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좋은 날
- 감독
- 이한종
- 제작년도
- 2005
- 출연
- 오창경, 송창곤, 도기석, 김명철, 이진목, 박성준, 박재혁, 김옥순, 한달호, 백수진, 최영록, 김홍택, 이한종, 박선주, 김무유, 김교진, 한기엽, 이의성, 박지연
“당신의 삶은 어떤가요?” 라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어떤 답을 할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대부분 만족스럽다는 답을 하진 못하실 것 같다. 계속된 경기침체와 좀처럼 나아질 것 같지 않은 미래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인간은 어느 시대나 어느 환경에서나 만족을 모르고 살았기에 이런 앓는 소리가 새삼스러운 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한 결과보다 나은 삶을 살게 되었기에 어려운 현실은 밝은 미래를 앞당기는 자양분이라 위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양면을 오늘의 영화는 어떻게 해석하고 미학적으로 관객에게 다가가려 했을까 하는 의문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화답하는 영화를 오늘 소개하고자 한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말을 할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사람이다. 당연히 사회적으로 약자이며 경제적으로도 매우 곤궁해 보인다. 그의 작업장은 공사장이다. 그런데 그는 일을 할 수가 없다. 일을 배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밀린 일당도 받지 못한 상태이고 그를 도울 사회적 안전망이나 조력자 역시 없어 보인다. 영화의 배경인 철거촌처럼 그의 입장에선 대한민국도 하나의 거대한 철거촌에 다름없어 보인다. 그저 곧 붕괴돼 버릴 것 같아 자신의 삶을 떠받쳐 주는 건 오롯이 자신의 몸뚱이밖에 없다. 그는 밀린 일당을 받고 웃으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영화 < 나와 함께 블루스를 >은 2015년 여름, 서울의 재개발지구인 녹번지구에서 더위와 먼지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이한종 감독의 단편영화다. 제목은 매우 유쾌해 보이나 실상은 매우 고단한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단편영화로서는 제작비도 많이 들었고 그 결과물도 상당히 웰메이드한 영화다. 블루스가 가지는 묘한 양면성도 이 영화의 주제를 받치는 요소로 기능한다. 의지할 곳 없는 한 남자의 일상을 통해 본 한국사회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는 소박 하되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 영화는 이 시대를 사는 고단한 이들에게 던지는 한 곡의 블루스라고 하면 적절할 듯하다. 이 영화에서는 두 번의 블루스가 흘러나온다. 그러나 그 느낌은 사뭇 다르다. 때론 절망의 끝에서 몸부림치는 한 남자의 처절한 투쟁을 그리기도 하고 때론 그런 현실에서도 한 줄기 빛과 같은 희망과 평온함을 그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두는 블루스로 표현되고 실제 같은 음악이 흘러나온다. 어쩌면 희로애락은 같은 감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것이다. 영화는 현실을 다루지만 그렇다고 사회성이 강한 영화도 아니라는 점이 특이하다. 애써 우리 사회의 문제점인 고용과 복지 등을 다루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이를 완전히 외면하지도 않는다. 그저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기만 하지만, 사실 그 이면에 드러난 우리 사회의 불완전한 모습을 외면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메시지를 던지고 싶은 것이 자연스러운 욕망이겠지만 감독은 더 나아가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더 여운이 많이 남는 영화다. 이 영화는 재작년 이한종 감독의 단편 < 출근 >이 부산국제영화제의 단편경쟁부문에 오르면서 출발하게 되었다. 아시아에서 4인의 중견과 신인감독을 선정해 제작지원을 하고, 그다음 해 부산국제영화제 컬러오브아시아라는 섹션에 선보이는 것인데 마스터즈 부문에는 임상수 감독을 비롯한 아시아 감독 3인이 선정되었고 뉴커머스 부문엔 이한종 감독과 외국의 신인감독 3인이 선정되어 올해 각자 만든 영화들이 상영되었는데 그중 한 작품이 바로 < 나와 함께 블루스를 >이다. 중국의 유튜브라 할 수 있는 유쿠에서 제작비를 지원한 작품이고 세월호 사건을 그린 임상수 감독의 영화 < 뱀파이어는 우리 옆집에 산다 >와 함께 중국에 소개되었다. 임 감독은 이 작품의 멘토를 맡았는데 이렇게 완성된 영화는 작년 부산국제영화제를 필두로 얼마 전 폐막한 미장센단편영화제의 식스센스부문에 올라 호평받았고 다음 달 8월에 열리는 대구단편영화제의 본선 경쟁작에 올라 영화계와 관객들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처음 아주 작은 발상에서 출발한 이 영화는 이렇게 규모가 커지게 되었는데 촬영장소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고 한다. 철거촌을 찾아 촬영을 하고자 하면 사용료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장소를 확정 짓지 못하고 이리저리 옮기기가 일쑤였는데 결국 서울의 녹번지구에서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도리어 전화위복이 되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인물과 공간이 상당히 잘 어울려 본의 아니게 천혜의 촬영장을 구한 결과가 되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승식 역의 한정현 배우는 무술감독으로도 오랫동안 활약한 영화인인데 벽이나 계단 등을 해머로 부수는 장면 등에서 실력을 십분 발휘한다. 세트장이 철거촌이다 보니 마음껏 때려 부술 수 있었고 이것이 영화의 리얼리티와 완성도를 높이는데 상당한 몫을 하게 되었다. 