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닦는다
- 감독
- 이진우
- 제작년도
- 2008
- 출연
- 김지현, 이윤선, 김현진, 김지현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을 건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아버지를 따라가지만 공기업 민영화의 선두주자 KT의 역사를 끄집어낸다. 아니, 신자유주의 시대에 노동자가 어떻게 퇴출되어 가는지를 차분하면서도 씁쓸하게 담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진우 감독의 < 전봇대, 당신 >이다. 한 남자가 길을 걷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아버지의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시간 축을 따라간다. 연대기적 구성 축을 중심으로 하지만, 순차적인 전개를 따른다기보다는 현재의 시점과 과거의 설명이 교차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전체적으로 차분하게 하나씩 하나씩 설명하는 식이 인상적이다. 빠른 전개를 통해 사건을 강조하거나 인물이나 상황에 대해 몰입을 할 만한데, 다소 다른 선택이다. 사건들은 각 단락마다 정보를 제공하거나 상황을 충실히 보여주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렇게 따라가다 보면 아버지의 모습이나 감독의 성격이 직간접적으로 전해지게 된다. 감독의 아버지는 한국의 대표적인 통신회사인 KT 노동자였다. 지금은 정년퇴직했지만, 유능한 사원이자 노동자로서 신입사원들에게 KT의 가치와 업무에 대한 첫 교육을 담당했던 사내교수였다. 우체국 업무와 통신 업무를 병행했던 체신부 시절부터 시작하여, 한국전기통신공사 그리고 민영화된 KT의 노동자로서 오랫동안 근무했다. 그러나 마지막 근무는 지역근무에다 단순업무 배정, 퇴출 압력을 버티는 시간이었다. 반면에 낙하산 인사와 임원 비리, 민영화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았다. 아버지의 회사 이력에 덧붙여 가족의 변화가 사이사이 전개된다. 조용하고 차분한 이야기 전개 속에서 KT의 주주 총회와 인력퇴출 프로그램에 관한 시퀀스는 아버지를 뒤따르던 카메라에게 약간의 파동을 일으킨다. 아버지와 아들이 마지막으로 닿는 장소는 아버지의 추억 속에 강하게 남아있던 연수원이다. 이 장면은 현재 아버지와 아들의 상태를 드러내는 여백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1인칭 시점의 < 전봇대, 당신 >은 어쩌면 두 가지 전략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하나는 KT를 통해 민영화의 폐해와 구조조정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버지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애잔함 혹은 이해이지 않을까. 아마 감독은 이 두 가지 모두에게 아쉬움을 갖고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아버지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과 감정을 낮고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며, 공기업이 민영화되어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는 시사적이다. 무엇보다 과하지 않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호흡이 관객들을 숨차게 하지 않을 것이다.
#1 자식 키우기 한 남자가 비스듬히 누워 포르노를 보고 있다. 엄마는 과일을 깎아 아들에게 가져온다. 포르노에 열중인 아들은 먹기 싫다는 제스쳐를 취한다. 그래도 하나 먹어보라는 엄마는 포크로 과일을 찍어 아들의 입에 가져간다. 귀찮다는데 왜 그러냐며 과일을 집어 던지는 아들. 엄마는 섭섭하다. #2 부쩍 커버린 아이 아들은 게이다. 남자친구와의 오럴섹스에 열중인 아들의 방을 훔치는 엄마. 행위에 열중인 아들과 친구에게 다리를 들어보라고 하지만 그들에게 엄마는 안중에도 없다. 열심히 닦고 방을 나가자 본격적인 섹스가 시작된다. #3 두 어른 엄마는 자해를 했다. 상의를 모두 벗어 가슴이 그대로 드러난 엄마의 상체에는 칼로 그은 큰 상처가 있다. 울고 있는 엄마에게 아들은 화를 낸다. #4 어린 엄마, 늙은 자식 자해로 인해 자리에 누운 엄마에게 아들은 과일을 깎아 준다. 이제야 기분이 좋아진 엄마. 자신만 먹기 미안했는지 아들에게 과일을 권한다. 그러자 아들은 화를 내며 과일을 집어 던진다. 위의 장면들 1997년 제4회 서울단편영화제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며 알려진 <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 >의 내용은 상기에 적시한 그대로다. 달리 이 영화의 내용을 전달할 방법이 없어 저렇게 썼다. 