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색 랩소디
- 감독
- 이성훈
- 제작년도
- 2018
영화에서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보호받으며 천진하게 커야 할 어린이가 고통을 받는다는 설정이 어른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기 때문이다. 반면 그렇기 때문에 항상 대중의 시선을 갈망하면서, 더불어 사회적 발언을 하고 싶어하는 영화는 종종 어린이들을 다양한 모습으로 시각화한다. 어린이들은 <나 홀로 집에>의 케빈처럼 어른들을 골탕먹일 수도 있고, <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의 주인공들처럼 이란이라는 사회의 현실을 돌아보게 할 수도 있다. 극영화가 아니더라도 제3세계 어린이들의 혹독한 노동환경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로 보여줄 수도 있다. 이렇듯 세계 여러 나라의 영화에서 어린이의 모습은 각 나라의 특성에 맞게 주제를 드러내는 한 방법으로서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작금의 한국의 겉모습은 풍요에 가깝다. 물론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심한 빈부격차와 밥을 굶는 아이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회적 인프라의 확장 탓에 이런 부분을 상쇄하려는 노력이 다양한 경로로 발생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전쟁을 거친 후, 독재를 이어갔던 80년대까지도 이런 복지의 출현은 미미했다. 그러므로 사회적 인프라가 확보되지 않은 당시 사회에서 가난으로 인한 고통은 고스란히 아이들이 감당할 몫이기도 했다. 1978년에 개봉된 김준식 감독의 < 슬픔은 이제 그만 >은 1977년에 개봉된 < 엄마 없는 하늘 아래 >의 성공 이후 만들어진 일종의 아류작이라 할 수 있다. 어린이 잔혹사 계열의 대표작이라 할 <엄마 없는 하늘 아래>모티브를 거의 그대로 가져온다. 국민(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미나( 강수연 )는 희소병으로 다리가 마비되어 누워 지내는 아버지( 박근형 )와 젖먹이 동생을 키우는 소녀 가장이다. 이제 막 부임해온 담임선생님( 한혜숙 )은 모범생인 미나가 결석이 잦아지는 걸 보면서 미나의 가정형편을 알게 된다. 추운 겨울날 미나는 눈 덮인 산으로 토끼를 잡으러 가거나, 꽁꽁 언 강가에서 미꾸라지를 잡아 시장에 내다 팔며 먹을 것을 마련한다. 아버지를 지극정성으로 모시지만 병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한 미나에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하지만 아버지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펜팔을 했던 한 미국인의 도움으로 아버지는 수술을 받고 다시 걸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미나에겐 행복이 찾아온다.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아버지. 그로 인한 어머니의 지독한 노동과 죽음. 그리고 갑자기 가장이 되어버린 아이라는 스토리는 1981년 개봉작인 이영수 감독의 < 하늘 나라 엄마 별이 >에 까지 이어지며 전형성을 만들어냈다. 아버지의 무능으로 인한 경제적 궁핍이라는 설정은 70년대가 되면서 좀 더 두드러진다. 이원세 감독이 <엄마 없는 하늘 아래>에서 아버지의 무능을 6.25전쟁의 후유증으로 인한 정신분열로 설정하면서 비극의 원인을 좀 더 과거에서 찾고 있긴 하지만, 이후의 작품인 <슬픔은 이제 그만>과 <하늘나라 엄마 별이>에서는 아버지의 무능을 노동현장에서 병을 얻어오는 것으로 설정하면서 직접적으로 당대의 현실과 연결시킨다. 70년대라는 급격한 경제개발의 시대에 아버지들은 앞만 보고 달리며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이 시기에 자신의 몫을 차지하지 못했다. 그로 인해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져 가족을 부양하지 못하리라는 불안감을 이 영화들은 무의식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의 위치가 상당히 중요해진다. 어머니들은 더 이상 남편의 무능 때문에 집을 나가지 않는다. 대신 그녀들은 남편을 제자리로 올려놓기 위해 모진 고생을 감내하다 죽어버린다. <엄마 없는 하늘 아래>, <슬픔은 이제 그만>, <하늘 나라 엄마 별이>에서는 공통적으로 어머니의 자리를 비워둔다. 그런데 어머니의 부재가 단지 엄마가 없어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비극을 더하는 장치만은 아니라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의 힘든 삶의 원인이 아버지의 무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죽음 때문이라고 관객들이 오도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가부장으로서의 아버지의 권위는 전혀 훼손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딸들이 어머니의 자리를 대신 채우며 효라는 이름으로 희생하고 이러한 효녀 심청의 스토리에 관객들은 눈물을 흘리며 옷고름을 적신다. 그리고 그 눈물 속에 모든 비극의 원인으로서의 사회적 모순은 씻겨져 내려가 버린 채, 그것은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만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어머니에서 딸로 이어지는 여성의 희생이라는 테마는 한국 현대사에서 낯설지 않다. 