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2011년 3분기 이달의 우수 게임 시상식
- 제작년도
- 2011
<순교자>는 유현목 영화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기독교반공문예영화다. ‘기독교·반공·문예’는 당시 정권과 순치되고 나아가 권장되었던 요소들이어서 일견 검열에서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의 상영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공보부의 공식적인 검열 단계는 비교적 수월히 통과했지만 국방부, 중앙정보부, 내무부, 문교부의 개입이 이어졌다. 어떤 면에서는 국책과 순치되는 영화였기 때문에 관계기관들이 더 간섭하려는 면도 있었다. 또한 이 영화는 <7인의 여포로> 이후 국가가 영화를 보다 적극적으로 통제하려던 분위기와 맞물려 있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언론을 통해 드러나는 엘리트들의 의견 역시 중요한 벡터로 작용하고 있었다. 따라서 <순교자>를 둘러싼 논란과 검열 과정은 검열 관계기관들의 역학을 비롯해 <7인의 여포로> 이후 검열의 변화, 그리고 이로 인한 갈등이 당대 여론을 주도하는 지식계층을 통해 봉합되는 국면을 드러낸다. <순교자>의 검열과정: 상영허가증 발급 이후 국방부, 정보부, 문교부, 내무부가 개입하다 1965년 3월5일 제작사(극동흥업)는 공보부에 <순교자> 영화 제작을 신고한다. 3월 20일에 “정부시책과의 관계-저촉 사항 없음”이라는 전제 하에 시정사항 4개가 지적되며 제작신고가 수리된다. 이후 영화가 완성되어 중도에 제작권한을 양도받은 합동영화주식회사 명의로 6월 10일 ‘영화상영허가신청서’가 제출된다. 6월 15일에 “보안상 유해로운 점 없음”이라는 검열의견서가 작성되고, 대사 1개처를 삭제하는 조건으로 6월 16일에 ‘영화상영허가증’이 발부된다. 그런데 상영이 허가된 6월 16일에 국방부에서 화면 1개처를 삭제하고 대사 1개처를 수정하라는 전언통신문을 보내온다. 공보부에서는 이미 영화상영허가증을 발부한 상태에서 내부적으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6월 18일 공보부 영화과 계장이 기안한 내부 결재 서류에 의하면 화면 1개처 삭제를 추가 제한사항으로 승인하지만, 이미 녹음이 끝난 뒤라 대사 수정은 불가능하다고 적고 있다. 또한 “방화 <순교자> 심사 의견 처리”라는 제목의 부전지에는 <순교자>는 “군사극영화가 아니고 종교극영화”로 “국방부 후원은 군장비 후원”이었고 공보부에서 “국방부에 심사 요청한 바가 없”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에 결국 6월 18일 공보부는 국방부에 직접 “수정사항을 업자 측에 통보하시고 수정토록 조치”하라는 전언통신문을 보낸다. 공보부와 국방부 간의 미묘한 신경전이 감지되는 대목이다. (그림 1) 전언통신문: 국산극영화 “순교자” 심사의견 처리 검열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순교자>가 아카데미극장에서 상영중이던 6월 22일에 중앙정보부는 “보안상 유해로운 것이 내포되어 있음을 발견”하였으므로 “삭제 후 상영토록” 하라고 공보부에 통보한다. 그 내용은 화면 3개처와 대사 3개처를 삭제하라는 것이었다. 중앙정보부의 지적에 대해서는 공보부가 보다 긴장하는 기색이 서류에서도 감지된다. 6월23일 ‘방화 <순교자> 제한조치의견 처리’라는 제목의 서류에서 중앙정보부를 CIA라고 칭하며 “토의가 요하다고 사료되옵기 공람하고 회신은 추후 기안”하는 것으로 처리한다. 그러면서 ‘참고사항’으로 “검열 당시 CIA 파견 검열관”이 “보안상 유해로운 점이 없다”고 판단했다는 내용을 부기하고 있다. 