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 이야기
- 감독
- 양익준
- 제작년도
- 2015
1980년에 만들어진 < 바람불어 좋은 날 >은 안성기 , 유지인 , 김보연 , 임예진 , 김영애 등 익숙한 중견 배우들의 풋풋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이다. 최근 극장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볼 기회가 있었는데 임예진의 앳된 얼굴은 그녀가 한 시대를 풍미한 하이틴스타였다는 걸 한눈에 실감하게 했다.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에 이들 배우들이 후일 어떻게 성장할지 알 수 없었겠지만 <바람불어 좋은 날>은 배우들의 면면만 놓고 봐도 오래 기억될 작품이다. 앞서 언급한 배우들 외에도 김성찬 , 이영호 , 김희라 , 박원숙 , 최불암 , 김인문 등도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는데 그들 모두의 경력에서 중요한 영화가 됐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많은 배우가 조명을 받은 이유는 <바람불어 좋은 날>이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주면서 그들 중 한 사람도 허투루 낭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덕배(안성기), 춘식(이영호), 길남(김성찬)이라는 세 청년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지만 당시 시대상을 조망할 수 있는 남녀노소가 빠짐없이 나와, 작은 타일 조각이 모여 만드는 거대한 벽화를 보는 느낌을 준다. 목소리를 높여 뭔가를 외치는 영화가 아닌데도 <바람불어 좋은 날>은 당대 관객에게 묵직한 울림을 주면서 당시 영화인에게 지향점을 제시하는 작품이 됐다. <바람불어 좋은 날>이 그리는 시대는 1970년대 강남 개발이 시작된 뒤의 서울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한강변 풍경을 보면 강 건너편엔 아파트들이 보이지만 등장인물들이 사는 쪽은 아직 개발이 덜 된 지역이다. 부동산 개발로 벼락부자가 된 김회장(최불암)은 말한다. “남들이 뭐라 손가락질하는지 안다. 배추 장사 하던 무지렁이가 악랄한 수단을 써서 졸부가 됐다고. 하지만 내가 안 한다고 세상이 그런 짓 안 할 리 없다. 나 말고도 그런 짓 할 놈은 많다.” 김회장이 어떻게 돈을 모았는지 영화는 더 자세히 설명하지 않지만 땅을 뺏긴 노인이 목을 매 자살을 하는 장면을 보면 충분히 짐작이 간다. 그런 김회장의 손이 이발소 미스 유(김보연)의 허벅지를 주무를 때 춘식이 느낀 혐오감은 노인의 자살을 목격한 뒤 살의로 발전한다. 그러나 김회장이 ‘악’이라고 춘식이 ‘선’인 것도 아니다. 김회장은 역겨운 존재지만 미스 유에게 희망이기도 하다. 병든 아버지의 치료비를 마련하고자 미스 유는 김회장의 품에 안긴다. 미스 유는 거짓이라도 날 사랑한다 말해달라고 하고 김회장은 그녀에게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답한다. 춘식이 김회장의 몸에 칼을 그을 때 미스 유의 희망도 같이 찢어진다. 김회장이 상징하는 천민자본주의의 탐욕스런 모습 반대편에 상류 사회의 매혹을 전시하는 인물 명희(유지인)가 있다. 명희의 의상은 번쩍거리거나 매끄럽거나 하늘거린다. 의상 자체가 ‘유혹’이라는 단어의 대체물처럼 느껴진다. 명희와 덕배가 강가에서 데이트를 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잊을 수 없는 대목 중 하나다. 명희의 치마가 바람에 날려 팬티가 보일 만큼 펄럭인다. 마릴린 몬로가 < 7년만의 외출 >에서 지하철 통풍구 바람에 치마를 날리는 장면 못지않다. 명희는 키스를 가르쳐준다며 입술을 내민 덕배를 바보로 만든다. 덕배는 내 그럴 줄 알았다며 자신이 올라갈 수 없는 나무에 올라가지 않기로 한다. 명희가 대변하는 자본주의의 모습은 그녀가 디스코 클럽에 가는 장면을 통해 더 선명히 드러난다. 