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향 장기수 이인모 북송 관련 영상
- 제작년도
- 1993
- 출연
- 이인모
1990년대 후반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에는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었다. 주제와 그것을 다루는 태도가 다채로워진 것이다. 정치적 민주화와 노동투쟁에의 집중에서 ‘일본군 위안부’(<낮은 목소리> 3부작), 비전향 장기수와 탈식민적 현대사(< 송환 >, < 할매꽃 >), 가족에 대한 페미니즘적 성찰(< 가족 프로젝트-아버지의 집 >, < 고추 말리기 >, <엄마...>, < 쇼킹 패밀리 >), 성소수자 정체성과 수행(< Out: 이반검열 두번째 이야기 >, < 레즈비언 정치 도전기 >, < 3xFTM >), 여성 노동자의 역사와 투쟁(< 얼굴들 >, < 밥꽃양 >, < 평행선 >, < 우리들은 정의파다 >, < 외박 >) 등 주제의 확장과 교차가 이루어졌다. 더불어 감독 스스로가 영화에 출연하며 자신의 성찰적인 태도 자체를 주제로 삼거나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흐리는 트랜스-장르적 연출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러한 경향은 사회정치적 참여의 장이 다변화된 동시에 독립 다큐멘터리 상영이 비교적 동질적인 집단의 공동체 상영에서 무작위적인 관객이 있는 극장으로 확장된 맥락과 연결되어 있다. 장애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 팬지와 담쟁이 >(계운경, 2000)도 그러한 흐름 속에서 등장했다. 이 시기에 장애여성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들이 몇 편 더 제작되었는데 〈 여성장애인 김진옥씨의 결혼이야기 〉(김진열, 1999), < 거북이 시스터즈 >(이영, 2002), < 진옥 언니, 학교 가다 >(김진열, 2007)가 바로 그 작품들이다. 장애여성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세 영화는 초점이 다르다. < 거북이 시스터즈 >는 장애인권을 위해 헌신해온 여성 장애인 활동가 세 명이 한 집에서 가족 대안 공동체로 살아가는 일상을 다룬다면, 연작인 <여성장애인 김진옥씨의 결혼이야기>와 <진옥 언니, 학교 가다>는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김진옥이 결혼을 하고 딸을 낳아 키우는 과정을 쫓는다. <팬지와 담쟁이>는 부산에 사는 수정과 윤정 자매의 연애와 결혼에 대한 이상과 현실을 관통한다. 30대 중후반의 저신장 장애인인 수정과 윤정은 부산에서 부모형제와 함께 살고 있다. 영화는 언니인 수정이 친구들에게 소개받은 성주라는 남자와 ‘썸’을 타고 연애와 결혼을 꿈꾸는 로맨스를 서사의 중심에 두고 있다. 그러나 수정의 연애는 결코 달콤하지만은 않다. 겨울에 소개 받은 후 설렘을 느끼며 봄을 지나지만 매미가 거세게 울어대던 늦여름의 어느 날 그 모든 감정과 기대들은 씁쓸하게 끝나고 만다. <팬지와 담쟁이>는 겨울에서 봄 그리고 여름의 세월을 지나며 뜨거운 여름의 열기와 아이러니하게 대비되는 상실의 쓸쓸한 정취를 그린 계절영화이고, 호프집, 미장원, 사진관, 산부인과 병원, 지하철, 공원, 바닷가, 오래된 아파트 등 1990년대 말 부산 구석구석의 풍경을 보여주는 로컬 영화이기도 하다. 로맨스, 계절, 부산이라는 세 키워드를 품은 영화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7개의 시퀀스로 구성된다. 각 시퀀스는 다음과 같은 제목이 붙어있다. ‘웨딩드레스 제작 중 1 - 야학 선생님 결혼식 - 웨딩드레스 제작 중 2- 엄마 기념사진 – 노래자랑 – 여름바다 - 웨딩드레스 제작 중 3.’ 오프닝씬은 호프집에서 술 게임을 하며 성주가 수정의 흑기사를 자처하고 노래방에서 함께 <19살이에요>를 부르며 ‘썸’을 타는 순간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바로 다음 시퀀스의 제목은 놀랍게도 ‘웨딩드레스 제작 중 1’이다. 본격적인 연애가 시작되어 상호 감정을 나누는 단계를 모두 건너뛰고 결혼을 가정한 채 성관계와 임신 및 출산을 고민하는 단계로 돌입한다. 실제 성주의 관점은 완전히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성주가 어떤 마음과 의향을 갖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썸-연애-결혼’이 압축된 시간성은 당시 부산에 거주하는 장애여성의 섹슈얼리티 담론과 연관되어 있다. 수정은 성주가 노래방 ‘블루스 타임’에 키가 작은 자신을 안아 들어 올려 춤을 췄을 때 활동지원사들한테 안겼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고 수줍게 털어놓는다. 