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실이
- 감독
- 김선아, 박세희
- 제작년도
- 2011
- 출연
- 한효정, 상현주, 정유정, 황은진, 방영덕, 추현천, 상현주, 방영덕, 곽지훈, 김채수, 곽지훈, 황은진, 최현규, 김채수, 한효정, 곽지훈, 판종현, 한효정, 상현주, 방영덕, 곽지훈, 정유정, 상현주, 곽지훈, 정유정, 상현주, 판종현, 방영덕, 최현규, 판종현
2020년 7월 7일부터 2021년 2월 10일까지 한국영화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해방 공간의 영화인들: 혼돈의 시간, 엇갈린 행로〉라는 전시가 열렸다. 전시장에 설치된 ‘북한영화특별관’에서, 모니터와 헤드폰을 이용해 북한영화 13편을 관람할 수 있었다. 이들 중 극영화 〈용광로〉(민정식, 1949), 〈향토를 지키는 사람들〉(윤용규, 1952), 〈정찰병〉(전동민, 1953), 기록영화 〈수풍에프런공사〉(천상인, 1948), 〈영원한 친선〉(1948), 〈38선〉(강홍식, 1948), 〈남북련석회의〉(천상인, 1948), 북조선 국립영화촬영소 제작 〈조선시보〉 4편 등 11편은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작품들이었다. 이 전시를 공동주최한 한상언 영화연구소와 한국영상자료원에 감사드린다. ( 한국영상자료원 사이트의 전시 소개 에서 전시 리플렛과 도록을 내려받을 수 있으며, 지금도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 해당 메뉴 에서 온라인 전시 를 체험할 수 있다. 또, 한국영상자료원 유튜브 계정에서 한상언 박사가 전시 내용을 설명하는 강연 도 볼 수 있다.) 위 13편 중 〈 내 고향 〉( 강홍식 , 1949)과 〈 신혼부부 〉( 윤용규 , 1955)는 2003년 제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른 북한 영화 5편과 함께 상영된 적이 있다. 2000년 6월 사상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 북한이 대표단을 파견하며 남북 문화교류 바람도 촉진되어, 2003년 봄 전주국제영화제·대종상에서 북한영화 신작〈 살아있는 령혼들 〉(김춘송, 2000), 〈 청자의 넋 〉(표광, 2003) 등이 소개되었다. 또, 2002년 10월 이두용 의 〈 아리랑 〉(2002) 평양 상영회 때 남한 영화인들이 방북했고, 2003년에는 ‘남북영화교류추진특별위원회’가 조직되어 2차 교류가 이어졌다.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 및 비디오 심의에서 제한상영가·등급 보류 판정을 연거푸 받기는 했지만 개봉 및 비디오 출시를 목적으로 북한 다큐멘터리 〈동물의 쌍붙기〉(1987)가 이즈음 수입되기도 했다. 이전에 남한의 극장에서 공개 상영된 북한영화라고는 2000~2001년에 연이어 개봉하거나 특별상영으로 소개된 신상옥 · 최은희 부부의 〈 불가사리 〉(1985)와 〈 소금 〉(1985)뿐이었으니 변화가 실감되는 시기였다. 물론 노태우 정권이 ‘북방정책’을 추진하던 1990년에 관계부처가 북한영화를 신청자에게 제한상영하거나, 〈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 〉(엄길선, 1979)가 TV에서 방영된 사례가 있긴 했다. 근년에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 이은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으로 다시 여러 영화제에서 북한영화들을 소개하려는 바람이 일었으나, 2019년 베를린 교류추진특별위원회 회담은 불발로 끝났다. 2019년 제1회 평창국제평화영화제(당시 명칭은 평창남북평화영화제) 개막작이 〈 새 〉(림창범, 1992)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엔, 이 영화를 ‘불법’ 상영하던 90년대 초의 대학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 사회주의 정권 수립 과정을 다루는 〈내 고향〉은 국정원이 상영불가 의견을 낸 바람에 2003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선 배지 소유자만을 대상으로 제한상영 되었다. 이와 달리 〈신혼부부〉는 같은 해 부산영화제에서 공개 상영되었기에 누구나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영화제 개막 직전에 언론들은 〈신혼부부〉의 감독을 (이번 전시에서도 〈신혼부부〉 시나리오 작가인 주동인의 동생으로 소개되었고, 영화제작자 출신으로 미국으로 이주했다고 알려진) ‘주동진’이라고 보도했다. 2003년 영화제 개막이 임박해서야 성사된 고 안상영 당시 부산시장 겸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의 방북, 그에 이은 북한영화 상영 결정 과정 및 영화제 폐막 이후 상영작 프린트의 한국영상자료원 소장 경위 등은 고(故) 김지석 프로그래머가 부산일보에 연재한 칼럼으로 꽤 소상히 알 수 있다(김지석, 〈[스무 살 BIFF, 뜨거웠던 순간들] 19. 또 다른 전쟁 ‘프린트 반입’〉 (《부산일보》, 2015년 5월7일자). 한데 2015년에 게재된 칼럼인데도, 〈신혼부부〉의 감독 이름을 ‘윤룡구’라며 여전히 부정확하게 썼다. 이는 북한으로 간 윤용규의 활동과 영화를 남한에서 잘 모르고 있었다는 뜻이다. “해방 후 조선영화의 최고봉의 신기록을 지은 수작”(이태우, ‘조선영화의 발전’, 《경향신문》, 1949년 1월 6일자, 이준엽·함충범, 2018:2 재인용)이라는 윤용규의 대표작 〈 마음의 고향 〉을 제작자 이강수 가 파리에서1993년에 다시 공개하고, 문화재청이 문화재보호법에 의거해 문화재 등재 필름으로 2008년에 등록한 뒤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듯하다. 국내에서 ‘연출 윤용규’라는 이름이 적시되어 〈신혼부부〉가 일반 공개된 것은 이번 전시가 처음이다. 1. 북으로 간 영화감독 일본으로 건너간 윤용규는 도요타 시로 감독의 〈항구는 바람풍 港は浮気風〉(1937) 등 ‘도쿄발성’이 제작하고 ‘도호’가 배급한 작품들의 연출부로 활동(이준엽·함충범, 2018:11)한 뒤 귀국했다. 1939년 초연된 함세덕의 희곡 「동승」을 영화화한 〈마음의 고향〉(1949)으로 윤용규는 감독으로 ‘입봉’했다. 〈마음의 고향〉은 공개되자마자 서울특별시 문화상 영화부문상을 받았고, 경무대에서 이승만과 프란체스카가 관람할 정도로 전국적 명성을 얻었다. 또, 최초의 한불 영화 교류작으로 1950년 파리에서 상영되었다. 그러나 〈마음의 고향〉에 쏟아진 갈채와는 별개로, 윤용규가 남한에서 활동하는 데는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윤용규는 해방 직후 잇달아 설립된 ‘조선영화건설본부’와 ‘조선프롤레타리아영화동맹’이 1945년 12월 16일 통합한 조직인 ‘조선영화동맹’ 서울시 지부 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리하여 윤용규는 남한 단독정부 수립 후 좌익 인사로 분류되어 감시 받았으며, 〈마음의 고향〉 촬영 현장과 후반 작업과정도 경찰이 사찰했다.(박철, 「서정적 수법이 탁월한 공훈배우 윤룡규」, 《조선예술》, 1957.8., 90쪽. 이준엽·함충범, 2018:14). 윤용규가 북으로 간 계기를, 2000년 12월 15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초창기 북한 영화와 일본인〉에서 일본 영화연구자 몬마 다카시가 진술한 바 있다.(지금은 온라인에서 해당 기사를 볼 수 없다.) 초창기 북한영화 편집에 참여한 키시 토미코에게 들은 내용을 근거로, 몬마는 윤용규가 ‘월북’하지 않고 ‘납북’됐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키시 토미코는 닛카츠 영화사 등에서 편집을 배운 뒤 ‘만주영화협회(이하 만영)’에서 활동하던 중 일본 패전을 맞는다. 이후 만영은 중국 공산당 정권 하에서 ‘동북전영제편창(東北電影制片廠, 이하 동북전영)’으로 개편되었다. 키시는 동북전영에서 북한영화 제작에 조력했는데, 처음 담당했던 북한영화가 바로 윤용규의 〈향토를 지키는 사람들〉(1952)이었다. 영화 제작 중에 윤용규는 자신이 북한으로 간 경위를 키시에게 설명했다 한다. 전쟁 중 찾아온 북한군 병사들이 북으로 가고 싶은 사람은 20분 내로 준비하라고 했고, 윤용규는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만나거나 준비할 틈도 없이 따라 나섰다고 키시는 전한다. 기실, 윤용규는 서울영화사의 창립 4주년 기념작 〈하얀 쪽배〉를 만들려던 참이었다.(〈서울영화사서 「하얀 쪽배」 제작〉, 《자유신문》, 1950년 5월 18일자. 이준엽·함충범, 2018:15~16 재인용) 결국 전쟁 중 북한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 윤용규는 〈소년 빨치산〉(1951)과 〈향토를 지키는 사람들〉(1952)을 연출한다. 이즈음, 한국전쟁 초기부터 제공권을 선점한 미군의 폭격으로 평양은 철저히 파괴되었다. 이 시기의 참상은 전후에 프랑스와 북한이 합작한 〈모란봉Moranbong, chronique coréenne〉(1958, 이 영화에 강홍식 과 함께 출연한 엄길선은 후일 1원짜리 구 화폐에 등장할 만큼 북한을 대표하는 감독 겸 배우가 되었고, 〈신혼부부〉의 주연 배우 김현숙과 1962년에 결혼했다.)을 보아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연출자 장클로드 보나르도와 각본을 쓴 극작가 아르망 가티가 크리스 마커·클로드 란즈만 등과 방북하여 제작한 〈모란봉〉은 유엔군의 평양 폭격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는 이유로 프랑스에서도 2010년까지 상영할 수 없었다. 1947년 건립된 북조선국립영화촬영소도 파괴되어 촬영은 물론 후반작업도 어려운 지경이었다. 폭격을 피해 강계로 소개했던 북한영화인들은 1951년 5월부터 1953년 11월까지 장춘의 동북전영에서 중국 정부의 인력 협조와 물적 지원을 받아 영화를 만든다. 기록영화와 시보 여러 편 외에도 〈소년 빨치산〉(윤용규, 1951), 〈또 다시 전선으로〉(천상인, 1952), 〈 향토를 지키는 사람들 〉(윤용규, 1952), 〈비행기 사냥꾼조〉(강홍식, 1952), 〈정찰병〉(전동민, 1953) 등 5편의 ‘예술영화’(극영화)가 장춘에서 제작되었다. 북한 정부는 이 시기 중국의 도움을 공식적으로는 부인하며, 평안북도 의주·수풍·창성과 자강도 만포군 등에 소개한 촬영소에서 김일성이 영화 제작을 지휘하여 온전히 북한 영화인의 힘으로만 전쟁 시기를 극복했다고 주장한다.(유우, 2010:249~250) 1954년 말에야 촬영 및 제작 기반 시설이 복구되어 북한영화인들은 1955년을 전후해 평양으로 모두 귀환했다. 한데 휴전 이후 윤용규가 연출한 〈빨치산의 처녀〉(1954)는 장춘에서 평양으로 이행하는 시기에 제작되었기에 마무리가 늦어져 1955년 1월에야 공개되었다.(한상언, 2011:289~290) 작업이 지연된 이유는 김일성이 외국영화와 비슷한 장면이 있다며 추가 촬영 및 보완을 지시했기 때문으로 일단 알려졌다. 그런데, 장춘에서 제작 중이던 〈빨치산의 처녀〉 작업이 늦어진 데는 주연배우 문예봉 이 카를로비바리영화제에 참석한 직후에 사적으로 술회한 여행담 때문에 ‘반쏘분자’로 지목된 탓도 있었다. 휴전 직후부터 남로당계 숙청이 시작되어 1953년 8월에는 임화 가 처형당했고, 남한출신 인사들에 대한 견제가 이어진다. 월북 직후인 1949년에도 남편 임선규가 공격 당한 적이 있었던 문예봉은 이 위기를 어쨌든 넘긴다.(한상언, 2020:95~97) 2. 휴전 직후, 신혼부부의 세계 전쟁 중 북한이 제작한 극영화가 5편인데 그 중 윤용규가 연출한 작품이 2편이었으니, 감독 윤용규의 역량을 남북한 모두가 공히 인정한 셈이다. 윤용규 이전에 북한에서 극영화를 연출한 강홍식ㆍ 주인규 는 모두 배우 출신이었고, 연출 수업을 경험한 극영화 감독은 1951년부터 작품 활동을 한 남한 출신 민정식과 윤용규가 첫 세대였다. 윤용규가 북에서 처음 연출한 〈소년 빨치산〉은 1950년 10월 말 미군이 점령한 어느 마을에서 ‘미 제국주의’의 만행에 맞서는 소년들을 영웅으로 그린다. 이 작품은 1952년 6월 중국에서 열린 ‘제6차 국제영화축전’에서 ‘자유를 위한 특별상’을 수상하며 베이징의 13개 극장에서 상영되었고, 이듬해 중국의 ‘신년 경축 특선’에서도 북한 영화로는 유일하게 선정되는 등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유우, 2016:259) 〈향토를 지키는 사람들〉은 유엔군이 수복한 강원도 고성을 배경으로 ‘인민유격대원’들의 투쟁을 그리는 영화이고, 휴전 다음해에 나온 〈빨치산의 처녀〉는 인민군이 ‘전략적 후퇴’를 감행한 1950년 하순 후방 농촌 마을에서 투쟁을 이어가는 민간인들을 보여준다. 〈신혼부부〉를 만든 다음에 윤용규가 연출한 〈어랑천〉(1957)도 전쟁 중 그가 만들었던 작품들이 구축한 시공으로 회귀한다. 이 영화는 1950년 11월, 미군에 밀려 패퇴하다 어랑천을 사수하려는 전투원들의 영웅주의와 인민들의 지원을 다룬다. 이렇듯 1957년까지 윤용규가 만든 영화들이 당대 북한 영화의 주된 소재였던 항일·반제·반미·공습과 학살의 기억(한상언, 2011:295~301)을 되불러오는데, 〈신혼부부〉는 예외다. 휴전 성립 후 전후 복구 체제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하는 당대를 그리며 삶을 재구축하려는 개인과 공동체, 국가의 시도를 다루는 〈신혼부부〉의 세계는, 애인이 미군 간첩임을 알게 되자 주저 없이 그를 사살하는 〈어랑천〉 주인공 박순봉(조효경)의 세계와는 판이하다. 무자비한 폭격을 당했던 평양에 막 복귀한 영화인들이 갓 세운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안팎에서 만든 영화임에도, 〈신혼부부〉는 근과거였던 전쟁의 잔혹함이나 전후의 비참함을 재현하는 대신 ‘현재’라는 시공 속에서 인물들의 관계가 자아내는 활력을 우선 포착하려 한다. 공장에서 5년 동안 선반 일을 하던 은실(첫 주연작 〈신혼부부〉의 연기부터 큰 호평을 받고 엄청난 인기를 모았던 은실 역의 김현숙은 〈모란봉〉의 원정희, 윤용규가 시나리오를 쓴 〈정방공〉(오병초, 1963)의 최부실, 김정일의 두번째 반려자였던 성혜림 등과 함께 북한영화의 5~6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 연기자이며 연기 교육자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은 철도 노동자 김영철(〈내 고향〉에서 유격대원 관필 역할을 맡았던 유원준이 연기했다. 