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사람들
- 감독
- 이희우
- 제작년도
- 2021
- 출연
- 구서연, 신혜림, 이성우, 정지훈, 안치언, 권라희
제목의 ‘장미’는 꽃 이름이기도 하겠지만, 실제 유지인 의 극 중 배역 이름이기도 하다. 전화벨이 울리자, 장미(유지인)는 졸린 눈으로 “어보세요?”라고 전화를 받는다. 금요일을 토요일로 착각하고 꿈나라에 빠져있던 장미는 부랴부랴 학교로 향한다. 모범생이라 그런 줄 알았더니 친구들과 약속이 있었던 모양이다. 심지어 캠퍼스에서 여대생들이 대놓고 담배 피우기 애매하던 시절(지금도 그런가?), 화장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모여 담배를 피워대기 시작한다. 그런 그녀들을 꼬나보는 학교 관계자가 바로 < 여곡성 >(1986)에서 귀신이 몸을 빌린 시어머니로 출연하여 혀를 길게 뽑으셨던 석인수 선생이다. 이름은 남성적이지만 당대 한국영화의 못된 시어머니, 무당, 여죄수 등을 도맡으며 황정순의 반대편에서 장르와 분량을 아랑곳하지 않고 한국영화에 이바지하셨던 훌륭한 분이시다. 그처럼 공부는 뒷전인 장미와 그 일행들을 기다리는 남자는 바로 규식( 송승환 )이다. 장미만을 사랑해온 규식은 카페에서 사랑의 징표라며 무언가를(알지만 도저히 쓸 수 없다)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그러고는 (역시 알지만 도저히 쓸 수 없는) 동정과 처녀성에 대한 규식의 일장연설과 플래시백이 이어진다. 단순한 세대차이로 치부하기에는 납득하기 힘든 그런 논리로 규식이 급기야 “우린 결혼해야 돼, 부모들 사이에서도 얘기가 끝났어”라고 말하자, 장미는 허탈한 듯 소리친다. “아이구 이 피곤한 친구.” 그래 궤변은 늘 피곤한 법이다. 장미 가시로 만든 핏방울 징표 “세 방울은 장미 거, 세 방울은 내 거” 규식을 따돌린 장미와 그 일행은 야심한 시각이 되자, 정체불명의 술집에서 만난 하키부 남자들과 옷 벗기 내기 술 마시기 게임을 시작한다. 이계인 이 대학생으로 나오는 것은 이해한다 해도, 같은 해 만들어진 하길종 의 < 병태와 영자 >(1979)에서 병태( 손정환 )에게 “군대에서 여자 친구 사진을 갖고 있는 것은 정신무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충고하는 소대장으로 나온 이해룡 이 전혀 정신무장이 안 된 하키부 예비역 대학생으로 나오는 것은 무척 황당하다. 심지어 유지인 보다 실제 20살이 많고, 영화 속 중년남으로 나오는 신성일 보다도 한 살 많은 한국영화계의 대표적 원로배우다. <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1989)에서는 은주( 이미연 )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아무튼 여자가 한 명 모자라지만 대담하게도 두 사람을 상대하겠다는 장미로 인해 게임이 시작된다. 그런데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은 철민(이계인)이 술자리를 뒤엎으며 장미에게 “자신을 내동댕이치는데 익숙한 여자”라고 소리친다. 그처럼 < 가시를 삼킨 장미 >의 초반부는 뭔가 ‘한국판 < 님포매니악 >’스러운 분위기로 후끈 달아오른다(물론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너무 설레는 마음으로 받아들이지는 마시길). 문제의 대학생들(가장 앞이 이해룡 , 세 번째가 이계인 )과 후끈한 게임 정진우 감독의 < 가시를 삼킨 장미 >는 이장호 감독의 < 별들의 고향 >(1974)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른바 ‘호스티스 멜로드라마’의 자장 안에 있다(<별들의 고향>을 각색한 이희우 작가가 <가시를 삼킨 장미>를 썼다). 그를 B무비 장르에 명쾌하게 포함시킬 수는 없겠으나, <가시를 삼킨 장미>는 A무비를 지향하는 대사들의 연속이 오히려 현재에 이르러 B무비처럼 느껴지는 경우다. 당시로써는 ‘여성 주체’에 대한 심오하고 페미닌한 텍스트로 해석될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그나마 그를 현실적으로 살려내는 것은 유지인 의 탁월한 연기력이다. 그런 혼돈의 술자리를 끝내고 헛헛한 마음으로 귀가한 장미 앞에는 쓸쓸한 새장이 있다. 까마귀(< 하얀 까마귀 >), 뻐꾸기(<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 앵무새(<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 갈매기(< 백구야 훨훨 날지마라 >) 등 유난히 새를 사랑해온 정진우 감독의 미장센이 빛나는 대목이다. 