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이야기
- 감독
- 이재호
- 제작년도
- 2009
라이브 클럽 ‘그레이하운드’에서 내달 무대에 설 뮤지션의 오디션을 갖는 중이다. 사장으로 보이는 사람은 무대 앞에 여유롭게 앉아 있고, 바텐더이자 덩치로 보이는 남자는 다소 성마른 표정으로 바 너머의 사람들을 관찰한다. 휑뎅그렁한 플로어에는 몇몇 뮤지션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섰다. 그러다 모던락을 연주하는 밴드가 연주를 시작한다. 그들이 떠나고 다시 무대는 조용해진다. 내공을 겨루기 전 실력을 가늠하려는 걸까, 무대 주변은 흡사 고수들이 무협을 겨루는 객잔을 방불케 한다. < 라이브 클럽 그레이하운드 >라는 제목으로 먼저 소개된, <라이브하드>의 ‘겨울 편’의 풍경은 그러하다. ‘머저리클럽’의 두 멤버와 그들의 친구가 이야기의 중심에 놓여 있으나, 영화는 오디션 무대에 선 뮤지션들의 연주에 상당 부분을 할애한다. 모던락에 이어 헤비메탈이 무대를 뒤흔들고, 여성 재즈 듀오가 퓨전의 아름다움을 펼치는가 하면, 흑인 블루스 연주자가 기타 연주와 노래로 흑인의 영혼을 전한다. 마침내 등장한 머저리클럽이 펑크를 연주하지만 그들의 무대는 실패의 판정을 받고 만다. 그들의 아픔을 느끼기도 전에, 뒤늦게 나타난 플라밍고 기타 연주자가 의자에 앉는다. 그렇게, 황량했던 무대는 점차 음악의 전시장으로 변한다. 흑백의 이미지 위로 색채를 입히는 것은 음악의 색깔들이다. 어지간한 음악 프로그램보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음악을 듣는 맛이 눈길을 끄는 영화인 셈이다. <라이브하드>의 ‘겨울 편’은 제천영화제에서 단편으로 앞서 소개된 바 있고, 황욱 감독은 앞과 뒤에 ‘늦가을 편’과 ‘봄 편’을 덧붙여 부천영화제의 장편 섹션에 초대받았다. 만들어진 시기가 다른 만큼 오리지널 단편과 새로 추가된 파트는 촬영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어두운 지하의 공간에서 주로 촬영된 겨울 편이 인물 가까이 긴밀하게 접근한다면, 늦가을 편과 봄 편의보다 넓은 앵글은 느슨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오디션과 해프닝의 기록에 가까운 겨울 편과 비교해, 인물의 배경이 추가된 장편 버전이 오밀조밀한 이야기의 구조를 갖춘 것은 물론이다. 덕규(크리스 라이온 분)는 멀리 한국에 와 블루스를 연주하려고 했으나 그에게 요구되는 건 인기 있는 힙합이다. 겉보기에 그는 흑인이기 때문이다. 머저리클럽의 베이스 주자인 철( 이재호 분)은 노래를 부르고 싶지만, 베이스나 잘 치라는 말을 듣는다. 사실 그는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한다. 머저리클럽의 리더인 임재(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자취를 감추었고, 남은 멤버인 철과 섭(갈치 분)은 그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은정( 공민정 분)은 임재를 사랑하는데 그는 매번 다른 여자와 놀아난다. 여자들이 떠나면 그가 언제나 다시 자신의 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그녀는 스스로를 위로한다. 음악에 관한 영화였던 ‘겨울 편’은 ‘가을’과 ‘봄’ 편을 얻으면서 가난하고 쓸쓸한 청춘의 이야기로 화한다. 황욱 감독은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결합된 스타일의 영화를 만든다. 그가 그것을 의도한 것인지 앞으로도 그런 스타일을 유지할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단 지금까지 소개한 두 편의 영화 - < 개 >(2015)와 < 라이브하드 >의 스타일은 그러하다. 한국에서 근래 발표된 음악영화들이 대부분 다큐멘터리였던 상황에서 <라이브하드>의 형식은 괜히 낯설다. 두 편의 필모를 가진 감독답지 않게 황욱은 배우들의 연기 연출에 단연 뛰어난 실력을 보인다. 뮤지션인 사람과 뮤지션이 아닌 사람, 배우인 사람과 비전문 배우인 사람이 뒤섞여 있으면 영화가 뒤뚱거리기 마련인데, <라이브하드>는 그런 단점 따위는 없다는 양 자유롭다. 