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주씨의 범죄
- 감독
- 장 르누아르
- 제작년도
- 1936
- 출연
- 르네 레페브르, 플로렐, 쥘 베리, 마르셀 레베스퀴, 헨리 귀솔
서지환의 < 저 ㄴ(X)을 어떻게 죽이지 >란 영화를 보기 전에 가장 궁금한 것은 ‘저 제목을 어떻게 읽느냐’다. 그냥 ‘저 엑스’라고 읽어야 할까. 아니면 X가 검열한 단어를 찾아서 읽어야 할까. 후자를 따른다면 아마도 X가 검열한 단어는 ‘년’일 것 같다. ‘놈’은 아무래도 덜 검열되는 단어이고 다른 비속어 욕들은 두 글자 이상이니까. 영화의 무대는 시골 전원주택. 중년 부부가 애 없이 살고 있다.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노동으로 돈을 버는 거 같지 않다. 영화 속에서 이들과 함께 사람들은 젊은 고용인 세 명. 여자 둘과 남자 한 명이다. 그러니까 이 부부는 정상적인 사회 시스템에서 격리된 공간에서 옛날 서양 유한계급 사람들을 흉내내고 있는 것이다. 그건 이들이 ‘지나간 시대의 먼 나라’의 특정 계급 사람들이 다른 계급 사람들에게 가졌던 권력을 갈망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사람들이 이 역할극 안에서 선을 넘었고 다른 선도 넘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건 집에 있는 총기다. 대부분은 서바이벌 게임에서 사용되는 페인트건이다. 하지만 아닌 것도 있다. 그리고 지겨워진 남편은 고용인들에 사냥 게임을 제안한다. 여기서부터 관객들은 영화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확인한다. 2021년작이다. 그라고 봉준호의 < 기생충 >은 2019년에 나왔다. 이 영화가 <기생충>의 자장 밑에서 나왔다고 짐작하는 건 타당하다. 하지만 그만큼 게으른 생각이기도 하다. <기생충>을 염두에 둔 영화라도 장 르누아르의 < 게임의 규칙 >의 영향을 더 받았을 수도 있는 것이다. 세상엔 계급을 다룬 수많은 영화들이 있다. 이 세계 속 갈등은 익숙해보인다. 여자 고용인 1번인 하윤은 새로 들어온 여자고용인 2번인 지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윤은 저택 남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지영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그렇다면 제목의 ’저 X’는 저 년’이 맞나? 그런데 요새 세상에 이런 제목 트릭에 그렇게 쉽게 넘어가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일단 이 영화는 프라이드 영화제 상영작이다. 그리고 영화는 이런 역학 관계에 놓인 사람들에 대한 관객들의 고정관념을 반영한 것 같은 그림을 그리다가 중반 이후에 뒤집는다. 그 뒤집음은 비교적 상식적인 생각에 기반을 둔다. 젊은 고용인에 대한 중년남자 상사의 치근거림은 불쾌한 성희롱이다. 당하는 사람도 괴롭고 옆에서 이를 보는 사람들에게도 그렇다. 바라 보는 사람이 성희롱 당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 불쾌함을 설명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이 영화는 그걸 지켜보는 사람, 그러니까 하윤이 성희롱을 당하는 사람, 그러니까 지영을 처음부터 사랑하고 있었다고 친다. 이렇게 하면 진부해보였던 하윤의 행동이 다른 식으로 해석될 수 있어서 이야기가 더 재미있어진다. 여기에는 다른 기능이 있는데, 지금까지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남편의 위치를 사정없이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남편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이성애자 남자의 권력은 하윤이 지영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감추지 않겠다고 생각한 뒤부터 붕괴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보니 남자의 권력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허약했다. 앞에서 나는 이 남자가 어떤 노동도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그건 남자의 사회적 기능이나 가치가 시시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건 정상적인 사회 시스템에서 격리된 이 세계에서 남자가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도 여기에 대해 깊이 고민할 사람이 별로, 또는 전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화는 발랄한 코미디지만 누군가에겐 정말로 무섭게 보일 법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런 단편 영화를 보는 재미 중 하나는 출연한 신인이나 무명배우들이 발표 이후 주목받는 위치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윤역의 하윤경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봄날의 햇살이고 곧 부산에서 공개될 < 딸에 대하여 >(편집자 주: 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 공개되었다) 영화판의 레인이다. 지영역의 방효린은 < 지옥만세 >의 선우이고 넷플릭스 시리즈 <애마>에 캐스팅되었다. 