심지어 신일룡 , 이미숙 주연의 또 다른 연출작 <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1984) 또한 앞서 <두견새 왜 피를 토했나>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그보다 앞선 최초의 제목은 <짧았지만 만족했어요>라는 야릇한 제목이었다). 당시 「경향신문」은 이 영화를 촬영 중인 정진우 감독을 인터뷰한 취재기사에 “정진우 감독 조류학자 되려나”라는 제목까지 달았었다. 누가 봐도 현실의 장미를 비유하는 것이 빤한 새장 속의 새를 향해 그녀가 말한다. “넌 왜 그렇게 불쌍하게 있니. 날아, 노래를 해, 날아, 노래하라고!” 거기서 끝이 아니라, 알아듣지도 못하는 애꿎은 새를 향해 더 심도 깊은 논의를 펼쳐 보인다. “우리는 왜 수컷을 통해서 존재가치가 인정되니? 잘못된 거야! 난 싫어. 그런 모든 걸 다 감수하고 살 수만은 없어. 싫어, 싫어, 싫어~~~” 새장 이후 부산 집으로 내려가던 장미는 우연히 옆에 앉은 중년남자( 신성일 )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가정으로 인해 번뇌에 빠진 그를 “우리가 어떤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얼마나 한정된 범위 안에서의 선택인가를 생각해봐요”라며 위로한다. 파산하고 부산에 내려온 남자는 아내도 자식도 답이 되지 못한 현실 속에서 장미를 만나고서야 삶을 돌아볼 기회가 생긴다. 하지만 “앞으로 백 가지 슬픔이 있더라도 한 가지 행복을 위해 살겠어요”라는 장미의 비현실적이고 천사 같은 사랑도, 남편의 하숙집에서 여자 팬티를 발견하고 연락한 그의 아내( 선우용녀 )로 인해 ‘불륜’이 되어 산산조각 나고 만다. 그럼에도 “죽음을 모르고 뛰어드는 하루살이에게 박수라도 칠까”라며 두려움 없는 사랑을 꿈꾸는, 그렇게 자신을 (깡에 살고 깡에 죽는) ‘깡생깡사’로 표현하는 장미의 모습은 꽤나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런 불륜이 집에도 알려지고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중년남자를 향한 마음이 ‘항상 충족되지 못한 아버지의 이미지를 찾으려 했던 것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관계는 끝나버린다. 예정된 사랑의 실패로 장미는 이전보다 더 방탕한 생활을 하고, 급기야 약물 과다복용으로 정신병원에도 간다. 당시 국내 유일의 정신병원이었던 ‘청량리뇌병원’에서는 장미를 두고 ‘마음의 병’이라는 진단을 내린다. 이후 겨우 진정이 됐을 즈음에는 혼자 동시 상영관을 찾아 영화만 보는데, 그런 그녀 앞에 세호( 한진희 )라는 미남자가 나타난다. 또한 비슷한 시기 옛 친구 진영( 김보미 )이 결혼 예찬론을 펼쳐서 장미의 마음에 적잖은 파문을 일으킨다. 그렇게 장미는 안정된 생활에 대한 막연한 희망을 품는 듯하다. 진영과 통화하며 “우리들의 방황도 어떤 식으로든 끝장이 나려나 봐”라는 장미의 얘기 뒤로 엘비스 프레슬리의 ‘버닝 러브’가 흐른다. 얼마 뒤 세호의 집요한 애정공세로 두 사람은 건너편으로 당인리 화력발전소가 보이는 한강변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세호의 몸개그는 장미의 얼굴에 잃어버린 미소를 되찾아준다. 영양가 없는 남자들 하지만 세호 또한 ‘똑같은 놈’이다. 결혼까지 생각한 장미가 임신을 하게 되지만, 세호는 어머니가 장미의 과거를 알아서 결혼을 승낙하지 않고 있다는 핑계까지 대며 한사코 결혼을 거부한다. “아직도 엄마 젖을 빨고 싶겠죠? 조금씩 엄마한테서 벗어나요”라고 충고하지만 세호의 마음은 변함이 없다. 이후 세호의 진짜 비밀이 드러나면서, 남자 잘못 만나 고생하는 장미의 비극은 종지부를 찍는다. 여느 호스티스 멜로드라마와 별다를 바 없는 설정 안에서도 < 가시를 삼킨 장미 >의 유지인 은 <별들의 고향>의 경아( 안인숙 )와 비교해도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정진우 감독이 같은 해 만든 < 심봤다 >의 유지인이 얼마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지 비교해 보면 좋을 것이다. 이듬해 출연한 이장호 감독의 < 바람불어 좋은 날 >과는 또한 얼마나 비슷한 모습인지도). 더불어 < 별들의 고향 > 이후 유행처럼 만들어지던 아류작들 대부분은 그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관음증을 영상화한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가시를 삼킨 장미>는 ‘버림받은 여자의 방황’이라는 나름의 한계 안에서도, 고민의 흔적이 역력한 이희우 작가 특유의 대사들과 정진우 감독의 집요한 연출력이 결합해 유지인의 장미를 보다 입체적으로 재구성한다. 영화 속에서 오랜만에 다시 만난, 그리고 드디어 다른 여자 친구가 생긴 규식과 장미가 나누는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난 아직도 너를 이해 못 하겠어”라는 규식의 회한 가득한 말에 장미는 이렇게 답한다. “나 자신도 나를 이해 못 해.” “나 자신도 나를 이해 못 해.” 이건 유지인 이 예뻐서 그냥... 유지인 신성일 한진희 송승환 감독: 정진우 각본: 이희우 개봉극장: 스카라 관람인원: 75,757명
