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희 단지
- 제작년도
- 2009
지난해 12월 12일, 한국영상자료원(이하 ‘영자원’)은 “스크린 케미스트리: 스타로 보는 한국영화사”라는 제목으로 1950~1990년대 한국영화계 스타 커플의 관계성을 분석하는 시네포럼을 개최했다. 한국영화사 연구를 수행하는 아카이브로서, 영화연구자는 물론 관련 분야에 관심을 가진 참여자들이 한국영화사와 관련해 새롭게 논의될 만한 지점을 발견하며 대화하는 장을 마련하고자, 영자원은 매년 이와 같은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이번 행사는 학술적인 분석 중심의 발제나 토론이 아니라 발표자들이 청중의 질문을 받아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시네포럼의 방식으로 진행됐다. 국내 주요 스타 커플이 등장한 시기를 네 구간으로 구분하고, 각 구간별로 등장한 스타 커플과 당시 한국영화나 대중문화의 특성 간의 상관관계를 조명했다. 시기별로 논의될 만한 스타들을 미리 설정해놓기는 했지만, 이들의 활동이 갖는 의미는 발표자가 스스로 고민한 후 관객에게 제안하도록 열어뒀다. 1950~1990년대 급변한 한국사회의 분위기와 영화산업의 지형을 참고하면서, 시대를 ‘풍미’한 스타들이 대중에게 남긴 여운을 발표자와 참여자가 함께 추적할 수 있었던 포럼 현장을 요약한다. 1950~1960년대 스크린 속 스타 커플 영화평론가·영화사가 김종원 김종원 평론가는 1950~1960년대 한국영화에서 커플로 등장한 스타들 간 케미스트리를 발견했다. 1950년대 스타 커플의 역사는 < 출격명령 >(홍성기, 1954)에서 처음 호흡을 맞추고 실제 부부가 되어 < 춘향전 >(이규환, 1955)에서 향단과 방자를 연기한 전택이 와 노경희 부터 시작한다. 배우 노경희는 < 내가 넘은 삼팔선 >(손전, 1951)을 비롯해 < 피아골 >(이강천, 1955) 등에서 해방 이후 스크린을 통해 강렬한 카리스마를 분출하는 여성 배우로 거듭나고 있었으며, < 아리랑 3편 >(나운규, 1936)으로 데뷔한 전택이와 여러 작품에 동반 출연하며 20세기 중반 한국영화사에서 함께 활약했다. 이후 김승호 와 황정순 이 강대진 감독의 < 박서방 >(1960), < 마부 >(1961), 김수용 감독의 < 굴비 >(1963)에서 돋보이며 또 다른 스타 커플로 주목받았다. 그런데 < 새로운 맹서 >(신경균, 1947)로 데뷔한 배우 최은희 는, 커플을 구성하는 인물들 간 관계가 남성을 중심으로 형성된다는 당시 시대적 한계에서 벗어나, 케미스트리를 주도하는 여성 인물로 떠올랐다. 김진규 와 신영균 의 상대역으로 등장한 신상옥 감독의 < 동심초 >(1959), < 상록수 >(1961), < 산 >(1967)과 같은 작품들에서 이러한 측면이 두드러진다. 한편, 스타 커플의 일원으로 거론된 적은 드물었지만 멜로드라마 위주의 문예영화 영역 밖의 상업영화 작품들에도 다수 출연하며 입지를 다진 김지미 배우의 행보도 독특했고, 그의 활약은 < 골목안 풍경 >(박종호, 1962), < 불나비 >(조해원, 1965)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후 1960년대에 등장한 ‘트로이카’의 구성원으로, 김종원 영화사가는 배우 엄앵란 , 윤정희 , 문희 를 꼽았고, 그들과 배우 신성일 의 긴밀한 관계를 설명했다. 엄앵란은 < 청춘교실 >(김수용, 1963), < 맨발의 청춘 >(김기덕, 1964) 등에서 그와 함께 연기하며 ‘청춘영화’의 전성기를 불러왔으며, 두 배우의 호흡은 한국영화계에서 ‘스타’의 존재를 부각함과 동시에, 이전까지 외화에 치중됐던 국내 관객의 관심이 한국영화로 선회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윤정희는 데뷔작 < 청춘극장 >(강대진, 1966)부터 < 안개 >(김수용, 1967), < 장군의 수염 >(이성구, 1968)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며 1960년대 한국 예술영화의 주축을 구성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한다. 문희 역시 이만희 감독의 < 흑맥 >(1965)과 < 돌아오지 않는 해병 >(1963) 등에서 신성일의 상대역을 연기하면서 트로이카의 구성원으로서 영화계에 두각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러한 신성일 중심의 트로이카 구도로 대표되는 1960년대 한국영화의 스타 커플 구조는, < 결혼교실 >(정인엽, 1970) 속 신성일과 윤정희, 문희, 남정임 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린다. 윤정희 X 신성일: 1960~1970년대 개발독재시대의 ‘밀고 당기기’ 영화평론가·영화연구자 금동현 금동현 평론가는 1960~1970년대 대표 배우이자 청춘스타였던 신성일과 윤정희가 동반 출연작에서 연기한 인물들의 관계를 ‘밀고 당기기’라는 용어로 재해석했다. 극중 그들의 배역이 점하는 위치는 1966년부터 1980년까지 함께 출연한 87편에 달하는 작품들에서 거듭 역전되고, 둘 간의 케미스트리가 두드러진 <안개>와 < 야행 >(김수용, 1977)에서 이 점이 선명히 관찰된다. 배우 신성일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 아낌없이 주련다 >(유현목, 1962)로 데뷔한 이후 유수의 작품에서 줄곧 주연을 맡았고, 특유의 소년미로 ‘청춘의 영원한 아이콘’이자 현대사회에 완전히 정박하지 못한 무책임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줬다. 