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
- 감독
- 이상일
- 제작년도
- 2010
- 출연
- 후카츠 에리, 츠마부키 사토시, 미츠시마 히카리, 오카다 마사키, 키키 키린, 에모토 아키라
에로 팬들에게 1990년대 초는 애매한 시간이었다. 1988년 유진선 감독의 < 매춘 >을 정점으로 한국의 에로티시즘 영화는 확실히 하향곡선을 그렸고, 이후 < 애마부인 > < 산딸기 > < 변강쇠 > < 빨간 앵두 > < 뽕 > 등 굵직한 프랜차이즈들이 속편을 쏟아냈지만 태작이 대부분이었다. < 사방지 >(송경식. 1988)나 < 애란 >(이황림. 1989) 등 주목할 작품도 있었지만 대세를 막을 순 없었다. 다행히 하향세의 반대편에 에로 비디오가 급성장하고 있었지만 아직 < 젖소부인 바람났네 >(김인수. 1995) 같은 압도적 작품은 도착하지 않았다. 이 틈새에 등장한 이상한 에로 사극 한 편이 있었다. 1993년 여름에 개봉된 양병간 감독의 <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이하 <무쓰물>)다. 여기서 ‘양병간’이라는 이름이 왠지 익숙하다고 느끼셨다면… 맞다. 8년 전 < 무서운 집 >(2015)이라는 저예산 호러를 내놓은 바로 그 감독이다. <무서운 집>의 거친 페티시즘과 느닷없이 몰아치는 분위기의 정서적 근원이 궁금했던 관객이라면 <무쓰물>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현장의 양병간 감독과 배우 김문희. 양 감독은 1950년생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영화계에 들어와 연출부 생활을 했고 1985년에 < 피조개 뭍에 오르다 >로 데뷔했지만 검열로 인해 만족스러운 작품이 되진 못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는 8년 만에 나온 두 번째 작품으로 파격적인 에로 사극이고, 다음 해 미스터리 멜로인 < 태양 속의 남자 >(1994)를 연출했다. 이후 20년 가까운 공백을 딛고 내놓은 저예산 호러 <무서운 집>(2015)은 컬트로 평가 받고 있다.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썼지만, <무쓰물>은 조선 시대 설화집 『고금소총』에 수록된 ‘귀봉변괴’(鬼棒變怪)가 원작이다. ‘귀신 들린 방망이의 이상야릇한 일’이라는 뜻으로, 도깨비가 던져 준 양물(陽物), 요즘으로 치면 ‘딜도’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何用物耶)라는 주문을 접하면 건장한 남자로 변해 눈 앞에 있는 여성과 성교를 한다는 판타지 스토리다. 감독은 이 매력적인 소재를 각색하는 과정에서 두 편의 에로 정전을 끌어왔다. 바로 <변강쇠>(엄종선. 1986)와 <뽕>(이두용. 1986)이다. <무쓰물>은 전자의 ‘과장된 성적 표현’과 후자의 ‘마을을 휩쓰는 섹스 스캔들’이라는, 한국 사극 에로의 가장 중요한 장르 관습을 결합한다. 클리셰를 이용한 안전 장치인 셈인데, 흥미로운 건 이 영화가 클리셰를 따르는 방식이 아니라 그것을 지키는 척하면서 위반하고 뒤집는 태도다. 김문희와 이미지의 캐스팅은 이 영화의 중요한 성공 요인이다. 1960년대 동갑이던 두 배우는 이 영화에서 노련하면서도 섹슈얼한 연기를 해낸다. 이미지는 아쉽게도 2017년 5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주인공은 한 과부(김문희)와 오 과부(이미지)다. 독수공방을 벗어날 수 있게 정인을 점지해 달라고 매일처럼 폭포수 밑에서 정화수 떠놓고 빌던 한 과부는 어느 날 우연히 집 마당에서 양물을 줍는다. 무심코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라는 혼잣말을 하자, 갑자기 상의를 탈의하고 한쪽 다리는 걷은 건장한 사내(이상일)가 나타나 한 과부에게 달려들고, 마을에 지진이 날 정도로 거대한 스케일의 방사가 치러진다. 