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
- 감독
- 전영선
- 제작년도
- 1997
- 출연
- 윤현주, 강지애, 유선녕, 서혜전, 유억, 이동현, 주경민, 정재형, 주성림
이만희 감독은 한국영화사에서 몇 안 되는 천재로 회자된다. 15년간 만든 51편이란 숫자도 놀랍지만, 작품 간 기복이 심하지 않고 꾸준히 일정 수준을 유지했다. 유독 비범한 영화도 있고, 1970년대 영화처럼 범작처럼 보이는 영화도 있지만 이만희의 치밀한 미장센과 유려한 리듬, 자기파괴적인 운명과의 싸움 같은 인장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1955년 제대한 후 조감독 생활을 했다. 이후 < 주마등 >(1961)으로 데뷔했고 (고작) 다섯 번째 영화인 < 돌아오지 않는 해병 >(1963)을 통해 미학적 성취와 흥행 성적 모두를 성공시켰다. 그는 이 영화로 한국전쟁영화의 원형을 만들어냈으며, 그해 관객동원 1위의 기록을 갖게 되었고 각종 영화상을 휩쓸었다. 이만희의 필모그래피를 떠올리면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뛰어난 대중영화, 사실적으로 전쟁에 접근한 전쟁영화의 장인, 사실성을 위해 실탄을 쏠 정도로 영화에 미쳐 있는 완벽주의자, 반공 이데올로기에 타협하지 않는 강한 품성의 소유자, 높은 개런티를 받는 A급 감독으로의 도약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이듬해 느와르의 관습을 과감하게 몰아붙인 < 검은 머리 >와 호러의 법칙을 보다 치밀하게 고안한 < 마의 계단 >을 만들었는데, 두 영화 모두 고유한 무드를 따라 넘실거리는 정념과 가혹하고 파괴적인 운명과 대결하는 캐릭터를 보여줬다. 이만희가 연달아 발표한 걸작 < 물레방아 >(1966), < 귀로 >(1967), < 휴일 >(1968)도 전작들의 분위기를 이어받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과감하게 넘어선다. 귀기 서린 여인의 얼굴과 새하얀 버선, 그 아름다움에 홀린 남성의 집착과 파멸이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를 흐리고, 서울의 낮과 밤을 부유하며 자신이 정한 계율과 투쟁하다 죽음을 선택한 여인의 불안과 공허는 무심히 들려오는 전화벨 소리와 공명한다. 또 담배 한 개비조차 편히 피울 수 없는 젊은 룸펜과 그의 연인의 육체를 날려버릴 만큼 강력한 모래바람의 운동처럼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은 우연히 튀어나올 리 없는 창조적 역량과 그의 무드가 온전히 결합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유작 < 삼포 가는 길 >(1975)까지 이어지는 이만희의 영화들은 반공영화와 문예영화처럼 국가와 영화산업의 필요에 따른 규칙을 뛰어넘어 살아 생동하며, 원작과 다른 정취를 표현함으로써 고답적인 한계에 갇히지 않았다. 또 전쟁영화, 멜로드라마, 스릴러, 첩보물, 만주 웨스턴 같은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고 장르의 규범을 탈바꿈시켰으며,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을 넘나들며 인간과 삶, 가변적인 감정과 불변하는 운명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한 채 갇힌 인물의 도덕성을 가혹할 정도로 밀어붙였다. 이만희는 프레임에 인물의 감각과 감정을 새겨 넣고 그 시대의 무드를 기입했으며 빛과 어둠을 새롭게 조직하고 그만의 속도와 리듬을 창조했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그의 영화를 관통하는 인간됨에 대한 믿음과 캐릭터의 생생함, 스펙터클과 정감을 조율하는 뛰어난 영화적 감각, 운동하는 존재와 갇힌 존재가 숏 안에 배치되고 격돌하는 미장센과 리드미컬한 편집을 갖추고 있다. 이 영화는 인천상륙작전에서 시작해 서울 수복을 거쳐 인해전술을 펼치는 중공군과 대치한 전선에서 끝을 맺는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가장 강력한 사건을 향해 점진적으로 확대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만희는 마지막 참호전을 위해 <돌아오지 않는 해병>을 찍은 것처럼 느껴질 만큼 중공군과의 전투에 모든 힘을 쏟는다. 이를테면 첫 번째 전쟁 시퀀스인 상륙작전은 오프닝에 등장해서 이 영화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드러낸다. 