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남자
- 감독
- 전기상
- 제작년도
- 2009
- 출연
- 구혜선, 이민호, 김현중, 김범, 김준, 안석환, 임예진, 박지빈, 이혜영, 김현주, 이민정, 한채영, 이정길, 김소은, 이시영, 정의철, 정호빈, 김기방, 국지연, 장자연, 민영원
“< 반금련 >에 인육을 먹는 장면이 있지만 30분이 넘게 검열로 삭제되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 이어도 >도 검열의 희생양인데 클라이맥스 부분이 무참히 잘려 나갔다.” 영화사에서 종종 덧붙여지는 수식어인 ‘저주받은’ 감독 혹은 걸작이라는 단어와 김기영 은 잘 어울린다. 1919년생인 그는 비록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서울대 의대까지 엘리트 교육의 수혜를 받았으나 그가 영화인으로서 통과한 한국 근현대사는 처절하고 가혹했다. 일제 강점기와 군사독재정권, 특히 그의 영화적 기량이 절정에 올랐던 1960년대부터 자행된 박정희의 유신독재는 한국영화사에 돌이킬 수 없는 상흔과 수치를 남겼다. 그 시대를 통과하면서 김기영은 자칭 영화 기술자이자, 스타일리스트로서 한국영화사에 유례없는 괴작들 혹은 저주받은 걸작들을 만들어냈고, 이후 비평계에서는 그를 ‘검은 마성의 감독’이라고 상찬했다. 한국 영화사의 대표 걸작으로 손꼽히는 < 하녀 >(1960) 이후 김기영은 1960-70년대에 걸쳐 제법 상업적인 성공작들을 만들어냈다. 그러던 1974년 그는 중국 장편소설 [금병매]를 바탕에 둔 영화 <반금련>을 1974년에 연출한다. 김포 일대에 세워진 거대한 오픈 세트장은 물론이고 정일성 촬영감독,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신성일 , 김영애 , 박암 , 박정자 그리고 과감하게 기용된 신인 이화시 까지 이 영화는 상업적 기획력(동아수출공사 제작)과 원작 [금병매]의 주요 캐릭터와 모티브를 과감하게 차용하고 비틀면서 김기영 감독 특유의 에로티시즘과 죽음, 멜로와 인간사에 대한 냉혹한 해부도를 펼쳐낼 작품이었다. 그러나 작업은 순탄치 않았다. 위에 인용한 김기영 감독의 회고처럼, 영화 <반금련>은 외설과 폭력 등의 이유로 수차례 검열당국으로부터 반려되었고, 결국 영화는 7년이 지난 1981년에야 공개된다. 그러나 이때 공개된 버전은 무려 30분 이상 잘려나가며 훼손되었고, 심지어 오리지널 버전은 완전히 소실돼 버렸다. 비운은 김기영 감독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반금련>에서 주인공 금련으로 데뷔했던 배우 이화시는 김기영의 다른 작품인 < 파계 >(1974), <이어도>(1977), < 수녀 >(1979) 등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선보이지만 당시 중앙정보부에 의해 뇌쇄적이고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영화사에서 퇴출당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반금련>은 그녀의 첫 데뷔작이자, 권력에 의해 좌절당한 이후 마지막으로 개봉한 영화가 되었다. 영화 <반금련>은 수년 전, 황무대 일족에 의해 멸문당했던 서문경(신성일)이 지방 현감의 권력을 등에 업고 소금전매업으로 부를 쌓아 복수에 성공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복수극으로 그는 황무대의 재산은 물론이고 그의 두 아내인 반금련(이화시)과 이병아( 염복순 )까지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이병아는 달아나버리고, 늙은 황무대에 성적으로 만족하지 못했던 반금련만이 서문경의 애첩으로 들어가게 된다. 