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적 임꺽정
- 감독
- 김청기
- 제작년도
- 1997
<희생>(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1986) 중 1년간 관객을 찾은 영화들을 필자의 시선으로 돌아보며, 올 한 해 영화가 불러온 고민들을 정리합니다. 스크린 앞에 앉은 이들이 이미지 속에서 그들의 욕망을, 그들이 욕망하는 것을 찾는다는 말은 꽤 미심쩍은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의 앞에, 뒤에 그리고 곁에 앉은 이들이 보고 있는 이미지와 자신이 보고 있는 그것과의 차이를, 즉 간극을 향유하기 위해 영화관에 간다. 이 경우에, 그리고 오직 이 경우에만 영화관은 우정의 장소가 된다. 그런데 “뤼미에르에 대한 에디슨의 승리”(장-뤽 고다르)가 전면화된 곳에서, 관객들은 그저 “자신들이 찾은 것만을 욕망”(기 드보르)하게 될 것이다. - 유운성, 「우정의 이미지들」, 『인문예술잡지 F』 제10호 이 글은 2024년 12월 중순에 쓰이고 있다. 12월 3일의 계엄령 선포 이후라는 뜻이다. 연말의 나는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렇듯, 그해의 영화들을 순위 매기거나 놓친 영화를 돌아보며 다가올 새해를 맞이했다. 지나간 이미지들을 되짚으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는 했었던 것인데, 반대로 요즘의 나는 유튜브에 들어가 생중계되는 담화와 현안 질의 영상 같은 것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 와중에 마감 일자는 다가왔고 글을 써야 할 때가 되었는데, 청탁을 받았을 때와는 무언가 달라진 기분 같은 것을 느꼈고, 그것을 외면하기에는 원래 준비했던 글의 주제와 지금의 내 상태가 관련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닌 것 같고, 꽤나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준비하던 글을 버릴 수는 없지만, 아무 일 없다는 듯 준비했던 대로만 쓰면 왠지 그건 평정심이라기보다는 뻔뻔함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불안 섞인 걱정을 하고, 그럼 준비했던 대로만 쓰는 건 뭔가 아니다 싶고, 굳이 올해에 한정하지 않더라도 관련지을 수 있을 만한 사례를 가져와도 괜찮겠다는 결론에 이르러, 그와 관련된 옛날 얘기로 글을 시작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한 편의 영화에 대한 단일한 감상이란 있을 수 없다. 비평이란 이름의 탈을 쓰고 유의미한 의견으로 정교히 언어화되어 세상에 나오지 않을지라도, 언제나 한 편의 영화를 본다는 것에는 각자의 개별적 경험이 스며들며 그 분리 불가능한 총합은 또 하나의 경험이 되어 각자의 마음에 남기 마련이다. 김대환 의 장편 데뷔작 < 초행 >(2017)이 내게 그런 영화 중 한 편이다. 2017년 겨울에 개봉한 이 영화는 당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였는데, 당시 이 영화를 본 친구들은 개봉하게 되면 꼭 보라는 말을 해주면서도, 어떤 내용인지 묻자 아무것도 모르고 보는 편이 좋고 결말이 참 인상적이라는 말을 더해 주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포스터나 시놉시스를 보건대 장르적이거나 플롯 운영에 있어 반전을 꾀하는 영화는 아닌 것임이 확실할 텐데, 도대체 무엇이 있길래? <초행> 포스터와 스틸 <초행>이 막바지에 다다른 순간이었다. 결말부는 2016년 가을 무렵부터 2017년 중순까지 이어졌던 광화문 촛불 집회를 로케이션으로 삼는다. 양쪽 집안을 오가며 고군분투하던 7년 차 청년 커플을 따라가던 픽션의 세계에 돌연하게 쏟아지는 저 리얼리티의 막대함에 적잖이 혼란스러웠다. 개인적으로 이 선택이 단순히 허구와 현실의 구별이라는 영화의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린다는 개념적 차원 그 이상의 가치로 빛난다고 느꼈는데, 서둘러 말하자면 이 영화가 너무 빨리 도착한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KOBIS에 따르면 이 영화는 내가 열심히 광화문 광장을 오가던 2016년 11월 26일부터 2016년 12월 20일까지 촬영되었다. 헌법재판소는 2017년 3월 10일 대통령 탄핵을 결정했고, 이 영화는 두 달이 지나지 않아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프리미어 상영으로 공개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당시 촛불 집회와 관련된 일련의 사태와 시간은 이 현실을 살아가는 한 명의 시민으로서 망각하기 어려운 적잖은 충격이었을 테다. 물론 나는 이 영화를 개봉하고 보았지만, 그 물리적 간극을 상쇄시킬 정도로 <초행>의 끝이 주는 감흥은 생생하면서도 생경했다. <초행>에 기입된 광화문 광장의 생생한 이미지가 한편으로 생경했던 이유는, 영화라는 것이 어느 정도 시차를 두고 만들어진다는 모종의 관습을 깨부수었기 때문이다. 거의 생중계에 가깝다고 느끼면서도, 약간의 거리감은 환기되는 이상야릇함에 가까웠다고 해야 할까? 사실 이 장면이 인상 깊은 건, 작품 내에서 세계를 뒤집어놓는 급속한 반전처럼 기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고민이 지난히 이어지던 이 커플이 광장으로 향하며 어디로 가야 할지 헤매는 상황은, 이야기와 멀어지기보다는 오히려 끈끈히 달라붙으며 세계를 입체화하기 때문이다. 수현과 지영은 그 역할을 맡은 조현철 과 김새벽 으로 존재를 전환하지 않고, 광화문 광장은 이 영화의 주된 무대인 삼척, 인천과 특별한 위계서열을 형성하지 않는다. 나의 사적인 경험, 역사적 현실, 영화적 허구가 한 데 섞여 용광로처럼 들끓었던 이 기묘한 감각을 여전히 잊기 힘들다. <태풍클럽> 일본어 포스터(일부)와 국내 개봉 포스터 그 ‘너무 이른’ 경험으로부터 7년이 지나 2024년이 되었다. 올해는 정반대로 ‘너무 늦은’ 경험을 했다. 소마이 신지의 < 태풍클럽 >(1985)이 정식으로 개봉한 것이다. 처음 본 것이 중학생 때인지 고등학생 때인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둠의 경로를 통해 이 영화의 영상과 자막을 구했으며 이불에 들어가 스마트폰으로 보았던 기억, 예상치 못한 영화 속의 거친 면모에 받았던 충격만큼은 선명하다. <태풍클럽>은 1985년 작이니 거의 30년이 되어서야 한국에 정식으로 공개된 것이다. CGV 아트하우스관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보았는데, 객석이 의외로 꽉 차 있어 놀랐고, 영화가 끝난 뒤 당혹스러워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내가 너무 늙어버린 것 같다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미 <태풍클럽>이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그려내는 아름다운 청춘물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일까? 