두 배우의 경력이 이후에도 여성간의 관계 또는 퀴어의 주제를 품고 있다는 건 흥미롭다. 심지어 방효린은 <지옥만세> 개봉 이전인 ‘썸머 프라이드 시네마 2022‘에 이미 방효린 특별전이 가능할 정도로 꾸준히 퀴어 주제 단편들을 찍어왔다는 정보를 덧붙이고 싶다.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사진 클릭 시 유튜브 인터뷰 영상으로 이동) 복합문화공간의 진화 '에무시네마'는 '복합문화공간 에무'에서 시작된다. 종로구 중심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에무는 3호선 경복궁역과 873m, 5호선 광화문역과 915m 거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대중교통을 통한 접근성이 높다. 복합문화공간 에무를 기준으로 동쪽에는 세종문화회관과 광화문 광장이 위치하고 서쪽에는 서울특별시 교육청, 경희궁, 숭정전이 있다. 남쪽으로는 돈의문 박물관 마을과 고종의 길, 국립정동극장이 있으며 북쪽에는 동인시장과 운경고택, 배화여자대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복합문화공간 에무의 가장 눈에 띄는 지리적 특성은 서울 중심에 있으면서도 자연적 환경과 가깝다는 점이다. 에무시네마는 건물 뒤편으로 펼쳐지는 경희궁 숲과 맞닿아 있어 복잡한 번화가를 잊게 하는, 한적하고 고요한 풍경을 선사한다. 2010년 사계절출판사 건물의 지하 1층을 확보한 복합문화공간 에무는 전시와 연극 등 실험적인 무대를 꾸리며 관람객을 위한 예술·공연의 장을 만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공간은 소규모 공연장과 갤러리로만 가능했으나, 2014년 건물 전체 리노베이션을 진행하며 복합문화공간 에무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가장 먼저 1층에 아름다운 숲을 등진 '카페 에무'를 오픈하고, 이듬해 2015년 지하 1층을 공연장 '팡타개라지'로 개조했다. 공연장 한편에 바(bar)를 만들어 술과 음료까지 즐길 수 있게 된 팡타개라지는 관객이 무대를 적극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같은 해 5월, 건물 2층에 에무시네마 1관을 개관하고 3년 뒤인 2018년 여름, 3층에 2관을 개관했다. 복합문화공간에서 에무시네마의 탄생이 가장 늦었지만 현재 많은 관객을 활발하게 이끌며 복합문화공간 에무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했다. 지하 1층 공연장 팡타개라지의 공연 무대 복합문화공간 에무는 지하 2층부터 4층 옥상까지 차례대로 스튜디오 에무(B2), 공연장 팡타개라지(B1), 카페 에무(1F), 에무시네마 1관(2F), 에무시네마 2관(3F), 가르강 루프탑(4F)이 위치해있다. 에무시네마는 한 건물에 여러 문화 공간이 자리한 특성을 활용하여 위아래로 오갈 수 있는 입체적인 방식의 영화제를 진행하기도 했다. 작품을 보고 나서 카페에서 소모임 형식으로 대화를 나누고, 또 다음 작품을 보기 위해 다른 상영관으로 향하는 관객 주도형 형태를 고안한 것이다. 수직적 이동이 아닌, 수평형 이동의 문화 행사도 있다. 코로나19 중 선보인 '격조콘'은 사람들이 같은 주파수를 맞춘 헤드폰을 쓰고 원하는 위치로 이동하며 공연을 관람하도록 만든, 독특한 형태의 행사다. 관객이 건물 뒤편의 경희궁 숲길까지 따라가도록 유도하면서 에무시네마가 가진 공간적 여건을 십분 활용한 선례로 자리 잡았다. 에무시네마 1관 내부 1020세대를 위한 문화공간 한 건물에 여러 문화공간이 있는 덕에 복합문화공간 에무는 영화를 매개로 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해 왔다. 대표적으로 '시네마 브레이크'는 인근 직장인들을 위한 점심시간 상영회로 핫도그와 샌드위치를 제공하며 30분짜리 짤막한 단편영화를 선보였고, '살롱 데 뷰'에서는 전문가와 영화를 관람하고 1층 카페 에무로 내려와 이야기를 나누는 소모임을 진행했다. 또 건물 옥상을 활용한 '별빛 영화제'도 관객들에게 뜨거운 관심을 얻었다. 상영관의 폐쇄적이고 어두운 분위기는 밤의 포근함으로 대체되고 딱딱한 극장 의자는 푹신한 캠핑용 의자로 바뀌었다. 맥주, 커피, 핫도그 등 스낵 옵션을 제공하며 영화를 누워서 관람할 수 있는 빈백도 제공한다. 야외 상영의 아늑한 분위기는 실내 생활이 장기화 된 코로나19 이후 더 각광받았고, 상영마다 1분 내 매진 행렬을 기록하기도 했다. 에무시네마는 세 시그니처 행사를 안정적으로 안착시키며 복합문화공간 에무만의 브랜딩 메이킹을 성공한다. 에무시네마 1관 앞 통로와 입구 에무시네마의 주요 관객층이 1020세대인 사실도 큰 상징성을 갖는다. 예술영화는 난해하고 어려울 거라는 선입견이 있지만, 에무시네마의 경우 이용자 대부분이 이제 막 예술영화·다양성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입문자들이다. 복합문화공간 에무의 운영 철학대로 누구나 예술을 쉽게 즐기게 독려한 결과다. 다채로운 행사가 관객을 복합문화공간 에무로 진입시켰다면, 흥미로운 기획전은 공간에 대한 관심을 관람의 실천으로 연결시켰다. 양인모 프로그래머는 실제 관객층 수요를 면밀히 분석하여 프로그램 기획에 반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5월에는 5월의 날씨를 연상시키는 에릭 로메르 감독의 작품을 모아 <에릭 로메르 특별전>을 열었고,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프랑스> 관객과의 대화(GV)에서 언급된 <비브르 사 비>를 놓치지 않고 특별상영으로 발전시켰다. 또한 에무시네마 관객들이 가장 사랑하는 감독으로 꼽은 크리스티안 페촐트 기획전을 열어 작은 영화제를 열기도 했다. 