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파이언스
- 감독
- 에드워드 즈윅
- 제작년도
- 2008
- 출연
- 다니엘 크레이그, 리브 쉐레이버, 제이미 벨, 알렉사 다바로스
한 가지 사실을 먼저 환기해야 할 것 같다. 로베르트 비네의 <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은 첫 번째 표현주의 영화가 아니다. 순서대로 따라가야 한다면 1913년 파울 베게너의 < 프라하의 학생 >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미 이 영화에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에서 보여줄 거의 모든 것을 선취하고 있다. 에드가 앨런 포의 단편 소설과 <파우스트>를 느슨하게 각색한 시나리오, 도플갱어의 등장, 빛과 그림자를 이용한 명암대조법(chiaroscuro) 촬영, 환상과 무의식의 경계 사이에서 오가는 진행. 그러면 반문할 것이다. 그러면 왜 영화사의 순간을 건너뛰었나요. 그렇게 되면 우리는 독일 영화사를 체계적으로 설명해야 할 뿐만 아니라 표현주의에 대해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칸딘스키, 파울 클레, 프란츠 마르크,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것이다. 파울 힌데미트, 쇤베르크, 알반 베르크. 물론 그 배경에는 저 멀리는 독일 낭만주의가 자리 잡고 있고, 배경에는 바이마르 문화가 음산하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몇 번이고 영화사의 섬광 같은 순간으로 뛰어들고 싶다고 말했다. 내 목표는 체계적인 영화사를 서술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사에는 가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전혀 훌륭하지 않다. 이 영화를 연출한 로베르트 비네는 영화사에서 이 영화 단 한편으로만 기억된다. 그런데 오히려 그래서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영화사의 섬광이 되었다. 일차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하고 폐허가 된 고향으로 돌아온 칼 마이어와 한스 야노비츠는 두 사람은 괴담에 가까운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썼다. 모두 6개의 막(幕)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는 공원 벤치에서 시작한다. (이미 모두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마지막에 스포일러가 있다. 원치 않는다면 여기서 다음 문단으로 건너뛰기를 바란다) 한 청년이 곁에 앉아있는 노인에게 그 앞을 지나간 여인이 자신의 약혼녀라고 소개한다. 그러면서 긴 이야기를 한다. 청년과 그의 친구는 약혼녀를 사이에 놓고 선의의 경쟁을 하는 중인데 마을에 칼리가리 박사라는 사람이 자신의 조수 체자레를 이끌고 나타난다. 칼리가리 박사는 체자레에게 최면을 걸어서 예언을 요구한다. 체자레가 죽음을 예언하면 다음 날 그 사람은 누군가에게 살해를 당해서 발견된다. 청년은 이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칼리가리 박사와 조수 체자레를 뒤쫓는다, 그리고 그들의 은신처인 정신병원에까지 따라간다. 거기서 알게 되는 건 청년이 정신병원 환자라는 사실이다. 이 각본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독일 영화사들의 경제적 연합인 Ufa에 소속되지 않고 독립적인 영화사 데클라(Decla)를 운영하던 에리히 포머였다. 그는 다른 영화사들과 다른 무언가 새로운 것을 원했다. 그게 무언지는 모르지만 새로운 각본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이 시나리오에서 그것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에리히 포머와 두 명의 시나리오 작가 사이에서 의견 일치를 본 것은 아니다. 제작자 에리히 포머는 돈을 벌기를 기대했고, 칼 마이어와 한스 야노비츠는 자신들이 예술적인 무언가를 썼다고 믿었다. 이 시나리오의 세트를 지어야 했고, 그때 프라하에서 온 세트 디자이너 알프레드 쿠빈에게 제안했을 때 관심을 보였다. 