언제나 그렇듯 영화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아버지의 회복은 질서의 회복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아파도 결코 죽지 않는다. 대신 어머니가 죽는다. < 엄마 없는 하늘 아래(속) >에서 보듯 어머니의 자리는 항상 누군가로 대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자리가 다른 누군가로 대체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사 아이들이 고통을 당한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것은 순혈주의에 대한 거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려도 카타르시스 대신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던 것은 아마도 당대의 가부장적 가치관을 거스르지 않고 품어 올리려고만 했던 한계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김준식 감독의 <슬픔은 이제 그만>에서는 좀 더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영화가 개봉된 1978년 당시 기독교와 미국은 그야말로 선진화의 표상이었던 것 같다. 미나의 아버지가 수술을 받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의료진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펜팔친구였던 미국인이 기독교의 중심인 목사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미국인 의사가 나타나는 것을 보라. 또 하나는 1987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의 < 씨받이 >로 한국 최초의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한국의 대표적 여배우로 성장하게 되는 강수연 의 어린 시절을 본다는 것이다.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이 낭설이 아님을 이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강수연 박근형 한혜숙 감독 김준식 각본 윤삼육 촬영 임진환 1978년 95분 칼라 영상도서관 배가번호 B0017 ※ DVD로 변환된 매체로 영상도서관 감상이 가능합니다
한국영화는 탄생하는 순간부터 검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후 미 군정기를 거쳐 이승만 정권에 이르기까지 검열의 역사는 한국영화의 역사와 같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검열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익숙해지기 시작한 것은 시나리오 단계부터 시작되는 사전검열과, 완성된 영화가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구잡이로 자르며 필름을 훼손했던, 가위손이 횡행한 70년대의 유신과 80년대 전두환 정권시절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검열사건은 김수용 감독의 1986년 작품 < 허튼소리 > 사태다. 감독 스스로 은퇴를 선언할 정도로 파장이 컸다. 하지만 정권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이후에도 사회성을 표방한 많은 영화들이 가위손의 희생양이 되어 언론을 오르내렸다. 이봉원 감독의 1987년 개봉작 < 내일은 뭐 할거니 > 역시 이즈음 검열로 인해 곤욕을 치른 대표적인 영화 중의 한편이다. 사회를 풍자하는 대사가 몇 군데 잘려나간 이 영화는 몇 달 후에 재심을 통해 원본으로 상영이 가능해졌다고는 하지만, 이미 흥행에 크게 실패한 이후였던 터라 더 이상의 화제를 모으지는 못했다. 더불어 기술적으로도 매끈함을 보여주진 못했다. 그럼에도 <내일은 뭐 할거니>는 당시의 일반적인 영화와 비교해 새로운 면이 눈에 띄는 영화다. 충무로라 불리던 제도권의 많은 영화들이 여전히 순결과 전근대적인 도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여성의 육체를 선정적으로 다루는 것이 흥행의 제1조건이라 착각하며 진부한 드라마를 반복하고 있을 때, 지하철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만나게 된 남녀 대학생의 한나절만으로 영화를 완성한다. 이봉원 감독은 과장된 기승전결로 관객의 감정을 억지로 증폭시키는 대신, 단순한 공간의 활용과 남녀 대학생의 일상적인 대사 그리고 회상만으로 당시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 나름대로 문제 제기를 하면서, 미니멀리즘적인 시도를 통해 스타일 적으로도 차별화를 꾀하고자 했던 것 같다. < 내일은 뭐 할거니 >는 낡은 청바지와 운동화를 신고 거리를 이리저리 걷고 있는 다리를 지속적으로 보여주며 시작한다. 청바지와 운동화가 청춘의 상징이라면 이 장면만으로도 이 영화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방황하는 젊은이의 이야기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이름이 없다. 단지 남자애( 강석현 ), 여자애( 정다희 )로만 등장할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연스럽게 그 시대를 살고 있던 일반적인 대학생들을 표상하고 있는 셈이다. < 내일은 뭐 할거니 >는 남자애의 방황 원인이 어디에서 기인하는 가를 찾아가는 영화다. 