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 감독
- 정지우
- 제작년도
- 2012
- 출연
- 박해일, 김무열, 김고은, 정만식, 박철현, 장윤실, 정서인, 김경일, 박진우, 백현진, 안민영, 임미연, 김민재, 강덕중, 이고은, 최은미, 배수현, 이봉규, 강은경, 김서경, 곽자형, 유승우, 이후빈, 오세호, 전소영, 윤감용, 나정수, 이요한, 임미경, 이정옥, 이혜정, 김연준, 김재준, 김규성, 소수현, 임형태, 김봉수, 김국창
지루한 영화를 보는 것만큼 우리를 소외시키는 경험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영화는 몰입감과 소외감을 동시에 느끼도록 함으로써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고, 길을 잃게도 하며, 끝내 좌절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혼란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두 가지 중 하나이다. 첫 번째 스토리를 해석하는 인지 활동에 몰두하는 것, 두 번째 혼란을 유발하는 퍼즐을 풀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혼란 자체를 경험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혼란에 투항할 때 발생하는 쾌감에 자신을 의탁하는 것이다. 혼란의 출구를 찾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일 것이나, 때로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이동해보는 것이 즐거움을 제공할 수도 있다. 방향감각의 상실은 모 아니면 도의 문제가 아니며, 우리가 어떤 종류의 혼란에 처해 있는지에 주목하는 것이 영화의 성취를 이해하는 데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해피엔드 >(1999)는 이와 같은 관람의 속성 안에서 혼란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엿보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외환위기가 조성한 환란의 무드 아래 실업과 파산, 자멸의 사연들이 곳곳에 넘쳐나고 세기말의 불확실성과 새로운 세기에 대한 불안이 교차하던 20세기 말 한국 사회의 공기를 배음으로 깔고 있다. 성별 위계질서의 변화, 여성 권리의 부상, 근대적 국가 정체성과 남성성에 대한 회의(懷疑), 가부장제의 위기 따위로 요약되는 당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징후들을 드러낸다. 영화의 도입부는 불륜과 추리, 애틋한 로맨스를 골자로 하는 대중 소설에 탐닉하는 남자 서민기(최민식)를 등장시켜 두 가지 중추적인 플롯 포인트를 설정한다. 플롯의 핵심을 이루는 사건은 민기의 부인인 최보라(전도연)와 그녀의 애인 김일범(주진모), 그리고 민기의 뿌리뽑힌 관계 사이에서 벌어진다. 민기는 (아마도) IMF의 여파 속에 실직한 뒤 딸을 돌보고 공원에서 소설을 읽는 한가로움에서 보람을 느끼는 전직 은행원이다. 민기의 아내 보라는 어학원을 운영하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으로 군대에 징집되어 몇 년 전에 헤어진 전 남자친구 일범과 혼외관계에 빠져 있다. 처음에는 보라와 민기를 묶는 불운한 결혼을 제외하고는 인물들이 거의 교차하지 않는다. 보라와 일범은 열정적인 연애와 사진 촬영에 몰두하면서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민기는 자신의 도피처인 헌책방에서 매일 탐정 소설과 로맨스 소설을 읽는 것에서 성취감을 느낀다. 민기가 탐닉한 세계는 보라와 일범이 누리는 세계와 닮아있는데, 우리가 영화를 통해 전달받게 될 사연은 바로 이 두 장르(탐정 + 로맨스)를 결합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서로에게 매료된 불륜 커플이 섹스 이상의 것을 갈망하는 동안 민기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게 되면서 점진적으로 파국의 분위기가 고조되어 간다. 조용한 탐정의 역할을 수행하던 민기가 평정심을 잃게 되는 이유는 보라가 일범을 만나기 위해 아이에게 수면제를 탄 우유를 먹였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부터이다. 