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자랑
- 감독
- 김정선
- 제작년도
- 2023
- 출연
- 김건우, 이가은, 백승현, 임예은, 이세인, 이환진, 민경은, 임동윤, 박서윤, 정우빈, 곽문주 이소빈, 이수아 이수민, 노연우 문준영, 조인서 강서후, 최지수 전하윤, 신혜람, 이윤슬 이수인, 이수아 이재혁, 김도윤 황예성, 한상민, 유승열
1980년대 초중반 한국영화계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있었다. 국가의 학살을 시민의 항쟁으로 맞섰지만 그 결과는 한국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순간을 만들어냈다. 공수부대원들이 자행한 학살의 이미지는 ‘한국전쟁’의 참혹한 현장과 겹쳐지는, 아니 이를 훨씬 능가하는 잔인함으로 기억되었다. 박정희의 18년 체제가 무너진 그 자리, 다시 쿠데타로 들어선 신군부가 바로 그 배후였다. 곧이어 그들은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을 날조해 국민을 우롱했다. 한국의 극우 독재체제는 이렇게 연장되었다. 한국사회의 1980년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좌절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80년대 전반 영화계는 1970년대의 사정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유신 정권이 구축한 통제 정책이 승계되었고, 한국영화는 외화 수입쿼터의 대체물로 취급받았다. 당국은 한국영화 제작편수를 100편 내외로 설정하고, 등록된 20개의 제작사가 각 4편 이상을 의무적으로 채우도록 했다(1981년도 영화시책 기준). 그리고 2편 이상의 ‘우수영화’를 제작할 때마다 또는 대종상에서 최우수·우수작품상을 수상하면 외화 수입쿼터 1편을 부여했다. 1980년부터 1984년까지 한국영화 제작편수는 91, 87, 97, 91, 81편으로 100편을 넘기지 못했다. 1980년대는 단관 개봉으로 상징되는 전통적인 영화문화가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한 시점이다. 1980년 12월부터 방영된 컬러 방송으로 컬러TV가 빠르게 보급되었고, 비디오 매체의 인기가 극장 흥행을 잠식해갔다. 1984년 VTR 보급 대수가 50만 대를 넘었다는 기록에서 볼 수 있듯 1980년대는 ‘안방극장’이 제대로 힘을 받기 시작한 때다. 할리우드 영화산업이 그랬듯, 한국의 극장가 역시 대형영화와 저예산영화로 생존책을 모색했다. 전자는 70mm 외화의 리바이벌 상영, 후자는 괴기·무협·코미디 장르였다.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우울했던 시기, 임권택은 가장 잘나가는 감독 중 한 명이었다. 1970년대의 그는, 제작자에게는 우수영화를 안겨주는, 영화진흥공사에는 국책영화를 척척 만들어주는 감독이었다. 여러 영화학자에 의해 한국 ‘분단영화’의 기원으로 평가 받는 < 짝코 > 역시 기획의 외관상으로는 당국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반공영화였다. 이는 1980년 관제 영화제인 19회 대종상에서 우수반공영화상을 받았고, 1981년 20회 대종상에서 반공영화부문 특별상을 재차 받은 것으로 증명된다. 제20회 대종상영화제부터 우수반공영화상을 특별부문으로 변경해, 최우수반공영화상에도 외화 수입쿼터 1편을 부여하기로 했는데, < 짝코 >는 1981년에야 상영되는 바람에 그 첫 수상작이 되었다. 한국영화의 개봉 여부는 관심도 없던 시기였다. 정치사회적 혼란과 한국영화의 불황이 극에 달한 이때, 임권택 감독과 송길한 작가는 왜 <짝코>를 만들려고 했을까. 실제 영화는 어떤 계기로 기획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을까. 직업 감독에서 작가주의 감독으로 1934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난 임권택 은 어린 시절 부친과 삼촌의 좌익 활동으로 그 역시 고초를 겪었다. 중학교 1학년 때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중3 때 집을 떠나 부산에서 군화 장사를 했다고 한다. 1956년 정창화 감독의 도제로 영화계에 입문, 20대 후반인 1962년 < 두만강아 잘 있거라 >로 감독 데뷔해 주로 사극과 액션, 전쟁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 많을 때는 한 해 7~8편을 만드는 직업 감독으로 다작의 시기를 거쳤다. 그가 장르영화의 대가로 완성된 시기일 것이다. 영화 인생의 전환점이 된 작품은 52번째 연출작 < 잡초 >(1973)다. 이 작품을 계기로 작가적 자의식을 영화에 투영하기 시작했다. 정성일 평론가와 인터뷰하면서 그가 한 말을 옮기면 “< 잡초 >가 내 삶에 애정을 갖기 시작한 영화라면, < 왕십리 >(1976)는 내 살고 있는 땅을 사랑하기 시작한 영화”다. 1970년대 중반 한국영화계는 이장호 , 하길종 등 ‘영상시대’ 감독들이 새로운 한국영화를 내놓기 시작했다. 이 시기 “이제부터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구석에 몰린 느낌”을 받았다던 임권택의 회고에서, 어떤 영화를 만들 것이냐라는 뼈아픈 고민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후 그는 < 족보 >(1978), < 짝코 >, < 만다라 >(1981), < 안개마을 >(1982), < 길소뜸 >(1985) 등 작가주의 감독 임권택으로 평가되는 일련의 작품을 내놓기 시작한다. 그의 삶이 반영된 한국적인 주제를 놓고 치열하게 ‘한국’영화를 찾아가던 시기인 것이다. < 서편제 >(1993)의 한국영화 사상 최초의 100만 흥행 성공, < 취화선 >(2002)의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 등으로 세계적인 감독 반열에 올랐다. 2015년 102번째 작품 < 화장 >을 연출했다. ‘반공영화’가 아닌 ‘분단영화’ 작가 송길한 과 임권택 이 < 짝코 >의 영화화를 위해 의기투합하게 된 이유는 바로 시대적 배경과 자기 성찰에 있었다. 그들이 이 영화의 기획에 착수한 때는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좌절로 끝나고 신군부가 권력을 찬탈한 시점이다. ‘서울의 봄’의 대학생 시위대들이 그리고 광주의 시민들이 ‘빨갱이’로 둔갑되었다. 임권택에게 1980년은 “혼란기에 빠져든다고 해서 놀라기에는 너무 많은 혼란의 시대를 살아온” 자신을 반추할 수 있었던 때다. 그는 송길한 작가와 기존의 국책 반공영화를 벗어나고자 마음먹고, 좌익 빨치산의 이야기를 통해 좌우 이데올로기의 비극을 정면으로 다루고자 했다. 둘은 한 달 동안 여관방에 틀어박혀, 종군작가 김중희 의 단편소설을 거의 새로운 이야기로 확장시킨다. 영화는 전투경찰 송기열( 최윤석 )과 빨치산 부대 대장 짝코( 김희라 )의 30년에 걸친 비극을 세련된 플래시백으로 오가며, 열강의 대리전이었던 한국전쟁이 어떻게 개인들을 파멸시키는지 보여준다. 송기열은 평생을 바쳐 짝코를 추적하지만 결국 둘은 오갈 데 없는 부랑아들이 모이는 갱생원에서 만나게 된다. 이미 노인이 된 둘의 비극은 갱생원에서도 계속된다. 송기열은 무장공비 이력의 죗값을 받게 하기 위해 짝코를 데리고 나가려 하고, 짝코는 수은을 먹여 송기열을 죽이려 한다. 영화 마지막, 결국 송기열은 그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짝코와 함께 갱생원을 탈출한다. 하지만 이미 사회는 경찰들조차 무장공비가 무슨 말인지 모르는 시대가 되었다. 임권택은 영화를 통해 송 경사와 짝코가 국가의 꼭두각시였고, 더 나아가 한국전쟁 시기 남한과 북한은 열강들의 장기알에 불과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 시나리오와 영화 본편을 대상으로 한 두 번의 검열을 통해 그의 직접적인 발언은 삭제되었다. 