매혹적이지만 선정적이고 위험한 그녀에게 덕배는 어울리는 짝이 될 수 없다. 덕배는 디스코 클럽에서 농악을 떠올리며 몸을 흔든다. 덕배의 춤은 엉뚱한 박수를 받지만 그 이상 발전할 수 없다. 덕배가 돌아갈 곳은 중국집이고 덕배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모욕과 욕설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사를 상징하는 빈부 격차와 갈등을 <바람불어 좋은 날>은 이성과 이론이 아니라 감성과 경험으로 납득시킨다. “<바람불어 좋은 날>이 보여주는 사회 고발의 힘은 세월이 흘러 많이 퇴색했다. 그것은 1970~80년대의 사회 현상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계속 회자되고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것은 한 차원 높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보여줬기 때문일 것이다. 마르크스나 프로이트를 몰라도 <바람불어 좋은 날>을 보면 알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이 거기에 있다.”(<한국영화 100선> 129쪽, 한국영상자료원 편) 오래전 나는 이 영화에 대해 이렇게 쓴 적이 있다. 다시금 <바람불어 좋은 날>을 보고 나니 덧붙이고 싶은 말이 생겼다. 왜 지금은 <바람불어 좋은 날> 같은 영화가 안 나오나, 라는 궁금증이다. 상업영화 시스템이 이런 영화를 더 이상 만들 수 없게 만들었다고 한다면 독립영화에선 어떤가? 상당수 독립영화가 젊은 세대의 가난과 절망을 다루고 있다. 88만원 세대, 삼포 세대 등 그들을 지칭하는 표현은 바뀌었지만 그들의 절실함은 그대로일 것이다. 아마 오늘의 청년 세대는 중국집, 여관, 이발소 대신 편의점이나 고시원에서 70년대 젊은이들과 비슷한 궁핍과 허기를 견디고 있을지 모른다. 1980년 덕배는 그런 어려움을 견디기 위해 말을 더듬고 매를 맞아도 참는 법을 배웠다. 2018년의 젊은이는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누군가 그걸 제대로 알려주는 영화를 만들면 좋을 것 같다.
1980년 서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적인 개성은, 각자의 대사와 (완성형의) 자기 플롯이 있는 인물들이 무려 열다섯 명에 달한다는 것이고, 모두 뚜렷하게 구별이 가면서 그 필요를 인정할 만큼 생생하다는 사실이다. 영화는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한 세 청년을 중심으로,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인 도시에서 그들이 경험하는 좌절과 상실을 주로 주목하지만, 그들이 만나는 여러 다양한 개성의 이웃들 또한 보기만큼 가볍거나 사소하지 않다. 그것은 무엇보다 이야기의 방향이 잘 설정되어 있고, 그 인물들이 틀림없는 순간과 장소에 정확하게 등장했다가 퇴장하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던 성취인 것이다. 관심이 가고 주목이 되는 수많은 인물들을 스크린 위에 쏟아놓은 뒤, 교통정리를 잘 해가면서 각자가 내려야 할 도착지로 능숙하게 데리고 가는 이야기는 그것이 아무리 오래 전 만들어진 영화의 것이라 해도 매번 놀랍고 감탄스럽다. 세 청년들의 쓰라린 정착 초기 모습을 발랄하게 스케치한 오프닝 시퀀스가 끝나면, 철가방을 든 젊은 얼굴의 안성기 가 등장한다. 덕배라는 이름의 어리숙한 이 중국집 배달부는 이후 유지인 이 연기하는 상류층 여성인 명희와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로맨스를 경험하게 되는데, 이들의 플롯은 덕배로 하여금 결국 권투선수가 되어 이 영화의 유명한 마지막 대사(‘그동안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줄곧 맞아온 것처럼 생각되는데, 그게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맞아도 이겨낼 자신이 있다’)를 내뱉게 하도록 작동한다. 