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타
- 감독
- 장 피에르 다르덴, 뤼크 다르덴
- 제작년도
- 1999
- 출연
- 에밀리 드켄, 파브리지오 로지오네, 안느 애르노스, 올리비에르 구르메, 베르나르 마르베이, 프레드릭 보드슨, 플로리언 델라인
사진: " Lorna's silence ", Les Films du Fleuve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과거에 만난 작품과 그로부터 얻은 영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대개 기억들은 전체적인 상황보다는 순간의 감각들로 남겨진다. 가령 유년 시절의 계곡을 떠올릴 때면 언제, 누구와 왜 갔었는지에 대한 구체적 상황은 떠올릴 수 없다. 다만 물에 빠졌던 순간 느꼈던 알싸한 코끝의 감각과 함께 어디선가 습한 풀냄새가 흘러오는 것이다. 혀에 닿았던 철봉의 비린 쇠 맛, 몸에 들러붙는 젖은 옷의 찜찜함, 불규칙적으로 창문을 두드리는 나뭇가지 소리, 아릿한 손끝... 그렇게 지나간 순간들은 몸 어딘가에 고이게 된다. 감각을 동반하지 않는 기억은 과연 남겨질 수 있을까. 적어도 나에게는 감각되지 않는 기억은 금방 휘발되어버리고 만다. 기억과 마찬가지로 영화 또한 이러한 방식으로 나에게 남겨진다. 결국 오래도록 나에게 맴도는 영화들은 기승전결에 따른 이야기의 전체 몸뚱이, 그로부터 얻은 교훈 같은 것이 아니다. 결국 남겨지는 건 인물의 감정과 상황에 맞닿아진 통증, 감각들이다. 사진: " Lorna's silence ", Les Films du Fleuve 영화 < 로나의 침묵 >(장 피에르 다르덴, 뤼크 다르덴, 2008)을 본 날은 21살의 겨울이었다. 나는 지독한 시네필이었다거나 내 삶을 뒤흔든 영화를 만났다거나 하는 거창한 이유 없이 어쩌다 영화과에 입학하게 된 영화과 학부생이었다. 학기 중 내가 본 영화의 절대적인 수가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방학을 맞이하여 전투적으로 매일 3편씩 영화를 보던 시기였다. 그저 방학 동안 최대한 영화를 많이 보는 것만이 목표였기 때문에 마음 한켠에는 항상 조급함이 서려 있었다. 때문에 한편의 영화가 끝나면 곱씹을 틈도 없이 기계적으로 바로 다음 영화를 보곤 했다. 그런데 <로나의 침묵>의 마지막 장면을 본 후에는 쉽사리 다음 영화로 넘어갈 수 없었다. <로나의 침묵>의 마지막 장면은 이러하다. 클로디의 죽음에 대해 침묵을 강요받던 로나는 파블로의 감시를 피해 숲으로 도망친다. 이윽고 오두막 하나를 발견하고는 그 안에 숨어 들어간다. 어둡고 싸늘한 오두막에 주워 온 나뭇가지로 불을 피운 로나는 자신의 빈 배를 부여잡고 존재하지 않는 클로디의 아기를 향해 말을 걸며 잠에 든다. 영화가 끝나고 나 또한 정리되지 않은 마음으로 어둡고 싸늘한 방 안에서 한참 동안을 빈 배를 부여잡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 마지막 장면은 이상하게 허하고 서글픈 뱃속의 감각으로 남겨지게 되었다. 클로디가 도와달라고 외치며 로나에게 매달리는 장면에서 클로디를 휘감았을 고독과 두려움의 통증, 자전거를 사고 힘차게 페달을 밟던 순간 마약으로 인해 마비되었거나 혹은 너무 날카로워졌던 클로디의 몸이 생의 활력으로 일깨워지는 감각. 이렇게 <로나의 침묵>의 장면들은 나에게 컷과 이미지가 아닌 몸 어딘가의 느낌으로 기억된다. 사진: " Lorna's Silence ", Rotten Tomatoes 이러한 내가 영화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마찬가지로 내가 영화를 만드는 방식과 무관하지 않다. 