여기에서 6월 15일 합동검열에 중앙정보부가 참여하여 “보안상 유해로운 점 없다”는데 동의해 놓고 뒤늦게 다른 소리를 하는 것에 대한 난감함이 묻어난다. 1964년 중앙정보부의 입장 번복으로 감독이 구속되었던 <7인의 여포로> 사건을 겪은 후였기 때문에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냥 반공영화가 아니라 ‘기독교반공문예영화’였다. 6월 26일에 공보부는 이 영화가 “세계 각국에서 다량 발매된 재미교포” 작가의 소설에 충실하였다는 점과 “당초 귀부와의 합동검열 당시 합의된 바” 있으며, “귀부 추가제한요구를 집행하는 경우에 예견되는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는 점을 들어 “현행대로 상영토록” 하겠다는 의견을 중앙정보부에 통보한다. (그림 2) 방화 “순교자” 제한조치 요청에 대한 회신 이로써 국방부와 중앙정보부의 사후 검열은 일단락된 듯한데, 아직 등급을 정하는 문제가 남게 된다. 6월 17일에 합동영화주식회사가 ‘학생관람허가신청서’를 공보부에 접수한 뒤 6월 26일에 문교부 측에서 제한사항 없이 ‘고등학생 이상’에 관람을 허용해도 된다는 의견을 공보부에 통보한다. 그런데 7월 2일에 문교부가 입장을 바꾸어 군인의 방에 걸린 태극기가 표준형이 아니므로 표준형 태극기로 화면을 수정해야 고등학교 이상 관람을 허용한다는 의견을 보낸다. 그리고 7월 6일에 내무부 치안국 보안과에서 ‘학생관람불가’ 의견을 공보부에 보낸다. 7월8일 공보부에서는 문교부와 내무부의 의견을 종합하여, 등급은 ‘미성년자관람불가’로, 문제가 된 태극기 화면은 표준형 태극기로 수정하여 필름과 대본까지 다시 제출하라고 제작사에 통보한다. <7인의 여포로> 사건, 유현목, 그리고 <순교자> 당시 정부의 정책 방향에 거스를 것이 없어 보이는 영화가 이렇게 수난을 겪게 된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영화 한 편을 두고 문화 담당 기관은 물론 국가안보, 치안, 교육을 담당하는 복수의 행정기관들이 검열에 참여하였다는 데 이유가 있다. 이에 대해 국책에 부응하는 영화라고 해서 검열을 덜 받은 것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간섭하려는 기관이 많았다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또한 <7인의 여포로> 사태 이후 중앙정보부가 영화 통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5.16쿠데타 직후에 설립된 중앙정보부는 박정희 정권 내내 전방위적으로 권력을 강화해간다. <7인의 여포로> 사태는 영화계에서 하나의 변곡점이 된 사건이었고 <순교자>는 그 여파 속에서 검열을 받은 것이었다. 여기에 당시 기독교계의 반응은 또 하나의 중요한 변수였다. 유현목 감독은 자서전에서 <순교자> 개봉 당시 상영을 앞두고 기독교계가 반발했다고 회고한다. 목사들이 문공부장관을 찾아가 영화에서 신목사(김진규)가 ‘신은 없다’고 말하는 대목을 문제 삼으며 상영금지를 호소했다는 것이다. 개봉한 이후에도 기독교계의 반대는 계속되어서 지방 상영극장 앞에서는 신자들이 입장을 막기도 했다고 말한다. 1) 당시 신문을 보면 기독교계가 일방적으로 반대만 한 것은 아니고 찬반이 있었다. 그리고 문제가 된 것은 영화만이 아니라 원작소설부터였다. 1964년 영문으로 출간된 『순교자』(The Martyred) 2) 는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남한에도 번역되었다. 그런데 이 소설 속 목사들의 죽음이 거룩한 순교로 묘사되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국내 일부 기독교계에서는 김은국 작가를 “20세기의 가롯 유다”라고까지 비난했다. 유현목 감독이 이 소설을 영화화하자 큰 화제가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소설에 대한 비난의 연장선상에 놓이게 된 것이었다. 목사들이 공산당 앞에서 신을 부정했다는 것도 문제였지만, 그것을 증언하는 인물이 북한군 소좌라는 것이 ‘반기독교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는 분단 이후 남한 개신교와 반공 이념의 강력한 결속이 ‘배교와 이단’의 판단에 결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기독교계에서도 “현대 기독교의 문제를 제시하고 기독교적인 고민을 심화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하는 목사들―문익환(한국신학교), 변선환(이화여고 교목), 김광우 목사 등―이 있었다. 3) 또한 언론에서도 “성직자의 고독을 묘파” 4) 한 “중량감 넘치는 역작” 5) 이라는 호평이 이어졌다. 