아무런 기대 없이 보던 영화가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경우가 있다. 최하원 감독의 < 절정 >이 바로 그런 영화들 중의 한편이다. 최하원 감독은 <독짓는 늙은이>외에는 요즘 관객들이 특별히 기억할 만한 영화는 없는 편이다. 하지만 그는 70년대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감독들 중의 한명이다. < 무녀도 >, < 서울의 연인 >, < 소 >, < 마지막 포옹 >, < 겨울사랑 >등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작가의 개성을 지닌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다. 1978년 개봉된 < 절정 >은 하이틴 영화의 물결이 지나간 후 밀려들기 시작한 술집 호스티스영화의 파도속에서 제목만으로는 그렇고 그런 호스티스 영화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의외로 이 영화는 부부관계의 문제를 통해 현대인의 관계의 단절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고 있는 완성도 있는 멜로드라마다. 여자( 김영애 )는 남편( 김희라 )의 문란한 사생활과 외도에 혐오를 느끼고 이혼한다. 그러나 곧 이혼을 후회하고 신혼 여행지에 홀로 오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우울과 방황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역시 결혼 생활에 문제를 겪으며 아내( 김형자 )를 자살로 몰고 간 남자( 한진희 )를 만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때로는 보듬고, 때로는 할퀴며 가까워진다. 알고보니 그들은 이미 과거에 같은 날 같은 장소로 신혼여행을 왔던 인연을 가지고 있었던 것. 신혼친구라 부르며 서로에게 한자락의 존재 의미라도 찾으려고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육체가 아닌 사랑의 진실임을 깨달은 여자는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지만, 남자는 기어코 자살을 선택하고 만다. 최하원 감독은 부부 파경의 원인을 여자-아내( 김영애 )와 남자-남편( 한진희 )으로부터 공평하게 찾으려고 시도한다. 이는 일방적으로 남자에게 면죄부를 주곤 했던 많은 한국영화들과는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당시의 한국영화가 여전히 여성의 육체를 함부로 대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시기였다는 것을 감안해 보면 진일보한 부분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우울과 고민에 뻐져 누워있는 여자-아내(김영애)를 쓸데없이 선정적으로 잡아내는 불필요한 앵글과 조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는 당시 유행했던 호스티스 영화와 안방극장이라 불리는 TV와 상업적으로 경쟁해야 했던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타협이었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최하원 감독은 이런 타협의 흔적들이 영화의 완성도에 흠집을 내지 않도록 적절하게 통제함으로서 영화의 힘을 지속시키는데 성공한다. 영화가 끝나면 성적 이미지 대신 관계의 단절에 대해 고뇌하는 현대인이라는 이미지만 묵직하게 가슴에 남는 것이다. < 절정 >은 영화의 대부분을 두 사람 여자( 김영애 )와 남자( 한진희 )의 비일상적(?)