뮤지션들의 연주 부분과 이야기를 맡은 배우들의 부분이 매끄럽게 연결돼 단순한 영화 너머로 일상의 한순간을 완성한다. 전작 <개>가 마치 사건 르포를 보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듯이, <라이브하드>는 가난한 뮤지션들이 처했음 직한 상황에 세세한 마음을 쓴다. 그것으로 현실감을 득한다. 그게 전부다. 그들을 대변하겠다고 목청을 높이거나 그들을 위로하는 척하는 태도가 없는 점이야말로 이 영화의 위대한 부분이다. 그렇다면 <라이브하드>는 차가운 현실을 차갑게 그린 영화일까. 차가운 현실을 차갑게 그린 영화는 적지 않다. 거꾸로, 차가운 현실을 따뜻하게 포장한 영화는 더 많다. <라이브하드>는 좀 이상한 영화다. 차가운 현실을 애써 포장하지 않아 뮤지션의 하루를 절감하게 하면서도 마냥 우울하지는 않다. 차가운 방에 작은 스토브를 켜놓아 온기를 나누는 느낌이랄까. 천사처럼 한 남자가 그들 곁에서 계속 춤을 추며 기운을 북돋우기 때문일까. 세 번째 이 영화를 보면서 어렴풋이 그 답을 알 것 같았다. 영화에서 뮤지션과 친구들은 각자 거울을 바라본다. 헤비메탈 밴드의 리더는 화장실 거울 앞에서 머리를 묶는다. 덕규는 정신을 가다듬으려는 듯이 거울 앞에서 얼굴을 씻는다. 철은 현실이 풀리지 않을 때마다 거울을 바라보는 습관이 있다. 은정은 무표정한 얼굴로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앞에는 그들 자신밖에 없다, 당연히. 그렇다면 <라이브하드>는 그들의 자화상을 그리는 영화일까? 자화상을 그리는 것은 화가들이나 할 짓이다. 뮤지션들은 자화상을 그리는 게 아니라 무대 앞의 관객을 바라보며 연주를 해야 한다. <라이브하드>에서 관객에 해당하는 사람은 클럽 ‘라이브 와이어’의 사장이다. 카메라는 문득, 기타를 들고 포크를 부르는 여자 싱어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포착한다. 그는 분명 무대를 바라보고 있으나 그의 눈길은 어딘가 다른 곳을 응시한다. 홀로 객석을 지키는 남자인 그의 눈길은 현실의 슬픔과 깊은 관계를 맺는다. 관객은 혼자 남았고, 뮤지션은 그를 보며 슬픔을 연주한다. 그들은 서로 마주 보며 슬픔을 위로하는 존재다. 그게 작은 불씨를 만든다. 그 불씨를 간직한 사람이라면 <라이브하드>의 마지막 장면에 초대받을 자격이 있다. <해피투게더 독립영화> 상영작: 2018.9.29.(토) 17:00 시네마테크KOFA 2관(GV)
필명으로 남해림 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한다. 서울에서 출생했다. 배재고보를 다니다가 학비가 없어 중퇴하고 중동학교에서 수학했는데, 중동학교 2학년 학생이던 1929년에 잡지 「동광」의 현상 시 모집에 당선되기도 했다. 1933년부터 일본 와세대대학 제2고등학원을 거쳐 문학부 영문과에서 공부하면서, 이해랑, 김동원 등과 동경학생예술좌를 창립하고 함께 활동했다. 이 시기 조선일보사 신춘문예에 희곡 <광풍>, 동아일보사 신춘문예에 희곡 <동맥>이 각각 당선되었으며, 유학생을 중심으로 한 라디오드라마연구그루프를 결성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1938년 대학을 중퇴하고 귀국하여 동양극장 문예부, 조선일보사 학예부 등에서 근무했으며, 1939년 조선일보사 신춘문예에 소설 <소복>이 당선되었다. 이후 그는 소설 <방랑기>, <생리>, <코>, 희곡 <단층> 등을 발표했다. 이렇게 그는 첫 시작부터 소설, 연극, 방송극 등 다양한 분야의 문학에 관심을 갖고 활동했고, 이런 성향은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그가 영화와 관계를 맺은 것은 1940년 고려영화주식회사 선전부장을 맡으면서부터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고려영화협회가 제작한 < 복지만리 >(1941, 전창근 감독)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백년설이 불러 해방 후에까지 오래 인기를 모은 주제가 <복지만리>(이재호 작곡)의 가사를 쓰기도 했다. 그는 이 시기 몇 편의 대중가요 작사를 했는데 이 중 <대지의 항구>는 <복지만리>와 함께 인기를 모은 작품이다. 