두 번째 전투 시퀀스인 텅 빈 건물에서 벌어진 매복과 총격전은 인민군에 의해 학살된 시민들의 주검으로 이어지는데, 시선의 방향에 따른 빈틈없는 편집과 시각적 스펙터클 뿐 아니라 심리적 긴장까지 녹여낸 유장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압권은 마지막 전투 장면이다.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전선에 합류한 분대원들은 “적을 포위 섬멸하기 위해” “진지를 방어하는” “불리한 싸움”을 해야 한다. 영화에서 가장 긴 시간을 할애한 이 장면은 4번의 전투 시퀀스로 구성되어 휴지기/전투의 반복과 확장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증명하는 주검으로 뒤덮인 참호로 향한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전투가 벌어지는 사이에 개성이 강한 분대원들과 호랑이 분대장(장동휘)이 전쟁이란 무엇인지 자문하고, 전쟁에서 이겨야 하는 이유를 말하고, 죽음에 대한 공포와 체념을 수시로 체험하며, 군인으로서의 의무와 전우애를 뼈저리게 느끼고, 후방에 맡겨둔 아이 영희(전영선)의 편지를 받고 눈물 흘리는 집단 초상화에 가까운 얼굴들이다. 분대원 각각의 클로즈업은 죽음에 가까이 갈수록 드러나는 반면, 군인이라는 유대감으로 똘똘 뭉친 그들은 사람 살아가는 곳 어디에나 있는 집단의 구성원으로 존재한다. 그렇기에 “총원 42명”이던 분대원들이 하나씩 프레임에서 사라져 2명만 남게 되는 순간, 우리는 분대장의 고통을 이기지 못한 얼굴에 압도된다. 마찬가지로, 죽어가면서도 “내가 없으면 누가 웃겨주니?”라고 너스레를 떨던 봉구(구봉서)의 죽음에 애통해하는 분대원들은 진흙과 피와 눈물로 얼룩진 개인의 얼굴로 포착된다.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뛰어든 분대원들에게 “14시 이후의 생존자는 집으로 돌아가라.”며 죽지 말고 살아남길 당부한 분대장의 말은 마지막 전투 시퀀스에서 살아남은 대원에게 “너희 둘만은 꼭 살아 돌아가서 전쟁의 증인이 되어라.”는 명령과 연결된다. 살아남으라는 말이 채 가시기 전에 구일병(이대엽)마저 죽어 엎드러질 때 눈물 흘리는 최해병(최무룡)과 흐느끼는 분대장의 얼굴은 전쟁의 실체를 겪은 자의 무참함을 드러낸다. 셀 수 없는 주검과 진흙과 피로 범벅이 된 분대원의 얼굴, 전쟁 후 복구되지 못한 당시의 황폐한 산천도 참담하고 고통스런 얼굴에 다름 아니다. 이만희의 실제 경험과 영화적 역량이 여실히 드러난 전투 장면과 전쟁의 무의미함에 대한 고백과 개인의 삶을 영위하는 것이 최선의 길임을 선언하는 것도 놀랍지만,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백미는 전투를 치르지 않는 후방의 막사나 럭키 클럽에서 드러나는 분대원 개개인의 놀랍도록 선명한 기질처럼 세부적인 것들이다. 영희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별명을 듣고 껄껄 웃거나 불만을 표하는 모습, 시가전에서 잡은 인민군 포로에게 그 흔한 매질 한 번 없는 모습, 눈이 녹은 땅을 보며 “전장에도 양지는 있구나.”라며 감탄하던 봉구의 구성진 말소리, 최해병이 건넨 총을 받아들고 그의 손에 이끌려가는 분대장의 휘청거리는 발걸음, 어린 소나무들이 듬성듬성 심겨진, 민둥산에 가까운 산등성이의 나직하고 고운 모습 등이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해병대원이 몇 천 명 참여했고, 탱크와 총기를 지원받아 실탄을 쐈다는 기록보다 귀중한 손길을 느낄 수 있다. 실제를 방불케 하는 스펙터클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당대 영화인들의 노력과 이만희의 천재적인 연출력과 서정민의 역동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카메라 움직임처럼 다양한 힘의 작용으로 만들어진 영화이기에 감동적이다. >> 돌아오지 않는 해병 고화질 VOD 보러가기 <<