그러나 연애경험이 없는 수정은 성주의 마음을 확신하기 어렵다. 동생 윤정과 연애상담을 해주는 친한 친구인 수견 언니는 수정에게 “내숭 떨지 말고” 성주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라며 다그친다. 그리고 그들은 좋아하는 마음의 확인에서 결혼의 가능성으로 곧바로 넘어간다. 설렘과 연애의 낭만은 생략되다시피 재빨리 처리되고 결혼 이후 장애를 가진 여성으로서 안전한 성관계 그리고 임신과 출산 대한 현실적인 고민까지 급속도로 일이 진척된다. 첫 만남의 설렘은 곧 연애가 되고, 연애는 곧 결혼이 된다. 이러한 성급한 ‘웨딩드레스 제작’은 분명하게 발화되지 않지만 암묵적인 몇 가지 가정을 전제로 한다. 첫째, 수정은 성관계와 재생산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이 기회를 삼아 성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 둘째, 수정은 이성애 결혼을 원한다. 셋째, 30대 후반이라는 나이와 장애를 고려할 때 수정에게 연애의 기회는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그래서 조금의 호감도 곧 결혼으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 넷째, 수정의 성격과 장애를 고려할 때 의지할 가족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첫 번째를 제외하고 나머지 세 가정은 모두 당연한 현실도 타당한 진실도 아니다. 오히려 수정이 정말로 결혼을 (사실은 연애도) 하고 싶은지 그리고 왜 결혼을 원하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다른 관계와 섹슈얼리티를 탐색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의 기회’를 잡는다는 건 오히려 다른 기회, 결혼이 아닌 방식으로 독립된 가구를 꾸릴 가능성을 제거하는 실천이 될 수도 있다. 사실 수정이 성주와의 연애에 소극적인 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수정은 연애가 처음이고 주위에서 부추기는 분위기와는 달리 자신과 성주의 마음 모두에 확신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수정은 성주의 진심을 불안해한다. 그리고 기저에 잠재해있던 수정의 불안은 영화의 결말에서 현실화된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왜 갑자기 호감 정도의 감정을 급작스럽게 결혼으로 이끌고 갈까? 여기서 <팬지와 담쟁이>는 다큐멘터리가 제작자에 의해 ‘창의적으로 구성되고 설정된 것’임을 인식하게 한다. 여러 시퀀스의 제목에 사용된 “웨딩드레스 제작 중”이라는 언어적 프레임은 장애여성이 연애와 결혼을 고려하는 데 있어 어떠한 (차별적이고 자원이 한정된) 환경에 둘러싸여 있는지를 드러내기 위한 일종의 연출된 호들갑이자 인위적 과장이다. 그래서 “제작 중”이라는 현재형 표현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지금 이들은 정말로 성주와의 결혼만을 염두에 두고 이 모든 일상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인가? 영화는 규범적인 이성애중심성이라는 비판의 위험을 기어이 감수하면서도 이 프레임에 두 주인공을 넣는다. 이 프레임 속에서 수정과 윤정은 함께 성인영화 비디오를 보며 키스, 애무, 체위잡기 등과 같은 성적 행위에 대해 기혼인 수견 언니에게 교육을 받고, 각자의 장애 유형과 정도에 따라 안전한 성행위는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해 부끄러움 속에서 낄낄대며 대화를 나눈다. 이것이 사실상 주거의 독립과도 관계가 있다는 것은 집에 함께 사는 친오빠 때문에 수견 언니 집에서 비디오를 보게 된 사연을 이야기할 때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자매는 수견 언니의 조언을 들어 산부인과에서 검사를 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산부인과 의사는 장애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대해 얕은 지식과 희미한 편견을 드러낼 뿐이다. 욕망은 구성되기도 전에 제한된다. 나이, 장애, 성별의 교차 속에서 정보를 비롯한 자원의 부족과 차별적 편견 때문에 그들의 욕망은 끊임없이 제동에 걸리고 한정된다. 그래서 자신들의 욕망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탐색할 여유가 만들어지지 않고 규범 속에서 상상하게 된다. 그렇다고 그들의 연애와 결혼에 대한 욕망이 허구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실제로 수정은 성주의 관심에 설레어 하고 윤정은 그런 수정을 부러워한다. 