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산에
- 감독
- 이지행
- 제작년도
- 2002
- 출연
- 문소리, 이승옥, 이계영, 최현, 박종현
8, 90년대 부동산으로 큰돈을 벌었다가 IMF로 버블이 꺼지면서 직격탄을 맞은 부모는 잠실의 아파트에서 밀려나 옆 동네 월세 빌라에 살면서도 부동산 버블 시대에 대한 향수와 인생 역전의 꿈을 버리지 못한다. 부모를 지켜보는 감독의 카메라는 그들의 부동산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대체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를 뒤쫓는다. 70년대 개발독재 시대의 건설과 부동산 열기는 그대로 베이비 붐 세대의 욕망이 되었고, 베이비 붐 세대인 감독의 부모 역시 화학 공장에서 일하다 집 장사에 눈을 떠 시대와 함께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건설과 개발, ‘하면 된다’로 요약되는 시대는 IMF를 기점으로 신자유주의적 자본의 시대에 자리를 내줬고, 그렇게 바뀐 시대의 수레바퀴 아래서 감독의 부모를 비롯한 수많은 개미 민중들이 깔려 죽었다. 이 영화는 게임에서 언제나 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바로 그 ‘개미’들에 대한 이야기다. < 버블 패밀리 >의 감독은 부동산 호황기에 ‘집 장사’를 통해 중산층으로 올라선 부모 아래서 금지옥엽으로 자라난 외동딸이다. 그 딸이 과거의 영광은 사라지고 씁쓸한 경제적 몰락 위에 서 있는 부모님의 오늘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건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사적 다큐멘터리의 여러 갈래 안에서도 가족 다큐는 한국적 가족 관계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상당히 껄끄러운 작업이다. 또한 가족의 내밀한 사연을 익명의 대중에게 공개해야 하기에 복잡한 각오를 필요로 한다. 그러다 보니, 가족 다큐라는 미션을 수행하는 이들은 부모와 나와의 관계에 대해 촬영 전에 어느 정도 마음의 정리가 끝나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이 미움이든 포용이든 말이다. 그래야만 갈등의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카메라를 들이댈 수 있는 객관적인 마음의 거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는 조금 이상하다. 부모의 가장 추레하고 비참한 모습에 카메라를 들이대면서도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부모를 의식하고 마음 쓰는 감독이 보인다. 허물어져 가는 살림살이에도 끝까지 부동산 한 방의 꿈을 버리지 못하는 부모를, 때론 어이없는 헛웃음으로 대하다가도 곧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팔을 걷어붙이기도 한다. 평가하고 해석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가 결국은 그 과정에서 부모의 삶의 궤적을 마음으로 이해하게 된 경우라고 해야 할까. 영화의 마지막, 엄마가 빚까지 져가며 딸의 이름으로 사둔 임야를 바라보며 감독은 중얼거린다. “이 땅 때문에 빚을 져야했지만, 이상하게도 나의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것만 같다.” 감독 자신 역시 부모로부터 환경과 습성과 유전자를 물려받았음을 그래서 스스로도 자기 영화의 대상인 부모와 그리 다르지 않음을 씁쓸하게 인정하는 창작자의 태도에 뭔가 신뢰가 갔다면 이상한 얘기인 걸까. 이 영화는 감독의 가족사를 통해 근현대 한국이라는 공간에 개입해 들어온 자본주의의 문제 즉 지정학적 사유를 보여준다. 한국의 중산층이 87년 절차적 민주주의 시대의 개막에서부터 90년대 소비 자유주의시대, 97년 IMF 이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시대를 거쳐오면서 어떻게 비상하다 추락했는지를, 우리는 부동산의 몰락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자본이 지배하는 게임에서 정보와 자본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개미들은 언제라도 치명타를 맞고 무너져 내릴 수 있음을 영화는 증언한다. 부동산 몰락이 베이비 붐 세대 생애사의 한 챕터였다면, 지금의 젊은 세대들의 생애사에는 또 다른 형태의 몰락이 예정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끝난 이야기가 아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위안부 만행에 대한 증언으로 위안부 문제가 처음 수면 위로 올라온 지 25년이 흘렀다. 그 시간을 지나는 동안, 1992년에 시작한 주한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는 1,200회를 넘겼고, 60대였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대부분 돌아가셨으며, 생존해계신 소수의 할머니들은 어느덧 90대가 되셨다. 그리고 지난 2015년 12월 28일,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로부터 10억 엔의 출연기금을 받아내는 조건으로 불가역적인 한일 위안부합의를 맺은 이후,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상징인 소녀상은 외교적 논란의 대상으로 비화되어버렸다. 