감정과 상황에 맞닿아진 통증, 감각을 구체적으로 묘사할 때 영화가 더 깊게 관객에게 남겨질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때문에 시나리오를 쓸 때면 당연히 전반적인 이야기의 흐름도 고심하지만 각 씬이 품고 있는 기운 혹은 인물의 몸에서 벌어지는 것들을 상상하는 데 주의를 더 기울이게 된다. 늦은 밤 어린 소녀가 부모의 싸우는 통화 소리를 엿들을 때 그녀가 딛고 서 있던 타일의 싸늘함, 발바닥을 조용히 적시는 시리도록 차가운 물. 비밀을 품고 마주한 두 여고생의 얼굴 위로 일렁이는 불의 열기. 영원히 진실된 대화를 나누지 못할 것만 같던 모녀의 입을 열게 만드는 녹은 아이스크림의 단 맛. 이런 것들을 떠올릴 때면 때로는 정말 실제로 나에게 벌어졌던 일들인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손끝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관객들의 혀에, 피부에, 코끝에 남겨지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 컨테이너 >(김세인, 2018), < 불놀이 >(김세인, 2018) 중 <로나의 침묵>이 오랫동안 나에게 남아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로나가 연속적인 변심과 충동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마약을 끊을 수 있게 도와달라는 클로디의 청을 외면하던 로나는 점차 클로디를 적극적으로 돕고 이내 몸으로 보듬어 주기까지 한다. 거래 현장에서 갑작스레 아기에 대한 질문을 꺼내놓고 심지어 아기가 실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도 끝내 부정하며 끊임없이 아기에게 말을 건넨다. 이러한 변심과 충동에 따른 행동들로 인해 로나는 사랑하던 애인과 이별하고 가게도 돈도 모두 잃게 된다. 급기야 생명까지도 위태로워진다. 영화의 초반 계산적으로만 행동하던 로나는 실속 없이 모든 것을 잃고 그녀에게 남은 것은 대답 없는 빈 배뿐이다. 어쩌다 영화과에 입학하게 된 그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나 또한 줄곧 변심과 충동에 휩싸여 살아가고 있다. 냉철하고 실속 있게 살아가고 싶은데 나 같은 유형의 사람에겐 그건 영영 오지 않을 세계다. 나이가 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닥쳐오는 상황들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어느 정도는 눈에 보일 줄 알았다. 나이가 들어도 모르겠는 건 모르겠고, 그중 제일 모르겠는 건 나 자신이다. 언제까지 나 자신에게 당황하며 살아가야 할까. 사랑하던 애인과 돈 계산을 한 뒤 이별하는 순간, 그의 이름을 불러보는 것 이외에 그저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로나의 답답한 눈물이 이해가 된다. 어쩌겠는가. 이 모든 상황을 만든 것은 바로 나의 마음이었는데. 그저 빈 배를 움켜쥘 수밖에. 그리고 믿어볼 수밖에. 내 연민과 사랑이 불러온 결과가 결코 빈 배가 아니라고. 이 배는 비어있지 않다고. 정리되지 않은 마음으로 어둡고 싸늘한 방 안에서 한참 동안 빈 배를 부여잡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건 나도 로나처럼 믿고 싶어서였다. 연민과 사랑으로 다소 유약하게 굴었던 나에게 남은 건 빈 배가 아니다. 여기 이 배 속에 무언가 남아 있다. 그 무언가가 내 목소리를 듣고 있다. <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김세인, 2021) 중 김세인(영화감독) l 글을 쓰고 영화를 연출한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2021) 등 연출 .