주변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 않는 금련은 갖은 계략과 성적 도발로 서문경의 사랑을 독차지하지만, 얼마 후 붙들려온 이병아에게 서문경이 마음을 빼앗기며 위기가 시작된다. 질투와 탐욕, 파괴적인 성적 에너지와 암투로 일관하던 반금련은 결국 음모와 계략, 권력과 사회적 제도의 칼날 속에서 비극적인 운명으로 치닫게 된다. 김기영의 <반금련>은 원작인 중국 소설 [금병매]와는 확연히 다른 이야기구조와 캐릭터를 구축해간다. 원작은 오직 모티브로만 작동하며 김기영은 그 자신 특유의 영화적 세계를 펼쳐낸 것이다. 세트 안에 직조된 세계는 인간 세태를 응축하는 권력과 탐욕, 욕구와 공포, 삶과 죽음이 기묘하게 또아리를 튼 미궁과도 같으며, 그 안에 감금된 캐릭터들은 인간 본성의 동물적 에너지와 야만적 이성이 기묘하게 결합된 존재들이다. 남성들은 여느 김기영 영화 속 그들처럼 유약하고 기만적이며, 여성들은 성적 에너지를 자기 생존의 마지막 동아줄인양 처절하게 붙들고 있다. 김기영 감독이 일일이 디자인하고 배치했다는 중국 저택 공간의 복도와 밀실들, 그 공간들을 가로막는 무수한 격자 문양의 문들과 강력한 대비의 조명과 실루엣. 그 속에서 인물들은 경극 배우 혹은 중국 그림자극의 종이 인형처럼 인위적인 제스처의 연기들을 펼쳐 보인다. 특히 이화시가 연기하는 반금련은 남성들을 유혹할 때마다 기이한 손동작을 취하곤 하는데, 이러한 ‘제스처들’은 과히 김기영 모드라고 할만한 영화적 세계의 서명처럼 작동한다. (이러한 배우들의 연기와 움직임들은 그의 다른 영화들에서도 쉬이 발견된다. 가령 이 영화가 제작된 1974년에 공개된 그의 또 다른 작품 <파계>에서 배우 임예진이 연기하는 비구니 ‘묘향’ 역시 매혹적인 외모로 법통을 이어갈 수행 스님 침애를 유혹하게 되는데, 그녀 역시 손의 제스쳐를 통해 성적 욕구를 암시한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의 압권은 금련의 집착과 성욕을 죽음을 넘어서는 사랑으로 완성하는 김기영 감독의 ‘의지’가 반영된 마지막 시퀀스이다. <양산도>(1955), <이어도>(1977) <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1978) 등에서도 강력하게 드러나는 네크로필리아(시체애호증)는 이 영화에서도 에로스와 타나토스(죽음충동)를 넘나드는 멜로적 사랑으로 승화된다. 본처(박정자)의 계략에 의해 목이 잘린 채 살해된 서문경은 훼손된 시신 상태로 석굴묘에 안치되는데, 이때 반금련은 본처의 지위를 그녀가 계승한다는 약속 하에 함께 매장되길 선택한다. 암굴에 시신과 함께 매장된 그녀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서문경에 대한 사랑의 광기 속에서 극기야 목 잘린 시신의 유령과 괴이한 정사를 나눈다. 독보적이고 독창적인 김기영의 영화적 세계와 스타일은 동시대 일본 감독 이마무라 쇼헤이와 비견할만한 지점이 있다. 그러나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가 유기적인 서사구조와 플롯 배치 속에서 인간의 원초적인 성에너지와 욕정을 날것처럼 묘사하는 것이라면, 김기영의 성적 욕구는 타나토스와 마주하는 심리적 궤적이자 동시에 억압적인 사회에 짓눌린 남성성, 혹은 여성성의 권력과 쟁투를 암시하는 은유로서 작동한다. 김기영은 영화를 마치 인간을 해부하듯 세상의 표면을 가르고 그 안에 감추어진 복잡하고 소름끼치는 내면을 조명하는 것이라 말한 바 있다. 그리고 또한 한 번도 영화를 배워본 적 없고, 오직 나만의 방법으로 만든다는 그의 주장처럼 그의 영화는 때로는 모순과 비약, 불균질과 부조화, ‘언캐니(uncanny, 두려운 낯섬)한 불쾌’와 그 이면에 공존하는 ‘낯선 것의 쾌감’이 공존한다. 표현주의적 스타일의 자의식과 인간 사회에 대한 해부학적 묘사, 에로스와 타나토스처럼 공존하는 양면성을 폭로하는데 가장 탁월했던 김기영의 작품은 그래서 한 쇼트 혹은 시퀀스 또는 캐릭터만으로도 영화 전체를 사로잡는 검은 마성이 매혹을 발산한다. “나는 철두철미한 기술자이지 작가 감독이 아니다. 