바로 다음의 두 장면이다. 6·25 특집 TV 프로그램에서 패널로 출연한 한 미국인 교수가 한국전쟁이 열강들의 국지전 시험장에 불과했다고 말하는 장면, 그리고 갱생원을 도망 나온 송기열과 짝코를 만난 경찰이 망실공비가 뭐냐고 물어보는 장면으로,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영화에는 검열의 흔적만 남아있다. 전자의 경우 TV에서 6·25 프로그램이 잠깐 나온 후 이를 본 짝코가 송기열에게 “저 사람들 말이 진짜라면 말이시… 나나 거그나 불쌍한 사람들이여”라고 말하는 장면만 남았고, 후자는 “망실공비?”라는 대사는 지워진 채 경찰의 입 모양만 남았다. 이는 “망실공비도 몰라”라며 송기열이 애처롭게 반응하는 대사에서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임권택은 흔적만 남기는 방식으로 검열에 순응했다. 하지만 영화의 본질적 메시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훗날 인터뷰에서 그는 이 대목의 아쉬움을 표했지만, 도리어 지금의 우리는 장르영화 그리고 국책영화로 단련된 그의 내공을 짐작하게 만든다. 앞서 언급한바, 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두 해 연속 반공영화상을 휩쓸며 국책 반공영화로서 인정받았다. 개인의 비극을 쫓아가는 정교한 플래시백 영화는 송기열과 짝코의 장장 30년에 걸친 비극적 관계를 보여주기 위해 정교하게 구축된 플래시백을 활용한다. 어쩌면 < 짝코 >는 태생적으로 서구의 영화 문법인 플래시백이 한국영화만의 그것으로 훌륭하게 수용된 첫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김기영 의 < 이어도 >(1977)에서의 플래시백이, < 시민 케인 > (1941)와 < 라쇼몽 >(1950)의 그것에서 출발해 그만의 스타일로 뒤틀어진 것이라면, <짝코>의 플래시백은 고전적 의미에서 관객을 배려하면서도 임권택 이 하려는 이야기, 그리고 메시지와 훌륭하게 조응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크게 8번 정도 플래시백을 사용한다. 송길한과 임권택이 공들여 배치한 플래시백은, 송기열의 입장에서, 짝코의 입장에서, 때로는 송기열이 짝코를 초대해 함께 진입하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은 각자의 경험에서 이야기가 반복되며, 플래시백의 대미를 장식한다. 좌우익의 비극적 대립을 상징하는 두 인물의 이야기가 하나로 만나는 순간, 우리는 분단국가라는 현재를 상기해야만 할 것이다. 8번의 플래시백은 꼼꼼히 살펴볼 가치가 충분하다. 송기열은 갱생원에서 짝코를 발견했지만 그를 데리고 탈출할 형편이 아니다. 합숙소에서 연속극을 보던 송기열은 첫 번째 플래시백으로 들어간다. 전투경찰로 활약해 마을에서 인정받고 가정도 행복하던 시기다. 그날 밤 송기열은 짝코의 침상으로 가 두 번째 플래시백으로 이끈다. 송 경사가 짝코를 생포하지만 그를 놓치고 마는, 둘의 공통된 기억이다. 세 번째는 송기열을 죽이기 위해 거울 뒷면에서 수은을 긁어내는 짝코의 것이다. 지리산에서 수은 가루를 먹고 자살하려는 점순( 방희 )을 말린 뒤 송 경사에게 체포되기까지의 이야기다. 네 번째 플래시백은 다시 송기열의 것이다. 짝코의 고향집에서 그를 놓치고 불법 총기 소지로 경찰서에 잡혀갔다가, 지서장이 된 복만을 때리고 감옥까지 다녀온다. 불운은 연달아 닥친다고, 고향에 돌아오니 아들마저 죽었다. 다섯 번째 플래시백은 송기열이 짝코에게 자신을 파면한 상사에게 같이 가자고 말하는 장면에서 들어간다. 네 번째 회상의 앞 이야기로, 아내까지 자살하게 된 송기열의 비극에 짝코를 동참시킨 것이다. 합숙소의 장기자랑 장면, 짝코의 시점에서 여섯 번째 플래시백이 시작된다. 속초에서 그와 화숙( 김정란 )의 도화경이 마치 판소리 소리꾼의 ‘아니리’처럼 펼쳐진다. 이를 듣던 송기열의 시점에서 그가 화숙을 찾아간 뒷이야기가 일곱 번째 회상으로 펼쳐진다. 계속되는 장기자랑, 송기열은 다리가 부러지게 된 사연을 들려준다. 마지막 여덟 번째 플래시백이다. 그는 짝코가 탄 기차를 쫓다가 택시가 전복되어 다리마저 불구가 되었다. 이후 부랑아가 된 송기열은 여인숙에 들어갔다가, 옆방에서 쥐약을 먹고 자살하려는 짝코와 점순을 발견한다. 갱생원의 변소간에서 짝코가 송기열에게 그날 밤 점순의 안부를 물으며, 다시 짝코의 시점에서 여덟 번째 플래시백이 시작된다. 점순을 사창가에서 만나 둘이 자살하기까지의 이야기다. 이처럼 30년을 쫓고 도망친 둘의 이야기가 합쳐지며 영화는 마지막을 향한다. 짝코를 생포한 송 경사 “한국 사람이 아니고는 만들 수 없는 영화”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 1」에서 정성일 의 평가처럼, < 짝코 >는 1980년대 이후 임권택 영화의 원형임에 분명하다. 그가 장르영화를 통해 축적한 스타일이 만들려는 주제, 하고 싶은 이야기에 걸맞게 활용되기 시작했다. 예컨대 그간 갈고닦은 전쟁 신의 연출은 잠깐 등장해도 존재감과 만만치 않은 의미를 발산한다. 짝코와 임신한 점순이 토벌대의 총탄을 피해 도망가는 장면이 그렇다. 화면에 슬로모션이 걸리면서 등장하는 김영동 의 국악은 그 조합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개인의 비극을 더 넓은 차원으로 환기시키는 데 일조한다. 임권택이 “국악을 체계적으로 끌어안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영화부터다. 영화의 가장 마지막, 송기열과 짝코는 고향에 가기 위해 기차에 올라탄다. 과연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짝코는 숨을 거두고 송기열은 희미하게 웃는다. 사실 이 장면은 결국 그들이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육신이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것을 보여준다. 송기열은 아주 짧은 회상으로 아내와 아들과의 단란했던 시절을 떠올릴 뿐이다. 송길한의 오리지널 시나리오에는 이 장면이 호남선이 아닌 원주행 기차를 타고 아예 반대로 가는 것으로, 심의 대본에는 부산행 기차를 잘못 타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영화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다는 듯 시나리오의 정보를 배제한다. 점순과 짝코가 도망가는 장면에서 김영동의 국악이 흐른다. 1980년대 전반의 대표 장르 국풍 ’81을 위시로 전두환 군사정권은 섹스·스크린·스포츠로 국민을 우민화하는 ‘3S 정책’을 펼쳤다. 당연히 에로티시즘에 대해서는 검열이 느슨해졌고 기다렸다는 듯 1980년대를 장식하는 에로티시즘영화가 쏟아져 나왔다. 1981년부터 등장한 소극장 그리고 대여용 비디오의 붐이 에로영화의 기반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1982년 넉 달 동안의 장기상영으로 31만 관객을 동원한 < 애마부인 >은 1980년대 에로영화의 어떤 상징이 되었다. 성적 스펙터클의 수위는 점차 높아졌고, 에로 장르는 현대 도시를 배경으로 한 것뿐만 아니라 ‘토속에로’라는 별칭을 얻으며 시대극과도 결합했다. 에로영화 일변도의 피로감 때문이었을까. 그 반대편에는 다양한 결의 멜로드라마가 관객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할리우드 화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한국영화 특유의 ‘신파적’ 멜로드라마를 극복한, 어떤 의미에서는 멜로드라마라는 틀을 빌려 사회에 대해 발언하는 영화들이 그것이다. 이때 < 바람 불어 좋은 날 >( 이장호 , 1980)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배창호 가, 당대 관을 사로잡는 세련된 화법의 멜로드라마로 충무로의 성공 신화를 쓰기 시작했다.