그는 1998년 타계할 때까지 북한의 ‘아버지’ 상을 구현한 배우로 통했다.)과 결혼하며 전업주부가 된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반장(반장 역을 맡은 문예봉은 유원준과 더불어 〈내 고향〉의 주연이었다.)과 막내 옥단 등 공장 동료들이 은실을 자주 찾아주지만, ‘노동역군’의 자리를 떠난 은실의 낙담은 가시지 않는다. 그러던 중 자신처럼 결혼 후 공장을 떠났다가 공사장에서 다시 일하는 옛 동료를 우연히 만난 은실은, 일터를 떠난 자신이 떳떳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여성을 집안에 잡아두고 싶다는 영철과 여성 노동자로서 이대로 주저앉고 싶지 않다는 은실의 갈등은 그리하여 깊어간다. 철도노동자로서 목표량 달성에 성공하여 기쁨에 들뜬 영철은 은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하면 당신이 한 것과 다름없는데 바깥일 참견할게 뭐 있소. 나만 보고 산다며?" 은실은 조목조목 반박한다. 소꿉놀이 같은 집 안에만 아내를 가두어 두는 태도는 잘못이며 여성을 노리개나 보상물로 보는 것이라고, 또 아버지가 어머니를 대하던 가부장적 태도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냐며, “당신을 옳게 도우려면” 자신도 공장에서 일을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은실의 싸움에 버팀목이 되어주는 이들은, 경험이 풍부한 반장을 비롯해 목표 작업량을 달성하는 공장 여성반 동료들이다. 여성이 혁명투쟁과 생산에 앞장서는 모습은, 북한에서 윤용규가 연출한 영화에서 예사롭게 등장한다. 미군이 점령한 마을의 여성동맹위원장인 주인공을 유경애가 연기하는 〈향토를 지키는 사람들〉(1952, 〈소년 빨치산〉과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쓴 윤두헌이 숙청된 뒤부터 집체작으로 기록됐다.)이나, 〈어랑천〉(1957, 시나리오 한성)의 사례가 그러하다. 역시 여성이 주인공인 60년대 뮤지컬 영화 〈정방공〉의 시나리오도 앞서 언급했듯 윤용규가 썼다. 한편, 〈빨치산의 처녀〉(시나리오 김승구)의 문예봉과 〈어랑천〉 속 박순봉이 연기한 역할을 계승하듯 미군에 맞서는 여성전사(조유경)가 등장하는 〈녀성영웅광부〉(윤용규, 1960)의 시나리오는 〈신혼부부〉의 주동인이 썼으니, 은실과 같은 입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 인물 조형은 윤용규와 협업한 당대 북한 영화인들의 공동창작 결과라 하겠다. 1955년 4월에는 ‘조중 영화배급 계약’이 체결되는데, 1956년 북한영화의 대표격으로 중국에 유일하게 소개된 영화도 〈신혼부부〉였다. 〈신혼부부〉가 1956년 8월 15일부터 8월 21일까지 베이징에서 상영될 때, 중국 언론은 “노동경쟁에서 나타난 개인영웅주의와 여성 노동자의 가치를 무시하는 잘못된 관점을 비판하는” 작품이라 소개한다.(유우, 2020:157) 3. 소리와 노래 〈신혼부부〉에서 영철과 동료 철도노동자들은 휴식 시간에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언덕을 산책하는 부부와 은실의 공장 동료들은 창공을 배경으로 이렇게 노래한다. "그대와 함께 푸른꿈 키우며 / 당신과 나는" 부분적으로 뮤지컬 장르 양식을 채용한 〈신혼부부〉 가 제작되기 직전에 평양에서 만들어진 영화는 무용 가극 공연을 채록한 〈아름다운 노래〉(전동민, 1954)였다. 그리고 북한 ‘예술영화’ 중 공연 채록을 제외한 평양 복귀 후 첫 작품이 바로 〈신혼부부〉였다.(유우, 2020:142) 〈신혼부부〉가 만들어진 이듬해인 1956년에는, 광주 출신 음악가 정추의 형이며 일본 니혼대학에서 유학했던 정준채가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아 최승희의 무용극을 옮긴 〈사도성 이야기〉도 나온다. 컬러 필름으로 인민적 전통과 민족문화를 다루는 영화들의 시초라 할 작품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윤용규도 1958년에 북한의 네 번째 컬러 극영화 〈 춘향전 〉을 연출한다.( 「북한에서 만든 영화 <춘향전>」 , 한상언 블로그) 〈신혼부부〉가 나오기까지, 북한영화에 음악은 물론 사운드 기술이 도입된 기간은 기실 그리 길지 않았다. 북한의 첫 발성(토키)영화는 〈인민위원회〉(1947)였다. 정준채 감독이 다큐멘터리 제작 제안을 받아 1945년에 월북한 뒤 연출한 〈인민위원회〉는, 소련 기술진들의 도움으로 녹음설비를 구축하여 1947년 준공되었으나 전쟁으로 파괴될 평양의 북조선국립영화촬영소에서 만들어졌다. 그런 까닭에 초창기 북한 영화는 소련 영화계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사운드와 뮤지컬 장르의 도입에서 그 영향은 명백하다. 소련 영화사에서 사운드 녹음 기술을 처음 도입한 작품은, 1929년 11월에 상영된 아브람 룸 감독의 〈위대한 파업의 계획Plan velikikh rabot〉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학 연구자 김수환은 〈위대한 파업의 계획〉을 예로 들며, 서구뿐 아니라 소비에트 러시아에서도 사운드 기술이 처음부터 생산 및 산업의 문제, 노동과 기계의 소리를 담았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고 분석한다. 김수환에 따르면, 소련 무성영화는 발성영화로 단숨에 옮겨가지 않았다. 소련에서 처음 토키영화가 상영된 1929년 11월은 “신경제정책이 제1차 5개년 계획으로 바뀌는 시기”였고, 1920년대를 뒤흔들었던 혁명적 아방가르드 영화의 실험적 미학주의가 ‘형식주의’로 공격당하고, 2년 뒤인 1934년에 소련의 문예 창작 공식 지침으로 채택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얼개를 드러내던 때이기도 했다. 이 시기를 거치며 혁명기의 전위적 몽타주 영화는 “만인을 위한 영화”인 토키영화로 변모해갔다. 사운드를 채용한 소비에트 영화는 크라카우어 식으로 표현하자면, ‘대기실’의 기간을 가져야 했다. 하나의 세계가 다른 세계로 변화되는 중에 있던, 아직 혁명이 완수되어 모든 것이 확실해지기 이전의 세계, 그런고로 불투명한 잠재성과 가능성의 다발들이 공존할 수 있었던 “끝에서 두번째 세계”. 혁명기의 “실험적인 파토스”가 잦아들었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세계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지만, 도래할 그 무엇을 정확히 예측하지는 못 하는 때. 한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이를 대체할 시대가 목전에 다다른 이 상황은, 크라카우어가 말한 역사의 “대기실 풍경”, 혹은 “끝에서 두번째 세계”(크라카우어, 2012:232)와 흡사했다. 끝으로 향하기 위한 “대기실”의 풍경을 보여주는 이행기의 영화로 김수환은 〈홀로Odna〉(그리고리 코진체프·레오니드 트라우베르크, 1931)를 꼽는다. 〈홀로〉는 정치, 사회, 문화,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하나의 세계가 다른 세계로 변화하는 총체적인 ‘이행기’에 출현했다. 무성영화로 만들어진 〈홀로〉는 개봉 때 발성 대사를 더했으며, 쇼스타코비치가 작곡한 영화음악(작품번호 26번, 가사가 있는 노래도 포함되어 있다.)을 사운드 트랙으로 채용했다. “혁명적 아방가르드 영화의 ‘시작’과 ‘끝’ 사이”에 걸쳐져 있는 영화. 무성영화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전형적 발성영화도 아닌, 1920년대 아방가르드 영화 양식에서는 이미 벗어났지만, 아직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독트린으로 따르지도 않는 ‘양가성’이 〈홀로〉를 특징짓는다. ‘다수의 집단적 주체’가 아니라 한 평범한 젊은 여성이 주인공이며, 제목이 이 개인성을 전면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은 1920년대의 혁명적 아방가르드 영화와는 확연히 다르다. 감독들은 이 제목이 시나리오가 나오기 전에 정해졌으며, 당시로선 논쟁적인 것이었다고 밝혔다. 그 후 정태적 사실이 아니라 혁명 과정에서 운동하는 현실을 담으라는 정언명령인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의거해 소비에트 영화는 “만인을 위한 영화”를 자임하며 완전한 발성영화로 전환했으며, 그 과정에서 “승리한 계급의 요구이자 권리”로서 “마땅히 도래”해야 하며 “있어야 할” “흥겹고 즐거운” 소련을 제시하는 ‘스탈린 식 뮤지컬 코미디 영화’라는 변종을 낳는다. 이 새로운 장르는 현실 사회주의 체제 내에서 할리우드의 대체물로 작동했다.(김수환, 2017:436, 440, 443, 449, 450, 452, 457~458, 460, 462) 〈신혼부부〉의 양상들도 “이행기의 영화”인 〈홀로〉와 여러 모로 닮았다. ‘신혼부부’라는 제목이 표상하는 개인들의 내밀한 생활과 가정이라는 소우주도 ‘소년 빨치산’, ‘또다시 전선으로’, ‘향토를 지키는 사람들’, ‘비행기 사냥꾼조’, ‘정찰병’, ‘빨치산의 처녀’ 등 투쟁하는 공동체의 일원 혹은 집단을 호명하던 북한 ‘예술영화’(극영화)의 제목과는 퍽 다르다. 한편, “노동계급의 노동투쟁” 영화(유우, 2019:150)라고도 일컬어지는 〈신혼부부〉의 평양 선반 공장 노동자 은실, 열차 노동자인 영철과 그 동료들은 이전 북한 영화에 주로 등장했던 농업 공동체와는 절연한 상태다. 전쟁의 기억도 전혀 술회하지 않는 그들은 도시의 공장과 기관차·철로변에서 기계와 더불어 일하고, 직장 기숙사와 평양의 노동자 주택에서 여가를 보내며 평화롭게 노래한다. 신혼부부가 다투거나 속삭이는 말소리 외에도, 영화의 사운드 스케이프는 노동 생산 과정에서 분출되는 기계 소음,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노동자들의 토론과 노래에 초점을 맞춘다. 이들의 음성과 노랫소리는 기계음, 도시를 복구하는 건설 소음들과 함께 인간 내면의 목소리를 영화의 표면에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때로는 새로운 소비에트에서 경험하는 삶의 내밀한 감정을 발산하고 때로는 당의 명령과 자신의 소명에 회의를 토로하는 주인공의 마음을 방백처럼 들려주는 〈홀로〉의 사운드가 담당한 몫과 〈신혼부부〉의 소리와 노래의 역할은 특히 비슷하다. 3년을 넘긴 전쟁으로 초토화된 평양, 그 중에서도 집중적으로 폭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은 대동강변을 건설노동자들이 재건하는 장면을 익스트림 롱쇼트로 조망하거나, 평양 상공을 장식하는 불꽃놀이를 신혼부부가 바라보는 장면은, SF영화처럼 단숨에 혁명 소비에트의 수도를 세워 올리던 〈새로운 모스크바Novaya Moskva〉(알렉산드르 메드베드킨·알렉산드르 올레닌, 1938)를 떠오르게도 한다. 전쟁 중이던 1951년에 작성된 작성된 「평양시복구건설 총 계획도」는 전후 인민경제 복구발전 3개년계획의 수립과 함께 수정되었는데, 실상은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다 한다. 평양의 도시재건도 영화 스튜디오 건립의 경우처럼 소련과 동유럽 기술진 및 건축자재 원조에 기대어 진행되었으며, 건축설계자와 건설노동자들은 휴전 후 다시 발표된 「제2차 평양시 복구위원회 결정」에 따라 평양 중심부를 재설계하고 정치적 상징공간을 조성한다. (김태윤, 2022:97, 128) 〈신혼부부〉는 한국전쟁 이전 ‘민주기지’의 중심도시였던 평양이 전후복구 과정에서 명실상부한 북한의 수도로 자리매김해가는 이 과정을 집약하면서도,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스크린에 재현하기 보다는 “있어야 할 세계”를 향한 사회주의적 열망으로 평양이라는 도시의 새로운 공간들, 노동자들의 일터와 집을 묘파한다. 사람들과 사물들 사이로 신작로가 닦이며 건물이 다시 들어서고 사람들이 그곳을 지나갈 때, 인간 관계 및 계급, 유기물이나 비유기물을 포괄하는 새로운 우주가 형성되는 듯하다. 그런데 이 신세계에서 간간히 불리는 관조적인 노래들은, 스탈린 집권 이후의 소련 뮤지컬 코미디들이 지닌 무작정 흥겹고 쾌활한 음조나 동화와 같은 정조에는 아직 도달하지 않고 있었다. 해방부터 휴전에 이르기까지 북한 문학예술을 지배한 사조는 소위 ‘고상한 사실주의’였다. 신생 국가의 바른 ‘기풍’을 위해 고상한 덕성을 갖춘 모범인물을 창출하는 문예창작을 주문하는 지침이었다.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은 대개 1930년대 이후 소련이 정초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따랐으나, 해방 직후 북한의 ‘혁명단계’는 아직 사회주의를 달성하지 못한 인민민주주의 단계로 여겨졌기에, 이행 단계를 상정하는 개념을 구상한 것이었다. 그러다 〈신혼부부〉가 세상에 나온 직후인 1956년 즈음, 김일성 일인 지도 체제가 확고해지고 중공업 우선정책을 채택하여 생산력이 증대하자 북한도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사회주의 리얼리즘)’를 공식 기조로 언급하게 된다.(정영권, 〈북한영화의 역사와 미학-1945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 《씨네21》, 2018. 06. 27.) 사회주의로 가는 이행기로 치부된 전시 공산주의와 달리, 스탈린의 지도 하에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구현하는 세계는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이 교시로 삼았던 ‘사적 유물론’에 따르면 마지막 세계, 즉 묵시록의 시간을 이미 거친 시간이었다. 그리고 1969년에 이르러, 〈신혼부부〉의 서정적인 노래들은 피와 불의 바다를 재현하는 ‘혁명가극’으로 변모할 것이다. 4. 대기실의 몽타주 〈신혼부부〉는 뮤지컬 장르를 일부 채용하지만, 사회주의 리얼리즘 시대 뮤지컬 코미디의 전형과는 궤를 달리한다. 물론 미디엄 쇼트와 바스트 쇼트가 주를 이루는 〈신혼부부〉의 화편화 전략은 언뜻 봐선 1950년대 소련 영화의 주된 경향들과도 닮아 있다. 