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녀 수잔
- 감독
- 조 다마타
- 제작년도
- 1989
- 출연
- 알렉스 텍스터, 프레드 우드러프
< 개의 역사 >에 나오는 개의 집을 본 적이 있다. 그 옆을 무심히 오르락내리락하는 엘리베이터도 매우 익숙하다. 뜬금없는 곳에 붙어 있던 ‘개조심’ 푯말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갸우뚱했던 것도 같다. <개의 역사>는 나의 ‘갸우뚱’에 답을 줄 것 같은 제목으로, 내게 익숙한 공간을 보여주며, 내 눈길을 화면 속 디테일 하나하나에 자석처럼 끌어당겼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감독은 학교 앞 아이들, 동네 할머니 등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무작정 개에 대한 같은 질문을 한다.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인물들의 별로 유용하지 않아 보이는 인터뷰 대답들이 길게 이어지며 영화의 초점은 후암동 어느 건물 옥상에 살던 그 개, 백구의 역사로 좁혀지기보다 그곳을 뒤로 한 채 주변 모든 방향으로 배회하기 시작한다. 카메라를 마주한 사람들은 왜 하필 개를 찍는지 의아해하고 좀 더 ‘생산적’인 것을 하라고 직설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백구의 뒷조사를 가장하고 동네 사람들의 주위를 대하는 여러 시선을 보여주던 영화는 개의 죽음과 함께 가장을 멈추고 ‘생산적’이지 않은 주민들의 삶 속으로 훅하고 들어간다. 이혼녀 독거노인을 비롯해 영화가 소개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매우 낯익은 동시에 생소하다. 누구나 오가며 동네에서 마주칠 법한 사람들이라 낯익지만 ‘중요하지 않기에’ 궁금해한 적 없는 그들을 프레임 안에서 정면으로 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생소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들과 유사한 인물들을 본 적은 많다. 생소한 이유는 그들이 흔히 말하는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지 않고 정말 소소하게도 “새들이 날아왔네”, “옛날엔 사는 게 힘들었지”와 같은 말을 해 줄 뿐이어서일지 모른다. 그리고는 더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고 별 궁금증을 자아내지도 않은 채 화면에서 사라지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 개의 역사 >는 다수의 시선이 비껴가는 곳에 위치한 존재를 주인공의 자리에 앉혀 목소리를 내게 하는 대신 ‘주인공’과 ‘귀 기울일 만한 이야기’라는 관념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구성을 취한다. 영화 속 대상들 중 누구도 보편적 다수를 대유하는 이야기를 독점하지 않고 하나로는 뭔가 부족한 상태 그대로 존재하며 전체를 구성한다. 별 볼 일 없는 여러 대상 사이를 옮겨 다니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에만 주의를 기울이느라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나머지는 소수가 아니라 사실 우리가 마주치는 거의 모든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중요하지 않은 거의 모든 것 중에는 중요한 존재가 되고 싶어 중요한 것만 바라보지만 실은 별 볼 일 없는 우리 자신도 포함된다. 영화 속 별 볼 일 없는 인물들이 그 소외된 공동체 안에서도 배척받는 존재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감독은 별 볼일 없는 자신의 처지도 대상들 사이에 끼워 드러내는데, 영화 속 감독의 수줍은 존재 방식은 전략적 어눌함으로는 얻기 힘들었을 진정성을 전달하며 영화의 독특한 구성을 완성한다. 소소한 인물들에게 접근하는 감독의 태도는 시종일관 소심하기 그지없다. 동네 정자에 앉아 소일하는 할머니들 사이에서도 가장 작은 존재감을 지닌 할머니가 혼자 남을 때를 기다려 예의 그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고 있는데요...” 라는 불명확한 문장으로 말문을 여는 식이다. 감독은 영화 안에서 여러 번 이사를 다니며 좁은 집 공간에서 빨래를 넌다. 거의 기억되지 않지만 일상의 속내가 응축된 행위인 빨래 널기를 보여주는 감독의 모습은 대상의 목소리를 어떻게 전달하고 해석할지 고민하는 조정자의 모습이 아니라 수많은 ‘기억되지 않는 것들’ 중 하나다. 이렇게 영화는 흥미로운 방식으로 카메라의 권위를 벗어놓는다. 영화의 제목이 ‘개의 이야기’가 아닌 ‘개의 역사’라는 점은 영화가 하고자 하는 작업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가장 중요한 것만 기록하고 나머지 모든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는 지워버리는 것이 역사라면, 이 영화는 현실을 이루는 중요하지 않은 거의 모든 이야기에 역사라는 이름을 붙여 그 가치를 기억하려는 안간힘이다. 동네에 찾아오는 새들과 백구의 행동을 기억하는 동네 아주머니의 인터뷰가 얼마나 심금을 울리는 것이었는지는 그 인터뷰가 한참 지나서야 깨닫게 된다. 중요하지 않아서 보고도 지나쳤지만 영화가 주인공으로 만들어 들려줄 개의 이야기에는 관심이 있었던 나에게 세상을 채우는 별 볼 일 없는 것들의 그 자체로서의 가치를 보여준 주인공 없는 이 영화, 참 고맙다.