민기의 상처 난 가부장의식이 발동하는 순간 살의도 피어난다. <해피엔드>의 전체적인 톤은 무기력하고 조용히 인간을 갉아먹는 메스꺼움 같은 불안, 때때로 폭발적인 폭력으로 표출되는 비극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극중 보라가 지저분한 일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전도연이 캐릭터에 부여한 감정적 깊이 때문에 우리는 그녀에게 동정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보라는 항상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반면, 민기는 금욕적이고 심지어 시들어있는 모습이다. 단란한 가족의 소중함을 알고 있지만 보라는 새로 찾은 사랑의 포로가 되었고, 일범은 두 번째 이별을 상상할 수 없다. 민기는 이미 파탄이 난 부부관계에 큰 미련이 없지만, 가정을 파괴할 생각이 없으며 보라가 가족의 안위를 해칠 행동을 했을 때 분노한다. 어떤 캐릭터도 완전히 잘못했다고 말할 수 없고, 그들의 행동이 완전히 정당화되지도 않는다. 모두 현실에서 벗어나 섹스와 혼외정사, 사진 또는 책을 통해 자신만의 위안을 찾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인물들이 거짓에 의존할 뿐 아니라 그들의 행동은 거짓에 의해 자극을 받는다. 하지만 환상(거짓)에 오래 빠져들수록 현실의 위기는 깊어진다. ‘거짓의 위기’를 통과하는 이 인물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해피엔드>는 어떤 의미에서 경제적 몰락이 결혼, 성 역할, 고용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사회적 논평이자 심리적 황폐화, 그리고 일부 관객들에게는 가슴 아픈 로맨스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야기이다. 이와 관련하여 보라가 떠다니는 풍등을 붙잡으려 애쓰는 <해피엔드>의 몽환적인 라스트 신은 주목할 만하다. 이 장면은 한국영화 사상 가장 아름답고 수수께끼 같은 결말 중 하나이다. 클라이맥스에서 엔딩으로 이어지는 20여 분의 시퀀스는 이전까지 느슨하게 얽혀 있던 서사의 실타래를 태피스트리로 묶어내려는 시도로부터 도리어 멀어진다. 이 신으로 넘어옿기 전 민기는 잔혹한 방식으로 보라를 살해했다. 이야기 안에서 처음으로 응집력 있는 흐름이 발생하고 가시적인 잔학 행위가 벌어지는 국면이다. 촘촘한 형식과 정서적 강렬함을 가진 이 영화의 모호한 결말 구조는 곱씹어볼 만한 여지를 남긴다. 이 혼란스러운 이중 결말은 먼저 민기가 보라를 살해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뒤에는 보라의 죽음을 의심하게 하는 호환되지 않는 결말이 이어진다. 혼란, 우발성, 자의성에 기초한 정지우의 영화를 돌이켜보면 이 이중 결말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연결고리를 미묘하게 도입하여 관객의 반응을 수정하게 만드는 것에 흥미를 느끼는 감독이다. 여기서 정지우는 실패한 관계의 잔해 위에서도 낙관적인 미래를 갈망하는 사람들에 관한 탁월한 미장센을 전개한다. 거울이 놓인 화장실에서 민기가 ‘장미빛 인생’이라고 적힌 성냥 케이스 안에 보관된 은반지를 변기 속에 던져버리고 폴라로이드 사진 안에서 행복하게 웃는 보라의 이미지에 불을 붙이는 순간, 녹아내리는 모양으로 타들어 가는 사진은 아파트 창가에서 담배를 피우는 보라의 이미지로 오버랩된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보라의 시점으로 주황색 풍등이 바람이 실려 떠오르고 걸쇠에 잠시 걸려 보라의 눈앞에 머무르던 풍등이 다시 하늘로 솟아오른다. 손을 뻗어 그것을 잡으려는 보라의 제스쳐에도 불구하고 풍등은 잡히지 않는다. 이어지는 쇼트에서 온화한 햇살 아래 아이와 함께 잠들어있던 민기가 깨어난다. 보라는 그의 곁에 없는 것 같다. 민기는 보라를 살해한 것인가 또는 풍등을 잡으려는 보라의 애절한 몸짓은 민기의 꿈인가? 정지우는 확실히 혼란과 방향 감각의 상실에 관심이 있는 작가이다. < 사랑니 >(2005)와 < 모던 보이 >(2008), < 은교 >(2012)로 이어지는 필모그래피는 자의적이고 우발적인 사건들에 직면함으로써 방향 감각을 잃는 인간에 대한 탐구로 요약될 수 있다. <해피엔드>의 결말이 야기하는 혼란과 방향 감각 상실은 영화의 의미와 방법 모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련의 신들의 교환은 현실과 바깥을 왕래하면서 이야기의 목표가 성취되었다는 안도감을 주지 않는다. 결과 없는 원인, 울림 없는 행동, 긴장의 끈이 풀려버리는 이 결론은 민기가 읽고 있는 소설과 비슷하다. 