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선
- 감독
- 최하원
- 제작년도
- 1982
- 출연
- 신일용, 장미희, 김희라, 이영옥, 유영국, 김진해, 이일웅, 강태기, 박경득, 양영준, 홍윤정, 이해룡
사진: “ 너와 나 ”, 서울독립영화제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 사람들이 영화와 비평 사이에서 고민해온 시간을 들려줍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한국영화에 대한 감상도 꺼내봅니다. ---------- Original message ---------- From: "함연선" Date: 2025-03-XX XX:XX Subject: 마테리알 10호 기획의 건 To: "박채연", "박현" 두 분께, 안녕하세요, 채연 님, 현 님. 날이 많이 따뜻해졌습니다. 지난달 지원했던 비평매체 지원사업 공모 결과는 오늘 발표 날 줄 알았건만, 다음 주 중이나 되어야 나올 예정인가 봅니다. 이제 슬슬 마테리알 10호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메일을 드립니다. 10호라는 숫자가 주는 의미가 있어서인지, 자연스럽게 지난 5년간의 마테리알 여정을 돌아보게 됩니다. 10호는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독자층은 조금씩 늘고 있고, 잡지 자체의 완성도도 높아져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뭔가 이대로 괜찮은가 하는 불안에 종종 시달립니다. 요즘 특히 더 그렇네요. 2019년 창간 당시 마테리알의 원동력이 되었던 기존 예술비평 제도에 대한 반발심과, 그 무모했던 열정이 조금은 옅어진 것 같아서일까요? 돌이켜보면, 창간 초기 마테리알의 태도는 꽤 도전적이고 자극적이었습니다. 처음 개최한 행사인 창간 기념 집담회 홍보문에는 “오늘날 한국 비평의 고지혈증에 대한 책임은 모두가 나눠가져야 할 것이다”라는 다소 과격한 문구가 들어있었죠. 또 “과연 (젊은 세대가 죽이고 싶어하는 아버지가) 죽일 만한 아버지인지 먼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라는 선배 평론가의 말에, 우리는 한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죽일 만한 아버지’인지는 자식들이 판단할 문제다” *주1 라고 꽤 건방지게 대답하기도 했습니다. 사진: “ [마테리알 창간기념 토크] 비평의 비평 – The Book Society ”, 텀블러 당시 저는 기존 비평계의 권위(일종의 ‘아버지’)에 도전하는 그 행위 자체가 우리에게 정체성을 부여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칼이 아무리 무디더라도, 그것을 휘두르는 행위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믿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의 무모하게 큰 야심과 정확하지 못한 방법이 한데 섞여 있었던 셈입니다. 좋고 나쁨을 떠나, 마테리알의 초기 에너지는 무지에서 비롯된 용기에 크게 빚졌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저는 다른 종류의 야심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초기에 우리가 추구했던 야심이 높고 커다란 것이었다면, 이제는 ‘크기’와 상관없는 야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 야심은 정확하되 비루하지 않은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크기에만 집착하여 막연하고 허황된 말로 시끌벅적한 마음만큼이나, 너무 정확하고자 하여 오히려 작아지는 마음 역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야심이 크기와 상관이 없다면, 무엇과 상관있는 것이어야 할까요? 이 고민을 하던 중에 우연히 하길종 감독의 < 바보들의 행진 >(1975)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1975년 개봉 당시에 크게 흥행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 발견되는 것은 흥행을 향한 상업적 계산이나, 혹은 반대로 소위 ‘실험적’인 작업들에서 보이는 관습적인 작가적 야심이 아닙니다. 거칠게 말해보자면 철저히 실패하는 야심, 절망하는 야심에 가까운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것은 이내 야심을 가진 절망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두 분은 이 영화에 대해, 그리고 ‘크기와 상관없는 야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언제든 편히 답장 주세요. 두 분 모두 평안한 하루 보내시기를요! 연선 드림 ---------- Original message ---------- From: "박현" Date: 2025-03-XX XX:XX Subject: RE: 마테리알 10호 기획의 건 To: "박채연", "함연선" ‘절망하는 야심’이라는 연선 님의 표현이 인상 깊어 저도 <바보들의 행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전우형은 <바보들의 행진>이라는 제목을 국책 새마을영화인 임권택 감독의 < 아내들의 행진 >(1974)에 대한 패러디 로 보고 있는데요. *주2 근면한 아내들이 마을을 변화시켜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아내들의 행진>에서와 달리 이 영화에서 ‘바보들’의 ‘행진’은 어디로도 나아가지 않죠. 인물들의 서사뿐 아니라 영화의 구성에도 뚜렷한 진행 방향이 없어요. 맨 처음 오프닝 시퀀스에서 무음 상태로 재생되는, 착착 맞아떨어지는 군대 행진의 모습을 점차 깨부수는 게 이 영화의 목표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요. 