해방 후 고려문화사 편집국장, 「어린이 신문」 주간 등으로 활동하고 소설도 부지런히 발표했지만, 타계할 때까지 그가 가장 많은 시간을 쏟고 많은 작품을 남긴 영역은 방송극이었다고 보인다. 1946년 당시 경성방송국(이후 KBS)에서 대본을 쓰고 연출을 하기 시작하여 줄곧 방송작가로 살아왔다. 물론 희곡작가로서 활동도 쉬지 않아 <혈맥>(1947) 같은 한국현대희곡사에 남는 작품을 발표하고 국책 가무단인 예그린의 첫 창작뮤지컬 <살짜기 옵서예>(1968)의 대본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연극 활동이 간헐적인 것에 비해 방송극에서의 활동은 지속적이고 양도 매우 많다. 어찌 보면 영화 시나리오 작업은 이러한 방송극 작업의 연장 혹은 변주의 측면이 크다. 그것은 그가 간여된 영화 작품 중 그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지 않고 원작만을 제공한 작품이 크다는 데에서도 확인된다. 영화 < 여사장 >(1959, 한형모 감독), < 혈맥 >(1963, 김수용 감독) 등 희곡을 영화화한 몇 작품이 있기는 하지만, 해방 후 그가 간여된 첫 영화 < 똘똘이의 모험 >(1946, 이규환 감독, 안석주 극본)부터 말기작인 < 거북이 >(1970, 이성구 감독, 이희우 극본)에 이르기까지 상당수의 작품은 모두 라디오드라마와 텔레비전드라마를 바탕으로 영화화 한 작품들이다. 특히 영화 < 굴비 >(1963, 김수용 감독)가 발표된 1963년 즈음까지는 < 성벽을 뚫고 >(1949, 한형모 감독), < 출격명령 >(1954, 홍성기 감독), < 장미의 곡 >(1960, 권영순 감독) 등 직접 시나리오를 쓴 작품이 있지만, 이후에는 모두 원작만 제공하고 다른 작가가 영화 각색을 맡은 작품들이다. 그의 작품세계는 전쟁 소재의 < 출격명령 >, 1950년대의 트렌디한 로맨틱 코미디 < 여사장 >, 전형적인 연애물 < 사랑이 문을 두드릴 때 >(1961, 이성구 감독), 신파적 멜로드라마 < 친정어머니 >(1966, 김기덕 감독) 등 매우 다채로운 편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세계의 핵심이 유머를 머금은 서민들의 이야기, 민초들의 이야기라는 데에는 이의가 없을 듯하다. 방송극을 영화화한 < 박서방 >(1960, 강대진 감독)은 뒤이은 < 마부 >(1961, 강대진 감독)와 함께 희극적이면서도 비애스러운 서민 아버지의 김승호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품이라 할 만하다. 특히 그는 서민 남성 인물형을 탁월하게 그려내는데, 해방 직후 빈민들의 삶의 풍경을 탁월하게 포착한 < 혈맥 >, 식민지시대 수표교 다리 밑의 의리 있고 순박한 각설이패 두목을 형상화 < 거북이 > 등의 인물 형상화는 탁월하다. 또한 정의감과 뚝심이 있는 젊은 엘리트를 그려낸 < 신입사원 미스터리 >(1962, 김기덕 ) 역시 < 마부 >와 < 쌀 >(1963, 신상옥 감독)로 이어지는 문제해결 능력을 지닌 듬직한 장남 신영균의 이미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한국영화 전성기이자 라디오드라마의 전성기인 1960년대에 이미 50대의 중견 작가였던 그는, 젊은 작가들이 빛을 발하던 여성 중심의 현대적 애정물과는 다소 거리를 둔 가족과 중년 남자들의 이야기에서 특히 작가적인 역량을 발휘했다고 할 수 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그의 작품은 <친정어머니>나 < 엘레지의 여왕 >(1967, 한형모 감독) 등 다소 퇴영적인 신파적 질감의 작품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을 보이며, 1971년을 마지막으로 영화에서는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 글: 이영미(대중문화평론가)