민기의 살인 행각과 소설은 모두 허구이지만 죽음은 실재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가 그려내고자 하는 세계를 관객들이 모두 알 수 없다는 사실은 예술이 삶을 모방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개념을 가지고 노는 이 영화의 방식이다. <해피엔드>를 한국 사회가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남성의 불안과 폭력에 대한 비판적인 해부도를 제시한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정교한 카메라 워크와 편집은 여성 캐릭터가 다양한 비판적 관점을 대변할 수 있게 함으로써 사실, 진실과 허구가 뒤섞인 후기 자본주의 도식 아래서 곪아 터진 분노의 초상화를 통해 남성 관음증의 폭력성과 여성의 새로운 주체성에 대처하지 못하는 남성의 무능력을 그려낸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내러티브와 비유적 전략은 허구의 인물에게 우연적인 것이 반드시 관객에게 자의적인 것으로 경험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따라서 방향 감각 상실은 영화의 에너지를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증폭시켜 우리를 새로운 차원으로 이동하게 한다. 이보다 더 생산적인 활동이 있을까? (관련글) 1. 2000년 1월 1일 0시, 거꾸로 가는 기차 - <박하사탕>(1999), 2021.04.16. 2. 넥타이로 총을 겨누었을 때 - <올드보이>(2003), 2021.05.14. 3. 요리사는 어디로 가는가? - <오!수정>(2000), 2021.06.04. 4. 고반장은 이렇게 말했다 - <논픽션 다이어리>(2013), 2021.07.09. 5. 머리를 자르고 새 옷을 입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무산일기>(2010), 2021.08.10. 6. 엄마의 침통은 죄를 기억한다 - <마더>(2009), 2021.09.03. 7. 수인동성동형론(獸人同性同形論)에 따르면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2021.10.15. 8. 유능한 이야기꾼은 진실이 거기 없다는 것을 잊도록 하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 <버닝>(2018), 2021.11.12. 9. 죽음의 한 연구(硏究) - <파산의 기술>(2006), 2021.12.10. 10. 사마귀가 사마귀를 먹다 - <춘천, 춘천>(2016), 2022.01.07. 11.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우리 이러지 말아요 - <극장전>(2005), 2022.03.08. 12. 철없는 엄마와 파란만장한 남자들, 그리고 엔카 가수 - <그때 그사람들>(2004), 2022.04.06. 13.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이야기 - <형사 Duelist>(2005), 2022.05.24. 14. 철의 신이 수장(水葬)시킨 고래의 추억 - <철의 꿈>(2013), 2022.06.16. 15. 골목길을 저절로 움직이는 자전거 - <풍경>(2013), 2022.07.14. 16. 일자로 아뢰리다 - <춘향뎐>(2000), 2022.08.11. 17. 연결연결, 믿음의 벨트 - <기생충>(2019), 2022.09.08. 18. 아마도 악마가 - <곡성>(2016), 2022.10.20. 19. 말도 안돼 기분 나쁜 그 제목은 나쁜 영화 - <나쁜 영화>(1997), 2022.11.25. 20. 황야의 울부짖는 개 - <복수는 나의 것>(2002), 2022.12.14. 21.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죠. 하지만 그러한 힘을 가지고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 <88/18>(2018), 2023.01.04. 22.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진실은 없다 - <파수꾼>(2010), 2023.03.03. 23. 이미지의 확실성과 증거력에 대한 회의 - <김군>(2018), 2023.04.05. 24. 범죄의 요소 - <괴물>(2006), 2023.05.17. 25. 투명인간이 되는 법 - <빈집>(2004), 2023.07.05. 26. 어차피 우리는 유령이 될 거예요 - <후쿠오카>(2019), 2023.08.30. 27. 생라면, 참치 통조림, 라이터, 휴지, 그리고 사시미칼 - <넘버3>(1997), 2023.10.05. 28. 풍등(風燈)은 날아가고 - <해피엔드>(1999), 2023.10.18. 29. 504호, 고아, 사라진 애, 시체... 이제 마지막 남은 얘기 하나 - <소름>(2001), 2023.11.07. 30. 열여덟, 바람의 색깔 - <회오리 바람>(2009), 2023.11.20. 31. 가면고(假面考) - <반칙왕>(2000), 2023.12.11. 32. 문은 두 방향으로 나 있다 - <두 개의 문>(2012), 2023.12.28. 33. 지옥의 복도 - <아수라>(2016), 2024.01.08. 34. 삼(3)의 몰락 - <성적표의 김민영>(2021), 2024.02.05.
