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 통합검색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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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완벽한 추억] U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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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과의 약속_이승환-사랑하나요 일반인공연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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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사람들의 바이오그래피- 이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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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김태원·컬투…'원더풀라디오' 카메오 군단 '역대 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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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영화배우 데뷔?…′원더풀 라디오′에 본인으로 특별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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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人터뷰] 이승환의 두 가지 소원? 연애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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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상상하다
# 씬 00 늦은밤 교복을 입은 한 소녀가 공중전화 부스에 있다. 빚잔치를 하고 부모는 도망을 가고 소녀는 잘 곳을 구하기 위해 친척들에게 전화를 해보지만 모두들 거부한다. 한겨울 새벽 항구, 대로를 졸면서 걷고 있는 소녀를 향해 대형 트럭이 다가온다. # 씬 00 패쇄된 옛 기차역 근처에 지능이 조금 모자라는 아내와 잡역부 남편이 아이 둘을 데리고 산다. 몹시 가난한 그들에게 수도국 직원이 단수를 통보하고 물을 끊었다. 먹을 물도 씻길 물도 없던 이들은 두 아이를 데리고 마을의 카페로 갔다. 그곳에서 이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후 이들은 아이를 하나씩 안고 고속철도 선로에 누웠다. # 씬 00 한 소녀가 저수지로 들어간다. 고등학교 현장실습으로 콜센터를 나갔고, 회사를 그만두면 안되냐고 부모에게도 말했고, 자살시도도 있은 후 였다. 위에 나열된 세 씬 중 첫 이야기는 아직 문학으로도, 영화로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두번째는 마르그리드 뒤라스가 ‘단수하러 온 남자’라는 글로 썼다. 마지막은 극영화 < 다음 소희 >의 한 장면이다. 우리는 소녀가 어떤 마음으로 자살에 이르렀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영화는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상상의 공간을 열었다. 소녀가 죽기 전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생을 함축하고 있었을 그 말,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아 침묵으로 간직했을 그 말은 무엇이었을까. 이 영화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삶이 어떻게 죽음으로 흘러갔는지를 상상한 미스터리이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소희의 죽음을 표현하는 단어, 자살이다.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가능한가? 자살은 사회와 관계에서 쓸모없어진 존재를 스스로 지우는 적극적 행위처럼 보이지만, 수모의 공간에서 침잠된 인간이 마지막으로 다다르는 장소이다. 