그러니까 다들 엇비슷한 러닝타임을 가져가고 있는 터라, 딱히 누구의 이야기라 정리하기에 애매한 이들 청년의 플롯 중에서도, 굳이 ‘주인공’이라고 부를 만한 캐릭터를 꼽자면, 당시 가장 인지도 있는 배우( 안성기 )가 연기한 이 ‘덕배’라는 캐릭터일 것이다. 즉, 사나운 개가 핥고 있는 빈 그릇을 가져가지 못해 쩔쩔 매다 주인에게 비웃음이나 당하던 중국집 배달부의 앞모습이 이 영화의 오프닝이고, ‘이젠 맞아도 이겨낼 자신이 있다’는 보이스-오버와 함께 벌떡 일어나 주먹을 날리는 권투선수의 뒷모습이 엔딩이라면, 이 영화가 결국 ‘덕배’의 이야기로 수렴되는 이야기라 해도 무리가 없는 해석이 된다. 그리고 그것이 영화의 종착점이었고, 그 마지막 보이스-오버가 이 영화를 정리해내는 한 줄 테마였다는 사실을 적용시켜보면, ‘덕배’야말로 수많은 인물들의 플롯이 씨줄날줄로 엮이는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으로 설정되어 있음을 어렵지 않게 간파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덕배가 권투선수의 마음을 가지고 영화 밖으로 퇴장하게 되기까지, 그를 조력했던 다른 두 청년의 플롯을 하나씩 짚어보자. 이영호 가 연기한 이발소 직원 ‘춘식’은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미스 유( 김보연 )를 좋아하는데, 그녀는 단골손님이자 땅투기로 벼락부자가 된 김회장의 노골적인 추파를 받는다. 미스 유는 춘식에 대한 애정이 없진 않지만 줄줄이 딸린 동생들과 아픈 아버지를 생각하면 자신과 같은 처지의 춘식과 미래를 약속할 수도 없다. 유럽의 복지국가가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지에 대해 조용히 이야기하며 자신의 꿈을 부끄럽게 고백하는 송전탑 아래 두 사람의 데이트 장면은, 이 영화의 가장 사무치게 아름다운 씬이 될 자격이 있다. 결국 이들의 플롯은 춘식이 김회장을 살인미수하는 마지막 장면을 향해 돌진하는데, 버림받은 아이처럼 자주 울컥하던 춘식의 영화 속 마지막 얼굴이 카메라를 향해 죽을 듯 울부짖는 클로즈업이라는 사실을 적용시켜보면, 온통 공사판인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산중턱이나 높은 언덕에서 자주 만나 속마음을 주고받던 이 두 사람이야말로 영화의 진짜 심장이나 다름없다는 생각과 마침내 만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성찬 이 연기한 ‘길남’은 여관에서 일하며 근처 미용실 직원 진옥과 연애하는 청년이다. 그의 꿈은 언젠가 평등하게 누구나 입장할 수 있는 호텔을 여는 것이며, 아예 어리숙하거나 자주 울컥하는 다른 두 친구와는 달리, 길남은 세속적이면서도 대체로 긍정적이고 매사에 웃고 다니며 가끔 실없다. 그의 플롯은, 자신이 결혼상대로 생각해 맡겨둔 돈을 진옥이 들고 도망치자 망연자실하고 결국 군대에 끌려가는 것이다. 여기서 ‘끌려간다’는 표현은, 영장이 나왔다는 사실을 모든 희망이 사라졌고 결국 다 끝나버렸다는 듯 오열하며 말하는 장면이 숨기고 있는 감정에서 짐작가능하다. 춘식은 감옥에 갔고, 길남은 입대했으며 덕배는 권투선수가 되었다. 아니, 춘식이 감옥에 갔고, 길남이 군대에 끌려갔기 때문에 덕배가 권투선수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이들이 스치듯 만나고 헤어졌거나 온 마음을 바쳐 사랑하고 미워했던 이웃들도 있었기에 더욱 더 그는 권투선수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으리라. 영화의 이야기가 끝나고 그 안의 인물들도 모두 퇴장한지 거의 40년이 다 되어가는 2018년의 지금, 그들은 여전히 서울에 살고 있을까. 그 사람들은 어떤 현재를 보내고 있으며,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까. 무엇보다, 아직까지 서로 만나는 친구사이일까. < 바람 불어 좋은 날 >은 볼 때마다 그런 궁금증들을 남기는 영화로 매년 나이 들어간다.