1986년 4월 28일 신림 사거리. 전방입소 반대 시위를 벌이던 대학생 김세진, 이재호가 분신자살을 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흐른 뒤, 김응수 감독은 그 날의 기억을 불러온다. 아니, ‘기억을 불러온다’는 게 맞는 표현일까? 일반적인 다큐멘터리들이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는 방식을 이 영화는 따르지 않는다. 사건 자체에 대해서, 이를테면 그 날 사건을 직접 겪거나 본 사람들의 증언은 이 영화의 관심사가 아니며, 그 사건의 역사적 맥락이나 정치적 파장 같은 것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대신 그 사건 앞에 너무 늦게, 혹은 너무 빨리 도착한 자들, 그러니까 죽음을 목격하지 못한 채, 죽은 자들의 잔상, 흔적만을 안고 살아남은 자들의 사적이고 파편화된 이야기를 듣는다. 어쩌면, 듣는다기보다는, 그들의 조각난 기억들을 끈질기게 끄집어낸다. < 과거는 낯선 나라다 >를 보는 동안, 과거가 현재로 호출되는 건지, 현재가 과거로 호출되는 건지, 이 영화가 어느 시간 속을 부유하고 있는 건지 알기 어렵고, 그 모호한 상태에 이 영화의 슬픔이 고인다. 여기에는 질문을 하는 감독과 당시의 기억을 답하는 자들이 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보면,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관계가 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그건 그 관계가 영화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이 우리가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보아온 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경우, 인터뷰어(대체로 감독)가 인터뷰이와 한 프레임 안에 존재하는 적은 드물어도, 우리는 그들이 그 순간 같은 시공간 안에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는 걸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묻는 자와 답하는 자 사이에는 시공간적 단절이 있는 것처럼 들리고, 보인다. 요컨대, 답하는 자들은 현실계에 존재하는데, 묻는 자는 어딘지 초월적인 시공간에서 질문하는 것 같다. 혹은 인터뷰이의 떨리는 목소리는 구체적인 인물의 것인데, 인터뷰어의 목소리는 그 실체를 알 수 없고, 때로는 기계적이고 추상적이다. 질문자의 목소리는 마치 확성기에 대고 말하듯 울려 퍼지며, 시종일관 취조의 말투를 취한다. 물론 김응수 감독은 이게 어떤 의도라기보다는 마이크가 하나뿐이어서 질문자와 답변자의 목소리를 동시에 녹음할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인터뷰가 끝난 뒤, 나중에 그 장소에 다시 가서 자신의 목소리만 따로 녹음을 하고 편집 때 에코를 붙인 거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 효과가 불러오는 영화적 파장은 강렬하고 인상적이다. 마치 한국 근현대사를 떠도는, 애도되지 못하고, 애도될 수 없는 유령 같은 실재가 현실 세계에 침입해서 현재가 찢겨지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제목은 이미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과거가 낯선 이유는 그것이 망각되어 사라지거나, 현재로 돌아와 현실의 질서와 언어 안으로 통합될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가 낯선 이유는 그것이 괴이한 목소리로, 기운으로 해결되지 못한 채, 끊임없이 현실로 돌아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신화가 되기를 거부하는, 여전히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과거 앞에서, 그렇다면 살아남은 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조각난 과거를 하나씩 주워 모으며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흔들리는 인물들, 철저한 질문자의 위치에서 기어이 카메라 앞으로 나와 고백하던 감독을 보는 동안, 결국 우리는 그 질문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