그러던 7월 13일에 유현목 감독은 돌연 반공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다. 1965년 3월 23일에 ‘은막의 자유’ 6) 라는 주제로 열린 세계문화자유회의 한국본부 세미나에서 발제한 내용이 뒤늦게 말썽이 된 것이었다. 7) 공안 검찰은 <순교자>뿐만 아니라 <오발탄>(1961)과 <잉여인간>(1964)도 용공적이라고 판단하여 유현목 감독을 소환했다고 전한다. 8) <7인의 여포로>의 이만희 감독에 이어 또 다시 영화감독이 반공법으로 입건되는 데 대해 영화계는 물론 보수언론에서도 우려스러워했다. 9) 이와 같은 논란 속에서 <순교자>는 더욱이 문제작이 되었고, 영화에 대한 평가는 높아졌다. 1965년에 베니스영화제에 처음으로 5편을 출품했는데, 그 맨 앞에 <순교자>가 놓였다. 10) 1965년 『실버스크린』 6월호에서는 “세계명작을 영화화한 영화예술의 극치”로 <순교자>를 소개한다. 11) 그리고 9월호에서는 종전에 영화학도들을 위해 연재해오던 학술적인 코너 3개를 합쳐 “내일의 영화인을 위한 쎄미너”라는 지면을 만들고 개봉된 영화 중에서 문제작 한 편을 골라 집중적으로 분석 검토하는데, 그 첫 번째 텍스트로 <순교자>를 선정한다. 1965년 말에 가면 <순교자>에 대한 문화예술계의 평가는 “종교논쟁까지 불러일으켰던 작품”으로 “테마는 휴머니즘”으로 정리되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유현목 감독은 공보부에서 주관하는 대종상 감독상을 수상한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유현목 감독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계속되어 1966년 1월 서울지검은 반공법 위반에 음화제조 혐의(<춘몽>)를 더해 유현목 감독을 불구속 기소한다. 1967년 3월 반공법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되고, 음화제조에 대해서는 벌금 3만원 형이 확정되기까지 법적 논란은 계속된다. 일련의 과정은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검찰이 중앙정보부와 함께 문화예술까지 재단할 수 있는 상위의 공권력임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언급해 둘 것은 이런 가운데 <순교자>는 미국에 첫 수출되어 상영된 영화 13) 가 되었다는 점이다. 기독교를 매개로 한국전쟁과 인권 문제에 대한 미국의 관심 속에서 국내 공권력의 역학 밖에서 움직이는 힘이 있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로 인한 박정희 정권과 기독교계의 충돌은 1970년대에 들어서며 본격화된다. 1) 유현목, 《영화인생》, 혜화당, 1995, 151-152쪽. 2) Richard E. Kim, The Martyred, George Braziier Inc., N.Y.C., 1964. 3) <기독교계에 순교자 파문>, 《동아일보》, 1965.6.29. 4) <[새영화] 성직자의 고독을 묘파>, 《경향신문》, 1965.6.19. 5) <[영화평] 중량감 넘치는 역작>, 《조선일보》, 1965.6.20. 6) <은막의 자유>, 《경향신문》, 1965.3.24.; <은막의 자유」, 《조선일보》, 1965.3.25. 7) <영화감독 유현목 씨 입건>, 《경향신문》, 1965.7.13. 8) <유현목 감독 입건 논문 말썽>, 《조선일보》, 1965.7.14. 9) <만물상>, 《조선일보》, 1965.7.15. 10) <<순교자> 등 다섯 작품 베니스영화제에 출품>, 《동아일보》, 1965.9.14. 11) <[이달의 문제작] 세계명작을 영화화한 영화예술의 극치>, 《실버스크린》, 1965년 6월호, 114쪽. 12) <[지상콘테스트 200자 시리즈(완)] 청룡상에 출품된 영화들-순교자>, 《조선일보》, 1965.11.28. 13) <영화 <순교자> 미에 첫 수출>, 《동아일보》, 1966.7.21.; <미주 등서 일제상영>, 《조선일보》, 1966.7.21.