<개의 역사>에 나오는 개의 집을 본 적이 있다. 그 옆을 무심히 오르락내리락하는 엘리베이터도 매우 익숙하다. 뜬금없는 곳에 붙어 있던 ‘개조심’ 푯말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갸우뚱했던 것도 같다. <개의 역사>는 나의 ‘갸우뚱’에 답을 줄 것 같은 제목으로, 내게 익숙한 공간을 보여주며, 내 눈길을 화면 속 디테일 하나하나에 자석처럼 끌어당겼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감독은 학교 앞 아이들, 동네 할머니 등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무작정 개에 대한 같은 질문을 한다.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인물들의 별로 유용하지 않아 보이는 인터뷰 대답들이 길게 이어지며 영화의 초점은 후암동 어느 건물 옥상에 살던 그 개, 백구의 역사로 좁혀지기보다 그곳을 뒤로 한 채 주변 모든 방향으로 배회하기 시작한다. 카메라를 마주한 사람들은 왜 하필 개를 찍는지 의아해하고 좀 더 ‘생산적’인 것을 하라고 직설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백구의 뒷조사를 가장하고 동네 사람들의 주위를 대하는 여러 시선을 보여주던 영화는 개의 죽음과 함께 가장을 멈추고 ‘생산적’이지 않은 주민들의 삶 속으로 훅하고 들어간다. 이혼녀 독거노인을 비롯해 영화가 소개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매우 낯익은 동시에 생소하다. 누구나 오가며 동네에서 마주칠 법한 사람들이라 낯익지만 ‘중요하지 않기에’ 궁금해한 적 없는 그들을 프레임 안에서 정면으로 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생소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들과 유사한 인물들을 본 적은 많다. 생소한 이유는 그들이 흔히 말하는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지 않고 정말 소소하게도 “새들이 날아왔네”, “옛날엔 사는 게 힘들었지”와 같은 말을 해 줄 뿐이어서일지 모른다. 그리고는 더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고 별 궁금증을 자아내지도 않은 채 화면에서 사라지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개의 역사>는 다수의 시선이 비껴가는 곳에 위치한 존재를 주인공의 자리에 앉혀 목소리를 내게 하는 대신 ‘주인공’과 ‘귀 기울일 만한 이야기’라는 관념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구성을 취한다. 영화 속 대상들 중 누구도 보편적 다수를 대유하는 이야기를 독점하지 않고 하나로는 뭔가 부족한 상태 그대로 존재하며 전체를 구성한다. 별 볼 일 없는 여러 대상 사이를 옮겨 다니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에만 주의를 기울이느라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나머지는 소수가 아니라 사실 우리가 마주치는 거의 모든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중요하지 않은 거의 모든 것 중에는 중요한 존재가 되고 싶어 중요한 것만 바라보지만 실은 별 볼 일 없는 우리 자신도 포함된다. 