탐정으로서의 장녀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을 굳이 알 필요가 있을까. 아니, 엄마에 대해 비밀도 오차도 없이 모두 다 알고자 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사랑하건 혐오하건 엄마는 엄마다. 그래서 자녀들은 종종 엄마를 철저히 현재형으로 단순화한다. ‘우리 가족’으로 포섭되기 이전의 엄마의 삶이란, 종종 막연한 두려움을 낳는다. 나와 내 아버지만 없었다면 혹시 그녀의 삶이 더 행복하지는 않았을까? 가족의 풍경이 지옥이 될 때, 이 질문은 화살표의 방향을 돌연 바꾸어 놓기도 한다. 부모가 없다면, 가족만 없다면, 내 삶이 달라지지 않을까? 그래서 곧 성년을 앞둔 < 결백 >( 박상현 , 2018)의 주인공 정인( 신혜선 )은 그 나이대에 누구나 그러하듯이, 엄마를 탐구하는 대신 자기 삶의 돌파구를 택한다. 야반도주다. 폭력적인 아버지, 자신보다 언제나 먼저인 남동생, 딸의 대학 진학을 반대하는 아버지에게 너무도 무력한 엄마. 이 모든 것들로부터 도망친다. 십여 년 후 그는 서울에서 잘 나가는 대형 로펌의 에이스 변호사로 자리잡는다. 아무도 정인의 과거를 모르고, 알려 들지도 않는데, 그러자 이번엔 고약한 운명이 다시 고개를 든다. “사건 좀 가려 받아요”라고 로펌 대표에게 따끔한 일침을 놓는 냉철한 변호사로 하여금, 회의 도중 아무렇게나 틀어놓은 뉴스 화면에서 엄마의 얼굴을 보게 만드는 것이다. 늙고 병 든 엄마는 여전히 그대로인 그 고향에서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뤘고, 심지어는 장례식에서 벌어진 농약 막걸리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당했다. 번쩍이는 고급 세단의 문이 열리고 칼주름이 잡힌 바지 정장에 힐을 신은 여자의 발이 내려온다. 낡은 시골집 대문으로 이어지는 길은 축축한 진흙 위에 군데군데 돌이 솟아나 있어 혹여 구두굽이 잘못 걸리지는 않을까 위태롭다. 정인의 귀환을 알리는 첫 이미지는 세월이 흘러 그가 얼마나 고향과 이질적인 인물이 되었는지 간명하게 보여준다. 부연하면 정인은 불편한 존재다. 폐쇄적인 시골 마을에서 농약 막걸리 살인 사건은 그 자체로 파열음인데다, 사람들을 탐문하고 다니는 서울 변호사는 성마른 불안과 위협으로 다가온다. 정인의 직업이 변호사라는 사실은 영화 장르를 범죄 스릴러이자 법정 드라마로 이끄는 상업영화의 검증된 장치이기도 하겠으나, 앎의 권력에 관한 젠더 이슈와 연계했을 때 생성되는 의미들과 함께 비로소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10대의 정인에게 알콜 중독으로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가 가장 큰 적대자였다면, 귀환한 변호사 정인에게는 지역의 권력자 추시장( 허준호 )이 나타난다. 그 사이에서 정인의 엄마 화자( 배종옥 )는, 이런 표현을 쓰기 싫지만, 남편과 추시장이 지배하는 세계의 피해자로 붙잡혀 있다가 어느새 미쳐버렸다. 탈출하지 못한 자가 망각(치매)을 택했다는 사실만큼 가슴 아픈 단서가 있을까. <결백>은 정인의 직업과 화자의 병을 장르(스릴러)와 주제(젠더 권력)적 측면에서 모두로 적절히 활용하는 영리함을 보여준다. 엄마의 진술에 의지할 수 없다는 불가항력적 상태가 정인에게 변호사 본연의 책무 이상으로 탐정에 가까운 역할을 요구하고, 정인은 점점 더 많은 것을 알아간다. 보태자면 용의 선상에 있는 추시장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막걸리 농약 사건의 피해 당사자라는 점 또한 정인에게 오히려 더 적극적인 앎의 기회를 준다. 