그러나, 무수한 회의와 망설임 끝에야 비로소 재건 중인 국가의 부름에 응하겠다는 결심을 하는 은실이나, 자신의 아내가 사회적 노동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자이기도 하다는 걸 많은 시행착오 후에 깨닫는 영철은, 유토피아 건설을 향한 무한한 신념으로 무장한 ‘전형적 주인공’들과는 거리가 멀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의거하자면 되레 ‘부정적 인간형’에 가까울 이들 부부가 마침내 결단하는 순간을 보여주는 - 〈현기증〉과 같은 히치콕의 연출작에서 자주 만나기도 했던 - 줌인트랙아웃 쇼트는 여전히 아방가르드적이다. 문예봉이 분한 반장이 과거의 피땀어린 작업을 술회하는 시퀀스는, 전경에 기계를 배치하고 인물은 초점을 흐린 채 후경에 둔다. 공업 중심 정책을 밀어붙이기 시작한 신생국가 북한의 이념을 형상화하는 표현주의적 연출이라고 부연할 만한 장면이다.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영철이 사과하여 공장에 복귀하기까지 은실이 주로 머무는 집 내부와, 은실을 찾아와 집 밖에서 부르는 공장 동료들의 활력을 때로는 나누고 때로는 합하며 재배치하는 〈신혼부부〉의 편집 방법론은 1920년대 소비에트 아방가르드 영화의 몽타주를 전범으로 삼은 듯 보인다. 1957년에 공개된 윤용규의 〈어랑천〉을 보고 쓴 박철(평론가로 추정)의 아래 글(「서정적 수법이 탁월한 공훈배우 윤룡규」, 《조선예술》, 1957.8)은 윤용규의 작가적 역량, 특히 그의 몽타주에 대한 당대 북한 영화계의 높은 평가를 어림하게 한다. 전문은 한상언 박사의 블로그 에서 볼 수 있다.(현재 통용되는 표준 한국어 규정과 다른 표기 용례를 고치지 않고 원문 그대로 두었다.) “(전략) 전후에 제작한 〈신혼부부〉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복구 건설에 궐기하고 있는 인민들의 생활 화폭이 경쾌한 수법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일군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공명주의와 개인주의가 우리의 건설 사업을 어떻게 방해하고 있는가를 보여 주었고 한편 가정에 대한 낡은 관념이 발전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 극복되여 가는가를 이야기 해 주었다. 이 영화는 평화와 행복을 창조하고 있는 공화국 근로자들의 영웅적 노력투쟁과 이 과정에서 힘차게 일떠서는 전후 복구 건설의 웅장한 모습들을 소개하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노동의 빠포스를 일관시키면서 공화국의 불패의 생활력을 과시하였다. 이상과 같이 윤룡규는 창작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 우리 인민들의 사상 감정을 작품에 정확히 반영시키고 있으며 역사 발전의 중요 모멘트에서 버려지고 있는 사변들을 감동적으로 모사하면서 자기 자신도 현실과 함께 발전해 나갔다. (중략) 선이 굵고 서사적인 수법에 능한 예술가와 섬세하고 서정적 수법에 능한 연출가를 구분할 수 있다면 윤룡규는 보다 후자에 속하는 작가다. 그의 이와 같은 창작적 특성은 영화의 분위기 묘사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 뜨락또르 엔진 소리가 들려온다. 마을 안 골목길들에서 아이들이 환성을 올리며 달려 나온다. 길목에서 모이를 쪼아 먹는 닭이며 돼지들이 달려드는 뜨락또르에 놀라서 기급하여 달아난다. 마을 아이들과 아낙네들의 신기로운 시선이 뜨락또르에 집중되자 운전대에 앉아 있던 명춘보는 그들에게 눈인사를 보내면서 의기 양양행서 뜨락또르를 몰아간다.…… 이것은 영화 〈향토를 지키는 사람들〉의 한 장면이다. 얼핏 생각하면 이 장면은 전체 구성으로 보아 주선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세심하게 살펴보면 이 장면이 전후 관계 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놀고 있는가를 알게 된다. 조상 때부터 물려받은 낙후한 생산도구로 농사를 지어 오는 농민들에게 있어서 근대적 농기계인 뜨락또르의 출현은 경이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윤룡규는 이와 같은 정황을 신기한 괴물의 출현에 놀라서 혼비백산하는 닭, 돼지들의 유모라스한 화폭과 마을 어린이들과 아낙네들의 감정과 또 앞으로 농촌의 개변에 중요한 역할을 놀게 될 뜨락또르 운전수의 궁지에 찬 시선을 통하여 집약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서정적 분위기가 안받침되여 있기 때문에 관객들은 개간지에 뜨락또르가 도착하였을 때 이를 환영하는 농민들의 환희에 찬 감정을 쉽게 이해하게 된다. 이와 같은 수법은 〈신혼부부〉에서도 재치 있게 적용하고 있다. 례를 들어 신혼부부들이 시내로 구경을 나왔을 때 부닥치는 분위기 묘사는 지금까지 신방을 지키고 있던 신부의 감정에 큰 파문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우수하게 형상되였다. 복구 건설에서 로력적 위훈을 세우고 있는 인민들의 씩씩한 모습, 힘차게 일떠서는 웅장한 거리르 이 모든 정황은 신부가 상상하던 지난날의 그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벅찬 현실 속에 신부를 안내했기 때문에 그는 모든 것이 자기를 뒤에 남겨 두고 훨씬 앞으로 나가고 있는 것을 자각하게 되며 온화하던 그의 감정 세계에서는 파문이 일게 되는 것이다. 이밖에 윤용규는 인간의 감정 세계에 침투하는 예리성으로써 신혼부부의 섬세한 감정의 교차를 파악하고 형상에 옮겨 놓음으로써 백화점 장면 또는 가정 내에서의 생활 분위기들에서 갓 결혼한 젊은 부부들의 생활 감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이와 같이 윤룡규는 섬세하고 예리한 감각을 가지고 인간들의 생활감정에 침투하며 생활적 디테일을 발굴하여 인물들의 성격을 형상해 내는 우수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중략) 우수한 몬따쥬와 영화의 정확한 리즘과 템포의 조성은 관객들의 예술적 감흥을 환기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놀고 있다. 〈향토를 지키는 사람들〉의 개간 장면에서 느낄 수 있는 경쾌한 리즘과 템포는 농민들의 노동에 대한 희열과 노동 과정에서 조성되는 율동과를 정확히 결부시켜 주었다. 〈신혼부부〉에서는 건설장 장면에서 얼마 길지 않은 화면들을 훌륭하게 몬따쥬함으로써 건설의 벅찬 분위기를 집약적으로 묘사하였다.(후략)” 박철은 “역사 발전의 중요 모멘트에서 버려지고 있는 사변들을 감동적으로 모사”한다고 진술하며 윤용규 영화 속 몽타주의 힘을 꿰뚫는다. 그가 언급하는, 은실과 옛 동료가 만나는 공사현장 몽타주와 은실 부부가 산책하는 대동강변 몽타주는 인물들의 의식과 무의식을 선명히 드러낸다. 인물뿐 아니라 꽃, 아코디언, 책, 탁자, 스탠드, 창틀, 그림 엽서, 시계, 벽에 걸린 옷과 모자, 빨래, 사과, 밥상 등 실내 정물을 비롯한 〈신혼부부〉 속 사물들은 몽타주라는 이론과 실천의 근간이 되는 ‘파편’으로 작동한다. 이 “이질적인 시간들의 파편”은 “또 다른 생성의 잠재성을 내포하며 (사유의) 섞임, 교환을 필연적으로 요구”하며, “‘잃어버린 것으로 기억된 것’이자 존재의 희미한 전조”로 현전하며 잠재적 카오스라 할 파편화 상태에서 충돌하고 투쟁하며 길항하다 어느 순간 “단박에 빛의 속도”로 결합하여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전대미문의 관계” (이정하, 2022:118~121, 327)를 미구에 창조할, 새로운 역사 주체 형성의 가능성을 감지하게 하는 몽타주를 이뤄낸다. 글 서두에서 언급했던 전시 도록 64쪽에, 1956년 중국 영화 잡지 《대중전영》 15호 표지에 실린 〈신혼부부〉 컬러 스틸이 실려 있다. 은실은 사과를 깎고 있고 공장 막내 옥단이가 은실을 지켜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는 손짓을 한다. 이 장면에서 보이는 사과는 부부생활의 ‘위기’를 맞게 될 은실과 영철의 신혼집 탁자 위에 영화가 전개되는 내내 놓여 있다. 사물과 사람이 부딪히며 접속하여 구축하는 〈신혼부부〉의 리듬과 템포는, “영화의 기계적 지각으로 시각적 무의식 지대, 나아가 일상적 무의식 지대”를 목도할 수 있으며, “이 일상적 무의식 지대가 우리의 의식으로 포착되지 않고 파악되지 않는 비결정적 영역이자 역사에 대한 변증법적 인식의 틀에서도 빠져나가는 영역”이라던 벤야민의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속 한 구절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벤야민의 스승 에른스트 블로흐는 당대의 현실을 복수적이고 공시적인 시간성, 곧 ‘비-동시대성’이란 개념으로 해석할 것을 제안하며 그 방법론을 현대예술의 몽타주에서 찾으려 했다. 블로흐에 따르면 몽타주는 근대 도시의 비-동시대적 시간성에 정합적인 인식 형태이다. 장기지속된 시간 동안 과거의 지층에 잠재해 있다가 현재라는 이질적 공간에 급작스레 출현하는 ‘역사적 징후’를 현시하는 형식인 몽타주는 바로 그러하기에 ‘지금-시간’을 혁명적 아방가르드로 이행시킬 ‘중지(중단)의 방식’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몽타주로 해체된 과거의 대상들에서 이전에 현실화한 적이 없는 잠재적 힘을 포착하여, 사물에 잠재한 힘들을 해방하고 해방된 힘으로 미래를 축조할 초석을 마련하자고 블로흐는 주창한다. 한편 죄르지 루카치가 정초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익히 알려져 있듯 몽타주를 리얼리즘 미학에 반하는 형식주의 방법론의 정점으로 여겼다. 루카치에게 있어 “통일성을 깨뜨리고 유기적인 것의 소멸을 야기”하는 몽타주는 역사적 데카당스의 징후를 드러내는 명백한 표징일 뿐이었다.(이정하, 2022:326~327, 329, 332~333, 335) 블로흐의 역사의식을 빼 닮은 사유를, 후학인 모스크바-타르투 학파를 대표하는 문화기호학의 창시자이며 영화이론가였던 유리 로트만의 저작 『문화와 폭발』에서 발견할 수 있다. 로트만에 따르면 과거와 미래의 관계는 대칭이 아니다. 미래는 가능태의 공간이며, 현재란 아직 전개되지 않은 의미 공간의 갑작스러운 점화이다. 그것은 잠재적으로 미래의 모든 발전가능성을 자신 안에 담지하고 있다. 이 가능성 중 무언가를 선택하는 일이 인과 관계나 핍진성의 법칙을 따르진 않는다. 미래의 선택은 우연히 실현된다. 그러하기에 그 선택은 극도로 높은 정보성을 지니게 된다. 동시에 폭발의 순간은 잠재적 가능성으로만 남은 다른 노선들을 잘라내고 인과 관계의 법칙이 다시 작동하게 하는 기점이기도 하다. 폭발의 순간은 체계의 모든 정보성이 급격히 늘어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완만한 발전은 이제 완전히 새롭고 예측 불가능한 노선으로 도약한다. 체계 내의 모든 요소가, 혹은 폭발로 인해 미래의 운동가능성이 구축한 망 속으로 우연히 들어온 다른 체계의 요소조차, 폭발의 결과로 태어나 미래의 움직임을 결정하는 지배적 요소로 등장할 수 있다. 하지만 다음 단계에서 이미 그것은 사건들의 예측 가능한 연쇄를 만들어낸다. 폭발적인 역사의 국면에서 이루어진 모든 미래 예측의 경험들이 증명해주는 바는, 역사의 급격한 전환을 정확히 예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폭발이 소진되는 순간은 전개 과정의 전환 국면을 표상한다. 역사의 영역에서 이는 향후 발전을 위한 출발점이면서 동시에 자기를 인식하는 지점에 해당한다. 이후의 발전 과정은 의식적으로 우리를 폭발의 최초 지점으로 되돌릴 터이다. 이미 발생한 사건이 관찰자의 판단에 투영되며 새로운 존재성을 획득한다. 이때 사건이 근본적인 변모를 겪게 되는데, 즉 우연히 발생했을 뿐인 사건이 이제 유일한 가능성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관찰자의 의식 속에서 예측불가능성이 법칙성으로 탈바꿈한다. (로트만, 2014: 29~32) 『문화와 폭발』을 한국어로 옮긴 김수환은, 로트만이 쓴 구절을 공들여 인용해가며 다음과 같은 역자 해제를 썼다. “예술가의 창작 과정을 다룬 이 시(알렉산드르 블로크의 「예술가」)에서 제시되는 영감의 순간은 번역 불가능한 것을 번역 가능한 것으로 바꿔놓는, 예측 불가능한 폭발의 국면과 다르지 않다…. “기호학적 지층에 뚫린 창문”으로서 폭발은 불가피하다. …만일 그 창문이 없다면, ‘기호계’ 역시 존속 할 수 없다. 창문(폭발) 없는 기호계(문화)는 더 이상 약동하는 생성의 메커니즘이 아닌 죽어버린 감옥이 될 뿐이다. 폭발은…가능한 것이 아닌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을 향해 조준된 개념이다…. 문화와 폭발, 그것은 모든 허용된 예측가능성의 경계 너머로 돌파하는 예외적 사건의 행위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모든 것을 포괄하는 작동의 원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뚫고 지나갈 균열의 장소, 곧 “기호학적 창문”을 요구했던바, 바로 그 창문이 ‘폭발’의 이름으로 대두한 것이다.”(로트만, 2014:310~311, 315, 329, 332~333) 〈신혼부부〉에는 말 그대로 ‘창문’이 수 차례 대두하며 다음과 같은 몽타주를 동반한다. 영철이 누워 있는 직장 기숙사 창문 밖에서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걸려 멈춘 달의 형상. 공장을 그만두고 답답해하는 은실이 바깥을 내다보는 창에 걸린 레이스 커튼의 미세한 흔들림. 이 장면들은 연속적 시간에서 벗어나 있는 듯한 찰나의 이질적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하며 새로운 시간성을 개시한다. 다시 김수환을 인용하자면, 폭발은 “기존의 상황을 급변시키는 급격한 단절의 사태 자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런 사태를 가능케 하는 어떤 조건의 급작스러운 개시”를 뜻한다. 또, 폭발은 혁명적 사건의 발생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을 위한 가능성의 급작스러운 열림이다. 