영화 <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는 지난 2017년 개봉해 일본에서 크게 흥행한 작품이다. 어느 촬영 현장에 나타난 좀비가 스태프들을 뜯어먹는 잔혹한 장면들로 시작하지만 결국 이 영화는 한 편의 영화를 완성시키기 위한 사람들의 고단함을 보여주며 끝난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라는 제목에 영화의 슬픔과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배우가 연기를 못하더라도, 스태프들이 불평불만을 쏟아내거나 술에 취해 있더라도, 심지어 좀비가 나타나도 카메라는 멈추면 안 된다. 이 영화의 감독과 배우, 스태프는 지금 코로나 19 상황에서도 카메라를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13일, 일본의 산케이 신문은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코로나 19 버전’이 제작된다고 보도했다. 이미 지난 2019년 속편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스핀오프: 할리우드 대작전>이 개봉되기도 했지만, 코로나 19 버전은 그것과도 다른 이야기다. 이번에 제작되는 작품의 제목은 <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원격 대작전! >(이하 <원격 대작전!>)이다. 코로나 19로 외출 금지와 자가격리를 강요받은 일본의 현재가 영화의 배경이다. 자가격리 중인 영화 프로듀서에게 영상 통화가 걸려온다. "이달 중으로 재연 드라마 한 편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다. 하지만 자신뿐만 아니라, 스태프와 배우들도 모두 자가격리 중인 상태. 결국 프로듀서는 그들에게 전화를 걸어 원격으로 작품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1편의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는 스태프와 배우들이 단 한 번도 만나지 않고, 영상 통화 화면이나 배우가 직접 스마트폰으로 찍은 화면을 편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배우들은 집에 있는 옷으로 의상을 해결할 것이고, 자신의 대사를 하는 장면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대사에 반응하는 장면까지 스마트폰으로 찍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촬영감독은 역시 자신의 집을 이용해 여러 인서트 샷을 찍어줄 것 같다. 영화적인 완성도를 기대할 수 있는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시도만으로도 흥미롭다. 코로나 19 상황에서 전 세계의 영화산업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여러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개봉을 연기했고, 칸 영화제마저 개최 여부가 불확실하다. 전 세계 영화인들은 먼저 영화팬을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 같다. <겨울왕국>의 제작진과 목소리 배우는 각자 집에서 그림을 그리고 목소리를 더해 만든 단편 애니메이션 <앳 홈 위드 올라프>를 유튜브로 공개했다. <원더우먼>의 갤 가돗과 나탈리 포트먼을 비롯한 22명의 배우들은 존 레넌의 ‘이매진’을 부르는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 19가 보여준 사실은 영화가 자가격리 중인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지만,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 세계에서 영화 산업은 버티고 설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산업 자체가 무너질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낀 사람들은 자구책을 찾아 나섰다. 미국의 라이언스게이트는 <라라랜드>와 <헝거게임> 등을 유튜브에서 무료로 공개하고, 관련 행사에서 성금을 모금해 영화 산업 근로자를 돕는다고 발표했다. 한국의 영화인들도 당장 수입이 없는 스태프들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원격 대작전!>의 사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이 작품은 자가격리 중인 시민들이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볼거리를 제공하는 목적으로만 제작된 게 아니다. 앞선 영화인들의 노력은 크게 두 가지의 바람에 의한 것이었다. 영화에 대한 영화팬들의 관심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 이 업계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은 업계를 떠나면 안 된다. 