안타깝게도 수치심은 가난한 이들에게 더 가까이 있다. 부자들은 원하지 않는 말이나 힘든 일을 해야하면 수치심을 대리로 느낄 누군가를 고용할 수 있고 제도로도 만든다. 따라서 하청에 하청에 하청을 한 이 수치심은 사회 가장 낮은 곳에 배달된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수치심과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가난한 이들은 한 공간에서 불가사의한 공생을 한다. 가난한 자는 수치심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생계와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고 싶은 삶 사이에서 고통받는다. 사람이 사는 곳, 세상으로서 ‘인간'에 가난한 이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똑부러지게 할말 다 하던 소희도 자존감을 지킬 곳으로 죽음이라는 공간을 봤다. 자신이 사라져야만 스스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다는 아이러니 앞에서 우리는 이 자살을 더 이상 스스로 내린 선택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 영화는 자신의 목소리가 누구에게도 닿지 않고, 어떤 행동도 효과가 없다는 것을 인지한 후 그 모든 것을 정지하고 저수지의 침묵 속으로 들어가는 소희의 죽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형식적으로 소희와 이 사건을 조사하는 경찰 유진의 이야기로 나뉘어져있지만 카메라가 보여주는 것은 결국 감독의 시선이다. 1부는 누구도 듣지 않던 이의 이야기를 되살리는 영화이며, 2부는 자신의 권리와 이익만이 중요한 세상에 대한 통감이자 그 모든 상황에 있던 것이 우리의 동의라는 고해성사이다. 그러나 속죄의식이라기보다, 누군가 이 죽음 앞에 멈춰서 다른 막다른 길에 있는 누군가를 멈춰주었으면 하는 간절함이다. 모두가 소중한 존재이며, 사랑받아야 한다고 미디어가 떠들지만 정작 극단적 자본주의 속에 보호장치없이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도구로서만 인간을 취급하기에 사람이 죽는 사회가 되었다는 서늘한 시선은 영화 전반에 명징하게 서려있다. 내가 살아남는 것이 타인의 고통보다 중요하고, 그 죄책감을 해시태그로 해결하는 사회를 감독이 영화 한 편으로 바꿀 수는 없다. 그런면에서 <다음 소희>에서 가장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노래방 씬이었다. 음악도 음향효과도 거의없는 이 영화에서 가장 시끄러운 순간이다. 소희는 이승환의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를 친구와 온 힘을 짜네 고함을 지르듯 부른다. “너만을 사랑해, 너만을 기억해. 너만이 필요해, 그게 너란 말야” 아직 사랑을 제대로 해보지도 못했을 소희가 ‘죽음도 갈라놓지 못하는 사랑'을 이해한다기 보다, 좋은 음악이 가진 힘을 통해 마음의 고통을 토해내는 장면이다. 감독이 왜 이 노래를 골랐는지는 알 수 없다. 더 이상 춤도 추지 않는 소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이해도 안가고, 해결방법도 모르겠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목놓아 소리치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러나 만약 이들이 부르는 ‘사랑' 노래가 타인에 대한 사랑이라기 보다 자신에 대한 사랑을 일깨우는 방식이자, 감독이 소희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로 읽는다면 이해가 된다. 감독에게 소희는 노래 가사처럼 “그대는 나에게 끝없는 이야기 간절한 그리움”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감독의 마음이 스크린을 통해 전이되는 순간, 관객은 뒤늦게나마 소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한 사람이 된다. <다음 소희>는 우리가 알지 못한, 혹은 모른척 했을, 한 사람을 구체성을 가지고 이해하려는 시간을 단 2시간이라도 쏟게했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영화를 통해 그의 삶과 마음을 잠시나마 헤아려보는 시간을 가진다. 타인을 상상하는 영혼의 공간을 아주 조금 넓혀간다.
[테마연재]<엑시트> '쓸모 없는' 취준생의 '쓸모 있는' 극복기