적인 대화에 집중하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몇몇 씬들은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한 단조로운 느낌이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시각적으로 상당히 풍부하고 뛰어나다. 최하원 감독은 두 주인공의 심연으로 파고들기 위해 풍부한 상징성을 사용한다. 더불어 우울한 인물의 심리를 드러내는 촬영과 미장센. 극단적 조명의 활용을 통한 초현실적 장면의 삽입은 내면이 황폐화되어 있는 인물의 심리를 극단적으로 드러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물론 스토리가 선형적으로 전개되기 보다는 인물의 심리를 따라가다 보니 회상과 상상이 두서없이 드나들면서 관객의 집중력을 조금 요구하긴 한다. 그러나 이런 모든 스타일적 실험이야말로 영화 <절정>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점이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이러한 약간의 불친절함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이렇듯 영화 <절정>을 단순히 여성용 멜로드라마의 한편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영화 속에 숨겨놓은 감독의 칼날은 무척 날카롭다. 그만큼 최하원 감독이 1968년 < 나무들 비탈에 서다 >로 데뷔한 후 10년 동안 쌓아왔던 내공과 야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느낌이다. < 절정 >은 가장 가까워야 할 부부관계의 파경이라는 소재를 우회하여 고도로 현대화된 사회에서 소통 부재로 고통을 겪고 있는 도시인들의 모습을 투영한다. 최하원 감독이 바라보는 70년대 후반 도시인의 모습은 이렇듯 내면이 공허하다. 결국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기어코 자살을 선택하고야 마는 남자( 한진희 )의 패배주의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당시의 영화를 보면 마초적 남자다움을 유난히 강조한다. 무국적 액션영화에서 남자주인공들은 비현실적이리만치 강하지만, 현실을 반영하려는 드라마 장르에서 남자는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죽음이라는 파토스로 돌진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남자는 여자보다 나약한 존재다. 그런점에서 중요한 것은 육체가 아니라 사랑의 진실이라는 것을 깨닫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 보겠다는 결심을 하며 도시 속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는 여자는 얼마나 강한가! 내용적으로 육체보다 정신을 우위에 두려는 것. 남자와 여자의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 돋보이지만 결국 여자에게 좀 더 자비를 바라는 것 등은 여전히 70년대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최하원 감독의 대표작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멋진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 글: 이성훈(한국영화 애호가) 김영애 한진희 김희라 김형자 감독 최하원 각본 이희우 촬영 양영길 1978년 116분 칼라 판매원 지구비디오 영상도서관 배가번호 1281
필명으로 남해림 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한다. 서울에서 출생했다. 배재고보를 다니다가 학비가 없어 중퇴하고 중동학교에서 수학했는데, 중동학교 2학년 학생이던 1929년에 잡지 「동광」의 현상 시 모집에 당선되기도 했다. 1933년부터 일본 와세대대학 제2고등학원을 거쳐 문학부 영문과에서 공부하면서, 이해랑, 김동원 등과 동경학생예술좌를 창립하고 함께 활동했다. 이 시기 조선일보사 신춘문예에 희곡 <광풍>, 동아일보사 신춘문예에 희곡 <동맥>이 각각 당선되었으며, 유학생을 중심으로 한 라디오드라마연구그루프를 결성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1938년 대학을 중퇴하고 귀국하여 동양극장 문예부, 조선일보사 학예부 등에서 근무했으며, 1939년 조선일보사 신춘문예에 소설 <소복>이 당선되었다. 이후 그는 소설 <방랑기>, <생리>, <코>, 희곡 <단층> 등을 발표했다. 