나무 막대기에서 11단 변신을 통해 정인으로 변하는 남자 덕에 한 과부의 얼굴엔 화색이 돌고, 이를 수상하게 생각한 오 과부는 그 비밀을 알게 되고, 양물을 훔친 오 과부도 놀라운 경험을 한다. 이후 양물은 마을을 돌아다니게 되고, 결국 여인들과 함께 그 요술 방망이는 관아에 끌려가게 된다. 사또(홍성민)는 양물을 뜨거운 물에 끓이기도 하고 불 속에 넣기도 하지만, 끄떡없다. 결국 단두대를 통해 절단하려는 찰나, 변신이 이뤄지며 등장한 사내는 한 과부를 번쩍 들어 안고 늠름하게 걸어간다. 한 과부가 치성 드리는 장면. 사극에 흔히 등장하는 클리셰지만, 바위와 폭포수가 만들어내는 교묘한 미장센은 분출하는 성욕에 대한 메타포처럼 느껴진다. <무쓰물>은 한국의 극장용 에로 사극 끝물에 등장한 전복적 텍스트다. ‘판타지 에로 사극’이라 부를 수 있는 이 영화는 그 환상성을 토대로, 에로 사극에서 여성에 대한 양대 억압 기제였던 ‘은장도’와 ‘열녀문’ 이데올로기를 뒤집는다. 절개를 지키기 위해 은장도로 자결하겠다며 욕망을 억압하고, 가부장제에 순응한 대가인 열녀문을 하사 받기 위해 역시 욕망을 억압해야 했던 조선 시대 사극. 이 장르가 항상 그 욕망의 경계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해 긴장감을 만들어냈다면 <무쓰물>은 그 제약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억압 같은 게 있었어?”라고 반문하듯, 이 영화에 등장하는 마을의 아낙네들은 열녀문을 하사 받은 양반댁 마님이든, 여염집의 과부댁이든, 어엿한 남편을 둔 유부녀든, 갑자기 마을에 찾아 든 양물(과 그것이 변한 사내)에 광적인 집착을 보이며 집단적 욕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영화 초반부 어느 양반집 마님이 외간남자를 취한 후 관계가 끝나자 하인들을 시켜 먼 곳에 내다 버리는 설정이 등장한다. 조선 시대 하류층의 수절 과부가 노총각이나 홀아비를 납치하는 일(이른바 ‘보쌈’)이 있었다곤 하지만, <무쓰물>은 상류층 여성의 원 나잇 스탠드를 과감하게 영화 첫 장면에 배치하며, 이 영화는 유교적 세계관에서 상당 부분 이탈해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양물이 변신한 사나이도 흥미롭다. 일반적인 에로 사극의 돌쇠가 산발 스타일의 순수남이라면, <무쓰물>의 사나이는 상투를 틀었고 항상 상의를 탈의한 상태로서 한쪽 바지는 허벅지까지 걷었다. 헝크(hunk, 덩치가 크고 섹시한 남자) 스타일에 결혼한 남자의 징표인 상투가 있는, 변형된 남창(gigolo) 이미지다. 원 나잇 스탠드와 지골로. <무쓰물>은 이러한 요소를 통해 1980년대 에로 사극과 결별한다. 양물은 11단 변신을 거치며 사나이로 변한다. 돌쇠가 아닌, 헝크이자 지골로 이미지를 지녔다. 이 영화에서 또 한 번 놀라게 되는 건 비역질에 대한 묘사다. 양물은 성적 대상의 성별을 가리지 않고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라는 주문에 반응하고, 사나이는 눈 앞에 보이는 존재를 무조건 범하는 터미네이터 같은 존재인데 스님이나 사또도 피해가지 못한다. 특히 관아에서 사또와 이방이 비역질을 당하는 대목은 “찢어졌구만!”이라는 고통 섞인 대사와 함께 한국 사극에선 접하기 힘든 설정이다. 종교와 정치에 대한 반역적 메타포라고 확대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성적 표현의 수위 만으로도 <무쓰물>은 선을 넘는다. 여기서 <무쓰물>은 애너크로니즘(anachronism)을 통해 확실하게 탈주한다. 번역하면 ‘시대 착오’ 정도가 될 애너크로니즘은 조선 시대 배경 영화에 고려 시대 의상이 등장하는 정도의 고증 오류 수준이 아닌, 좀 더 파격적인 방식으로 <무쓰물>에 확실한 인장을 남긴다. 