두 자매는 야학 교사의 결혼식에 참석해 자신들도 웨딩드레스를 입고 싶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는 그 욕망을 특별한 사건으로 만들기보다는 일상의 환경을 구성하는 조건,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 여러 뉘앙스와 제스처의 수행으로 구성됨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가시성(visibility)이다. 소수자의 영화적 가시성은 단순히 출연 그 자체를 넘어서야 한다. 두 자매가 정성스럽게 화장을 하고 드라이로 앞머리를 산처럼 올리는 행동들의 클로즈업, 성인 비디오를 보면서 부끄러워하며 손으로 눈을 가리는 수정과 침착하게 표정관리를 하고 적극적으로 질문을 하는 윤정, 장애가 있는 아버지와 연애 결혼한 비장애인인 어머니를 일종의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미장원 원장의 이야기를 듣는 윤정의 표정, 해수욕장에서 선크림을 서로 발라주고 모래장난을 하는 수영복을 입은 자매의 모습을 사운드 없이 응시하는 카메라, 성주가 수정에게 ‘썸’의 끝을 알릴 때 당황한 수정이 손톱을 튕기는 제스처 등이 모두 ‘웨딩드레스’가 만들어지고 있는 시간, 즉 욕망이 실천되고 구성되는 순간들이다. 그 순간들과 제스처에는 하나로 의미를 결정할 수 없는 수많은 현실의 일상과 감정들이 섞여 있다. 또한 해수욕장에, 노래자랑 예선에, 보도에, 지하철에 장애인이 존재하고 그 공간을 이용하기 위해선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도 자연스럽게 가시화한다. 일상을 쫓는 카메라는 두 자매와 함께 이동하며 관념적 상상만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구체성을 전달한다. 걷는 것이 힘든 윤정은 자신의 체격과 신장에 맞는 탈 것으로 아동용 플라스틱 장난감 차를 사용한다. 윤정이 선택한 이동수단은 목발이나 휠체어가 아닌 다른 탈 것의 가능성을 가시화한다. 또한 이 이동수단은 장애인이 자신의 경험적 지식을 활용해 다양한 신체에 딱 맞게 개조한 크립 테크(criptech, 그리고 하이데거가 말한 도구가 아닌 예술로서의 테크네)의 훌륭한 사례가 된다. 그녀가 노래자랑 예선 무대 위에서 장난감 차 위에 앉아 이정현의 <와>를 춤과 함께 부를 때, 예선에서 떨어지고 벚꽃이 흩날리는 보도를 지나갈 때 노랗고 빨간 원색의 장난감은 시선을 잡아 끈다. 지하철에서 저신장인 수정과 윤정의 아이레벨에 맞춰 카메라가 낮아지자 자매를 응시하고 있는 어린 아이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은 복잡한 레이어를 만든다. 성인의 신장은 매우 다양하고 그렇기 때문에 성인의 아이레벨 역시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위치가 낮은 아이레벨을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만 동일시할 수 없다. 동시에 실제 어린아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때때로 저신장 장애인을 아이처럼 대해온 사회적 고정관념의 시선을 환기하며 성찰을 유도한다. 그리고 타인의 편견에도 불구하고 윤정은 자신의 체격에 잘 맞는 장난감 차를 자신의 탈 것으로 선택하며, 이러한 선택은 윤정의 활발하고 적극적인 성격을 잘 드러낸다. 지하철로 이동하는 다른 장면에서는 높은 지하철 계단에서 장애인용 승강기로 내려가는 과정을 길게 보여준다. 자매는 능숙하게 승강기를 이용하지만 자매와 함께 탄 승강기 위의 카메라 시점은 그 승강기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고스란히 전달한다.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는 동안 영화 < 접속 >(1997)의 OST로 유명한 <러버스 콘체르토>의 단조로운 경음악이 경고음으로 계속 울려 퍼지자 행인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지하철 계단의 장애인용 승강기의 아슬아슬함, 무심하고 단조로운 <러버스 콘체르토> 경음악, 행인들의 무례한 시선은 이동을 환기하는 정동이자 ‘웨딩드레스 제작’의 조건이다. 그리고 자매는 반복되어 무뎌진 그 일상을 무심하게 받아들인다. 이 영화가 강조하는 또 다른 가시화는 장애의 서로 다른 유형과 정도 그리고 그에 따른 사회적 위계이다. 모든 연애관계에는 다층적이고 미묘한 권력이 작동한다. 수정과 성주의 관계에서 가장 지배적인 권력은 장애의 정도가 된다. 성주는 겉보기에는 장애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경증 장애인이다. 신체적으로 장애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의 권력이 된다. 