아니면 이미 소마이 신지의 다른 영화들과 그의 연출 스타일을 경험해 보았다는 차이 때문일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시네필 꼰대처럼 우쭐대는 것은 아닐까? 상영관에 함께 있던 이들과 나는 동등한 입장에서 영화를 본 것이 맞는 걸까? 너무 늦게 도착한 영화를 보며 든 생각이다. 영화 감상은 반드시 시차의 문제를 동반한다. 스크린 속 세계가 내게 익숙한지 생소한지에 따라 감상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태풍클럽>은 개봉하기까지 30년에 가까운 시간을 통과하며 몇몇 평자들에 의해 걸작으로 이야기되어 왔던 작품이었고, 이미 대다수의 시네필들이 시네마테크와 어둠의 경로를 통해 그 감각을 수용한 상태에서 너무 늦게 도착했다. 물론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생각을 바꿀 수도 있고, 처음 본다 해도 기존의 맥락을 신경 쓰지 않고 감상할 수 있으니 이 모든 것은 쓸 데 없는 우려일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하나의 유물을 목격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2024 월별 독립예술영화 박스오피스 20위까지의 목록 중 재개봉 영화 목록 (출처: KOBIS / 회색 음영: 한국 최초 개봉 연도, 주황 음영: 당월 순위) 그 인상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올해 개봉한 수많은 재개봉작들 때문이다. KOBIS를 참고해 보면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재개봉작들이 많이 출현했던 해다. 심지어 몇몇은 동시대에 만들어지고 개봉하는 영화와 경쟁해 당당히 1위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나는 영화 산업에 종사하고 있지 않고, 어쨌거나 이 통계는 한국의 사례이기에 동일한 현상이 전지구적으로 일어나는지에 대해서까지 고려하며 이 흥행에 대한 인과론적 분석을 할 수는 없다. 그저 코로나바이러스 이후 영화 산업이 큰 타격을 입었고, 특히 독립예술영화를 배급하는 입장에서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을 테니, 새로운 영화를 가져오는 것보다는 이미 지나간 영화를 고르는 쪽이 경제적으로 나은 선택지였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보다 관심이 가는 것은 그 선택들이 일으키는 변화다. 영화 홍보에 있어 언제부터 ‘개봉’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지는 모르겠다. 모르긴 몰라도 “봉하여 두었던 것을 떼거나 엶”이라는 사전적 의미에서 그 선택의 이유를 추정해 볼 수 있겠다. 요컨대 영화가 개봉한다는 건 무언가 기대할 만한 것이 빵 하고 튀어나오는 그런 종류의 사건이었던 것이다. ‘개봉박두’ 나 ‘대개봉’ 같은 한때의 표현들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이제 우리네 관객이 마주하는 표현은 ‘개봉’ 대신 ‘공개’라는 심심한 표현이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지원 사격으로 부상한 OTT와 유튜브를 통과하며 우리는 이미지에 너무나도 익숙해졌고, 더 이상 이미지가 이전과 같은 환상성이나 신비로움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을 지독할 정도로 체감하다 못해 익숙해졌다. 내 손안의 영화관인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속 릴스와 쇼츠로 맥락이 탈구된 수많은 밈(meme) 이미지들을 나의 취향에 맞는 알고리즘의 설계 아래 부지런히 스크롤링하며 갱신하는 것이 일상화된 우리의 감상 환경에서, 미지의 세계를 마주하는 구속적 방식의 영화 감상은 그 자체로 만족을 주지 못하는 20세기의 시대착오적 산물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올해는 그것을 직접 몸으로 체감했던 해였다. 올해 나는 “무슨 무슨 영화가 재개봉한대” 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는데, 그때마다 이렇게 중얼거리고는 했다. “아니, 그게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재개봉이냐?” 가령 표의 4월부터 5월을 보면 < 남은 인생 10년 >(후지이 미치히토, 2022)이 1위를 차지했는데, 이 영화는 고작 1년 전에 개봉한 영화다. 차라리 재개봉 대신 재상영 내지 스크리닝이라는 심심하고 객관적인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까? 아니면 재개봉이라고 부를 정도로 세상이 돌아가는 속도는 너무 빨라서 그 사이 옛날 영화가 되어버린 것일까? 이 ‘재개봉’에 대해 느끼는 어색함은 그 자체로 동시대 영화가 놓인 위치를 설명해 주는 것만 같다. 사실 나는 10년이 넘기는 했지만 < 비긴 어게인 >(존 카니, 2013) 같은 경우에도 ‘옛날 영화’라고 감각하지 않는 쪽인데, 이 영화도 ‘재개봉’을 해서 9월 독립예술영화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기록했다. 심지어 20년이 넘었는데도 1등을 한다. 10월의 1등, 닉 카사베츠의 < 노트북 >(2004)이다. 이렇게 ‘재개봉’으로 소환되는 (너무 이른) 과거는 추억으로 기능한다. 그리고 다가오는 2025년에는 얼마 전 유명을 달리한 나카야마 미호의 출연작, 이와이 슌지의 < 러브 레터 >(1995)가 작품 탄생 30주년 기념으로 재개봉을 예정 중이라고 한다. 심지어 세로 자막 버전이라고 한다. 아! 그때 그 시절 …… 농담이다. 나는 극장에서 세로 자막으로 영화 본 기억이 없다. 좌우지간, 그런 점에서 올해의 극장은 추억의 공간이다. 다른 한편, 올해는 과거의 수많은 걸작들이 극장에 소환된 해다. 이들은 박스오피스권에는 들어오지 못하지만 시네필들에게는 축복과도 같은 사례다. 앞서 말한 소마이 신지의 <태풍클럽>, 오시마 나기사의 < 전장의 크리스마스 >(1983), 이마무라 쇼헤이의 < 복수는 나의 것 >(1979), < 우나기 >(1997), 다시 한 번 ‘재개봉’한 구로사와 기요시의 < 큐어 >(1997), 무엇보다 90년대 한국에 뒤늦게 개봉하여 10만 관객을 동원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 희생 >(1986) 4K 리마스터 재개봉까지 …… 물론 이들의 방문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이들이 ‘걸작’으로 소환되고 있는 것은 한편으로 영화가 더 이상 동시대를 살아가는 ‘나’의 문제와 결부되는 어떤 것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역사적 덩어리 내지 가치 있는 유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이들에 익숙한 시네필들은 기꺼이 극장에 갈 것이고, 그렇지 않은 관객들이라도 걸작이라는 은근한 압박에 둘러싸여 작품을 만나야 하는 것이다. (상) <전장의 크리스마스>, <복수는 나의 것> / (하) <큐어>, <희생> 그런 감각을 더 강하게 느끼는 이유가 있다면, 이 영화들이 시네마테크의 기획과 같은 대안적인 방식으로 상영되지 않고, 정식 개봉 절차를 거치는 방식으로 CGV와 메가박스, 롯데시네마에서 상영되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몇 년 전만 해도, 최신 개봉작은 멀티플렉스에서 보고 독립영화와 과거의 영화들은 시네마테크에서 보는 이분법적 감상 환경이 일반적이었다. 