이 도시에서 공무원 프란츠 카프카가 퇴근하면 밤마다 소설을 쓰고 있었다는 생각을 함께 떠올려 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에리히 포머가 제작비를 받아들고 일부만 세트를 짓고 배경은 그림을 그려서 대신 하자는 제안을 했다. 회의는 지지부진하게 진행되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프리츠 랑이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을 찍었을 것이다. 프리츠 랑은 이 영화의 테이블에서 빠져나갔다, 영화사의 참으로 아쉬운 순간이다. 하지만 좋은 소식도 있다. 배경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슈트룸' 그룹의 헤르만 바름이 가세하였다. 혼자서 그 많은 벽화(!)를 그릴 수는 없었다. 그의 동료인 발터 뢰리그와 발터 라이만이 함께 작업하였다. 그들은 이 세트를 그리면서 자신들의 '표현주의' 그림 속을 몽환적인 시나리오의 영화가 산책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에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까지 자신들이 그린 그림은 미술관의 벽에 걸려서 멈춰 서 있었다. 이제 그림 속을 미친 영화가 최면에 빠져 유괴를 하고 살인을 저지르면서 홀린 듯이 돌아다니기 시작할 것이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을 위한 세트 제작을 준비하면서 참고한 영화는 아벨 강스가 1915년에 연출한 실험영화 <튀브 박사의 광기>였다. 아벨 강스는 이 영화에서 오목렌즈와 볼록렌즈를 이용한 '요술 거울의 방' 효과의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알프레드 쿠빈과 헤르만 바름은 렌즈에 의한 이미지 왜곡을 만들어내는 대신 세트 자체를 왜곡해서 디자인 하고 그걸 바탕으로 벽에 그림을 그려나갔다. 제작비를 절감하려는 에리히 포머의 결정과 그 한계 안에서 세트를 자신들의 인스톨레이션(이 도착도 하기 전에 그런 미술관)처럼 만들어버린 세트 디자인 팀은 그저 불합리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을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 차원으로 갑자기 도약시켰다. 이제까지 꿈속에서 만나는 불안과 두려움은 문장 속에 있거나 그림을 바라보면서 상상해야만 했다. 그런데 지금 그 이미지가 펼쳐지고 꿈틀거리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관객들이 본 것은 기기 묘묘한 이야기, 액자 형식의 서사. 빛과 그림자. 굴곡지어지고 왜곡된 세트, 그 사이를 돌아다니는 배우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영화가 갑자기 내면의 형상 안으로 들어와 버린 것이다. 이제까지 영화는 현실을 재현하는 데서 멈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가 영혼의 삶에까지 밀고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었을까. 영화는 역사를 예언하는 능력이 있었다. 영화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멈추지 않으면 다음에는 현실에서 마주치게 될 것이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을 찍고 있을 때 빈에 있던 프로이트는 "(...) 어떤 한 존재가 겉으로 보아서는 꼭 살아있는 것만 같아 혹시 영혼을 갖고 있지 않나 의심이 드는 경우, 혹은 반대로 어떤 사물이 결코 살아있는 생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연히 영혼을 잃어버려서 영혼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드는 경우"(정잔진 옮김) 에 관해서 정식화시킨 <친숙한 낯섦(Das Unheimliche, Uncanny)>를 발표했다. 한 가지를 더 부언해야 할 것 같다. 아돌프 히틀러는 그해 국가방위군의 명령으로 독일 노동자당을 감시하기 위해 위장 가입하였다. 독일 노동자당은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이 되었다. 간단하게 줄여 부르는 말. 나치 정당. 이 모든 일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영화사의 순간은 역사의 순간과 헤어진 적이 없다.
