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리를 본다
- 감독
- 강주희, 이민경
- 제작년도
- 2015
- 출연
- 조예지, 정세은, 윤정희, 송윤아, 유잠별, 임영수, 조예슬, 박성준
미술, 만화, 소설에서 작가라는 개념이 있다. 영화에서는 누벨바그 이후에 작가 주의 영화라는 개념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것은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며 개인적인 창작이라는 것을 강조하게 되면서 생겨난 것이다.애니메이션이션은?보통 TV 시리즈 애니메이션이나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을 작가라고 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엄청난 제작비 때문에, 수익을 내기 위한, 공동작업의 성격이 강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에도 단편과 장편을 만들어내는 작가라고 불릴 수 있는 감독들이 존재한다. 미야자키 하야오나 마셸 오슬로 같은 장편 중심의 감독을 예외로 하더라도 노만 맥라렌이나 프레데릭 벡, 또는 유리 놀슈테인, 빌 플린턴 같은 애니메이션 작가의 삶은 불가능 한 걸까? 아니 이렇게 유명하게 되지 않아도 작가로 살 수는 없는 것일까? 한국의 단편 1세대라고 할수 있는 90년대의 단편 작품을 내 놓았던 감독들은 일부는? 교수가 되었고 일부는 아직도 작품 활동을 계속해 오고 있다. 하지만 작품 활동을 계속 하는 경우에도 상업적인 장편 애니메이션을 시도하는 것 말고는 작가로서의 생활을 계속해 나가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현재 한국에서 작품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작가라고 한다면 30여명의 정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중에 30대가 된 작가들은 위기를 맞고 있다.사실 작품 활동은 열심히 해도 1년에 한편을 만들기는 힘든 일이다. 제작이 1년 정도 걸린다고 해도 배급과 다른 작품의 기획에 시간이 걸리니까 부지런히 만들어도 2년에 한편이다.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상영료나 DVD 판매등을 합쳐도 500만원 이상의 수입을 내기는 힘들다. 작품으로만 따지면 1년당 250만원, 도저히 생존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 물론 거기에 수상까지 하는 좋은 작품이면 작품하나가 2000만원 이상의 수익을 낼 수 있다. 그래도 1년에 1000만원. 그러니까 매년 한편 씩 만들면서 많은 수상을 하는 작품을 만들어야만 생존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 한 일이다. 어떻게 매번 상을 받는 작품을 만들 수 있나. 또한 그렇게 된다면 주제나 표현의 형식은 수상을 목표로 한 것이 되기 쉽상이어서 원래의 작가의?개념과 상충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또한 매번 작품이 상영되어도 많은 사람에게 보여지고 싶다는 욕망은 잘 충족이 되지 않는다. 또 인디밴드의 앨범보다도 판매라는 개념이 없다. 작가이면서도 소비되어지지 않는 작가 여기서 오는 회의감도 존재한다. 어쨌든 30대가 되면 작가들은 대부분 선택을 해야만 한다. 작가들은 지원제도에 의지해 작품을 만들면서 대학 강사나 중학교에서 애니메이션 반을 가르치거나 미술학원의 강사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단편 지원제도는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위험에 있고 대학교나 중고교에서 애니메이션을 가르치는 강사의 직업도 안정적이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결혼 적령기가 다가온다. 물론 전폭적인 지원을 해 줄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진 반려자를 만난다면 행운이겠지만 사실 그것은 꿈같은 이야기다. 계속 작품을 만든다면 불확실하고 힘든 미래를 살아야 한다. 그렇다고 취직도 쉽지 않다. 단편 작가의 능력이 상업 애니메이션 회사가 필요로 하는 능력과 거리가 있기도 하고 2,3작품 만들고 나면 나이도 많다. 아니면 대학원을 선택함으로써?학위를 따면서 결정을 유예하기도 한다. 나중에 뭔가 도움이 되겠지 하는 마음이지만 애니메이션 학과가 줄어가는 상황에서 석사학위도 확실한 보장은 되지 않는다. 과연 작가로 살아가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나이가 들어서도 애니메이션 작가로 남는 일은 화가가 되거나 시인이 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평론이 존재하지 않고 작가를 노출시킬 매체나 큐레이터의 역할의 사람도 별로 없다. 회화나 문학보다도 접근성과 유포가 쉬운 영상 매체이면서도 우리는 아직 영화관 상영의 방식 말고 다른 방식을 찾아내는 것이 어렵다. 온,오프라인 양쪽에서 국내 관객을 넓히는 것도 필요하고 해외에 더 넓은 채널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해외에서 지속 적인 수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또 작가들은 상업 회사와의 교류를 통해 단편과 회사작품을 교차로 해나갈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할 것이다. 