이는 연속적 과정들의 시간성 안에서 온전히 재현될 수 없기에 분절되고 탈구된 시간이 되며, 이 ‘빠져나온 시간성’ 안에서 불가능했던 잠재태가 가능태로 변모한다. (로트만, 2014:332, 334) 자신들의 과거와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를 탐색하며 창문을 바라보는 은실과 영철 부부는 이 시공에 개시되는 “폭발의 시간성”에 휘말린다. 해방공간의 전후 동안 남북 양측에서 윤용규의 동료였던 임화도 일제강점기에 쓴 글에서 벤야민과 블로흐, 로트만을 연상하게 하는 역사관을 밝힌 바 있다. 「조선영화발달소사」, 「역사·문화·문학: 혹은 시대성이란 것에의 일 각서」 등 1930년대 말에서 1940년대 초 사이에 임화가 조선영화 및 역사기술을 다룬 저작의 구조를 살피며, 손이레는 임화가 뒤엉킨 시간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조선영화의 형성 과정을 기술한다고 분석한다.(손이레, 2018:376~379) 손이레에 따르면, 시급히 과거를 탐구하기 위해, 임화는 위기라는 감각을 압도하는 지금-여기의 조건을 강조한다. 역사에 대한 이러한 발견적 접근은 임화의 시간성에 대한 이해와 결부되어 있다. 이는, 현재의 일부분이 아직 과거 가운데 살고 있음에도 우리가 의식하는 것은 과거 가운데 살아 있는 현재가 아니라 현재 가운데에 살아 있는 과거이며, 현재 가운데 살아 있는 미래에 대하여 우리의 주요한 관심이 향해 있기 때문이다. 임화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성이 뒤얽혀 있음을 “현실성”과 “가능성”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과거 가운데 살아 있는 현재: 과거의 가능성 중 현실화된 것 -현재 가운데 살아 있는 과거: 현실화된 것 중 한때 가능성이었던 것 -현재 가운데 살아 있는 미래: 현재의 가능성 중 미래에 현실화될 것 임화가 역사를 통해 모색하려는 바는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일방통행로에서 도출되지 않는다. 이는 과거의 가능성과 현실화된 가능성들의 관계,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조건 관계를 인식할 때 가능하다. 그것은 현실성과 가능성 간의 혼종을 내비치지만, 동시에 과거와 미래의 접촉면인 현재의 어떤 가능성이 현실화되는지는 인식하기 어렵다는 점도 임화는 지적한다. 가능성과 현실성의 뒤얽힘에서 가능성이 현실화하는 현재가 생성되고, 현실성의 조건 속에서 또 다른 가능성이 배태되는 것이다. 그러나 임화가 식민시기부터 암중모색했던 이 조건들의 창문은, 그에게만은 휴전 직후에 영영 닫히고 말았다. 5. 대기실 밖으로 나서다 〈신혼부부〉 제작을 전후한1954-56년 사이에 ‘전후복구3개년계획’이 진행된다. 1956년 말에는 천리마운동이 노동강화·경쟁운동으로 시작되었고, 이후 생산성 향상을 위한 경제 자주노선 천명은 물론 정신개조를 위한 장기 운동으로까지 이어진다. ‘조선필림’ 로고조차 평양 복귀 직후엔 모스필름의 그것과 닮은 인민 형상이었다가, 천리마운동이 시작되고 사람들 사이에 말이 끼어있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 시기는 1953년 스탈린이 죽은 뒤 1956년 흐루쇼프가 소련공산당 대의원 회의에서 비밀연설을 하며 점화한 스탈린 격하 운동의 시기와도 겹친다. 따라서 북한도 소련의 상황에 자극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1955년에는 남로당계를 대표하던 박헌영이 우선 제거되었다. 1956년 8월에는 전후복구를 위한 경제 원조를 청하러 동구권 국가를 방문 중이던 김일성을 윤공흠 등이 비판하려 했으나 실패하자 반당종파분자로 몰린 서휘 등 4인의 연안파는 중국으로 탈출한다. 이른바 ‘8월 종파사건’으로, 연안파 외에도 소련파 등과의 연합정권 성격이 짙었던 북한이 확고한 김일성 단일 체제로 전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에는 영화감독 정준채의 동생인 음악가 정추와 모스크바 영화학교 유학생들도 연루되었으며, 이들은 북한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소련으로 망명한다. 영화 〈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 〉( 김소영 , 2017)가 다루어 우리에게도 낯설지만은 않은 역사다. 이즈음 김일성은 영화 등 예술창작노선에도 직접 개입하기 시작하는데, 윤용규가 〈어랑천〉을 발표하는 해인 1957년 1월17일에는 조선영화예술촬영소에서 연설했고, 1960년 무렵엔 김정일에게 영화예술 ‘영도자’의 지위를 승계한다. 이 시기에 북한은 자유주의적 문화예술인을 “반동적 부르주아 작가”라 칭하며 ‘반우파 투쟁’도 전개한다. 1956년 1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에서 「문학예술분야에서 반동적 부르주아사상과의 투쟁을 강화할 데 대하여」라는 결정을 내려 기석복, 정률 등을 “협애한 지방주의 및 종파주의” 혐의로 1952년에 비판 받은 김남천, 이태준 등을 지지하는 부르주아 작가이자 종파분자로 지목한 뒤, 같은 해 4월에는 “이러한 부르주아 반동 작가들이 전파한 사상적 악영향”을 완전히 숙청하겠다는 결정을 내린다. 또, ‘8월 종파 사건’ 직후인 1956년 10월에 열린 ‘제2차 조선작가대회’에 나선 김일성은 카프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을 혁명으로 확립하여 “자본주의 사상잔재 버리고 당과 혁명을 위하여,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예술인”이 되라고 요구한다. 중국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벌어졌는데, 1958년에야 북한과 중국에서 ‘반우파투쟁’이 일단락되며 예술적 자율성을 침해하는 관료주의와 사회주의 리얼리즘만을 천명하는 교조적 통제가 문화예술계마저 지배하게 되었다.(유우, 2020:148) 〈신혼부부〉가 상영된 이듬해에는 천리마노동운동을 처음 다룬 영화인 〈행복의길〉(전동민), 한설야(그는 1960년대 초에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의 대표작 『력사』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김일성을 항일유격투쟁의 민족영웅으로 자리매김하며 일인 체제 강화를 선전하는 영화 〈백두산이 보인다〉(김락섭)가 연달아 나온다. 북한영화가 끝에서 두번째 세계의 대기실을 나와 “역사 발전의 마지막 단계”에 진입한 때를 이즈음이라 할 수 있겠다. 그 후, 1960년대에는 “당과 혁명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을 지니고 생산목표 달성을 위해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여 기적적인 성공을 거두는 천리마 영웅들이 등장하는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는 1960년 11월 김일성이 ‘작가, 작곡가, 영화 부문 일군들과 한 담화’에서 「천리마 시대에 맞는 문학예술을 창조하자」라는 연설을 통해, 문예 창작에 시대 정신을 반영하는 현실적 주제, 즉 “천리마의 기세로 내달리고 있는 우리 인민의 이 위대한 창조적 생활”과 “천리마 시대 사람들의 보람찬 생활과 영웅적 투쟁 모습”을 형상화하라고 요구했기 때문이었다.(유우, 2020:182) 또, 앞서 언급한 〈정방공〉을 비롯해, 〈갈매기호 청년들〉(1961), 〈붉은 꽃〉(1963) 등 스탈린 식 뮤지컬 영화들도 다수 만들어졌다.(정영권, 같은 기사) 한편, 〈신혼부부〉의 인간형은 곧 시대정신이 되는 천리마 영웅과는 거리가 멀었다. 영철과 은실은 전후 복구와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해 성심을 다하면서도 회의하고 부부싸움도 하는 평범한 소시민적 인간이다. 문예봉이 연기하는 선반 공장의 작업반장 선배도 목표량 달성을 위해 동료들을 곡진하게 추동하지만, 천리마 시대의 초인적 영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신혼부부〉는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한 전후 복구와 새로운 공화국 건설 과정에서, 개인 영웅주의를 되레 비판하는 작품으로 당대 관객들에게 받아들여졌다. 그들의 세계는 천리마 운동으로 정향된 것이 아니었으니, 그들은 천리마 시대와 이후에 이어지는 ‘고난의 행군’이 아닌 다른 시공으로 향할 수 있었던 가능성을 품고 대기실에 머물러 있었던 셈이다. 이렇듯 사뭇 ‘비-동시대적’인 작품을 창작한 윤용규는 1955년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발탁되고, 1964년에는 중앙위원이 된다. 같은 해에 그는 조선영화인동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 및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이 되고, 배우로도 활동하며 공훈예술가 칭호를 받는다. 하지만 이후 ‘복고주의자’로 몰려 한동안 영화계에서 떠나있어야 했다. 윤용규와 여러 작품에서 협업했던 문예봉도 1969년부터 활동을 중단했다. 잡지《조선영화》 1965년 4월호에 나운규 를 회고하며 찬사를 섞은 일이 빌미가 되었다 한다. 윤용규는 1980년 〈춘향전〉을 다시 한번 만드는데, 유원준과 공동연출했다. 일제강점기의 첫 발성영화인 < 춘향전 >( 이명우 , 1935)에서 성춘향을 연기했던 문예봉이 이번엔 이몽룡의 모친 역을 맡아 북한영화계에 복귀했다. 또, <마음의 고향>에서 주인공 도성의 어머니로 분했던 김선영 이 이 작품에서는 월매로 등장한다. <춘향전> 제작 후에 다시 활동이 뜸하던 윤용규는, 1984년 5월 22일에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 하는 역사적 위업에서 연극 영화 예술인으로서 지니고 있는 자기의 임무와 책임에 충실했”다며 ‘국기훈장’ 1급을 받았다. 이준엽·함충범은 훈장 수여의 실제 연유를 다른 데서 찾는다. 약 한 달 전인1984년 4월 19일, 신상옥과 함께 첫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에서의 활동을 기정사실화하고 김정일의 절대적 신임을 얻은 최은희가, 〈마음의 고향〉으로 자신을 주연배우로 부상시켜 준 윤용규에게 사의를 표했다는 해석이다. 훈장을 받은 윤용규는 1986년에 〈가야금에 깃든 사연〉을 연출했는데, 이 작품 이후의 행적은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북한영화 연구자들은 윤용규가 다시 활동을 중단한 까닭을 최은희·신상옥이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 주재 미국대사관으로 탈출한 사건과 연관하여 유추한다. (이준엽·함충범, 2018:28, 46~48) 무언가 다른 것으로 변모할 수 있었던 전환의 국면이 배태한 영화 〈신혼부부〉와, 시간성이 분기하는 역사와 현실을 현시하는 역량을 지녔던 영화인 윤용규가 ‘오래된 미래’인 과거에서 도래한 2021년. 지금-여기 또한 무언가 다른 것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끝에서 두번째 세계’의 대기실일 지도 모른다. 다시 김수환에 기대자면, 혁명의 진정한 아포리아는 그것의 시작이 아니라 끝의 지점에서, 그러니까 그것이 무언가 다른 것으로 변모되기 시작하는 지점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이 대기실에서 〈신혼부부〉를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 시네마테크 KOFA의 큰 스크린에서 〈신혼부부〉를 꼭 다시 보고 싶다. 참고문헌 - 이준엽•함충범, 「남한과 북한에서 제작된 윤용규 감독 영화에 대한 비교 연구」, 『한민족문화연구』 제63권 63호, 2018. - 유우, 「한국전쟁기 중국에서의 북한 영화에 관한 연구」, 『현대영화연구』 25호, 2016. - 한상언, 「6.25전쟁기 북한 영화와 전쟁 재현」, 『현대영화연구』 11호, 2011. - 한상언, 「전후 북한영화의 재건에 관한 연구」, 『영화연구』 84호, 2020. - 유우, 「북한과 중국의 영화 교류 연구(1956~1966)」, 『비교문화연구』 제59집, 2020. - 김수환, 「혁명과 소리」, 『다시 돌아보는 러시아 혁명 100년 2』, 박종소 엮음, 문학과 지성사, 2017. -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역사: 끝에서 두번째 세계』, 김정아 옮김, 문학동네, 2012. - 유우, 「한국전쟁 이후 북한영화의 제작 및 중국에서의 상영(1955∼1960)」, 『영화연구』 82호, 2019. - 김태윤, 「전후복구시기 ‘수도’ 평양의 탄생과 상징공간의 조성(1953~1956)」, 『도시연구: 역사·사회·문화』 29호, 2022. - 이정하, 『몽타주』, 문학과지성사, 2022. - 유리 로트만, 『문화와 폭발』, 김수환 옮김, 아카넷, 2014. - 손이레, 「도래(해야)하는 식민지 조선영화의 고유성: 임화의 조선영화론 재고」, 『동아시아 지식인의 대화-영화 이론/비평의 감정 어린 시간』, 김소영 엮음, 2018, 현실문화연구 * 가독성을 위해 본문에 필자 이름과 발행시기, 해당 쪽수만 괄호 안에 표기했던 문헌 서지정보를 인용한 순서대로 밝힙니다.