나 역시 2016년에 처음으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고바야시 마사키의 < 할복 >(1962)을 보고, 노인이 된 나카다이 다츠야와 이준익 감독의 대담 상영을 경험하며 그 시간의 아득함을 체감한 바가 있다. (적고 보니 거의 10년이나 지난 일이다. 미안하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예술영화 시장에는 큐레이팅이 보다 적극적으로 도입되었고 ‘홍길동 특별전,’ ‘임꺽정 배우전,’ ‘장길산 기획전’ 같은 문구는 굳이 대안적 상영 공간을 찾지 않더라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브랜딩 상품이 되었다. 알리체 로르바케르와 JR의 단편 < 알레고리 >(2024)와 레오 까락스의 단편 < 잇츠 낫 미 >(2024)가 동시대 영화 이미지의 존재론적 탐구라는 주제의식과 레오 까락스라는 공유점으로 매끄럽게 묶여 개봉하는 상황은 시네필을 위한 친절한 배려이자 선물이지만, 아무래도 이런 호의에 적응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잇츠 낫 미> 중 그러니 이와 같은 유물의 소환을 다른 말로 ‘교양’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올해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였던 또 하나의 사례가 떠오르는데, 다름 아닌 < 괴물 >(고레에다 히로카즈, 2023), < 추락의 해부 >(쥐스틴 트리에, 2023), < 존 오브 인터레스트 >(조나단 글레이저, 2023)와 같은 작품의 예상치 못한(?) 흥행이 그것이다. 솔직히 이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에는 자신이 없지만, 일개 관객으로서의 경험을 떠올려볼 수는 있겠다. 개인적으로 이 세 작품의 흥행은 작품들이 그 자체로 특별한 자질을 품고 있다는 항구적인 특징 때문이 아니라, 어떤 시대적인 요구에 의한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저 세 편의 영화를 보고 사회적이든 미학적이든 정치적이든, 영화를 통해 상당히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접했지만, 그 수많은 말들 속에는 왜인지 ‘나’의 시선이나 감상보다는 대체로 객관과 분석의 언어로 가득했다. 차이밍량은 “상업영화는 세상의 내일을 걱정하는 영화이고, 예술영화는 나의 내일을 걱정하는 영화”라고 했는데, 이상하게 이 ‘예술영화’들을 보고 나는 세상의 내일을 걱정했던 것 같다. <괴물>, <추락의 해부> 중 이제 영화관은 문자 그대로 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이라는 무맥락적인 성격이 아니라, 지나간 걸작을 만날 수 있는 시네마테크, 혹은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시네마천국이 되어버린 것일까? 그 속에서 오래된 영화들은 박물관의 유물처럼 ‘나’와 무관한 역사로 간주되거나, 반대로 ‘나’의 그때 그 시절 향수에 젖어드는 정서적 힐링 콘텐츠가 되어버린 것일까? ‘재개봉’이라는 말로 너무 이르게, 혹은 ‘걸작’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늦게 찾아온 과거의 영화들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사례를 더 이야기해 보고 싶다. 비단 올해만 그렇지는 않지만, 영화관에는 전통적 의미의 영화 대신 다른 영상물이 걸린 경우가 많았다. 구체적으로 제목을 짚지 않더라도, 가령 다큐멘터리로 분류되는 아이돌 콘서트 실황 영상이나 스포츠 중계 등은 코로나 이후 극장 수입에 있어 효자 상품이었다. 그런데 누가 보러 가는가? 당연히 해당 작품이 다루는 대상의 팬들이 보러 간다. 그러니 팬들이 아니면 보지 않는다. 나를 비롯한 주변의 지인들 중에서 같은 종류의 영화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팬덤 문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이 타겟팅 기획물 중 올해 가장 성과가 좋았던 작품은 김덕영 의 < 건국전쟁 >(2023)이다. KOBIS에 따르면 <건국전쟁>은 117만 관객을 동원하며 2024년 한국에서 상영된 독립예술영화 분류 작품 중 관객 수 1위를 기록했다. 이승만이라는 아이돌과 태극기 부대를 중심으로 한 팬덤 문화가 만들어낸 기념비적 성과라고 불러야 하겠다. 불현듯 “태극기 부대 속에 들어가서 <건국전쟁> 보기”라는 기획으로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바로 그런 생각을 하게 할 정도로 이러한 종류의 작품들은 볼 사람과 보지 않을 사람이 명확히 정해져 있는 상품이다. 말하자면 죽음의 이지선다! 바이로이트 극장의 내부를 그린 삽화,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 19세기에 활동한 독일의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는 기존의 오페라를 상연하던 극장을 완전히 탈바꿈하며 바이로이트라는 이름의 극장을 설계했다고 한다. 그는 호화로운 장식이나 발코니석 같은 부수적 기물을 전부 떼어버리고, 바닥을 깊게 파서 오케스트라를 안쪽으로 은폐하여 관객들이 오로지 작품에만 몰입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했다. 그곳에서 관객은 하나가 되는 것이다. 바그너의 이 미학적 파시즘의 설계는 이후 영화관의 메인 모델로 채택되었고, 그를 총애했던 히틀러의 정치적 파시즘과 짝꿍을 이루며 < 의지의 승리 >(레니 리펜슈탈, 1934)와 같은 걸작으로 당시 독일 인민들의 정신을 통합해냈다. 우리는 여전히 그 자장 속에서, 쉽게 ‘우리’라는 말을 꺼내고 싶게 하는 환경 속에서 영화를 보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 OTT 플랫폼에 둘러싸인 우리는 각자가 각자의 작품을 보는 식이었던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식 관람 환경 안에 살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옆 사람이 무얼 보든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2024년을 돌아보면서 불현듯 영화관 모델의 역사를 떠올린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영화의 죽음, 극장의 죽음, 무엇보다 우리와 각자의 문제. 혼란스러운 연말 시국 속에서 그 말들이 피부로 느껴지고 있다. 그렇다. 이것은 결산이 아니라 진행이다. 이광호(영화평론가) l 1996년생, 다양한 방식으로 영화 주변을 오가고 싶다. 2018년 부산영화평론가협회 비평공모 당선. 반연간지 《크리틱b》, 월간 서비스 '비평의 편지' 필진.