하지만 회사가 단편 작가에게 필요한 부분이 명확하지 않아서 이게 사실 쉽지는 않다. 그런 면에서 애니메이션 업계 내의 교류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상업 회사외 단편 작가, 관련 대학,지원기관, 영화제 관계자들의 긴밀한 협력과 서로에 대한 이해만이 작가를 살아남게 만들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지금의 작가들이 여전히 10년 후에도 작품을 만들고 있기를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드림웍스가 < 몬스터 하우스 > 이후 최고의 히트작을 내놓았다. < 릴로 앤 스티치 >의 감독이었던 딘 데블로이스와 크리스 샌더스를 영입하여 재미있는 이야기와 시원한 영상을 선사하였다. 지브리 미야자키 하야오도 나는 것에 대한 동경과 동심을 그리는데 항상 즐거움을 갖는다고 하였지만, < 드래곤 길들이기 >의 비행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드래곤 길들이기>는 영국작가 크리시다 코월의 동명 동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다. 물론 원작을 애니메이션에 맞게 재해석하여 성격과 동작을 더욱 감칠 맛나게 살렸다. 우선 영화의 전반부에는 장편영화가 그렇듯 이야기의 설정과 세계관을 보여준다. 영화는 주인공 히컵의 나레이션을 통해 일곱 세대를 지나왔지만 여전히 새마을인 불굴의 마을 ‘버크’가 설정된다. 상상의 동물 드레곤들이 버크라는 마을을 습격하고 이를 방어하는 버크 마을의 바이킹들의 모습을 통해, 이것이 현실의 일이라기보다 상상 속의 어느 마을이라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따라서 지금부터 이어지는 이야기는 다소의 과장과 뻥이 있더라도 당신들은 동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간다. 한마디로 뻥이라는 얘기다. 하여튼 이 마을에는 마을의 이름만큼이나 불굴의 의지를 가진 바이킹들이 산다. 영화는 해충(드래곤)들의 습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굳건히 마을을 지키며 살아가는 바이킹들의 이야기다. 바이킹이 하는 일은 드래곤으로부터 마을과 식량을 지키는 것이다. 그런데 용감해야 할 바이킹 중에 바이킹 같지 않은, 마을의 모든 용감한 바이킹과는 판이하게 다른, 사고뭉치 바이킹 히컵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로서 마을 안의 왕따인 주인공과 마을사람, 그리고 완고한 아버지와의 내적 외적갈등도 설정된다. 주인공이 처음부터 용감했다면 아마도 재미없는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히컵은 호기심은 많으나 앞뒤를 재지 않다보니 오히려 자신의 하려던 일과는 반대로 사고만을 일으키는 모든 어린이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래서 자신의 뜻대로 모든 것이 잘 안 되는 어린이들과 동일시하기 좋은 주인공이다. 그는 마을의 족장의 아들이면서도 사고뭉치여서 그의 완고한 아버지 스토익은 역전의 용사이자 대장장이인 고버의 대장간에 히컵을 맡긴다. 대장간은 불을 다루고 바이킹의 쇠를 다루면서도 뭔가 부족한 곳으로 설정된 듯하다. 고버는 역전의 용사라지만 몸이 불구이고, 그에게 맡긴 히컵은 아버지 스토익의 말을 요약하면 태어난 것 자체가 총체적으로 문제아이다. 한마디로 잉여로 태어난 것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대장간은 쓸모없는 쇠를 녹여 칼이나 그릇 등의 쓸모 있는 것을 만드는 곳이기에 히컵에게는 의미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마을의 족장 스토익은 바이킹다움의 대명사로 맨손으로 드레곤을 때려잡는 등 용감하고 단호하지만 아들의 하는 짓에 뼈 속까지 실망한다. 그래서 히컵이 하는 일은 친구들이 드레곤의 습격에 마을을 위해 불을 끄고, 용감하게 맞설 때, 방해가 되지 않게 대장간에 틀어박혀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히컵도 마음만큼은 여전히 바이킹이다. 그래서 인정받고 싶다. 하지만 그들과는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다르다. 겁도 많고 육체적으로도 부실하기 그지없다. 이런 나약한 히컵은 사냥과 용맹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바이킹 사회에서 배척당하는 존재다. 아버지조차 히컵이 밖에 나갈 때마다 사고를 쳐서 재앙을 불러온다고 믿으니, 히컵이 마을 사람들의 공포의 대상인 ‘나이트 퓨어리(밤의 분노)’를 잡았다고 하여도 더더욱 믿지 않는다. 이러한 내용을 설정하는데 영화의 처음 드래곤과의 전투신은 온통 할애된다. 심지어 전투에서 그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요구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하지 말라고 가만히 있다면 진정한 아이는 아닐 것이다. 당연 히컵은 다들 드래곤과의 일전에 다들 정신없는 틈을 타 자신이 만든 그물 투척기를 가지고 드래곤 중에 최고 공포의 대상인 ‘나이트 퓨어리’를 향해 얼결에 그물투척기를 쏘게 된다. 이로서 사건이 발생한다. 무시당한 그는 마을 사람들과 아버지의 실망을 뒤로 하고 마을을 뛰쳐나와 ‘나이트 퓨어리’와 대면하게 된다. 정말 히컵이 쏜 그물에 드래곤이 잡힌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나이트 퓨어리를 죽이지 못하고 오히려 풀어주고 만다. 