영화 속 별 볼 일 없는 인물들이 그 소외된 공동체 안에서도 배척받는 존재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감독은 별 볼일 없는 자신의 처지도 대상들 사이에 끼워 드러내는데, 영화 속 감독의 수줍은 존재 방식은 전략적 어눌함으로는 얻기 힘들었을 진정성을 전달하며 영화의 독특한 구성을 완성한다. 소소한 인물들에게 접근하는 감독의 태도는 시종일관 소심하기 그지없다. 동네 정자에 앉아 소일하는 할머니들 사이에서도 가장 작은 존재감을 지닌 할머니가 혼자 남을 때를 기다려 예의 그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고 있는데요...” 라는 불명확한 문장으로 말문을 여는 식이다. 감독은 영화 안에서 여러 번 이사를 다니며 좁은 집 공간에서 빨래를 넌다. 거의 기억되지 않지만 일상의 속내가 응축된 행위인 빨래 널기를 보여주는 감독의 모습은 대상의 목소리를 어떻게 전달하고 해석할지 고민하는 조정자의 모습이 아니라 수많은 ‘기억되지 않는 것들’ 중 하나다. 이렇게 영화는 흥미로운 방식으로 카메라의 권위를 벗어놓는다. 영화의 제목이 ‘개의 이야기’가 아닌 ‘개의 역사’라는 점은 영화가 하고자 하는 작업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가장 중요한 것만 기록하고 나머지 모든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는 지워버리는 것이 역사라면, 이 영화는 현실을 이루는 중요하지 않은 거의 모든 이야기에 역사라는 이름을 붙여 그 가치를 기억하려는 안간힘이다. 동네에 찾아오는 새들과 백구의 행동을 기억하는 동네 아주머니의 인터뷰가 얼마나 심금을 울리는 것이었는지는 그 인터뷰가 한참 지나서야 깨닫게 된다. 중요하지 않아서 보고도 지나쳤지만 영화가 주인공으로 만들어 들려줄 개의 이야기에는 관심이 있었던 나에게 세상을 채우는 별 볼 일 없는 것들의 그 자체로서의 가치를 보여준 주인공 없는 이 영화, 참 고맙다.
필자가 씨네 21 기자로 일하던 1998년 9월 중순, 특이한 상영회가 열린다는 전갈이 왔다. 김수형 감독의 전화였다. 그는 1980년대에 < 산딸기 >, < 훔친 사과가 맛이 있다 > 등의 에로 영화를 연출했던 감독이며 김수용 감독의 조감독 출신으로 스승의 대표작인 < 갯마을 >을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사연은 이랬다. 당시 천리안 동성애자 모임 ‘퀴어넷’이 이태원의 어느 카페에서 김수형의 < 금욕 >(1976)이란 영화를 상영했고 이 자리에서 영화를 본 동성애 잡지 「버디」의 편집인들이 ‘한국 최초의 레즈비언 영화’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잡지에 실었으며 신촌의 한 카페에서 재상영을 한다는 것이었다. 사춘기와 청년기에 그의 영화를 동시상영 극장에서 곧잘 봤던 필자는 호기심이 동했으나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정작 당사자인 김수형 감독은 다소 흥분해 있었다. 영화전문기자인 김영진은 이처럼 역사적인 자리에 꼭 기록자로 참석해야 한다는 게 그의 요지였다. 실제로 < 금욕 >은 흥미로운 구석이 많은 영화였다. 1973년 < 바람아 구름아 >로 데뷔했던 김수형 은 이 세 번째 장편영화에서 자기 나름의 모험을 시도한다. 제작자가 원한 대로 그는 새롭게 에로티시즘을 가미한 멜로드라마를 찍을 작정이었겠지만 자신도 모르게 급진적인 시선을 담은 영화로 태어날 뻔한 미완의 가치 있는 시도가 거기 담겨 있었다. <금욕>의 여주인공인 패션모델 영희는 세 남자에게 성폭행당한 기억 때문에 패션쇼장에서 발작을 일으킬 만큼 몸과 마음이 다친 상태인데 부유한 이혼녀이자 화가인 노미애의 그림 모델 제안을 받고 노미애의 집에서 함께 지내며 사랑에 빠진다. 남편에게 학대받은 기억이 있는 노미애는 영희에게 동병상련을 느끼고 영희의 재활을 헌신적으로 도와준다. 