어떤 거창한 주제 또는 클라이막스를 향해 발맞춰 나아가는 진행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거부하는 이 영화의 방식은 연선 님의 말대로 실패와 절망을 제대로 선언하겠다는 야심일지도 모르겠어요. 사실 청년기의 삶은 생각만큼 낭만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잖아요. 어린 시절의 순진한 이상과 동떨어진 현실의 보잘것없음에 적응해가야 하는 시기이기도 한데, 냉혹한 시대 속에 무력감을 겪는 청년들에겐 더더욱 그 낙차가 컸겠죠. 그런 실망 속에서 어떤 이들은 ‘바보’로 남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이 영화는 날카롭게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설렘을 안고 연극 무대에 오른 영자( 이영옥 )는 고작 우스꽝스러운 하인 역할로 번개처럼 나타났다 사라져 버리는데요. 연극이 끝난 후 쓸쓸한 실망에 잠긴 영자의 표정도 인상적이었지만, 더욱 기억에 남은 건 이어지는 술자리 씬이었어요. 이야기의 진행에 별 역할을 하지 않는 영철( 하재영 )의 술주정에 영화는 이상하리만치 많은 시간을 할애하잖아요. 빨뿌리 장사를 해서 돈을 잔뜩 벌겠다는 허무맹랑한 꿈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늘어놓죠. 하지만 반복되면 될수록, 이것이 단지 헛된 꿈에 지나지 않으며 영철은 빨뿌리 장사를 하지도, 돈을 벌지도 못할 거라는 음울한 예감만이 더욱 강해져요. 그 꿈의 종착지가 ‘고래사냥’이라는 허상이기에 더더욱요. 연극이 끝난 후, 하인 역할을 한 영자의 쓸쓸한 표정 / 술자리에서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영철 영철은 영화 초반부터 어딘가 부족한 말더듬이로 등장하죠. 하지만 모든 것을 그의 캐릭터성 탓으로 돌리기엔 자꾸만 영화 외부를 가리키는 힌트가 눈에 들어와요. 검열을 피해 우회적으로, 잠깐씩 등장할 뿐이어도, 아는 사람들이라면 영화가 암시하는 시대상을 유추해내기란 어렵지 않죠. 이상을 가진 청년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바보가 될 수밖에 없는 사회. 영철이 그런 사회의 희생양임을 영화는 말하지 않고도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는 《영상시대》 1호에 실린 하길종의 글에 담긴 야심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듯해요. “그러나 단지 영화적인 <재미>를 통해 스토리를 서술하는 일차적인 차원을 떠나서, 새 세대의 영화는 인간의 가치관과 기존 모랄을 재고하고 날카롭게 현실을 관찰하도록 대중을 선도하는 힘이다.” *주3 하지만 영화의 새로운 대안을 꿈꿨던 하길종은 검열 당국의 감시에 시달리며 흥행에 실패하다가 결국 요절했고, 그가 몰락한다고 보았던 “흥밋거리” 위주의 할리우드 영화는 되려 끈질기게 살아남았죠. 하길종에게 영향을 준 뉴 아메리칸 시네마 역시 결국 취사선택되어 주류에 흡수되었고요. 이전에 채연 님이 ‘독립’이나 ‘대안’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시작한 움직임들이 변질되지 않는 방법은 그 전에 소멸해버리는 것뿐인 듯하다고 말씀하신 것이 기억나요. 마테리알도 결국 소멸이라는 숙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싶어 당시엔 잠시 울적한 기분이 되었는데요. 다시 생각해보니 세상은 늘 소멸과 재생을 반복하잖아요. 70년대의 청년영화는 사라졌지만, 그들이 존재했기에 훗날 그 자리에 새로 태어난 또 다른 대안이 있을 테고요. 그렇게 생각하니 미래를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 필요한 것을 하자는 결심이 서는 것 같아요. 언젠가는 소멸하게 되더라도, 지금 당장은 마테리알이 우리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낼 수 있는 목소리가 남아 있을 테니까요. 혹은 어쩌면… 스스로를 죽이고 다시 태어나는 방식으로 우리의 자리를 계속 만들어 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 Original message ---------- From: "박채연" Date: 2025-03-XX XX:XX Subject: Re: RE: 마테리알 10호 기획의 건 To: "박현", "함연선" 두 분 메일을 읽고, 저도 서둘러 <바보들의 행진>을 보고 왔습니다. 영화의 흐름에 “발맞춰 나아가는 진행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거부”한다고 현 님이 말씀해주셨는데, 정말 잘 표현해 주신 듯해요. 조금 다른 말일 수도 있는데, <바보들의 행진>을 보며 저는 < 너와 나 >(조현철, 2022)가 계속해 떠올랐어요. 정확히는, <너와 나>에 관한 김병규 평론가의 글 *주4 이요. 이 비평에서 문제시하는 <너와 나>의 연출이 <바보들의 행진>에서도 보이더라고요. 잘 아시는 대로 김병규 평론가는 <너와 나>가 “넘칠 만큼 치장되어” 있다며 “화면 안의 요소들은 자연스러움을 훼손하는 의식적인 ‘의도’로 (...) 화면에 돌출되어 있다”라고 평하는데요. <너와 나>에서는 이야기와 동떨어진 사물들이 등장한다면, <바보들의 행진>에서는 이야기와 동떨어진 사건들이 거듭 등장해요. 서사의 진행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 맥락 없는 사건들이요. 이를테면 병태( 윤문섭 )와 영자가 처음 만난 날, 영자가 (병태에게 거짓말하면서까지) 교수를 찾아가 시험 점수를 정정해 달라고 말하는 장면이라든지, 축구경기 중에 병태가 공을 차는 순간 운동화 한 짝이 날아가고 돌연 화면이 멈추는 장면이라든지, 교내에서 각종 스포츠 경기가 열리는 장면 말이에요. 현 님이 짚어주신 대로 이상하리만치 긴 이런 장면들 덕에, <바보들의 행진> 또한 김병규 평론가가 <너와 나>를 칭하듯 “은유적이고 우회적”이라고 볼 수 있겠더라고요. <너와 나>에서 조현철 감독이 “통제”의 주체가 되어 연출과 편집을 행한 데 반해 <바보들의 행진>은 검열이라는 (진짜) 통제의 대상이 되어, 화면이 삭제되고 대체되면서 이런 구조를 취하게 되었다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기는 하죠. 