“나의 눈물은 인간의 눈물이고 나의 사명은 인류의 희망입니다. 부디 전해주시오. 인류의 희망은 자유라고!” - 송영호의 대사 광고 카피로도 쓰인 이 대사는 영화의 핵심적인 갈등을 집약해서 보여준다. 때는 전선(戰線)이 고착된 채 전쟁은 계속되던, 그리하여 후방에서의 게릴라전(戰)으로 혈육 간에 서로를 죽고 죽이는 참극이 되풀이되던 1951년 겨울 즈음, 장소는 북한이 점령하고 있는 마식령산맥 인근의 어느 마을이다. < 군번 없는 용사 >는 인민군 장교 아우 송영훈( 신성일 )과 인민군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펼치는 유격대 대장 형 송영호( 신영균 ), 최고인민위원회의 대의원이지만 은밀히 형의 유격대를 지원하는 아버지( 최남현 ) 사이의 비극을 다룬다. 아우에 의해 처형당한 아버지의 시체를 수습한 형은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사명’을 지속할 것을 대원들 앞에서 천명한다. 여기서 형의 사명이란 아우를 죽이는 것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반동’ 아버지를 처형해야 했던 동생의 비극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형제는 이념의 반대편에서 서로를 적으로 삼고 있지만, ‘인간’으로서의 도리와 ‘인류’를 위한 사명이 양립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정반대의 위치에 놓인, 그러나 같은 운명을 감당하는 형제에 대한 관객의 공감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그려내는 것이 핵심이다. 2시간의 러닝 타임을 끌고 가는 팽팽한 긴장감은 이와 같은 균형으로부터 나온다. 한국영화의 재현관습과 검열제도 아래서 이러한 균형감각을 유지하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인민군이 혈육을 살해하는 것은 대개 북한 공산주의 체제의 비인간성을 표상하는, 관습적인 서사의 장치로 사용되곤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친살해에 대한 인민군 장교의 인간적 번민이 극을 끌어가는 한 축으로서 위상을 부여받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심지어 이만희 감독은 불과 2년 전에 인민군을 ‘인간적’으로 그렸다는 이유로 작품(< 7인의 여포로 >)이 난도질당하고 그 자신은 인신구속이 되는 수난까지 겪지 않았던가!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유격대에 남몰래 협조하는 것으로 속죄하고 종국에는 죽음으로 처벌받는 등 ‘반공’영화로서 받아들여질 만한 요소를 충분히 배치해두기는 했지만, 공감을 넘어서 매혹까지 느끼게 하는 인민군 소좌 송영훈의 캐릭터는 당시 한국사회가 허용할 수 있는 재현의 임계점에 육박한다. 이만희 감독 특유의 빼어난 미장센, 그리고 격정적이되 핵심을 찌르는 대사들과 정교하게 짜인 동선이 인물의 내적 갈등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면서 송영훈 캐릭터에 설득력을 부여하고 있다. 전투 장면의 스펙터클도 평균 이상이지만, 보위부 본부와 감옥, 그리고 보위부 부장( 허장강 )의 집안을 담은 실내 장면들은 특히 탁월하다. 예컨대, 영훈이 형의 은신처를 알아내기 위해 아버지를 취조하는 고문실과 바로 옆의 감방에 갇힌 채 소리로만 상황을 짐작하는 어머니( 황정순 )의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는 장면은 거의 현기증을 일으킬 만큼의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교차편집을 통해 축적되어온 긴장감은 영훈이 아버지 대신 자신의 팔에 인두를 갖다 대는 순간에 폭발한다. 경악하는 어머니 얼굴의 미디엄 쇼트로 마감되는 이 장면은 히치콕의 심리적 스릴러를 연상시킬 만큼의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다. 이것은 영훈의 내적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장면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들 가족의(더 나아가 민족의) 비극적 역사가 집약되어 표현되는 장면이다. 아버지는 큰아들과 작은아들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작은아들은 형의 목숨을 거두기 위해 아버지를 죽음으로써 겁박해야 하며,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지켜보는 목격자가 되어야 한다. 이 극단적 상황은 결국, 목격자 어머니를 제외한 모두의 죽음으로 귀결된다. 포연이 자욱한 전장에 홀로 살아남은 인간, 또는 적의 총탄에 동지를 모두 잃고 그 스스로도 죽음 앞에 선 인간은 < 돌아오지 않는 해병 >(1963)에서부터 < 군번 없는 용사 >, 그리고 < 1950 04시 >(1972)에 이르기까지 이만희 감독의 전쟁영화를 번번이 마무리하는 이미지였다. 그와 같은 이미지는 역사로부터 출발했으되 종국에는 역사마저 초월해버리는 인간의 실존적 순간을 그려내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도리와 ‘인류’의 사명을 양립할 수 없게 만들었던 냉전 시대 한국의 현실에 대한 강력한 비판인가? 감독 이만희를 때로는 검열의 피해자로, 또 때로는 국책영화의 감독으로 만들었던 것은 그의 전쟁영화들을 관통하는, 그와 같은 모호함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아마도 이 모호함이야말로 냉전의 최전선 한국에서 허용될 수 있었던 재현의 최대치였을 것이다.