한국영화사에서 사극의 전성기는 1980년대였다. 하지만 ‘전성기’라는 표현은 이중적이다. 1980년대는 1970년대부터 하락하기 시작한 한국영화 산업이 장기 침체로 접어든 시기. 사극은 1960년대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이 주도한 이후 충무로를 대표하는 ‘대작’ 장르였다. 그런데 1980년대에 오면, 사극은 과거의 위용에서 멀어지며 양적 팽창에 전념한다. 그리고 그 중심은 ‘에로티시즘 사극’이었다. 모두 ‘에로’를 지향한 건 아니었다. 전통의 올곧은 계승은 있었다. 사극의 서브 장르 중 하나인 ‘여인 잔혹사’는 <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 이두용 , 1984) < 자녀목 >( 정진우 , 1985) < 씨받이 >( 임권택 , 1987) 등의 수작들을 보유했다. ‘궁중 사극’의 흐름도 건재했다. 이두용 감독은 신상옥의 < 내시 >(1968)를 나름의 스타일로 뛰어나게 리메이크 했다. 신상옥 의 영향력은 여전했는데 그의 < 연산군 >(1961)과 < 폭군 연산 >(1962)을 잇는 < 연산군 >( 이혁수 , 1987)과 < 연산일기 >( 임권택 , 1988)가 등장했다. 계유정란을 다룬 < 사약 >( 김효천 , 1984), 당시 사대부와 왕실을 농락했던 여인의 이야기 < 어우동 >( 이장호 , 1985) 등도 만들어졌다. 임권택의 < 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으랴 >(1985)도 빼놓을 수 없는 ‘사대부 사극’이다. 배창호 는 < 황진이 >(1986)에서 미학적 실험을 했고, < 박철수의 헬로 임꺽정 >( 박철수 , 1987)도 당대 사극의 독특한 지점이었다. (상단 왼쪽부터 지그재그) <물레야 물레야> <자녀목> <어우동> <연산일기>. 1980년대 ‘A급 사극’의 계보. 여기까지는 1980년대 나름의 ‘A급 사극’ 리스트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사극’, 즉 ‘B급 사극’, 좀 더 구체적으로 ‘에로 사극’ 이야기를 하려 한다. 1980년대 에로 지형도에서 사극이 처음부터 야한 기운을 얻은 건 아니었다. 1980년대 초엔 홍콩과의 합작이나 위장합작을 통해 만들어진 무협 사극이 쏟아졌고, < 팔불출 >( 고응호 , 1980)처럼 코미디나, 호러 장르 혹은 종교 영화 등과 결합되었다. 변화의 조짐은 1980년대 중반에 보였다. <어우동>과 < 변강쇠 >( 엄종선 , 1986)는 에로의 원투 펀치와도 같은 결정타였다. 특히 <변강쇠>는 모든 것을 규정했다. 이 영화의 변강쇠( 이대근 ) 이후 절륜한 정력을 지닌 거구들이 스크린에 횡행했으며, 옹녀( 원미경 ) 이후 독거미처럼 남성을 옭아매는 치명적 성욕의 소유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역사와 민속의 장이었던 사극은 바야흐로 적나라한 욕망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정작 <변강쇠>의 시작은 의외로 근엄하다. 18세기 영조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변강쇠>는 이 영화의 의의를 설명하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성 윤리의 해학적 의미의 참뜻을 에로티시즘으로만 간과하려는 상업성을 탈피하면서, 그 시대의 유랑 서민들의 웃음과 눈물을 서사적 영상미로 승화시켜 무분별한 성은 곧 자기 파멸이라는 교훈을 던짐으로써, 우리 고전의 진정한 의미를 오늘에 재조명하고자 한다.” <변강쇠>는 1980년대 에로 사극의 모든 것이었다. 이 영화는 변강쇠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결국은 옹녀의 유랑으로 끝을 맺는다. 다소 중언부언하는 서론이지만, 판소리 <가루지기전>을 원작으로 하는 <변강쇠>는 에로티시즘을 해학과 교훈의 방식으로 다루겠다고 선언한다. 해학이라 한다면 정사로 산이 뒤흔들리며 옹녀 때문에 줄초상이 나 한 마을 남자의 씨가 마르는 식의 과잉된 성적 표현일 것이다. 한편 교훈이라면 술에 취해 장승을 뽑은 변강쇠가 신령에 시달리다 죽게 되는, 정력의 과시가 불러온 비극일 것이다. 하지만 이후 에로 사극은 교훈보다는 해학에 방점을 찍으며 < 고금소총 > 시리즈( 지영호 , 1988~95) < 호걸 춘풍 >(이혁수, 1987) < 이조 춘화도 >( 박호태 , 1988) < 껄떡쇠 >( 김진국 , 1989) < 후리꾼 >(최거영, 1991) 등 ‘호색한’이 이곳저곳을 누비며 방사를 벌이는 영화들이 이어진다. 여기서 에로 사극의 위대한(!) 점은 단지 남자의 욕망만 만족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변강쇠>에서 더욱 흥미로운 캐릭터는 옹녀다. 변강쇠를 만나기 전까지, 그녀의 딜레마는 언제나 욕정의 결핍 상태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그녀와 관계를 가진 남자는 모두 죽는다. 남성의 죽음을 담보한 섹스의 히로인 옹녀. 그녀는 언제나 겁탈이나 보쌈의 위협에 시달려야 하는 수절 과부의 반대편에 있는 공격적 섹슈얼리티의 여성이다. <변강쇠>의 첫 장면, 옹녀는 첫날 밤에 스스로 옷고름을 풀고 남성의 옷을 벗기고 불을 끈다. 첫날 밤 장면은 과거의 사극에서 숱하게 반복되었지만, <변강쇠>의 옹녀는 그 관습을 과격하게 파괴하는 적극성을 보여주며, 이어지는 정사 신에서도 그녀가 섹스를 리드한다. 그리고 결국엔 자신과 궁합이 맞는 남자를 직접 찾아 나선다. 