날아다니는 수트를 입고, 시공간을 이동하고, 온 우주를 누비는 히어로들이 벌써 한 트럭이다. 너무 많아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히어로 패들이 도시를 무차별하게 깨부수는 우주 악당들로부터 우리 행성을 지켜내는 사이 대한민국엔 가르마조차 자신이 결정할 수 없는 ‘하찮은’ 취준생이 재난을 마주한다. 동네 놀이터라는 작은 무대에서 현란한 철봉기술과 뽀얀 근육을 뽐내며 등장하는 주인공 용남(조정석)은 구경꾼 할머니의 엄지척에도 입꼬리가 비식 올라갈 만큼 인정에 목말라 있다. 부모님과 누나, 어린 조카에게까지 용남은 창피하고 손 많이 가는 가족일 뿐이다. 반듯하게 옷 차려입고 번듯한 직장에 나가 일을 좀 했으면 좋겠는데, 용남은 어디 하나 쓸 구석 없어 보이는 산악 용품만 주렁주렁 옷장 안 깊숙하게 가지런히 걸어두었다. 가족들이 아무리 무시해도 용남은 가족을 사랑한다. 돈이라곤 벌어본 지 오래지만, 조카의 초딩 친구 무리에게 음료 수라도 꼭 사주고 싶고, 괜히 시키지도 않은 짓 하지 말라고 타박받아도 꼬박꼬박 설거지를 한다. 취준생 용남은 가족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엔 없다. 어머니의 칠순 잔칫날이 되고, 용남 일가족은 2시간이나 떨어진 신도시의 예식장으로 간다. 분명 기분 좋은 잔칫날인데, 용남에게는 수많은 실패를 안겨다 줬던 면접장과 다를 바가 없다. 사돈의 8촌까지 다 온 것 같은 칠순 잔치는 용남에게 너무 가혹하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이 불순한 호기심으로 질문해오면 나를 대변하는 건조하고 슬픈 사실들만 내내 줄줄 늘어놓아야 한다. “먹고 자고 싸고.” 그것 말고도 할 줄 아는 게 많으면서 자조적으로 그렇게 지낸다고 대답할 뿐이다. 와중에 용남은 예식장 부점장이자 산악동아리 후배였던 의주(윤아)를 마주치게 된다. 의주와 멋지게 재회하는 장면을 상상하며 일부러 멀리 있는 구름정원 예식장에 왔건만. ‘최종면접에 불합격하셨습니다.’라는 가혹한 문자 하나에 계획이 틀어진 용남은 의주에게 초라함을 들키고 싶지 않아 벤처회사 과장이라고 거짓말을 해버린다. 실패의 마일리지만 차곡차곡 적립하고 있는 용남에게는 사실 의주도 아픈 실패의 기억이다. “걱정하지 마. 다 잘 될 거야.”라는 말을 수백 번은 족히 들었는데. 인생은 바라지도 않았던 보너스 마일리지를 주듯 이제까지 만나보지 못했던 큰 재난을 선사한다. 가스 테러로 온통 자욱해진 도시에서 용남은 가족을 지키려는 본능으로, 의주는 눈부신 책임감과 직업의식으로 모든 능력을 총동원해 사람들을 탈출시키려 한다. 아무짝에 쓸모없다고 그렇게 욕먹었던 동아리 활동이 모두의 앞에서 빛나는 순간이다. 쓸쓸하고 고요하게 그러나 매일 갈고 닦아 꿋꿋이 지켜온 클라이밍 기술은 세상에 쓸모없는 배움은 없다는 걸 증명해준다. 대학 시절엔 자주 실수했던 돌출 형태의 구조물이 하필 용남 앞에 놓여있다. JUST DO IT! 화면에 클로즈업된 나이키 운동화는 어서 뛰어오르라고 부추긴다. “다른 거 안 바랄 테니까 이번 한 번만 도와주세요!” 누가 되었든 들어주길 바라며 용남은 절박하고 짧은 기도를 내뱉는다. 사자 굴에 던져지고도 살아남았다던 성서 속 다니엘처럼 용남은 절대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사자머리를 보란 듯이 넘어 오른다. 누가 용남이를 루저라고 했던가. 사자도 밟고 올라서는 용남이의 코털을 대체 누가 건드렸냔 말이다. 제목과 다르게 출구 없는 매력을 가진 <엑시트>는 재난과 코미디, 액션이라는 장르를 세련되게 넘나들며 관객의 혼을 쏙 빼놓는다. 불필요한 설명과 설정은 아예 접어두고 매일같이 보는 익숙한 현실을 여태껏 없었던 방식으로 신선하고 재치있게 빚어내 적재적소에 배치한다. 비장한 각오 없이 선택해도 될 법한 가벼운 코미디 영화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비범한 이 영화는 이상근 감독의 사려 깊은 연출과 현실을 꼬집는 관찰력이 돋보인다. 우리에겐 재난을 맞닥뜨린 학생들을 보면 떠올릴 수밖에 없는 국민적 트라우마가 있다. 학생들이 학원에 갇힌 장면에서 카메라는 과장된 앵글로 억지 긴장을 이끌어내지 않고 시점숏으로 멀리서 그들을 구조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관객의 트라우마를 감정을 고조시키는 도구로 쉽게 소비하지 않겠다는 태도가 엿보인다. 또한 테러의 주체에게 불필요한 마이크를 주지 않거나 재난 영화임에도 시체를 자세히 묘사하지 않는 등 영리한 판단 덕에 관객은 주인공의 탈출기에만 집중할 수 있다. 선을 넘지 않는 유머로 무장한 이 무해한 재난 코미디는 우리가 실제로 쓸 수 있는 생존 방법이나 S.O.S 신호까지 알려주어 심지어 유익하기까지 하다. 공사장 안전망이나 미관을 해친다고 사라질 위기에 처한 시각장애인용 보도블록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짚어주기도 한다.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도 눈여겨볼 만한 점이다. 