특히, 수업을 듣다가 응원전 연습을 위해 교실을 우루루 빠져나가는 학생들은 원래 시나리오대로라면 시위에 참여하러 가는 것이었다고 해요. 영철의 권유에도 꿋꿋이 교실에 남아 수업을 듣는 병태는 홀로 괴로워하는데, 이때 병태의 모습과 스포츠 경기 장면을 교차해 보여주죠. 검열받지 않은 원래 시나리오대로라면 스포츠 경기가 아닌 학생운동 현장이겠고, 그렇다면 운동에 참여하지 않는 병태의 심리상태가 꽤나 직접적으로 드러났을 테죠. 병태의 운동화가 하늘로 날아가며 멈춘 화면 각종 스포츠 경기 장면과 교차되는, 홀로 교실에 남은 병태의 모습 하길종 감독은 검열의 흔적을 숨겨 매끄럽게 다듬기보다는 오히려 그 이음매를 도드라지게 만들어, 이 영화가 검열되었다는 사실을 보란 듯이 드러내 보이죠. 이러한 맥락 없이 영화의 결과물 그 자체만 본다면 되게 전위적인 영화 같아요. 느닷없고 당황스러운 장면들이, 김병규 평론가의 말 그대로 “돌출되어” 보이는 거죠. 검열이 없었다면 <바보들의 행진>이 조금은 더 밋밋하고 직접적인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검열로 인해 영화가 어떤 형식적 효과를 얻게 된 점이 굉장히 아이러니하네요. 영화를 보다 보면 “엥?” 하는 순간이 있죠. 푹 빠져 몰입하고 있는데, 예기치 못한 장면에 당황하는 순간들이요. 분명 <너와 나>를 보는 내내 김병규 평론가는 물론 많은 관객들이 “엥?”들을 경험했을 테죠. 저도 그랬고요. 김병규 평론가의 비평은 이런 장치들, 영화 속 은유와 상징들이 모두 일정한 의미값을 갖고 영화 속에서, 또 서사의 흐름에서 제 역할을 다해야만 한다고 전제하는 듯해요. 하지만 저는 이들의 역할이, 서사 중간중간에 그런 긴장감을 줌으로써 주의를 환기하는 것이라고 봐요. 몰입을 방해하면서, 서사가 아닌 영화에 주의를 다시 집중시키는 핑거 스냅 같은 역할인 것이지요. (“야! 너 지금 서사에 너무 몰입하고 있어”) 다른 말로, “자연스러움을 훼손”함으로써 내가 보는 화면이, 실제 장면 속에 들어가 있는 게 아니라, 카메라를 통해 보고 있다는 점을 일깨우는 역할 말이에요. (“야! 이건 영화야”) 장면 하나하나의 의미를 해석해 가며 영화를 감상하는 것 자체가 가능한지는 차치하고, 과연 그러려고 애써야 할까요? <너와 나>에서 거울을 들고 있는 두 어린이는 과연 누구를 상징하는지, 브라키오사우루스는 왜 물웅덩이에 빠져 있는지, 그리고 <바보들의 행진>에서도, 병태가 축구경기를 하는 장면은 어떤 의도로 삽입되었는지, 하키 경기 장면은 왜 혼자 화질이 다른지, 이렇게 물어가며 감상해야 하나요? 그걸 묻고 답을 찾을 동안 영화는 계속되는데 말이죠. 그러니까, “엥?”이라는 감각이 추임새를 넘어서서 문장이 되고 “이건 어떤 의미일까? 무얼 상징하는 걸까?” 묻는 순간 관객은 함정에 빠지는 게 아닐까 싶어요. 스스로 판 함정 말이에요. 그럴 때는 몰입하던 고개를 조금 뒤로 젖혀 자세를 고쳐 앉고 미간 사이 힘을 빼, 함정에서 얼른 벗어나 다시 영화로 되돌아오면 되지요. <너와 나> 중 / <바보들의 행진> 중 저화질로 재생되는 하키 경기 장면 (사진: “ [너와 나] 메인 예고편 ”, 유튜브 너와 나) 마테리알의 야심에서 시작해 너무 멀리 와버렸네요. 다시 돌아가자면, 이 기회를 빌려 마테리알을 독자로서 접하다가 이제는 내부인원이 된 제 입장을 말씀드려봐도 좋을 듯해요. 저에게 마테리알은 연선 님 표현대로 “높고 커다란” 야심으로 무장하고 돌진하는 듯 보였어요. 마테리알이, 혹은 비평이 모종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으리라 믿는 효능감이 돋보였죠. 불만이 많고, 목표지향적이며, 대범합니다. 편집부원으로 활동을 시작하고 난 뒤 생각이 바뀌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에요. 마테리알은 실로 변화를 꾀하고, 불만이 많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애쓰며, 쉽게 겁먹지 않습니다. 마테리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할 때 연선 님이 특히 ‘동료’를 많이 언급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어쩌면 마테리알의 동력은 개인의 야심이 아니라 공동의 야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스포츠 경기 전, 선수들이 둥글게 모여 손을 포개 승리를 다짐하는 이미지가 스칩니다. 야심의 크기가 아니라, 야심의 겹을 따져 보는 것은 어떨까요? 박채연 드림 ---------- Original message ---------- From: "함연선" Date: 2025-XX XX:XX Subject: RE: Re: RE: 마테리알 10호 기획의 건 To: "박채연", "박현" 두 분께, <너와 나>에 대한 부정적 평가들은 영화 내에 상징적인 것을 과하게 배치해 놓는 창작자에 대한 반감에서 기인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반감을 적극적으로 표명하다 오히려 반감의 대상이 가진 논리에 포섭되어 버린 듯한 인상이에요. 상징적인 것들이 너무 많다고 지적하다가, 끝내 많은 것을 상징으로 읽어내고야 마는… <너와 나>가 세월호 사건을 다룬다는 사실은 개봉 전부터 명약관화한 사실이었고, 영화의 뽀얀 화면, 컨테이너 박스에 갇힌 개들, 물웅덩이에 빠진 브라키오사우루스 인형 등은 세월호에 대한 놀랍도록 뻔한 상징이죠. 하지만 그처럼 쉬운 상징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들이 상징이라는 사실을 금방 지나칠 수 있지 않나요? 그리고 영화적 현실로서 그것들을 감각할 수 있지 않나요?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채연 님이 말씀 주신 것처럼 상징을 읽어내는 와중에도 영화는 계속되고, 그렇기에 상징이나 의미를 발견하는 비교적 어려운 책무를 맡는다는 사실이 비평가들에게 중요한 것 같기도 해요. 스스로의 존재 가치에 대한 불안을 자신의 기능에 대한 확신으로 대체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예전에 같은 영화나 영상작품을 여러 번 보면서, 그것이야말로 내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유사-전문성이다, 라고 생각하기도 했었어요. 일반 관객들은 굳이 같은 작품을 여러 번 안 볼 테니까요. 