그런데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은 영화 현장 또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완전 원격 제작으로 만들어지는 이번 작품이 누군가에게 새로운 일거리를 창출하는 하나의 팁이 됐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일거리가 없는 영화인들에게 생활을 지원하는 방식이 아닌, 새로운 일을 만드는 맥락에서 <원격 대작전!>을 기획한 것이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약 3천만원의 제작비로 만든 영화학교 워크숍 작품이었다. 열악한 조건에서도 영화적인 매력을 구현했던 제작진의 입장에서는 ‘코로나 19’가 위기가 아니라 아이디어가 됐을 것이다.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의 말처럼 <원격 대작전!>이 이후의 영화산업에 팁을 줄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작품을 기대할 수 있을까? <원격 대작전!>은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뒤덮은 상황에서 찾아낸 자구책이지만, 바이러스가 종식된 이후의 세계에서도 ‘원격’과 영화는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이를테면 지난 오스카 시상식에서 서로에 대한 존경을 나누었던 봉준호 감독과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각자의 공간에서 촬영한 영상과 대화를 공유하는 작품이 나올 수도 있다. HBO가 제작하는 드라마판 <기생충>의 주인공으로 거론된 마크 러팔로와 송강호가 ZOOM을 이용해 나는 대화만으로도 훌륭한 콘텐츠가 될 것이다. 이전에는 쉽게 협업하지 못했던 전 세계 영화인들이 ‘원격’으로 만나고, 그렇게 나온 작품을 넷플릭스나 디즈니 플러스, HBO MAX같은 플랫폼을 이용해 ‘원격’으로 감상하는 세상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이미 ‘코로나 19’는 세상의 많은 것을 바꾸고 있다. 불가피하게 시작된 ‘온라인 개학’은 언젠가는 찾아오게 될 ‘원격 교육’의 시험대가 되었고, ‘재택근무’ 또한 노동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가 되어가고 있다. 영화계에서는 최근 넷플릭스의 시가총액이 디즈니를 앞섰다는 보도가 나왔다. 안 그래도 변화의 시기에 있던 영화의 세상도 ‘코로나 19’로 인해 더 빨리 변하는 중이다. <원격 대작전!>은 그런 변화의 소용돌이에서도 카메라는 멈추지 않을 수 있다는 안심을 주는 사례다. 이 작품은 5월 초까지 완성된 후, 유튜브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등록되지 못한 죽음, <아무도 모른다> 내가 본 첫 번째 고레에다 히로카즈(1962~)의 영화는 < 아무도 모른다 >(2004) 이다. 그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그를 ‘연구’하기로 했다. 그는 보기 드문 ‘자기 현장’의 지식인이다. 나는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 운동을 계기로 처음 일본을 방문했다가 충격을 받았고, 지구상에서 가장 독특한 근대를 실현한 국가가 일본이라고 생각했다. 늘 보던 일본 영화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일본의 석학, 도미야마 이치로는 일본을 일본이라고 쓰지 않는다. ‘일본’이라고 쓴다. 일본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 글의 제목에 들어간 ‘포스트 자본주의와 일본’은 H. D. 하루투니언과 마사오 미요시가 엮은 유명한 일본 입문서(?) 『포스트모더니즘과 일본』을 바꾼 것이다. ‘일본’만큼 역설적인 공간도 드물 것이다. 그만큼 인문학 텍스트로는 최고라는 뜻이다. <아무도 모른다>. 열두 살 소년부터 막내까지, 네 남매는 돌아오지 않을 엄마를 기다린다. 엄마는 큰아들에게 말한다. “엄마는 행복하면 안 되니?” 이 장면을 본 사람들은 “어쩌면 저럴 수가……” 이런 생각을 하기 전에 금방 고레에다의 카메라 속으로 빠져든다. 사회 구조나 부모를 비난하기 전에, 아이들만의 삶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이 영화에서 내가 좋아하는 장면은 모두 아이들의 생존 방식과 관련이 있다. 길거리에서 돈을 줍는 것, 몰래 음식을 얻어먹는 것. 모두 딱히 탈법도 불법도 아니지만, 영원히 그렇게 살 수도 없고 자주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아이들은 거리를 돌아다니며 자판기의 거스름돈 창구에 손을 넣어본다. 누군가 잊고 간 동전을 기대하면서. 영화를 본 후 나도 그들처럼 해 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다가 서울에서 몇 달 만에 딱 한 번, 500원을 횡재한 적이 있다. 아무도 모른다 일본에서 자판기 다음으로 많은 시설이 편의점인 듯하다. 편의점에서 직원이 유통 기간이 임박한 혹은 살짝 지난 먹을거리를 소년에게 주는 장면도 좋다. 일본어에서는 유통 기간을 ‘상미기한(賞味期限)’이라고 한다. 