마을 전체가 양물의 광풍에 휩싸이자, 음란함을 다스리는 음무제(淫撫祭)가 치러진다. 이 장면에서 일반적 사극이라면 무당의 굿판이 벌어지겠지만, <무쓰물>은 놀랍게도 동네 여인네들이 모여 캉캉 춤 추는 장면을 보여준다. 음무제의 캉캉 춤과 해피 엔딩. 이 영화는 사극 장르를 경쾌하게 해체한다. 감히 말하건대 한국영화에서 이런 파격은 없었고, 이외에도 강인구의 전자 음악(그는 <무서운 집>에서도 음악을 맡았음)이나 길로틴의 등장 등은 <무쓰물>의 장르 해체적 성향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사나이가 한 과부를 안고 어디론가 가는 대목은 한국 사극에선 좀처럼 만나기 힘든 해피 엔딩이자 감동의 피날레다. 부디 두 사람, 행복하시길.
이창동 의 데뷔작 < 초록물고기 >(1997)는 흔히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로 불렸던 2000년대 한국영화의 이정표를 제시한 작품이다. 한해 먼저 개봉한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 홍상수 , 1996)이 비 장르적인 작가주의 영화의 계보에 위치한다면, <초록물고기>는 작가적 성향을 짙게 드러내면서도, 그것을 장르 영화의 관습으로 풀어내곤 했던 2000년대 한국영화의 흐름을 선취하고 있다. <초록물고기>는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임권택 과 박광수 로 대표되는 리얼리즘 영화의 끝자락에서 박찬욱 , 봉준호 , 류승완 , 김지운 으로 대변되는 ‘한국형 장르영화’의 시작을 이끈다. 즉, <초록물고기>는 하나의 끝에서 또 다른 하나의 시작을 가능하게 하는 ‘매듭’ 같은 영화다. 소설가 시절부터 이창동 은 사회적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삶의 아이러니를 포착하는 데 관심을 보이곤 했다. 23평 아파트에 담긴 평온한 삶을 이루기 위해 한평생 노력했건만, 그것이 ‘오물과 증오’ 위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진 거짓에 불과했음을 깨달아야 하는 주인공을 앞세운 중편소설 <녹천에는 똥이 많다>에 드러나는 것처럼, 이창동에게 도시는 순결함과 품위를 잃은 지 오래다. 아니, 그 역겨운 냄새를 억지로 버텨내야 하는 삶으로 가득한 곳이 도시다. 이창동이 이러한 관심사를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장르는 필름 누아르다. 세상의 모든 것을 어두운 그림자로 삼켜버리는 도시의 탐욕을 그려내는데 필름 누아르만한 장르가 또 어디 있겠는가. < 초록물고기 >는 필름 누아르 작품임에 분명하지만, 그가 소설가 시절부터 견지해왔던 작가적 세계관은 이 작품이 장르적으로 온전히 환원되는 것을 가로막는다. 그렇게 <초록물고기>는‘장르적인 것’과 ‘작가적인 것’의 이질적 공존을 가능하게 한다. 또는 사회적 주제와 영화적 표현 사이의 탁월한 균형감각을 보여준다. < 초록물고기 >가 리얼리즘의 힘으로 장르의 전형성을 돌파할 수 있었던 궁극적 동력은 무엇보다 ‘공간’의 힘에서 비롯된다.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일산’과 ‘영등포’는 단순한 영화적 배경이 아니다. <초록물고기>는 영화의 공간이 하나의 인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 속 일산과 영등포는 한국의 도시 개발의 역사와 그 이면, 그로 인한 계급적 변화,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탐욕스러운 자본과 그 희생자의 아련한 슬픔까지도 표상하는 데 성공하고, 그것은 1990년대 발표된 한국영화가 쉽게 이루지 못한 영화적 성취이다. 