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의 꿈
- 감독
- 홍파
1960년대 한국영화계엔 흔히 ‘가케모치(掛け持ち)’라고 하는 배우들의 겹치기 출연 관행이 있었다. 입도선매(立稻先賣), 즉 영화가 제작되기 전에 미리 지방 흥행업자들에게 영화상영권을 팔아 그 돈으로 영화를 제작하던 당시 한국영화의 제작방식에서 자본을 투자하는 지방 흥행업자들이 선호하는 몇몇 스타 배우들의 출연은 중요한 요건이었고, 또 얼마나 많은 영화에 겹치기 출연하는지가 당시 배우들의 인기를 가늠하는 잣대로 여겨졌기 때문에 생겨난 웃지 못할 진풍경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겹치기 관행은 비단 배우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감독을 비롯한 기술 스태프들도 겹치기를 했다. 가능한 한 빨리, 많은 작품을 만들어야 했던 시대였기 때문에 소위 몰아 찍기에 능한 감독이나 스태프들이 선호되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이들 인기 감독, 스태프들도 배우들처럼 여러 작품을 동시에 작업해야 했던 것이다. 사실 배우들의 겹치기 출연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후시녹음의 시대였기 때문에 대사를 외우지 않고도, 역할에 대한 완벽한 이해 없이도 얼마든지 임기응변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감독이나 스태프들이 여러 작품을 동시에 작업한다는 것은 거의 신기(神技)에 가까운 일이다. 빨리 만드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빨리, 잘 만드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광석 은 바로 이 신기에 가까운 일을 했던, 그것도 단연 최고의 촬영감독이었다. 1956년 < 장화홍련전 >( 정창화 )의 조명부 조수로 영화계에 입문한 그는 김영순 , 이성휘 등 촬영감독의 문하에서 촬영부 조수로 경력을 쌓고 1962년 이봉래 감독의 < 새댁 >으로 촬영감독으로 데뷔했다. 흑백 시네마스코프의 안정되고 유려한 촬영으로 데뷔작에서부터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감독을 능가하는 뛰어난 기억력과 작품 해석력으로 몰아 찍기에도 능해 여러 제작자들의 부름을 받았는데, 이 시기 여러 편의 영화를 겹치기 촬영하면서 한 해에 7~8편은 기본이고 심지어 1968년에는 12편의 영화를 촬영하기까지 했다. 특히 그는 ‘몰아 찍기의 귀재’라고 불린 장일호 감독과 황금 콤비를 이뤄 < 생명은 불꽃처럼 >(1965), < 일지매 필사의 검 >(1966), < 서울아줌마 >(1967), < 황혼의 부르스 >(1968), < 단발기생 >(1968), < 상사초 >(1968), < 제4의 사나이 >(1969)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며 자신의 영상미학을 완성해나갔다. 하지만 그는 오랜 연륜으로 힘들게 쌓은 기술과 노하우를 자신의 영달(榮達)이 아닌 후배 영화인들을 위해 썼다. 혈기만 왕성하고 연출의 틀이 완전히 잡히지 않은 신인 감독들에게 그는 든든한 조력자였는데, 데뷔작인 < 꼬방동네 사람들 >(1982)부터 < 젊은 남자 >(1994)까지 8편의 작품을 그와 함께 작업했던 배창호 감독은 이에 대한 흥미로운 일화를 들려준다. “<꼬방동네 사람들> 마지막에 안성기 씨와 김희라 씨가 막 싸우고 하는 장면 있잖아요? 그걸 하룻밤에 다 찍었어요. 그게 콘티상으로 60 몇 커트예요. 