이 영화는 공포영화가 아니다. 아마 제목을 보고 먼저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 원한의 두 꼽추 >는 무협영화이다. 그렇게 부르기는 했지만 그 시절 충무로에서는 일부러 (해서는 안 될 유치한 짓을 하고 있다는 자괴감으로) ‘칼쌈’ 영화라고 부르거나 칼 소리가 부딪친다고 해서 의성어를 빌려 ‘짠짠바라’라고도 불렀다. 물론 이 표현은 일본영화에서 시대활극이나 임협물(任俠物)의 ‘殺陳’ 활극 시퀀스를 부르는 짠바라(チャンバラ)에서 온 말이다. 임권택 의 영화에서 무협영화는 1967년 < 풍운의 검객 >으로 일시적으로 나타났고 그런 다음 < 잡초 > ‘이후’ 그의 목록에서 완전히 사라진 장르이다. 종종 무기력한 방향상실. 나는 지금 < 뇌검 > < 월하의 검 > < 비검 > < 요검 >, 그리고 < 삼국대협 >을 떠올리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이 제목들을 연도별로 순서대로 썼다. 이 영화들이 기괴해 보이는 것은 시행착오를 통해 자기의 세계를 확장시켜나간 임권택의 영화 중에서 유일하게 점점 나빠져 갔다는 것이다. 임권택은 이 영화들에 거의 공감하지 못했다. 그가 아무 거리낌 없이 그 시절 연달아 서울에서 개봉한 호금전의 < 용문의 결투 >와 장철의 <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獨臂刀 )>를 흥미진진하게 보았다고 대답하긴 했지만 영화적으로 아무런 공명을 하지 못했음이 틀림없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임권택은 이 실패들을 이미 준비된 결과처럼 받아들였다.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직업감독으로 그저 제안을 받으면 찍어야 했던 그런 시절이 내게 있었던” 영화들이다. 그렇게 말은 했지만 임권택은 이 영화들을 만들면서 반대로 직업감독으로서 자신의 위치에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내가 사라져 가는 과정에 놓인 증명은 아닐까. 몰락해가는 영화산업. 참혹한 이중검열. 한국영화에서 1970년 혹은 1971년은 설명하기 까다로운 시간이다. <뇌검> <월하의 검> <삼국대협> 이 영화는 제목이 두 개다. 다른 제목은 <흑룡가의 쌍검>인데 (영진공 시절에 정리한) 예전의 감독 연보에는 두 편의 제목이 마치 다른 영화처럼 각각 등재되어 있었다. 같은 영화사. 같은 감독. 같은 배우, 같은 각본, 같은 촬영. (정리된 문헌에 따르면) 거의 같은 내용. 그래서 처음에는 한 편의 영화 스텝들과 배우들을 이끌고 동시에 두 편의 영화를 만들 줄 알았다. 1970년대에는 종종 그렇게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내가 들은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 감독이 제작자일 때 스텝들과 배우와 한 편의 영화 계약을 한 다음 시침 뚝 떼고 한 편의 영화를 찍는 척하면서 약간씩 대사와 세트를 바꾸면서 두 편의 영화를 찍고 나중에 편집해서 둘로 나누어 개봉했다가 분쟁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다시 정리된 자료에서 <흑룡강의 쌍검>이라는 제목은 사라졌고 영화 자막에 올라오는 대로 < 원한의 두 꼽추 >만 남았다. 그런데 사라진 제목도 잘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우선 이 영화에는 중국 동북부와 내몽고 국경 사이를 흐르는 헤이룽강(黑龍江)은 고사하고 강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쌍검은 한 명의 무사가 두 자루의 검을 지니고 다니는 것인데 아무도 두 자루의 검을 지니고 다니지 않는다. 그렇다고 두 자루의 검이 각자 나뉘어서 운명을 따라 순환하는 것도 아니다. 이 영화에서 문제가 되는 천검(天劍)은 단 한 자루의 명검이다. 구태여 말하자면 기구한 운명으로 서로 헤어져 자란 두 쌍둥이 형제를 비유하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조롱하듯이 말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좀 기묘한 방식으로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사실도 덧붙여야겠다. 내 관심은 여기에 있다. 한걸음 뒤로 물러난 < 원한의 두 꼽추 >는 마치 물구나무를 선 것처럼 임권택 에 대해서 미처 다른 영화들이 말하지 못한 것을 거의 외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자포자기가 항상 가로막고 있던 어떤 방어선을 일시적으로 치워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떤 방어선? 그렇다. 내가 1960년대 임권택의 영화를 보면서 반복적으로 발견하는 것은 약간 추상화된 할리우드 고전 영화의 문법과 다소 두렵다는 듯이 공동체의 운명에 복종하기라도 하는듯한 굴복 사이의 좁힐 수 없는 공백이다. 서로 비대칭인 둘 사이의 거리는 임권택이 그것을 조선 시대, 혹은 한국전쟁의 전쟁터, 그리고 휴전 이후의 남한 사회에서 할리우드 장르영화들이 요구하는 것을 수행하려는 데서 발생한 것(들)이다. 그런 다음 그 공백을 메우는 과정에서 임권택은 풍경을 발견했고,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가혹한 삶을 보았고, 다시 한 번 그 둘 사이에서 벌어지는 모순의 시간이 근대의 역사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으로 밀고 나아갔다. 나는 먼저 임권택이 이상할 정도로 웨스턴 영화들에 대한 열렬한 애호가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싶다. 물론 웨스턴이 일본 시대활극 영화들을 경유하여 홍콩에 도착했고 그런 다음 대만 무협소설과 결합하여 무협영화가 만들어졌지만 임권택은 그런 계보에 관심이 없었다. 분명히 거의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 돌아온 왼손잡이 > < 황야의 독수리 >나 <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 > <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마라 >를 만들었을 때 임권택은 틀림없이 자신이 본 웨스턴 영화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물론 그의 영화에서 누군가는 안소니 만을 볼 것이고, 누군가는 오토 플레밍거를 찾아낼 것이며, 아마 대부분은 윌리엄 와일러와 조지 스티븐스를 떠올릴 것이다. 이 영화들은 웨스턴 영화들의 거의 끝나가는 종말기에 마주할 수 있었던 거의 모든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악당들은 이제 더 이상 바깥에서 찾아오지 않으며, 주인공은 불안에 떨고 있고, 정의가 지켜지는 것은 종종 서사의 차원 바깥에서 이루어진다. 거기서 계보를 그려보는 것은 좀 더 나중에 할 생각이다. 하지만 임권택에게 좀 이상한 방법으로 할리우드영화의 고전주의가 지닌 우아한 아름다움이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을 뛰어넘어 승리를 거두는 순간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순간을 목격할 때마다 다소 당혹스러워진다. 이를테면 드라마를 따라가다가 갑자기 한순간 그 신을 어떻게 찍을 것인지를 몰두하는 것만 같은 시간과 마주하게 된다. 그때 예상치 않은 상황이 나타난다. 임권택은 고전적인 가치들에 대해서 어떤 두려움을 가진 것처럼 보존하고 싶어 한다. 단지 이것은 권선징악이라든가 아니면 비극을 수행하기 위하여 하여튼 결말을 맺어야 한다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오히려 그의 비극은 다른 데서 온다. 임권택은 어떤 경우에도 차라리 주인공이 희생될지언정 세상이 몰락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물러난다. 어쩌면 이것이 그의 영화에서 기쁜 엔딩이 드문 이유인지도 모른다. 약간 과도할 정도로 단순하게 말하고 싶다. 임권택의 영화에서 보여주는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가끔 기이하게 보이는 것은 그가 이미 바로크 시대에 접어든 웨스턴 영화에서 자기 자신도 모르게 감명받은 데서 오는 흔적일 지도 모른다. 그런 다음 이 바로크적 미장센들은 1969년 혹은 1972년을 통과하면서 대부분 망가져 버렸다. 장기적인 과정에서 그 자신의 탈색과정, 하지만 일시적으로 그것이 이 시기의 임권택을 우울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원한의 두 꼽추>는 이 시기에 놓인 영화이다. 첫번째 시간: 약을 탄 술을 마시는 지원필 두번째 시간: 꼽추가 된 지원필 다음 질문은 그렇다면 여기서 산산조각 났다고 생각한 파편 속에서 무엇을 물구나무 세울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설명하는 것은 몹시 번잡한 작업이 될 것이기 때문에 다소 따분하지만 도식적으로 분류하는 방식을 택할 생각이다. 우선 세 개의 시간. 첫 번째 시간은 이야기 속의 이야기이다. (이 장면은 이야기 도중에 흑백으로 되돌아간 다음 (flash_back) 진행된다) 검술의 한 유파에서 다음 장문을 가리는 자리인데 사형인 지원필은 가장 무술이 뛰어나지만 장문의 딸인 달래는 그의 경쟁자인 진수왕을 사랑한다. 그래서 장문을 가리는 자리에서 진수왕이 이길 수 있게 음모를 꾸며 지원필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척하면서 정신이 혼미해지는 약을 탄 술을 권한다. 지원필은 대결을 하다 쓰러지고 진수왕은 그의 등을 내리쳐 꼽추로 만든다. 뛰어난 무술을 가진 남자의 약한 마음을 파고든 사악한 계획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 그 여인의 비열한 애인. 공모 앞에서 좌절한 미래의 시간. 그러므로 이 남자는 이제 미래의 시간을 되찾고자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불구가 되어버린 이야기. 두 번째 시간은 첫 번째 시간으로부터 일정한 간격을 벌려놓은 다음 다시 이어진다. (그리고 여기가 영화의 첫 장면이다) 꼽추가 된 지원필이 돌아와 진수왕에게 대결을 신청한다. 무술로는 지원필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진수왕에게 그의 아내가 된 달래가 그의 친구인 정태성을 찾아가 모든 검을 잘라버리는 명검 천검(天劍)을 빌려오면 된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그렇게 아끼는 검을 빌려 줄 리가 없다고 하자 그러면 빼앗아오면 되지 않느냐고 재촉한다. 새로운 음모. 새로운 적. 새로운 복수의 계열이 여기서 생겨난다. 진수왕은 그의 친구를 죽이고 후환이 두려워 마침 절에서 아이를 낳은 그의 아내까지 참하려 한다. 그의 아내는 쌍둥이 청과 용을 낳았는데 진수왕의 부하들이 절에까지 찾아오자 자신은 청을 감싸 안고, 그리고 하인은 용을 안고 도망친다. 낳자마자 헤어진 형제, 그들의 기구한 사연. 그들은 성장한 다음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해결하기 위해 돌아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두 번째 시간의 복권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그들은 둘로 나뉜 그들 사이를 확인하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어야 할 것이다. 하나를 둘로 나누고 그런 다음 이중으로 동여맨 세 개의 이야기. 아내는 부하들에게 쫓기다가 청을 절에 숨겨놓은 채 자신의 몸만 피신하고, 하인은 용을 나무에 숨겨놓고 부하들의 눈을 자신에 돌린 다음 죽음을 맞는다. 마침 진수왕과 대결을 하러 가던 지원필은 숲에 숨은 진수왕의 부하들과 싸우다가 그만 나무에 숨겨놓은 아이를 적으로 오해하는 바람에 상처를 입히고 급히 달려간 의원으로부터 이 아이가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꼽추가 되었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미처 계산에 포함되어있지 않았던 실수. 자신의 원수에게 꼽추가 된 이 남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를 이번에는 자신이 꼽추로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야만 하는 운명에 떨어진다. 무엇이 무엇을 삼켜버리고 있는 것일까. 비극 안의 비극. 참극 속의 참극. 죄 값을 받기 위해 찾아간 자가 새로운 죄 값을 치르는 자리에 간다. 지원필은 진수왕과의 대결에서 천검에 그의 칼이 잘리자 몸을 피신한 다음 꼽추가 된 아이와 함께 산에 묻혀 살아간다. 여기까지 영화가 시작된 지 17분 동안의 이야기이다. 세번째 시간: 꼽추가 된 용 그런 다음 세 번째 시간이 시작한다. 마치 이제까지의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될 이야기의 서론이기라도 한 것처럼 여기서 갑자기 긴 시간을 건너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벌어질 사건들은 시간의 기호들을 놓고 다투는 해독의 능력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꼽추가 된 용은 어른이 되었고 지원필을 아버지로 삼아 산속 오두막에서 살아간다. 청은 산사의 절에서 스님으로부터 무술을 전수받고 속세로 돌아온다. 당신이 상상하는 다음 이야기는 이렇게 진행될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청과 용은 형제임을 알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여기에 지원필이 가세해서 진수왕에게 복수를 할 것이다. 그렇게 풀려나간다면 < 원한의 두 꼽추 >가 당신을 안심시키기는 하겠지만 너무 진부해서 더 이상 볼 이유를 찾지 못할 것이다. 물론 이 세 번째 시간이 복수의 활극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임권택 은 차례로 우리의 기대를 차단시킨다. 우선 지원필은 용에게 복수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러면서 그 자신도 진수왕에게 복수를 포기하고 살아간다. 그는 그냥 주어진 세계 자체를 인정한다. 그는 마치 복수 대신 다른 어떤 것을 하면서 살 수도 있는 것 같은 태도를 취한다. 어떤 것? 아버지의 자리. 단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자리. 그는 용이 자기 품에 안겨 꼽추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게 자신의 진정한 운명인 것처럼 받아들인다. 그래서 용은 지원필로부터 어떤 무술도 전수받지 못했다. 청은 (아마도 과거를 알고 있는 것만 같은 태도를 취하는) 스승으로부터 자신의 부모가 일찍 돌아가셨으며 속세에 나가서도 자신보다 뛰어난 무술을 지닌 고수들이 있으니 함부로 나서지 말라는 충고를 듣는다. 