막동이( 한석규 )는 변화하는 도시에서 밀려난 자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신도시 개발과 함께 아카시아가 흐드러지게 피던 땅은 회색빛 아파트가 대신하고 있다. 옛날 막동이네 가족이 발붙이고 살던 땅은 신도시 개발과 함께 몰려든 이주민의 땅이 되었고, 토박이였던 막동이(와 그의 형)은 계란을 팔기 위해 그곳을 잠시 들려야 하는 이방인으로 전락한다. 영화의 초반부, 군에서 제대한 막동이는 ‘대곡역’에서 어디로 나가야 할지 몰라 머뭇거린다. 터전에서 오히려 이방인이 된 인물, 도시의 변화에 발맞추지 못하는 시대착오적인 인물이 바로 막동이다. 하지만 탐욕스러운 자본의 시대는 그렇게 뒤처진 자들을 동정할 만큼 자비롭지 않다. 막동이는 반복해서 거울을 바라본다. 도시의 뒷골목에서, 그 탐욕의 거리에서 자신이 잃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일일이 확인하려는 듯 그는 거울을 보고, 또 본다. 그것이 성찰적 행위처럼 비쳐지는 이유는 < 초록물고기 >에서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이 되살리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 바로 막동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태곤( 문성근 )의 욕망에서 드러나듯, 탐욕스러운 도시는 모든 것을 허물어 하늘에 닿을 마천루를 쌓는 일에만 관심이 있다. 그러기 위해 과거는 허물거나 지워야 한다. 그것이 막동이가 죽어야 하는 이유다. 막동이는 근대적 도시의 완성, 또는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짓밟고 망가뜨려야 했던 모든 것이고, 그것이 바로 ‘초록물고기’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 초록물고기 >가 그런 막동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애처로움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초록물고기>의 영화적 가치는 이러한 멜로드라마적 파토스 앞에서도 자신의 작가적 태도를 좀처럼 양보하지 않는 고집스러움에 있다. 막동이의 죽음 이후, 배태곤과 임신한 미애( 심혜진 )는 막동이네 가족이 운영하는 일산의 식당을 찾는다. 막동이의 유일한 바람은 가족끼리 모여 조그마한 식당을 운영하며 사는 것이었고 보면, 이 장면은 막동이의 바람을 ( 이창동 이) 온전히 이루어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막동의 막내 여동생이 막동이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배태곤에게 “다음에 또 오세요. 잘해드릴게요”라고 말할 때, 이창동 특유의 잔인한 현실의 아이러니가 솟아난다. 영화의 엔딩마저도, 막동이네 가족의 식당과 그 뒤로 펼쳐진 신도시를 함께 보여주는 장면이다. 우리의 삶을 무너뜨리는 파괴자들을 오히려 환대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삶의 아이러니, 가해자와 피해자가, 또는 빼앗은 자와 빼앗긴 자가 ‘어쨌든’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삶의 아이러니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아이러니한 순간의 포착과 그것의 영화적 표현은 이창동의 영화가 문학적이라는 지적이 그저 한낱 편견에 지나지 않음을 증명하기에 충분한 것처럼 보인다. 한 가지만 더 덧붙이자면, < 초록물고기 >는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름 하나’를 남겼다. 막동이.