한국적인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 < 한네의 승천 >(1977)을 보면서 이런 질문을 떠올렸다. 하길종 감독의 어떤 다른 영화보다 덜 표현적이지만, 이 작품은 더 전통적인 표면을 가지고 있다. 극작가 오영진이 발표한 ‘의례3부작’ 중 동명의 이야기를 각색해 완성된 시나리오로, 주인공은 동네 머슴 만명( 하명중 분)이다. 그는 신세를 비관해 자살하려고 하는 한네( 전영선 )를 구해내 자신의 움막으로 데려온다. 언뜻 소재 면에서는 영화는 전통극의 전형처럼 보인다. 그런데 연이어 등장하는 ‘환상 시퀀스’가 내러티브의 구조를 바꾼다. 모더니즘 방식으로 몽타주된 무성의 모노톤 화면들이 영화의 전체적인 감상을 뒤흔든다. 단언컨대 <한네의 승천>은 관객들의 기대를 거스르는 영화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장르적인 ‘초현실주의’나 ‘환상영화’ 등으로 소급해서 소개하기는 어렵다. ‘문예영화’라고 분류되는 것에서 짐작하듯, 특정한 영화언어를 구현하기 위해 만든 작품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한(恨)’을 소개하는 통속적 민속극과 다르게, 영화는 인물이 아닌 ‘이야기’ 중심으로 서사를 다룬다. 기억의 ‘주체’가 일정하지 않고 바뀌어서 소개되는 것도 특징이다. 어쩌면 이 영화의 현대성은 당대 ‘<영상시대> 그룹’이 도전했던 ‘새로운 영화언어 찾기’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총 두 가지의 회상장면 중 첫 번째는 한네가 주인공이다. 그녀에 따르면 자신은 어떤 ‘아저씨’의 선택으로 부모와 떨어져 생활하게 됐다. 이후 원치 않은 곳을 떠돌며 살았고, 그 과정에서 삶의 목표를 찾았다. “어디로 가려고?” 묻는 아저씨의 질문에 그녀는 “꽃신을 신어야지요”라고 답한다. 추상적이지만 숭고한 이상향이다. 다음으로 두 번째 회상은 만명의 것이다. 어린 만명을 보면서 “쌀밥 먹고 싶지?”라 묻던 다정한 어머니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 어느 바람 부는 아침에 그녀는 ‘선녀’가 되어 그의 곁을 떠났다. 만명의 기억에서 어머니는 한네의 얼굴과 동일하게 묘사된다. 그런 그를 보면서 한네가 말한다. “서방님은 나와의 인연이 아니라, 어머님의 아들일 뿐이다”라고. 이 두 번째의 회상 이후에 일상은 조금씩 어긋난다. 영화에는 ‘환상 같은 현실적 장면들’이 차례로 등장하는데, 그 장면들 모두에 ‘한네와 닮은 여성들’이 나타난다. 만명이 마주치는 빨간 옷의 ‘술집작부’가 대표적이다. 그녀가 살해당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꿈인지 생시인지 알지 못할 정도로 혼돈스럽게 그려진다. 그리고 한네를 ‘만명의 어머니’라 착각하는 재수 영감( 황해 )의 환상에도 그녀의 얼굴이 등장한다. 기필코 감추려던 늙은이의 불순한 만행이 그 여린 얼굴을 통해 세상에 드러난다. 생각해보면 ‘한네’는 단 한 번도 땅 아래에 뿌리내린 적 없는 캐릭터다. 실존적 인간으로서 그녀는 소개되지 못한 채 스크린에서 사라진다. 애초 ‘놀이패’ 생활을 하던 어린 시절도 그랬고, 아저씨를 따라 나선 이후에도 그녀는 정착한 적이 없었다. 이곳 ‘선녀동’에 당도한 후로도 마치 선녀처럼 생활했다. 단적으로 그녀의 새 공간인 ‘만명의 방’으로 카메라는 다가가지 못한다. 마치 ‘헤스티아의 신전’을 그리듯 영화는 그곳은 금줄 쳐진 터부시된 공간으로 묘사한다. 욕망 그득한 프리아포스들이 그 장벽을 깨려고 하지만, 모두 내쳐진다. 그녀는 상징적인 처녀로서 생을 마감한다. 만일 표현이 아닌 기억이나 주관적 시점 등의 ‘환상 시퀀스’가 이 영화의 특이점을 드러낸다면, 영화 외향이 내부적 요인들과 상충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하길종 감독은 마치 아이스킬로스라도 된 듯 한국식 리얼리즘을 그리스식 비극으로 연출한다. 그가 운명을 선호하는 감독이라 생각했던 적은 없지만, 적어도 이 영화의 양식에서 우리는 서구 비극의 운명성을 감지한다. <한네의 승천>이란 제목부터 아이러니를 감추고 있다. ‘로망스’를 꿈꾸며 시작된 영화가 ‘불안’을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어쩌면 감독이 전작 < 수절 >(1973)이나 < 바보들의 행진 >(1975)에서 겪었던 과격한 행정 검열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미학적인 자기검열을 행한 것인지 모른다. 소재가 아닌 구조의 영역에서, 이 모든 내부의 이야기들이 상쇄되어 가리어진다. 주인공이 겪는 자기징벌적인 사랑의 행로는 결국 외향적인 전통의 틀과 어긋난다. <한네의 승천>을 한국적 영화라고 소개하기 어렵다는, 간단하지만 역설적인 첫 인상을 소개하려고 먼 길을 돌아온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작품의 과격하고 구조적인 발상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어쩌면 최근의 한국영화가 겪는 경계에서의 함정을, 이 작품은 기묘하게 비켜나간다. 고의적으로 작성된, 날카롭고도 잔인한 프레임을 지닌 심플한 드라마를 바라본다. 이 극이 비록 설득력을 갖지 않고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하더라도, 시대가 비켜야할 함정을 영리하게 뛰어넘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건 일종의 게임일 수 있다. 점점 더 지능적이 되어야만 하는 새로운 시대의 영화에 대해 <한네의 승천>은 일종의 우화로서 작용한다. >> 한네의 승천 VOD 보러가기 <<