낯선 작품을 1020세대 눈높이에 맞춰 콘셉트를 부여하거나 관객의 수요와 반응을 기반으로 프로그래밍을 구성한 결과 긍정적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에무가 이토록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원천은 복합문화공간에 반영한 브랜드 철학 때문이다. 16세기 유럽 인문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 에라스뮈스의 영향을 받아 엘리트주의에 저항하며, 남녀노소 모두가 공평하게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오직 교육받은 자만이 예술을 안다는 말에 반기를 들고, 모두에게 예술을 즐길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짚어주었다. 건물 외부 통로 "숲속의 오솔길에서 에라스무스를 만나다"라고 적혀 있다 공간 및 운영개요 1.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경희궁1가길 7, 복합문화공간 에무 2. 설립일: 2010년 11월 13일 3. 대표자: 김상민 4. 운영시간: 10:00 ~ 22:00 (시간표에 따라 유동적) 5. 입장료: 일반 9,000원, 청소년 8,000원, 경로, 장애인, 조조할인 6,000원 6. 공간 구성 1) 상영관 2개관, 2층·3층 2) 카페 에무: 1층 커피 및 음료 판매, 도서 판매, 20석 3) 팡타개라지: 지하 1층, 술과 음료를 마시며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공연장 4) 스튜디오 에무: 지하 2층, 영화영상 콘텐츠 기획 및 미학 연구를 위한 공유 오피스 5) 가르강 루프탑: 옥상 가르강 루프탑. 단체 행사나 야외 상영회 진행 7. 극장 규모 및 구성 - 1관(2층): 좌석수 51석, 2015년 5월 개관 - 2관(3층): 좌석수 52석, 2018년 7월 개관 인터뷰: 김상민 대표(복합문화공간 에무 대표) 김상민 대표 이자연 _복합문화공간 에무는 팡타개라지, 카페 에무, 가르강 루프탑 등 다양한 공간 구성이 특징입니다. 지금 에무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김상민 _복합문화공간 에무가 처음 설립됐던 2010년에는 사계절출판사가 자리해 있었어요. 지하 1층만 복합문화공간 에무라고 일컬으며 갤러리, 연극 등 다양한 예술 활동을 진행했었죠. 2014년 무렵 리노베이션에 들어가면서 층별로 하나씩 자리를 잡게 되었어요. 비유하자면 강이 흘러 퇴적 현상이 생겨나면서 자연스럽게 강줄기가 형성되잖아요. 그것처럼 순간순간 그 시기에 맞는 일을 해왔더니 지금의 복합문화공간이 만들어진 거예요. 1층에 '카페 에무'를 만들고 지하 1층에 '팡타개라지' 공연장을 설치하고, 지하 2층에 '갤러리 에무'를 두었어요. 영화관은 사실 뒤늦게 완성됐죠. 리노베이션 이후 2015년에 2층에 처음 자리를 잡았거든요. 그리고 2018년 여름, 3층에 2관을 만들었어요. 영화관이 첫 개관했던 2016년 5월 5일. 저에게는 정말 잊을 수 없는 순간인 것 같아요. 이렇게 자유로운 공간이 생긴 덕에 재미있는 다양한 기획을 해볼 수도 있었어요. 오렌지필름과 단편영화제를 열거나 <프리즘오브> 잡지와 함께 영화 상영회를 진행하기도 했고요. 또 직장인을 위해 점심시간에 '시네마 브레이크'라는 상영회를 열기도 했어요. 이자연 _에무(emu)라는 이름은 16세기 유럽 인문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 에라스뮈스의 이름에서 따왔어요. 영화를 비롯한 인문학적 활동을 실행하고 싶다는 의미일까요? 김상민 _맞습니다. 처음 복합문화공간 에무가 만들어질 때 에라스뮈스의 철학과 사상을 기반으로 운영하려고 했어요. 에라스뮈스는 네덜란드 르네상스 시대의 철학자로 당시 <우신예찬>이라는 책을 썼는데요, 현재까지도 교육 후원재단으로서 유럽에 자리매김하고 있어요. 에라스뮈스는 당시 권력자 간의 비리나 엘리트주의를 비판하고 풍자했는데, 이러한 맥락의 문제가 현대사회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잖아요.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누구나 편하고 자유롭게 예술을 접하고 향유할 공간을 만들자는 목표로 에라스뮈스의 철학을 반영하고자 했어요. 양질의 교육을 받고 학습한 자만이 예술을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라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예술을 즐길 권리가 있다는 맥락이에요. 이자연 _영화관이 가장 마지막으로 지어졌어요. 가장 늦더라도 에무시네마를 꼭 개관하고 싶었던 이유가 있나요? 김상민 _제가 무대 디자인을 전공한 터라 영화의 프로덕션 디자인까지 배웠어요. 그러다 보니 영화에 관심이 많았고, 미국에서 활동하던 와중에 이 공간을 디자인하기 위해 찾아오게 되었죠. 2014년부터 자연스럽게 팀장직을 맡아 일을 시작했고, 2018년부터 대표로서 모든 일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제 개인사적 맥락에서 영화는 제 삶의 중심을 차지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실험적인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고요. 1층 카페 내부에서 바라본 테라스 이자연 _대표님은 무대 디자이너로서 꿈을 키우기 위해 공연예술의 메카인 뉴욕으로 떠난 이력이 있어요. 그때의 경험이 에무시네마 운영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김상민 _만약 사업만 했다면 실무적인 디테일은 잘 몰랐을 것 같아요. 