작가 감독은 유현목이다. 난 영화 만드는 것을 사랑했고, 때로는 작품성이 있든 없든 간에 영화를 대량 생산하는 기술자이다.” 한 인터뷰에서 김기영 감독은 자신을 ‘기술자’라 불렀다. 영화에 관한 애정으로 스스로 모든 것을 터득하고 발명하고, 완성해야만 했던 그러나 끝내 자신의 영화처럼 비극에 삶을 마감해야만 했던 한국 영화계의 독보적 거장의 인상적인 자기소개이자 비애이다. (* 인용된 김기영 감독의 인터뷰는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2007년에 개최한 ‘김기영 특별전’ 카탈로그에 수록된 내용에서 발췌한 것임) >> 반금련 고화질 VOD 보러가기 <<
1970년대 한국영화가 청년 문화와 만나면서 하길종 감독의 < 바보들의 행진 >( 하길종 , 1975)을 낳았다면, 그 반대편엔 당대의 하이틴 문화를 담은 < 고교얄개 >( 석래명 , 1976)가 있었다. 전자가 유신 시대와의 불협화음이었다면, 후자는 순응적인 화음에 가까웠다. 반공 영화, 새마을 영화 등 ‘국책 영화’가 창궐했던 1970년대, 이른바 ‘얄개 영화’는 십대 청소년들이 주인공인 명랑 드라마로 사랑 받으면서 한편으론 ‘어른’들의 가치관을 별 저항 없이 수용했다. 여기엔 ‘우수 영화 제도’라는 미끼도 있었다. 좋은 영화로 선정되면 제작사에게 외화를 수입할 수 있는 쿼터 하나가 주어졌던 것. 이후 심사 대상에서 하이틴 무비가 제외되자 이 장르는 갑자기 자취를 감추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1975년 < 여고 졸업반 >에서 시작해 1978년 옴니버스 영화 < 우리들의 고교시대 >까지, 고등학생들의 로맨스와 일상을 다루었던 그 영화들은 4년 남짓한 기간 동안 쏟아지다 갑자기 사라졌던 시한부 트렌드였던 셈이다. 그 중심은 임예진 - 이덕화 커플의 '진짜진짜' 시리즈와, 이승현 - 김정훈 콤비의 '얄개' 시리즈였는데, 전자가 순애보라면 후자는 코미디에 가까웠고, 특히 <고교얄개>는 1970년대 하이틴 영화의 간판 스타 같은 영화였다. 귀여운 반항아들의 요절복통 스토리처럼 보이지만, 유신 시대라는 시대 배경을 감안할 때 <고교얄개>는 의외로 복잡한 텍스트다. 이 영화는 1970년대 국가 이데올로기를 충실하게 담아내면서, 한편으론 그 시절 억눌린 청소년들을 위한 작은 해방구 역할을 했다. 체제 선전과 대리 만족을 동시에 수행하는 기묘한 프로파간다 영화였던 셈이며, 그 어떤 국책 영화보다 순수하게 메시지를 전달했던 작품이기도 했다. 첫 신은 예배 장면이다. 주인공 두수(이승현)는 미션 스쿨에 다니는데, 이때 강당을 가득 채운 까까머리 교복 차림 남학생들의 모습은 그 시대의 집단주의를 잘 보여준다. 여기서 두수는 돌발적 행동을 하는 개인이다. 낙제 때문에 유급을 한 두수는 입시나 교칙 같은 제도를 거부한다. 그저 학교 생활이 지루하기에 매일처럼 장난을 일삼고, 우연히 알게 된 여학생 인숙( 강주희 )과의 로맨스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는 두수는 어쩌면 지극히 정상적인 보통 십대이다. 하지만 유신 시대의 세계관에서 두수는 자기 절제를 하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꿈도 없는 '잘못된' 청소년이다. 그러기에 '교화(敎化)의 서사'가 시작된다. <고교얄개>의 이야기를 추동시키는 원동력은 두수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한 주변 인물들의 노력이다. 교장 선생님을 비롯해 부모와 국어 교사인 백상도( 하명중 )와 그의 하숙집 딸인 인숙 그리고 같은 반 친구인 호철(김정훈)까지 이 과정에 동원된다. 특히 호철과의 관계는 핵심이다. 두수의 장난으로 안경이 깨진 호철은 다리를 다쳐 학교를 나오지 못한다. 어떤 죄책감을 느낀 두수는 호철의 집을 찾아간다. 이층 양옥에 사는 부잣집 아들 두수와 달리, 가난한 달동네에서 살고 있는 호철. 