이대근은 1980년대 에로 사극의 간판 스타였다. (왼쪽부터) <호걸 춘풍> <고금소총> <가루지기>의 이대근. 변강쇠뿐만 아니라 옹녀 캐릭터도 이후 후손들을 거느리며 이른바 ‘궁합 장르’, 즉 강한 양기와 음기를 지닌 남녀가 드디어 만나 완벽한 궁합을 이룬다는 내용의 영화들이 등장한다. < 속 변강쇠 >(엄종선, 1987) < 변강쇠 3 >(엄종선, 1988)를 비롯 < 가루지기 >( 고우영 , 1988) < 합궁 >( 남기남 , 1988) < 고금소총 2 >(지영호, 1990) < 색녀도 >(박호태, 1990) 등이다. 옹녀가 영감을 준, 에로 사극의 또 다른 흐름은 ‘유랑녀 서사’다. 이것은 <어우동>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마치 ‘호스티스 멜로’를 연상시킨다. 가난, 집안의 몰락,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 공동체의 추방…. 여러 이유로 떠도는 여성은 결국 몸을 팔게 된다. 여성의 운명성을 에로티시즘과 결합한 컨셉트로, < 됴화 >( 유지형 , 1987)는 아예 저주를 타고난 여성의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이후 < 호호전 >(박호태, 1988) < 들병이 >( 유진선 , 1989) 등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 ‘에로티시즘’이라는 강렬한 이미지가 있긴 했지만, 에로 사극 역시 사극 장르의 한 갈래였고, 그런 의미에서 시대적 테두리를 벗어나진 못했다. 즉, ‘계급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이 장르의 많은 것을 규정했고, 여기서 만들어진 긴장 관계가 오히려 에로티시즘 강화하기도 했다. 이른바 ‘씨받이 장르’는 대표적이다. 반드시 남자를 통해 대를 이어야 했던 조선 시대, 양반들은 대를 잇기 위해 소실을 두거나 오로지 아들 생산을 위한 도구인 ‘씨받이’를 두곤 했다. 이 설정에서 수많은 변주가 이뤄졌다.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가 대표적. <변강쇠> 시리즈의 엄종선 감독이 만든 < 사노 >(1987)은 숨겨진 수작인데, 나이 든 양반이 하녀 오월(원미경)를 건드리자, 그녀와 결혼을 약조한 머슴 들판(이대근)은 오월을 데리고 도주한다. 이외에도 < 잦은 방아야 >( 김병기 , 1989) < 살꼬지 >( 김인수 , 1989) < 요화경 >(박호태, 1988) < 소녀경 >(박호태, 1992) 등이 있으며 < 빨간 앵두 > 시리즈는 3편(박호태)에서 갑자기 사극으로 선회해 씨받이 이야기에 <변강쇠> 콘셉트를 결합한다. <변강쇠>로 신드롬을 일으킨 엄종선 감독, 이대근, 원미경이 다시 만난 <사노>는 숨겨진 수작이다. 이 영화의 결말은 서늘하면서도 통렬하다. 씨받이만 있었을까? 아니다. 대를 잇지 못하는 집안에서 그 문제가 남자 쪽에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 마님과 은밀하게 통정할 ‘씨내리’가 등장하기도 했다. 주로 튼실한 머슴이 그 역할을 수행하는데, 이두용 감독의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는 이 분야 최고의 걸작. 하지만 이후 에로틱해지면서 약간은 <변강쇠> 톤으로 변했고, <소녀경>에선 씨받이와 씨내리가 관계를 맺는 단계에 이른다. 이외에도 < 홍두깨 >( 김준식 , 1990) < 씨내리 >(남기남, 1993) 등이 있다. <씨받이>처럼 여성의 육체(자궁)을 어떤 도구로 이용했던 과거를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도 있었지만. 씨받이와 씨내리가 등장하는 영화들은 그 자극적 캐릭터로 인해 대부분 선정주의와 소재주의로 치달았다. 그러면서 개척된 분야가 이른바 ‘회춘녀’ 장르다. < 어울렁 더울렁 >( 차성호 , 1986)은 그 시작. 이른바 ‘목밀녀’, 쉽게 말하면 ‘대추녀’ 순이( 김문희 )가 주인공이다. 대추녀는 양반들이 원기를 회복하기 위해 둔 스무 살 정도의 하녀로, 아침에 여성의 그곳에 대여섯 개의 대추를 넣었다가 저녁에 꺼내먹으면 젊은 여성의 기를 받아 정력이 회복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씨받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여성의 육체를 도구화하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종종 몸을 묶는 SM 관계의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다소 변태적인 설정이지만, “올해 같은 흉년에 살아남기가 쉬운 줄 아느냐!“라는 양반의 호통 앞에선 순순히 응할 수밖에 없었다. ‘유랑녀’처럼 ‘대추녀’도 가난 때문에 몸을 팔아야 했던 여성에 대한 이야기로 < 목밀녀 >(차성호, 1988) < 회춘녀 >( 방순덕 , 1989) < 춘화춘풍 >( 최기풍 , 1990) <소녀경> 등 적잖은 영화들이 다루고 있다. 흥미로운 건 <이조 춘화도>나 <고금소총> 같은 영화들인데, 이 영화에서 긴 세월 동안 병을 앓던 여성들은 섹스를 통해 그 병을 치유한다. ‘회춘녀’의 반대편엔, 여성의 묵은 성욕을 해소시켜 주던 ‘육봉남’들이 있었던 셈이다. (왼쪽) <홍두깨>는 씨내리 장르의 영화다. (오른쪽) ‘대추녀’ 장르의 시작인 <어울렁 더울렁>. 이 장르는 종종 SM 컨셉트로 흐르곤 했다. 가부장적 계급 사회가 만든 또 하나의 캐릭터는 수절하는 젊은 과부다. 