캐나다 출신 티파니 슝 감독의 < 나비의 눈물 >(개봉제: <어폴로지>)은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된 한국, 중국, 필리핀 출신 세 할머니의 일상을 교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의 길원옥 할머니는 수요시위로 일본으로 중국으로 스위스로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위안부 문제를 증언하는 활동가의 삶을 바쁘게 살아낸다. 중국의 카오 할머니는 이 추위에 무슨 장작을 패냐는 딸의 타박에도, 아흔이 넘은 노구를 부지런히 움직여 땔감용 장작을 패놓는다. 필리핀의 아델라 할머니는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사실이 자식에게 알려질까 두려워하지만, 같은 마을의 위안부 피해자 모임에 나가는 용기를 낸다. 노래를 부르고 TV를 보고 장작을 패고 끼니를 챙기고 춤을 추고. 할머니들의 삶은 얼핏 보면 평범한 삶의 감각으로 채워진 것처럼 보이지만, 문득 그들이 눈을 감고 긴 한숨을 내쉴 때 그리고 무언가를 더듬는 듯한 눈길로 창밖을 바라볼 때, 주변의 소리와 흐름을 멈추고 정지하는 카메라는 그들의 삶이 보이지 않는 심연으로 채워져 있음을 암시한다. 새어 나오는 긴 한숨 소리와 흔들리는 동공, 그리고 떨리듯 내뱉는 “(고통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어 (It’s still there)”라는 목소리는, 전쟁 중 성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어떻게 이들로부터 평범한 삶의 감각을 앗아갔는지 드라마틱한 장치의 도움 없이도 그 자체로 천둥처럼 증언한다. 영화는 유난히도 특정한 신체적 접촉에 주의를 기울인다. 함께 발맞추어 걸어가는 발, 꼬옥 잡고 쓸어주는 손, 옆으로 포개져 누운 채로 함께 이야기하며 안아주는 자식과 활동가의 몸은, 할머니들의 전 인생을 지배해 온 한숨과 정적의 순간을 마치 위로하듯 이불처럼 덮어준다. 여성의 몸을 타고났다는 이유로 가장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취급을 감내한 육체를 쓸어주고 껴안아주는 손은 보는 이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인간이 타인에게 이처럼 소탈한 방식으로 온기와 존중을 전달해 줄 수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인간으로서 받아야 할 마땅한 대접임에도 불구하고, 왜 여성의 몸은 비단 전시뿐만 아니라 평화 시에도 성적인 약탈과 정복의 대상으로 간주되는 것일까. 정희진 선생에 따르면, 전시에 일어나는 피점령지 여성에 대한 강간은 상대 남성 공동체를 파괴하는 제노사이드(집단 학살) 전략의 일환으로 실행된다. 여성을 강간하는 것은 그 여성 자체가 아닌 여성을 소유한 남성에 대한 모멸과 위협으로 의미화되기 때문에, 전쟁 시 집단 강간은 상대 집단의 재생산과 문화 및 정체성을 파괴하는 궁극적인 승리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20만 명의 아시아 여성을 유린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단순히 일본군의 도덕적 타락에서 기인한 특수한 악행이 아니며, 남성중심적인 전쟁과 정복의 인류사에서 배태된 결과라는 측면에서 들여다봐야 한다. 카오 할머니는 위안소에서 일본군으로 인해 두 명의 아이를 낳았고, 자신의 손으로 직접 그 아이들을 죽였다. 카오 할머니의 딸은 버려진 자신을 입양해 이날 이때까지 키워준 엄마의 놀라운 고백 앞에 잠시 할 말을 잃는다. 그러나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의 딸에게도 해줄 것이냐는 감독의 물음에 “해야죠. 아이가 좀 더 크면 꼭 얘기해줄 거에요” 하고 다짐한다. 아델라 할머니는 죽은 남편의 묘에서 일본군에게 강간당한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고, 아들에게도 뒤늦게 이 사실을 밝히기 위해 길을 나선다. “이건 내 인생에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아들의 몫”이라며 다소 긴장된 목소리로 그러나 단호하게 말한 할머니는 아들에게 진실을 말해주고 돌아온 뒤 “무거웠던 영혼이 가벼워진 것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델라 할머니는 영면에 든다. 13세에 공장에 취직하는 줄 알고 일본에 갔다가 위안부가 된 길원옥 할머니는 5년간의 위안부 생활이 끝나고 고국으로 가는 배를 탔지만, 당도한 곳이 고향인 평양이 아닌 인천임을 알게 된다. 곧이어 북한으로 가는 국경이 막히고, 낯선 남한 땅에서 집도 절도 없이 떠돌던 할머니는 자신이 몸을 의탁하던 곳에 버려진 갓난아기를 받아 자신의 아들로 키워낸다. 비록 끔찍한 트라우마로 얼룩졌지만 이들이 살아낸 삶 그 자체가 바로 용기의 증명이다. 그리고 그 용기는 그들에 의해 구원받고 살아남은 후손들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왜 이런 전쟁을 합니까? 무기를 사들이는 게 평화가 아닙니다. 휴전선에 봄이 와야 진정한 해방입니다.” 위안부 피해자를 ‘조선인 창녀’라 조롱하며 무시무시한 고함을 지르는 일본 극우세력, 위안부 문제를 정치적 협상의 대상으로 여기는 외교 부처, 그리고 남성 중심적인 전쟁과 폭력의 역사에 맞서, ‘아직 해방 받지 못한’ 할머니들의 몸은 나비의 날갯짓이 되어 저 너머 어딘가 있을 평화의 땅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나비는 날아올랐다. 폭풍우가 치게 하는 건 이제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