이때 호철이 두수에게 하는 말은, 영화의 테마를 지나칠 정도의 직설법으로 전한다. “두수야, 저길 좀 봐. 저 장관을 이룬 즐비한 고층 건물들이 어떻게 이뤄질 수 있었겠니. 모두가 피와 땀이 이뤄놓은 기적이야. 난 비탈진 언덕 길을 오르내리면서도 한 번도 힘들다고 느껴 본 적이 없었어. 발길은 가볍고 마음은 늘 무럭무럭 자라지. 난 열심히 공부해야지, 어서 자라야지, 그리고 저 많은 빌딩 속에 뛰어들어 주인공이 되어야지. 난 늘 이렇게 결심한단다. 가난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다만 불편할 따름이지. 얄개야, 우리에겐 밝고 희망찬 내일이 있어. 그 풍요한 내일의 세계를 이룩하려면, 학생 시절에 열심히 공부하는 거야.” 이 시기 청소년들을 길들이기 위한 산업화 이데올로기의 성공 신화와 성장주의적 가치 체계를 내화한 호철은, 성인이 되기 전에 '아버지의 법'을 체득한 소년이다. 여기서 <고교얄개>는 호철을 두수가 따라야 할 인간형으로 설정한다. 두수는 호철처럼 새벽에 우유 배달을 하고, 호철처럼 수업 시간에 열심히 공부하며 '호철화'된다. 이 영화는 이러한 방식으로 두수를 '유신 청소년'으로 교화하며, 그 대가로 '인숙과의 관계 회복'이라는 이성애적 로맨스의 성공을 선사한다. 두수는 그렇게 어른이 되는 것이다. 물론 <고교얄개>는 밝은 구석이 많은 영화다. 두수가 만들어내는 악의 없는 유머의 에피소드들은 관객을 미소 짓게 하며,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데이트”(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데이트) 같은 대사는 당시 유행어가 될 정도로 재치 있는 언어 유희였다. 남녀 학생들의 하이킹이나 운동회의 차전놀이는 해방감을 준다. 하지만 이러한 장면들을 즐기다가도, 학교 건물에 커다랗게 붙어 있는 표어(“오늘의 안보 없이 내일의 번영 없다”)나 “북괴의 야욕에 맞서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선생님 말씀이나 '근대화 연쇄점'이라는 동네 구멍가게 간판을 맞닥트리게 되면, 군대식 사회였던 '1970년대'를 환기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고교얄개>는 분열증적이면서도 순응을 요구하는, 당대의 시대 정신을 그대로 담고 있는 작품인 셈이다. >> 고교얄개 고화질(HD) VOD 보러가기 <<
1970년대 대중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깊이 기억된 세 여성의 이름은 < 별들의 고향 >( 이장호 , 1974)의 경아, < 영자의 전성시대 >( 김호선 , 1975)의 영자, 그리고 < 겨울여자 >(김호선, 1977)의 이화다. 세 작품은 공히 소설로 먼저 성공을 거두고 영화로도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별들의 고향>과 <겨울여자>는 소설로 발간되기 전 신문에 연재된 바 있다). 1) 그리고 당대의 영화는 물론 1980년대까지 여성영화의 어떤 기준을 만들어냈다. 혹자는 호스티스 장르에 무슨 여성영화냐고 물을 테지만, 그건 1980년대의 변질된 장르에 들이댈 질문이다. 특히 <겨울여자>는 호스티스 장르와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한 인식은 안타깝게도 당대의 대중영화를 경험하지 않은 채 당연히 그러리라고 짐작하는, 그리고 쉽사리 범주화하는 데서 기인한다. 세 영화는 공식적으로 기록되지 않은 1970년대 여성의 어둡고 외면당한 부분을 대중적으로 각색한 경우이며, 비록 한계는 분명할지언정 당시 여성의 삶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유의미하다. 잘못된 선입견을 또 하나 말하자면 현재 관객들이 1970, 80년대 한국영화의 수준이 낮을 거라고 여긴다는 거다. 조금 유치한 영화에 “요즘이 1980년대도 아니고” 라는 반응하는 걸 볼 때마다 과연 그 시대의 영화를 제대로 경험했는지 의심스럽다. 