장애인 역할이라 대사가 거의 없음에도 표정과 행동만으로도 아주 실감 나는 연기를 선보였고 상당수의 관객들은 실제 장애인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상대역인 오 반장역의 김경익 배우는 상업영화에도 다수 출연해 비교적 익숙한 배우인데 이 영화에서도 관록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능글능글하고 비열한 악역의 모습으로 호평을 받았고 미장센영화제에서 이 두 배우를 많은 감독들이 주목하고 칭찬했다고 한다. 이외에 단편영화라고 보기엔 스케일이 큰 이 영화는 조연들의 맛깔 나는 연기와 다수의 엑스트라들이 출연해 거대한 군무를 하는 듯한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했다. 아울러 전문 스태프들이 대거 참여해 기술적 완성도 또한 수준급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미장센영화제 폐막식에서 집행위원장인 김지운 감독이 놀라운 영화라고 특별언급을 한 것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시종일관 깊은 애정을 보인 임상수 감독처럼 이 영화는 영화인들의 사랑도 무척 많이 받아 감독의 필모그라피의 한자리를 굳건히 채울 영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그의 차기작에도 관심이 가는 영화가 되었다. 영화는 언제나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현실의 문제에 나름의 답을 제시했고 또 미래를 보여주기도 한다. 지금의 대한민국의 다종다양한 문제가 이미 이전 영화들에서 다뤄졌고 영화적 상상력이라고 생각했던 비릿한 대한민국의 모습들이 불행하게도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 그러나 영화는 언제나 또 희망을 노래하는 것처럼 < 나와 함께 블루스를 >역시 고단하고 왜곡된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고발하지만 그 이면에는 실낱같은 희망을 노래한다. 이 여름 한 곡의 블루스가 한 편의 영화로 변해가는 마법을 경험해 보시기 바란다.
당신의 마지막 출근은 어떠할 것인지 생각해 본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 영화를 보았다. 현재 출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먼 미래의 일일 것이고 아직 출근을 준비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낯선 미래이겠지만 이것을 단지 직장을 다닌다는 의미의 출근으로만 협소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미 세상이라는 곳에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출근하고 있다. 그런데 이 출근이 마지막 출근이라면 어떤 생각으로 출근하게 될까를 영화는 묻고 있다. 당신은 어떤 마지막 출근을 꿈꾸는가 이 말이다. 이것이 생물학적인 인생의 마지막 출근이라면? 영화는 61세의 박승구 씨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정년퇴임을 위해 마지막 출근을 한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아주 일상적인 출근을 한다. 그런데 그가 뭔가 이상하다. 그다지 의욕적이지도 않고 전날 먹은 숙취 탓인지 평소보다 더 무기력한 모습으로 출근한다. 그의 동료들도 일상적이고 보수적 성향의 지구대장은 이런 저런 쓸데없는 얘기로 지구대를 시끄럽게 하기만 하고 후임자들 역시 사명감보다는 무료한 일상을 달래는 그저 그런 사람들로 그려진다. 그러다 주취자가 옥상에 올라 자살소동을 벌이는 것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이쯤에서 이 영화가 단순한 일상이나 소동을 그리는 영화가 아님을 직감할 수 있다. 그리고 옥상에서 주취자와의 대화 속에서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일상이 그려지고 누구나 일정한 고충을 감내하며 살아간다는 대화를 이어간다. 이 과정에서 고령의 정년퇴직자인 그가 왜 굳이 옥상에 올라갔을까를 관객들이 궁금해할 쯤에 그의 삶과 고뇌가 어렴풋이 그려지며 영화는 종반부를 향해 간다. 이렇듯 스토리라인은 대단히 평범하고 다소 식상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 스토리를 이어가는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들의 연기가 심상치 않다. 오랜 기간 연기를 쉬다가 복귀한 문창길 배우의 느리고 밋밋해 보이는 연기가 영화의 주제의식을 살리고 있고 단편극영화로는 꽤나 긴 30분이 넘는 러닝타임에도 영화가 길어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오랜 기간 영화연출을 쉬었던 그러나 쉬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이한종 감독의 연출력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느 경찰의 마지막 출근을 소박하게 그린 듯한 이 영화는 실상은 우리 사회에 이미 뿌리 깊게 내린 양극화와 그로 인한 서민들의 무력감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남에도 이 영화는 강렬한 사회비판을 담고 있는 영화는 아니다. 저변에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문제점을 깔고 있으면서도 소위 튀는 구석이 없으면서도 문제의식과 극적 재미를 주고 있는 < 출근 >은 흔히 독립영화에서 자주 다루어온 소재이면서도 영화적으로 아주 매끄럽고 완성도가 뛰어나다. 물론 이 점은 이 영화가 가지는 장점이자 단점이다. 완성도와 실험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영화겠지만 실상 둘 중 하나도 성취해내기가 어렵다는 것을 영화를 만들어 본 사람들은 누구나 알기에 이 영화는 여전히 미덕을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영화 <출근>은 그 장점과 단점이 잘 보이는 영화이다. 그래서인지 영화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영화가 담는 주제의식이 가볍지도 않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이란 무엇인지 그가 견뎌야 할 무게는 무엇인지를 묻는 <출근>은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무게를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