이렇게 그는 첫 시작부터 소설, 연극, 방송극 등 다양한 분야의 문학에 관심을 갖고 활동했고, 이런 성향은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그가 영화와 관계를 맺은 것은 1940년 고려영화주식회사 선전부장을 맡으면서부터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고려영화협회가 제작한 < 복지만리 >(1941, 전창근 감독)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백년설이 불러 해방 후에까지 오래 인기를 모은 주제가 <복지만리>(이재호 작곡)의 가사를 쓰기도 했다. 그는 이 시기 몇 편의 대중가요 작사를 했는데 이 중 <대지의 항구>는 <복지만리>와 함께 인기를 모은 작품이다. 해방 후 고려문화사 편집국장, 「어린이 신문」 주간 등으로 활동하고 소설도 부지런히 발표했지만, 타계할 때까지 그가 가장 많은 시간을 쏟고 많은 작품을 남긴 영역은 방송극이었다고 보인다. 1946년 당시 경성방송국(이후 KBS)에서 대본을 쓰고 연출을 하기 시작하여 줄곧 방송작가로 살아왔다. 물론 희곡작가로서 활동도 쉬지 않아 <혈맥>(1947) 같은 한국현대희곡사에 남는 작품을 발표하고 국책 가무단인 예그린의 첫 창작뮤지컬 <살짜기 옵서예>(1968)의 대본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연극 활동이 간헐적인 것에 비해 방송극에서의 활동은 지속적이고 양도 매우 많다. 어찌 보면 영화 시나리오 작업은 이러한 방송극 작업의 연장 혹은 변주의 측면이 크다. 그것은 그가 간여된 영화 작품 중 그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지 않고 원작만을 제공한 작품이 크다는 데에서도 확인된다. 영화 < 여사장 >(1959, 한형모 감독), < 혈맥 >(1963, 김수용 감독) 등 희곡을 영화화한 몇 작품이 있기는 하지만, 해방 후 그가 간여된 첫 영화 < 똘똘이의 모험 >(1946, 이규환 감독, 안석주 극본)부터 말기작인 < 거북이 >(1970, 이성구 감독, 이희우 극본)에 이르기까지 상당수의 작품은 모두 라디오드라마와 텔레비전드라마를 바탕으로 영화화 한 작품들이다. 특히 영화 < 굴비 >(1963, 김수용 감독)가 발표된 1963년 즈음까지는 < 성벽을 뚫고 >(1949, 한형모 감독), < 출격명령 >(1954, 홍성기 감독), < 장미의 곡 >(1960, 권영순 감독) 등 직접 시나리오를 쓴 작품이 있지만, 이후에는 모두 원작만 제공하고 다른 작가가 영화 각색을 맡은 작품들이다. 그의 작품세계는 전쟁 소재의 < 출격명령 >, 1950년대의 트렌디한 로맨틱 코미디 < 여사장 >, 전형적인 연애물 < 사랑이 문을 두드릴 때 >(1961, 이성구 감독), 신파적 멜로드라마 < 친정어머니 >(1966, 김기덕 감독) 등 매우 다채로운 편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세계의 핵심이 유머를 머금은 서민들의 이야기, 민초들의 이야기라는 데에는 이의가 없을 듯하다. 방송극을 영화화한 < 박서방 >(1960, 강대진 감독)은 뒤이은 < 마부 >(1961, 강대진 감독)와 함께 희극적이면서도 비애스러운 서민 아버지의 김승호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품이라 할 만하다. 특히 그는 서민 남성 인물형을 탁월하게 그려내는데, 해방 직후 빈민들의 삶의 풍경을 탁월하게 포착한 < 혈맥 >, 식민지시대 수표교 다리 밑의 의리 있고 순박한 각설이패 두목을 형상화 < 거북이 > 등의 인물 형상화는 탁월하다. 또한 정의감과 뚝심이 있는 젊은 엘리트를 그려낸 < 신입사원 미스터리 >(1962, 김기덕 ) 역시 < 마부 >와 < 쌀 >(1963, 신상옥 감독)로 이어지는 문제해결 능력을 지닌 듬직한 장남 신영균의 이미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한국영화 전성기이자 라디오드라마의 전성기인 1960년대에 이미 50대의 중견 작가였던 그는, 젊은 작가들이 빛을 발하던 여성 중심의 현대적 애정물과는 다소 거리를 둔 가족과 중년 남자들의 이야기에서 특히 작가적인 역량을 발휘했다고 할 수 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그의 작품은 <친정어머니>나 < 엘레지의 여왕 >(1967, 한형모 감독) 등 다소 퇴영적인 신파적 질감의 작품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을 보이며, 1971년을 마지막으로 영화에서는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 글: 이영미(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