언제나 은장도를 꺼내 들고(하지만 자결하진 못한다), 열녀문 기둥을 어루만지는(결국 그것은 무너지게 된다) 그녀들은 1980년대 에로 사극의 가장 모순적 인물들이었는데, 그들은 시대의 규율에 의해 한없이 욕망을 억눌러야 했지만 결국 본능을 선택한다. < 마님 >(김인수, 1987)는 이 분야의 전형적인 작품. 마님(김문희)은 몇 년 째 수절 중이며 열녀문을 하사 받은 정숙한 여자다. 마음이 심란할 때마다 절을 찾아 불심에 호소하지만 욕망은 사그러들지 않는다. 하인( 백일섭 )은 마님을 사랑하지만 이때마다 마님은 “이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게냐!” “그래도 이놈이!”라며 물리친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얼싸안게 된다. 김인수 감독의 <마님>. 마님과 머슴은 결국 맺어진다. 그러나 과도한 억압은 반드시 저항과 전복을 낳게 된다. 욕망은 절대 억압할 수 없기 때문인데, < 사방지 >( 송경식 , 1988)은 레즈비어니즘을 통해 이러한 테마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흉악범과 광녀 사이에서 태어난 사방지( 이혜영 )는 겉모습은 여성이지만 남성을 지닌 양성구유다. 절에서 성장하는데 예불 드리러 오는 청상 과부 이소사( 방희 )는 사방지를 거두어 몸종으로 데려가지만, 그의 비밀을 알게 된 후 섹스 파트너로 삼는다. 결국 두 사람 모두 죽음을 선택하는 비극으로 끝나는데 <사방지>는 수절하는 마님, 계급 사회의 모순, 여성의 운명성 같은 사극의 관습을 계승하면서도 파격을 추구하며 ‘여인 잔혹사’의 서사에 균열을 낸다. 이외에도 < 이조 여인숙명사 청상계 >( 윤석봉 , 1991)나 <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 양병간 , 1993)처럼 과부의 욕망을 해방시킨 ‘안티 열녀문’ 콘셉트의 사극도 있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계급 사회 속에서도 욕망에 충실한 여성 캐릭터들이 만만치 않게 존재했다는 점이다. 양반집 마님이 허벅지에 바늘을 찌르며 긴긴 밤을 외롭게 보낼 때, 옹녀나 도화 같은 ‘타고난 성적 파워’를 지닌 여성이나 무당이나 주모 혹은 하녀들은 거침 없이 방으로 남성을 끌어들였다. 1980년대 가장 파격적인 사극 <사방지> 마지막으로 언급할 이 시기 에로 사극의 특징은 느닷없는 판타지다. < 변강쇠 2 >(엄종선, 1987)에서 변강쇠(김진태)가, <가루지기>에서 옹녀(김문희)가, 소변으로 폭포를 만든 후 수많은 영화들이 이 엄청난 과장법을 예사롭지 않게 모방했다. 시간 파괴의 경향도 흥미로운 지점인데, <호걸 춘풍>에서 춘풍(이대근)은 기생들과 디스코를 추며 “백 년 후에 유행할 춤”이라고 말하고, < 장미 속의 살모사 >(강구연, 1989)의 머슴 살모사( 조형기 )는 ‘라 밤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마이클 잭슨의 문 워크를 추기도 한다. 강구연 감독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1993)에서도 이런 파격을 시도하는데, 조선 시대 여인들이 캉캉 춤을 추는 장면이 있다. < 고금소총 3 >(지영호, 1995)과 < 애마와 변강쇠 >( 김문옥 , 1995)는 타임머신 콘셉트를 이용해, 배지기나 변강쇠 같은 캐릭터가 현대의 필리핀과 서울에 나타나 자신의 파워를 과시한다. 1980년대 사극의 파격적인 상상력들. (상단) <빨간 앵두 3>과 <애마와 변강쇠>. 현대로 온 배지기와 변강쇠. (하단 왼쪽) <장미 속의 살모사>에서 기생은 현대식 속옷을 입고 있다. (하단 오른쪽)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의 캉캉 춤. 당대 에로 사극의 시그니처 숏인 ‘방뇨 신’. (상단 왼쪽) 그 시작은 <변강쇠 2>였다. (상단 오른쪽) <고금소총>에서 달비의 강력한 방뇨. (하단 왼쪽) <합궁>에서 남자의 힘찬 방뇨와 그것을 바라보는 여성의 시선. (하단 오른쪽) <미지왕>(1996. 김용태)은 1980년대 에로 사극의 방뇨 신을 패러디한다. 어쩌면 1980년대 충무로 지형도에서 에로티시즘 사극은 가장 과격한 상상력을 발휘하고, 가장 욕망에 충실했으며,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은 작품을 양산했던 장르였을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기획 영화가 등장하면서 사극은 10년 가까이 종적을 감추었고,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기에 <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 이재용 , 2003)나 < 왕의 남자 >( 이준익 , 2004) 등을 통해 ‘웰메이드’ 방식으로 다시 등장한다. 하지만 과거 ‘B급 사극’의 저렴하면서도 진솔한 상상력이 되돌아오진 않았고, < 가루지기 >( 신한솔 , 2008) 정도의 시도가 있을 뿐이었다. + 이로써 작년 말부터 시작된 1980년대 장르 영화에 대한 긴 여정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 동안 부족한 글을 읽어 주신, 그리고 가끔씩 피드백을 주셨던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지면을 열어주신 한국영상자료원에게도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 혹시 기회가 된다면, 또 다른 콘셉트로 옛날 영화들을 정리할 날을 기약하며, 10회에 걸친 연재를 닫는다.