실무를 함께 작업해야 할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했겠죠. 무대 디자인은 커다란 목표를 산정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과의 협업과 조율이 필요해요. 기본적인 기틀을 함께 잡아나가는 과정이 에무시네마를 운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죠. 공동체에서 내가 어떤 역할로 참여해야 하는지 빠르게 파악할 수 있거든요. 또 명확한 무대 콘셉트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매일 작은 결정을 이뤄나가야 해요. 논리적 판단이 무척 중요한 순간들이었죠. 그때의 시간들이 극장을 운영하고 사업을 키워나가는 데 무척 유용했어요. 이자연 _상대적으로 이른 나이에 대표직을 맡았어요. 팀장으로 시작해 대표직에 오르기까지 책임감이 막중했을 텐데 부담스럽진 않았나요? 김상민 _회사 운영이란 회사 전반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 사업의 디테일을 잡아가야 해요. 굉장히 어려운 일이란 걸 잘 알지만, 실무자로서 느꼈던 결정권의 제약이 아쉬워서 직접 키를 쥐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누군가 방향을 제시하면 맹목적으로 따르고 실행하기보다는 실질적으로 일을 선도하고 결과를 책임지고 싶었거든요. 문제가 생기면 그로부터 배우고 나아가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어려서 경험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안 해본 게 아직 많기 때문에 어떤 것도 '해봤자 무의미하다'는 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죠. 쉽게 도전할 수 있어요. 이자연 _에무시네마 자리는 종로의 중심으로부터 약간 떨어져 있어요. 언덕을 올라야 하기도 하고요. 이러한 지리적 환경이 에무시네마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나요? 김상민 _에무시네마는 도심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어요. 그래서 접근하기에 아주 용이한 공간은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창조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봐요. 창조적이라는 것은 오히려 제한된 구도 안에서 나타나잖아요. 어떻게 하면 이 거리와 구조를 뛰어넘어 관객들을 유입할 수 있을까 고민하니까 그런 점에서 에무만의 크리에이티브한 행사를 고안할 수 있던 것 같아요. 이자연 _접근이 어려웠던 지점이 오히려 다양한 행사의 발판이 되었던 거네요. 그렇다면 어떤 행사를 진행했었나요? 김상민 _저희가 숲을 등지고 있거든요. 이 아름다운 숲을 강점화할 수 있었죠. 예를 들어 코로나19 중 '격조콘'이라는 콘서트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거리를 두고 무선 헤드폰을 쓴 사람들이 원하는 위치로 이동하면서 주파수에 맞춰 음악을 듣고 공연을 관람하는 행사예요. 이런 활동도 경의궁 숲을 등지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었죠. 또 경희궁 문화길 '두둥-탁! 페스티벌'은 경희궁길에 위치한 문화공간을 살려보자는 취지로 진행한 행사였어요. 경희궁이 사실 사대문 안에서 파손이 가장 심한 궁이거든요. 우리가 복원하기 어렵다면 적어도 그 이야기와 의미를 살리는 활동을 시도해보고 싶었어요. 복합문화공간 에무를 비롯한 다섯 단체가 모여 페스티벌을 구성했습니다. 또 '판타지아 에무'라고 아티스트가 추천한 영화를 보고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뒤에 아티스트의 단독 공연이나 짧은 특별 공연을 들어보기도 했어요. 이자연 _에무시네마의 조직 체계는 어떤 형태로 운영되고 있나요? 김상민 _먼저 시네마팀은 양인모 프로그래머를 중심으로 시네마 매니저와 코디네이터, 사원으로 구성돼 있어요. 에무시네마의 개봉작이나 기획 프로그램을 선정하고 진행합니다. 거기에 필요한 제반 사항을 매니저와 사원이 함께 관리하고요. 한 단계 나아가 영업과 홍보까지도 다루고 있어요. 공연장 운영을 담당하는 공연팀이 있고, '카페 에무'를 관리하는 카페운영팀이 있습니다. 에무시네마 사무실 내부 이자연 _에무시네마에는 총 2개의 관이 있습니다. 멀티플렉스에 비해 적은 수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만들 수 있는 에무시네마만의 분위기가 있을 것 같아요. 김상민 _실험적인 영화나 개봉관을 찾기 어려운 작품을 위한 기획전을 경험할 수 있어요. 사실 큰 극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야 수지타산이 맞기 때문에 수익성이 높지 않은 실험적 기획은 위험하게 여기거든요. 하지만 에무시네마같이 작은 규모의 영화관은 그런 계산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이익을 따지는 기준이 그보다 낮기 때문에 도전의 기회가 더 많습니다. 기획 방향도 이렇게 저렇게 바꿔 이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우리만의 데이터를 쉽게 쌓을 수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예술영화 산업에 있어서 작은 동네 영화관이 더 많아지고 오래 운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간 구조 자체가 다양성을 독려할 수 있는 거죠. 