밤에 라이트 다 설치하고 슛 들어가면 10신데, 새벽 4시 반, 5시까지 7시간을 찍었는데, 어려운 신 아니에요? 동네에서 쫓겨나게 생겼으니까 더 이상 찍을 수도 없고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래서 소위 몰아 찍기 하고. 물론 리허설은 다 해놨죠. 연기자하고 이렇게, 이렇게 미리 맞춰놓고, 찍고…. 근데 ‘배 감독, 이거 라스트 커트지?’ 탁 아는 거예요. 그렇게 정신없이 찍었는데…. 그 호흡들이 기가 막혔어요. 그런 몰아 찍기의 능률성. 그런 계산하는 거. 그런 면에서 정말 많이 배웠죠.” 배창호 를 비롯해 신승수 (< 장사의 꿈 >), 곽지균 (< 겨울나그네 >), 박종원 (< 구로아리랑 >), 이현승 (< 그대 안의 블루 >), 김성수 (< 런 어웨이 >), 김지운 (< 조용한 가족 >) 등 1980~90년대 한국영화 대표 감독들의 데뷔작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쳤고, 강우석 감독의 < 투캅스 >(1993), < 마누라 죽이기 >(1994), 이명세 감독의 < 인정사정 볼 것 없다 >(1999), 김상진 감독의 < 광복절 특사 >(2002) 등도 그의 열정이 듬뿍 담긴 작품들이다. 2006년 < 아랑 >( 안상훈 )까지 근 50년 넘게 현역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쳤던 그는 때론 엄하기도 했지만, 늘 따뜻한 애정으로 후배 영화인들을 격려하고 다독여주었던 한국영화계의 ‘큰 어른’이었다.
아, 임성민 ! 누군가 내게 한국영화계 최고의 미남배우가 누구였냐고 묻는다면, 이제는 불러도 불러도 대답 없는 고(故) 임성민이라 말할 것이다. 물론 남궁원도 잘 생겼지만 임성민이 좀 더 섹시했다. 고교 육상선수 출신의 탄탄하고 매끈한 체격, 그야말로 훤칠한 조각미남의 대명사였던 그는 ‘변강쇠’ 이대근 으로 대표되는 1980년대 후반 토속에로 장르의 반대편에서 치명적인 도시 남자의 ‘지골로’(gigolo)스러운 매력을 뽐냈다. 물론 마흥식 , 이영하 처럼 비슷한 계열의 다른 배우들이 있었지만 역시 그가 가장 섹시했다. 마치 ‘한국의 미키 루크’라 불러도 좋을 정도의 섹시함을 과시하며 < 달빛 멜로디 >(1984)에서는 안소영 , < 바람난 도시 >(1984)에서는 이미숙 , < 탄드라의 불 >(1984)에서는 오혜림 , < 무릎과 무릎 사이 >(1984)에서는 이보희 , 그리고 < 색깔있는 남자 >(1985)에서는 무려 오수미 , 오혜림 , 오경아 트리오의 상대역으로 출연하며 입지를 다졌다. 이즈음, 요즘 한창 잘 나가는 TV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 류수영 의 본명인 ‘어남선’처럼 뭔가 수산업을 연상시키는 ‘임관배’라는 본명을 내던진 것은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다. 달빛 멜로디 , 무릎과 무릎 사이 , 그리고 장사의 꿈 세월이 흘러 <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1994)에서 최진실 에게 납치당한 한국 최고의 미남 배우도 바로 그였다(당시 최진실의 지시로 그의 목을 조르고 있던 무명의 신인배우가 바로 유오성 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1995년 8월 17일, 어린 딸을 하나 남겨둔 채 간경화 악화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 사의 찬미 >(1991)에서 윤심덕( 장미희 )과 사랑에 빠진 와세다대학 영문과 학생 김우진으로 출연해, 동그란 뿔테 안경을 쓴 지적인 모습을 뽐내며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받기도 하는 등 배우로서의 원숙미를 서서히 드러내던 시기였다. 