지난 회에 이어 여름특집은 계속된다. 여름 하면 역시 블록버스터다. 터지고 부서지고 그 사이에 맺어지는 화끈한 인연! 오늘 소개할 영화는 이미 유명한 영화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이야기가 됐던 영화다. 그래서 삐용삐용B무비에 어울릴지 고민했다. 그러나 이 코너에서 블록버스터 영화를 다룬다면, 다른 대안은 없다. 무조건 이 영화다. “우리도 < 터미네이터 > 같은 영화 하나 만들어 봅시다!” 역사 속에 존재하는 많은 사건, 사고들이 말 한마디로 시작되곤 한다. 이 영화의 시작은, 당시 < 외계에서 온 우뢰매 > < 슈퍼 홍길동 > 등으로 어린이들로 하여금 ‘Shut up! Take my money!’ 를 외치게 했던 김청기 감독의 야망에서 시작된다.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잔뼈가 굵었으나 한계를 느낀 김 감독은 이후 셀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를 섞는 작업으로 톡톡히 재미를 본다. 그것을 바탕으로 완전한 실사영화를, 다시 말해 어른의 세계에 발을 들일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본격 성인대상의 액션-에로틱-SF로 기획된 이 영화는, 데뷔하자마자 청춘스타가 되었고 동시에 작품성도 알아보는 재능을 보여 충무로의 기대주로 떠올랐던 한 젊은 배우에게 김 감독이 건넨 한 마디로 의기투합해 제작이 성사되고 만다. < 바이오맨 >. 한국이 키운 가장 강한 男子! ‘8메가 디램이라니 그런 터무니 없는...! 일본과 미국같은 선진국가에도 4메가 디램이 없소’ 재벌기업 총수인 장만근( 윤일봉 )의 둘째 아들 장도일( 박중훈 )은 매일 나이트클럽을 들락거리며 술이나 먹고 여자와 노는데 시간을 허비하는 집안의 골칫거리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기업에서 개발한 ‘초 고용량 메모리’인 8메가 D-RAM 칩의 설계도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도일은 자신에게 메모리의 정보를 묻던 친구가 생각나고, 그를 다그쳐 홍콩에 문제의 설계도가 있음을 알게 된다. 바로 홍콩으로 떠난, 갑자기 효자가 된 도일은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 동남아 최대 조직의 보스인 ‘스리랑카의 별’이 있음을 알게 되고 그를 쫓는다. 형 영일( 남성훈 )이 붙여준 여자 요원 수지 한( 신미아 )과 함께 그들의 아지트에 쳐들어간 도일은 애석하게도 악당들의 총탄에 쓰러지고 만다. 수지 역시 그들에게 붙잡혀 옷이 벗겨진다. 소식을 들은 형 영일은 한달음에 홍콩으로 달려간다. 온몸의 기능이 망가졌으나, 정신력으로 뇌파만이 요동치는 도일을, 그는 현대 과학의 결정체인 기계 인간으로 살려놓기로 한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나 영일을 돕는 오석도( 신우철 )는 마약에 취한 채 윤락녀로 사는 수지를 찾아 병원에 입원시킨다. 상태가 호전 된 수지, 그리고 기계인간이 된 도일과 베트남 참전용사 오석도는 의기투합하여 ‘스리랑카의 별’을 찾아 라오스와 크메르(캄보디아를 크메르라고 말하고 있다.) 국경 어드메 쯤으로 출발한다. 그들은 무사히 ‘스리랑카의 별’을 해치우고 8메가 D-RAM 설계도를 찾아올 수 있을까? 바이오맨의 탄생 “시나리오는 정말 좋았어요. 그런데 100명이 나와야 할 장면에 10명 나오고, 총알이 비 오듯 쏟아져야 할 장면에 제작비 때문에 한 번 갈기면 30명씩 나가떨어지고... 아무리 각본이 좋아도 프로덕션이 못 받쳐주면 답이 없구나 하는 걸 느꼈죠.” < 바이오맨 >의 주연인 배우(이자 감독) 박중훈 이 언젠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그만큼 곡절이 많았던 영화였다. 성인용으로 기획된 만큼 영화에는 꽤 수위가 있는 표현들을 담고 있다. 여주인공 수지가 적에게 붙잡혀 강제로 탈의 되는 장면이 있는가 하면 그녀를 다시 찾았을 때는 마약에 찌든 윤락녀가 되어있다. 이뿐만 아니라 성적인, 그것도 권력에 의한 강제적인 뉘앙스가 담긴 묘사들이 꽤 있는 데다가 최후에는 아예 헐벗은 여성 전투원들이 대거 등장하기도 한다.( < 특명! 미녀군단 >도 그랬는데 왜 조명화 감독의 영화엔 항상 이런 분들이 등장하는가!) 그렇다고 이 영화를 ‘성인용’으로 부르기에도 조금 어렵다. 왜냐하면 성인이 봐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편집은 축약을 넘어서 거의 축지법 수준이고, 묘사는 적극을 넘어서 극단적이다. 악어와의 결투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화가 나는 장면이 있다면, 으아아아아!!! 하고 소리 지르는 장면을 익스트림 클로즈업한다.(끝도 없이 들어가는 줌 인!) 장도일은 강하다! 는 것을 보여주고 싶으면 갑자기 잘 가던 자동차가 진흙에 빠진다.(이건, 빠지는 과정도 보여주지 않는다. 첫 번째 컷이 잘 굴러가는 자동차, 두 번째 컷이 진흙탕에 바퀴가 빠져 헛도는 자동차. 이런 식이다.) 그리고 도일은 한 손으로 차를 번쩍 들고, 자기 발 위에 바퀴를 올려놓는다. “헉! 도일씨 발에 바퀴가!” 라며 수지가 놀래면, 도일은 그제야 알았다는 듯 으응? 하는 표정을 짓는다. 이런 부분에서의 클라이맥스는 역시 악어와의 일 대 일 맞장을 들 수 있다. 이 에피소드 역시 아무런 앞뒤가 없는데, 수지가 강가에서 세수를 하고 있으니 악어가 슬금슬금 나온다. 분명히 오석도는 기관총을 들고 있는데, 장도일은 칼을 들고 물로 뛰어든다. 그리고 악어와의 사투. 우리는 분명 악어의 아가리에 감겨있는 피아노 줄을 볼 수 있다. 넓은 아량으로 역시 위험하니까, 라고 생각하지만, 꼬리 쪽에 보이는 어색한 사람의 손을 보면 아... 하는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건 마치 <에드우드>에서 보았던 벨라 루고시와 거대 문어 인형의 격투 장면을 보는 듯하다. 팀 버튼이 이 장면에 영화 만들기의 고단함과 퇴물 배우의 애잔함을 동시에 배어 나오게 했다면 < 바이오맨 >에서는 기관총을 든 오석도의 멍청함과 기계 인간 장도일의 뛰어난 방수성능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하여간 일일이 열거하기도 버겁다. 삐용삐용B무비를 시작한 이래, 첫 회를 장식했던 < 신사동제비 > 이후로 이렇게까지 막가는 영화는 처음이다. 