이래도 괜찮은 것일까, 라는 염려가 먼저 들 때가 있다. 치코, 하포, 그루초 마르크스 삼형제의 난동극에 가까운 < 오페라의 밤 >을 처음 보았을 때는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 부글부글 거리더니 점점 넘쳐나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급기야 걷잡을 수 없게 넘쳐날 때 그걸 가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마치 햄릿 같은 말투로 기꺼이 찬사를 바쳤다. B급인가, 아방가르드인가, 여기서 영화의 장치들이 고스란히 창자를 내보인다. 하지만 이걸 보고 심미주의를 느끼는 자들만이 천국에 들어설 것이다. 아아, 천국이라니. 착란과도 같은 반란. 유희와도 같은 실험. 하지만 나는 이런 영화들을 너무 빨리 보기 시작했다. 이런 과잉의 영화들의 계보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정말 미친 듯이 찾아보기 시작했다. 만찬의 영화. 그런데 그 만찬은 (롤링 스톤즈의 앨범 제목을 빌려 부르자면) ‘거지들의 만찬’(Beggar’s Banquet)이다. 나는 이 행복한 표현을 긍정의 의미로 사용하는 중이다. 영화의 운동에 부여한 난처하리만큼 불편한 포만감. 갑자기 화면은 일시적으로 두뇌의 활동을 정지하고 육신과 감각, 팔과 반경거리, 사방을 둘러보는 눈, 허우적거리는 동선, 길을 잃어버린 것만 같은 발과 제한적인 공간, 그 안에서 영화의 모든 기호가 결국 주어진 세계-내-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게 만들고야 만다. 그런 다음 카오스가 기다리고 있다. 마치 도미노처럼 무너지기 시작할 때 그들이 쓰러트리는 것은 반대로 점점 더 속도를 더해간다. 여기서는 오로지 영화가 허용한 모든 것을 현실에서야 어찌되었건 잠시뿐 일지라도 법칙을 무시하고서라도 허용한다. 영화만의 선언. 말 그대로 이 안으로 들어오면 위반을 긍정한다. 영화는 세계와 너무 가까이 있어서 그 바깥으로 나가버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해진다. 종종 이 결정이 영화를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해버리는 영화들이 있다. 그래서 세계를 비현실로 만들어버릴 때 갑자기 세계 자체가 영화라는 이미지가 되어버린다. 여기서는 몸으로 버텨야 한다. 물론 모든 희극영화들은 폭력 안에서의 웃음이다. 버스터 키튼의 필사적인 질주. 찰리 채플린의 곡예와도 같은 방어술. 웃음이 아니라면 이들의 악전고투를 차마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두 개의 전통으로부터 톱니바퀴처럼 갈려 나온 서로 다른 운동의 수없는 변주들. 하지만 토키영화가 시작하자 영화 안에서의 기계적인 활동들은 일시적으로 멈추는 것만 같았다. 대신 말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영화 안의 기호들로 이루어진 서로 다른 차원의 이미지의 행성들은 안정을 얻는 것처럼 서서히 자기 자리를 잡으려 들었다. 하지만 그 중에는 거슬러 올라가는 영화들이 나타났다. 닥치는 대로 열거하자면 그 중에는 프랭크 타쉬린(과 제리 루이스), 스즈키 세이준, 러스 메이어, 로저 코먼, 존 워터스, 그리고 (....)이 포함되어 있다. 이 영화들은 희극의 장르 안에서도 좀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신세 좀 지자구요 >는 거의 아슬아슬하게 그 전통의 자락에 기대어 선 영화이다. 나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 갑자기 임권택 이 이 계보에 합류하게 되었는지 잘 설명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 이전에 그런 영화를 만든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기에 오랫동안 머문 것도 아니다. 그는 잠깐 동안, 정말 잠깐 동안 머문 다음 재빨리 빠져나갔다. 1969년을 임권택은 그 자신이 막다른 골목에 몰린 시기라고 설명하곤 했다. 하지만 반대로 나는 이 시기에서 갑자기 임권택의 영화들이 자유로워졌다는 인상을 받곤 한다. < 몽녀 >의 몽환적인 산책. < 황야의 독수리 >의 무국적 풍경. < 속눈썹이 긴 여자 >의 조명이 넘쳐나는 실내. <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 >에서 보여준 상실의 멜랑꼴리. 그리고 < 둘째 어머니 >의 황당무계할 정도로 긴 마지막 시퀀스. <신세 좀 지자구요>는 이 사이에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사라진 칸막이들. 고정적인 문법을 따른 안정된 선을 버리고 갑자기 생겨난 쇼트의 난반사들. 무언가 길을 잃어버린 것만 같은 이상야릇한 새로운 습관들. 나는 여기서 임권택의 이전 장면들에선 본 적이 없는 영화적 습관을 발견하곤 한다. 나는 지금 그걸 이 시기의 영화를 건드릴 때마다 일일이 열거하는 중이다. 물론 그때 임권택은 주어진 상속의 전통 바깥으로 나가면서 갑자기 자신이 전락했다는 느낌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시장에서 점점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의 끝에 가 불현듯 나타났다는 것을 셈에 포함시켜야 한다. 구先生 미셸 시몽, 시인 천상병 처음 < 신세 좀 지자구요 >를 보았을 때는 종잡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주인공 구先生은 임권택 의 영화중에서 가장 이상한 인물이다. 어쩌면 한국영화 속에서 다시 만나기 힘든 주인공이다. 구태여 다시 한 번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나는 이런 인물을 미셀 시몽의 천의무봉에서나 찾을 수 있다. 장 르누아르의 < 물에서 건진 부뒤 씨 >와 장 비고의 < 라탈랑트 >에서 거의 같은 역할을 해낸 이 이상한 인물. 선과 악의 경계 바깥에서 종잡을 수 없게 살아가는 사람. 장 조레스가 암살당하고 인민해방 전선이 실패로 돌아간 다음 나타난 무정부주의적인 삶을 구가했던 이상한 보헤미안들. 구태여 여기에 더해야 한다면 (자끄 타티가 만들어낸) 윌로 씨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둘은 정치적으로는 의미가 다르다) 이런 주인공을 떠올린 이유가 있다. 난처한 주인공, 번번이 추적의 선을 끊어버리는 것만 같은 행각. 그런데도 아무렇지 않게 마치 자기 법칙이 있다는 듯 이리저리 옮겨간다. 나는 자료를 뒤져야했다, 그리고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레카. 이제는 알겠다. <신세 좀 지자구요>의 주인공 구先生의 모델은 시인 천상병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성립된다. 아마도 시인 중의 시인, 그 스스로 시인의 삶을 살아간 마치 봉황의 깃털과도 같았던 사람. 누군가에게 배우기도 전에 처음부터 그가 시를 쓰면 읽는 사람을 움직였다. 김춘수 시인에게 발견된 재능. <신세 좀 지자구요>를 둘러싸고 약간의 설명을 덧붙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설명을 읽기 전에 불행했던 시인 천상병의 위대하고 가냘픈 시를 먼저 읽어주기 바란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이 영화의 원작이었던 문화방송 드라마 <불청객>을 보지 못했다. 이 드라마는 친구들 집을 아무 거리낌 없이 동가식서가숙했던 천상병 시인의 기인 행각을 보면서 소재 삼아 그의 친구 중의 한 사람이자 극작가였던 신봉승 이 대본을 썼고 1966년에 방영되어 그해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의 한 편이 되었다. 