팔기 적당한 상품은 아니지만, 맛을 ‘즐기는데’는 큰 무리는 없다는……. 편의점 직원은 좋은 일을 하면서도, 아이를 쫓아내듯 빨리 가라고 손짓한다. 2017년 여름밤, 나는 교토 대학 근처를 산책하고 있었다. 맛있는 빵과 케이크를 잔뜩 들고서. 일본은 온 나라(?)가 맛있는 빵집으로 넘쳐나지만, 관광과 전통의 도시 교토는 특히 더 그렇다. 신호등이 바뀌는 동안 횡단보도에 서 있다가, 나랑 어느 소년 단 둘만이 거리의 행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다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 소년이 <아무로 모른다>의 주인공 배우 야기라 유야와 똑같이 생겼던 것이다. (그는 이 영화로 칸 영화제 역사상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탔지만, 중간고사 때문에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고 한다.) 횡단보도의 그 소년은 도시락을 네 개쯤 들고 서 있었다. 흰 러닝셔츠, 마른 몸, 땀에 젖은 머리카락. 그런데 일본에서는 드물게 그가 들고 있던 물건은 비닐봉지 없이 낱개 그대로였다. 소년은 두 손에 도시락을 탑처럼 쌓아 턱으로 받치고 있었다. 나는 편하게 넣어 들고 가라고 종이봉투를 주었다. 그 소년도 <아무도 모른다>의 가장처럼 편의점에서 팔다 남은 음식을 자정 즈음에 얻어가는 길이었을까. 그는 내게 고맙다는 듯, 고개를 여러 번 꾸벅이며 뛰어갔다. <아무도 모른다>는 1988년 동경에서 발생한 ‘버림받은 네 남매’ 사건을 소재로 삼아 만들어졌다.(영화와 실화의 내용은 다르다고 한다.) 엄마는 각기 다른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네 명의 아이들을 두고 또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난다. 큰아이를 제외한 세 아이는 출생 신고가 되어 있지 않아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발견되기 이전까지 6개월 동안 아무도 모르는 그들만의 삶을 살아낸다. 서류 한 장이 인생을 좌우하는 극도로 관료적인 일본 사회에서 등록되지 않은 어린이의 죽음은 당시 전국을 충격에 빠뜨렸다고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비행기를 보여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소년이 죽은 여동생을 공항 부근에 묻고 돌아오는 장면에 대해 소설가 김연수는 이렇게 썼다. “누구에게나 이뤄지지 못한 약속의 땅에 사랑하는 사람을 묻는 일이 한 번쯤은 찾아오리라……. 사랑하는 사람을 묻을 땅을 파느라 더러워진 옷, 아니 얼룩진 옷……. 옷이야 갈아입으면 되지만, 얼룩진 마음은 기억에서 잊혀질지언정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는다.” (『씨네21』, 934호) 태풍이 지나가고 가족 영화가 아니라… 고레에다의 영화들 - < 어느 가족(좀도둑 가족) >, < 세 번째 살인 >, < 태풍이 지나가고 >, < 바닷마을 다이어리 >, <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 < 하나(花よりもなほ) >, < 공기인형 >, < 걸어도 걸어도 >, <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 < 원더풀 라이프 >... 다 좋았다. ‘가족 영화’가 따로 있을 리 없지만, <어느 가족>이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걸어도 걸어도>는 가족이란 ‘이다’가 아니라 ‘된다’임을 잘 보여준다. 그의 모든 작품이 내게 위로가 된다. 고레에다의 영화는 치열하지만 고요하다. 나만의 감상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의 영화에서 언제나 죽음의 그림자를 느낀다. 그 그림자가 내 삶의 번잡스러움과 욕심, 고통을 잊게 한다. 삶이란 죽음이라는 영원하고도 편안한 잠(永眠)이 기다리는 행복한 시간이다. 그러므로 죽음을 기대하지 않으면, 삶도 행복하지 않다. 죽음만이 희망이다. <좀도둑 가족(万引き家族)>의 우리 말 제목 <어느 가족>은 마음에 안 들 뿐만 아니라 아주 ‘틀린’ 번역이다. 이 영화는 가족 영화 중 하나라기보다는 <아무도 모른다>처럼 일본 사회를 그린다. 좀도둑질과 막노동, 연금으로 살아가는 일본인들의 모습이니, ‘좀도둑 가족’이 맞다. 2018년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에 해당하는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1997년 이마무라 쇼헤이의 < 우나기(うなぎ) > 이후 21년 만의 일이다. <좀도둑 가족>은 칸 외에도 유라시아 국제영화제, 뮌헨 국제영화제, 시드니 영화제, 멜버른 국제 영화제 등에서도 수상 혹은 후보에 올랐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것이다. 