표현 기법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그런 걸 감안하지 않고 냉소와 비웃음으로 예전 영화를 보는 관객이 적지 않다. <겨울여자>도 그런 선입견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임이 예상된다. 성우가 맡은 이화의 목소리, 순진한 건지 판단지 서지 않는 인물의 태도 등에 헛웃음을 터뜨릴 관객이 빤히 그려진다. <영자의 전성시대>의 성공을 재연하려던 김호선과 당시의 제작진이 기울인 노력을 생각하면 억울한 일이다.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전성기에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원작을 바탕으로 윌리엄 포크너가 각본을 썼듯이, 한국에도 그런 자세로 영화를 대하던 때가 있었다. <겨울여자>의 원작은 조해일이며, <영자의 전성시대>에서 김호선과 호흡을 맞췄던 김승옥이 각본을 썼다. 본격적인 사운드트랙의 출발점인 <별들의 고향>의 음반이 큰 반응을 불러일으킨 터라 <겨울여자>도 이에 부응했다. 김승옥처럼 김호선과 다시 작업한 음악가 정성조는 영화의 흐름에 맞춰 음악을 구상했고, 조해일, 김승옥이 직접 작사에 참여한 노래들도 대중의 사랑을 얻었다. 전체적인 톤은 프란시스 레이 풍의 유러피안 경음악이었으나, 익숙한 고전음악과 오리지널 사운드를 영화 전체에 펼쳐놓은 것은 인정할 만한 시도였다. 김호선은 여자 주인공을 ‘갇힌 존재’로 파악했다. 철조망을 근경으로, 서울의 고급 주택가를 바라보는 시점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주택 중 하나의 계단을 오르면, 굳게 닫힌 철문 너머에 이화가 산다. 김호선은 그런 인상으로 이화의 공간을 그렸다. 그녀는 보호받고 있음과 동시에 폐쇄된 공간에 머무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러한 인상은 이후 영화의 전개 과정에서 중요한 전제 조건을 형성한다. 그녀가 어떻게 변하는가, 그것이 <겨울여자>의 주제이기 때문이다. 여고생 이화는 누군가가 보낸 편지를 엄마에게 ‘고발’한다. 그녀는 자신의 행실이 단정하지 못해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여기며, 편지를 보낸 누군가를 불편한 감정으로 대한다. 임예진 의 ‘진짜진짜 시리즈’ - < 진짜 진짜 잊지 마 >(1976), < 진짜 진짜 미안해 >(1976), < 진짜 진짜 좋아해 >(1977) - 가 나올 때임을 감안하면 이화의 태도는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혼자 뾰로퉁한 표정을 지으며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고민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영화는 그녀가 어떻게 자라 왔는지 드러낸다. 그런데 여기서 폐쇄성을 사회적인 의미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영화는 이화가 갇혀 있는 상황을 사회적인 조건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딸의 태도에 웃음을 지으며 ‘이런 편지는 혼자 간직하는 것이’라 일러두는 엄마의 태도에서 보듯, 이화가 지닌 도덕, 윤리관은 바깥에서 주어진 것이라기보다 그녀 스스로 지키고 세운다는 느낌을 준다. 그 시기의 다른 여성 영화와 비교해, 이화라는 인물에게 바깥 상황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얕다. 이것은 이화라는 인물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가 제작된 시기 탓이기도 하다. 