그러므로 청은 자신의 부모뿐만 아니라 동생에 관한 어떤 정보도 얻지 못한다. 그 둘이 쌍둥이이기는 하지만 둘 사이를 오간 재빠른 이미지의 교환을 통해서(parallel_editing) 서로 전혀 닮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좀 더 중요한 순간은 스승의 교훈이다. 늙은 노승은 청이 지닌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지만 그에게 복수 따위란 처음부터 청이 해야 할 의무가 아니라는 기회를 준다. 의무로부터 풀려난 자유. 하지만 영화가 이제부터 할 일은 당연히 청의 자유를 다시 의무로 되돌리는 것이다. 그때 여기에는 정말 그 의무가 자유를 포기하고서라도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라는 질문이 뒤따라 올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두 사람을 셈에서 빼놓으면 안 된다. 한 사람은 물론 복수를 하기 위해 두 번째 시간에 돌아온 지원필이다. 만일 그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진수왕은 친구 정태성의 명검 천검을 빼앗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청과 용은 헤어질 이유가 없으며, 그렇게 되면 용은 꼽추가 될 이유가 없으며, ...으로 이어질 연쇄적인 사건들. 그런데 세 번째 시간이 되자 용을 키운 지원필은 정반대로 복수를 완전히 포기한다. 그는 용에게 마을로 내려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그 이유는 다시는 진수왕과 다시 얽히는 순간을 피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고 용이 모피를 팔기 위해 마을에 내려가 진수왕의 아들과 만나면서 마찰이 벌어지고 지원필은 자기 발로 진수왕을 찾아가게 된다. 여기서 그 둘 사이의 멋진 대결의 순간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지원필은 이미 대결할 수 없는 자신의 육체를 드러내기라도 하듯 지팡이에 의지하고 몸을 불균형하게 뒤뚱거리면서 가까스로 진수왕의 성에 이른 다음 보자마자 무릎을 꿇고 용을 풀어달라고 하소연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복수를 포기한 지 오래이며 이미 그럴 수도 없는 처지임을 몇 번이고 호소한다. 여기엔 나중의 결정적 장면을 위한 카타르시스를 상승시키기 위해 무언가 우리를 괴롭히면서 준비된 어떤 카드도 없다. 정말 그는 복수할 의사가 없으며 또한 그 순간을 위해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다. 오로지 감옥에 갇혀있는 용을 구하겠다는 생각뿐이다. 말하자면 지원필은 여기서 완전히 아버지가 되어있다. 그가 겉보기에는 비루해졌지만 오히려 지원필만이 유일하게 복수의 의무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그 새로운 의미에 누구보다도 충실해진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지원필만이 유일하게 두 번째 시간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원한의 두 꼽추 >가 몹시 우스꽝스러워 보이긴 하지만 여기에는 원인이 있자 그 결과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전통적인 주인공으로부터 벗어나 자기에게 부여된 의무를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된 고전적인 주인공에로의 어떤 점핑이 있다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임권택 은 분명 여기서 카타르시스와 냉소적으로 대결하고 있다. 청과 용의 어머니 두 번째 인물은 아마도 당신이 잠시 잊었을 청과 용의 어머니이다. 그녀는 두 번째 시간에서 청을 버리고 무사히 도망쳤으며, 그런 다음 의미심장하게도 용과 청이 진수왕의 마을에 들어섰을 때 그녀도 마을의 주막을 찾아온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해야겠다. 그녀는 청과 함께 마을에 들어선다. 물론 아직 그 둘은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마치 거기에 모성의 직감이 작동하기라도 한 것처럼 갑작스러이 그녀 얼굴로 다가간 카메라(zoom_in)를 통해 드러난 약간의 놀라움을 담은 표정이 말없이 그것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 다음에야 용이 빼앗긴 모피를 찾기 위해 주막에 찾아오면서 세 사람은 처음 한자리에 모인다. 여기서 이상한 것은 두 쌍둥이의 어머니는 청을 보자마자 한 눈에 알아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용을 볼 때에는 그저 사태를 구경하듯이 쳐다본다. 이 장면만을 떼어놓고 보면 잘 설명이 안 된다. 그런데 한참을 더 지난 다음 이 영화에서 가장 이상한 롱 테이크와 마주하게 된다. 문제의 신. 마침내 지원필과 용의 어머니이자 정태성의 아내를 만났을 때의 장면은 내가 알고 있는 한 임권택 의 모든 영화중에서 가장 이상한 장면 중의 하나이다. 다소 길긴 하지만 이 장면의 대사는 전부를 인용할만한 가치가 있다. 임권택은 수없이 잘게 쪼갠 이 영화에서 이 장면을 끊지 않고(long_take) 한 번에 찍었다. 지원필은 그녀의 주변을 빙빙 돌면서 대사를 하고 두 번 마치 심리적인 마음의 동요를 찍는다는 듯이 그녀의 얼굴에 다가간(zoom_in) 다음 다시 물러난다(out). 01:06:59 ~ 01:08:18 롱테이크 _ “용을 어디다 숨겼나?” _ “당신이 가진 검법을 용에게 전수해준다는 약속을 해주면 만나게 해드리죠” _ “그래서 어쩌자는 거지?” _ “용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야 합니다. 진수왕을 죽여서 억울한 죽음을 당하신 남편의 원혼을 위로해드려야죠” _ “용은 그 사실을 알고 있소?” _ “아직은...” _ “댁이 어머니라는 사실도?” _ “물론...” _ “댁은 내가 용을 어떻게 키웠는지 잘 모르실 겁니다. 핏덩이 어린 것을 그저 안고 비바람 눈보라 치는 긴긴 세월 헤매면서 이집 저집 돌며 동냥젖을 빌어 먹이며...” _ “말씀을 안 하셔도 짐작은 갑니다. 하지만 용은 아버지 원수를 갚아야 합니다” _ “어린 것을, 그 불쌍한 어린 것을 죽음 속에 몰아넣을 수는 없지 않소” _ “그게 자식 된 도리입니다” _ “내가 대신 원수를 갚아 드린다면?” _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용을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_ “당신이 어머니라는 사실도 비밀에 부칠 수 있겠소?” _ “...물론” 나는 처음에 이 장면 앞에서 몹시 당황한 나머지 이제까지 영화를 보면서 이들 사이의 인물 관계를 잘못 파악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라는 생각마저 했다. 대사를 따라가면서 차례대로 열거해보자. 우선 첫 번째, 어머니는 지원필을 만난 다음 용을 그동안 길러준 것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감사의 표시를 하지 않는다. 두 번째, 용을 납치한 사람은 그를 낳은 어머니이다. 그런 다음 기른 아버지를 협박하고 있다. 그녀는 용에게 단 한 번도 자신이 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히거나 혹은 따뜻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세 번째, 어머니는 지원필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용에게 검술을 가르쳐줄 것을 요구한다. 누구라도 반대의 판본을 떠올릴 것이다. 만일 여기서 지원필이 이제 생모가 나타났으니 내가 할 일은 다 했으며 내 갈 길을 가야겠소, 그러니 나머지 일은 당신들이 서로 알아서 처리하시오, 난 이미 복수를 포기했소, 라고 해도 사실 그를 붙잡을 명분이 없다. 그런데도 용의 어머니는 용을 볼모로 삼으면 지원필이 반드시 자신의 요구를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장의 이상한 주술관계를 유심히 들여다보기 바란다. 여기서 마치 그 두 사람은 부모의 자리가 바뀐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넷째, 용의 어머니는 용이 아버지의 복수를 해야 한다면서 그에게 출생의 비밀을 이야기할 생각이 없다. 그렇다면 용은 왜 복수를 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 차라리 그의 행위는 복수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일까. 게다가 용의 어머니는 자신의 정체를 밝힐 생각조차 없다. 그렇다면 용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다섯 번째, 더 이상한 것은 지원필의 반응이다. 그는 생모가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버지 역할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심지어 두 사람의 대화에서 용의 부모는 그를 낳은 어머니가 아니라 그를 키운 지원필인 것처럼 보인다. 여섯 번째, 가장 이상한 대화는 마지막 순간에 벌어진다. 지원필은 차마 용이 피를 보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내가 대신 원수를 갚아준다면?”이라고 말을 한다. 잠깐만. 그런데 진수왕은 동시에 지원필의 원수가 아니었던가. 그는 자신이 꼽추가 된 사연을 완전히 잊은 것처럼 행동한다. 이렇게 말하겠다. 여기서 지원필에게 첫 번째 시간의 계열은 완전히 삭제되었다. 이제부터 지원필은 그 자신이 아니라 오로지 용을 위해서 진수왕과 “죽음 속에 몰아넣는” 대결로 뛰어든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용의 어머니이다. “그 불쌍한 것을 죽음 속에 몰아넣을 수는 없지 않소”라고 물을 때 그 질문은 복수에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그 행위는 사실상 자살적 몸짓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단호하게 “그게 자식 된 도리입니다”라고 대답한다. 나는 이 대답을 계산해보고 싶다. 지원필은 복수가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고 경고하는 데 그래도 그걸 해야 한다고 말할 때 용의 어머니는 만일 그걸 할 수 없다면 자식으로서 차라리 죽는 편이 나은 선택이라는 말을 하는 중이다. 그런데 그 죽음이 어머니로서의 그녀뿐만 아니라 죽은 남편의 아내로서의 그녀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런 다음 가장 이상한 질문과 대답이 등장한다. 지원필은 그래서 자신이 대신 복수를 하겠다는 질문을 하자 용의 어머니는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용을 당신께 드리겠습니다”라고 대답한다. 나는 이 대답 앞에 약간 멍해졌다. 용은 물건이 아니다. 혹은 금은보화가 아니다. 용은 사람이다. 사람일 뿐만 아니라 그녀의 아들이다. 그런데 그녀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심지어 그런 제안을 한 것도 아닌데, 자신이 먼저 지원필의 뜻을 잘 알기라도 하듯, 그가 차마 꺼내지 못한 말을 대신하기라도 하듯, (한 번 더 반복하자면)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용을 당신께 드리겠습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심지어 지원필은 그 대답을 받아 “당신이 어머니라는 사실도 비밀에 부칠 수 있겠소?”라고 다시 묻는다. 용의 어머니는 약간 망설이는 표정을 지은 다음(zoom_in) “...물론”이라고 대답한다. 물론, 이라고 했나요? 그 질문에 대해서 용의 어머니의 올바른 대답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이라는 일망의 망설임이 거기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도대체 그 요구에 대해서 “...물론”이라는 대답이 가져오는 의미의 반사적인 메아리는 얼마나 이상한가. 그 대답에는 만일 당신이 아들을 대신해서 남편의 복수를 수행한다면 나는 기꺼이 아들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라는 말이 압축되어 있다. 그건 남편의 복수가 아들의 의미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뜻인지, 아니면 용의 존재가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인지, 잠시 동안 그 둘 사이에서 어리둥절해진다. 지금 이 두 사람의 거래는 얼핏 보기에는 장르의 규칙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는 것 같으면서 한편으로는 완전히 벗어나 있다. 서로의 대사를 따라가면서 이런 거래를 보는 영화는 무협영화가 아니라 멜로드라마이다. 그때 이 두 사람은 언제나 아이를 사이에 놓고 낳은 어머니와 기른 어머니의 만남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아이가 보고 싶어서 낳은 어머니가 찾아오고 기른 어머니는 차마 기른 정 때문에 아이를 떠나보내지 못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다소 아이러니한 심정으로, 희미하게라도, 하지만 누구라도, 정소영 의 < 미워도 다시 한 번 >을 떠올렸을 것이다. 1968년 7월 16일에 개봉한 다음 가장 유명한 멜로드라마 중의 한편이 된 영화. 어린 아들 김정훈을 사이에 둔 두 엄마 문희와 전계현. 물론 둘의 거래는 여기서 갈라선다. 가난한 형편의 낳은 어머니는 부잣집 기른 어머니를 만난 다음 그녀가 착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아이를 부탁하고 돌아선다. 