2차대전 종전 직후 수작 < 데이 워 익스펜더블 >(1945)과 < 황야의 결투 My Darling Clementine >(1946)를 잇달아 내놓은 존 포드는 마음속에 오래 품어온 영화 한 편을 완성한다. 그래엄 그린 Graham Greene의 소설이 원작이며 우울한 떠돌이 성직자가 주인공인 이 영화는 어떤 제작자도 원하지 않는 프로젝트였다. 여기엔 결투도 로맨스도 없었으며 멕시코 올 로케이션 촬영이어서 제작비 부담도 컸다. 포드 자신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대릴 자눅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이건 돈을 걸만한 상업영화가 분명히 아니야. 하지만 내 심장과 믿음은 이걸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어.” 이 영화를 위해 포드는 폭스의 연봉 60만 달러 계약을 거절하고, 자신의 프로덕션 브랜드인 아고시 Argosy를 법인화해 직접 제작에 나섰다. 결과는 처참했다. 아고시는 1백만 달러의 빚을 짊어지게 되었고 이 영화가 성공하면 포드의 또 다른 개인적 프로젝트 < 조용한 사나이 >를 지원한다는 RKO와의 계약도 무용지물이 됐다. 포드가 현장에서 시나리오를 거의 전부 뜯어고치는 바람에 시나리오 작가 더들리 니콜스와의 사이도 틀어졌으며, 원작자 그래엄 그린도 “포드의 아일랜드식 카톨릭주의 때문에 내 원작이 희화화되었다”며 비난했고, 그를 추종하던 사람들도 멀어져갔다. 평자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나쁜 편이었다. 포드의 열렬한 지지자인 린지 앤더슨조차 이 영화가 “과도하게 장식적이고 감상적”이라고 평했고 장 미트리는 “이론적 리얼리티를 지닌 이론적 드라마이며... 탈개인적이고 차갑다”고 비판했다. 오직 포드 자신만이 이 영화의 유일한 변호인이었다. “나는 이 영화 보는 게 즐겁다. 내게 이 영화는 완벽하다.” 무엇이 포드 스스로 ‘완벽’이라는 단어까지 쓰게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이 영화가 왜 그토록 폄하되었는지도 짐작하기 힘들다. 1997년 이국 도시에서 낡은 VHS 테이프로 이 영화를 처음 만났을 때의 놀라움을 아직 기억한다. 우울한 표정의 한 사내가 대의도 명분도 없이 죽음을 향해 느리게 걸어가고 있었다. 영화는 줄곧 어둠과 불안으로 가득했고, 죽음 직전에 이르러서야 사내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진 것 같았다. 이게 정말 존 포드 영화인가? 사내의 선택에 관한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지만 그 선택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할 수 없었다. 형언하기 힘든 압도적인 공기가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이 영화가 재발견을 기다리는 포드의 걸작 가운데 하나라고 여전히 믿고 있다. 영화가 시작되면, 한 남자가 들판을 지나 무너진 성벽을 넘어 무엇엔가 쫓기듯 비틀거리며 달려오고 있다. 그가 이 영화의 영웅인 신부(헨리 폰다)이다. 첫 장면부터 심상치 않다. 포드의 어떤 영화에서도 영웅의 등장이 이토록 불길하고 초라하지 않았다. 장면이 바뀌면 그는 아치형의 기둥이 끝없이 도열해 있는 회랑을 지나서 걸어온다. 다음 장면에서 그는 말이 아니라 노새를 타고 마을을 향해 간다. 그리고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이 영화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는 진실의 이야기를 다룬다. 성경에서 시작된 옛날이야기이지만 시대를 초월하는 주제이며 세계 여러 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영화의 촬영지는 멕시코이며 멕시코 정부 및 영화계의 지원으로 만들어졌다. 