반면 도회적이고 지적인 여성 인물을 대표했던 배우 윤정희는 1972년 석사 논문 「영화사적 측면에서 본 한국여배우 연구: 1903~1946년을 중심으로」를 발표하면서, 배우이자 여성인 자신의 위치를 성찰하는 면모를 보이며 ‘멜랑콜리’한 정서를 중심으로 스타 이미지를 갱신했다. <안개>와 <야행> 중 신성일, 윤정희 / © ㈜태흥영화 일례로, <안개>에서만 해도, 윤정희는 주변 소품이나 인물들 사이에 갇혀있고 신성일과의 관계에서 주도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인물로 나타났다. 하지만 <야행>의 몇몇 장면에서 윤정희는 자신을 향한 관객의 시선을 의식하는 연기를 수행함으로써, 1970년대 한국영화가 관객의 시선을 활성화하는 성취를 이루는 데 기여한다. 신성일과의 케미스트리를 일으킴과 동시에 한국영화사의 흐름을 따라가며 구축된 윤정희의 스타 이미지를 참고하면, 금동현 평론가는 그가 ‘보여지는(보이는) 여성’에서 ‘보여주고 보는’ 여성으로 변화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1960~1970년대 한국고전영화 중 빼놓을 수 없는 걸작인 두 작품의 영화사적 의미가 제대로 파악되기 위해서는, 당대 형성된 두 배우의 스타 이미지를 반드시 경유해야 한다는 관점도 공유했다. 더불어, 두 사람이 우울하지 않은 명랑한 얼굴로 콤비를 이룬 작품 < 아파트를 갖고 싶은 여자 >(정인엽, 1970), < 모범운전사 갑순이 >(이형표, 1972) 역시 언급하면서, 둘의 케미스트리를 다른 방식으로도 재조명하고 싶다는 소회를 밝히며 발표를 마쳤다. 장미희 X 안성기 1980년대 한국영화의 황금 커플 영화연구자 이윤종 이윤종 영화연구자는 1980년대를 대표하는 배우 장미희 와 안성기 를 다루면서, 당대 한국영화 주요작에 출연하며 강력한 케미스트리를 발휘한 이들을 ‘황금 커플’로 지칭했다. 안성기는 김기영 감독의 1957년작 < 황혼열차 >에서 아역 배우로 데뷔해 연기 활동을 지속하다가 < 애수의 언덕 >(김대희, 1969) 이후 10여 년간 휴식기를 보내고 < 병사와 아가씨들 >(김기, 1977)로 복귀했다. 이때부터 < 바람불어 좋은날 >(이장호, 1980), < 적도의 꽃 >(배창호, 1983), < 고래사냥 >(배창호, 1984), < 깊고 푸른 밤 >(배창호, 1985) 등 1980년대 화제작의 주연으로서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인물을 연기하며 ‘국민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같은 시기 장미희와의 동반 출연이 특히 빛났다. 장미희는 < 성춘향전 >(박태원, 1976)으로 데뷔하고 흥행작 < 겨울여자 >(김호선, 1977)에 출연한 이후, 1980년대에 접어들어 당대 여성 배우 트로이카에도 합류한다. 이후 <적도의 꽃>, <깊고 푸른 밤> 등에서는 안성기와 상대역으로 만나 열연함과 동시에 흥행까지 거두면서 두 배우 모두 영화계 입지를 굳히게 된다. <적도의 꽃>와 <깊고 푸른 밤> 중 장미희, 안성기 / © ㈜동아수출공사 그런데 이들이 동반 출연한 1980년대 작품들에서 각자가 욕망의 주체(안성기)와 대상(장미희)으로 설정되면서 둘 간의 케미스트리가 ‘파국’의 결말을 통해 발휘된 점이 인상적이다. 안성기는 순수함부터 비열함에 이르기까지 중·하층민 남성의 변화무쌍한 얼굴을, 장미희는 세련된 외관을 지닌 채 심리적 결핍을 겪는 부유한 여성 인물을 자주 연기했다. <적도의 꽃>에서는 중년 사업가에게 착취당하는 오선영(장미희)에게 반한 미스터 M(안성기)이 그를 구출하려 하지만 결국 화합에 실패한다. < 황진이 >(배창호, 1986)에서 황진이(장미희)에 대한 마음을 전하지 못한 갓바치(안성기)는 극단적 선택을 감행하고, <깊고 푸른 밤>에서는 미국 영주권과 돈벌이에 집착하는 백호빈(안성기)이 계약 결혼을 통해 제인(장미희)을 이용하며, 두 인물이 파멸로 치닫는 과정에서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이 드러난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두 배우는 이렇게 산업화와 군부 독재의 한가운데 드리운 감정 소외나 우울감의 그림자를, 불행의 케미스트리로 스크린에 옮겨왔다. 김혜수 X 한석규: 1990년대 소비문화와 트렌드 신화, 도시의 얼굴 영화평론가·성결대학교 교수 정민아 이전까지 언급된 배우들의 활동이 과거 한국사회의 시대별 흐름에 맞춰 전개됐다면, 정민아 평론가는 1990년대에 두각을 드러내 현재까지도 활발히 필모그래피를 갱신하고 있는 배우로서 배우 김혜수 와 한석규 를 조명했다. 시대를 대표하는 스타였지만 그들이 함께 출연한 작품은 사실 많지 않다. 로맨틱 코미디의 전성기였던 1990년대 < 닥터봉 >(이광훈, 1995)에서 처음 협업한 후 20년이 지난 시점에 < 이층의 악당 >(손재곤, 2010)으로 다시 만났다. 그래서 그들이 한 작품에서 발생시킨 케미스트리보다는, 1990년대를 배경으로 각자의 역량을 개발한 시간을 되돌아보며 오늘날까지도 강력하게 유지되고 있는 두 배우의 존재감을 분석했다. (상) 영화 <쉬리>, 드라마 <신사장 프로젝트> 중 한석규 / (하) 영화 <첫사랑>, <내가 죽던 날> 중 김혜수 © ㈜필름쿡플러스, tvN 1990년대 국내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 민주화와 세계화가 본격화되며 대중문화 산업의 규모 역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대중의 취향과 ‘트렌드’에 부합하는 다양한 콘텐츠나 인물이 주목받았던 때로, 이때 등장한 스타들은 대체로 산뜻하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로 팬덤을 확보했다. 