재난 영화에서 여성은 흔히 연약하게 그려져 절체절명의 순간에 민폐를 끼치거나 짐이 되곤 한다. 반면 의주는 클라이밍 동아리 에이스 출신으로 내내 힘차게 건물 위를 뛰어다니고, 특유의 빠른 상황 판단 능력과 센스를 발휘해 구조를 앞당기는 유능하고 주체적인 캐릭터로 표현된다. 장점 가득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조금의 찝찝함이 남아있다면 그건 아마도 영화 탓보단 결코 웃어넘기기 힘든 청년들의 현실 때문일 것이다. <엑시트>는 쓰레기로 살아가야 하는 서글픈 청년의 자아를 여러 차례에 걸쳐 노골적으로 강조한다. 용남과 의주는 방호복 대신 쓰레기 봉투로 몸을 감싸고 후반부에선 아예 쓰레기장을 달리기도 한다. 우리가 자신을 쓰레기로 여기지 않고 줄 세움 당하지 않아도 되는 때는 언제가 될까. 용남은 인원 초과로 구조헬기에 타지 못하고 남아서 울먹이며 이야기한다. “내가 나가면 저렇게 높은 건물로 된 회사에만 원서 낼 거야. 무조건 층수만 보고.” 생사의 문제 앞에서도 끝없이 경쟁해야 하는 용남은 면접에서 떨어진 것도 서러운데 높은 빌딩 대기업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밀려 늦게 구조된다. 영화 초반 용남은 친구와 시원한 생맥주 한 잔에 미적지근한 현실을 지우려 호프에 간다. 호프(Hof)에 앉아 자기 자신을 ‘개쓰레기’라고 주저 없이 칭하는 용남의 뒤로 H.O.P.E.(희망)가 쓰여진 네온사인이 빛나고 있다. 먼 행복보다 지금 한 잔의 생맥주가 더 큰 위로로 나를 씻어주길 바라며 용남은 맥주를 들이킨다. 혼수 가구 전문점을 배경으로 침대 매트리스를 발판삼아 뛰어내리는 장면에서는 결혼조차 포기한 N포세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매트리스를 넘어 도착한 육교 위에 적힌 ‘수고했어, 잘버텨줘서 고마워’라는 메시지는 수많은 포기에 지친 젊은이들에게 작은 피로 회복제가 되어준다. 실패와 포기 속을 질주하는 청년들에게 영화는 이렇듯 곳곳에서 나름의 응원을 보낸다. 청춘들은 제각각 내 말 좀 들어달라고 외치는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 외침은 외면당하거나 조롱당하기 일쑤여서 청춘은 때론 차라리 입을 닫기도 한다. 하지만 <엑시트>의 주인공들은 계속 소리내기를 선택한다. 구원은 셀프니 노력하라며 옥상으로 내몰렸지만, 지지 않고 끝까지 그리고 끊임없이 외친다. “내 말 좀 들어줘요, 제발!” 재난 문자가 용남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해주기 전까지는 용남이 아무리 옥상으로 가자고 외쳐도 믿어주지 않는다. 가족들을 구하기 위해 구름정원 벽을 오르려는 용남에게 아버지는 되려 호통을 친다. “너 하지 마! 뭐가 됐든 간에 하지 마!” 그럼에도 용남은 가족을 위해 목숨 걸고 벽을 탄다. 어릴 땐 청춘이 불꽃처럼 화려하기만 할 것 같았는데, 둘은 완등 지점인 크레인에 다다라서도 눈에 확 띄는 조명탄이 아닌 작은 막대기 불꽃에 기대어야 한다. 용남과 의주는 소리치는 것밖에 방법이 없어 또 한 번 목이 찢어져라 외친다. “우리를 봐라!” 그리고 누구보다 구조되고 싶어 하는 청춘들이 출구를 간절히 바라며 외치는 S.O.S 신호에 942만 명이라는 놀라운 숫자의 관객이 응답했다. 영화 초반 클라이밍을 설명하는 장면에서 완등 지점까지 올라갈 때 필요한 길 찾기인 ’루트 파인딩’에 대해 나온다. 목적지를 설정했어도 가는 길이나 방법을 모르면 도착할 수 없다. 사회적으로 강요당한 목적지를 지도 없이 헤매느라 길 찾기가 어려웠던 용남. 용남에게 실재했던 재난은 안개에 싸인 듯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미래였다. 취업이라는 목적지로 가는 길은 절망으로 가득했지만, 차오르는 유독가스 속에서 자신이 정한 완등 지점으로 갈 때는 주저함 없이 완등해낸다. 영화는 이력서만으로는 멋대로 가늠할 수 없는 실패한 취준생의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엔딩크레딧에 흐르는 곡, 이승환의 ‘슈퍼히어로’ 속 가사처럼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기회가 있고 깊숙이 잠재된 무한한 능력들이 있다. 장래 희망은 못 이뤘어도 매일같이 스스로를 단련하는 용남, 자신을 알바와 다를 바 없는 부점장이라고 소개했지만 그 누구보다도 의연하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의주. <엑시트>는 세상이 미처 알아봐 주지 못한 용과 여의주의 승천 이야기이다. 동시대 청년이라면 과몰입할 수밖에 없는 이 짠내·땀내·소금기 가득한 탈출기는 재난 같은 대한민국 2030의 매일에 바치는 숭고한 헌정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