그들이 다른 데 배분할 시간들을 나는 같은 작품을 여러 번 보는 데 씀으로써 독자들에게 다른 기능을 제공한다, 는 생각으로 불안을 달랬던 셈이죠. 하지만… 지금은 솔직히 말해 비평이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자꾸만 비평가로서의 저 개인보다는 마테리알에 집중하고 싶어져요. 얼마 전에 마테리알 7, 8호의 객원편집인이기도 했던 독립기획자 김신재 님께서 건넨 말이 생각나요. “점점 작품에 부속된 작품론을 안 다루고, 어떤 비평가의 작업을 연속선상에서 보고 비평적 야심(?)을 밀고 갈 수 있는 자리를 내어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속도와 사이클을 따라서 뭔가를 계속 뽑아내야 할 때가 많으니까요. 작가나 비평가 모두 창작의 고민과 방법론, 비평적 과제를 자기 속도와 방향으로 풀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바람입니다.” 이 얘기를 듣고 조금 정신 차렸어요. 같은 자리를 맴도는 듯한, 뭔가 막혀버린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가 자꾸만 스스로의 야심에 대해서만 고심해서였단 사실을 깨달았거든요. 좁은 의미에서의 동료들의 야심뿐 아니라 같은 그라운드에서 각자의 포지셔닝을 가져가고 있는 타인들의 야심에 대해서 보다 주의깊게 관찰하고 그들의 야심을 엮어내는 게 현재 마테리알의 사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독립’이나 ‘대안’ 등의 영역에 속한 움직임들은, 대체로 이질적인 외부의 저항에 무너지는 게 아니라 동질적인 주변의 사랑—또는 그 비슷한 것—에 파묻혀 괴사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합니다. 언제나 커다란 야심을 품으시길… 메이웨더와 싸운 맥그리거처럼…” 마테리알 7호 피드백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독자 코멘트를 요즘도 종종 생각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야심은 ‘무엇을 이루어 보겠다고 마음속에 품고 있는 욕망이나 소망’일 텐데요, 물론 위의 코멘트를 남긴 익명의 독자분은 마테리알로 하여금 “커다란 야심”을 가지길 요청하셨지만, 저는 앞선 메일에서 말했듯 우리의 야심을 ‘크기’와는 떨어뜨려 생각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맥그리거의 야심이 크기와는 관련 없었을 수도 있잖아요. 어쩌면 하길종 감독의 ‘절망하는 야심’과도 공명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하길종 감독은 검열로 인해 산산조각 난 영화의 이음매를 오히려 의도적으로 드러냄으로써 검열이라는 현실 자체를 폭로했고, <너와 나>는 때로는 촌스럽게까지 느껴지는 솔직함과 직접적인 ‘상징’으로 영화와 현실의 관계를 밀어붙였죠. 두 영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이 놓인 현실과의 관계를 정직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닮아있습니다. 마테리알의 ‘크기와 상관없는 야심’ 역시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만듦새보다는 지향점을 보려는, 자본과 제도와 관습을 걸고 넘어지려는 비평의 몸짓 말입니다. 작품이 던진 스루패스의 궤적을 감각하고, 우리도 그 공간으로 달려 나가는 열린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것. 이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읽히느냐,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키느냐의 ‘크기’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라운드 위에서 얼마나 예리하게 기존의 흐름을 간파하고, 얼마나 과감하게 새로운 공간을 향해 패스를 보내거나 패스가 보내질 곳으로 달려가느냐의 문제겠죠. 이런 관점에서 마테리알 10호는 그동안의 여정을 돌아보면서도, ‘스루패스로서의 비평’이라는 비전에 우리가 어떻게 계속해서 새로운 해석과 실천을 더해갈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는 장이 되면 좋겠습니다. 서로의 생각을 꾸밈없이 나누는 이 서신교환처럼요. 아, 그리고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방금 전에 비평매체 지원사업 결과가 나왔어요. 지원이 확정되었습니다! 영화계에서는 비평에 대한 지원이 거의 없어서 결국 미술계를 통해 길을 찾아야 했네요. 다들 너무 고생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좋은 영화들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고, 마테리알의 실무가 아닌 추상적인 미래에 대해서도 여러분과 이야기 주고받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조만간 오프라인에서 뵈어요! 연선 드림 <바보들의 행진> 중 / <너와 나> 중 *** 주1. 이예지, “TEXT TEXT TEXT”, 《아레나》, 2020. 5. 13. 주2. 전우형, “ <바보들의 행진>(하길종, 1975) 의 검열 표상 ”, KMDb, 2018. 1. 28. 주3. 하길종, 「새 세대•새 영화•새 정신」, 『영상시대』 1호, 1977. 주4. 김병규, “ [비평] 〈너와 나〉와 한국 독립영화라는 문제, <너와 나>, <괴인> ”, 《씨네21》, 2023. 12. 6. 마테리알(영상비평지) l 마테리알은 ‘스루패스로서의 비평’을 지향한다. 박채연, 박현, 함연선으로 구성된 마테리알은 동시대 무빙이미지를 중심으로 미술계와 영화계 및 그 주변부를 아우르는 비평 활동을 펼친다. 축구에서의 스루패스가 상대팀 수비진의 틈새를 뚫어 새로운 기회를 만들듯, 마테리알은 예술계에 열린 공간을 창출하고자 한다. 영상비평지 《마테리알》 발행을 중심으로, 온라인 지면 의 비평적 텍스트 발행과 오프라인 행사 ‘오픈 스페이스’ 등을 통해 다양한 플레이어들의 비평적 상호작용을 모색한다.