배경이 된 마을은 적도와 멀리 떨어진 허구의 공간이다. 누가 알겠는가.” 포드의 영화적 무대는 대개 미국의 서부이거나 아일랜드의 마을이었으며, 지리적 좌표와 역사적 시간과 연루되지 않는 경우는 없었다. < 도망자 >는 자신의 예외성을 처음부터 공표한다. 여기엔 특정한 시대와 장소도 지정되지 않고 신부를 비롯해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이름이 없다. 이 자의식적 우화의 원본은 그래엄 그린의 소설 이전에 신약성경이다. < 3인의 대부 Three Godfathers >가 서부극의 세팅 위에서 예수 탄생기를 원용했다면, <도망자>는 초시대적 알레고리로 예수의 최후를 우울증적 서사와 표현주의적 영상으로 번안한다. 도입부 장면으로 돌아와 보자. 정체불명의 마을에 진입한 사내는 언덕 위의 폐건물과도 같은 버려진 성당으로 들어간다. 이어지는 3분여의 짧은 성당 숏 안에 포드는 극도의 간결함과 압축미로 이 영화의 거의 모든 것을 단번에 드러내는 놀라운 재능을 발휘한다. #1 #2 #3 #4 #5 신부는 긴 그림자로 성당에 입장한다(#1). 실루엣으로만 그의 모습이 드러나며 카메라 위치를 반대로 잡은 장면에서도 그는 여전히 검은 실루엣이다(#2). 그는 그림자 혹은 어둠의 존재이다. 그의 지친 듯 얼빠진 표정이 드러나면(#3), 그에게 드리워진 어둠이 그가 단순히 도망자라는 신분을 은유하는 것이 아니라, 확신의 상실과 밑 모를 불안이라는 내면의 표현임을 짐작할 수 있다. 대형 십자가도 성상도 없는 성당에서 그를 맞은 건 부서질 듯 왜소한 나무 십자가들이다(#4). 남자의 뒤를 따라 성당에 들어온 여인 마리아 돌로레스와의 만남 장면에서 그의 불안한 존재감은 더 강조된다. 여인은 창문을 통해 들어온 빛으로 둘러싸이지만 사내는 여전히 어둠 속에 묻혀 있다(#5). 이 명암 대조는 관습적인 조명법을 교란한다. 신부는 어둠의 편에 여인은 빛의 편에 속해 있는 것이다. 여인이 묻고 남자가 대답하는 짧은 대화가 이어진다. “누구세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죠?” “여기가 내 집이오.”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이 마을 남자들은 내가 다 알아요.” “........................” “혹시 경찰인가요?” “경찰을 피하고 있습니다.” “범죄자인가요? 도둑질하거나 살인을 저질렀나요?” “아닙니다. 난 신부입니다. 내 성당이지요.” 이 단문의 대화만으로도 이 상황의 모든 것이 단번에 드러난다. 아이를 안은 여인은 창녀이고 남자가 로마군에 쫓기는 예수처럼 경찰에 쫓기는 신부이며 몇 년 만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여인이 “교회가 다시 열리나요?”라고 묻자 사내는 “아마도요”라고 대답한다. 여인이 “세례를 못 받은 아이들이 많아요. 그래서 신부님이 여기 오신 건가요?”라고 묻자 사내는 역시 “아마도요”라고 대답한다. 사내는 자신이 이곳에 온 돌아온 이유와 자신이 할 일을 정확히 말하지 못한다. 역설적이게도 매춘부인 여인은 지금 빛을 받으며 구원자의 자리에 서 있고, 신부인 사내는 범죄자처럼 어둠 속에서 무언가 망설이고 있다. 창녀=구원자라는 암시가 < 역마차 > < 태양은 밝게 빛난다 > <일곱 여인들 7 Women>을 상기시키기도 하지만, < 도망자 >는 무엇보다 먼저 < 젊은 날의 링컨 >을 떠올리게 만든다. 사내의 망설임 때문이다. 역시 헨리 폰다가 연기한 젊은 링컨에게서 우리가 보았던 것은 망설이듯 전진하는 우아하고도 기묘한 움직임이었다.(4회 참조) <젊은 날의 링컨>애서 자신의 선택이 자유의지인지 운명의 간계인지 분간할 수 없는 공동체 영웅, <도망자>에서 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성직자는 동질의 인물이다. 