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예술가의 마지막 일주일
- 감독
- 마르얀 사트라피, 뱅상 파로노
- 제작년도
- 2011
- 출연
- 마티유 아말릭, 에두아르 바에르, 마리아 데 메데이로스, 골쉬프테 파라하니, 이사벨라 로셀리니, 에릭 카라바카, 자멜 드부즈
“‘너 왜 그랬어’라고 물어봤을 때 ‘몰라 그냥 한 건데’라고 한 거는요, 그 사람이 정말 생각 없이 행동했던 게 아니라 지금 생각 없이 대답하고 있다는 말이에요.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잖아요 선생님.” 영화 리뷰 사이트에 들어가보면 이경미 감독에게 가장 많이 보이는 키워드가 ‘괴작’, ‘괴랄하다’ 라는 말이다. 그리고 동시에 ‘우주에서 온 감독’, ‘신선한 문법’이라는 키워드도 찾을 수 있다. 나는 전자와 후자 모두가 이경미 감독을 수식할 수 있는 좋은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가파른 호흡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빠른 말, 그리고 빨갛게 상기된 얼굴. 학생들에게 ‘전따’라는 말을 듣는 선생. 자신의 손을 가위로 내리찌르고, 딸의 허밍을 떠올리며 모든 의심을 거두지 않는 엄마. 이경미 감독은 < 미쓰 홍당무 > (2008)과 < 비밀은 없다 >(2015) 두 편의 장편영화에서 강력하다못해 폭주하는 캐릭터를 등장시켰다. 의도를 알 수 없는 캐릭터와 그 캐릭터의 행동을 먼저 등장시키고, 불규칙한 사운드와 인서트를 통해 퍼즐 맞추기를 하듯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경미 감독의 도치법적인 연출은 위의 대사를 관통하고 있다.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고. <미쓰 홍당무>와 <비밀은 없다>는 전혀 다른 장르이다. 하지만 두 작품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많다. 무엇보다 아주 장르적이면서 동시에 장르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각각 코미디와 스릴러의 장르성을 강력하게 띄고 있으면서도 이경미 감독의 문법으로 코미디와 스릴러의 공식을 빗겨간다. 여기서 우리는 단번에 알 수 있다. 이경미 감독은 무엇을 아주 강력하게 뒤집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영화적 요소에서부터 ‘전복’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미쓰 홍당무>에서 미숙은 삽질을 하며 종철에게 자신이 전화를 한 이유에 대해서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라고 말 하고, 복장검사에 걸린 종희에게 ‘못되게 굴다가 한 번 착한 짓을 하면 사람들이 다 착하게 본다. 그러니까 착하게 살지 말아라’라는 말을 쏟아낸다. <비밀은 없다>에서는 고향을 숨기던 연홍이 딸의 실종을 파해치던 중 극에 달하자 ‘여기 사람들 하나도 못 믿것다야.’라며 굉장히 토착적인 호흡의 사투리를 구사한다. 관객 입장으로서는 한 번에 이해가 안 되는 대사들인데다가, 배우들의 호흡이 빨라서 잘 알아들을 수도 없다. 또한, ‘괴랄하다’라는 키워드가 가장 많이 보였던 <비밀은 없다>의 허밍음에 대해서도 관객들은 이질감을 느낄 수 있다. 이경미 감독은 인터뷰에서 평소 영화를 만들 때 음악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며, <비밀은 없다>의 허밍음은 배우에게 촬영 전부터 연습시켜 녹음한 중요한 장치라고 밝혔다. 실제 영화의 절반 가까이의 사운드를 이 허밍음이 차지하고 있는데, 관객들은 이에 대해 ‘불쾌했다’라는 평을 종종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배우와 감독이 가진 역량의 부족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다분히, ‘의도성’을 가진 연출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미쓰 홍당무>는 코미디 영화의 주인공을 ‘타의적’으로 웃기게 만든 것이 아닌, ‘내가 나여서’ 그랬던 거라며 그러나 동시에 사랑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관객은 웃지만 너무나도 슬프게 울어버리는 캐릭터를 등장시키며 코미디의 기존 문법을 빗겨간다. <비밀은 없다>는 실종된 딸에 관한 의문을 밝히는 스릴러로 포장되어있지만 단순히 딸을 찾는 엄마의 이야기와는 다르다. 