그렇게 남자배우로서 한창 뻗어 나갈, 불과 마흔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떴으니 너무나 안타깝다. 그래서 한국형 하드보일드 장르가 안착한 지난 몇 년간 멋진 고참 형사나 보스로 출연한 그의 모습을 가끔 상상해본다. 공교롭게도 임성민 은 역시 세상을 뜬 장국영과 1956년생 동갑인데, 그보다 한 살 많은 1955년생 임달화의 현재 모습을 보면서 ‘임성민이 살아있다면 저런 느낌이지 않을까’ 헛된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황석영 원작, 신승수 감독 < 장사의 꿈 >(1985)은 ‘털보’ 임성민 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씨름 선수 차일봉(임성민)은 서울에 올라와 방황하던 중 돈을 벌기 위해 새벽 인력시장에 나선다. 당연히 어딜 가나 눈에 띄는 외모다. “어이, 거기 털보! 덩치가 좋구먼. 나랑 같이 일하러 갑시다.” 하지만 공사판의 한 할아버지가 그의 육체가 부러운 듯 점잖은 표정으로 독설을 내뱉는다. “힘이란 믿을 게 못 되지. 늙어버리면 그만이니까. 이제 힘은 별로 쓸모가 없을 거외다. 용이 뭍에 오르면 개미가 덤비는 법이지.” 그러자 일봉은 갑자기 밥을 먹다 말고는 쌓아놓은 벽돌 탑을 단숨에 넘어트리며 장사의 희열에 젖는다. 고향에서는 황소를 독차지할 정도의 실력이었지만 전국 규모의 천하장사 대회에서는 크게 명함을 내밀 수준이 못 되니,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더 큰 도전의식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그런 식의 B무비스러운 고속촬영 판타지 장면은 영화 내내 반복되는데, 아마 연극으로도 만들어진 <장사의 꿈>이 흉내 낼 수 없는 영화적 효과를 위한 장치일 것이다. 영화의 시작, 털보 임성민 이후 그는 불고기를 사주는 돈 많은 게이( 남포동 )의 유혹에 넘어갈 뻔하면서 도시의 삭막한 공기에 눈뜨게 된다. 그러다 급기야 영문도 모른 채 지하실에서 은밀하게 만들어지는 에로영화에까지 출연하게 되는데, 그 촬영현장에서 맨 처음 맞닥뜨린 헐벗은 애자( 금보라 )를 보고는 한눈에 반한다. 하지만 바지가 부풀어 오른(-_-;) 일봉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대로 된 ‘합’을 맞춰보기도 전에 애자의 기둥서방 마대수( 송경철 )는 애자를 데리고 누드캘린더를 촬영하는 곳으로 휭 떠나버린다. 그래도 일봉의 남다른 체격과 외모 때문인지 곧 두 사람은 음지에서 승승장구를 거듭한다. < 부기 나이트 >(1997)의 덕 디글러(마크 왈버그)를 연상하면 될 것이다. 그전까지 대머리 중년 남자배우와 뒹굴던 애자 역시 싱싱한 일봉이 마음에 드는 눈치다. 당연히 최고의 에로배우를 얻은 감독( 정진 ) 역시 신이 난다. 거리로 나간 고다르가 < 네 멋대로 해라 >(1960)를 찍었던 똑같은 16밀리 볼렉스 카메라로 골방에서 에로영화를 찍고 있는 처지일지언정, 그는 생긴 것과 달리 에로영화에 대해 진지한 철학을 설파하기 시작한다. “예술이 별건가, 바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거다. 자연의 아름다움, 육체의 아름다움. 그중에서도 남녀가 사랑할 때의 아름다움이 가장 아름답다. 사랑 앞에서는 어떤 가치도 무의미하다. 어서 옷을 벗고 그 폼 나는 육체를 아낌없이 뽐내고 자랑하라!” 