그들을 일반적 대중영화에서의 고결한 속인과 대비되는 범속한 성인(聖人)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존 포드의 영화를 특징짓는 것 중의 하나가 그 범속성의 몸짓이다. 그들에게 종교적(혹은 공동체적) 소명은 고결한 사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보이지 않는 감옥이다. 그것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대의에 투신하는 게 아니라 대의의 실행자라는 자리에 불려 나온 것이다. 하여 그들은 종종 그 자리에 가기를 원치 않는 듯 느리게 움직이고 엉뚱한 심술을 부리며, 불안과 공허의 몸짓으로 프레임을 채우고 때로 자신의 지위를 부인하기도 한다. < 도망자 >의 사내에게 목숨을 걸고 자신의 교회로 돌아온 결단과 “아마도요”라는 망설임의 발화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아마도요”라는 말은 자신의 소명에 대한 소극적이고 우회적이지만 그러나 완강한 부인의 몸짓이다. 사내가 신부임을 알게 된 마리아가 몸을 숙여 그의 손에 입 맞추려 하자, “그러지 마세요”라고 만류한다. “그러지 마세요”라는 말은 이후에 다시 한 번 반복된다. 그는 지금 성직자의 임무를 위해 돌아온 자리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계속 부정하려 한다. 정확히 말하면 짧은 순간이나마 소명을 잊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의 슬픔에 젖은 표정과 느린 동작, 낮고 우울한 목소리는 그 시도가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임을 동시에 암시한다. 그는 다시 소명을 부인하고 탈출을 시도하겠지만 결국 실패할 것이다. 이 영화는 그 덧없는 시도의 여정이 될 것이다. 아름답고 불안하며 고요한 성당 장면은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예감케 한다. < 도망자 >를 보고 로베르 브레송의 < 어느 시골사제의 일기 >(1951)를 떠올리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신에 대한 믿음을 회의하고 불안이라는 질병에 시달리는 성직자, 그를 폄하하고 부정하는 환경, 사제의 죽음이라는 귀결 등은 물론이고 에피소드 병렬의 구조, 연극적인 말투와 연기, 인물의 텅 빈 표정과 동작에 대한 모더니즘적 몰두에서도 공통적이다. 하지만 이 유사성을 지나치게 강조할 필요는 없다. <어느 시골사제의 일기>는 종교적 외피 아래 숨겨진 리비도가 점액질의 촉감을 만들어내지만, <도망자>는 엄연히 고전적인 캐릭터 스터디의 면모를 갖고 있다. 일견 포드적인 것과 가장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도망자>는 포드적인 세계의 또 다른 표현이다. 여기엔 신부 외에도 두 사내가 더 등장한다. 신부를 추적하는 장교, 그리고 현상수배범 그링고(워드 본드)이다. 돈을 밝히고 천박한 총독 일당에 비하면 장교는 잔인하지만 품위 있는 혁명가이다. 그는 내세의 구원을 경멸하고 현세의 행복을 부르짖는다. 우연히 마을에 도착하는 무법자 그링고는 내력이 전혀 드러나지 않지만 서부극의 전형적 인물이다. 그는 아무런 이유 없이 신부의 탈출을 돕다 경찰의 총에 맞아 죽는다. 세 인물의 공통점은 고결함 혹은 금욕적 프로테스탄트라는 점이다. 이 점이 근본적으로 관능적인 브레송과의 차이다. 또 다른 공통점은 모두 실패한다는 것이다. 무법자는 총 맞아 죽고 신부는 사형대에 오른다. 장교는 세속적 승리자이긴 하지만 그가 부르짖는 행복한 공동체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으로 제시되며, 신부를 총살할 때 그의 가책의 몸짓은 그 실패를 예감하는 것처럼 보인다. 포드는 세 인물을 유기적으로 엮는 서사에는 무관심하다. 