나는 원래 드라마에 천상병 시인의 삶의 향기가 얼마나 배어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신봉승의 인터뷰에 따르면 거의 대부분 자신과 친구들이 겪었던 이야기로 매회를 이어갔다고 한다. 그 후 <방 좀 빌립시다>로 준비되었던 이 영화는 <신세 좀 지자구요>로 제목이 바뀌어서 삼 년 후에 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원작 드라마 각본을 영화를 위해서 신본승 자신이 각색을 했는데 이상하게도 구先生이 시인이라는 설정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처음부터, 그러니까 드라마 대본에서부터 없었던 것일까) 다만 고향에서 올라온 갈데없는 독신 중년으로만 소개하고 있다. 구先生은 계속해서 언젠가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는 고향에 돌아갈 생각이며 (그러므로 영화의 엔딩은 구先生이 고향에 내려가는 것으로 끝난다) 거기서 잘못된 사랑을 했으니 이제는 결혼을 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 한다. 하지만 그가 어떤 잘못된 사랑을 했는지, 왜 그는 고향을 떠나야만 했는지, 그리고 여기서 다시 삶을 살아볼 생각을 왜 하지 않는지, 아무리 기다려도 끝날 때까지 더 이상 어떤 설명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심지어 나중에는 이 모든 고백이 거짓된 핑계가 아닐까, 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어쩌면 구봉서 가 연기하는 구先生의 어디에서도 시인 천상병의 그림자 자락을 붙들지 않았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구봉서가 훌륭한 희극 연기의 대가이기는 하지만 여기서 그는 천상병의 천의무봉한 자유와 거의 사회적으로 파문당하기 직전까지 몰렸을 때조차 거기서 재난에 가까운 사건 사이를 가볍게 지나쳐가면서 그 모든 것이 우리 모두의 상상을 뛰어넘는 시적인 사유의 행위라는 것을 펼쳐 보이지 못한다. 그저 과장된 개그의 제스처, 우스꽝스러운 표정. 그러나 천상병 시인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1967년 7월 14일 ( 윤이상 , 이응로를 간첩으로 몰아붙인) 동백림 (북한 대남공작단)사건에 연루되어 중앙정보부에서 모진 고문을 받은 다음 세상에 돌아와 ‘그 날은 새’라는 시를 썼다. 고문 후유증으로 내내 고통을 받았고 1971년에는 행적이 묘연해지자 동료 문인들이 유고시집을 발간했지만 길거리에 쓰러져 행려 취급을 받고 서울시립병원 정신병동에 갇혀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가까스로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면서도 시인 천상병은 무거운 가난을 등에 짊어지고 계속해서 자신이 새가 되고 싶다는 시를 썼다. (시집 “새”) 세상이라는 도면에 대한 서로 다른 관측법. 누군가는 그걸 그 안에서 두리번거리며 바라볼 때 누군가는 상공비행해서 내려다 볼 것이다. 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무언가 여기에는 신비로운 모험이 사라져버렸다. 구先生의 기행은 드라마 안에서 시종일관 전혀 설득되지 않으며 그러면서 점점 더 기괴해져가기만 한다. 무엇보다도 구先生에게서 세속 바깥에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의지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는 다른 목적을 지닌 삶, 거기서 그를 비루한 현실 속에서조차 구해내는 고귀한 목표의 겸손함, 그때 어떤 수단도 그를 굴복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지 못한다. 나는 그게 신봉승이 (어떤 이유에서) 포기해버린 것인지, 아니면 임권택이 삭제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여기 남아있는 것은 구先生의 기행 뒤에 숨겨져 있는 고독함뿐이다. 어쩌면 천상병 시인의 기인과도 같은 삶은 결국 고독함이라고 이해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구先生이 마담과 함께 한밤중에 데이트하는 장면의 우울함은 갑자기 이 희극 영화 바깥으로 완전히 빠져나오는 것만 같은 속도로 바뀐다. 종종 전체적인 균형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만 같은 이 영화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간단하게 무시하면서 지나치지 못하는 것은 이런 씬에서 무언가 사무치는 것만 같은 정서가 거의 유령처럼 출몰한 다음 수없이 부스러기처럼 잘게 쪼개져버린 이 세계의 한 순간을 멈춰 세우기 때문이다. 이재명(우)과 아내(좌) 구先生과 마담 보영 세진 먼저 KMDb 에 소개된 줄거리의 정정. “ 구봉서 와 김희갑 은 절친한 사이다. 그래서 갈 곳이 없는 봉서는 희갑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다. 그러자니 자연히 희갑의 부부간에는 싸움이 자주 일어난다. 그때마다 봉서가 화해시킨다. 어느 날 봉서가 산 복권이 당첨이 된다. 그리하여 봉서는 희갑의 어려운 사정들을 해결해 주고 남은 돈을 가지고 고향으로 간다.” (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02010 ) 구봉서와 김희갑이 절친한 친구 사이로 나오는 건 사실이고 그 집에 머무는 것도 맞지만 그런 다음은 영화와 상관이 없다. 그러므로 할 수 없이 다시 한 번 이야기를 복기할 수밖에 없다. 지방에서 올라온 구先生(구봉서)은 누군가의 집에서 쫓겨난 다음(영화의 첫 장면) 겨울 거리를 배회하다가 술집에서 옛 고향 고등학교 동창 이재명(김희갑)을 만난다. 갈 데 없는 구先生은 뻔뻔하게 이재명의 집에 쳐 들어와 방 한 칸을 차지하고 그냥 머물면서 아침 겸상에 용돈까지 받아 챙긴다. 이재명의 아내( 도금봉 )은 어이가 없지만 체면 때문에 참고 딸 보영( 전양자 )은 재미있게 생각하고 식모( 안인숙 )은 그저 어쩌지, 어쩌지, 할 뿐이다. 이재명은 감원 대상자 명단에 매번 자기가 속하면서 전전긍긍하는 중이고, 구先生은 낮에는 다방에 나가 마음에 둔 마담( 조미령 )과 하릴없는 시간을 보내고 밤이면 이재명의 집에 다시 쳐들어온다. 그런 와중에 구先生은 시종일관 사고만 치고 이재명 부부로서는 점점 참기 힘든 상태가 된다. (갑자기 여기서부터 인물관계가 뒤엉키기 시작하지만 정작 영화를 볼 때는 문제가 안 된다) 마침 딸 보영이 다니는 회사의 전무가 이재명이 다니는 회사 과장( 양훈 )의 아들( 이철 )이고 그는 이재명의 딸 보영과 결혼하고 싶어 한다. 여기에 과장의 아내와 계장( 서영춘 )까지 나서서 결혼을 재촉하지만 보영에게는 이미 마음을 둔 남자가 있다. 그 남자는 구先生 단골 다방의 마담의 아들 세진이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들에게 딸을 줄 수 없다는 이재명 아내는 만일 청혼한 과장 집보다 혼처가 훌륭하다면 결혼을 승낙하겠다면서 부모 상견례를 하자고 제안한다. 마담은 구先生에게 하루만 성공한 남편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여기에 과장집 식구들에 계장까지 모여 지켜보고 있다. 자, 여기까진 아무래도 좋다. 임권택 은 여기서 두 세계 사이에 모호하게 머문다. 하나는 세계 안에 머무는 영화이다. 모든 것은 세상의 법칙을 따르고 그 안에서 인물들은 반복적으로 고통 받고 점점 찌그러진다. 가장에게 끊임없는 감원의 협박. 근처에서 맴도는 가난. 회사 안의 위계질서에 따른 부당한 요구의 반복. 위협받는 순수한 사랑. < 신세 좀 지자구요 >의 인물들은 대부분 여기에 머문다. 다른 하나는 세계 곁에 있는 영화이다. 영화는 거기서 세상의 법칙이 금지한 바깥으로 나와 만일 영화가 허용한다면 무엇이든지 할 준비가 되어있다. 구先生의 탈선. 하지만 수 많은 사고를 만들어내도 그는 언제든지 그 자신도 알지 못하는 법칙에 의해 항상 구원받는다. 