르게’ 기술할 수 있는 튼실한 지반을 갖게 된 것이다. 약 100편에 달하는 그의 영화를 따라 읽으면 한국영화의 역사가 보인다는 말이 과장이 아닐 것이다. 근래 들어 ‘ 임권택 영화’는 이러한 큰 그림 속에서 읽히는 데에서 나아가 장르영화의 맥락에서 활발하게 재발견되고 있다. 이 맥락에서 다시 읽히는 그의 영화는 주로 그가 먹고살기 위해 만들었다는 그의 초기 영화와 영화법 및 정책에 편승해서 만들었다는 습작 영화들이다. 초기의 그의 영화는 전쟁영화와 액션영화 장르에 집중되어 있었고,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그는 새마을 영화와 반공영화 등 한국에 독자적인 시대 장르인 국가 프로파간다 영화를 만든 바 있다. 이 시기 그의 영화의 특징을 꼽자면 ‘도식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감독으로 생존하려는 그의 몸부림과 국가 이데올로기에 철저하게 순응해서 그 생존을 연장하려는 그의 의지가 만들어낸 특징이라고 봐야 할 듯하다. 이렇듯이 임권택 감독의 영화라는 텍스트는 가장 한국적인 감독이자 가장 세계적인 감독으로 국경 밖에 알려진 예술영화 계열과, 국가 이데올로기를 알리는 프로파간다 영화를 포함해서 철저하게 오락과 순응을 지향한 대중영화 계열로 양분된다. 그의 영화에 대한 대부분의 작가주의 독해들은 후자의 계열에서 전자의 계열로, 국경 안에서 국경 밖으로 나아가는 연대기적 수순을 따라 그의 영화를 읽고 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오락영화를 만들다가 작가 개인의 자각과 각성에 의해서 비로소 세계에 어필할 수 있는 한국적 예술영화를 만들게 되었다면서 그의 영화의 어긋나는 지점을 서둘러 봉합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이 두 계열 안에서 혹은 이 두 계열 간의 모든 함수가 깨지는 곳에 놓인 그의 영화를 간과하기 쉽다. 그곳에 놓인 영화에는 그가 의도적으로 만들려고 하는 그래서 허구적인 ‘한국성’ ‘한국인다움’ ‘한국의 정체성’이 불안정해지고 분열을 일으킨다. 프로파간다 영화와 장르영화의 도식성 또한 사라진 그 자리에 들어앉은 것은 종교나 예술도 아니고, 과거도 아니며 장르도 아닌 차가운 ‘현실’이다. 시대의 불안정한 대기를 그대로 마시고 어떠한 미사여구 없이 그대로 내뱉는 것, 그곳에서 흥행을 위하고, 세계적인 감독의 명성을 위하고, 국가를 위해 취했던 모든 목적성을 상실한 ‘무목적성의 목적’을 띤 그의 영화가 출현한다. < 길소뜸 >(1985)이 그 무목적성의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영화라면 < 왕십리 >(1976)는 이 계열의 임권택 감독 영화 중에서 가장 알려지지 않은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두 편의 영화는 임권택 감독이 소위 ‘아줌마’ 라고 폄하되는 한국의 중년여성을 ‘근기(根氣)’의 주체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두 편의 영화에서 공통되게 드러나는 ‘여성의 배신’은 현실에 대해 품을 법한 억지스러운 환상과 희망을 도려내는 메스와도 같은 구실을 하고 있다. < 왕십리 >는 < 길소뜸 >과 비교해보자면 대중영화의 통속성과 장르영화의 도식성이 많이 묻어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인 준태( 신성일 )는 깡패이며 준태가 찾은 새로운 연인인 윤애( 전영선 )는 호스테스라는 점에서 당대의 호스테스물과 액션영화 장르에 나오는 인물의 전형성을 따르고 있다. 또한 잦은 플래시 백과 15년 정도의 긴 스토리 시간 등을 갖고 있다는 점 또한 당시 영화의 지배적인 형식을 벗어나 있지 못한 게 사실이다. 준태는 죽은 아버지의 유산을 양어머니를 비롯한 아버지의 재혼 가족에게 모두 넘기고 고향 왕십리를 등진 채 일본으로 건너가 야쿠자 생활을 한다. 14년 만에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준태는 과거의 고향을 기억하려고 애를 쓴다. 자신의 기억을 이어서 정체성을 찾으려 하는 준태는 14년 전에 헤어진 연인인 정희(김영애)를 찾아 헤맨다. 과거를 등지고 현재 시제로 완벽하게 전환되는 중반부에 정희는 말없는 대상에서 말하는 주체로, 피해자에서 사기꾼으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결국 정희는 준태에게 ‘내게 주어진 생활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 그것 자체가 진실이 아닐까’ 라는 말을 남긴 채 준태의 지갑을 훔친 후 택시 안에서 오열한다. 한편 호스테스인 윤애는 선을 보기 위해 고향인 시골로 내려간다. 정희가 은유하는 과거의 ‘순수의 시대’는 사라졌고, 윤애는 현재의 삶의 조건을 바꾸기 위해 떠난다. 남은 건 과거에 지체되어 현실을 부인하고 있는 준태뿐이다. 경제개발계획이 발표된 시기에 왕십리를 떠나 유신헌법으로 인한 독재가 극에 달할 즈음에 돌아온 준태의 ‘잃어버린 14년’과 당구장 아저씨( 최불암 )와의 마지막 장면은 정치적 알레고리로 이 영화를 읽게 만들지만, 동시에 이 영화는 당대의 모든 목적 지향적인 경향들, 인텔리가 중심이 영상시대의 예술영화 지향성과 국가 주도의 프로파간다적 지향들, 스크린 쿼터를 채우는 영화들의 오락 지향성을 그야말로 내려놓은 영화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영화는 묻는다. 순수했던 과거와 피폐해진 현재 사이에서 정지되어 있는 1976년 한국에서 도대체 무엇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를 말이다. 임권택 감독의 국경 안과 국경 밖의 영화 그 사이에는 시대의 불안정한 대기가 그렇게 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