영화는 두 소년, 소녀의 대화로 시작한다. “완두의 큰 것과 작은 것을 교배시키면 키가 큰 놈만 나온다고”, “그러니까 영수 너가 이다음에 커서 결혼을 하면 너희 아버지처럼 난장이가 아니라 큰아이를 낳을 수 있단 말이지?” 소년 명수의 아버지는 사람들이 ‘난쟁이’라고 놀리는 ‘왜소증 장애인’이다. 아버지가 놀림당할 때, 그의 아이들은 나도 ‘난쟁이’가 되거나, 난쟁이’를 낳게 되는 게 아닌지 두려워한다. 그런 명수에게 어딘가에서 본 ‘멘델의 유전법칙’은 나름대로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명수는 소녀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동네 사람들의 직업인 염전노동자가 되지 않겠다 약속한다. 명수( 안성기 )는 다행히 키 큰 청년으로 성장하고, ‘염전노동자가 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성인이 된 그는 하고 싶었던 공부도 못했고, 변변한 직업도 없는 신세다. 그럼에도 그를 둘러싼 가족만큼은 단단하다. 이들은 가족만을 생각하는 엄마( 전양자 )의 헌신과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아버지( 김불이 )에 대한 존중으로 함께 살고 있다. 엄마는 “그래도 우리 가족이 모여 살 집 한 채가 있다는 게 어디냐”고 말한다. 어느 날, 그 집 한 채마저 사라질 위기가 닥친다. 위기는 난데없는 굉음으로 먼저 찾아온다. ‘탁 탁 탁 탁!!!’ 판자를 붙여 만든 대문에 누군가가 망치질을 하고 있다. 문틈 사이로 보이는 가족의 표정에는 문을 부수고 들어오려는 좀비를 마주한 것 같은 공포가 서려 있다. 망치질을 끝낸 사람이 말한다. “번호판을 잘 지키십시요. 번호판이 없으면 보상을 못 받게 됩니다.” 가족은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엄마는 마음을 다잡고 아들을 먼저 안심시키려 한다. “놀랄 거 없다. 언젠가는 우리에게 꼭 찾아올 것들 중 하나니까, 이제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로구나.” 유명한 소설을 영화화하는 감독은 모두가 원작의 무게에 짓눌릴 것이다.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하 <난쏘공>)을 연출한 이원세 감독은 조세희의 동명 원작과 공간을 달리하면서 그 무게로부터 벗어난다. 원작의 낙원구 행복동 46번지는 한강을 지척에 둔 달동네이지만, 영화의 배경은 쇠퇴한 염전마을이다. 촬영장소는 지금은 시화공단이 된 과거 군자염전 마을이고, 실제 그곳을 다니던 수인선 협궤열차도 중요한 공간으로 나온다. 영화의 배경이 원작과 다른 이유가 검열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이원세 감독의 마스터클래스에 따르면 처음부터 염전마을을 생각했다고 한다. 이원세 감독 자신이 실제 군자염전마을에서 살았던 사람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시 경험을 토대로 그는 김수용 감독의 1968년 작 <수전지대>의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으며 자신이 연출한 < 엄마 없는 하늘 아래 > (1978) 속 아버지를 염전 노동자로 설정하기도 했다. 공간이 바뀌면서 영화는 감독이 가장 잘 아는 곳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되었다. 영화 속의 염전은 상황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전국을 돌며 서커스 공연을 다녔던 김불이가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만날 때의 염전은 풍요롭게 빛난다. 하지만 명수가 옆집에서 함께 자란 명희( 전영선 )와 염전 밭 사이를 걸으며 불안한 미래에 대한 대화를 나눌 때는 사방이 축축한 절망의 공간이다. 그 때문에 인물들이 갇힌 공간이 원작보다 더 고립되어 보이기도 한다. 김불이와 명수가 한강에서 작은 나무배를 타고 나가 대화를 나누는 원작의 장면도 영화에서는 바닷가로 바뀌었는데, 이 상황은 멀리 보이는 노을 덕분에 더 애틋하다. “난 너희 어머니를 위해 먼저 달나라에 가서 릴리푸트 마을을 건설할 셈이야.” 