아버지가 부재한 남자애는 청소년이 되고 대학생이 되면서 아버지라는 존재를 궁금해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어머니는 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때의 나이와 아들의 나이가 비슷해졌을 때, 모든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 시절 어머니는 창녀였고, 4.19에 참여하고 쫓기고 있던 아버지와 하룻밤을 보낸 후 자신이 잉태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어머니는 “더러운 반쪽은 잊고 고결한 반쪽을 찾으라”고 한다. 그 반쪽은 바로 아버지로 상징되는 4.19에 참여했던 세대. 그러므로 남자애의 방황은 80년대 당시 복권되지 못하고 있던 4.19라는 잃어버린 역사를 환기시킨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이 호감을 사랑의 관계로 연결하지 못한 채 엇갈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유신과 전두환 정권에 의해 4.19 민주화 운동이 여전히 훼손당한 채 폭동으로 매도되고 있는 이 땅은 젊은이의 사랑이 꽃피기에는 너무 척박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남자애는 여자애에게 다가갈 용기를 내지만 둘은 엇갈리고 만다. 여자애는 그 남자애가 타고 떠나는 전철을 바라보며 “바보”, “멍청이”라고 소리친다. 그리고 “내일은 뭐 할 거니?”라고 외치며 영화는 끝난다. 그 외침을 남자애는 듣지 못할 것이다. 남자애가 내일도 여전히 거리를 방황할지?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꿈꿀지는 아무도 모른다. 애매모호한 결말의 괴로움. < 내일은 뭐 할거니 >는 굵직한 주제의 진중함이 느껴지지만, 관객에게 강한 임팩트를 주는 것에는 실패한 영화다. 어쩌면 이봉원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이 너무 많았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극 중 영화촬영 시퀀스는 감독의 초조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장면이 극의 흐름이나 주제와 어울리지 않게 삽입되어 있는 것은 바로 즉 영화 속 영화의 여배우가 하는 말, “영화를 보시는 분들에게 그 뜻이 잘 전달될 수 있을까”를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자신의 영화가 제대로 이해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영화 곳곳에 흔적이 남는다. 남자애에게 할당된 무거운 주제가 관객을 지루하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여자애는 지나치게 단순하게 활용함으로써 인형 이상이 되지 못했다. 여자애가 남자애의 방황을 끝까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많이 아쉽다. 만약 여자애가 남자애의 방황을 이해하는 과정이 있었다면, 관객은 자연스럽게 그 과정에 동참하게 되었을 것이고, 감독의 의도는 좀 더 쉽게 관객에게 전달되지 않았을까? 더불어 이 영화에 직접적으로 4.19라는 표현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쉬운 점이다. 지독한 검열로 감독들의 창의성을 억압하던 그 시절. 감독들은 문제가 될 만한 장면은 스스로 피해간다는 자조적인 소리를 내뱉곤 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상징적으로 처리한 4.19장면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 영화는 그저 할 일 없는 청춘의 하루를 그리고 있는 영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쩌면 이봉원 감독은 너무 생각을 많이 했거나 계산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 내일은 뭐 할거니 >는 가장 대중적인 장르의 하나였던 청춘영화를 경유해 사회의 모순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시도가 좋은 영화다. 또한 그 시절의 그렇고 그런 지난한 영화들 속에서 새로운 스타일을 고민한 영화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의 모호함 속에서도 내일은 멋진 일을 하겠다는 남자애의 외침이 들리는 것 같다. 강석현 정다희 감독 이봉원 각본 이현화 촬영 서웅 1987년 90분 칼라 판매원 (주)동양프로덕션 영상도서관 배가번호 0213
1970년대는 한국영화의 암흑기라고 이야기되곤 한다. 하지만 1980년대라고 해서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물론 80년대가 이장호 , 배창호 , 임권택 감독의 시대였던 만큼 좋은 작품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작품수준이 70년대보다 더 나아졌다고 보긴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80년대의 한국영화가 70년대와 차별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에로영화라고 불렸던 에로티시즘을 내세운 영화들이다. 70년대 유행했던 호스티스 영화의 연장 선상에서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80년대의 에로영화는 광주의 피를 밟고 올라선 전두환 정권이 내놓은 대중 우민화 정책이었던 3S(Sex, Screen, Sports로 알려진) 정책의 혜택을 받았다는 점에서 좀 더 정치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덕분에 성적표현과 여배우들의 노출은 좀 더 과감해질 수 있었고, < 애마부인 >의 흥행 성공으로 에로영화는 80년대 내내 꾸준히 제작된다. 