또 영화관마다 개성과 색깔이 뚜렷해야 관객의 취향이 두루두루 분포될 수 있을 거라 믿고요. 이자연 _코로나19로 극장 산업이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위기를 겪었는데요. 에무시네마의 상황은 어떠했나요? 나름의 돌파구를 모색했다면 어떤 것이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김상민 _에무시네마는 2019년이 가장 행복했던 것 같아요. 훌륭한 예술독립영화를 상영하면서 최정점을 맞이한 느낌이었거든요. 영화 산업 자체가 굉장히 역동적이고 활발했죠. 특히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 각본상,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영화 산업 전반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가 높아졌어요. 그때 에무시네마는 외국인을 위한 <기생충> 영어 자막 상영까지 진행하면서 정말 많은 관객으로 붐볐어요. 영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도모하기도 했고요. 그 이후에 코로나19로 접어들면서 경제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도달했죠. 2020년 2월까지만 해도 코로나19가 이렇게 오래갈 거라고 생각을 못했어요. 한 열흘 정도 쉬면 되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관객 수가 한 자릿수인 날도 많아졌고요. 상당히 무기력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고요. 그때 몇 번 진행한 공연장 대관 사업이 그나마 좀 힘이 됐던 것 같아요. 적자로 힘들어지면 공연장 대관 요청이 들어오고, 또 힘들어지면 정부 지원을 받고. 이런 식으로 근근이 이어져왔어요. 그러다가 '별빛 영화제'가 확 성장했죠. 다들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억눌려 있어서 그런지 야외 상영을 적극적으로 찾아줬어요. 에무시네마에서 할 수 있는 활동들로 돌파구를 찾으려 했습니다. 별빛영화제가 열리는 옥상의 야외 상영장 이자연 _한국예술영화관협회에서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어려움을 이겨내기도 했다고요. 김상민 _전 지역의 작은 예술영화관 사업인들이 모두 모여 있는 단체예요. 원래 그전에는 교류가 그렇게까지 활발하지 않았어요.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매달 모여서 이야기를 공유하고 나누게 됐어요. 서로 본받아야 할 점도 찾고 서로의 존재 자체로 위로를 많이 얻었던 것 같아요. 의지를 많이 했죠. 영화관들이 각자도생하던 시기를 넘어서 교감하고 협업하는 길로 나아가면서 어려웠던 코로나19를 서로 의지하며 버틸 수 있었어요. 인터뷰: 양인모 프로그래머(에무시네마 프로그래머) 양인모 프로그래머 이자연 _에무시네마를 소개해주세요. 양인모 _'복합문화공간 에무'는 도심에서 약간 떨어져 있어요. 고요한 언덕길을 올라오다 보면 금세 발견할 수 있죠. 뒤편으로 울창한 숲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건물 자체가 영화적 분위기를 띠고 있습니다. 대도시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살짝 벗어나 보이거든요. 또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관객들이 공간 경험을 누릴 수 있다는 것도 이곳만의 큰 장점이에요. 에무시네마에서는 주로 예술영화와 한국 독립영화들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이자연 _프로그래머로서 상영작을 선정할 때 어떤 지점을 가장 눈여겨보나요? 양인모 _일단 개봉을 앞둔 신작 중 영화사적 맥락을 가지며 동시대성이 있는 영화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있어요. 관객의 감각을 예리하게 하고 몸은 영화관에 있지만 어딘가 멀리 갈 수 있는 작품을 선호하거든요. 또 관객들의 성향에 맞는 영화를 골라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에무시네마의 주요 관객층을 살피고 경향을 분석하는 일도 중요해요. 근래에는 관객 연령층이 조금씩 낮아지는 추세입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이 가장 많아요. 세대적 취향을 프로그래밍에 반영하기도 하고요. 옛날 영화 중 좋은 반응을 이끌어낼 것 같은 작품을 골라 기획전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오래된 영화라도 누군가에겐 첫 영화죠. 새로운 관객이 계속 나타나기 때문에 이들의 성향을 잘 파악해야 해요. 보통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의 관객들은 이제 막 영화에 입문하고 예술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들이 대부분이라 눈높이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이자연 _가장 기억에 남는 에무시네마 기획전이 있다면요? 양인모 _1930년대에 제작된 프랑스영화를 모아 상영한 기획전이 있었어요. 그 당시가 영화사적으로 ‘시적 리얼리즘’으로 구분하던 시기였거든요.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막 이동할 즈음이라 영화가 말을 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고요. 