한국영화의 못다 한 이야기는 인물들이 살아가는 '도시 공간 ' 에서 계속되기도 합니다. 조금의 시차는 있지만, 카메라가 남긴 이미지와 함께 그 이야기를 돌아봅니다. 1980년대 초반의 서울은 독특한 매력을 품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GNP)이 1천 달러를 넘어서면서 적어도 보릿고개는 면할 수 있게 되었고, 동시에 1988년 하계 올림픽 유치에 성공하면서 ‘세계도시’의 말석에 자리하게 된 시점이 바로 이 무렵이다. 1974년 최초의 지하철 개통으로부터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2, 3, 4호선이 거의 동 시기에 착공되었으며, 1979년 800만 명을 돌파한 서울의 인구는 단 4년 만에 다시 100만 명이 증가하는 등, 1980년대 초반의 서울은 약간의 과장을 보태서 하루가 멀다 하고 발전과 팽창을 거듭하는 도시였다. 이 시기에 형성된 서울의 도시구조, 다양한 건축과 교통, 토목 인프라 시설은 2020년대의 서울에도 상당 부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서울의 팽창을 지탱한 이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 지방에서 상경한 노동자들이었다. 1981년에 개봉한 김수용 감독(1929-2023)의 < 도시로 간 처녀 >는 바로 이 시기, 1981년의 서울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실존하는 미아운수라는 시내버스 회사를 배경으로, 지방에서 상경한 버스 여차장(안내양)과 버스 기사, 그 주변인들을 중심으로 당대 노동자들의 희로애락을 그려낸 이 작품은, 영화진흥공사가 선정한 우수 영화로 대종상 작품상 후보에까지 오르는 등 당대에 이미 가치를 인정받은 영화였다. 한편으로는, 첫 개봉 당시 운수업 종사자의 실상을 왜곡했다는 이유 등으로 한국노동조합총연맹으로부터 상영 중지 요청을 받고 일단 극장에서 내려진 후, 문제 장면의 삭제와 재촬영 등을 통해 재개봉이 이뤄졌다는 특이한 일화를 가진 영화이기도 하다. 개봉으로부터 40년이 흐른 지금, 이 영화를 둘러싸고 다양한 평이 존재하지만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당시로서는 시의적절하고, 제법 화제가 되었던 영화였다는 총평에는 아마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 서울 시내의 안내양을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답게, <도시로 간 처녀>의 카메라는 영화의 러닝타임 내내 버스의 움직임을 쫓아서 1981년 상반기의 서울 구석구석을 담아낸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분명 안내양들이지만, 그들의 일터이자 이 영화의 공간적 배경인 1981년의 서울 또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발휘한다. 이미 1960년대부터 서울의 모습은 총천연색 컬러로 영화 속에 담기기 시작했으나, 1981년이라는 시점은 현재의 서울과 더욱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 이 시기에 젊은 시절을 보낸 이들이 여전히 또렷한 기억을 가지고 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도시로 간 처녀> 속 서울은 ‘가까우면서도 살짝은 멀게 느껴지는’ 과거의 서울과 현재의 서울을 이어주는 매개체로서, 더욱 깊이 들여다볼 가치를 지닌다. 청량리역 구 역사 영화는 주인공인 문희( 유지인 )가 기차를 타고 청량리역에서 내리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1분경에 등장하는 청량리역의 모습과 지금의 청량리역 주변을 비교해 보면 과연 같은 역이 맞나 싶을 정도이다. 영화가 촬영되던 시기엔 영동선, 중앙선의 열차가 반드시 청량리역에서 시종착을 했지만, 지금은 많은 열차가 서울역까지 연장 운행을 하고 있다는 점 또한 청량리역이 가지는 의미를 상당 부분 변화시켰다. 지방에서 출발한 열차가 서울역까지 직통 운행을 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 상경한 이가 청량리역 광장에 내렸을 때의 느끼던 두려움과 낯섦은(여전히 존재하기는 하지만) 과거만큼은 못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상) 장충단 입구 교차로의 시내버스 (하) 남대문 부근의 시내버스 2분 40초경에서 3분에 걸쳐서, 카메라는 장충단 입구와 남대문 부근의 버스 행렬을 훑는다. 지금도 이 일대는 버스로 넘쳐나기는 하지만, 지금보다도 버스의 대중교통 분담률이 높았던 시대답게, 도로를 빼곡히 메우는 버스의 행렬은 가히 장관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스카라극장의 내부. 특유의 둥근 파사드가 눈에 띈다. 19분경, 영옥( 이영옥 )은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바람을 맞고 돌발적으로 극장 구경에 나선다. 이 장면이 촬영된 극장은 실존하던 스카라극장 (1935년 준공, 2005년 철거)으로, 특유의 둥근 전면 파사드가 인상적인 근대건축이었다. 이 무렵에 청춘을 보낸 이들에게는 당연히 익숙한 공간일 테지만, 이 시기를 살아보지 않았던(특히 1990년대 이후에 태어난) 젊은 세대들에게, 총천연색으로 담긴 스카라극장 내부의 모습은 정말로 소중한 사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상) 시청 방면에서 바라본 서대문 고가차도의 시점부 (하) 지하철 공사 바리케이드 36분경에는 서대문 고가차도를 미끄러지듯 내려온 버스의 주변에 서울시의 공식 휘장과 ‘지하철’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바리케이드가 화면에 잡힌다. 이 일대(지금의 아현역-충정로역 사이)가 1980년부터 시작된 지하철 2호선 공사 현장이었음을 드러내는 의도하지 않은 미장센이라 할 수 있겠다. 지금도 여전히 시내버스는 서울시 대중교통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지만, 지하철 1호선과 2호선 일부 구간만이 운행되던 40년 전에는 아침 출퇴근길에 있어서 시내버스의 존재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절대적이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살포시 등장하는 지하철 공사 바리케이드는, 시내버스의 절대적인 존재감이 점차 옅어지는 과도기를 나타내는 상징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압구정현대아파트와 성수대교 49분에서 50분에 걸쳐서, 문희와 광석( 김만 )이 조각배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곳은 지금의 강변(뚝섬한강공원 일대)으로, 한강 건너편의 압구정현대아파트와 성수대교가 배경으로 잡힌다. 