늦여름 한낮의 공원에서 성주는 내내 담배를 피우고 주저하며 어렵사리 말을 꺼낸다. “어머니가 자신이 장남에 외동이어서 손자를 보길 원한다, 자신과 비슷한 장애가 있는 여자를 만나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 나이가 있는 수정의 결혼까지 걱정해주는 조심스러운 그의 말들은 날카롭게 상처를 낸다. 듣는 내내 말이 없는 수정은 찡그린 얼굴에 어색하고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애꿎은 손톱을 튕긴다. 성주의 “여름이 다갔나”라는 말과 함께 그렇게 그들의 연애도 끝을 맺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이별 시퀀스의 제목은 여전히 현재형인 ‘웨딩드레스 제작 중 3’이다. 이번 연애는 실패했지만 자매의 연애와 결혼에 대한 꿈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일까? 인공적으로 연출된 에필로그 시퀀스는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바다 한가운데 쪽배를 탄 수정과 윤정을 보여준다. 둘은 영화 내내 염원하던 하얀 면사포와 웨딩드레스를 입고 빨간 입술의 화장을 하고 있다. 갈매기 울음소리가 화면을 가득 채운 가운데 수정이 부르는 <나는 19살이에요>가 울려 퍼진다. 소프트 포커스 효과로 꿈처럼 연출된 환상성과 대비되게 둘의 표정은 지나치게 덤덤하다. 이 허구적 스펙터클은 극적 사건이나 분명한 감정의 표출과 거리가 멀다. 공들여 만든 이 장면은 결혼의 은유로 사용되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싶다’는 문자그대로의 소원성취인가, 동네 미장원 원장의 말처럼 자매가 서로 의지하고 살아가면 된다고 말하는 것인가, 모두 헛된 꿈이었다는 냉소적 자각인가. 그것도 아니면 수정이나 윤정 같은 저신장 장애 여성이 연애와 결혼을 하기 위한 환경과 조건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실재의 대면인가. 이 장면은 그 모든 욕망과 감정이 중첩된 이미지이다. 이 장면은 그들의 과거의 상실과 실패, 현재의 바람과 희망, 욕망을 탐색하고 실현되기 위한 미래의 조건을 질문한다. 이 허구의 연출된 장면은 그래서 실재적 환상이다. 이 시퀀스의 환상성과 쓸쓸한 정취, 원하던 웨딩드레스를 입었지만 웃지도 슬퍼하지도 않는 무심한 표정은 목적이 뚜렷한 실패나 성공의 서사를 지지하지 않는다. ‘웨딩드레스’는 그래서 단순히 ‘성공으로서의 결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여성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 그 선택의 자유, 그 길의 이동성을 뜻한다. 그래서 여전히 ‘제작 중’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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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봄 “요즘 특별한 일 있어요?” “요즘요? 바빠요. 부산, 광주, 대전… 강연하러 다니느라 정신없어요.” “강연요?” “북한 바로 알리기 강연요.” 그녀는 북에서 왔다. 평양엔 지금도 딸과 남편, 부모님이 살고 있다. 여러 시민단체를 대상으로 하는 그녀의 강연을 몇 번 촬영했던 터라 그녀가 강연을 하러 간다는 말에 그다지 큰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부산, 울산, 서울에서 강연이 있어요. 그리고… 참, 다음 주 월요일 저녁에는 합창 연습해요. 615 합창단…” “합창연습요?” “5월에 615 합창단이 일본에서 재일동포 대상으로 공연을 해요. 매년 했다고 하는데 이번엔 저도 가려고요.” “여권 없이 어떻게 가요?” 그녀에게는 여권이 없다. 많은 다른 탈북자들처럼 그녀는 중국, 동남아시아를 거쳐 대한민국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순간 그녀는 그녀를 다시 평양으로 돌려 보내줄 것을 당국에 요청했다. “저는 중국에서 브로커에게 속았어요. 남한에 가서 두세 달 일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고, 그러고 나서 평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땐 이미 늦었어요. 가족과 헤어지는 건 상상도 못 했어요.” 그 후로도 그녀는 지속적으로 송환을 요청했고, 신원 특이자로 분류되어 여권을 발급받지 못했다. 8년째다. “아는 분 통해서 알아보니까 여권이 4월에 나온다고 해요.” 여권이 나온다고? 카메라를 챙겨 그녀가 합창연습을 한다는 서대문의 연습실을 찾았다. 2015년 여름, 그리고 가을 2015년 여름 경상북도 영천의 플라스틱 재생공장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그녀는 지게차를 운전할 정도로 능숙하게 일을 하고 있었다. 