예나 지금이나 영화를 만드는 이들이 고민하는 주제가 있다. ‘우리는 왜 영화를 만드는 것일까’, ‘영화 만든다고 누가 떡 하나 던져주는 것도 아닌데 왜 영화라는 존재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 것일까’. 이러한 고민은 다시 한 번 영화라는 형식을 빌려 무수한 형태로 표현되곤 한다. 임대형 감독의 첫 장편 독립 극영화 <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 역시 자신만의 영화를 꿈꾸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비슷한 주제의 여타 영화들과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의 주인공도 물론 영화를 깊게 사랑하고 있지만 그의 영화 제작은 평범한 일상이 아니다. 그 자신에 있어 영화란 일종의 종착지를 의미한다. 영화의 주인공이자 충청남도 금산의 한 시골 마을에서 이발사로 일하는 중년 남성 모금산( 기주봉 )의 삶은 지극히 단조롭다. 매일 아침 일어나 이발소에 출근해 사람들의 머리를 깎고, 수영을 하고, 치킨집에서 맥주 한잔하고, 아무도 없는 집에 홀로 들어가 강냉이를 우적우적 씹으며 TV를 보다 잔다. ‘금산’에 거주하는 ‘모(某) 씨’를 뜻하는 주인공의 이름만큼이나 이렇다 할 감흥도, 자극도 없는 삶이 꾸준히 반복된다. 하지만 이 삶은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반복조차도 할 수 없게 될 위기에 놓인다. 조금 몸이 좋지 않아 찾아간 보건소에서 영 좋지 않은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생각지도 못하게 삶의 마지막에 놓인 모금산은 다양한 방식으로 삶의 일탈을 시도한다. 수영장에서 길게 잠수도 해보고, 수영장에서 마주친 젊은 여성 자영( 전여빈 )과 진솔한 대화도 나눠본다. 하지만 이런 방법들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그는 서울에 살며 영화과에 다니고 있는 자신의 아들 모스데반( 오정환 )과 여자 친구 예원( 고원희 )을 부른다. 한때 소망했으나 결국 이루지 못했던 꿈인 ‘영화배우’가 되어 자신만의 영화를 찍고 풍진 세상에서 떠나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고향에 내려온 모스데반은 어딘가 모금산과 서먹해 보이며 아버지의 영화 제작 프로젝트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이 와중에서 예원이 간신히 부자 사이를 중재하며 좌충우돌 영화 촬영이 시작된다. 과연 영화 제작은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그리고 온갖 사건 사고 끝에 완성된 영화는 이 세 명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 수 있는가. 문득 영화를 보면서 매년 가을경에 열리는 서울노인영화제가 생각났다. 노인과 노년의 삶을 소재로 한 청년-중장년 감독의 영화는 물론, 노인 자신이 직접 만든 영화도 골고루 상영하는 영화제다 보니 자연스레 전자와 후자의 영화가 비교될 수밖에 없다. 노인들이 만든 영화는 전문적으로 영화 교육을 받고 만든 것이 아니다 보니 상당히 투박하기 그지없다. 촌스러운 특수효과, 이러지리 툭툭 튀는 사운드, 어딘가 많이 본 것 같은 서사. 그에 비하면 청년-중장년 감독의 영화들은 상대적으로 세련되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노인들이 만든 영화가 더욱 흥미롭다는 생각을 할 수밖엔 없었다. 많은 부분들이 어색할지라도 이들이 만든 영화는 삶의 황혼기에 영화에 대한 애정을 담아 자신이 그간 느끼고 경험했던 것들을 진솔하게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 역시 그렇다. 모금산은 단조로운 자신의 삶만큼이나 지독하게 과거에 갇혀 있는 인물이다. 그가 아는 배우는 엘리자베스 테일러 같은 오래된 배우들 선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가 찍고 싶은 영화는 찰리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 같은 슬랩스틱 코미디의 무성 영화이다. 영화의 극 중 극이자 모금산이 배우의 꿈을 이룬 영화 <사제 폭탄을 삼킨 남자>가 만약 영화제에 출품되었더라면 예심을 통과하기도 무척 버거웠을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모금산은 영화를 찍으면서 자신이 갇혀있던 과거에서 벗어나 현실과 조우한다. 삶의 종착지라 여겼던 영화 촬영은 예원의 적극적인 노력과 모스데반의 행보를 통해 점차 모금산 자신이 그간 직시하기를 꺼려했던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는 계기가 된다. 그렇게 제작된 영화는 질박해도 소소한 웃음을 낳는다. 그리고 다시, 영화를 만든 세 사람으로 하여금 각자와 서로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이들에게 있어 영화 제작은 곧 사람을, 그리고 자신들이 놓여 있는 사회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하나의 창구가 된 것이다. 비록 영화에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아무리 모금산의 삶이 철저히 과거에 놓여있던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고 해도 군더더기처럼 느껴지는 장면들이 꽤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는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 전후를 제시하며 영화를 만드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마치 서울노인영화제에 상영되었던 노인들의 작품들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