이 무렵 압구정현대아파트는 이미 준공되어 입주가 완료된 때였지만, 한강종합개발사업(1983년 착공)이 이뤄지기 전 무언가 삭막한 한강변의 모습은 지금과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이 장면에 담긴 푸른 빛깔의 성수대교는 영화 촬영으로부터 불과 13년이 지난 1994년 10월, 성수대교 붕괴사고를 일으키면서 완전히 철거되어 현재는 전혀 다른 새로운 교량으로 거듭났다. (상) 고속터미널 청사와 아치 (하) 고속터미널 아치의 2011년 모습 (필자 촬영 및 제공) 66분부터 69분에 걸쳐서, 문희가 원양어선을 타고자 하는 광석을 데리고 부산으로 내려가는 장면에서는 1981년 10월의 전면 개업을 코앞에 둔 강남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이하 고속터미널)의 웅장한 모습이 곳곳에 담겨있다. 특히 69분 언저리에서, 광주고속 소속의 벤츠 고속버스가 거대한 고속터미널의 청사를 배경으로 옛 랜드마크였던 거대한 출입구 아치를 통과하는 모습은, 당시 고속버스를 타고 상경하던 이들에게 서울 입성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순간이기도 했다. 고속터미널의 아치는 이후 터미널을 본뜬 구조물로 바뀌었고, 2011년 말 2012년 초 사이에 철거되어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다. 압구정현대아파트와 주변의 미개발지 영화의 말미, 86분에서 88분에 걸쳐서 카메라는 다시 압구정현대아파트를 찾아가 그 옆의 빈곤층 거주지를 훑는다. 1980~81년 무렵만 해도 강남 일대는 토지구획정리만 진행되었을 뿐 주택이 들어서지 않은 땅이 지천에 존재했으며, 이들 지역에는 개발 이전부터 살아온 원주민 혹은 구 도심에서 떠밀려 온 저소득층이 곳곳에 거주하고 있었다. 가난한 가정의 실상을 담아내기 위한 감독의 의도였을까, 카메라는 시종일관 판잣집을 겨우 면한 가옥과 뒷배경의 산뜻한 압구정현대아파트, 그리고 새로운 아파트 공사장을 원경으로 잡으면서 대비를 시도한다. 이렇듯 <도시로 간 처녀>는 경관과 건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서울 곳곳의 경관을 비춰주면서 빠져들도록 한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눈에 익은 곳이 등장할 때, 기뻐하지 않을 관객(특히 서울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40년 전 노동자의 일상과 다면적인 서울의 모습을 미디어의 발달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총천연색으로 즐길 수 있다는 사실에 다시금 감사함을 느낀다. 참고문헌 송아름, “ 두번의 검열과 <도시로 간 처녀>(2) : 어떻게 버스안내양들의 고난이 감추어졌는가?(1970년대) ”,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2018. 4. 16. 김영준(도시공학 연구자) ㅣ일본 도쿄대학에서 일제강점기 서울의 도시계획사로 박사학위 취득 후, 연구원으로 일하며 '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 '라는 필명으로 도시 경관을 기록해오고 있다. 영화의 또 다른 '등장인물'이라 할 수 있는 배경 속 도시 공간을 읽어내는 법을 계속해서 탐구한다. 『영화와 서울: 영화로 보는 도시 공간』(2022), 『새시각 #01 : 대전엑스포'93』(2021) 집필(공저).
<수절>(하길종, 1973) 행정서류를 통해 본 1970년대 초 제작 전 검열절차 나는 한때 영화를 거의 포기하였다. <화분>을 연출한 후, 써낸 시나리오는 매번 제작자의 거부 반응을 받거나 칼자루를 든 관에서 나의 시나리오는 항시 보이콧을 받아왔다. 그래서 최대한도로 현실과 타협한다고 해서 만든 <수절>이란 영화는 작품의 배경이 한사군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저항적이다’ ‘반사회적이다’라는 이유로 20분 길이의 필름이 무참히 커트당했고, 극장 스크린에서는 알맹이가 빠진 영화가 관객에게 보여졌다. 나는 그때 마치 눈알과 입이 없고 팔다리 하나가 잘려나간 나의 모습을 공개하는 것 같은 큰 아픔을 느꼈고, 구토와 분노를 함께 느끼며 영화를 포기하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1) 이번 편에서는 영상자료원에 보존된 1973년 작 <수절>의 검열서류를 통해 이 시기 검열제도와 환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수절>은 한사군 시대를 배경으로, 전쟁을 하러 타지에 간 유신(하명중)을 기다리던 부인 질례(박지영)와 그녀의 딸 용분(이영옥)이 온갖 고초를 겪다 남편의 스승이자 폭군인 지거도사(윤일봉)와 그 패거리에게 강간과 죽임을 당한 후 귀신이 되어 복수를 한다는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10년 만에 돌아온 유신은 부인과 딸의 귀신을 만나 그녀들의 억울한 사정을 안 후 지거도사와 최후의 대결을 벌인다. <수절>은 미국 UCLA에서 영화학 석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하길종이 <화분>(1971)에 이어 두 번째로 연출한 작품이다. 1970년 귀국한 하길종은 독립 제작의 어려움 끝에 겨우 데뷔작 <화분>을 완성하였으나, 이탈리아 영화 <테오라마> 표절 시비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고심 끝에 두 번째 작품 <수절>을 연출하였으나, “최대한도로 현실과 타협한다고 해서 만든” 이 영화 역시 고난의 상황을 면치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위의 인용문에서처럼 감독 본인이 무려 20분 길이의 분량을 검열당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 영화의 검열서류를 통해 당시 한국영화 검열( 및 행정) 절차와 환경을 살펴보도록 하자. 1960년대(특히 후반) 이후 영화의 검열은 크게 제작 전 시나리오 검열과 제작 후 본편 검열로 나누어졌다. 