이원세 감독은 그처럼 다양한 염전의 표정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침이면 일터로 나갔다가 밤이면 수인선 협궤열차를 타고 돌아오는 가족의 모습 또한 그의 기억에서 나온 장면일 가능성이 크다. 덕분에 영화 <난쏘공>은 지금은 사라진 공간에 대한 희귀한 기록이 되기도 했다. 서울 달동네 대한 기록에 비해 군자염전에 대한 기록은 훨씬 더 적을 테니 말이다. 당장 집을 내줘야 하는 상황이지만, 이 가족에게 마땅한 탈출구는 없다. 아파트 입주권을 팔아도 대부분의 돈을 빚 갚는데 써야 하고, 아파트로 들어가려면 훨씬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명수는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명희의 죽음을 겪고, 유명한 권투선수가 되어 돈을 벌어보려고 했던 동생 영호( 이효정 )는 경기에서 지고 만다. 오빠들이 사랑하는 여동생 영희(금보라)는 가족의 생존을 위한 위험한 모험에 몸을 던진다. 원작에도 나타나는 남루하고 절망적인 이야기들이지만, 이원세 감독은 원작보다 더 강인한 인물들을 그리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가장 두드러진 묘사는 배우 전양자가 연기한 엄마에서 나타난다. 남편을 존중하고 자식들을 소중히 여기는 전형적인 여성상 같지만, 그녀는 이 가족 구성원 가운데 가장 냉철한 캐릭터다. 자식들에게 이제 너희가 돈을 벌어야 한다는 현실을 일깨우고, 위기가 닥쳤을 때는 당장 먼저 챙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의연함을 보인다. 이 캐릭터의 가장 강렬한 모습은 철거용역이 집을 철거하는 장면에서 볼 수 있다. 가족들은 이 집에서의 마지막 식사인 걸 아는 듯 고기를 굽는다. 철거용역은 이 집에 사람들이 있는 줄도 모른 채 철거를 시작한다. 가족들은 집이 무너지는 소리에도 계속 고기를 먹는다. 급기야 철거용역은 아들이 식사를 하는 방까지 부숴버린다. 영화는 인물들의 얼굴 뒤로 집이 무너지는 광경을 배치하면서 이들이 다부지게 고기를 씹는 표정을 강조한다. 철거용역은 그제야 사람을 보고 잠시 철거를 멈춘다. 영화는 이때 엄마의 존재를 또 한 번 부각시킨다. 엄마는 남은 고기를 들고 밖으로 나가, 철거 단원들에게 한 점씩을 먹인다. 마지막 식사를 배려해준 그들에 대한 최선의 호의. 동시에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다. 절망적인 에피소드가 이어지는 이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다.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은 세상에 나온 지 30년이 된 지금도 사랑받는 이야기다. 지난 2017년까지 300쇄가 팔렸다고 한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주인공 김불이의 가족이 겪는 고통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어딘가에서 누군가 겪고 있을 법한 것이기 때문일 것 같다. 집이 없다는 불안감은 소설이 나온 1975년이나, 영화가 나온 1981년이나 이 글을 쓰고 있는 2018년에나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실제 「난쏘공」은 지난 2006년에도 영화화 시도가 있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영화화에 참여한 프로듀서는 "원작의 시대적 배경인 1970년대를 그대로 반추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라며 “「난쏘공」이라는 뛰어난 작품의 환경과 인물을 빌려 이 시대 가장 낮은 곳에 살고 있는 소시민 가족들의 정신적인 소통과 애정, 사랑을 다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난쏘공」은 1981년의 영화 <난쏘공>이 보여준 것처럼, 공간을 달리해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보호를 받고 있었다. 남아프리카의 어느 원주민들이 일정한 구역 안에서 보호를 받듯이 우리도 이질 집단으로서 보호를 받았다. 나는 우리가 이 구역 안에서 한 걸음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작의 이 문장에서 지금도 울림을 느낀다면, 동의할 것이다. 2020년을 바라보는 지금의 낙원구 행복동은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