아마도 한국 사회라면, 감독은 한국 사회의 그 어떤 추악함을 그렸더라도 청와대에 초대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수상 소식에 침묵으로 일관하다가(못마땅해하다가) 뒤늦게 축하 전화를 하려 했으나, 감독은 아베의 축하를 거절했다(아베는 국제대회에서 자국을 빛낸 스포츠 스타나 예술가에게 축하 전화를 자주 해대는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아베에게 <좀도둑 가족>은 일본 사회의 그늘에 카메라를 들이댔을 뿐 아니라 천황제를 근간으로 한 전통적인 가족주의를 숭상하는 일본의 주류 정서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여겨졌으리라. 고레에다 또한 평소에 아베의 노선에 대해 ‘분명한 반대’ 입장을 표명해왔다. 어느 가족(좀도둑 가족) 나는 <좀도둑 가족>을 나의 선생님과 같이 보았고, 다음과 같은 편지를 나누었다. 나 - 고레에다 영화는 거의 다 보았는데, 저는 그 가족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가족이 없어서 외로운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다 지긋지긋. 사람도, 가족도 모두요. 선생님 - 어제 나는 일본에서 주변부 삶이 영화 화면에 담겨지는 거. 그것을 행하는 감독이 좋았다. 영화로는 아버지가 되는 법이 훨씬 좋지……. 영화는 가족 영화라기보다는……. 나 – 예... 그렇죠, 일본 주변부... 그 집 미술감독, 끝내주지 않아요? 쇼타(‘큰 아들’)가 두 번 버림받았다고 생각해도, 그것이 인생임을 받아들이라고 기도했어요. 물론, 제 자신에게 대한 다짐이죠. 선생님 - 오키이. 어제 영화 릴리 프랭키가 사는 마지막 집은 <아무도 모른다>에서 아이들만 사는 집이었던 같은데. 쇼타가 그러잖아. 자기가 잡힌 거 일부러 그런 거라고. 쥬리 때문에 잡힌 거잖아. 가족들이 떠나려고 했던 것도, 이해한다는 거지. 자기를 보호하고자 하면 다 잡힌다는 거…… 그런 삶을 사는 것은 다른 방식의 삶의 지혜와 방식을 배우는 것이지. 그런 면에서 감독이 이 시대를 보는 눈이 깊은 거지. 아시아라는 공간, 시간을 앞선 자본주의 일본은 어떤 사회인가. 나는 ‘멀고도 가까운 나라’라기보다 한국이 가장 모르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한국에 관심이 없고, 한국은 일본을 제대로 아는 게 없다. 내가 처음 일본을 방문했을 때 가장 놀랐던 일은 거리에 맘껏 나붙은 ‘共産黨’ 포스터였고, 두 번째가 자판기였다. 물론 일본 공산당은 망한 지 오래고, 재일교포와 오키나와 인들과 연대하기를 거부하고 자본가들에게 노동 고용을 부탁하러 다니는 ‘단체’다. '共産黨' 포스터와 자판기 자판기는 몇 미터 간격으로 있는 정도가 아니라 다닥다닥, 거리의 가로수보다 아니 인구보다 많은 것 같았다. 음료, 담배, 라면, 인스턴트 식품은 기본. 여고생이 입던 팬티 냄새가 사라지지 않도록 캔으로 봉인한 섹스 관련 상품을 파는 자판기도 있다. 일본은 ‘한때’ 전자 제품의 나라이기도 했지만 빵, 치즈, 잉어, 옷감, 디자인, 와인, 종이, 두부, 면(麵), 건축, 음악, 다신(多神), 화장품 그리고 세습, 서브 컬처의 나라이기도 하다. 나 역시 평범한 한국인으로서 일본에 대해 복잡한 감정이 있다. 일단, 그들은 한국인과 중국인을 무시한다. 백인에 대한 호감은 자발적 식민지급이다. 나는 영어도 일본어도 못 하지만 일본에서는 반드시 ‘느끼한 발음’으로 영어를 사용한다. 이를테면 “호토 워토(hot water)” 대신에 “할 워러, 프리즈”이런 식으로 말이다. 일본과 미국은 히로시마 원폭과 9․11 전까지, 전 세계에서 단 한 번도 자국이 전쟁터가 된 적이 없는 나라다. 덕분에 일본은 천 년 동안 아무런 파괴 없이 그들만의 고유한 문화와 문화재를 보존할 수 있었다. 일본 역시 오리엔탈리즘의 대상에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그들은 ‘셀프 오리엔탈리즘’으로 서양의 일본관을 상품화했다. 서양인들이 일본 문화에 느끼는 신비로움은 우리의 상상력을 초월한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한때 스시는 미국의 지식인 문화를 상징했다. 전통적인 국제정치학 교과서에는 ‘일본 편’이 따로 있(었)다. 외교 의전에서 일본은 공부가 필요한 사회다. 특별한 이해와 주의를 요한다. 예를 들어 대개의 언어, 특히 우리말에서 ‘고려해보겠습니다’는 대개 긍정적인 의미지만, 일본어에서 ‘절대 불가, 앱솔루트리 노’를 의미한다.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인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본만의 문화가 있다는 얘기다. 파악되지 않는 타자? 롤랑 바르트는 <기호의 제국>을 썼다. 일본 사회는 기호(sign)만 있을 뿐 실제 말의 의미(이른바, ‘혼내’)를 알기 어려운 사회라는 뜻이다. 통념과 달리 일본은 류큐 왕조를 비롯한 수많은 다민족(nation), 다민족(ethnic) 국가, 다인종, ‘혼혈인’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근대 이후 강제 통합의 과정은 곧 내전을 의미했다. 홋카이도의 면적만 남한의 3분의 2를 넘는다. 고베나 오사카만 가도, 근대 초기 포르투갈이나 네덜란드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들은 이미 오래전에 탈아입구(脫亞入歐,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를 꿈꾸었고, 실현했다. 