이 영화는 아들이 포르노를 보고 남자친구(영화의 주인공은 물론 남자다)와 오럴섹스를 하는 환경 속에 ‘엄마’를 끼워 넣는다. 아들의 기이한 행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평범한 엄마가 하듯 과일을 먹이려 하고, 방을 훔치는 엄마의 행동이 충돌을 일으켜 ‘대체 이게 뭐냐’는 호기심을 자아낸다.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극단적인 상상. 혹은 갈 데까지 간 짓궂음. 이미지도 이러한데, 대사는 물론이거니와 앰비언스(환경음)까지 모두 삭제한 채 음악만이 흐르고 있어 관객에게 ‘이래도 견딜 수 있을까?’라고 묻는 것 같다. 극한까지 몰아가는, 형식과 내용 면에서 굉장히 파격적인, 단편 영화가 가질 수 있는 힘을 잘 보여준 작품이었다. 연출자인 김정구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작품에서 모성의 맹목성 중 한 단면을 단순 무지하게 증폭시켜 스케치해 보기로 하였다. 그것을 위해 모성의 반대말이라고 생각되는 포르노와 폭력의 이미지를 대비시키기로 했다. 나의 저급한 상상은 모성과 포르노를 한 공간에 몰아넣고, 어쩌면 그것이 서로 어울릴 수도 있으리라는 망상에까지 이르렀다.”라고 밝혔다. 모성과 포르노라는 단어가 한 문장에 있는 것도 어색하지만, 그것이 잘 어울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이 과격한 몽상가는 이 영화로 세간에 두각을 나타낸 ‘지하창작집단 파적’의 소속이었다. 김정구를 필두로 윤영호 , 이진우 , 김일안 , 김유하 , 조성제 등의 창작자가 속해있던 이 집단은 협업을 통해 다양한 영화를 만들었다. 서로서로가 어떨 땐 연출로, 어떨 땐 스태프 혹은 배우로 참여하며 < 삼승할망 >(윤영호 감독), < GOD >(이진우 감독), < 피로 물든 세계지도 >(김유하 감독) 등 20여 편이 넘는 왕성한 창작열을 보였던 그들은 ‘파적’. 즉 ‘적막을 깨트린다’는 뜻에 걸맞게 신, 섹스, 낙태 등 금기로 치부되었던 소재를 자유롭게 다뤘다. 다른 이야기지만, 김정구 감독이 ‘장난으로’ 쓴 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우연히 장선우 감독의 눈에 띄어 ‘한국 영화 사상 최악의 재앙’이라 불리는 어떤 영화를 출현토록 하는 씨앗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지하창작집단 파적 <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 > 이후에도 김정구 감독은 < 샴, 하드로맨스 >라는 작품으로 근친상간과 물리적으로 닿을 수 없는 남녀의 애절한 사랑의 기묘한 교차점을 선보였고, < 사자성어 >의 에피소드를 맡아 마치 인사하듯이 섹스가 대단치 않은 일인 농담 같은 세상을 그리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파적의 멤버들과 함께 만든 옴니버스 < 좀비처럼 걸어봐 >는 그간의 작업을 정리라도 하는 듯 ‘파적필름’이라는 회사까지 차려 제작된 작품이었다. 파적의 주요 멤버인 김설우 , 윤영호 , 김정구 , 김유하 (이 김유하 감독이 <말죽거리 잔혹사>를 연출한 유하 감독이라는 말이 있는데 확실한 자료를 찾지 못해 언급은 하지 않는다.) 네 명이 각자 하나씩 에피소드를 연출한 옴니버스 영화다. 그들은 이 영화 속에서 광기, 집착, 식인, 죽음 등 그간 탐구해왔던 소재들을 풀어내고 있다. 현재까지 김정구 감독의 마지막 연출작은 OCN에서 제작한 스릴러 드라마 < COMA >의 <붉을 홍> 에피소드이다. (다른 멤버인 이진우 감독은 현재 활발한 활동 중이다.) 지난번에 소개한 < 재능있는 소년 이준섭 >도 그랬지만, 1990년대 말부터 2000년 초는 한국 독립영화계의 억눌린 상상력이 폭발하는 때였다. 당시 영화 산업의 자본주의적 잠재력에 시선이 쏠리고 이에 발맞춰 재능있는 감독들이 하나둘 모습을 나타내며 한국 영화에 희망적 기운이 만발하던 때였다. 각 지자체는 너도나도 영화제를 기획하기 바빴고 뜨고 지는 감독들도 굉장히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파격적인 영화를 제작하던 ‘지하창작집단 파적’은 현재 활동은 멈춰있지만(해산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확실한 자료가 없어 멈춰있다고 썼다.) 금기에 도전하는 파격적인 영상 연출에 대해 한 번쯤은 이야기하고 싶었다. 요즘 상업, 독립 영화를 합친 영화판을 기웃거리고 있으면 왠지, 다시는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없을 것 같아 그리운 기분이 든다. 요새는 모든 것이 계획되고 과정으로서만 가치를 인정받는 느낌이다. 모험가는 다시 나타날 것인가? 이미지로의 탐험은 이미 끝났는가?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임근아 ... 엄마 조성제 ... 아들 김일안 ... 아들의 애인 감독: 김정구 각본: 김정구 제작사: 지하창작 집단 '파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