문제는 두 영화가 하나의 세계 안에 공존할 때 생겨난다. (나는 두 세계가 하나의 영화 안에 공존한다, 고 쓰지 않았다) 기괴한 예. ( 서영춘 ) 계장은 ( 양훈 ) 과장과 아들 혼사 문제를 놓고 계획을 짜다 말고 갑자기 그 유명한 만담을 한다. “산에 가야 범을 잡고 강에 가야 고기를 잡지,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컵이 없으면 못 마십니다, 돈 내고 돈 먹기, 시작해야 부자 되지 어서 어서 오세요...(그리고 한참 더)” 이 만담은 서영춘 이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백금녀 와 함께 이중창처럼 라임에 맞춰 노래하듯이 외우는 구절이며(그래서 이 만담이 시작되면 아이들은 합창하듯이 따라했다) 레코드로 출반되었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신세 좀 지자구요>에는 백금녀가 출연하지 않아 서영춘 혼자 이 만담을 하는데 (혹시나 하고 기다리던 장기자랑이 마침내 시작해서 반갑기는 하지만) 너무 갑자기 등장해서 어리둥절해진다. 하지만 내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이때 ‘사이다 송’ 만담을 하는 서영춘의 얼굴을 극단적인 왜곡 상태로 만들어(fish_eye_wide_lens)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씬은 누구라도 보는 사람을 꺼림칙하게 만든다. 우스꽝스럽기는커녕 무언가 잘못 작동되기 시작한 인형이 재롱의 동작을 취하면 취할수록 원래의 목표를 벗어나 제멋대로 움직이면서 이제는 수명이 다해버린 음울한 실체를 드러내는 것만 같은 인상을 자아낼 때 우리의 고개를 돌리게 만든다. 틀림없이 이 장면은 웃기 위해서 찍은 씬이다. 서영춘은 언제나처럼 약간 넋이 나간듯한 표정을 만든 다음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 자기의 차례가 돌아오자 외운 것을 반복하는 기계처럼 구절을 반복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미 그 자체로 인격으로부터 분리되어 하나의 모델이 된 채 추상화된 자동기계 인형이 된 서영춘을 다시 한 번 굴곡 된 이미지로 만들어버릴 때 거기엔 우리가 개입할 코믹한 환상의 여지가 사라진다. 왜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때 내가 보는 것은 괴로운 현실과 더 괴로운 환상이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는 방식이다. 임권택은 희극이 고통으로부터 잠시 동안 우리를 구하는 것이라는 통념적인 생각과는 반대로 두 개의 고통을 전시한다. 하나는 물론 억압에 의지해서 버티는 현실이고 다른 하나는 억압이 사라지자 통제가 불가능해져버리는 환상이다. 둘 사이를 분리하는 경계는 여기서 그렇게 분명한 것이 아니다. 종종 그 둘은 서로의 자리를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일단 인물들은 현실이 무너져 내리듯 홀연히 비현실의 장막 안으로 들어서면 추상적인 미결정의 이미지에로까지 다가간다. 이때 이미지는 히스테릭하게 웃기 시작한다. 나는 여기서 이미지가 웃는다고 썼다. 이미지가 웃기 시작할 때 일그러진 화면은 육체를 침공하듯이 뒤집어쓴 다음 그것을 통해 고통을 전시한다. 나는 그 뒤에 무언가 숨어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그 뒤는 그저 공허한 텅 빔이 전부이다.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점점 더 히스테릭해지는 이미지는 대신 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자신을 감추기 위해서 자기 스스로 자멸해버리듯이 스스로를 일그러뜨리며 웃기 시작한다. 그때 일그러지면서까지 웃는 이미지는 무엇을 얻고 싶어 하는 것일까. 물론 대답은 환상의 불만족이다. 왜냐하면 여기는 또 다른 고통의 왕국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 히스테리가 만족을 얻게 된다면 이미지를 둘러싼 영화의 기호들은 갑자기 도착적인 기능을 시작할 것이다. 그건 임권택이 바라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걸 바라기 시작할 것이다. < 천년학 >의 마지막 장면은 분명히 그러했다) 아직은 고통에 머물러야 한다. 이때 임권택의 희극은 웃음이 고통이라는 이상한 역설에 빠진다. 언젠가 내게 말했다. “거 참, 이상하게도 나는 코미디가 안 되는 거예요” 나는 대답할 수 있다. 아니요, 코미디가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웃음이 고통에 머물러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영화에서 웃음은 고통스러운 감정의 경련입니다. 송해 와 박시명 장소라는 쇼트의 하부구조. 이 히스테리의 경기장이라고까지 부르고 싶은 절정은 (내가 줄거리를 정리하다말고 잠시 중단한 이후의) 마지막 시퀀스 전부이다. 무대는 고급 제과점. 이재명과 그의 아내, 딸 보영은 지금 다방 마담과 그 아들 세진과 (결혼을 해야 할지 말 지를 결정하기 위한) 서로간의 부모 상견례를 위해 여기 나와 앉아있다. 제과점은 1960년대 한국영화에서 상견례 장소로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장소 자체가 특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트에서 찍은 것이 분명한 이 장소는 이제까지의 장면들에 비해서 지나치게 밝고 화사한 느낌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약간 비현실적인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이때 이 경기장을 처음 작동시키는 이미지 벡터는 주문을 받으려고 테이블을 오가는 두 명의 점원, 그런데 마치 쌍둥이 로봇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송해 와 박시명 이다. 영화에서 처음 등장하는 두 사람. 서로가 거울에 비친 것처럼 행동하면서 한편으로는 서로가 서로의 동작을 보완하는 개그는 물론 송해와 박시명 콤비의 발명품이다. 이때 이 둘이 주문을 받으러 가는 손님은 이재명 가족의 테이블이 아니라 영화에 처음 등장한 (그녀 자신을 ‘뚱보 여성’ 코미디언 백금녀 와 구별하기 위해 지은 예명인) 오천평의 테이블이다. < 신세 좀 지자구요 >에 차례로 등장하는 코미디언들의 열거 방식은 이 영화가 종종 예능 프로그램 방식으로 연출되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나는 이 대목에 돌아올 때마다 다소 무례한 상상을 해보게 된다. 그때 영화산업은 추락하고 있었다. 충무로의 수많은 재능들이 방송국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방송국은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서 경험이 있는 연출자와 촬영, 조명, 편집, 혹은 이미 얼굴이 알려진 스타들과 안정적인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들이 필요했다. 한국영화는 이중의 검열 속에 관객들에게 거리의 죽은 개 취급을 당하면서 구경거리로서도 버림받고 있었다. 재빨리 대중들은 스크린을 버리고 모니터 앞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1969년의 이야기이다. 그때 방송국은 안정된 직장이었다. 임권택 은 <신세 좀 지자구요>를 연출하면서 종종 텔레비전 스튜디오에서 진행하는 것만 같은 실험을 할 때가 있다. 그 목표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물론 그 실험이 예외적인 것은 아니다. 