영화사에 이런 중대한 변화를 잘 보여줄 줄리앙 뒤비비에, 장 비고, 장 르누아르 감독까지 함께 담아 보여줬어요. 장 비고의 <라탈랑트>는 언제 봐도 정말 아름답죠. 이것은 제가 에무시네마에 와서 처음으로 진행한 기획전이었어요. 관객들에게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던 저의 마음이 담겨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작품들이 일상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시대의 영화다 보니 실제로 관객들로부터 새로웠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뿌듯했습니다. 이자연 _요새 멀티플렉스 극장을 찾는 사람들을 보면 경험하고 체험하는 영화를 선호하는 경향이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에무시네마 프로그램에 새롭게 적용하거나 전략을 세운 부분이 있나요? 양인모 _일단 극장에서의 경험 자체가 공간 경험이고 오프라인이잖아요. 한자리에서 한 편의 영화를 본다는 그 자체가 물리적인 경험이기도 하고요. 오히려 그런 것들이 더 희소해지고 귀중해지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 지점을 강조할수록 영화관의 지속성이 더 길어지지 않나 생각해요. 저희도 OTT 플랫폼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작품을 상영하기도 해요. 핸드폰이나 컴퓨터로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영화잖아요. 그런데 그걸 극장에서 상영하면 관객들이 찾아오거든요. 그 풍경을 보면서 거기에 바로 극장의 본질적인 희망이 있다고 봐요. OTT만으로 채울 수 없는 경험들이 있는 거죠. 무엇보다 요즘엔 관객 사이에 적극적인 관람 문화가 형성되고 있는 것 같아요. N차 관람 인증이나 영화의 몇 장면을 SNS상에서 새로운 밈으로 만들어 재가공해 재미를 북돋는다든지. 그러한 관객 주도적인 현상을 공간에 접목시키도록 하고 싶어요. 에무시네마 매표공간 이자연 _코로나19 이후 극장 풍경이 많이 바뀌었어요. 이 변화를 언제 가장 크게 체감하시나요? 또 어떤 대안책을 고려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양인모 _저는 2020년에 입사했기 때문에 코로나19가 기본값인 상태로 일을 시작했어요. 오히려 그 전의 극장 프로그래밍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만의 희망적인 요소들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위기를 느끼고 관객이 드물게 오는 상황을 경험했지만 조금씩 회복하면서 긍정적 변화를 찾아낼 수 있었어요. 초반엔 영화인을 초빙해서 GV 등 다양한 행사를 시도했고요. 또 루프탑에서 상영하는 별빛 영화제의 경우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야외에서 거리두기를 지키면서 진행했죠. 빠른 매진을 거듭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어요. 이 자리를 통해 관객들과 같이 이야기도 나누고 교감을 하다 보니 좋은 관계성이 생겨나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영화의 마지막 순간에 항상 제가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관객들과 더 직접적인 연결성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자연 _팡타개라지, 카페에무, 가르강 루프탑 등 건물 안에서 예술 활동과 여가 활동을 즐길 수 있게 구성돼 있어요. 이러한 환경이 관객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양인모 _영화관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사적이면서도 공동의 경험인데요. 그 경험을 확장하려면 아무래도 영화관의 공간적 요소가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떤 영화의 감상은 극장을 나와 돌아가는 길에서 정리되기도 하고요. 또한 관객들이 모여 하나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동시에 같은 행위를 이루는 자리이기 때문에 에무시네마가 그 경험 그대로 이어 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계적으로 영화만 보고 흩어지는 게 아니라 어디선가 어떤 새로운 일이 다시금 일어날 수 있게끔 하는 거죠. 극장에서 같은 시간에 영화를 본다는 행위에 만남의 우연성이 들어 있다고 생각해요. 카페 앞 통로에 위치한 건물 층별 안내판 이자연 _공식 개관 이후 7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에무시네마를 생명력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양인모 _역시나 영화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창작가가 있고 관객이 있어야 확인할 수 있는 힘이기도 하죠. 제가 관객으로서 에무시네마를 처음 방문한 게 2016년이었어요. 이제 막 개관했을 때였죠. 어떤 GV를 듣기 위해서였는데, GV가 끝나니 아래 카페에서 회식 비슷한 자리가 마련되더라고요. 스무 명 정도의 관객과 감독이 함께 영화를 보고 회식을 한 거죠. 토론하듯 영화 얘기도 계속 나누고요. 이런 상황 자체가 굉장히 드물고 신기하잖아요. 거기서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기도 하고요. 