대신 세 인물을 한 공간에 모아놓고 그들의 선택과 행로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세 사내는 서부사나이를 셋으로 나눠놓은 것 같다. 우울하고 불안한 성직자, 잔혹하고 강인한 혁명가, 무도하지만 따뜻한 무법자. 세 인간 유형은 실은 동일한 존재의 변주들이다. 자신의 신념 혹은 운명이라는 감옥에 갇힌 자. 포드의 서부사나이는 바로 그런 인물이 아니었던가. < 도망자 >를 그런 점에서 포드적 영웅의 해부라고 말할 수 있다. 달리 말해 포드적인 것과 가장 멀어 보이는 이 영화야말로 포드적 세계의 훌륭한 입문서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엔 그가 사랑한 인물들의 어두운 심연이 있고, 강렬한 표현주의적 영상과 아름다운 구도가 있으며, 실패한 구원의 서사가 있다. 다만 여기엔 포드가 그토록 사랑한 것처럼 보였던 유머와 헛소동이 없다. 포드는 왜 이 영화를 두고 ‘완전한’이라는 표현을 썼을까. 2차 대전의 체험이 그의 마음을 유희적인 것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것일까. 이 질문은 제대로 답해질 수도 없고 실은 불필요한 질문일 것이다. 평자로서 말할 수 있는 건 창작자의 의도가 아니라 그의 작품 자체일 뿐이다. 대신, 이 질문과 간접적으로 연관된, 영웅의 선택의 과도함이라는 문제를 생각해보고 싶다. 신부의 선택은 표면적으로 과도하다. 죽음 직전에 이른 한 사내의 마지막 고해성사를 위해 그는 자신이 방금 탈출한 곳으로 목숨을 걸고 되돌아간다. 두 번 스치듯 만난 것 외엔 어떤 인연도 없는 한 사내(신부는 이 현상범이 자신의 탈출을 도왔다는 사실을 모른다)의 구명이 아니라 고해성사가 자신의 생명을 걸 만큼 중대한 소명일까. 이 대목은 전 회에서 말한 < 태양은 밝게 빛난다 >를 고스란히 상기시킨다. 걸려 있는 것이 목숨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라는 사실 때문에 얼마간 가려지긴 했지만, 프리스트 판사에게 장례식 주재라는 행위의 사소성에 비해 너무 큰 희생의 결단이 요청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상황과 행위의 비대칭, 다시 말하면 상황의 과소함과 그것이 요청하는 행위의 과도함의 불균형이라는 문제가 여기에 있다. 고전적 할리우드영화의 도식이 S-A-S′(문제적 상황-해결의 행위-개선된 상황)라면 포드의 두 영화에서의 도식은 s-A-s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과 끝의 소문자 s는 과도한 행위를 요청한 상황이 영웅의 행위 이후에도 근본적으로 변함없다는 사실을 표시한다. 이 도식은 두 서사에서 결국 행위를 표시하는 대문자 A가 가장 문제적이라는 것을 뜻한다. < 태양은 밝게 빛난다 >를 말하면서 이를 ‘도덕과 윤리의 불안정한 동반에서 윤리만이 문제되는 상황으로의 이행’으로 요약한 바 있다. 그런데 < 도망자 >를 보고 나면 이 수정된 도식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느껴진다. 신부는 첫 시퀀스에서 돌아온 이유를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 그 이유를 신부가 다시 탈출한 뒤 은신처에서 의사에게 하는 말에서 들을 수 있다. “자만에 도취해서 생각했어요. 혹시 알아? 순교자가 될지.” 그에게 순교라는 선택은 상황으로부터 독립적이며 그 자체가 자기목적적인 행위이다. 신부를 되돌아가게 만든 죽어가는 이의 고해성사는 바로 이 순교를 위한 일종의 도구라고 볼 수도 있다. A는 s는 직접적인 연관 관계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도식은 s…A…s로 수정되어야 한다. 이것으로 충분한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순교 혹은 최종적 결단의 자기목적성, 자기충족성은 정말 상황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자기완결적 행위인가. 