그중에서도 김혜수와 한석규는 외모와 목소리, 연기, 스타일 등 모든 면에서 당시 대중이 선망한 ‘세련됨’을 구현했고, 데뷔 이후부터 현재까지 작품 속에서 쉼 없이 대중과 호흡해왔다. 한석규는 지성과 인품을 겸비한 도시 남성의 이미지를 표방했지만, 드라마 <서울의 달>(1994)에서처럼 냉정한 현대사회에서 불운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처연한 청년의 모습으로도 기억된다. 이는 최근까지 그가 TV 드라마에서 보여준 ‘소시민적’ 영웅의 리얼리티와도 맞닿아있다. 또한 감독에 의해 ‘선택받는’ 배우를 넘어 자발적인 비전에 따라 작품과 장르를 선택하고 신인 감독의 성장까지 견인하는 흥행보증수표 영화인의 시초 격이기도 하다. 한편, 김혜수는 활동 초기에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이나 영화 < 첫사랑 >(이명세, 1993)을 통해 젊고 발랄한 청춘스타의 면모와 특유의 건강미로 호응을 얻었다. 200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는 보다 다채로운 배역을 맡아 연기 스펙트럼을 확장했으며, 특히 2020년대 즈음에는 < 굿바이 싱글 >(김태곤, 2016)과 < 내가 죽던 날 >(박지완, 2019), < 밀수 >(류승완, 2023) 등을 통해 독립된 여성 자아가 돋보이는 씨네페미니즘의 상징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비디오 에세이 “기쁜 우리 젊은 날 그리고 안성기” 비디오 에세이스트 이무언, 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 연구원 윤서연 비디오 에세이스트 이무언 과 영자원 학예연구팀 윤서연 연구원은, ‘비디오 에세이’라는 작업의 의미를 소개하며 포럼 주제에 맞는 작업 결과물 한 편을 직접 제작해 선보였다. 이무언은 관객이나 연구자로 하여금, 각자가 작품에서 발견한 특별한 지점을 중심으로 연출과 편집을 주도하면서 영화와 한층 더 친밀해지는 기회로 비디오 에세이를 인식했다. 윤서연 연구원 역시 비디오 에세이가 주제가 되는 대상(물)과 이를 둘러싼 세계를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통찰”한 결과이자 “매혹적인 또 하나의 작품으로 기능”한다는 논의 [1] 를 인용하며, ‘오디오 비주얼 크리틱’으로서 비디오 에세이의 영역이 지닌 비평적이면서도 창의적인 측면을 소개했다. 이날 소개한 작업은 영자원이 올해 ‘우수영상물 다국어자막 DVD 제작 및 배포 사업’을 수행하던 도중 두 사람이 기획하게 됐다. 우수영상물 다국어자막 DVD는 영화사적·예술적 가치를 지닌 한국영화 몇 편의 공통 소재를 제목으로 하여, 작품별 본편 영상과 각국의 언어로 번역된 자막, 그리고 코멘터리 영상 등을 수록한다. 영화를 통해 한국의 역사와 문화 전반을 해외에 소개할 목적으로 매년 해외 공관이나 문화원 등에 비영리적으로 배포되고 있다. 작년에는 “영화와 남성: 영화로 보는 스타 페르소나”라는 제목의 DVD에, 한국사회의 일면과 시대의 감성을 머금고 있는 남성 인물들이 인상적인 한국영화 6편을 수록했다. 그리고 감상자들이 한국에 대해 간략히 소개받을 수 있는 짧은 콘텐츠를 기획해 부가 자료로 함께 수록하고자, DVD에서 다루고 있는 남성 배우 6인 중 한 명에 대한 비디오 에세이를 기획했다. 내부 논의 끝에 최종 선정하게 된 에세이의 주인공은, 순정과 헌신, 소시민의 나약함, 일그러진 욕망 등 다채로운 감정을 표현한 국민 배우이자 고전과 동시대를 아우르는 스타로 기억되는 한국영화의 얼굴, 안성기였다. 실제 연령대로 비춰볼 때, 안성기는 에세이를 제작한 이무언의 아버지 세대이면서 작품 촬영 당시에는 그(이무언)와 같은 또래였다. 또한 안성기가 극중 인물을 형상화하며 선보인 특유의 ‘얼굴’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한국사회의 각기 다른 국면을 관통함에 따라, 1980년대의 시절이 하나로 통합되는 듯한 느낌 역시 받았다고 이무언은 전했다. “이미지들의 느슨하고 싱거운 연결”을 통해 이러한 인상이 에세이를 감상하는 이들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랐다고 한다. 반면 윤서연 연구원은 안성기가 각기 다른 영화에서 선보인 대사들 중 인상 깊은 부분들을 모아 1980년대 시대정신과 같은 특정 의미를 강조하여, 작품과 쇼트들의 의미를 비교적 명료하게 전달하고자 했다. 이 두 가지 입장은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 2017년 시네마테크KOFA에서 그에 관한 특별전을 개최했을 때 제작된 영상 “한국영화의 페르소나, 안성기전”을 참고하고, 구술채록 사업 진행 중 그의 구술 내용이 녹음된 파일들을 다시 들어봤으며, 그가 출연한 수많은 작품 중 10편을 골라 실제로 삽입할 쇼트를 신중히 선택했다. 쇼트마다 배어있는 정서를 자막과 음악으로 배치하기도 했다. 특히 서로 다른 작품에 속한 장면을 소품이나 장소 등을 매개로 연결하며 안성기가 작품과 작품 사이를 유기적이면서도 자유롭게 오가는 듯한 느낌을 자아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연출 중 하나는, < 기쁜 우리 젊은 날 >(배창호, 1987) 중 덕수궁의 벤치에서 각각 아내( 황신혜 )와 딸에게 자상함을 베풀지만 냉대를 받고 마는 두 장면을 한 화면에 나란히 배치해 동시에 재생한 대목이다. 