급기야 그들은 깊은 산 속에서의 야외 로케이션도 감행하게 되는데, 쇠사슬을 두른 ‘타잔’ 임성민 이 쇠사슬을 끊고 하얀 천을 날리며 헐벗은 채 뛰어오는 ‘선녀’ 금보라 를 향해 달려간다. “도시 생활에 찌든 사람들에게 야성을 되찾아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감독의 하나 마나 한 개소리가 이어지는데 어쨌건 북한산에서 이뤄진 ‘타잔과 선녀의 합궁’이라는 아찔하고 키치적인 동서양의 만남 앞에 그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순간 이마무라 쇼헤이의 < 인류학 입문 >(1966)이 살짝 떠올랐다고 고백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타잔 임성민 , 선녀 금보라 임성민 도 그렇지만 ‘cute’와 ‘sexy’가 하나로 만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던 금보라 의 매력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 장사의 꿈 >에서 일봉이 과거 시골 읍내를 주름잡던 천하장사였다면 애자는 바닷가 마을의 해녀였다. 그래서 “애자 씨는 너무 차가워요”라는 일봉의 질문에 “어려서부터 해녀로 자라서 피가 차가운가 봐요”라는 나름 그럴듯한 답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 차가운 매력은 에로 연기가 서투른 일봉의 연기를 교정하는 데 있어서도 능수능란하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아요. 우리는 서로의 몸을 만지는 게 아니라 조명 불빛을 만지고 있는 거예요”라는 충고는, 지금껏 봤던 그 어떤 에로영화들에서도 깨닫지 못한 최고의 ‘연기론’과 ‘형식미’ 모두를 함축하고 있다. 바로 그 차가움 속에 서울로 올라와 산전수전 다 겪었을 애자의 깊은 슬픔이 묻어나온다. 그것을 드러내기 위한 친절한 몽타주 역시 가슴을 후벼 판다. “서울은 캄캄한 어둠 속의 동굴과도 같다. 줄곧 어둠 속에서 살았다”는 내레이션이 흘러나올 때는 친절하게도 그 건너편에서 시각장애인 두 명이 지팡이를 짚고서 걸어가고 있다. 암흑과도 같은 도시생활을 시각장애인의 그것과 비교하며 B스럽다기보다는, 너무나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EBS스러운 몽타주라고나 할까. 또한 서울을 헤매고 다녔다는 말에는 곧장 벌거벗은 채 새벽 명동거리를 질주하는 애자의 싱싱한 뒤태를 보여준다. 정말 충격적인 몽타주가 아닐 수 없다. 앞서 김수용 감독의 < 도시로 간 처녀 >(1981)를 비롯해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981) 등으로 깜찍한 신인의 미모를 뽐냈던 그녀는 <장사의 꿈> 이후 < 금달래 >(1986), < 늑대의 호기심이 비둘기를 훔쳤다 >(1988) 등에 출연했다. '조명 불빛을 만지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두 사람의 사랑이 이뤄지고 난 다음부터가 문제다. 촬영장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못된 대수를 일봉이 무력으로 제압한 이후, 에로영화 촬영장에 경찰이 들이닥치고 두 사람은 떠돌이 신세가 된다. 우연히 만난 약장수 태산거사( 김인문 )과 함께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그들의 모습은 영락없이 펠리니의 < 길 >(1954)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애처롭고 정감이 넘친다. 