배우들의 가파른 호흡과 폭주하는 스토리텔링으로 기존 서사의 문법을 명쾌하게 빗겨갓듯, 기존 서사 공식과 감독만의 호흡을 넘나들며 분위기를 환기한다. 이는 감독의 한 인터뷰에서도 알 수 있다. ‘내 영화에 여성이 등장하는 이유는 남성 영화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여성 영화가 많이 나오는 시대가 되면, 그때 나는 남성 이야기를 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이렇듯 이경미 감독은 자신만의 새로운 화법으로 세계 속의 이면을 발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단순히 영화적인 소스에서만 변주를 주었을까. 이경미 감독은 ‘캐릭터’라는 아주 강력한 무기로 자신의 의도를 더 확고히 한다. 앞에서 잠시 언급했듯, 여성을 발견하는 새로운 시선으로 기존 문법을 또 한 번 비튼다. 바로 ‘감정적인 여성캐릭터’을 등장시키는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여성캐릭터는 중요한 순간에 ‘감정’에 호소하며 영화 안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인물로 그린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를 뒤집기 위해서 이경미 감독은 ‘이성적인 여성 캐릭터’를 배치하는 것이 아닌 ‘정말로 엄청나게 감정적인’, 즉 아주 신경질적인 여성 캐릭터(미숙과 연홍)를 세계와 갈등하게 함으로써 여성을 새롭게 발견한다. <미쓰 홍당무>에서 전화를 받지 않는 짝사랑 상대 앞에서 실제로 ‘삽질’을 하며 폭주하듯 자신의 마음을 쏟아내는 미숙은 제자의 부모님의 이혼을 막을 대책으로 내연녀와의 성적인 문자를 기획하고, 제자와 합이 잘 맞지 않자 컴퓨터 실 부품을 부시고 서로 상처를 낸다. 또 생뚱맞게 피부과 의사에게 자신의 하루를 털어놓는다. <비밀은 없다>의 연홍은 캠프 사람들이 다 모여 있는 곳에서 남편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이성적인 수사방식이 아닌 굿, 최면술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딸의 메일 비밀번호를 알아내려고 고객센터에 딸의 목소리를 흉내낸다. <미쓰 홍당무>의 미숙과 <비밀은 없다>의 연홍은 ‘신경질적인 여성’으로서 세계와 대립하며, 새로운 여성 캐릭터를 발견하게 한다. <미쓰 홍당무>가 감정적인 여성, 신경질적인 여성들(미숙과 종희)의 연대를 그리고, 여성들 사이에 남성(종철)을 존재하게 했다면, <비밀은 없다>에서는 그러한 여성을 남성의 세계로 대립하게 한다. 그리고 이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새로운 지점은 ‘여성 청소년 캐릭터’이다. <미쓰 홍당무>의 종희와 <비밀은 없다>의 민진은 청소년물이나 성장영화의 주인공으로서 등장하지 않는다. 실제로 영화의 키를 쥐고 있는 건 종희와 민진이고, ‘어른들은 몰라요’라는 말이 무색하게 정말 어른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종희와 민진은 청소년이 아닌 종희와 민진 그 자체로 주체성을 획득하는데, 종희와 민진이 가장 중요하게 가지고 있는 키는 ‘연대’와 ‘전복’이다. 종희와 미숙, 그리고 민진과 미옥, 연홍의 연대는 신경질적인 여성을 세계와 대립시키는데 핵심적으로 작동한다. 종희와 민진은 왕따를 당하고 있는 청소년으로서 사회에 소외된 주체인데, 이들은 기성 여성(선생인 미숙과 엄마인 연홍)을 자신보다 멍청한 존재로 판단하고 그들의 손을 잡아주며, 지켜주기까지 한다. 선생인 미숙이 자신의 아빠를 짝사랑하게 된 이유가 ‘아빠가 귀에 대고 속삭여서’라는 어이없는 말을 듣고, 미숙에게 아빠가 ‘귀를 핥았다고 하라’며 지시한다. <비밀은 없다>에서는 <미쓰 홍당무>에서 이경미 감독이 스스로 다뤘던 선생-제자의 문법을 다시 비틀어, 아빠의 내연녀가 선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민진이 선생에게 돈을 요구하고 일방적인 욕을 퍼붓는다. 선생인 미숙은 종희가 자신의 팔이 아플까봐 ‘커진다 커진다 커진다’를 대신 써줬다는 얘기를 하며 베시시 웃고, ‘엄마는 멍청해서 지켜줘야 해요’라는 민진의 유언을 들은 엄마 연홍은 민진의 친구 미옥을 안아준다 바로 여기서 감독이 보여준 종희와 민진이 기성 여성을 연대하는 동시에 그들의 위치를 전복시키는 영화의 구조는 감독이 세계를 뒤집고 비틀고 있는 여러 단서들을 증명하는 격이 된다. 