일본의 대표 괴수 영화 ‘고지라’가 이번에는 안노 히데아키와 히구치 신지 감독의 작품으로 업그레이드되어 돌아왔다. 1998년 일본 문화 개방 이후 < 고질라 24 - 고질라 2000 밀레니엄 >(오카와라 타카오, 1999)(이하 고질라 2000 밀레니엄)이 오리지널 재팬 블록버스터 영화로 소개되어 개봉했다가 흥행에 대참패, 개봉 며칠 만에 간판을 내린 적이 있었다. 당시 할리우드판 < 고질라 >(롤랜드 애머리히, 1998)가 나온 뒤 일본에서 자신감을 갖고 제작한 작품이어서 특수효과에 상당히 신경을 쓴 흔적이 느껴졌지만, 극장에서 큰 화면으로 본 <고질라 2000 밀레니엄>은 할리우드판 <고질라>나 한국의 < 용가리 >( 심형래 , 1999)에 익숙해진 관객의 시선으로 봐도 조악하고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비디오나 책으로 귀하게 접해야만 했던 고지라 시리즈가 정식으로 극장에 개봉하면서 그동안 갖고 있던 신비감이 사라지는 느낌과 동시에 괴리감이 들어 고민했던 기억도 있다. 간절히 바라던 것이 어느 순간 갑자기 이루어지게 되니 뭔가 허무해지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 후로 일본에서는 꾸준히 고지라 시리즈가 나왔고, 국내에서도 개봉을 위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 고질라 2000 밀레니엄 > 흥행 부진의 여파로 일본영화제 등에서의 소규모 상영 말고는 일본판 고지라가 국내에서 정식개봉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2014년에는 또 다른 할리우드판 < 고질라 >(가렛 에드워즈)가 개봉했으나 개봉 당시 악재가 겹치며 국내에서는 흥행에 실패하게 된다. 그리고 이번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 신 고질라 >(히구치 신지, 안노 히데아키, 2016)가 오픈 시네마로 선정되어 개막식 다음 날 저녁, 영화의 전당 야외극장에서 상영되었다. 기술 시사회를 통해 이미 보기는 했지만 야외극장의 대형 스크린으로 접한 <신 고질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태풍 차바의 상처가 남아있는 부산에서 관람하니 묘한 사실감이 느껴졌고, 부산의 초고층 빌딩과 영화 속 도쿄의 빌딩이 오버랩 되기도 했다. 부산국제영화제 관객과의 만남: 와타나베 켄과 이상일(위) 히구치 신지와 하세가와 히로키(아래) 이번 영화제에는 < 신 고질라 >를 연출한 히구치 신지 감독과 주연배우 하세가와 히로키가 내한하여 관객들과 만났다. 거기에 영화 < 분노 >의 주연배우 자격으로 내한한 할리우드판 < 고질라 >(2014)의 와타나베 켄과 < 곡성> 배우의 자격으로 내한한 쿠니무라 준(<신 고질라> 출연)까지, 한곳에서 고지라 출연 배우와 감독들을 모두 만날 수 있는 굉장한 기회였다. <신 고질라>가 처음 상영된 10월 7일에는 히구치 신지 감독과 하세가와 히로키가 두레라움 광장과 야외극장에서 연이어 무대 인사를 진행했다. 이날 처음 만난 히구치 신지 감독은 굉장히 유머러스한 모습이었고 하세가와 히로키는 기존 영화에서 본 모습과는 달리 점잖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와타나베 켄은 가만히 있어도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오는 모습이었다. 히구치 신지 감독과 하세가와 히로키는 포토 타임 때 관객들을 위해 <신 고질라> 손 모양을 따라 하며 팬서비스를 해 주었다. 쿠니무라 준까지 보고 왔다면 더 좋았을 텐데 일정 때문에 못 보고 온 게 아쉽다.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 고질라 >에 자극을 받아 다시 시작된 일본의 고지라 시리즈는 이후 가렛 에드워즈의 < 고질라 >에 의해 다시 한 번 영향을 받게 된다. 그 후 이번에 나온 < 신 고질라 >는 더 이상 할리우드 고지라와 비교를 못 하게 하기 위한, 종지부를 찍기 위해 나온 영화 같다는 느낌이었다. 