아이를 낳지 못해 기른 엄마는 낳은 엄마에게 그 아이를 잘 기르겠다고 맹세한다. 물론 그다음 다시 우여곡절이 있다. 하지만 지원필과 용의 어머니는 기른 아버지와 낳은 어머니라는 비대칭을 사이에 둔 다음 고통스럽게 대중들에게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공감의 감상적인 눈물을 냉소적으로 뒤틀기 시작한다. 낳은 어머니는 기른 아버지에게 그 정을 미끼로 하여 자기의 목표를 이루려고 한다. 얼핏 보면 그녀는 아내로서 충실하기 위해 어머니의 자리를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이 비대칭을 좀 더 심층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죽은 남편은 아내가 자신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포기하는 것과 이제 돌이킬 수 없게 이미 죽은 자신의 헛된 복수를 하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느 쪽을 권했을까. 지금 지원필이 빼앗으려는 것은 사실상 용의 아버지의 자리, 그러니까 용의 어머니의 남편의 자리인 것이다. 차라리 그녀는 용을 지원필로부터 빼앗아 강제로 삭제된 남편의 자리에 돌려보내서 가문을 잇게 만드는 것이 진정해야 할 일이 아닌가. 좀 더 도식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유령이 되어버린 남편의 빈자리를 메울 수 있는 사람은 그의 아들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 아들인 용이 가문으로 돌아와 공백을 메울 때 비로소 그녀의 진정한 역할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미워도 다시 한 번>(1968) <마더>(2009) 그러나 우리를 좀 더 복잡한 심경으로 이끄는 것은 그 둘의 자리 그 자체이다. 우리들에게 모성애는 거의 신성불가침의 영역처럼 문화의 거의 모든 코드에서 가장 보수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자식에게 희생적이며, 자애롭고, 언제든지 자신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는 가족 안의 희생양. 이 사랑의 과잉을 실재의 자리에서 가까스로 다룬 영화가 봉준호 의 < 마더 >이다. 그러나 임권택 은 이 자리에 아버지를 가져다 놓은 다음, 그것도 낳은 아버지가 아니라 기른 아버지를 가져다 놓은 다음, 그 자리에서 낳은 어머니를 대립시킨다. 그런데 그 대립은 성립하는 것일까. 누구라도 여기서 멈칫 한 다음 그 둘 사이에 어떤 비밀이 담긴 서사가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의심을 가질지 모른다. 그런 건 없다. 이 설명을 위해서 여기에 미처 등장하지 않았지만 셈에 포함시켜야 할 세 번째 등장인물을 생각할 차례이다. 그건 이 자리에 없는 다른 한 명의 쌍둥이 청이다. 내가 영화를 다 본 다음 다소 의아하게 여긴 것은 청과 용 둘 사이에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인지 단 한 번도 구분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 장면에 이르기까지는 물론이고 이 순간을 지난 다음 마지막 장면까지 그들은 서로를 부른 적이 없다. 더 이상한 것은 이 형제는 끝내 힘을 합쳐 아버지의 원수 진수왕과 싸우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지원필이 힘겹게 진수왕과 그의 아내 달래와 그의 아들과 싸우는 동안에도 청은 자신의 원수를 위해 용과 싸우다가 (이미 그럴 필요가 지난 서사의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팔목 하나를 잘라버리기까지 한다. 청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하면서 어떤 때는 지원필과 용을 돕고, 어떤 때는 진수왕의 식객으로 머물면서 그의 편을 든다. 마침내 청이 용의 칼에 찔려 숨지면서 그의 옷 속에 숨겨져 있는 형제임을 밝히는 문신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 둘은 비로소 포옹한다. 그리고 둘 중 하나만 살아남는다. 여기서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 중인 것일까. 임권택 에게는 기이한 계산법이 있다. 너무나 이상한 계산법. 누군가는 이걸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공감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당신이 어느 쪽에 서서 바라보건 계산법 자체를 무시한다면 그 이후를 더 이상 따라오기 힘들지 모른다. 마지막 장면에서 내가 신기하게 바라본 것은 청과 용이 힘을 합치는 대신 죽을 때까지、장르의 컨벤션 따위는 완전히 무시하고 정말 죽을 때까지, 그 둘이 마주 싸운다는 사실이다. 마치 하나만 남아야 한다는 듯한 칼부림. 이때 이 장면을 거슬러 올라가서 물어보고 싶어진다. 혹시 처음부터 둘 중 하나만 남아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표현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어머니는 용에 대해서 별다른 욕심이 없다. 그녀는 두 명의 쌍둥이 중에 청은 알아보면서 용은 알아보지 못한다. 그런 다음 용이 자기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그 사실을 숨기는 것은 지원필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다. 심지어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 아들을 담보로 하여 지원필을 협박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자신의 아들이라는 걸 알아본 청에게는 단 한 번도 복수를 요구한 적이 없으며 그걸 전달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다. 마치 지금으로 충분하고 앞으로도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달라는 것만 같은 태도. 자식과 어머니 사이에 벌어진 이 이상한 채무관계. 이와 비슷한 관계를 임권택 의 영화에서 십 년 후에 다시 보게 된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그 영화는 < 길소뜸 >이다. 물론 <길소뜸>과 < 원한의 두 꼽추 > 사이에는 단순하게 시간적인 간극 이상의 복잡한 설명을 요구하는 차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나는 요점에 도달하기 위해서 사태를 단순하게 만들고 싶다. 줄거리의 환기. 낳은 어머니 화영은 한국전쟁 때문에 그만 아들을 피난통에 잃어버린다. 그런 다음 그녀는 재혼을 하고 다른 자식들을 낳는다. 그 아이의 아버지 동진은 그녀를 오랜 시간 찾아 헤매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다른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역시 그녀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낳는다. 그런 다음 KBS 방송국이 벌인 이벤트인 ‘이산가족 찾기’를 위해 여의도에 펼쳐놓은 만남의 광장에서 우연히 (필연적으로?) 다시 만난다. 잃어버린 자식을 함께 찾던 두 사람은 어쩌면 아들일 지도 모르는 석필이라는 사내를 만나러 춘천에 간다. 석필도 결혼을 했고 자식이 있다. 그런데 그동안 석필은 고아로 함부로 자랐으며, 교양도 없이 거칠고, 사사건건 화영과 부딪친다. 아니, 그보다 화영은 석필을 보자마자 자기 아들이라는 사실을 느끼면서도 이 사내가 자기에게 다가오는 것을 거부한다. 단지 세월이 이 두 사람을 낯설게 만든 것이 아니라 그 둘 사이에 놓인 계급이 어머니와 아들을 갈라놓는다. 그 둘 사이엔 어떤 정도 없다. 석필에게는 어느 날 갑자기 돈 많은 여자가 나타난 것이며 자신을 어떤 조건도 없이 단지 아들이라는 이유로 경제적인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한다. 화영은 그걸 느낀다. 이 사내가 지금 자기에게 필요로 하는 것은 어머니(와 자식이라는 관계의 복원 혹은 화해)가 아니라 돈이라는 사실을 본다. 화영은 유전자 검사를 요구해서 그걸 구실로 하여 석필이 아들이라는 사실을 부정한 다음 현재의 가족들을 만나러 떠난다. <원한의 두 꼽추>의 아들과 어머니 <길소뜸>의 아들과 어머니 두 어머니는 거의 동일한 이유로 자기가 낳은 아들을 부정한다. 그것은 그 아들의 사회적으로 추락한 지위이다. 그리고 그 추락의 과정을 통해 학습된 행동이 즉각적으로 거부의 태도를 불러일으킨 다음 그 둘 사이의 간극은 점점 더 멀어지기 시작한다. 좀 더 괴상할 정도의 유사한 장면을 지적할 수 있다. (< 원한의 두 꼽추 >에서) 용은 죽은 동물의 껍질을 벗긴 모피를 들고 와 진수왕의 아들과 흥정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어머니와의 첫 번째 대면이다. 좀 더 정확하게 용은 어머니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고, 어머니는 그가 용이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한 채 쳐다본다. 서로에 대한 지식의 바깥에 놓여있지만 총체적인 국면의 지식 속에 놓인 그들. (< 길소뜸 >에서) 화영과 동진, 그리고 석필은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길을 지나가던 개를 그만 치어 죽인다. 석필은 피 흘리며 죽은 개를 안고 횡재를 한 표정으로 보신탕을 해먹자고 할 때 화영은 그 모습을 보고 치를 떨며 내다 버리라고 소리 지른다. 여기서 단지 두 사람 사이의 차이만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그 사이에는 세월의 간극이 이 둘 사이에서 공백의 정치학을 작동시키고 있는 중이다. 물론 임권택 은 그 과정을 사회학적으로 설명하거나 역사적인 인과관계로 환원시키지 않는다. 그 대신 현존재의 시간이 자기 앞에 놓인 공백의 간극과 마주쳤을 때 그 앞에 놓인 가늠할 수 없게 깊은 심연의 무시무시한 재난을 임권택은 영화라는 방법을 동원해서 그 두 개의 시간을 오간 다음 몸서리치게 쳐다본다. 내 질문은 여기에 있다. 한쪽은 논리적으로 완전하게 설명되는데(< 길소뜸 >) 다른 한쪽은 어떻게 해서도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 두 개의 장면에서 작동하는 모성애의 기계는 완전하게 동일하게 작동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여기서 기계라는 말은 다소 부담스럽긴 하지만 완전하게 (캉길렘에서 출발하여 푸코를 경유한 다음 가타리를 거쳐 흘러들어 간) 들뢰즈에게서 빌려온 개념이다. 무언가 잘못 배치된 것 같은 이 장치들은 얼핏 보면 오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임권택 의 영화 안에서 그것은 제대로 활동하고 있는 중임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같은 순간에 전혀 다른 맥락 안에서 동일하게 작동할 리가 없지 않은가. 나는 이 대답을 임권택의 전기로 덮어쓰고 싶지 않다. 그건 아무 해결도 아닐 것이다.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그러므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기괴해 보이기까지 한다. 물론 복수는 성공적이었다. 지원필은 진수왕이 여전히 천검을 지니고 있는데도 대결 끝에 죽이는 데 성공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고 진수왕과 결혼한 달래를 죽이는 데도 성공한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낳은 아들을 죽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청이 죽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때 청은 이 대결 끝에 죽은 것이 아니라 용과의 싸움에서 죽은 것이다. 그는 죽기 전 끔찍하게도 용의 한쪽 손을 자르는 데 성공한다. 용은 이기기는 했지만 미처 알지 못했던 그의 다른 형제로부터 한쪽 손을 잃는다. 이제부터 용은 마음으로는 자신의 형제를 죽였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할 것이며, 다른 한 편으로 그 형제로부터 자신의 한쪽 손을 잃었다는 분노를 안고 살아갈 것이다. 그런데 청은 지원필과는 아무 사이가 아니다. 그러므로 청이 죽은 것은 지원필에게 어떤 감정도 끌어내지 않는다. 남은 또 한 사람. 쌍둥이의 어머니는 자신의 소원대로 복수에 성공하긴 하지만 자신이 한눈에 알아본 아들 청을 잃고 기꺼이 지원필에게 양보하기로 약속한 용은 살아남는다. 그녀는 분명히 지원필에게 약속했다. 만일 지원필이 대신 복수를 한다면, 그녀 자신의 입으로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용을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다음 “당신이 어머니라는 사실도 비밀에 부칠 수 있겠소?”라는 지원필의 요구를 지키지 못했다. 그만 대결 중에 자신이 어머니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영화가 끝난 다음이다. 용을 볼모로 지원필을 협박했을 뿐만 아니라 복수를 해준다면 자신이 용을 포기할 의사가 있음을 알게 된다면 용은 어떤 태도를 취할까. 지원필과 용, 그리고 용의 어머니가 무수한 시체를 뒤로하고 떠나가는 뒷모습이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긴 하지만 이 장면 ‘이후’에 기다리는 것은 유사 가족의 성립이 아니라 이들 사이의 완전한 파국이다. 마지막 장면, 은실의 시선, 참혹한 쇼트들 아직 설명이 끝나지 않았다. 이 마지막 신에서 가장 이상한 점은 그들의 행위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pont_of_view)에 있다. 