그런 것을 지향해 나가는 게 에무시네마의 생명력이라고 생각해요. <드라이브 마이 카>에도 그런 대사가 나오잖아요. ‘지금 여기서 뭔가가 일어났어.’ 그 무언가를 계속 만들어야 하겠죠. 그게 없어지면 생명력이 희미해지는 것 같을 테고요. 10대 후반의 관객들이 세대적 흐름을 이어나갈 자리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자연 _청소년 관객을 위한 자리를 모색하고 계신 걸까요? 양인모 _그렇죠. 영화라는 게 영화의 경험과 극장의 경험이 뒤섞인 곳이잖아요. 청소년들이 낯설고도 새로운 경험을 에무시네마에서 시작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자기에게 영감을 주는 일상적 공간 하나만 생겨도 그 사람의 생에 아주 긍정적이고 큰 변화가 생겨나니까요. 게다가 10대 후반 때의 경험은 대부분 성인 때보다 더 크게 다가오잖아요.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즐거운 경험이 그들의 삶에 일어나도록 돕고 싶어요. 이자연 _에무시네마는 좋은 메시지를 담은 작은 규모의 영화들을 많이 상영하는데요. 숫자와 성적이 중요한 세상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작품을 계속 보이는 게 왜 중요한가요? 양인모 _박석영 감독님의 말씀을 인용하고 싶어요. 사람이 굉장히 다양하잖아요. 멋지고 세련된 사람도 있고 까칠하고 지루한 사람도 있어요. 영화도 사람처럼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 거죠. 관객 각자에게 한 편의 영화가 모두 다르게 다가올 거라 믿어요. 그러니 그 다양성을 최대한 모두 반영할 수 있도록 작지만 다채로운 작품을 더 많이, 더 자주 보여주고 환대할 수 있는 공간인 극장이 세상에 하나쯤은 있어야겠죠. 에무시네마 2관 내부 이자연 _앞으로 에무시네마에서 준비 중인 사업이 있다면요? 양인모 _공간의 경험을 강조하고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예정이에요. 영화 감상 모임이라든지 영화 기반의 독서 모임이라든지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커뮤니티 비즈니스 쪽일 것 같습니다. 또 다양하고 흥미로운 기획전을 준비하고 있고요, 사람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는 장소가 되도록 신경 쓰려 합니다. 그래서 복합문화공간 에무가 비즈니스 활동이나 창작 활동을 유도하는 시작점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 창작 활동이 나중에 영화로 만들어져서 에무시네마에 돌아올 수 있잖아요. 그런 선순환을 만들 수 있길 바라는 게 에무의 꿈입니다. 이자연 _2032년이 되었다고 가정해보면 2022년은 에무시네마의 프로그래머로서 어떻게 기억에 남을까요? 양인모 _일단 올해는 특별 상영전을 많이 했어요. 폴 토머스 앤더슨, 에릭 로메르, 짐 자무시,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등 익숙하지만 늘 크게 다가오는 이름들과 한 해를 보낸 것 같아요. 또한 별빛 영화제와 한국영화 기획전을 통해 <접속>, <와이키키 브라더스> 같은 예전 한국영화를 만나기도 했고요. 그때마다 관객들의 반응이 무척 좋았어요. 굿즈처럼 특별 포스터를 만들기도 했는데 그걸 받아보시면 굉장히 좋아하세요. 특유의 밝은 표정이 있어요. 올해는 그 관객들의 표정으로 기억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얼굴을 더 볼 수 있도록 만들어야겠죠. 32년까지 쭉 이어가고 싶습니다. 필자: 이자연(씨네21) 사진촬영: 오계옥(씨네21) 인터뷰 일자: 2022년 9월 21일
사샤 기트리가 영화에 도착했다.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사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샤 기트리는 프랑스영화의 위대한 이름이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시네필들에게 잘 언급되지 않는 이름. 그가 세상을 떠나자 모든 시네아스트들의 연옥(煉獄)의 왕자라고 불린 사람. 오손 웰즈, 알랭 레네, 프랑소와 트뤼포가 한결 같이 찬사를 바쳤던 감독. 아마 나는 이 연재를 하면서 몇 번이고 그를 이 자리에 다시 초대할 것이다. 사사 기트리는 영화가 발명도 되기 전인 1885년 2월 21일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연극을 했고, 그래서 태어나서 무대를 바라보면서 자라났다. 5살에 아버지의 극단에서 무대에 데뷔하였고, 그 무대에서 단지 귀여운 소년이 아니라 그가 타고난 연기자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부모는 사샤 기트리가 좋은 교육을 받기 원했지만 16살에 빨리 무대에 서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 학업을 중단하였다. 그는 단지 연기만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 다음 희곡을 직접 쓰기 시작했다. 사사 기트리는 자기가 쓴 모든 희곡. 모든 시나리오에 배우로 나온 것은 아니지만 거의 대부분 주연으로 배역을 맡았다. 말하자면 자기 자신을 위해 쓴 대본들. 자신이 쓴 희곡으로 첫 무대에 오른 작품은 <페이지>였다. 1902년 4월 15일 마튀랭스 극단의 공연이었다. 멜리에스의 공상과학영화 <달에로의 여행>이 상영된 해이다. 그런 다음 그는 아버지의 극단인 르네상스 극단으로 옮겼다. 