같은 장소를 배경으로 아내와 딸을 향한 그의 행동이 중첩되는 순간들이 보이는데, 이는 필름이 아닌 디지털 영상이 보편화된 시대에 두 개의 영상을 2채널로 나란히 배치하며 가능해진 실험이라고 윤서연 연구원은 덧붙였다. 한국고전영화 에세이 - ‘기쁜 우리 젊은 날 그리고 안성기’ (이미지 클릭 후 재생) 관객과의 대화 (질문1) 1980년대까지 한국영화의 ‘스타’들에게는, 할리우드 스타들로부터 충족되지 못한 국내 관객의 욕망이 투사되는 측면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적인 관점에서 1990년대부터는 이들만의 영역이 독립적으로 구축됐다는 느낌을 받는데, 한국영화의 각 시기가 할리우드 스타 시스템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에 대해 발표자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 (답변_이윤종 영화연구자) 고전 할리우드 시기 영화산업은 몇몇 주류 영화 스튜디오가 제작과 배급, 상영을 전담하는 방식으로 운영됐고, 배우들 역시 각 스튜디오에 소속된 채로 활동했다. (하지만 1948년 미국 대법원에서 이러한 영업 활동이 ‘독점’에 해당한다고 판결하면서 여러 스튜디오가 해체됐고, 여기에 소속됐던 배우들이 개별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같은 시기 한국에서는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불가능했던 측면도 있지만 이러한 스튜디오 중심의 스타 시스템 자체가 확립되지 못한 상태였고, 할리우드의 방식을 모방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 해방 이후 신상옥 감독이 이끄는 신필름이 당시 국내 영화산업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면서 스튜디오 시스템에 근접한 운영 양태를 보였는데, 1970년대부터는 이마저도 쇠퇴했다. 그리고 이전과 같이 감독과 배우, 영화 스태프들 모두가 독립된 개인으로서 활동하게 된다. 1980년대까지는 1990년대 이후에 비해, 영화를 비롯해 여기에 출연한 배우들 역시 대중에게 큰 파급력을 얻지는 못했던 시점인데, 와중에 안성기와 같은 ‘국민 배우’가 탄생했다는 점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질문2) 20대 관객의 입장에서는 < 라디오스타 >(이준익, 2006)나 < 실미도 >(강우석, 2003) 등의 2000년대 이후 작품을 중심으로 안성기 배우를 기억하게 되는데, 과거의 다양한 출연작들을 통해 그의 활동을 한국영화사의 맥락에서 돌이켜볼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었다. 비디오 에세이를 제작하면서, 여러 출연작 중에서도 중요하다고 인식되는 장면들을 구분해내고 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작업이 쉽지만은 않았으리라고 예상된다. 작업 도중 겪게 되신 고충 이 있다면 듣고 싶다. (답변_이무언 비디오 에세이스트) 감상을 공유해주셔서 감사드린다. 인상 깊은 장면을 선정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장면을 확인할 때마다 영상의 일부를 이미지로 캡처해두고, 작품 안에서의 타임코드와 함께 그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를 메모했다. 에세이에서 다룰 모든 작품에 대해 이 작업이 완료되면, 캡처된 이미지들을 훑어보며 관련 장면을 어떻게 연결할지를 고민했던 것 같다. 각 이미지를 연결하는 과정에서는, 안성기의 연기를 통해 전달되는 여러 가지 인상들(‘아버지’, ‘남성’ 등)이 쇼트들의 유기적인 연결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지각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안성기 개인의 삶이 연상되거나 관객 스스로가 처한 ‘현실’ [2] 과 작품 속의 ‘허구’가 연결되는 것처럼 느껴져서 흥미로웠던 장면들도, 어렵지만 제시하고 싶었다. 또한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는 안성기의 ‘얼굴’ 외에 다른 요소들도 활용하려고 노력했다. 잔을 부딪치며 건배하는 이미지, 수면 위에 반사된 이미지, 극중 시계를 비춘 이미지 등이, 매 장면 돋보이는 그의 다채로운 ‘얼굴’들을 연결해줬다. 한국고전영화 에세이 - ‘기쁜 우리 젊은 날 그리고 안성기’ 중 시계와 잔이 등장하는 쇼트 (질문3) 1960년대 한국영화의 멜랑콜리적 지식인 주체성에 대해 연구한 바가 있는데, 금동현 평론가의 발표에서 <장군의 수염>과 <안개>가 다뤄져서 반가웠다. 1960년대 한국영화에서 배우들이 담지하고 있는 멜랑콜리적 주체성 이 무엇일지에 대해 여쭙고 싶다. (답변_금동현 영화평론가) 오늘 분석한 작품들에서는 멜랑콜리를 자아내지 않고 ‘체현한’ 인물들이 등장했다. 