오히려 우리가 포드의 영화에서 보는 건 공동체의 완고한 부도덕의 표정, 세계의 되돌릴 수 없는 타락의 그림자, 혹은 순교 그 자체에 대한 근본적 회의의 몸짓이 아닌가. < 도망자 >를 지배하는 그림자와 폐소공포증적 어둠, 그리고 불안한 말투와 망설임은 그것의 표상이 아닌가. 세계는 바뀌지 않는다. 영웅은 결단했지만 창녀들은 예정대로 추방되었고(< 태양은 밝게 빛난다 >), 마을은 잔인한 혁명가가 그대로 지배한다(<도망자>). 영웅의 결단 이전과 이후의 상황이 동일하다면 그 견고한 s야말로 세계의 진정한 주인이고 궁극적 행위자이며 영웅의 행위는 순교든 희생이든 부질없는 몸짓에 불과하다. 정말 과소한 것은 A이다. 그렇다면 이 도식은 다시 수정되어야 한다. 그것은 (S)-a-(S)로 표시될 수 있을 것이다. S-A-S′의 여러 변형 도식들로 말하려는 건 그들의 분석적 효용성이 아니다. 포드의 어떤 영화에서도 고전기의 원형적 도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S와 A는 끊임없는 불안정과 비대칭의 관계에 놓인다는 것이다. 종종 뒤돌아 떠나는 영웅의 뒷모습으로 은유 되는 주인공의 죽음은 이런 물음을 남긴다. 그것은 과도한 A, 혹은 과대망상적 행위의 증상인가. 아니면 과소한 a, 혹은 행위의 근본적 무기력의 증상인가. 이 물음은 포드 영화 이력의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된다. #6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을 말하며 마무리하고 싶다. 엉뚱하게도 금주법 위반 혐의로 체포된 신부는 가까스로 경찰의 손아귀에서 벗어난다. 바로 다음 장면은 정갈하고 평온한 휴양지와도 같은 곳이다. 그리고 ‘IN ANOTHER STATE(다른 나라 혹은 다른 주)’의 ‘SANCTUARY’(은신처 혹은 성역)이라는 이 영화의 유일한 중간 자막이 떠오른다(#6). 유성영화에서 중간 자막을 거의 사용하지 않은 포드가 여기서 굳이 이 자막을 쓴 이유는 짐작하기 힘들다. 없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이 중간자막은 그 존재감 때문에 앞 장면과의 근본적 단절의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탈출한 마을과 신부는 공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고 이제 곧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려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바로 다음 시퀀스에서 마을에서 온 뱀과 같은 사내가 신부의 침실에 숨어들어 신부를 다시 꼬드긴다. 총에 맞은 무법자가 죽어가니 신부로서 마지막 고해성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잠시 망설이던 신부는 금방 마을로 돌아간다. 마을로 다시 돌아가는 순간 죽음이 기다린다는 건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다. 시간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고 ‘다른 나라의 은신처’는 마을에 인접한 곳에 불과했다. 중간자막이 가져다준 단절과 평온의 예감은 한순간에 붕괴한다. 이 붕괴의 느낌은 충격에 가깝다. 주인공이 탈출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 완전히 갇혀있다는 느낌. 신부의 소명이 벗어날 수 없는 감옥으로 실감되는 것, 앞서 말한 도식을 원용하자면 s가 (S)로 한순간에 변하는 것도 바로 이 순간이다. 어떤 영화에서도 중간자막이 이처럼 감각적 충격의 진원이 되는 순간을 겪지 못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