그러면서 사샤 기트리는 천재적인 연기와 대중적으로 성공한 대본, 그리고 몰리에르의 전통을 이어받은 연출이 파리의 주목을 끌면서 예술가들의 사교계에서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하나의 세기가 끝나가면서 새로운 예술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사샤 기트리> 사샤 기트리에게서 희곡 작가이자 무대 연출가로서의 경력의 절정은 아마도 1910년대였을 것이다. 1912년에 <야간 간병인>과 <멋진 결혼식>, <스코틀랜드 순례자>를 한 번에 발표하였다. 그리고 1914년 <두 개의 식탁>으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되었다. 사샤 기트리는 이미 모두가 존경할만한 예술가의 자리에 올랐다. 이상하게도 연극에 몰두하던 사샤 기트리가 어떤 계기로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때 연극계의 사람들은 영화가 자신들의 예술을 위협한다고 생각했으며, 대중 관객들을 뺏어가는 적이라고 공격했으며, 애써 영화는 천박한 구경거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샤 기트리가 그때 어떤 영화를 보았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분명히 영화를 보았을 것이다. 하나의 가정. 아마도, 아마도 그때 사샤 기트리는 연극무대를 찍은 ‘필름 다르’ 영화들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카메라가 보여주는 어떤 가능성을 보았을 것이다. <우리 집의 그들 - 클로드 모네> 사샤 기트리는 이상한 영화를 찍었다. 이미 초기 영화의 편집이 하나의 규범이 되었지만 그는 그것을 무시하고 (정확하게 동일한 방법은 아니지만 그 태도에서) 마치 뤼미에르처럼 영화를 찍었다. 그 영화가 <우리 집의 그들>이다. 두 가지 놀라운 점. 첫 번째, 사샤 가트리는 19세기의 위대한 예술가들을 자기 카메라 앞에 세웠다. 누구보다도 위대한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 그가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조각을 다듬는다. 인상주의 풍경화의 대가 클로드 모네가 수련 앞에서 자기 캔버스에 무언가를 그리는 중이다. 파리의 풍경을 담은 오귀스트 르누아르가 캔버스에 무언가를 그리고 있다. 그때 그 곁에 아직 21살이었던 그의 아들(이자 훗날의 프랑스 영화의 대가) 장 르누아르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다가 유쾌하게 웃는다. 희곡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를 쓴 작가 에드몽 로스탕이 책상 앞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다.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에 출연한 20세기 초 프랑스 연극무대의 전설인 사라 베르나르가 편지를 읽는다. <실베스트 보나르의 죄>, <티아스>를 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아나톨 프랑스도 찍었다. <동물사육제>를 쓴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도 볼 수 있다. 사실주의 연극 무대의 창시자인 앙드레 앙토완느를 만날 것이다. 우리들이 그저 사진으로만 알고 있는 이 위대한 이름들이 어떻게 살아 숨 쉬었는지를 알 수 있는 (아마도) 유일한 기록이 될 것이다. 그들은 그때 이미 유명했고, 지금 그들은 예술사의 이정표가 되었다. 하지만 사샤 기트리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이 영화를 찍은 것 같지는 않다. 두 번째 놀라운 점. 이 영화를 찍으면서 사샤 기트리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예외 없이 화면 속의 예술가들, 카메라 앞의 예술가들이 말하는 쇼트를 포함시켰다. 이 영화는 무성영화이고 영화는 아직 소리를 ‘찍을 수’ 없었다. 마치 그걸 의도하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 집의 그들>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거기서 이 위대한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집의 그들>은 마치 목소리를 들으려면 영화관이 아니라 연극이 상연되는 극장으로 오라고 알려주려는 것처럼 찍은 영화이다. <우리 집의 그들>이 사샤 기트리의 첫 번째 영화이긴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토키영화가 시작된 다음의 일이다. <우리 집의 그들 - 사라 베르나르> 그럼에도 <우리 집의 그들>에 안타까운 심정을 가진 것은 우리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1915년에 공개된 22분 버전을 바탕으로 사샤 기트리가 책상 앞에 앉아서 후시녹음을 하듯이 장면별로 해설을 하고 내용을 설명하는 44분 버전을 1952년에 다시 작업하였다. 물론 그 내용이 정확한 지에 대해서는 사샤 기트리 외에 아무도 알 수 없다. 게다가 우리가 듣고 싶은 것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목소리, 클로드 모네의 목소리, 로댕의 목소리, 생상스의 목소리, 아나톨 프랑스의 목소리(...)이다. <우리 집의 그들>은 한편으로는 기이한 영화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안타까운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