하지만 그들에게 행복은 쉬이 허락되지 않는다. 교통사고로 애자가 유산한 이후 1년 동안 떨어져 지내기로 한 것. 일봉은 남창으로, 애자는 그 문제의 기둥서방을 다시 만난다. 이때부터 영화에서 애자는 사라지고 일봉의 고난의 역사가 시작된다. 뚜쟁이인 방배동 오여사( 김영애 )의 안내로 산속에서 (둘 만의 암호인) 초록색 물통을 든 여사님( 김애경 )을 만나 격렬한 정사를 나눈 뒤부터 산에서도 하고, 호텔에서도 하고, 기차에서도 하고, 아이를 원하는 여자의 대리부 노릇도 한다. 수많은 여사님들에 둘러싸여 자라피도 마시며 승승장구하지만 이내 정력은 고갈되고 만다. 급기야 그는 함께 샤워를 하며 정사를 나누던 한 여사님으로부터 “이거 병신이잖아. 어쩌다 이따위를 보냈지”라는 씁쓸한 환불요구에 직면하는 신세가 된다. 병원의 의사로부터 “몸도 마음도 황폐해졌어요. 좀 쉬어야 합니다”라는 진단까지 받고 보니, 마치 그 모습이 혹독한 연예계 생활에 지쳐 간경화로 쓰러진 현실의 임성민 을 떠올리게 해 마음이 아프다. 말하자면 < 장사의 꿈 >은 고 임성민의 레퀴엠처럼 느껴지는 슬픈 에로영화다. 나이트클럽에서 수많은 남자들의 담배 연기에 파묻혀 나체쇼를 하고 있는 애자와 일봉이 조우하는 마지막 장면 또한 실로 충격적이다. 성인이 되어 영화를 다시 보면서는 그 마지막 장면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더랬다. 1980년대 에로영화에 대해 막연한 조소와 냉소를 퍼붓는 사람들에게 <장사의 꿈>은 그야말로 감동의 명편이다. 마지막 장면 임성민 금보라 정진 김영애 감독: 신승수 각본: 신승수 개봉극장: 코리아, 동아 관람인원: 12,601(서울)명
‘몸’이라는 키워드를 빼놓고서 1980년대 한국영화를 이야기할 순 없을 것이다. 이것은 비단 1982년 < 애마부인 >부터 시작된 ‘에로티시즘 영화’에 해당되는 얘기만은 아니었다. < 바람 불어 좋은 날 >(1980)을 기점으로 충무로에 불기 시작한 ‘사회파 영화’에서도 ‘몸’은 중요한 화두가 된다. 사창가를 중심으로 ‘카수 영애’의 고달픈 삶을 그렸던 < 어둠의 자식들 >(1981)과 원래는 그 속편으로 기획되었던 < 바보 선언 >(1984), 박철수 감독의 < 어미 >(1985)와 < 안개기둥 >(1986), 이원세 감독의 < 여왕벌 >(1985), 김호선 감독의 < 서울 무지개 >(1989) 등의 영화에선 인신 매매, 페미니즘, 미국, 정치 매춘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이 몸을 통과해 스크린에 투영된다. 이 시기 이른바 ‘뉴 웨이브’의 작은 흐름을 만들었던 신인 감독들의 시선에서도 ‘몸’에 대한 관심은 여전했다. 이미례 감독의 < 수렁에서 건진 내 딸 >(1984), 장길수 감독의 < 밤의 열기 속으로 >(1985), 장선우 감독의 < 성공시대 >(1988) 등이 테마를 전달하는 수단은 ‘육체’이며, 그 위엔 욕망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신승수 감독의 데뷔작인 < 장사의 꿈 >(1985)도 이 흐름 속에서 읽을 수 있는 영화다. 이 영화는 도시라는 공간 속에서 육체가 어떤 식으로 마모되고 만신창이가 되는지를, 두 남녀를 통해 보여준다. 영화의 시작은 시골에서 올라온 일봉( 임성민 )이 일자리를 얻기 위해 찾아온 새벽의 인력 시장. <장사의 꿈>은 몸이 사고 팔리는 그곳에서 시작하는 ‘거래되는 육체의 오딧세이’인 셈이다. 훤칠한 키에 잘 생긴 외모를 지닌 그는 벽돌 공장으로 가지만 곧 그곳을 그만두고, 씨름 선수에 도전하지만 대회 예선에서 떨어진다. 이때 우연히 만난 소매치기 멍군( 김동수 )은 일봉을 ‘장군’이라 부르며 그를 포르노 현장에 소개한다. 