이번 작품은 1954년 괴수의 왕 <고지라> 1탄 이후 가장 징그럽고 무서운 외양의 고지라가 등장하여 일말의 연민과 동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지금까지 나온 일본 역대 고지라 시리즈 중 고지라가 무섭게 나왔던 적이 3번 정도 있었는데 신기한 건 이때가 일본이 국제적으로 위기감을 느끼는 시기였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일본에서 최근 일어난 자연재해와 인재, 외부의 적에 대한 현실이 반영이 된 거라 생각된다. 고지라 시리즈를 포함하여 일본 괴수 영화에 등장하는 괴수의 상징은 일본을 위협하는 재난 혹은 적국을 의미하곤 하는데, 전쟁을 일으킨 전범국에서 직접적인 전쟁영화나 일본의 군사력을 자랑할 만한 영화를 만들기 어려워지자 그 대안으로 나온 게 바로 괴수와 외계인이 일본을 침공하는 영화였다. 그렇기 때문에 <신 고질라>도 가볍게 볼 수 있는 상업 영화인 것 같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을 생각하면 마냥 가볍게만 볼 영화가 아니기도 하다. 자위대의 지원 하에 재난(고지라) 앞에서 하나가 되어 해결해 나가는 모습은 원폭, 지진, 쓰나미, 방사능 유출 사고를 겪은 일본이 이를 극복하고 자신들의 국가를 지켜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고지라를 공격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고민하는 일본 각료의 모습과 미국의 도움 부분에 대한 이중성, 언제든 고지라가 다시 깨어날 수 있다는 암시 등은 한국이나 중국, 러시아 입장에서는 그다지 유쾌한 부분은 아니다. 괴수 영화에도 나라 간의 자존심 대결이나 당시의 시대상과 국제문제 등이 반영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봉준호 감독의 < 괴물 >(2006)에는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와 미국과의 관계, 그리고 투명하지 못한 언론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괴물>이 일본에서 개봉했을 때 일본 관객들이 한강에 괴수가 나타났는데 왜 경찰이나 군대가 출동을 안 하는 모습이나, 현서가 살아있다는 말을 듣고도 경찰이 믿지 않는 장면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쩌면 한국 관객 입장에서는 < 신 고질라 >에서 피난 가지 못한 노인을 위해 폭격을 안 하거나 우왕좌왕하긴 하지만 국민을 속이려 하지는 않는 정부 각료들의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이날 부슬비가 내리는 악천후 속에도 많은 관객이 야외극장에 와서 < 신 고질라 >를 함께 관람했다. 고지라 팬, 에반게리온 팬, 그리고 하세가와 히로키 배우 팬까지 모두 모여 손뼉 치며 환호하며 관람했다. 영화가 끝나고도 여운이 가시지 않아 기념촬영을 하는 관객들도 많았다. 이날 옆자리에 가족과 함께 온 꼬마 관객이 있었는데 긴 러닝 타임 내내 조용히 몰입해서 보고, 영화가 끝난 후 재미있었다고 말했던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이번 < 신 고질라 >는 슈트가 아닌,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고지라인만큼 국내 관객들의 눈높이에도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더불어 한국 관객들에게 지진과 원전의 공포가 이제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상황이 되어버렸기에 고지라가 상징하는 메타포를 이해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논란의 <신 고질라>는 올 연말이나 내년 초에 한국 관객과 정식으로 만날 예정이다. 편집자 주: 원고 내용 중 ‘ゴジラ’는 원발음에 가깝게 ‘고지라’로 표기하였으나, 영화 제목은 개봉 제목을 따라 ‘고질라’로 표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