나는 아직까지 거의 이 영화의 서사에서 얼룩에 가까운 한 인물을 소개하지 않았다. 그건 진수왕과 달래 사이의 딸 은실이다. 은실은 지원필이 용을 풀어달라고 호소하기 위해 성을 찾아왔을 때 갑자기 등장한다. 그런 다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저 영화에 의지해서만 이야기한다면 오로지 인도적인 차원에서, 지원필과 용의 편을 들면서 아버지에게 자비를 요구한다. 나는 이런 장르에서 적의 딸이 갑자기 주인공 혹은 그이 아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순간을 수없이 알고 있다. 다만 이 서사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새로운 계열의 탄생. 거기에는 예상치 않게 두 사람 사이에, 혹은 둘 중 한 사람에게, 사랑이라는 변수가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괴이하게도 여기엔 그런 코드가 발생하지 않는다. 은실은 용에게 사랑의 감정을 전하는 어떤 기호도 제공하지 않으며, 용은 그녀의 호의에 대해서 단 한 순간도 의심의 제스처를 보이지 않는다. 마치 그 둘 사이는 어떤 감정의 계산도 없이 휴머니즘이 요구하는 희생만이 있는 것만 같은 윤리적 행동을 한다. 그러므로 지원필과 용과 그의 어머니가 은실웰염≠랜옇泉飴句옅개ぐ?#영?사이에서 나눌 감정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임권택 은 사실상 이 서사에서 완전히 외곽에 놓여있는 은실의 시선으로 어느 순간부터 이 마지막 신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이 시선의 논리에 아주 엄격하게 대응하듯이 차례로 쇼트를 소개한다. 그래서 구태여 서사의 관점으로나 혹은 감정선의 흐름에서나 아니면 리듬의 화음에서 무언가 불균질 하거나 불편해지는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죽은 진수왕과 그의 아내 달래와 그 둘 사이의 아들의 시체를 은실의 시선으로 차례대로 보여준다. 세 개의 참혹한 쇼트. 딸이 바라보는 부모의 시체. 여동생이 바라보는 오빠의 시체. 그런 다음 떠나가는 지원필과 용과 그의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은실을 보여준다. 그때 우리는 은실이 어떤 마음인지 전혀 가늠할 수 없다. 그녀는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그녀의 호의는 가장 나쁜 형식으로 돌려받은 것인가. 이 마지막 신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은실이라는 점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가장 불쌍한 사람의 시선.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그녀의 가족 모두를 잃었으며 뿐만 아니라 성의 태수의 딸로서 안락하게 살아가던 삶 전체를 상실한 것이다. 만일 그녀가 이 결말 ‘이후’에 복수를 맹세한다 할지라도 아무도 그녀를 탓할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더 밀고 나아가면 즉각적으로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 원한의 두 꼽추 >는 아직 충분한 대답을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그러므로 표면의 설명에 머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임권택 의 이상한 계산법에는 어떤 메타 서사가 있거나 아니면 반대로 아주 은밀하게 감춰진 네트워크가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 계산법 아래 숨겨진 침묵은 무엇일까. 대부분 숨은 듯이 가려져 있다가 때가 되면 갑자기 나타나 셈을 치르기 시작한다. 나는 수없이 예를 들 수 있다. 이 계산법은 < 화장 >의 마지막 시퀀스에까지 이어진다. 김훈 작가가 미처 쓰지 않은 오상무와 추은주 사이의 마지막 작별인사. 그 이상한 작별의 방식, 이때 거의 대립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선택의 전도가 있다. 여기에 감정의 카타르시스가 있는가? 없다. 그러기는커녕 이야기를 더 이상 진행하는 것이 위태로울 정도로 어리둥절해진다. 기른 아버지 지원필은 용을 위해서 모든 희생적인 요구를 받아들인다. 그는 용이 자기의 충고를 듣지 않고 마을에 내려와 소동을 벌인 끝에 진수왕에게 붙잡히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옛 원수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용서해달라고 빈다. 달래가 황금불상을 훔쳐오면 교환하겠다는 제안을 하자 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도둑질을 오로지 용을 위해서 한다. 하지만 황금불상을 훔쳐오는 데 성공을 했음에도 진수왕은 교활하게 지원필이 그 과정에서 무공을 되찾은 것임을 걱정한 나머지 그의 한쪽 팔마저 잘라버린다. 하지만 꼽추에 한쪽 팔마저 잃은 지원필은 이 지경이 되어도 단 한 번도 용을 원망하지 않는다. 당신은 임권택의 계산법이 이 모든 우여곡절을 치르고 난 다음에 낳은 어머니에게서 나온 제안이라는 것을 셈에 포함시켜야 한다. 이 계산법은 어떤 법칙에 근거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간극 사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환상이 침입하는 과정처럼 보인다. 이때 이 말을 오해하면 안 된다. 여기서 환상이란 말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 계산법이 현실에서는 맞지 않는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현실에서 모든 계산법은 하나의 이데올로기의 수식화이다. 핵심은 이 계산법이 어떤 이득을 취하느냐가 아니라 이 이득을 취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드러내고 있느냐는 것이다. 임권택은 자신의 계산 과정에 진실이 있다고 믿는다. 그때 진실이란 실재의 일부가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계산속에서 우리는 임권택이 드러내는 진실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대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실재의 형상이 무엇인지를 보아야 한다. 영화의 방법이란 자신의 계산에 충실해지는 것이다. 임권택은 여기서 힘겹게 그 셈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용은 꼽추가 되고 한쪽 손이 잘려나가면서 기꺼이 그 계산의 미끼가 되었다. 나는 <원한의 두 꼽추>를 가혹한 영화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임권택은 점점 더 가혹해질 것이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이 영화는 공포영화가 맞을지도 모른다. 감정의 공포. 진실이라는 네트워크의 공포. 찢어진 네트워크 사이의 실재의 공포. 무엇보다도 방법의 공포. (계속) 1971년 78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태창영화 각본 박철민 촬영 구문석 안길원 김택수 한숙 김청자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의 르네상스는 두 개의 축으로 재도약 한다는 점이 이전의 경향과 크게 변별점을 가진다. 우선 가장 일반적인 접근 방식으로 사업적인 성공을 목표로 대중적 오락성과 작품성 두 마리 토기를 다 잡으려는 30억 이상의 장편 애니메이션과 작품성과 특정 매니아 층을 겨냥한 10억 이내의 저예산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구분될 수 있겠다. 오성윤 감독의 < 마당을 나온 암탉 >과, 100만을 넘긴 3D CG애니메이션 영화인 < 점박이 >가 첫 번째의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둘 다 나름 한국의 척박한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성공한 모델로 꼽히고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오랜 제작경험을 가진 스튜디오와 영화제작사와 투자배급사의 안정적인 결합으로 제작 및 마케팅비를 마련하고 100개관 이상의 상영관을 확보하며 관객몰이를 하는 전형적인 메이저 영화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을 다 갖춘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그리 쉬운 얘기가 아니다. 무엇 보다 검증 안 된 감독의 첫 번째 장편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작년은 우리에게 저예산 장편의 가능성과 함께 한계도 명확히 깨닳게 한 해였다고 생각한다. 한혜진 , 안재훈 감독의 < 소중한 날의 꿈 >과 연상호 감독의 < 돼지의 왕 >이 극명하게 이러한 현실을 보여주었다. < 돼지의 왕 >은 부산국제영화제의 3관왕 수상과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관으로 초청되며 언론의 집중조명과 호의적 국내외 여론형성으로 차기작 < 사이비 >의 투자결정과 일련의 과정이 지금까지의 한국애니메이션에서는 볼 수 없었던 분위기와 현상들은 메이저급 장편애니메이션이 펼쳐온 전략과 분명 차별화된 것으로 앞으로의 행보에 주목해야 할 이유이다. 최근 개봉한 이대희 감독의 첫 번째 장편 < 파닥 파닥 >과 아카데미 제작연구과정의 김선아 , 박세희 감독의 < 은실이 >는 이러한 면에서 다시 곱씹어볼 만한 작품들이다. 이대희 감독의 <파닥 파닥>은 < 돼지의 왕 >에 비하면 7억이라는 상대적으로 큰 제작비와 영화진흥위원회 프로모션 지원사업을 받아 개봉한 3D애니메이션으로 아마도 3D장편 중에는 가장 저렴한? 제작비로 완성한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횟집의 어항에 갇힌 고등어인 ‘파닥 파닥’의 탈출을 둘러싼 어항 속 물고기 캐릭터들의 이해관계를 통해 인간의 세상사를 비판적이고 풍자적으로 그려낸 이야기로 다소 무거운 현실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 다른 독립, 저예산 장편애니메이션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영화아카데미 장편 제작연구과정 작으로 올 겨울 개봉한 장편애니메이션 < 은실이 > 또한 한 마을의 정신지체장애를 가진 소녀를 둘러싼 성적 폭력성을 방관자와 가해자의 입장에서 우리사회의 약자에 대한 태도의 양면성을 그려낸 작품으로 최근 이슈화 되고 있는 집단적 성도덕성의 추락을 꼬집고 있다. 저예산 장편 애니메이션이 이러한 사회문제화 된 소재의 선택과 감독의 연출에 있어 좀 더 자유로운 건 메이저 영화들이 가져갈 수 없는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장편이라는 도전과 제작경험이라는 값진 이득 이면에는 많은 부분 잃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즉, 감독이 추구하는 작품세계와는 별개로 무언가 안 어울리는 제작시스템과 배급환경에 지배를 받고 있는 것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제작비 규모의 문제만이 아니라 제작에 상당부분을 외부인력으로 아웃소싱 할 수밖에 없는 저예산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 현실에서 제작 스탭의 공감과 참여방식의 문제, 컨트롤의 범위와 한계에 대한 문제이다. 제작인력의 안정적인 확보만큼이나 적절한 노동력의 활용과 시스템의 지원에 대한 문제는 특히 독립 장편 애니메이션에 새롭게 부각될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배급에 관련해서는 자본의 논리에 지배 받을 수밖에 없는 거대한 배급시스템에 표류하는 저예산 영화들의 통제하기 어려운 것이 가장 큰 현실적인 벽이다. 그나마 < 파닥 파닥 >이 CGV무비꼴라주상과 영화진흥위원회 지원이 없었다면 개봉조차 어려웠을 것을 생각하면 다양성 영화에 정부지원은 제작 및 마케팅 지원을 대폭 확대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해결 방안이라고 볼 수 있다. < 파닥 파닥 >은 50개관 상영 첫 주 5천명 정도의 저조한 성적에 그쳤지만 이는 여름성수기를 맞아 쏟아진 국내외 대작에 밀린 어쩔 수 없는 부분으로 무엇보다 어려운 제작현실에서도 끈기와 열정을 잃지 않고 견뎌낸 감독과 제작진에 큰 격려를 보내고 싶다. 긍정적인 평가로는 저예산에서 감히 디즈니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뮤지컬 장면으로 연출을 시도했고 영화를 좀 더 풍요롭게 만들고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3D와 2D의 적절한 제작방식의 활용 등 새로운 도전도 눈에 띄었다. 마지막으로 저예산 애니메이션들이 해마다 한 두 편 개봉하는 것은 감독이 커나가고 시장을 다양화 하는 면에서 반가운 일이지만 아직도 한국의 저예산 장편 애니메이션은 갈 길이 많이 남아 있다. 작품으로서의 완성도와 함께 관객에 대한 재미를 다 줄 수 있는 작품이 나와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상업영화의 기본 생존법칙을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지만 관객이 외면하는 저예산, 독립 장편 애니메이션은 존재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재미란 단순한 오락은 아닐 것이다. 메이저 작품이 잃어버린 독창적인 매력이라고 할까? 해답은 작품을 만드는 감독과 이를 기대하며 기다리는 관객에게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