이화에게 영향을 끼치는 두 인물 – 요섭과 석기가 아버지와 맺는 관계는 사회적으로 읽을 여지가 다분하다. 요섭 부의 폭력성과 석기 부의 죽음은 1970년대의 사회정치적 특성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지만, 영화에 가해질 검열을 의식해 영화화 과정에서 삭제되었을 확률이 높다. 특히 이화의 의식에 깊은 영향을 주는 석기의 경우, 그가 하는 대사의 많은 부분은 ‘묵음’으로 처리돼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도록 처리되었다. 정학을 당했다는 부분에서는 소리가 거칠게 튀고, 강제로 징집을 당한 부분도 스스로 입대하는 것으로 알게끔 했다. 외출 중 교통사고로 죽은 것에도 의문사의 의혹이 끼어들지 않는다. 무엇보다, 원작에서 이화가 형이라고 부르며 따르던 광준이란 인물을 영화에서 아예 제거함으로써 그녀의 사회적 변신을 읽지 못하게 만들었다. 영화에서는 이화가 군인인 석기에게 보내는 편지에 “석기씨 덕분에 훌륭한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어요. 이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난 꼭 알아야 할 것을 모른 채 대학을 졸업하고 말았을 거에요”라고 쓰는 것이 다다. ‘꼭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영화는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시대를 반영한 이러한 각색으로 인해, 원작에서 드러나는 이화의 수동성이 오히려 상쇄되고 그녀의 내면과 자립적인 부분이 두드러지는 효과가 발생한다. 이화의 청춘 시대가 몇몇 남자를 거치면서 전개된다는 점에서 <겨울여자>는 얼핏, 남자들 사이를 전전하는 여성을 그린 당대 여성영화와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고등학생이었던 이화는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반에 이를 동안 요섭, 석기, 민이란 남자를 만나게 된다. 별장으로 초대한 요섭이 육체적으로 접근하자 당황한 그녀는 “이게 뭐예요”라고 말하며 뛰쳐나간다. 그 일로 상처를 입은 요섭은 자살하고, 이듬해 이화는 석기의 구애를 받아들인다. 운동권 학생이었던 그는 입대 후 죽음을 맞는다. 다시 이 년 뒤 이화는 고등학교 은사였던 민과 조우하는데, 이혼 후 혼자 살던 그는 이화의 등장으로 행복감을 느낀다. 남자를 거치는 과정은 다를 게 없으나, 여성을 착취하는 남성은 이 영화에 없으며 영화 또한 그들의 시선 아래 이화를 두지 않는다. 거꾸로 영화는 이화의 시선으로 남성을 바라보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이러한 전개는 상당 부분 이화의 출신 계급과 상관이 있다. <별들의 고향>의 경아는 좋은 남자를 만나 아이를 키우고 싶었으나 육체적으로 착취당하고 벼려지는 과정을 반복한다. <영자의 전성시대>의 영자는 기술을 배워 돈을 벌고 싶었는데, 버스 안내원을 하다 팔을 잃은 뒤 뒷골목에서 몸을 팔며 살아간다. 그들에게 비극적 삶이 되풀이 되거나 비극적 삶에서 벗어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과 달리, 이화는 과잉 보호를 받으며 자랐으나 자기 삶의 결정권을 지닌 인물이다. 두 명의 남자가 맞는 죽음도 그녀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남기지 않는다. 그녀는 그것을 오히려 삶과 사회를 깨닫고 성숙해지는 계기로 삼는다. 기실 세 남자 - 미성숙한 요섭, 삶의 열정이 넘치지만 아직 젊은 석기, 그리고 상처를 맛보고 중년을 앞둔 민 – 의 구성은 이화의 내면이 점자 성숙해지는 단계를 은유하는 것 같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남자가 아닌 이화 자신이다. 