하지만 에로영화는 비슷비슷한 소재의 남발과 낮은 완성도로 인해 관객의 기대에 크게 부응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1984년 이장호 감독은 < 무릎과 무릎 사이 >에서 페티쉬(Petish)를 끌어들이며 에로영화의 소재를 좀 더 확장시키면서 많은 화제를 모았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85년에는 이황림 감독이 자신의 데뷔작인 < 달빛 멜로디 >에서 동성애적 요소를 소재로 차용한다. 그는 동성애라는 단어 자체가 어색하던 시절에 과감하게 승부수를 던졌지만 아쉽게도 별다른 화제를 모으지는 못한다. 이는 이황림 감독이 퀴어영화적 관점에서 소재를 다룬다기보다는 단지 흥행을 위해 에로영화의 연장으로서의 동성애라는 선정성에만 기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 달빛 멜로디 >는 섬으로 신혼여행을 온 부부 요한( 임성민 )과 한추( 안소영 )와 머리에 상처를 입은 채 표류해 온 미스터리한 남자 산도( 김기석 )의 삼각관계의 비극적 종말을 다루고 있는 영화다. 예전에 한추는 산도와 연인 관계였다. 하지만 요한은 산도를 죽이고 한추를 차지했던 것. 마치 한 여자를 사랑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은 한 남자를 두고 다른 한 남자와 여자가 경쟁하는 영화라고 보는 게 맞다. 즉, 산도를 사랑했던 요한이 자신의 동성애적 감정을 은폐하고 산도의 여자를 대신 취해 자신의 욕망을 대리만족하고자 했던 것이다. 사실 퀴어영화는 한국영화계에 존재하지 않다가 갑자기 80년대에 출몰한 장르는 아니다. 70년대 초반 하길종 감독의 데뷔작 < 화분 >에서 이미 남궁원 은 하명중 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76년 작품인 김수형 감독의 < 금욕 >에서는 레즈비어니즘을 다루고 있기도 하다. 그 외에도 직접적으로 동성애를 다루진 않았다 하더라도 액션 영화에서 보여지는 남자들의 진한 우정과 의리를 보여주는 방식은 종종 동성애적 코드로 읽히곤 했다. 이는 여성들의 연대를 다룬 영화도 마찬가지다. 이렇듯 동성애 코드가 동지애라는 이름으로 변형되어 나타나면 짙은 휴머니즘 영화가 된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동성애를 직시하면 그것은 비정상 혹은 변태와 연결되는 것이 보통이다. <화분>에서 동성애는 푸른 집에 살고 있는 남궁원의 끝없는 탐욕을 표현하는 장치다. < 달빛 멜로디 >에서도 동성애는 하길종 감독이 사용했던 방식과 비슷하게 소비한다. 즉, 산도를 소유하고자 했던 요한의 탐욕이 극대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다른점이 있다면 이황림 감독은 동성애를 죄의식과 연결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종일관 당당했던 <화분>의 남궁원에 비해 <달빛 멜로디>의 임성민 은 지나치게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 달빛 멜로디 >는 성정치학으로써의 동성애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오히려 이 영화는 범람하던 에로영화 풍토에서 좀 더 자극적인 내용을 발굴하고자 했던 결과로서 보는 것이 타당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황림 감독은 <달빛 멜로디>를 에로영화가 아닌 고급스런 멜로드라마로 연출하려고 했다. 그 결과로서 빛을 활용한 아름다운 촬영이 눈에 두드러지는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이루지 못할 사랑을 했던 연인들의 동반자살이라는 소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얼마나 매력적인 장면이었던가 말이다. 이 영화에서는 그 연인이 동성이라는 것이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동성애라는 소재의 무게에 지나치게 짓눌려버린 연출은 이 영화를 에로영화도, 그렇다고 멜로드마라도 아닌 영화로 만들고 말았다. 미스터리를 표현하기 위해 지나치게 기교를 부린 공포 영화적 화면들은 작위적으로 보인다. 두 남자를 파멸로 이끌고 가는 일종의 팜므파탈을 연기해야 했던 안소영 은 < 애마부인 >으로 생성된 자신의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서일까? 영화의 대부분을 반라의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지만 섹시하게 보이지 않도록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연기하고 있다. 여기에 자신의 동성애적 감정의 혼란과 죄의식을 동시에 표현해야 했던 주인공 임성민 의 절제되지 못한 연기는 극의 몰입을 방해할 정도다. 무엇보다도 낮과 밤조차 제대로 연결하지 못한 편집까지,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감독 연출력의 부재가 두드러지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 달빛 멜로디 >는 본격적으로 동성애를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90년대 이후 박재호 감독의 < 내일로 흐르는 강 >과 같은 영화가 등장하기까지 한국 퀴어영화의 계보에서 중간자적 역할을 했다는 의미는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한국의 대표 영화음악가였던 신병하가 작곡한 주제음악이 무척 아름답다. 또한 4편의 영화만 만들고 사라져버린 이황림 감독 역시 한국영화계에 기여한 바가 있다. 바로 다음 작품이었던 < 깜보 >에서 박중훈 과 김혜수 를 발굴하여 데뷔시켰다는 것.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퀴어영화의 가교역할을 했다는 것보다 더 큰 이황림 감독의 업적일지도 모르겠다. 안소영 임성민 김기석 감독 이황림 각본 이황림 촬영 진영호 1984년 102분 칼라 판매원 삼영프로덕션 영상도서관 배가번호 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