20대의 청년 다르덴 형제는 매우 급진적이고 야심적이었다. 그들이 몰두하고 있는 담론 역시 거대했다. 역사와 혁명, 계급과 투쟁, 영화적 실천과 리얼리즘 등. 그들은 이제 막 자신들의 손에 쥐어진 카메라를 통해 어떻게든 역사적 현실과 계급투쟁에 복무하고 싶어 했고 치열하게 고민했다. 1979년 지역 공동체 채널을 통해 처음으로 방영되고 세상에 소개됐던 다르덴 형제의 < 레옹 M의 보트가 처음으로 뫼즈 강의 내려갈 때 >는 급진적 실천주의자로 살고자 했던 두 청년 감독의 치기와 천재성, 역사인식을 적나라하게 선언하는 작품이었다. 27살의 장 피에르 다르덴과 24살의 뤽 다르덴은 처음부터 영화작업을 함께 하기 시작했다. 그 출발은 그들의 유년기를 휩쓸고 지나갔던 1960년 벨기에 총파업에 대한 다큐멘터리 작업이었다. 1978년에 발표한 첫 번째 영화이자 다큐멘터리인 <로시뇰의 노래>에 이어 두 번째로 만들어진 이 작품, 그리고 1년 후에 다시금 발표하게 되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 벽은 무너져야 한다>(1980)는 모두 1960년 벨기에 총파업을 현재화하고자 하는 그들의 좌파적 실천의지의 결과였다. 1960년 12월. 벨기에 노동자들은 총파업을 감행한다. 유럽을 흔들었던 반자본주의 투쟁이었던 68혁명의 전조라고도 해석되는 이 투쟁은 소위 복지국가로 대변되는 서유럽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첫 번째 전면적 저항이자 혁명이었다. 오랫동안 콩고를 식민지화하고 있었던 벨기에는 콩고 해방 이후 발생한 재정위기의 어려움을 노동자들에 대한 공세(공공과 의료 복지 부분 등의 재정삭감)로 풀어나가려 하였고, 이에 노동자들은 즉각적으로 정부에 대항하기 시작하였다. 이 싸움이 더 흥미로운 점은 총파업의 주체가 특정 정치조직이나 노조 지도부가 아니라, 말 그래도 자발적인 노동자들의 움직임으로 불꽃처럼 퍼져나갔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노조 지도부는 정부에 타협했고, 노동자들은 노조를 불신임하며 자발적으로 파업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강경 진압으로 사망자들이 발생했고, 결국 지도부의 배신과 정부의 공세로 인해 이 장렬한 싸움은 패배했다. 다르덴 형제는 이 싸움의 도화선이 되었던 벨기에 리에주(철강산업지역) 출신이었다. 1950년대 생으로 아직 어린 소년에 불과했지만 그러나 그들에게 60년 총파업은 강렬했다. 1978년, 이들이 처음으로 카메라로 세상을 기록할 수 있게 된 그 순간부터 오랫동안 그들은 이 좌절한 혁명을 다시금 현재화하려는 시도로 분투했다. 그들의 두 번째 다큐멘터리인 < 레옹 M의 보트가 처음으로 뫼즈 강의 내려갈 때 >는 거의 2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60년 총파업을 ‘역사적으로 상기’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리에주 지역의 노동자 레옹 마시가 오랜 시간을 들여 자신의 배를 직접 제작하는 과정으로부터 시작된다. 60년 총파업에 참여하기도 했던 레옹 마시의 배가 처음으로 뫼즈강에 진수되는 날, 마시의 첫 항해에 다르덴의 카메라가 함께하게 된다. 이 작품은 두 가지 면에서 흥미롭다. 첫째는 이후 다르덴 형제의 작품세계를 결정하게 된 좌파적 인식론의 가장 직접적이고 선동적인 선언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레옹 마시의 배 공정과정과 첫 항해에 부여한 의미는 ‘혁명적 미래로 항해하기 위한 과거로의 회기’였다. 그들은 60년 혁명이 오늘날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끊임없이 질문한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혁명의 이미지들(당시의 기록화면, 방송화면)이 역사적 노스탤지어로 소비되는 것에 반대하며, 과거를 되새기는 것이 역사적 강박관념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한 엑소시즘으로 전락하는 것에 반대한다. 그들의 항해는 과거로부터, 현재 사그라진 계급 혁명의 불씨를 다시금 되살리겠다는 의지이며 역사적 순환의 은유이다. 그래서 영화의 초반부 레옹 마시가 배를 만드는 노동행위(망치질, 용접 등 지난한 노동과정)들은 매우 상징적으로 60년 혁명 장면들과 몽타주 되면서,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계급과 노동임을 피력한다. 