한 일간지 신문 1면에 실린 ‘나의 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기사를 보고 나서였다. 그녀의 이야기는 놀라웠고, 북으로 다시 돌려보내달라고, 얼굴을 그대로 드러낸 채 인터뷰를 했던 건 신선한 충격이었다. 온갖 고초를 겪으며 고향에 돌아가기를 원했던 그녀는 여권위조, 밀항과 자살 시도까지 했지만 모두 실패했고, 마지막 희망을 부여잡는다는 생각으로 공개적으로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그녀의 이야기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후 통일 운동, 인권 운동을 해왔던 시민단체가 그녀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산 적십자사 앞에서, 종로 유엔 인권사무소 앞에서, 광화문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인 시위를 했다. 한편 그녀는 북쪽의 삶을 궁금해하는 남쪽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기 시작했다. 2015년 가을, 겨울, 그녀에겐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는 듯했다. “혼자였어요.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안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자살까지 하려고 했고… 이제는 희망이 생겼어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녀의 이야기는 점점 더 많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CNN과 BBC도 그녀를 취재했다. 그녀의 ‘조국’도 그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송환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희망은 점점 더 커져만 가는 듯싶었다. 2016년 봄 2016년 3월 어느 날, 그녀는 가방을 가만히 쌌다. 그날 저녁, 고향인 북쪽으로 돌아가기를 수십 년 동안 갈망해왔던, 서울에서 함께 지내던 장기수 어르신들께 평양식 국수를 대접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조그만 배낭 하나를 들고 집을 나섰다. 그녀가 간 곳은 주한베트남대사관. 그녀는 망명을 신청했다. “베트남이 사회주의 국가잖아요. 같은 사회주의 국가이니 저의 망명을 받아주지 않을까요?” 그녀가 내게 말했다. 대사관의 담당자는 그녀에게 몇 가지 사실 확인을 한 후 놀랍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드디어 고향에 있는 딸을 볼 수 있겠구나. 난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건강하세요. 평양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는 난 그 자리를 나왔다. 그녀의 망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베트남 대사관 앞에는 취재진과 경찰이 진을 치고 있었다. 나는 그 풍경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닫혀 있는 육중한 대사관 문 너머로 날카로운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점점 가까워졌다. “망명을 신청한 사람한테 집에 가서 기다리라니… 그리고 어떻게 대사관에 경찰을 부를 수가 있어?” 그녀는 울부짖었다. 대문으로 나오는 그녀를 취재진이 감싼 채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잠시 후 경찰 관계자가 다가오더니 “주거침입 등으로 신고를 받았다. 차후에 소환장을 보낼 테니 소환에 응해 달라.”는 말을 건네고는 사라졌다. 그렇게 그녀의 망명은 실패했다. 2016년 여름, 그리고 가을 베트남대사관 망명 실패 후 경찰은 그녀를 따라다녔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사고’ 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목적이라고 경찰은 그녀에게 말했다. 힘든 하루하루였다. 희망이 사라진 듯했다. 마음을 추스를 수 있을까 싶어서 그녀는 고향 사람들을 오랜만에 만났다. 그들은 중국에서 브로커 감시하에 함께 공동생활을 하다가 대한민국으로 건너왔기에 그녀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녀는 말했다. “난 죽어서라도 고향으로 갈 거야.” 가족과 같이 살지 못할 바에는 죽는 게 낫고, 죽으면 몸이라도 고향에 돌려 보내줄 거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죽어서라도? 