이화는 과연 독립적인 여성인가. 최소한 이전의 여성영화에서 보던 편한 상대는 아니다. “난 남자가 곁에 없으면 잠시도 살 수가 없어요, 난 그래요. 난 그런 여자에요.“라던 경아는 요즘 여성 관객에게 ’속 터지는‘ 인물로 비칠 것이며, 남자들은 그런 경아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만 찾다 버린다. 이화는 그 시대의 영화가 꾀할 수 있는 나름의 방책이 아니었을까. <겨울여자>는 멜로드라마 장르의 특성 상 어쩔 수 없는 강요된 슬픔과 비극에 의존하지 않는다. 이화의 위대한 점은, 사랑의 상처로 인해 뒤로 후퇴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녀는 매번 더 큰 사랑의 힘을 얻어 앞으로 나아간다. 한국 멜로드라마로선 아주 드문 캐릭터를 만들어낸 것이다. 웹을 둘러보다 한 관객이 ’<겨울여자>의 장르가 대체 뭔가요‘라고 질문한 것을 읽었다. 그만큼 전통적인 멜로와는 다른 영화다. 사실 <겨울여자>가 1970년대 관객에게 그렇게 사랑을 받았다는 게 신기한 일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이건 좀 이상한 멜로다. 세 남자와의 관계는 기능적으로 연결된 느낌이 강하다. 그녀가 새로운 관계로 진입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일종의 의식처럼 누드 신을 삽입한 것도 그러하다. 인물 사이에 깃든 애정의 촉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이야기인 것이다. 자신은 가부장제를 거부해 결혼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민의 재결합을 도모한다는 설정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거기에서 역으로 이화의 정체를 더듬어야 할 것 같다. <겨울여자>는 세 남자와의 관계가 진행될 때마다 전혀 다른 톤으로 바뀌는 영화다. 흡사 세 편의 영화를 붙여놓은 듯하다. 그건 그 사이에 이화라는 인물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변화는 성숙의 다른 이름이다. 그녀는 지속적인 성숙의 단계를 받아들이는 인물이다. 이화는 대담한 존재이며 자신이 믿는 바를 의심하지 않는다. 죽음과 상처에 주눅들지 않으며 남의 시선 같은 게 선택을 가로막지 못한다. 첫 외박을 한 다음 날, 이해심을 갖추었으나 목사로서 보수적인 인물인 아버지가 충고를 하려고 하자 이화는 “친구 집에서 자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사람이 자면 안 되는 곳에서 잔 건 아니에요.”라고 답한다. 성인이 돼 만난 옛 선생이 친구가 되자고 해도 서슴지 않는다. 당황해 거리를 두려는 건 도리어 선생 쪽이다. 그녀는 윤리나 도덕을 따르기보다 진실을 발견해 직시하기를 원한다. 여기서 윤리나 도덕은 관습으로서의 의미를 지니는데, 인간다움을 최선의 길이라 생각하는 그녀에게 그건 때론 거추장스러운 존재다. 그런즉, 가족 이기주의를 이유로 결혼 제도에 거부감을 표현한다. 21세기의 관객의 시선으로 보기에, 이화는 빈 구석이 많은 인물이다. 그러나 요즘 만들어지는 한국영화의 여성과 비교해 봐도 그녀의 독립적인 기질은 신선하다. <겨울여자>가 한때 사랑받았던 옛날 영화가 아니라 여전히 흥미로운 텍스트인 건 그래서다. 1) 기록에 따르면 서울에서 세 영화가 거둔 관객의 수는 <별들의 고향>이 46만명, <영자의 전성시대>가 40만명, <겨울여자>가 58만명이다. 전산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때임을 감안하면 실제 관객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 겨울여자 고화질(HD) VOD 보러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