당시 대다수의 한국 멜로드라마 영화 여주인공들이 남자들에게 상처받으며 전락하는 과정을 다뤘다면 < 금욕 >은 남자들에게 상처받은 여성들이 서로 보듬어줌으로써 아픔을 치유하고 넘어선다는 주제를 다룬다. 물론 이 플롯은 에로티시즘을 넣기 위한 구실이기도 하다. 영희와 노미애가 서로 마음을 보듬는 과정은 노미애가 영희의 몸에 바디 페인팅을 하거나 벌꿀로 영희의 몸을 전신마사지하는 초보적 에로티시즘의 형태로 묘사된다. 1970년대의 심의 기준으로는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들면서 김수형 은 여성 주인공들이 마음뿐만 아니라 몸도 나눈다는 설정을 플롯에 암시적으로 끼워 넣었다. 노미애의 집을 온갖 새장들로 가득 찬 공간으로 설정하고 새장의 이미지를 줄곧 화면 전경에 놓고 폐소공포증을 의도적으로 부추기는 가운데 두 여성 주인공이 가학과 피학을 오가는 성적 교감을 나누는 전개는 제작자의 구미를 당겼을 것이다. 물론, < 금욕 >이 끝까지 당시의 금기를 밀어붙인 영화라는 것은 아니다. 중반 이후 전개가 다소 상투적인 전개로 흐르는 가운데 영희는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남성 디자이너 준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와의 결혼을 꿈꾼다. 영희는 준이라는 완벽한 남자를 만나 나누는 성관계를 통해 강간의 충격을 벗어나 이성애적 사랑의 길로 다시 걸어 들어간다. 그런 영희의 선택을 비난하는 노미애의 태도는 감상적인 질투에 가깝다. 당시 잡지 「버디」의 편집진은 노미애가 영희를 붙잡을 때 “내 삶을 전부 너에게 줘버렸기 때문이지”라고 말하는 대사에 이 영화의 비의도적인 레즈비언 적 상상력의 올바른 정치적 태도가 드러난다고 평가했다. “<금욕>이 레즈비언 영화의 계열에 들어갈 수 있다면 바로 이 대목 때문이다. 레즈비언이란 여자와 성교하는 여자가 아니라 자기 인생의 가치 중심을 여자에게 둘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금욕>은 이성애주의로 점철된 한국영화의 한켠에서 레즈비언 적 시선을 한 줄 건져 올릴 수는 있는 셈이다.” 80년대 충무로 에로 영화 계보의 한 축을 차지했던 감독 김수형 은 < 금욕 >을 만들 때 29살의 나이였다. 미숙한 대로 이 영화에는 의욕 충만한 영화청년의 기질이 곧잘 드러난다. 새장 속의 새와 남성 지배사회 속의 여성이라는 유추는 뻔한 것이지만 일관되게 새장 이미지를 밀어붙이는 화면의 응집력은 꽤 힘이 있다. 불행한 여성이 또 다른 여성을 만나 구원을 얻었고 남자 때문에 그 여성을 버렸다가 다시 불행해진다는 이야기 구조도 남성의 의지에 따라 여성주인공의 운명이 정해지는 멜로드라마의 관성을 깨는 것이었다. 영화의 말미에 영희는 다른 여자의 구애를 받는 준을 목격하고 다시 노미애의 집에 돌아오지만 노미애는 이미 자살한 뒤다. 영화 상영이 끝난 후 필자를 만난 김수형 감독은 <금욕>이 자기 의도대로 촬영했다면 더 좋은 영화가 됐을 거라고 변명했다. 그는 “애초에 영화의 결말은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다른 여자를 찾는 노미애를 보여주며 끝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검열 때문에 자신이 없어서 결말을 바꿨다. 제목도 본래는 ‘여자와 여자’였는데 개봉 당시 심의가 나오지 않아 <금욕>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어쨌든 검열과 영세한 산업구조의 이중고에 갇혀 있던 1970년대의 한국영화계를 감안 할 때, <금욕>은 우리가 기억할 만한 미완의 동성애 소재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