물론 1960년대에는 멜랑콜리를 재현하는 몇 가지 요소가 발견될 뿐 멜랑콜리라는 감수성 자체가 이 시기에만 두드러졌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멜랑콜리의 흔적이 관찰되는 1960년대 한국영화의 한 대목을 꼽자면, ‘코미디’라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1960년대 한국 코미디영화에서 웃음은 모종의 이유로 ‘경직되어버린’ 무언가를 조롱할 때 자주 발생했던 것 같은데, 이렇게 웃어야 하는 데 웃지 못하는 순간( 이봉래 감독의 영화에서의 몇 가지 장면이 예가 될 수 있다)이 어떻게 보면 멜랑콜리한 상태에서 받는 느낌과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질문4) 오늘 언급된 배우 중, 배우 김혜수가 유독 눈에 띈다. 1990년대 당시 그는 확고한 ‘무비스타’로 자리매김한 상태가 아니었고, 광고나 드라마를 통해서도 아직 다른 스타들만큼의 파급효과를 일으키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1990년대를 대표하는 스타로 김혜수 가 자연스레 떠오른다는 것이 독특한 지점이다. 이 시기 스타로서 김혜수의 부상을 분석하실 때 다른 배우들과 비교하여 어떤 접근법을 적용하셨는지가 궁금하다. (질문5) 2000년대 이후부터 최근까지 배우 김혜수와 한석규가 선보인 연기 스타일이, 그들이 1990년대에 수행하던 방식과는 달라졌다고 말씀해주셨다. 배우들이 선보이는 연기의 방향성이 재정립되는 데는, 영화에 대한 관객의 욕망이 변화하는 현상이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시대별로 이념이나 정치성, 관객의 욕망 등의 변화가 배우들의 연기 스타일 변모에 어떻게 작용할 수 있을지 를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면 좋겠다. (답변_정민아 영화평론가) 두 질문에 대해 한 번에 답변 드리고 싶다. 말씀하신 대로 김혜수 배우가 영화계 스타로서 두각을 나타낸 시점은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다른 배우들에 비해 다소 늦다. 하지만 1990년대 화보와 예능, TV를 포함해 대중매체 전반에서 그가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하며 성장한 여정을 고려하면, 그리고 이 시기 관련 콘텐츠를 향유했던 경험을 되새겨보면, 1990년대를 대표하는 스타가 김혜수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이는 오늘날 스타가 탄생하는 과정과도 유사하다. ‘영화’와 그밖의 영역(방송 등)이 명확히 구분됐던 과거와 다르게, 200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는 ‘배우’의 활동 분야가 대폭 확장됐고 분야 간 경계도 거의 사라졌다.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 분야에서 연기 활동을 이어가는 이들은 모두 ‘배우’로 호명되며, 그들이 연기를 선보이는 분야 역시 한 가지로 국한되지 않는다. 따라서 스크린을 통해서만 스타로 거듭나기보다, 1990년대 본격적으로 파급된 각기 다른 매체에서 강렬한 영향력을 발휘해 자신만의 스타 이미지를 구축한 김혜수가, ‘멀티 플레이어’로 활약하는 복합적 차원의 배우상을 1990년대부터 선구자적으로 확립한 이로 평가될 수도 있을 것 같다. * 현장 BEHIND CUT * *** [1] 박진희, “ 복혜숙과 석금성을 헷갈려하다 ”, KMDb 영화글, 2023. 7. 27. [2] < 개그맨 >(이명세, 1988) 중 이발사가 이종세(안성기)에게 “어렸을 때부터 그 방면에 재능이 많으셨죠?”라고 물어 아역 배우 시절 안성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거나, < 칠수와 만수 >(박광수, 1988) 중 “우리 쳐다보는 거 아니에요?”라는 대사 이후 배우 박중훈과 함께 카메라를 응시하는 장면 등이 있다.
한국영화의 '퀴어함'이 장르나 소재, 영화사적 순간 등에 반영되는 양상을 분석합니다. * 본 글에는 <색깔있는 남자>의 반전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980년대 한국영화 산업은 여러 면에서 척박했던 시기로 회자된다. 양과 질 모든 측면에서 한국영화 산업의 첫 르네상스라 평가됐던 1960년대를 지나 1970년대와 80년대는 독재 권력의 감시 하에 정치적으로 혼란스럽고 검열이 극심해지면서 산업적 토대와 시스템이 허약해진 시기로 평가된다. 1970년대부터 대중추수적인 에로티시즘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 바보들의 행진 >(하길종, 1975)처럼 청춘을 다룬 영화들을 중심으로 주제와 형식 측면에서 저항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이 간간이 출현했다. 또한 1980년대 후반에는 한국영화의 전면적 시장개방이 일어나면서 한국영화 점유율이 급격히 떨어지긴 했지만, 영화제작업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검열제도가 심의제도로 전환되고 저항적인 학생영화운동을 포함해 새로운 영화세대가 부상하면서 독립영화와 코리안 뉴웨이브의 싹이 틀 수 있는 움직임들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 색깔있는 남자 >(김성수, 1985)가 개봉된 1980년대 초중반은 전두환 정권의 적극적인 3S(Sex, Screen, Sports) 정책, 선정성과 폭력성이 극대화된 1970년대 후반~1980년대 할리우드 장르 관습, 흥행작의 끝없는 시리즈화, 컬러 비디오라는 새로운 부가시장의 저예산 문법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면서 한국영화 산업 전반이 에로영화에 몰두한 것처럼 보인다. <색깔있는 남자> 역시 에로틱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다. 