이경미 감독이 뒤집고 있는 세계에 대한 단서를 내가 다 파악하고 통찰하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경미 감독이 두 영화에 공통적인 화법으로 던져놓은 다른 소스들에서 조금의 단서들을 찾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최근작 <Love Set>를 통해 한 번 더 확고히 했다고 생각한다. 극 중 IU(이지은)와 두나(배두나)는 20분 가량의 단편 러닝타임 대부분을 테니스 코트에서 움직인다. 역시 어딘가 화나 있는 듯한 신경질적인 여성 캐릭터, 아빠를 내어주기 싫은 건지 남자친구와 결혼하기 싫은 건지 확실하진 않지만 강력한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여성 청소년 캐릭터. 테니스 경기 동안 배우들의 신음, 랠리, 자두를 씹어먹는 소리, 그리고 피를 뚝뚝 흘리는 여성의 신체를 클로즈업한다. 이들은 경기를 끝내고 손을 맞잡게 되는데, 몇몇 영화 리뷰에서는 이 작품에 대해 동성애적 코드가 있음을 암시한다고 해석한다. 또, male gaze가 담겨 있는 작품이라는 평도 많은데, 이 작품의 감독은 여성이라는 사실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부딪히고 있다. 이경미 감독은 대중에게 영화가 한 방면으로 해석될 여지를 주고 싶어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연출점으로부터 이경미 감독과 대중의 관계는, 이경미를 지독하게 싫어하거나, 열렬히 응원하거나. 이 둘로 나뉘게 되는 것이다. “전따와 전따 애인은 바로 무대로 올라와주시길 바랍니다.” “니가 전따고 내가 전따 애인이지?” “무슨 소리에요! 선생님이 전따고 내가 전따 애인이지!” <미쓰 홍당무>에서 미숙의 담당과목은 원래 러시아어였다. 하지만 뭐든지 자신보다 잘나 보이는 양희에게 담당 과목도, 짝사랑 상대도 빼앗겨버린다. (이 점에서 여성과 여성이 대립하는 방식에 대해서 아쉽다는 평도 있지만, 나는 영화 속에서 여성과 여성이 대립하는 것은 여성의 연대와 그 이면의 전복을 얘기하는 장치라고 생각한다.) 얼굴이 빨개서 뭘 하든지 우스워보이고, 학생들에게 선생이 ‘전따’라고 불리며, 학생보다 영어를 못해서 아침마다 영어학원에 가야하는 미숙은 자신의 사랑도 지켜야하고 공연 연습도 해야하기 때문에 잠을 잘 시간도, 밥을 먹을 시간도 없다. 게다가 피부과는 미숙을 피해서 이사를 가 버린다. <비밀은 없다>의 연홍은 지역 감정이 심한 경상도에서 전라도가 고향인 걸 숨기며 살다 들통이 나서 ‘정말 전라도에요?’라는 질문까지 받는다. 전라도면 전라도지 ‘정말 전라도에요?’라는 질문은 굉장히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출생지, 외모와 같은 것들로 차별받는 주인공들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과 자신이 가장 의지하는 남편의 세계에서 점차 소외된다. 이경미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스스로 여성주의에 한정되어 작품을 찍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영화 속 여성을 분리되고 약하고 소외된 존재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여기에 우리 사회의 단면이 보였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다. 내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사람들의 편견들을 넣고 싶었고, 그것과 싸워서 극복하고 이기는 인물을 그려내고 싶었다. ”라고 한 점에서 비추어 볼 때, 이경미 감독이 여성캐릭터를 새롭게 발견한 점, 기존 문법과 다른 새로운 화법을 구사하며 신선한 장치들로 영화를 구성했다는 점들은 이경미 감독이 영화를 빌어 세계에 하고 싶은 말이 배타적인 동시에 이타적인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하고 짐작해보게 된다. ‘나여서, 내가 나여서 그랬던 거에요.’라며 자신을 한 없이 자조적으로 끌고 갔던 미숙이, ‘전따와 전따 애인’일지라도 우리는 너희와 수준이 다르다며 열심히 연습한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한다. 연홍은 민진의 가사를 해석하고, 미옥을 끌어안는다. 이윽고 어지럽게 나열되어있던 불규칙들이 한 곳에 모이고, 이들이 버티고 있던 세계는 전복된다. 미숙과 종희가 서로 등 지고 팔짱을 낀 채로, 번갈아가며 세계에서 발을 뗀는 것처럼, 한 발씩, 한 발씩.