왜 일까? 그는 나이트 퓨어리를 잡아가지고 가면 영웅이 될 텐데, 히컵은 그를 죽이지도 못했으며, 오히려 풀어주고 만다. 공포의 대상이던 나이트 퓨어리의 두려움에 찬 눈, 히컵 앞에 모든 것을 포기한 나이트 퓨어리를 보는 순간, 자신처럼 두려움과 겁에 질린 그 자신을 보고만 것이다. 그리고 이 만남 이후 그는 모든 바이킹의 직업인 드리곤 슬레이터로서의 길을 포기한다. 그래서 영화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스토익은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드래곤의 둥지를 찾아 섬멸하고자 한다. 드래곤과 바이킹의 본격적인 외적 갈등이 설정되고, 히컵의 처리를 고민하던 스토익은 고버에게 히컵은 물론 미래의 바이킹들의 교육을 맡기고 히컵에게는 도끼(바이킹의 상징)를 주면서 훌륭한 바이킹을 위한 수업을 참가하라고 독려하고 원정을 떠난다. 이로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갈등이 진행된다. 나이트 퓨어리와 대면에서 드래곤 슬레이터의 길을 포기한 히컵에게는 오히려 드래곤 슬레이터로서의 훈련 명이 떨어졌지만 슬레이터로서의 길보다는 나이트 퓨어리를 알게 되면서 드래곤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간다. 드래곤 매뉴얼에 적힌 나이트 퓨어리에 대한 기록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 전부이다. 무조건 숨으라고만 적혔다. 바이킹에게 나이트 퓨어리는 미지이다. 관련정보가 없다. 보이지 않는 것이다.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것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선사한다. 시퍼런 강물과 바닷물이 무서운 건 그 밑을 우리가 바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귀신이 무서운 건 그 실체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반응은 과장된 공포와 더불어 극도의 적개심으로 대응된다. 마녀사냥의 기재가 발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히컵은 나이트 퓨어리와의 비행을 통해, 그리고 다른 용들과의 교감을 통해 자신들이 지금까지 알아왔던 용에 대한 무지를 깨닫게 된다. 이때가 바로 영화의 가운데로 이후부터는 새롭게 이야기가 전개된다. 드래곤의 둥지를 찾으러 갔던 어른들이 돌아오고, 그 동안 훈련장에서 있었던 히컵의 영웅적인(?) 행동으로 인해 스토익은 히컵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대화를 시도한다.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인정받아야 할 행동이 그동안 드래곤과 우정을 쌓아왔던 일을 뒤집는 것이었다. 하지만 히컵은 아버지 세대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300년 동안 드래곤을 죽이고 싶어 하지 않는 최초의 바이킹으로 드래곤과의 화해를 하고자 한다. < 드래곤 길들이기 >는 드래곤과 인간의 관계를 다층적으로 묘사하면서 애니메이션에 주로 다루는 ‘영웅 만들기’라는 주제의 진부함을 넘어선다. 모든 드래곤은 가공할 공격력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발견 즉시 죽여야만 하는 게 버크섬의 규율이다. 그 속에서 히컵과 투슬리스는 금지된 우정을 키워간다. 그리고 그 둘은 서로의 위크포인트를 주고받는다. 나이트 퓨어리에 있어 꼬리 날개를 히컵이 보충해 주고, 히컵의 나약함에 나이트 퓨어리는 용기와 새로운 날개를 선사한다. <드래곤 길들이기>는 적을 대하는 서로 상반된 입장을 묘사하면서 차이를 인정하자는 꽤 진지한 주제를 드러낸다. 히컵은 투슬리스를 통해 드래곤을 이해하면서 드래곤에 대한 두려움의 근원이 용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러한 오해는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생활과 문화에 널려있다. 미지에 대한 호기심과 이해만이 적개심을 풀고 화해의 길로 가게 되는 것이다. 종교문제도, 남북문제, 전쟁문제도 그렇지 않을까? 히컵과 아버지는 서로 사랑하지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두려움에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 버겁다. 최고의 바이킹인 아버지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마을의 문제아로 낙인찍힌 히컵처럼 소외에 대한 두려움과 상처를 하루하루 실감하며 살아가는 우리 친구들은 얼마나 많은가! 아버지와도 마주 보지 못했던 히컵이 공포의 상징인 드래곤의 얼굴을 직시하며 그 안에서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는 이 교감의 순간이 이 애니메이션의 힘이다. 오랜만에 이야기가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제목: 드래곤 길들이기 How to Train Your Dragon 제작년도: 2010년 감독: 딘 데블로이스,크리스 샌더스 목소리출연: 제이 바루첼, 제라드 버틀러 애니정보 바로가기: http://www.anidb.or.kr/_Animation/animation/md_basic.asp?nation=F&p_dataid=26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