죽는다고 해도 그 몸이 북쪽으로 갈 수가 없어. 그렇게 될 수가 없어, 지금은….”라거나 “순진하네. 아직 고생 덜했어….”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며칠 뒤 그녀가 잔뜩 겁먹은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걸었다. “아침에 갑자기 들이닥쳤어요, 수십 명의 경찰이….” 경찰은 베트남대사관 주거침입 등으로 그녀에게 소환장을 보냈고, 압수수색영장을 들고 그녀를 찾아갔던 것이었다. 내가 4시간을 운전해서 그녀가 있는 곳을 찾아갔을 때도 그녀는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 해 여름과 가을은 그녀에게 가혹했다. 2016년 겨울, 2017년 봄 그리고 2018년 2016년 겨울과 이듬해 봄은 온 나라가 촛불 정국이었다. 이 땅의 부패한 정권이 무너지는 역사를 그녀도 목격했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고, 그 정권은 북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이라 그녀는 다시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 역시 ‘곧 돌아가겠네요.’라며 인사를 하곤 했다. 하지만 북미 관계는 극단을 치달을 기세였고, ‘올해는 갈 거 같네요.’ 라던 그녀는 또 다른 한 해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했다. 해가 바뀌자 거짓말처럼 정세가 바뀌었다. 남북관계는 급격히 좋아지기 시작했다. 북측 선수단이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했고, 북측과 남측의 공연단이 평양과 서울에서 공연을 했으며, 이제 곧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 남북 당국은 그녀의 송환문제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이제는요… 희망이 아니라, 돌아가는 게 기정사실같이 생각돼요. 가면 생각 많이 날 것 같아요. 저를 도와준 사람들과 헤어진다는 게 제일 아플 것 같아요. 감독님과도 헤어져야 할 테고...” 그녀가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 날이 다가오고 있는 듯싶었다. <그림자꽃>, 그녀의 봄을 기다리다 처음 이 다큐멘터리를 시작했을 때 제목은 ‘달의 바다’였다. 지구에서 우리가 바라보는 달은 한 면뿐이고, 그 반대편 달 표면은 지구에서는 절대 볼 수 없다는 사실, 그 반대편 달 표면을 일컫는 용어가 ‘달의 바다(Lunar Maria)’다. 사람이든, 사회든, 자연이든, 그 이면을 들여다보고 드러내는 것은 언제나 풀어야 할 숙제와 같은 것이다. 그녀를 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탈북자, 북한, 나아가 대한민국 사회의 이면이 보이지 않을까? 남북 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정치적, 이념적인 것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한 개인의 소망조차 그 틀 안에서 판단되는 현실 속에서 나는 <그림자꽃>을 통해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탈북자 문제에 관한 이야기는 한 가지밖에 없을까? 그녀가 정말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일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까? 남북은 서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는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일까?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본의 아니게 대한민국 정부의 여러 기관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게 됐다. 가족에게 돌려보내달라는 것, 그 마음을 잘 담고 싶은 것뿐인데, 그게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가 보다. “그들이 무슨 죄가 있겠어요, 분단이 죄지….” “돌아가면 관광 가이드 하고 싶어요. 제가 남쪽 사람들을 누구보다 잘 알잖아요. 남쪽에서 온 사람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평양을 안내하는 일, 멋지지 않아요?” 그녀도 돌아가고, 다큐멘터리도 잘 완성되고… 이 다큐멘터리를 가지고 평양국제영화제에 참가한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지나친 욕심일까?