유아용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제외한다면, 우리나라 TV 애니메이션이 후속 시리즈 제작에 들어가는 소식을 듣기 힘듭니다. 그만큼 아동 타겟 이상의 TV 애니메이션이 수익을 창출하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또한 큰 매출을 노릴 수 있는 완구 기반의 애니메이션이 아니라면 더더욱 수익을 내기 힘들어집니다. 이럴 경우 제작에 투여한 비용을 회수하지 못하게 되고, 후속 시리즈는커녕 자금난에 봉착하게 됩니다. 크지 않은 제작사라면 회사의 운명이 흔들릴 수도 있겠죠. 그렇기에 투니버스가 아툰즈와 함께 공동 기획, 제작한 TV애니메이션 <안녕 자두야>의 시즌2 제작발표는 가뭄 끝의 단비 같은 축복이 아닐까 합니다. <안녕 자두야>는 만화가 이빈 님의 동명 원작 만화를 TV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것입니다. 개성 있는 캐릭터 설정. 유쾌하면서 향수를 자극하는 스토리가 강점인 작품이죠. 바로 그런 이유로 아동용 애니메이션에 적합하다는 판단 아래 제작에 들어갔고, 마침내 작년 여름 방송으로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투니버스에서 시청률 높기로 유명한 애니메이션 ‘짱구’ 의 시청률을 누르는 기염을 토했죠. 방송사로서는 그야말로 행복할 수밖에 없는 결과입니다. 하지만 제작비를 투여한 제작사의 입장에서는 시청률만 가지고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투여한 제작비의 회수가 시급하지요. 헌데 안녕 자두야의 경우는 완구나 봉제인형 상품이 1차로 나오기 힘든 캐릭터입니다. 그러다보니 시청률을 보고 여러 사업자들이 사업신청을 해서 그 로열티를 받는 위주로 부가사업이 진행됐습니다. 헌데 이렇게 부가사업이 전개되는 대부분의 작품들이 제작비를 회수하기 어렵습니다. 단가가 낮은 로열티 기반으로는 매출이 높지 않게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제작비를 회수하려면 그야말로 히트를 해서 많은 이들이 아는 인기작품 대열에 들어야 합니다. 결국 진정한 인기작품이라면 높은 시청률로 인지도가 높아야하고 이로 인한 로열티로 제작비 회수까지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방금 언급한 진정한 인기작품 반열에 방송한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안녕 자두야>가 오른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세를 몰아서 시즌2 제작에 들어가게 된 거죠. <안녕 자두야>의 성공요인은 무엇이었을까요? 물론 시청자의 욕구와 맞아떨어진 행운이 상당부분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철저한 사전 기획을 성공요인으로 꼽고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십수년간 축적된 편성과 시청률 데이터를 활용해 타겟이 좋아할 성격과 내용을 담아낸 것이 핵심일 것입니다. 창작 작업에 있어서 객관적인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데이터가 바로 시청률이지만 이것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안녕 자두야>는 그간의 방송 노하우를 제대로 적용했고, 이는 폭발적인 시청률로 증명이 되었습니다. 철저한 기획을 바탕으로 전체 비용을 관리한 것도 눈여겨봐야할 성공요인입니다. 기획이 잘 되어있을수록 쓸데없이 낭비되는 제작비가 줄어듭니다. 이는 제작단가를 효율적으로 낮추는 기반이 되고 전체 제작비를 가볍게 하여 손익분기점을 낮춥니다. 그럼으로 인해 보다 쉽고 가볍게 제작비 회수라는 성공을 향한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게 되겠죠. 애니메이션 제작비가 퀄리티 향상을 위한 것보다 잘못된 기획으로 인한 수정 작업 등으로 빠져나가는 일이 워낙 비일비재한 상황이기에 비용 관리는 무시할 수 없는 성공요인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훌륭한 원작을 찾아낸 ‘감’을 성공요인으로 꼽고 싶습니다. 언뜻 보면 조금 오래된 만화 같고 요즘 분위기에 맞지 않아 보이는 것이 안녕 자두야 원작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요소를 발견해낸 것이 시작이었죠. 그 시작에 그간의 시청률 데이터를 녹이고 철저한 비용관리를 더해 오늘의 성공을 이루어낸 것이라 봅니다. 올 가을 방송 예정인 <안녕 자두야> 시즌2는 시즌1을 진행하며 체득한 경험치가 더해져서 분명 시즌1을 능가하는 작품을 내놓을 것이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