그나마 이런 부류의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격투장면도 허탈할 뿐이다. 그나마 오석도 역을 맡은 중견 액션 배우 신우철 (전에 소개했던 < 김두한 형, 시라소니 형 >에서 시라소니 역의 그 배우다.)이 약간의 다찌마리를 소화하고 있지만 주연 박중훈 의 액션 연기가 너무 어색해서 시공간이 오그라들 정도다. 이 모든 과정이 지나고 라스트 장면이 다가오면, 관객은 심각한 멘붕에 빠지게 된다. 갑작스러운 수지의 배신으로 에너지 칩이 빠져버린 장도일은 결전에 앞서 오석도에게 비장한 부탁을 한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생전 쓰지 않던 하오체를 써가면서 말이다. 도일 : 난 절대 포기하지 않소. 당신은 알고 있죠? 어서 에너지를 비상전달 장치로 연결해 주시오. 어서. 석도 : 그건 자폭하는 짓이야! 도일 : 나는 현대과학이 만들어낸 기계 인간일 뿐이오. 어서. 시간이 없소. 어서. 석도 : 미스터 장... 도일 : 딱딱(손가락을 튕긴다) 착잡한 표정의 오석도는 칼로 도일의 등을 따서 전기선을 뽑아 연결하기 시작한다. 이 비장한 장면에서 전기 공사 일을 하시는 우리 삼촌이 잠깐 떠올랐지만 어쨌든 슬픔이 밀려온다. 바이오맨의 이 숭고한 희생 앞에서, 토종 히어로의 탄생을 목도하는 기쁨에 복받치지 않을 자 그 누구란 말인가..! 결국 악당의 소굴을 초토화시킨 둘. 스리랑카의 별은 다급히 차에 올라타고 도망치기 시작한다. 그를 뒤쫓기 시작하는 도일. 그리고 그는 자동차에 올라타고, 차와 함께 터져버린다. 에너지 비상전달 장치가 전부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을, 나는 여러분께 보여드리지 않을 수가 없다. 장도일! 끝내 인간이고 싶어 했던 마지막 절규와 함께 그는 몇 조각의 전자부품 조각만 남기고 사라져 갔다.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의 국경에서... 이게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딱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득하다. 김청기 감독과 조명화 감독은 성인을 타깃으로 영화를 기획, 제작했다. 하지만 완성된 영화를 보고 방향을 급선회하여 전체관람가로 등급을 낮추고 어린이 회관, 무지개 극장 등을 통해 개봉했다고 한다. 당시 손에 손잡고 극장에 들어간 가족들이 영화가 끝나고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나오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렇게 이 영화를 ‘체험’한 관객이 KMDb 집계 2,445명. 정극배우를 대거 기용하고 박중훈 이라는 당대의 청춘스타까지 캐스팅해 < 터미네이터 >와 < 람보 >를 섞어 대한민국 슈퍼히어로를 만들려던 야심은 이렇게 안타깝게 실패했다. 김청기 감독은 이 영화의 실패로 막대한 금전적, 정신적 피해에 시달렸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몇 편의 <우뢰매> 시리즈와 애니메이션을 연출했지만 과거의 영광을 다시 누릴 수는 없었다. 특히 그의 마지막 작품인 < 의적 임꺽정 >은 관객 151명이라는 기록적인 숫자를 남기며 결정타를 날리고 말았다. (놀라지는 말자. 이 분야에서는 허리우드 극장 1일 개봉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는 남기남 감독의 < 천년환생 >이 있다. KMDb 집계 관객수 39명) 김청기 감독은 분명 어린이 영화계의 흥행사였다.(<우뢰매>의 오리지널리티나 작품들의 완성도는 둘째 치고) 내 또래 중 그가 만든 영화 한 편 안 보고 자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의 야심은 당연한 것이었을 테다. 한국에 토종 슈퍼 히어로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 아동용 감독이 아니라 누가 봐도 멋진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는 인정을 받고 싶은 인정욕구, 그러나 인프라의 부족과 장르 이해의 부족으로 결국 좋지 않은 모양새로 나온 < 바이오맨 >은 사람들의 비웃음 속에 쓸쓸히 퇴장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좋다. 비록 완벽하진 않았지만 시도 속에서 분명히 무언가를 배웠을 것이고, 이를 토대로 우리가 지금 즐기는 이른바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이루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좀 더 솔직해지자면, 나는 그냥 이 상태로도 좋다. 모든 영화가 잘 만들어질 수는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이 영화를 통해 힘들어했을 많은 사람들에게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B무비는 나름의 방식으로만 전달할 수 있는 재미를 담고 있다. 어쩌면 이런 재미가, 영화가 담을 수 있는 가장 개성 있는 종류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다른 어떤 예술이 ‘실패’와 ‘실수’에서 애정을 끌어낼 수 있는가. 그런 사랑스러움이 내가 그동안 삐용삐용B무비를 해나갈 수 있었던 힘 이었을 거다. 시작할 때는 꽤 오래 하겠구나 싶었지만, 지나고 보니 금방이었다. 내가 쓰는 삐용삐용B무비는 다음 회가 마지막이다. 마지막을 맞아 고민이 많았다. 그래도 이 쪽 분야에서 괜찮은 영화를 써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진짜 말도 안 되게 막 나가는 영화를 골라야 할 것도 같고. 그러나, 애초에 이런 생각 자체가 삐용삐용B무비 정신에 위반하는 것이다. 무게를 담으면 안 된다. 잘하려고 노력하면 안 된다. 되든 안 되든 일단 던지고, 그것이 낭비냐 밑거름이냐는 상관하지 않는다. 쿨내 진동하는 이런 영화들을 소개하려 했던 것이 본 코너였다. 잘 되었던 것일까? 일단 마지막 회에서 뵙겠다. 박중훈 신미아 신우철 감독: 조명화 , 김청기 각본: 조명화 개봉극장: 무지개, 바다, 다복(서울) 관람인원: 2,445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