한국영화가 1970년대의 암흑기를 지나 1980년대 후반에 이른 시기에 등장한 일련의 감독들을 가리켜 ‘코리안 뉴 웨이브’라고 부른다. 그 선두 주자는 박광수 와 장선우 이며, 1988년에 각각 < 칠수와 만수 >, < 성공시대 >로 데뷔했다. 당시 한국 사회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통해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했으나, 국민 대다수의 기대와는 달리 대통령 선거는 노태우의 당선으로 끝났다. 민주항쟁의 성공과 좌절 시기를 거치면서 등장한 ‘뉴 웨이브’는 이전 시대의 감독들과 달리 데뷔작부터 한국 현대사와 권위주의 정권 시대의 문제를 주요 소재로 다루었다. < 칠수와 만수 >에서, 두 주인공이 겪는 고통의 뿌리에는 ‘분단 문제’가 있다. 한국전쟁과 분단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 전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박광수 는 < 베를린 리포트 >(1992), < 그 섬에 가고 싶다 >(1993)에서도 한국전쟁과 분단의 문제를 다루었다. < 칠수와 만수 >에서, 칠수의 아버지는 동두천에서 미군을 상대로 포주생활을 하다 무능력한 알코올 중독자로 전락했다. 그의 누나는 미군을 따라 미국으로 갔다. 성조기 무늬의 나시를 걸친 칠수의 꿈은 누나의 초청을 받아 미국에 가는 것이지만, 누나와는 연락조차 끊어진 상태다. 만수의 아버지는 비전향 장기수로서 거의 삼십 년 가까이 옥살이를 하고 있다. 그 아버지는 가족의 바람과는 달리 사흘 동안의 특별가석방조차 거부한다. 만수는 해외에 나가 돈을 벌려고 했으나, 연좌제에 걸려 좌절한다. 동두천, 미군 부대, 양공주, 비전향 장기수 등은 한국전쟁과 분단이 낳은 후유증이다. 영화 첫 장면에서 민방위 훈련의 사이렌과 함께 피난 가듯 뛰어가는 사람들과 얼어붙은 광화문 네거리의 풍경은 분단국가의 초상이다. 술 마시는 아버지 앞에 앉는 칠수, 아버지가 갇힌 감옥의 높은 담장을 쳐다보는 만수, 결국 한국전쟁 세대인 그들의 아버지는 우파든 좌파든 관계없이 실패했다. 그리고 그 아들들은 아버지를 저주하면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칠장이로 근근이 살아간다. 칠수는 여대생 지나와 데이트하는데 성공하지만, 계급의 차이만 깨닫게 될 뿐이다. 만수는 갖가지 사투리를 구사하며 일거리를 얻으려고 애를 쓴다. 그들이 처한 남루한 현실은 비 오는 날 이인용 자전거를 타고 가다 미끄러지는 장면에서 생생하게 드러난다. 강고한 현실의 벽 앞에서, 칠수는 입만 열면 거짓말하는 허언증 환자가 되어가고, 만수는 세상의 변화를 비웃는 냉소주의자의 면모를 보인다. 공장에서 노조활동을 하는 여동생이 ‘아버지가 정당한 재판을 받도록 해보자’고 할 때, 그는 ‘다 쓸데없다. 네가 그런다고 되는 줄 아냐’고 냉소한다. 그의 비관적인 태도에는 1987년 대통령 선거의 패배로 인한 진보진영의 좌절과 무력감이 반영되어 있는 것 같다. 칠수와 만수의 열악한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난 다음, 그들은 강남 한복판, 고속터미널 근처 빌딩에 설치된 광고판의 도색작업을 하게 된다. 작업을 마친 그들은 빌딩 옥상에 거의 재미 삼아 올라간다. 그들은 서로의 처지를 솔직하게 이야기하다 문득 아래를 향해 소리치며 그동안 쌓였던 울분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가 밑에서는 들리지 않는 가운데, 군중들이 몰려들고 경찰이 출동한다. 밑바닥 계급의 두 사람이 높은 옥상에 올라갔을 때, 비로소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내뱉게 된다. 그러나 메시지는 전해지지 않고, 노사문제로 인한 농성이나 자살로 오해를 사면서, 그들은 분노와 함께 심한 고립감을 느낀다. ‘칠수와 만수가 내려오면 해결되는 문제 아닌가?’라고 질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수는 지상에서 기동타격대가 올라오고 공중에서 헬리콥터가 맴돌 때, 문득 자신이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오랜 동안 피해의식에 시달리던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을 기다린다고 생각한다. 결국 만수는 자살을 선택하고, 칠수는 체포된다. 만수가 냉소적인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는 장면으로 시작한 영화는 칠수가 절망적인 눈빛으로 경찰차 밖을 쳐다보는 정지화면으로 끝난다. 이 장면을 비롯해서 이 영화에는 인물들이 갇혀있는 듯한 미장센이 여러 번 반복된다. 그러나 만수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분단이 지속되는 한 그들을 속박하는 한국사회의 현실은 여전히 변하지 않을 것 같다. < 칠수와 만수 >는 검열이 심했던 당시의 시대 상황을 감안하면 더욱 의미 있는 데뷔작이다. 이 영화를 더욱 인상 깊은 데뷔작으로 만든 공로에는 박중훈 의 연기, 유영길 의 촬영, 김수철 의 음악을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