그들 중 일부가 목숨을 잃거나 병원에 입원한 상태이고 추시장 캐릭터 역시 그의 노쇠함이 얼마간 부각된다. 어떤 시대가 끝나려하고 있고, 정인은 그 어둠이 맥없이 덮히기 전에 밝혀내려는 것이다. <결백> 개봉을 앞두고 박상현 감독을 인터뷰 차 만났을 때, 감독은 영화 속에 등장한 소품을 굿즈로 제작해 내게도 선물로 건넸다. 하나는 영화 속에서 범인을 쫓는 중요한 단서로 쓰이는 노래방 라이터이고, 또 하나는 추시장과 그의 패거리들이 젊은 시절 바닷가에서 물놀이 중에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이다. 라이터 디자인에서 베어나오는 지독히도 한국적인 무언가가 재밌었고, 영화 속에서 부패의 무리로 그려지는 남자들이 보내는 즐겁고 빛나는 한 때의 모습이 아이러니했다. 이 두 개의 기호만으로도 정인의 세계가, 정인의 고향 마을이 뜻하는 '구시대'가 어떤 것인지 감지되는 듯 했다. 영화가 추시장 무리의 젊은 한 때를 비추는 이 사진은 비출 때, 이런 질문이 뒤따른다. 안으로 그 어떤 추악한 모의를 꾸미더라도 밖으로는 명명백백 해맑은 소년성을 내보일 수 있는 그들의 자신감은 어디에 기인하는가. 폐쇄적인 시골 마을에서 펼쳐지는 <결백>은 그들이 풍미했던 나날을 한마디로 ‘은폐’의 시대라고 말하는 것 같다. 농촌개발 정책과 함께 부와 권력의 획득을 꿈꾼 이들은 암암리에 고급 정보를 공유하며 살인 모의도 서슴지 않는다. 화자는 그 과정에서 영문도 모른 채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 정인에게는 출생의 비밀을 남겼다. 문학평론가 오은교는 남편 가족의 제사 풍경을 서늘하게 써내려간 강화길의 소설 <음복>을 해설하며 “가부장이라는 권력이 절대적인 사회에서 앎은 온전히 젠더화되어 있다”(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여성주의 가족 스릴러', 44p, 문학동네)고 썼다. <음복>에서는 남자가 가족 내부의 첨예한 긴장 관계에 무지할 권리를 갖고, 여성은 모든 것을 너무 많이 알게 되어 괴로운 감정 노동의 부역자로 자리한다. <결백>은 반대로 부와 권력의 관점에서 오로지 남성들 사이에서만 공유되고 은폐되는 정보들과 그로 인한 범죄를 짚는다. 그 과정에서 배제된 여성, 망각과 사적 복수를 택한 여성, 도망쳤다가 힘을 길러 다시 되돌아온 여성이 차례로 등장한다. 배제와 은폐로 집약되는 구시대의 작동 원리를 끊어내려는 정인은 특이하게도, 자기 출생의 비밀 자체에는 그다지 타격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정인과 화자의 눈물겨운 접견 장면에서 신파조의 연출이 개입하기는 하지만, 그 절절함은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엄마의 삶에 대한 위로와 연민의 감정이지 잃어버린 아버지에 대한 통한이 아니다. 오히려 정인은 그동안 자신의 진실을 드러내놓고 향유할 수 없었던 엄마에게 뒤늦게 서사를 쥐어줌으로써 차라리 후련한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연출자의 선택과 집중이라면 그 경제성의 동의하고, 만약 다른 의미가 있다면 정인을 과거의 공동체로부터 분리하려는 의도이길 바란다. 대중영화에서 여성 캐릭터가 천천히 진화해가고 있다는 증거로서 <결백>은 꽤 흥미로운 지표로 간주될 영화다. 구시대의 쇠사슬을 끊기는 했지만 사법적 정의에 의하면 어느 쪽도 결백한 사람이 없다는 마지막 시퀀스의 서늘함도 유효하다. 정인의 시대 또한 분명히 하나의 과도기일 것이라는 물러서기, 그리고 다음 번에는 더 대담하고 자유로운 K-장녀가 등장할 것이란 기대가 <결백>의 크레딧에 미덥게 따라붙는다.