시나리오 검열은 원래 존재하지 않았고, 1962년 제정 영화법 이래 존재했던 제작신고 절차에서 문공부가 시나리오를 검토한 후 제작상의 유의사항을 전하는 관행이 제도화된 것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시나리오 검열이 실질적으로 강화되기 시작했고, 1970년부터는 예륜을 통한 시나리오 검열이 독자적으로 시행되었다. 이와 함께 문공부가 주관하는 제작신고 역시 존속하였다. 그러다보니 제작 이전 검열 혹은 행정 절차는 1970년 이후 예륜의 시나리오 심의와 문공부의 제작신고로 대별된다. 특히 이 편이 주목하는 것은 앞서 언급했던 바, 1972년 이후 시나리오 단계에서 검열 혹은 제작신고 체제의 변화를 서류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다. 1960년대 이후 한국영화 검열체제의 주요한 변화와 혼란은 거의 항상 시나리오 검열단계의 복잡화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시나리오 신청과 제작신고 단계의 절차를 영상자료원 검열서류의 일자 순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1. 1973.6.25. 시나리오 심의 신청(화천공사->예술문화윤리위원회) 2. 1973.6.29. 시나리오 심의의견서(문화예술위원회) 3. 1973.7.3. 국산 극영화 제작권 배정신청서(화천공사->문화공보부) 4. 1973.7.9. <수절> 시나리오 심의결과 통고(예술문화윤리위원회->문화공보부) 5. 1973.7.13.(작성, 7.16일 접수) 73 2/4분기 시나리오 심사 작품 제출(화천공사->문화공보부) 6. 1973.7.20. 2/4분기 제작권 배정에 대한 작품 지정(문공부 내부서류) 7. 1973.7.21. 영화제작신고서(화천공사->문화공보부) 8. 1973.7.21. 우리영화 제작현황(문공부 내부서류) 9. 1973.7.24. 73. 2/4분기 제작권 배정에 따른 작품 지정(문화공보부->화천공사) 10. 1973.7.25. 극영화 “수절” 제작신고 수리통보(문화공보부->화천공사) "국산극영화 제작권 배정신청서"와 "73년 2/4분기 제작권 배정에 따른 작품 지정"(영화 <수절>) 1970년을 거치며 체계화된 영화정책에 따르면 영화를 제작하고자 하는 자는 예륜을 통해 시나리오 심의를 통과한 다음(1, 2, 4번) 이를 바탕으로 문공부에 제작신고를 진행해야 했다(7, 10번). 제작신고는 말 그대로 제작이 시작된다는 것을 정부에 신고하는 행정절차이나, 실제 문공부는 예륜과 별도로 시나리오를 심의하곤 하여 시나리오 단계의 이중검열 논란을 낳기도 했다. 그런데 앞의 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두 단계에 별도로 제작사에 대한 제작쿼터(제작권) 부여 단계가 추가되었다. 이에 따라 행정서류에도 이 절차에 따른 변화가 나타난다. 볼드체로 표시한 부분이 71년까지 존재하지 않던 서류들이다.(3, 5, 6, 8, 9번) 제작사 별로 양적인 제작권을 부여하는 방식(연간 00편, 분기별 0편 등)과 달리, 개별영화에 대한 심사를 거쳐 제작사에 제작권을 배정하는 절차는 국가비상사태 이후 권위주의 정권의 영화검열 강화를 위해 신설된 것이다. 1972년에는 이 제작권 배정을 위해 영화계 안팎의 권위자 20명 내외가 예륜의 심의 이후 별개로 문공부 촉탁으로 참여하여 시나리오를 검토하게 하였는데, 이는 실질적인 검열의 과정이었다. 그 결과 1972년 신규 제작의 부진으로 이어졌고, 이를 감안 1973년 영화시책을 통해 문공부가 직접 결정하기로 했다는 점은 전편에서 언급한 바 있다. 그렇다면 1973년 실질적인 검열이 아닌 형식적 행정절차로 전락한 이 제작권 배정절차가 절차의 번거로움을 강화하는 외에 어떤 실질적인 효과가 있었는지 의문시 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73년 들어 예륜의 심의가 강화되고 있는 추세임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우리영화 제작현황(1973.7.21)(<수절>) 그럼에도 이 절차의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영화법 개정 이후 새롭게 허가받은 12개 사의 제작내역을 미리 점검함과 동시에 통제하는 기능을 했다고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인적(생산주체) 통제 기능을 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8번 “우리영화 제작현황”이라는 양식은 다소 흥미롭다. 제작신고가 접수된 날 작성된 이 양식은 본편 검열예정일, 상영예정일과 극장, 촬영 일정까지 적시되었다. 국가가 영화의 제작 및 상영일정과 개봉관, 주조연 배우까지 관리하는 이러한 상황은 제작사의 입장에서는 직간접적으로 상당한 압박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수절>의 주요 검열사항 검토 이제 이 영화의 주요 검열 사항에 대해 살펴보자. 1973년 영화시책이 밝히고 있듯이 73년부터 예륜에 의한 시나리오 검열이 강화되었다. 당시 영진공의 기관지 『영화』의 한 기사에 따르면, 1973년 6월부터 11월까지 시나리오 심의를 마친 작품 53편의 경우 반려가 11편, 전면개작이 6편, 개작이 9편, 수정통과가 26편이며 수정이 되지 않고 초심에서 통과된 작품은 단 1편 뿐이었다. 2) 그렇다면 <수절>의 시나리오 검열은 어떠했을까? 이 영화에 대해 예륜은 13개의 사항을 지적했고, 재심 판정을 내리지는 않았다. 말하자면 53편 중 26편에 해당하는 “수정통과” 작품 중 하나였던 셈이다. 13개 내역 중 자구나 사실관계 수정 정도에 해당하는 사항이 5개, 잔혹성 지적이 4개, 외설성 지적이 1개, 고증 유의 1개, 사유 불명 2개 등이다. 항목이 적은 편은 아니지만, 당시 반 이상의 작품들이 반려나, 개작을 통한 재심 및 삼심까지 이어졌음을 감안한다면 검열이 심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수절> 시나리오 검열 수정지시 사항 13개 영화 촬영 후 촬영본 본편에 대한 검열은 11월 14일에 신청되었다. 첨부된 문서 중 “영화배급신청서 접수필증”(11월 17일자)이 눈에 띈다. 제작사인 화천공사가 한국영화배급협회(이사장 김태수)로부터 발급받은 접수필증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4차 개정 영화법 이후 영화배급의 전국 일원화를 목표로 설립된 영화배급협회가 관련된 행정절차의 흔적을 보여준다. <수절>의 본편 검열은 1973년 11월 17일에 진행되었다. 당시 영화 본편의 검열은 문화공보부, 중앙정보부, 내무부(치안국) 3개 기관이 주관하였다. 순전히 공무원 중심의 검열체제였다. 