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화의 춤
- 출연
- 이경화 춤초롱 무용단, 계원예술고등학교 무용과
근래 전 세계 영화제에서 가장 크게 주목받은 러시아 애니메이션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 콘스탄틴 브론지트 감독의 <우주 없이 못살아 We Can’t Live without Cosmos>이다. 2008년 <화장실 러브스토리>로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후보에 올랐던 감독이 그 후 6년 만에 발표한 작품이다. <우주 없이 못살아>는 2015년 5월에 열린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단편 우수상과 관객상을 동시에 받으며 한국 관객의 마음을 얻었고, 같은 해 6월에 열린 자그레브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와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도 단편 부문 대상을 받으며 세계 관객의 마음을 재차 확인했다. 수많은 영화제와 시상식을 사로잡은 <우주 없이 못살아>의 주인공은 우주인 훈련생들이다. 작품은 건장한 청년들이 마주 서 침대 위를 뛰는 장면으 로 시작한다. 바깥은 별이 가득한 밤. 성긴 눈발이 사선으로 날리는 매서운 계절이다. 1203, 1204 나란히 이어진 번호를 받고 같은 방을 쓰는 두 사람은 유모차 타던 시절부터 단짝이다. 그러니까 우주인 흉내를 내며 침대 위를 뛴 것도 하루 이틀은 아닐 것이다. 2015년 3월, 나는 모스크바에서 하룻밤 묵었다. 러시아 작가들이 휴양처럼 생각한다는 오픈애니메이션페스티벌 행 버스가 다음날 출발할 예정이었다. 페스티벌이 제공한 호텔 이름은 코스모스(호텔 클럽 이름은 솔라리스)였다. 3,600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어마어마한 규모지만 객실은 소박했다.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을 대비해 세운 건물인데 내부 장식도 그때 그대로가 아닌가 싶었다. 호텔 창밖으로 보이는 공원에는 은빛 탑이 예리하게 솟아 있었다. 거대한 호텔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공원을 산책했다. 하늘은 아침부터 무척이나 새파랬고 눈이 부실만큼 번쩍이는 탑 꼭대기에는 로켓이 놓여있었다. 거기서 유리 가가린의 조각상을 발견했다. 인류 최초로 우주 궤도 비행에 성공했다는 사람. 그곳은 모스크바 우주 박물관이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씨가 훈련받은 가가린훈련센터도 모스크바에서 멀지 않다. 러시아 어린이라면 장래희망으로 우주인 정도는 한 번쯤 쓰겠구나 싶었다. 밤마다 함께 우주를 나는 꿈을 꾸던 두 친구는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며 일상적인 체력단련과 수영, 구토를 유발하는 원심력 훈련까지 해낸 끝에 우주인과 예비 우주인으로 선발된다. 1203을 태운 로켓이 흐린 하늘을 지나 별이 빛나는 우주에 다다르자 센터 사람들과 모니터로 지켜보던 1204는 박수치며 환호한다. 그러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그만 교신이 끊긴다. 1990년 일본 최초 우주인의 통역사로 소련을 찾은 요네하라 마리는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이카로스들의 묘”를 만난다. 1) 그녀의 기억에 언론은 1961년 우주 비행에 성공한 가가린을 소비에트의 이카로스라고 불렀다. 그녀는 넓은 기지 한구석의 비석을 보며 야심 찬 성공의 그늘에 가려 적막한 죽음을 맞은 이카로스가 한둘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친구가 떠난 까만 하늘, 가만히 가득한 별들이 흰 눈이 되어 쏟아진다. 지상에 슬픔이 두껍게 쌓여도 삶은 멈추지 않는다. 훈련센터 관리자는 곧장 1203의 기록에 줄을 긋는다. 1204는 이제 다음 차례 우주인이다. 하지만 혼자 남은 그에게 꿈은 더는 같은 의미가 아니다. 엔딩 크레디트가 오르기 전 이 영상 편지의 수신인이 뜬다. TO OUR FRIENDS <우주 없이 못살아>는 별이 가득한 우주와 우주비행사를 꿈꾸는 두 친구 이야기다. 둘은 어릴 때부터 수없이 함께 우주를 이야기하며 자랐을 것이다. 우주 없이는 못산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은 꿈을 나눈 친구가 아닐까. ‘우정 없이 살 수 있을까.’ 소중한 친구들에게 보내는 감독의 메시지를 부디 확인하시길 바란다. 주1. 요네하라 마리, 「이카로스와 가가린」, 『교양 노트』, 마음산책, 2010
지난 8월 21일부터 25일까지 4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중 하나인 히로시마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이 열렸다. 이번에 열린 제15회 히로시마애니메이션페스티벌은 격년으로 열리는 영화제의 30주년 기념이기도 하였다. 30년을 계속 이어온 히로시마애니메이션페스티발은 어떠한 모습일까?. 개인적으로는 2008년, 2012년에 이어 세 번째 영화제 참가다. 이번 영화제에는 14년 전 < 아빠하고 나하고 > 상영으로 히로시마를 방문했던 이경화 SICAF 영화제 팀장과 18년 전 영화제를 방문했던 김상화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 집행위원장과 함께 참가하였다. 김상화 집행위원장은 영화제를 방문한 첫날 바로 이렇게 이야기했다. ‘하나도 변한 게 없네’ 라고. 히로시마 영화제는 변한 게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2년에 열린 제4회 대회부터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옆에 자리한 아스테르 플라자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의 많은 영화제들이 행사를 치르기 위해 영화관부터 고민하고, 재정상황에 따라 영화관을 옮겨 다녀야하는 상황과는 많이 다르다고 느꼈다. 