유럽 문화에 정통한 인문학자가 수두룩하다. 탈아입구를 실현한 정도가 아니라 일찍이 메이지 유신을 시작으로 해서 국민국가 체제를 완성, 세계 제패를 기획하고 미국, 중국과 전쟁을 치렀다. 작은 나라(‘倭’)가 아니다. 노벨상,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1950년대에 ‘성취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일본 문제’와 고레에다 히로카즈 하루투니언 같은 일군의 자본주의와 근대성 연구자들이 일본에 주목하는 것은, 일본이 공간적으로는 서구가 아니지만, 자본주의의 발전 속도(시간)는 서구를 앞지른 지역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세계 최고의 자본주의 국가이면서 아시아에 있다. 서구를 쫓으면서, 동시에 서구를 초과했다. 이 ‘모순’은 현재 일본 사회의 고통이기도 하고, 인류가 다음 세계를 사유하는 ‘자원’이 될지 모른다. 일본 자국의 문학, 인문학, 역사학은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데, 이들은 남을 침략하기 위해 자신을 연구했고 이미 ‘정상(頂上)국가’나 ‘정상(正常)국가’를 경험했다. 그래서 한국의 지식인처럼 식민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나라 만들기에 열중하기보다는 당장, 자국의 문제에 관심이 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문제에 관심이 없다. 모든 담론이 “ ~ 게 되어야 한다(should be)”다. 현재는 지나가고 있는데, 오지 않을 미래를 설계한다. 자본주의와 발전주의, 민주주의가 같은 말로 사용된다. (대표적으로 주민등록증을 대신한 스마트폰 사용이 그것이다). 일본은 ‘더는 성장할 수 없는 자본주의’, 금융 유통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사회의 징조들이 197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출산, 자살, 우울증, 초고령화, 빈집 증가, 고실업, 프리터의 등장…… 힘든 일 기피 현상이 의대 진학 저조로 나타나서 일주일에 평균 1명의 임산부가 산부인과를 찾지 못해 사망한다. 최근에는 인생 자체를 리셋(reset)하는 자발적 실종인 ‘인간 증발’까지, 다른 사회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사회 현상이 있다. 일본의 계급 세습과 상상을 초월하는 경쟁주의, 학벌 사회는 의외로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다. 북한은 정권 세습이지만, 일본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자민당 일당 독재는 전후 계속되고 있고 ‘가업’이란 이름의 계급 제도가 철저하다. TV 예능 프로그램에는 개그맨들이 어느 학교 출신인가가 병기된다. 오타쿠, 이지메, 히키코모리, 희망 난민(희망이 있지만 이룰 수 없어 고민하는 젊은이들), 하류지향(‘루저’를 적극적으로 선택한 학생들), 소비 주체로서의 자부심, 공부하는 이들에 대한 경멸, 수학(數學)과 수학(修學)을 구분하지 못하는 도쿄 대학 학생들, 부자 나라 일본의 극빈층 노인들, 고독사 연 2만 명, 젊은이들의 탈력(脫力, 온 힘을 빼고 아무것도 안 함), 혐한(嫌韓), 혐중(嫌中)……. 일본의 현재를 살펴보는 것은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고레에다가 소중한 혹은 윤리적인 예술가인 이유가 여기 있다. 자기 사회를 직면하고 고민을 담되, 그 상황이나 인물을 대상화하지 않고 껴안는다. 이것이 그의 영화가 지닌 소구력이며, 관객은 그가 재현하는 특정한 이미지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가 <좀도둑 가족>에서 가난한 일본인을 그렸다고 해서, 일본을 가난한 나라라고 생각하거나 일본에 대한 선입견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영화가 아무리 다양해도 전 세계 관객들은 미국 영화에 대한 특정한 이미지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확실히 비교가 된다. 사족 - <좀도둑 가족>에서 두 명의 배우가 생각난다. 역시, 배우는 작품으로만 만난다. 안도 사쿠라를 ‘취조’하는 이케와키 치즈루는 더 이상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의 그 소녀가 아니었다. 그리고 내 눈썰미가 맞다면, 성 구매를 하는 남자 손님으로 잠깐 나왔던 배우는 < 종이 달 >의 ‘못된 녀석’ 이케마츠 소스케다. (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우) 어느 가족(좀도둑 가족)의 이케와키 치즈루 (좌) 종이달, (우) 어느 가족(좀도둑 가족)의 이케마츠 소스케
| No | 컬렉션명 | 자료 수 | 업데이트 일 | 공개일 | 상세 |
|---|---|---|---|---|---|
|
|
이달형 구술 컬렉션 | 30건 | 2022-08-25 | 2022-0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