다르덴 형제의 초창기 다큐에서 흥미로운 두 번째 지점은 바로 여기, 즉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를 몽타주 편집으로 연결짓고자 하는 그들의 미학적 방법론이다. < 로제타 >나 < 아들 >과 같은 작품으로만 다르덴을 이해하고 있다면 다르덴의 초창기 다큐멘터리들은 당혹스러우리만치 급진적이고 형식적이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브레히트와 고다르의 방법론에 고무되어 있었고(왜 아니겠는가!), 특히 < 레옹 M의 보트가 처음으로 뫼즈 강의 내려갈 때 >에서는 지가 베르토프의 <키노 프라우다> 시리즈에서 배워온 쇼트와 몽타주가 실험되고 있었다. 현재적 이미지와 과거의 이미지가 병렬적으로 교차하고 사운드는 그들의 당위성을 선언하듯 인공적으로 조형되었다. 60년 총파업에 대한 이들의 의지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80년에 선보인 <전쟁을 끝내기 위해 벽은 무너져야 한다> 역시 60년 당시, 노동자들이 직접 발행했던 좌파 신문의 핵심 인물(그는 여전히 리에주 지역에서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을 찾아가 그의 현재적 공간에서 과거를 상기하고, 재구성하는 실험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이러한 작품들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나 다르덴이 ‘영화’라는 매체를 인식하는 방법과 사유였다. 그들은 초창기 작품에서부터 카메라가 역사적 현장 속에서 어떤 위치에 서 있어야만 하는지, 역사적 책무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질문한다. 이 질문들은 때론 작품 속에서 당혹스러우리만치 노골적으로 관객에게 던져지기도 하고, 그들 스스로에 의해 반성 되고 회의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후 극 영화로 전환된 다르덴의 작품들은 다큐멘터리적 실험과 결별이 아닌 새로운 모색처럼 보인다. 고다르나 브레히트적인 노골적 형식 실험으로부터 벗어나 그들의 카메라는 인물과 세계, 그리고 카메라가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하는지 하나의 방법론을 성취한다. 영화 속 인물은 사적인 동시에 역사적이고 계급적 인물이라는 점은 다르덴의 주요한 키워드다.(이 점에서 다르덴은 네오-리얼리즘의 현재적 계승자로도 해석된다) “우리는 모든 것을 보여주는(showing)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보게 하도록(seeing) 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인물과 상황들은 불투명한 리얼리티의 그림자 속에 남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담고자 하는 진실과 삶 그 자체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남긴 그들의 이 말은 초창기 다큐멘터리와 현재의 극영화 모두를 관통하는 그들의 주요한 방법론이다. ps. 이 영화에서 가장 당혹스러운 순간은 영화가 시작될 때 등장한다. 독립 다큐멘터리 중 수작을 선정해 방영하는 벨기에의 방송 프로그램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이 작품은 방송 프로그램의 특성상 영화를 보여주기 전에 감독들이 직접 나와 자신들의 작품을 소개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르덴을 알게 된 것은 그들의 이미 거장이 된 이후였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진으로 보아온 다르덴 형제는 언제나 노인이었다. 그러나 1979년, 고작 27, 24살의 다르덴이 화면에 등장하는 순간, 아! 저들도 한?는 청년이었지라는 탄식을 뱉어내게 된다. 히피처럼 길게 기른 머리와 심지어 미소년의 용모까지 선보이는 뤽 다르덴. 이제 막 영화를 시작하여 처음 세상에 내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수줍지만 야심적이고 천재적인 젊은 형제 감독들의 모습 그 자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