이 영화는 당시 대부분의 에로영화들처럼 다양한 정사 장면을 넣기 위한 지나치게 복잡한 인물 구도와 설득력 없는 급작스러운 반전, 컬러 비디오 시대에 걸맞은 화려한 색상과 조명, 줌 쇼트와 프리즈 프레임 등의 과도한 사용을 보여준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선정성을 목표로 두면서 느슨해진 서사 그리고 부족한 예산과 시스템을 메우기 위한 표현적 과장은 오히려 이 영화를 급진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이 지점에서 김형석 은 <색깔있는 남자>를 < 디아볼릭 >(앙리 조르주 끄루조, 1955)이나 < 원초적 본능 >(폴 버호벤, 1992)과 같은 놀라운 반전 서사를 가진 1980년대 대중영화의 숨겨진 걸작에, 이문우(「1980년대를 퀴어링하기」)는 범죄화하는 방식이긴 하지만 레즈비언을 가시화한다는 측면에서 퀴어적 독해의 텍스트로 위치시킨다. <색깔있는 남자>는 제목만 보면 김성수 감독의 전작, 장미희 와 이영하 주연의 < 색깔있는 여자 >(1980)의 후속작처럼 보이지만, 두 영화는 장르적 방향성이 완전히 다르다. <색깔있는 여자>가 신파적 특징이 강한 여성수난사라면, <색깔있는 남자>는 냉철하고 잔인무도하게 범죄를 저지르는 팜 파탈과 여성 착취적이고 이기적인 옴 파탈이 대격돌하는 스릴러 영화다. 이 영화는 당대 몇몇 에로영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선정적 재현을 위해 비규범적 성적 욕망과 관계를 소재로 가져온다. 유사 근친상간, 사도매저키즘, 양성애와 동성애를 직접적으로 묘사할 뿐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 있어서도 전통적 젠더 역할을 뒤집는다. 영화는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패션 디자이너 샤르망 최( 임성민 )의 귀국 기자회견으로 시작한다. 세련된 매너에 잘생긴 얼굴을 가진 그는 돌아오자마자 여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샤르망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여자들의 사랑과 욕망을 이용하는 데 거침이 없다. 샤르망은 공사 모두에서 누나 같은 변수린( 오수미 )의 돌봄과 지원을 당연하게 받고 있지만 정작 그의 집착 어린 사랑은 모른 척한다. 또한 그는 김여사( 홍명진 )의 애인 노릇을 하며 후원을 받아 패션사업을 키워나간다. 그러는 와중에도 다른 젊은 여자들과의 성적 관계를 거절하지 않는다. 저돌적으로 그에게 다가오는 부티크 직원( 오경아 )과 다른 여자들과 달리 자신에게 성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재미교포 사업가 주은몽( 오혜림 )이 그들이다. 모든 여자의 욕망의 대상인 샤르망은 이 모든 관계의 중심인 것처럼 보인다. 샤르망을 연기한 임성민은 TV와 스크린을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한 스타로 신성일 이나 남궁원 같은 이목구비 뚜렷하고 키 큰 ‘미남배우’의 계보에 있긴 했지만 훨씬 세련되며 때로는 유약하기도 한, 그래서 이성애 여성들에게도 위협적이지 않은 성적 대상이 될 수 있는 미묘한 스타성을 갖고 있었다. 임성민이 <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장길수, 1994)에서 수많은 여성의 이상형으로 꼽히는 (그래서 여성운동 활동가 강민주에게 전략적으로 납치당하는) 스타 배우 백승하로 캐스팅된 것은 그의 실제 스타 이미지에 일부 근거한 것이기도 했다. 매너 좋고 유약한 남성성에서 오는 그의 스타성은 에로영화의 선정적 노골성을 약화하는 데 도움을 줬다. 그런 면에서 임성민은 에로영화의 타겟 관객을 이성애 여성으로 확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수 있다. 실제로 여성 주인공들보다 임성민을 중심에 놓고 “에·놈·쌍쉬엘(Un homme sensuel)”이라는 카피를 전면에 내세운 포스터는 주인공 남성을 성적 대상으로 스펙터클화 하려는 의도를 명백하게 드러낸다. (좌) <색깔있는 남자> 포스터 (우) <색깔있는 남자> 중 배우 임성민 하지만 이 영화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샤르망은 자기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자신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옴 파탈이다. 샤르망은 사업 확장을 위해 공장을 구매할 자금이 필요하다며 김여사를 부추기고, 김여사는 기어이 병들고 늙은 (가학적 성욕을 가진) 남편( 변희봉 )을 복상사하게 만든다. 범죄와 그에 따르는 불안과 집착은 연쇄성을 갖게 되고 영화는 점점 에로보다는 스릴러에 집중한다. 자금을 확보한 샤르망이 김여사를 귀찮아한다는 것을 눈치챈 변수린은 그렇잖아도 질투 때문에 마땅치 않던 그녀를 차로 여러 번 치어 살해한다. 변수린의 범죄를 알게 된 샤르망은 자신을 향한 집착이 부담스러워지고 재미교포 사업가 주은몽과 새 삶을 계획한다. 주은몽은 다른 여자들과 달리 그에게 집착하지 않는 ‘쿨’한 여자다. 결국 그는 변수린을 기찻길에서 잔인하게 살해한다. 하지만 주은몽과 형사들은 그를 살인자로 의심하고 변수린이 살아있는 것 같은 이상한 징후들이 그를 불안에 휩싸이게 만든다. 마지막 장면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반전을 내놓는다. 