내 삶에서 은교의 시간이 언제였는지는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이적요의 시간이 조만간 혹은 확실히 언젠가는 닥칠 거라는 걸 안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라고 힘겹게 그러나 단호하게 말하던 그 노인인 듯 청년 같던 그 남자가 떠오른다. 어느 날 그의 삶 속으로 은교가 왔다. 그리고 세상이 열렸다. 일흔의 ‘국민시인’ 이적요( 박해일 )의 인생에 불쑥, 열 일곱 여고생 은교( 김고은 )가 뛰어든다. 은교의 등장으로 인해 ‘커다란 관’ 같던 시인의 집은 여름 숲으로 바뀌고, 느려져가던 노인의 맥박은 다시 힘차게 고동친다. 하지만 절대적인 존경과 사랑으로 평생 스승 이적요의 곁을 지키던 소설가 서지우( 김무열 )는 은교의 등장이 탐탁지 않다. 은교의 깃털 같은 발걸음은 두 남자의 관계에 균열을 일으키고, 은교에 대한 마음을 담은 시인의 노트는 서지우의 거짓 명성을 흔드는 일대 사건의 발화점이 된다. < 은교 >는 박범신 작가의 소설 <은교>(문학동네)를 < 해피엔드 > < 사랑니 >의 정지우 감독이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이다. 소설과의 유사도를 묻는 질문은 당연한 수순이지만 동시에 무의미하다. ‘거울’이 ‘별’이 ‘연필’이 각자에게 다른 의미를 가지듯 박범신의 ‘은교’와 정지우의 ‘은교’는 다를 수밖에 없다. 대신 400페이지가 넘는 동명 소설은 영화 <은교>의 견고한 뿌리이자 절대적 ‘시제’로 자리 잡는다. 가림없는 노출신과 적나라한 섹스신은 우리 모두에게 있는 그것들이 그들에게도 존재함을 보여주는 목적으로 배치된다. 가슴과 성기 그리고 사랑과 욕정, 그것은 여고생에게도 명망 있는 노시인에게도, 젊음에게도 늙음에도 공평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박범신의 소설 「은교」가 ‘납으로 된 옷’을 입고 죽음을 향해 걸어가던 시인 이적요의 폭풍 같은 사랑과 쓸쓸한 소멸을 후일담으로 회고한다면, 정지우 의 영화 < 은교 >는 이적요와 은교 그리고 서지우의 관계를 현재적 멜로드라마로 풀어놓는다. 복원 될 길 없는 젊음, 공유할 수 없는 관계의 역사, 훔칠 수도 따라 잡을 수도 없는 재능. 이적요와 은교과 서지우는 각자 서로를 질투하고 욕망하고 또 사랑하며 낭떠러지를 향해 뒤엉켜 굴러간다. 또한 ‘시인의 노트’ ‘서지우의 일기’ ‘변호사의 목격담’이 교차되는 소설 속 ‘은교’가 세 남자에 의해 묘사된 ‘대상’이라면, 영화 속 은교는 능동적인 화자가 되어 제 목소리를 낸다. 극 초반을 경쾌하게 이끄는 유머나 후반의 드라마 역시 은교의 행동과 자각을 통해 이루어진다. 입구를 발견한 것도 출구를 찾는 것도 은교다. 너무 늦게 쓰여진 노인의 연서. 그것을 너무 일찍 읽어버린 소녀. 답장 없는 편지를 평생 써왔던 미련한 청년. 그들에게 불어닥친 짧지만 강렬했던 폭풍이 잦아든 자리에 남는 것은 쓸쓸함과 외로움이다. 바로 뒤에 있는 사랑을 차마 뒤돌아 안지 못하는, 본능을 이기는 슬픈 체념이다. 잘 가라, 은교야. 잘 가라, 더는 나의 것이 아닌 청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