중앙정보부는 국가 안보사항, 내무부 치안국은 미성년자 관람가부를 중심으로 보았고, 문화공보부가 전체 검열사항을 종합하여 의견을 내는 것으로 역할 분담이 이루어져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위 중앙정보부 검열관의 검열사항은 4개에 불과한데, 최종적으로 문화공보부가 지시한 검열사항은 9개처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문화공보부의 추가 검열사항이 부가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통해 볼 때, 당시 문화공보부가 중앙정보부나 내무부 치안국의 검열사항을 취합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체적인 판단에 따라 종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문화공보부가 최종적으로 통보한 9개처의 검열사항은 대사삭제 2개처(“상납할까요”, “돈과 권력이면 전부지” 등), 화면삭제 4개처(강간 장면 2개처 등), 화면단축 3개처(나체로 춤추는 여자들과 이를 보는 질례의 얼굴 등)이다. <수절> 본편 검열 수정사항 시나리오 단계의 엄격한 검열을 거친 후, 시나리오대로 진행된 본편 완성본의 경우 검열되는 경우가 많지 않았던 당시 관행을 감안할 때, 9개처에 달하는 이 영화의 본편 검열 분량은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며 꽤 심각한 검열의 대상이 되었다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저항적이다’ ‘반사회적이다’라는 이유로 20분 길이의 필름이 무참히 커트당했”다는 감독의 주장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검토해보기로 하자. 우선 검열서류 상 절제된 이후의 총 분량은 96분으로 제시된다. 그런데 검열되지 않은 원본으로 추정되는(실제 서류상 검열사항이 모두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현재 영상자료원에 보존된 오리지널 네거티브(ON) 원본을 변환하여 서비스 중인 동영상의 러닝타임은 1시간 32분 28초(93분 28초)가량이다. 오히려 원본이 짧은데, 영상자료원 버전에 크레딧롤이 빠져있어 발생한 결과로 보인다. 크레딧롤이 길어야 3-4분임을 감안할 때 검열의 분량이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20분가량 “커트”됐다는 감독의 회고는 다소간의 과장이거나, 시나리오 검열 단계까지 언급한 것이거나, 공식적인 서류에서가 아니라 막후에서 조정된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또 하나의 주제로 “저항적” 혹은 “반사회적”이라는 면에서 검열당했다는 감독의 주장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대사 2개에 대한 검열 근거는 저항적이거나 반사회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것임을 직관적으로 인정할 수 있다. 문제는 나머지 7개 처 외면상 잔혹이나 신체 노출 등의 이유로 절제된 것으로 보이는 장면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데 있다. 관습적인 의미에서라면, 감독의 자의식에 찬 주장과 달리 이 절제된 장면들이 “저항적”이라거나 “반사회적”이라 보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장면들이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에서 충분히 저항적이거나 반사회적이라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본다. 우선 이 영화가 전반적으로 권력에 대한 비판을 목표로 진행된다는 점을 거론할 수 있다. 사실 <수절>은 과도한 실험성과 다소 미숙한 촬영이나 편집, 개연성 없는 인물간의 관계 설정, 앞뒤 안 맞는 서사 등이 난삽하게 흐트러져 전체적으로 잘 조율된 작품이라 보기는 어렵다. 이는 감독의 전작 <화분>에서 역시 마찬가지지만, 어찌된 일인지 <화분>에 비해 그 문제가 두드러져 보인다. 본인이 익숙하지 않은, 당대 유행하던 검술영화라는 장르적 외피 속에 자신의 메시지와 실험정신을 새기고자 한 결과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영화는 사실 과할 정도로 당대 권력자의 횡포와 피수탈자의 고난(유신의 부인과 딸) 장면들을 강조 내지 나열하고 있고, 이는 앞서 언급한 영화의 단점들과 어우러져 영화를 매우 보기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이를 영화적 실패로 볼 수도, 당대 상업 주류 영화들이 도외시한 영화적 실험의 성취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평가가 어떠하건, 이 영화가 유신 이후 강화되어가던 권위주의 체제 속에서 역사무협극을 경유하여 권력 일반의 폭력에 대한 매우 노골적인 고발의 의지를 담고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영화에서 절제된 외설적이거나 잔혹한 장면들은 대개 권력자들의 횡포와 폭력을 가시화하는 사례들로 제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장면들이 직간접적으로 비판적이거나 반사회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보겠다. 영화 <수절>의 한 장면 또한 박정희 정권기, 특히 유신 이후의 권위주의 정권기에서 높은 수준의 섹슈얼리티나 잔혹함, 혹은 사회적 일탈행위의 재현 일반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다. 지면이나 글의 성격상 이에 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진행할 수는 없겠으나, 당시 권위주의 정권이 국민에게 요구했던 절제와 질서, 미풍과 양속의 덕목들, 그리고 그러한 덕목의 강화를 통해 현행 권력체제를 유지하고자 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과도한 잔혹성과 퇴폐, 섹슈얼리티, 일탈은 도구적 이성을 넘어서는 정동과 개인적 욕망들의 분출을 표방함으로써 권력의 체제에 구멍을 뚫고 탈주하고자 하는 개인들의 (무)의식적 의지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각주 1) 하길종, "신문 광고와 바보의 초상", 한국영상자료원, 『하길종 전집1, 태를 위한 과거분사, 백마 타고 온 또또』, 2009, 263-264쪽 2) “양질의 작품 빈곤: 시나리오”, 영화진흥공사, 『영화』, 1973년 12월호, 33-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