그 반전을 예상하지 못한 건 영화가 반전을 위한 서사를 거의 쌓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디아볼릭>을 넘어선 파격적 혹은 허술한 반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완전히 주변부 인물, 즉 조연이었던 직원과 영화 후반부에 등장해 존재감이 미미했던 주은몽이 이 모든 계략을 지배하며 완전범죄를 저지른 레즈비언 커플이었음이 매우 급작스럽게 밝혀진다. 주은몽은 변수린에게서 벗어나고픈 샤르망의 욕망을 자극해 공장을 판매한 대금을 자신에게 투자하도록 유도했으며, 아마도 사적, 공적 공간 모두에서 프레임 바깥에 상시적으로 존재했을 직원은 온갖 정보를 수집해 완전범죄를 계획하고 변수린과 샤르망의 대화를 녹음해 변수린이 살아있는 것처럼 꾸밀 수 있었을 것이다. 변수린, 샤르망, 주은몽을 훔쳐보는 제3의 시선이 있다는 것을 종종 암시하지만 서사적으로 그 눈이 직원의 것일 거라는 예측을 하기는 어렵다. 프레임 바깥 존재인 그들의 비가시성과 유령성은 완전범죄와 ‘완벽한(예측 불가능한)’ 반전 서사를 가능케 하는 조건이다. 비가시적이고 유령적인 레즈비언 커플이 변수린의 유령을 위장하고 무대화할 때 과장되게 연출된 줌 쇼트, 화려한 번쩍이는 조명, 사각앵글 등은 그들 스스로 유령적 존재였다는 점을 돌이켜보면 매우 아이러니하다. 변수린이 김여사를 살해할 때 부띠크 직원을 용의자로 몰기 위해 그의 모습으로 변장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러한 과장과 위장은 1980년대 에로틱 스릴러의 문법이기도 하면서 자신들을 드러낼 수 없는 레즈비언 커플의 유령적 현현의 비틀어진 알레고리가 된다. 전말이 드러나는 에필로그, 즉 마지막 장면 바로 직전 쇼트에서 샤르망은 자신을 체포하려는 형사들에게서 도망쳐 기차를 향해 정면으로 달려간다. 기차와 부딪히기 직전 그의 신체는 프리즈 프레임 효과 속에서 동결된다. 기차의 헤드라이트 때문에 하얗게 날린 스크린은 종결보다는 다른 이미지와 서사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하얀 스크린과 샤르망의 신체가 한중간에서 찢겨나가기라도 하듯 바로 이어지는 쇼트에서 창문 양쪽이 열리고 하얀 커튼이 갈라지면서 그 사이로 누드로 침대에 누워 있는 두 여자, 부띠크 직원과 주은몽이 등장한다. 그녀들은 샤르망의 신체와 스크린(그리고 이성애 서사)을 찢고 나온 것처럼 보인다. 마치 < 에이리언 >(리들리 스콧, 1979)에서 에일리언과 접촉했던 남자 승무원의 배를 찢고 아기 에일리언이 나오는 장면이, 직유적으로 (불가능한) 남성출산을 가리켰던 것처럼 말이다. 이제까지 어떤 서사적 암시도 없었기에 그 반전은 그야말로 영화 전체를 헤집고 뒤집는 얼룩이 된다.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여자 등친 돈, 여자가 돌려받았을 뿐이야”라고 그럴듯한 범죄 동기를 던져줌에도 이 반전은 전혀 납득할 수 없다. 이 예측 불가능한 에필로그는 철학자 질 들뢰즈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회화를 분석하며 그의 회화가 구상이나 추상 어느 한쪽에도 속하지 않으며, 오히려 구상을 뒤흔들고 해체하는 힘의 운동(강도)에 가깝다고 분석한 것에 가깝다. 들뢰즈가 ‘돌발흔적’이라고 부른 것 말이다. 돌발흔적은 구상에 가까운 그림 위에 우발적이고 맹목적으로 던져진 국지적이고 질료적인 손의 흔적을 지칭한다. 어떤 면에서 이 영화에서 퀴어적인 것은 영화 내내 이어진 팜 파탈과 옴 파탈 간의 연쇄 범죄도, 비규범적 섹슈얼리티도, 레즈비언 커플이 가시화되는 에필로그도 아니다. 그보다는 국지적인, 흰 스크린 위의 얼룩과도 같은, 마지막 한 씬으로 영화 전체를 뒤흔들고 반향을 만드는 힘의 강도다. 무엇도 선명하게 의도되지 않고 혼탁하기 그지없다. 외삽도 내삽도 아닌 방식으로 존재하며 우발적으로 스크린을 찢어내며 등장한 돌발흔적. 레즈비언 커플은 그야말로 샤르망의 몸, (혹은) 스크린을 찢고 자진 탄생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태어나자마자 기존의 (이성애) 서사를 완전히 망쳐 놓는다. 영화는 새로운 영화를 시작하듯 “아... 색깔있는 남자여 안녕”이라는 대사를 던지며 웃는 주은몽의 얼굴로 다시 한 번 프리즈 프레임하며, 샤르망의 프리즈 프레임을 취소시키고, 그 자신의 얼굴로 끝을 낸다. 에필로그 ‘얼룩,’ ‘돌발흔적’에 그칠 수밖에 없던 레즈비언 커플은 기껏해야 하나의 씬, 비밀스러운 작은 침실에서만 가시화될 수 있었다. 최근 개봉을 앞두고 있는 두 편의 퀴어 장편영화 < 딸에 대하여 >(이미랑, 2023)와 < 럭키, 아파트 >(강유가람, 2024)는 사회와 공동체에 의해 지워버려야 하는 얼룩과 불쾌한 냄새로 취급되는 레즈비언 커플의 가족구성권 혹은 자기 자리와 공간의 확보를 다루고 있다. <색깔있는 남자>의 ‘에필로그’는 국지적인 것이 바탕을 바꾼다는 면에서 퀴어적으로 독해될 수 있지만 분명 한계가 있다. 반향을 만들어내는 얼룩의 자리는 강제된 것이고 실제로 그 자리 이외의 것은 거의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딸에 대하여>와 <럭키, 아파트>는 레즈비언 커플들이 더 이상 얼룩과 냄새로만 남아있지 않을 것이며, 돌발흔적은 오히려 전통적인 가족관계를 넘어 상상된 관계들과 공동체들의 이접 속에서 일어난다는 점을 말한다. 돌발흔적은 시대에 따라 다르게 촉지될 수 있다. <딸에 대하여>, <럭키, 아파트> 중 조혜영(영화평론가) l 영화적 순간들을 공유하고자 글을 쓴다. 영상문화 기획연구 단체 '프로젝트38' 연구원, 『원본 없는 판타지』(2020), Mediating Gender in Post-Authoritarian South Korea (2024) 등 공동 집필.