로셀리니를 시작으로 (그의 교훈에 따라) 에릭 로메, 자크 리베트, 고다르, 필립 갸렐, 외스타슈, 라이너 베르너 파쓰빈더, 헤어초크, 벤더스로 이어지는 수 없는 텔레비전과의 모험이 있다. 시네-텔레비전이라고 세르주 다네가 명명했던 시기. 레지스 드 브레는 좀 더 과감한 예언을 했다. 결국 관객은 시청자의 감각을 갖게 될 거예요. 그 말을 빌려서 나는 우리 시대의 관객에 대해 말하고 싶다. 영화관객은 스마트폰 유저의 감각을 갖게 될 거예요. 하지만 임권택의 실험은 미학적이라기보다는 실용적인 관점에 따른 것이다. 그것이 앞으로 다가올 미디어의 잡종교배에 따른 방법의 탐구인지 아니면 그 자신이 방송국으로 옮겨갈 것을 염두에 둔 테스트인지는 (당연히 내가) 알 수 없다. 경기의 시작. 마치 우회를 하듯이 오천평의 테이블을 거쳐서 송해 와 박시명 은 이재명과 아내, 그리고 딸이 앉은 테이블로 간다. 물론 오천평은 경기장의 새로운 벡터를 더할 것이며 지금은 단지 자리를 차지하고 자기의 순서를 기다리는 중이다. 이재명의 아내는 신랑댁이 시간에 늦는다면서 툴툴 거리고 있지만 딸은 아직도 3분이나 남았다고 대답한다. 그때 저편에 ( 양훈 ) 과장과 아내, 아들( 이철 ), 계장( 서영춘 )이 이미 자리를 잡고 감시하듯이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그들이 왜 온 것일까. 대답은 단순하지만 기괴하다. 최후의 클라이맥스를 준비하기 위해서. 그러나 그것은 영화에서는 성립되지 않는 대답이다. 만일 그러기 위해서라면 그들은 이재명 테이블로부터 시선 바깥에 숨어있거나 (이 영화가 희극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변장을 하고 나타나야 할 것이다. 그들은 지금 다른 집안의 상견례에 개입하는 중이다. 그런데 이재명의 테이블에서는 마치 이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일종의 양해를 받은 시선의 차단. 혹은 관객과의 약속. 간단하지만 지나치게 간단해서 기형적인 배치. 말하자면 여기서는 통상적인 영화의 약속이라고도 할 수 있는 포르(Fort)-다(Da)의 원근법이 성립되지 않고 있다. 혹은 마치 연극무대처럼 진행된다. 임권택 은 두 집단 사이의 시선을 다시 나눌 필요가 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앙상하리만큼 드러난 인물들의 노출. 붙들어 매어놓은 것처럼 한 화면 속에 앉아있는 의자 위의 인물들. 그런데도 그렇게 해도 여기서는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이 장소는 영화의 법칙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임권택이 이따금 비영화적인 배치에 이끌릴 때 만들어내는 블록의 구성에 대해서 난처함을 느낄 때가 있다. 지금이 그 순간 중의 하나이다. 세 개의 테이블. 이재명 가족이 기다리는 테이블과 오천평이 혼자 앉아있는 테이블과 과장 가족과 계장이 훔쳐보는 테이블. 마치 기계처럼 돌아가는 순서가 이어진다. 이제 소개가 끝나자 (조미령) 마담과 아들 세진이 제과점에 들어선다. 마담은 믿는 구석이 있다는 듯 도도하게 다가와 이재명 테이블의 의자에 앉고 그 기세에 눌려 ( 도금봉 ) 아내는 약간 주눅이 들었다는 듯 맞이한다. 다시 돌아가기 시작하는 홀의 서빙. 송해 와 박시명 점원이 다가와 오렌지 주스 주문을 받는다. 잔의 주문 숫자를 영어로 세면서 거기에 자기들의 숫자까지 슬쩍 더한 다음 (그런데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다) 돌아간다. 마지막 등장인물. 말하자면 완결된 숫자. 이 장소에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마담의 남편 자리에 구先生이 약간 거만한 자세로 나타난다. 모습이 가관인 것은 카이저수염을 달고 거기에 중절모를 쓰고 이 자리에 나온다. 물론 구先生도 누구를 만나러 이 자리에 자기가 불려나왔는지 이미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구先生은 능청맞은 얼굴로 마치 처음 보는 사람들인 것 같은 제스처를 취하면서 인사를 한다. 이때 이재명과 그 아내, 딸 보영은 그가 구先生이라는 것을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나는 이미 이 시퀀스의 약속에 대해서 설명했다. 하지만 그 변장한 모습 때문에 알아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구先生이 쓰고 나온 모자는 원래 이재명이 가장 아끼는 비싼 모자이며 눈치 없는 식모가 그만 구先生이 필요하다는 말에 냉큼 내다줬다가 아내로부터 야단을 맞은 것인데, 바로 그 모자를 쓰고 나왔는데도 알아보지 못한다. 좀 더 간단하게 자기 모자를 쓰고 나온 상대방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재명의 가족들이 구先生의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이야기) 안에서 서로 약속한 생활의 기호들에서조차 누구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중의 장님 효과가 있다. 몹시 망설이면서 이재명의 아내는 “혹시 구先生님 아니세요?”라고 묻지만 모자를 벗고 (뒤집어쓴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는) 대머리(모양의 가발)을 보여주자 금방 실례했다고 사과한다. 이야기는 납득할 수 있는데 전개 방식은 ( 임권택 답지 않게) 전혀 납득할 수 없게 진행된다. 사실 이 장면이 드라마로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긴장은 구先生의 변장이 들키느냐 마느냐에 있다. 이중의 역할. 마담의 남편의 자리이자 구先生이라는 역할. 구봉서 라는 배우, 드라마가 불러일으키는 긴장. 여러 개의 진동판을 동시에 건드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허약한 약속. 여기서 그 정체를 들키게 된다면 이 모든 노력은 허사가 된다. 이때 우리는 이 약속을 좀 더 밀고 나갈 필요가 있다. 좀 전에 한 말을 수정하고 싶다. 희극의 진정한 약속은 여기서 그 정체를 들키게 된다면 이 모든 노력은 허사가 된다, 라고 전제를 던진 다음 그것을 기어이 들키게 만들어서 소동을 만드는 것이다. 전형적인 포르-다 게임. 이때 눈속임은 이중으로 배치된다. 이야기 안의 인물들은 속지만 이야기를 보는 우리는 절대 속지 않는다. 우리가 속는 것은 절대 속지 않는다고 가정된 약속 그 자체의 배신이다. 당신은 이 상황이 1969년에 만들어진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희극 영화이며, 게다가 텔레비전에서 영향 받은 분장이라고 가볍게 지나치고 싶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잘못 붙잡은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지금 구先生의 외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주인이 알아보지 못하는 모자라는 기호를 질문하는 중이다. 종종 어떤 기호들은 마치 침점과 같아서 이야기 안의 시간을 파고 들어가기 시작한다. 나는 이 문제가 보기와 달리 그렇게 단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임권택은 이미지의 재현이 약속에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재현 자체가 대상의 뿌리와 관련지어야 한다고 믿는 연출자이다. 그건 < 두만강아 잘 있거라 >에서부터 그러했다. 그런 다음 임권택이 연출한 1960년대의 사극을 볼 때마다 그가 어떤 순간에는 과도할 정도로 그 뿌리의 안에서 영화가 살아가야한다는 믿음을 밀고 나가는 것만 같은 인상을 받을 때를 발견하곤 했다. 그는 어느 순간 그게 왜 거기에 있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놓고 이미지의 자리에 대한 내기를 벌이곤 했다. 