아스테르 플라자는 전문적인 영화 상영관이 아니다. 대, 중, 소 홀로 이루어진 일종의 문화회관에 가깝다. 일본 내부에서는 전문적인 영화 상영관에서의 상영을 원하는 목소리들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장소는 바뀌지 않았다. 20여 년을 같은 장소에서 개최하고 있다. 건물 내부에는 숙박 시설도 있어서 영화제를 찾은 경쟁 감독들은 건물 안에서 모든 생활이 가능하다. 전시 및 워크숍도 같은 건물 안에서 열린다. 영화제의 모든 행사가 한 공간에서 열린다. 그래서 사람들도 한 공간에 모인다. 일본 애니메이션 관계자가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다. 개막식에 참가해서 잠깐 인사를 하러 오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영화제를 보러 온다.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고, 온갖 교류가 이루어진다. 행사기간 내내 행사장은 관계자들과 애니메이션 팬들로 가득 차 있다. 명실공히 일본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영화제다. 손으로 직접 만든 홍보물 학생 마켓에서 열린 세미나 현장 영화제 기간에는 자유롭게 참가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준비되어 있다. 1층에서 열리는 학생 필름 마켓에서는 일본에 있는 애니메이션과 부스가 설치되고, 학교를 소개하는 각종 강연, 상영회, 세미나가 열린다. 5층에 있는 NEXUS POINT에서는 비즈니스를 위한 프리젠테이션이 이루어진다. 자신의 작품을 들고 와서 상영할 수 있는 Frame In이라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자신의 작품 상영을 알리는 종이를 직접 손으로 써서 행사장 곳곳에 붙이러 다닌다. 손글씨와 직접 그린 그림이 어떻게 보면 관공서 같아 보이는 건물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처음 영화제를 찾았을 때, 한국과는 다른 손글씨의 친근함이 인상적이었다. 여전히 변하지 않은 영화제의 전경 중 하나이다. 히로시마 영화제에서 가장 놀라운 건 경쟁부문의 상영이다. 놀랍게도 일본어 자막이 없다. 상영 전 안내방송을 통해 ‘모든 상영은 원어로 상영됩니다’라고 방송한다. 일본에서 하는 영화제에 일본어 자막이 없다니. 관객의 대부분이 일본 사람이건만.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일본에서도 상상하기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당당히 자막 없이 상영하고 있다. 주변에 있는 관객들도 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더 놀라웠다. 이유가 무엇이든 대단한 ‘깡’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상영할 수 없다. 2014년 영화제 포스터 / 2008년 행사장 사진 올해로 히로시마 애니메이션 영화제는 30년을 맞았다.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영화제는 크게 변한 게 없다. 언제나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영화제다. 그에 비해 한국에서는 해를 거듭할수록 영화제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영화제를 지원해주는 각 기관들은 이러한 양적 성장을 주요 평가지표로 삼고 있다. 원하건 원하지 않든 간에 일단 규모를 키우지 않으면 향후 지원을 약속받을 수 없다. 이러한 한국의 영화제들과는 달리, 히로시마 영화제는 그저 해오던 것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히로시마 영화제에는 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영화제를 지켜오고 있는 상징 같은 인물이 있다. 바로 페스티벌 디렉터인 기노시타 사요코이다. 히로시마 원폭을 다룬 애니메이션 <피카돈>의 감독 기노시타 렌조와 함께 영화제를 만들어 지금까지 운영해오고 있는 인물이다. 히로시마 영화제가 변하지 않고, ‘깡’있는 영화제로 지금까지 자리를 지켜온 건 기노시타 사요코라는 영화제의 중심인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그녀를 다른 자리에서 잠깐 만난 적이 있다. 그 때 그녀는 영화제를 운영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바로 ‘영화제를 책임질 사람(또는 조직)’이라고 이야기하였다. 한국은 많은 영화제가 있다. 그리고 종종 책임지는 조직도 사람도 명확하지 않은 영화제를 본다. 참여하고 있는 조직이 너무 많아 서로 눈치만 보고, 불만만 이야기하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영화제도 있다. 같은 조직에서 운영하더라도 조직의 시스템상 책임자가 바뀌게 되는 경우나, 지원기관과의 충돌 과정에서 바뀌는 경우도 본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책임지는 사람이 없으면 무엇이 이루어질 수 없다. 히로시마 영화제는 어떻게 보면 미숙해 보인다. 그러나 영화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책임지고 있는 기노시타 사요코는 그녀의 방식대로 다시 다음 영화제를 준비할 것이다. 그렇게 흔들리지 않고 영화제를 지켜온 30년은 결코 우습게 볼 수 있는 세월이 아니다. 그녀의 깡에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러한 영화제가 뚝심있게 버티고 있다는 사실은, 영화제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운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영화제의 활동가와 기획자에게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아닐까. 상영관 앞 작가 부스 상영관을 메운 관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