옛날 한국영화를 보려고 하는 현대 관객들의 발목을 잡는 것 중 하나는 이런 영화 속 남자주인공들이 대부분 끔찍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형표의 < 아가씨 참으세요 >가 남자주인공 김민욱을 등장시키는 첫 장면을 보자. 조깅을 하고 있던 민욱은 여자주인공 진리화가 타고 있는 차를 아무 이유도 없이 가로 막는다. 항의하는 리화에게 리화의 폴크스바겐을 달구지라고 놀려대더니 어떻게든 빠져나가려는 리화의 차 지붕 위로 뛰어오른다. 여기에 어떤 이유가 있는가? 아니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남자주인공에게 이런 짓을 시키면 재미있는 놈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게 겨우 1981년 일이다. 이 ‘재미있는 놈’을 연기한 사람은 당룡이다. 본명이 김태정인, < 사망유희 >에서 이소룡의 대역으로 나왔던 배우다. 당룡의 캐스팅은 ‘홍콩영화’가 되려고 하는 이 영화의 욕망을 반영한다. 당룡의 무술은 이 영화의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그렇다고 그게 영화에 엄청난 긴장감을 부여하는 건 아니다. 일단 이 영화는 코미디이고 둘째로 코미디라는 것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악당들이 너무 무능해서 주인공들이 잘못될 거라는 생각이 안 든다. 예를 들어 진리화와 리화의 친구는 둘 다 영화 초반에 납치되지만 모두 남자주인공의 도움없이 탈출에 성공한다. 리화의 친구는 태권도 유단자로 설정되어 있고 액션신도 많기 때문에 보고 있으면 ‘그냥 남자주인공 없이 가도 되는 이야기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진리화라고 하는 홍콩인 교환학생을 여자주인공으로 내세운 건 ‘홍콩영화’가 되려는 욕망의 또다른 표현이지만, 이 캐릭터를 연기한 사람은 당시 장미희, 유지인과 함께 7,80년대 한국 여자배우 3대 트로이카였던 정윤희다. 그렇다고 이 영화에서 정윤희의 ’외국인‘ 연기를 기대하면 곤란하다. 그런 것에 신경을 썼던 시대가 아니다. 전문성우가 후시녹음을 하던 시절엔 언어의 사실성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1981년작이니 정윤희의 두 영화 대표작인 <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와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와 같은 시기에 나왔다. 정윤희는 이 두 편의 영화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연달아 받았으니 배우로서도 절정기였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기억나는 정윤희의 연기는 대부분 명연기와 거리가 멀다. 나는 진리화가 친구 앞에서 태권도 도복을 입고 발레, 또는 발레라고 우기는 무언가를 하는 장면을 먼저 뽑을 거 같은데, 이건 어느 각도로 보더라도 그냥 유치원 재롱 잔치다. 정윤희는 그렇게까지 몸을 유연하게 잘 쓰는 배우는 아니다. 이 영화에서는 그걸 코미디의 재료로 활용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어떤 내용인가.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와 있는 홍콩 재벌 딸인 진리화를 납치하려는 악당들이 있고 남자주인공과 주변 사람들이 리화의 재산을 빼앗으려는 이 음모를 격파한다는 이야기다. 아, 그리고 < 애마부인 >으로 뜨기 직전인 안소영이 악당의 여자로 나온다. 아무도 신경 안 쓸 스포일러를 건드리자면 나중에 주인공들을 돕는 착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동기를 설명하기 위해 영화는 성폭행 회상 장면을 넣는다. 당연하지만 이 이야기는 코미디와 액션을 엮기 위해 간신히 존재하며 얼마든지 다른 무언가로 교체될 수 있다. 대부분 액션은 코미디에 휩쓸리며 코미디의 일부는 여장한 민욱이 악당들을 속이는 장면처럼 종종 보기 고통스럽다. 하지만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에서 악당들이 튕겨져 나가고 나중에 필름이 거꾸로 돌면서 함께 모두 다시 엘리베이터에 빨려들어가는 장면처럼 초현실적인 개그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가씨 참으세요>는 누가 봐도 정윤희의 영화이고 결국 이 배우를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다. 영화는 어떻게든 당대 최고 스타였던 주연배우의 외모를 최대한 활용하려고 하는데, 당시 영화 만드는 사람들은 액션 장면 중에 원피스를 찢어 배우의 엉덩이를 노출시키는 것과 같은 것이 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 민망함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비슷한 시기에 나온 토착 에로티시즘 영화들과는 다른 식으로 정윤희의 캐릭터와 몸을 바라보며 여기에는 여러가지 다른 가능성이 보인다. 그리고 현대 관객들은 왜 그 가능성들이 적극적으로 이용되지 않았는지, 왜 당시 영화 만드는 사람들의 여자 몸에 대한 상상력이 딱 그 정도에서 멈추었는지 궁금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