영화는 그에게 재현될 때 그 안에 대상의 뿌리가 체화되고 시간이 종합되는 장면을 보는 것이라는 어떤 믿음의 일관성으로 진행되었다. 나는 그걸 < 길소뜸 >에서 무시무시한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 신세 좀 지자구요 >를 만들던 해에 임권택은 < 황야의 독수리 >를 연출했다. 이 시기의 임권택은 매우 빠른 속도로 자기 영화의 어느 부분들이 무너져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 같을 때가 있다. 그래서 종종 어떤 영화들은 임권택의 영화들 안에서 완전히 고립된 것처럼 보일 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여기서 무언가 재현의 이미지들은 단절되고 스스로 이야기 안의 인물들의 기호들이 산산조각 나는 것만 같은 소리를 듣는다. 갑작스러운 사고. 여기서 괴상한 장면이 연출된다.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손님 오천평의 주문을 받고 핫 케익 10장을 구운 접시와 주스를 담은 쟁반을 들고 나오다가 그만 송해 와 박시명 은 서로 부딪쳐서 그걸 바닥에 떨어트려 접시는 나뒹굴고 컵은 깨지고 핫케이크는 바닥에 떨어진다. 그때 갑자기 기적이 벌어진다. 놀라지 말 것. 영화 화면이 거꾸로 돌아가면서, 말하자면 카메라 필름을 되감으면서(rewinding_shooting), 바닥에 떨어졌던 케이크와 주스 잔과 접시가 바닥에서 위로 날아올라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온다. 물론 간단한 테크닉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영화의 기계장치가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드라마의 리듬은 산산 조각나버린다. 혹은 완전히 작동을 중단하게 된다. 차라리 어리둥절한 중단. 이 순간 영화는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이동해버린다. 무언가 이 쇼트는 이 갑작스러운 리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처럼 보인다. 마치 이 순간에 대한 알리바이를 준비하기라도 하듯이 구先生은 먹을 것을 보면 식탐을 주체하지 못한다는 설정이 반복되었다. 이를테면 양주병에 바꿔 넣은 화장품 스킨로션 한 병을 모두 마시고 화장실을 몇 차례이고 반복해서 드나드는 장면. 이때 임권택 은 구先生의 복통을 배가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는 장면과 마치 폭격기의 폭음과도 같은 과장된 사운드를 결합시켜서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주스를 보자 구先生은 지금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마치 맥주를 마시기라도 하듯이 그걸 벌컥벌컥 마신다. 그때 이들과 아무 상관없는 오천평은 자신이 주문한 핫케이크를 다른 테이블에서 혼자 정신없이 먹기 시작한다. 두 개의 테이블. 하나의 장소, 새로운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테크닉. 영화는 그 둘을 반복해서 서로 오가면서(cross_cutting) 마치 둘 사이에 어떤 관계라도 있다는 듯 보여준다. 물론 둘 사이에는 아무 연관성도 없으며 또한 드라마도 생겨나지 않는다. 강제적인 매듭. 사회적인 태도를 포기하고 본능에 충실하겠다는 듯한 동물적인 제스처. 오로지 그 둘의 관계는 탐식의 광란에 가까운 속도 이외에 어떤 연관성도 없다. 여기까지 드라마를 쫓아왔다면 당신은 중얼거릴 것이다. 이래도 괜찮은 것일까. 그리고 이 말은 내가 맨 처음에 했던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연쇄반응이 일어난 것만 같다. 그런데 그 반응은 이제 이 운동이 완전히 이야기 바깥으로 나갔음을 알린다. 거의 제멋대로 작동하기 시작하는 신체들. 마치 그 주인들이 통제를 상실하기라도 한 것처럼 카메라가 대상을 건드리면 그 부위가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기라도 하는 것만 같다. 구先生과 오천평이 각자의 테이블에서 각자의 음식에 매달리자 과장 가족과 계장이 앉은 테이블에도 진동이 온 것처럼 보인다. 이때 이걸 바라보던 ( 서영춘 )계장이 마치 이미 프로그램이 되어있는 인형이 두 사람의 탐식에 반응을 보이기라도 하듯이 물고 있던 담배를 뱉어내자 그게 날아가 ( 양훈 ) 과장의 입에 꽂힌다. 사라진 삶의 법칙. 그걸 (양훈) 과장이 다시 뱉어내자 그게 아내의 코에 가서 박힌다. 거의 서커스와도 같은 동작. 물론 여기서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훈련받은 연기자들의 묘기가 아니라 영화의 기계적인 트릭이다. 오로지 영화라는 기계의 작동. 그걸 아내가 다시 콧바람으로 불어내자 그게 날아가 다시 (서영춘) 계장의 입에 꽂힌다. 질세라 그걸 다시 뱉어내자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벌려 ( 이철 ) 아들이 받아먹는다. 이 개그는 사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와 아무 상관도 없으며, 심지어 이재명 가족과 마담 가족 간의 상견례의 어떤 내용과도 상관이 없다. 그들 사이에서의 행동은 어떤 비유도 성립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각자의 테이블은 상징과 아무 상관이 없다. 우리는 세 개의 테이블을 어떻게 짝 지워야 하는 것일까. 세 개의 테이블은 가장 단순한 상태의 신체라는 운동의 작동만이 기계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이제 이 세 개의 테이블로 나뉜 기계적인 활동을 어떻게 하나로 결합할 것인가, 라는 문제가 남았을 뿐이다. 첩첩산중. 이 활동에서 어떤 작동을 중단시키고 이들을 보다 큰 범주의 새로운 운동의 경기에로 어떻게 이동시킬 것인가. 구先生은 큰 기침을 한다. 콧물을 닦으려하자 (당신도 예상했듯이) 카이저수염이 떨어져나간다. 이때 이재명과 아내는 깜짝 놀라지만 이상한 것은 그걸 보고 딸 보영이 깔깔 웃는 것이다. 사실상 구先生의 정체가 탄로 나는 순간 상견례는 파국을 맞을 것이며 보영의 결혼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마치 남의 일처럼 바라보면서 반복해서 웃는다. 이 순간 구先生이 실례했습니다, 라는 대사를 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할 말이 없다. 상황종료를 알리는 대사. 임권택 은 다시 상황을 시작해야만 한다. 그때를 기다린 것처럼 파리가 구先生의 대머리 가발에 앉는다. 이번에는 (두 명의 점원 중의 한명인) 송해 가 다가가 구先生의 머리에 앉은 파리를 잡는다고 내려치다가(물론 우리는 그 다음에 벌어질 상황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순간 긴장을 불러내는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두려운 기대이다) 그만 가발을 벗겨버린다. 그제서야 이재명과 아내는 마담의 남편(역할을 하기 위한 나온 이 사람)이 구先生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하지만 관객 중에 이 사람이 구先生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었겠는가. 여기엔 어떤 게임도 없다) 맙소사. 드라마는 사실상 여기서 가장 불편한 순간을 맞이한 것이르였?이상 해야 할 이야기는 남아있지 않다. 새로운 동선. 그때 어디선가 크림을 잔뜩 토핑한 케이크가 날아와 구先生의 얼굴에 정통으로 맞는다. 돌아보니 ( 양훈 ) 과장과 아내, 아들, ( 서영춘 )계장이 일어나서 이재명의 테이블을 향해 일제히 던지기 시작한 케이크가 날아든 것이다. (할리우드 희극장르에서) 파이던지기(라고 부르는) 액션. 파이던지기는 카오스로 달려가는 입구이다. 