그곳에서 만난 상대 배우 애자( 금보라 )는 악랄한 제작자이자 기둥서방 같은 존재인 마대수( 송경철 )에게 철저하게 착취당하는 신세. 일봉은 애자를 보호하려다 마대수에게 폭력을 가해 전과자가 되고, 출소 후 애자와 동거를 시작한다. 장군 복장을 하고 가게 앞에서 호객 행위를 하거나 막노동 판을 전전하는 일봉. 봉제 공간에서 일하는 애자. 그들은 어느 약장수( 김인문 )을 따라 떠돌이 생활을 시작하지만 임신 중이던 애자는 자동차 사고로 사산하고, 그들은 잠시 떨어져 있기로 한다. 유한 마담들의 성적 대상인 남창이 된 일봉은 애자를 잊지 못하고, 수소문 끝에 찾아간 나이트클럽에서 애자는 스트립 댄서가 되어 있다. < 장사의 꿈 >의 일봉과 애자는 1970년대 개발 독재와 1980년대 천민 자본주의가 도시의 하층민에게 가하는 육체적 수탈을 보여주는, < 영자의 전성시대 >(1975)의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다. 가정부-여공-창녀를 거쳤던 영자가 결국은 불구가 되었듯, 일봉과 애자도 육체적 마비 상태에 이른다. 일봉은 남창 생활 끝에 성 불구가 되고, 스트립 댄서가 된 애자는 마치 산 송장처럼 표현된다. 여기서 <장사의 꿈>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이 혹시 실체는 없는 ‘도시의 유령’은 아닌지 의심한다. 애자는 일봉에게 독백처럼 말한다. “당신과 내가 서로 만지는 건, 몸이 아니라 조명 불빛이에요.” 일봉이 애자를 그리워하는 장면에서도 애자는 마치 귀신처럼 일봉 옆에 나타나 몸을 기댄다. 애자의 판타지 장면에서 그녀는 아무 사람도 없는 거리를 벌거벗고 달리거나 웨딩드레스를 입고 그 거리에 서 있다(이 장면엔 소리가 없다). 포르노 촬영장과 나이트클럽 스테이지의 불그스름하고 어두침침한 조명 아래서 나체로 누워 있는 애자의 모습은 마치 귀신 혹은 시체처럼 보인다(이때 일봉은 말한다. “애자 씨, 몸이 차갑더군요.”) 애자의 육체가 불빛 사이를 유령처럼 빠져나가는 존재라면, 일봉의 육체는 쇼윈도의 마네킨처럼, 무엇인가를 전시하기 위한 욕망의 매개체다. 그는 이 영화에서 마치 ‘옷걸이’와도 같다. 씨름 대회에서 탈락한 후 덥수룩한 ‘수염을 밀어버린’ 그는 카메라 앞에서 ‘옷을 벗고’, 범죄자가 되어 ‘죄수복을 입으며’, 호객 행위를 위해 ‘장군 옷을 입고’, 남장이 되어 매끈한 ‘정장 차림’이 된다. 그는 영화 내내 자신의 옷을 입지 못한다. 그는 끊임없이 규정될 뿐이다. 황석영의 원작을 영화화한 신승수 의 < 장사의 꿈 >은 에로티시즘이라는 당대의 트렌드를 따르는 듯하지만, 육체를 욕망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비판적 거리를 유지한다. 당대의 섹스 심벌이었던 임성민 은 자신의 고유한 이미지를 교묘히 뒤집으며, 관객들은 이 영화를 통해 ‘에로’라는 이름으로 가려진 당시 한국영화의, 아니 한국 사회의 실체를 발견한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엔, 1980년대를 통틀어 가장 애절한 섹스 신이 있다. 포르노를 찍던 일봉과 애자는 “컷!” 소리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섹스를 한다. 도시에서 소외 당한 그들은, 카메라 앞에서만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존재들이다. 당대 그 어떤 에로티시즘 영화도, 이 영화의 이 장면보다 더 비참하고 진정성 있는 섹스 신을 만들어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