임권택 은 전쟁영화를 찍을 때 누가 누구를 (종종 과도할 정도로) 쏘는 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연출자이다. 하지만 자, 정반대로 여기서 임권택은 거의 고의적으로 누가 누구에게 던지는지를 알 수 없게 동선을 무시하고 (좀 더 정확하게는 넘나들면서) 서로에게 집어던진다. 혹은 누가 누구에게 던지든 상관이 없다. 순간적으로 그 자리를 피한 사람은 쓰러진 책상 밑에 모습을 숨긴 이재명의 딸 보영과 마담의 아들 세진이다. 그때 송해 와 박시명 은 재빨리 파이던지기의 동선에서 빠져나와 케이크를 맞고 기절한 오천평의 삼백만 원짜리 반지를 빼내려고 애를 쓰고 있다. 서로 관계가 없는 전체. 그저 동선의 재난이라고밖에 달리 말할 수 없는 활동. 그때 인물들은 뒤집어쓴 케이크의 크림으로 무너져 내린 형상이 되어간다. 반드시 상대방을 겨냥할 의도조차 없이 사방에서 서로 던질 때 여기에는 원칙이 없다. 그런 다음 거의 지친 그들이 서로를 향해 주먹질을 할 때 (양훈) 과장과 이재명이 서로 마주보고 있고, (서영춘) 계장과 구先生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이들 사이의 짝은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 사이에 ( 이철 ) 아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재빨리 바깥으로 도망친다. 당신이 좀 더 예민하다면 문득 화면의 주변을 돌아볼지 모르겠다. 그렇다. 그들이 케이크를 집어 던지는 사이에 처음 시작할 때 앉아있던 다른 손님들은 아무 말 없이, 말 그대로 소리 없이, 마치 그들의 난동극에 조금이라도 방해라도 될 것 같아 자리를 피하기라도 하듯이, 흔적도 없이 화면에서 사라졌고, 그런 와중에도 카운터 저편의 제빵 셰프들은 그들이 만든 케이크를 사방에 집어던지는 동안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이, 마치 그들을 보지도 못한 듯이, 계속해서 빵을 만든다. 그러다가 구先生이 두 어머니, 이재명의 아내와 다방 마담에게 그들의 자식들에게는 그들의 기회를 주어야한다는 충고를 주고 떠나갈 때에야 비로소 돌아본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마지막 장면의 마지막 장면을 설명하는 대신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고 싶다. < 신세 좀 지자구요 >는 임권택 이라는 설명 바깥으로 나간 영화이다. 그냥 서둘러 실패작이라고 설명한 다음 빠져나오고 싶을 정도로 한편으로는 부서져나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에너지가 그 사이를 메워나간다. 처음 볼 때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예기치 않은 골격이 나타나 영화의 윤곽을 다시 설정하기 시작할 때 임권택은 거기서 무언가 혼란스럽긴 하지만 영화 안에서 끊임없이 변형을 가하려는 시도를 한다는 걸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는 이런 방식을 두 번 다시 취하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이 영화를 만들면서 무언가 모델을 찾고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는 더 이상 눈으로 만지지 않는다. 그 대신 영화 그 자체가 하나의 육체처럼 다루어지기 시작할 때 몸은 히스테리에 빠져들기라도 한 것처럼 무언가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려 든다. 지나치게 빈약한 장치들. 모든 것이 드러나 버린 몸. 벌거벗은 영화. 여기서 눈은 기능을 포기했고 창자가 음식에 반응하면서 영화의 장치들을 뒤틀기 시작한다. 말 그대로 배고픈 영화. 굶주린 수사학. 나는 그 사이에서 무언가 거기서 독립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그건 리비도의 퍼포먼스이다. 이제까지 임권택을 다루면서 이상할 정도로 아무도, 정말 누구도, 한 번도 다루지 않은 질문. 나는 이 질문의 시작을 여기서부터 해볼 생각이다. (계속) 1969년 90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제일영화주식회사 각본 신봉승 촬영 장석준 조명 김진도 편집 장현수 음악 김기갑 구봉서 ... 구선생 김희갑 ... 이재명 도금봉 ... 이재명의 아내 전양자 ... 이재명의 딸, 보영 조미령 ... 마담 서영춘 ... 계장
교육 활동의 하나로서 교사의 인솔 아래 실시하는 수학여행은 학생들이 평상시에 대하지 못한 곳에서 자연 및 문화를 실제로 보고 들으며 지식을 넓히는 것을 목적으로 시행된다. 대학입시라는 거대한 과제를 앞둔 중고등학교 시절은 집과 학교, 그리고 학원의 반복이다. 과거에 비해 여행의 기회가 많아졌다지만, 학생 시절의 수학여행은 그 자체로 설레는 순간이며 지나고 나면 좋은 추억으로 남는다. 이 수학여행이 최근 참사로 뭇매를 맞고 있다. 거대 보수신문이 발행하는 주간지는 ‘이래도 수학여행을 가야하냐’며 수학여행을 물고 늘어지고, 어떤 목사님은 “가난한 집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경주 불국사로 가면 될 일이지, 왜 제주도로 배를 타고 가다 이런 사단이 빚어졌는지 모르겠다”며 트집을 잡았다. 김희진 감독의 단편 < 수학여행 >은 바로 이 ‘수학여행’의 시간을 포착한다. 제주도로 떠날 예정인 수학여행, 주인공 병화는 수학여행을 갈 생각으로 마음이 설렌다. 장기자랑을 위해 동아리 친구들과 아카펠라도 연습하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팔아 새 운동화도 준비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부모님께 수학여행비를 받지 못해, 스스로 비용을 마련해야 한다. 배도 아니고 비행기로 떠나는 제주행 수학여행을 위해 병화는 매일 아침 녹즙을 배달하고 피자집 전단을 배포한다. 잠까지 줄여가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녹즙배달집 주인의 횡포로 임금을 받지 못해 수학여행도, 열심히 준비한 아카펠라 중창도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 수학여행 >은 떠난 수학여행이 아니라, 떠나지 못한 수학여행에 대한 영화다. 모두들 제주도로 떠나고 학교엔 병화를 포함 세 명의 학생만 남았다. 이 아이들은 설레고 떠들썩한 제주도행 수학여행 대신 쓸쓸하고 허전한 을왕리행 체험학습을 떠난다. 왜 왔는지 모를 을왕리, 하지만 세 아이들은 이곳에서 조금씩 성장한다.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다고 마냥 우울하진 않다. 서로 이름도 몰랐던 아이들은 학교를 벗어나 어느새 웃고 놀며 대화한다. 성장은 교실에서 교과서나 참고서 등을 앞에 두고서가 아니라, 또래 아이들과 대화와 놀이 속에서 그렇게 이뤄진다. 김희진 감독은 수학여행이라는 맥거핀을 가지고, 아이들의 성장담을 담담하게 그리고 재치 있게 담아낸다. 자신의 선택이 아닌 가정 형편 탓에, 중학생이라고 보증금을 내지 않았다고 약속한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어른 탓에 남들 다 가는 수학여행을 못 간 것이지만, 영화는 이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과장하지도 성급하게 위로하지도 않는다. 떠나면 그 나름대로 추억과 우정이 쌓으며 성장하겠지만, 떠나지 않아도 성장하는 것이다. < 수학여행 >은 떠나지 않은 수학여행을 소재로, 역설적으로 수학여행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수학여행을 떠나지 못한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도 그렇게 성장했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