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간직한 정동진
- 제작년도
- 2010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사진 클릭 시 유튜브 인터뷰 영상으로 이동) 강릉 시네필을 위한 명소: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은 홈플러스, 중앙시장, 월화거리 등이 있는 강릉의 시내 한 가운데 쌍둥이 빌딩인 ‘신영 빌딩’의 우측 건물 4층에 위치하고 있다. 구도심이긴 하지만 강릉 시내 어디에 있건 10분이면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에 도착할 수 있다. 위치는 이곳의 이름이 신영극장이었을 때와 동일한데, 1990년 신영극장이 폭설로 무너져서 이듬해 다시 건물을 지을 때 같은 위치에 지었다. 신영극장 시절부터 강릉 사람들은 ‘신영극장 앞에서 보자’라는 약속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극장 바로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 이름이 오랫동안 ‘신영극장’이라서 극장에 한 번도 오지 않은 강릉 사람이 있다고 해도 버스 정류장 이름은 모두 알 정도이다. 강릉역 KTX가 개통되어 강릉을 찾는 발걸음이 늘어나면서 특히 서울에서 온, 영화를 좋아하는 여행자들이 신영극장을 찾는 경우도 많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 밤의 해변에서 혼자 >(2016)에서 김민희 가 혼자 영화를 보는 극장이 바로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인데, 사람들은 강릉 바다를 보러 가거나 커피를 마시러 가기 전에 순례 코스처럼 이곳에 들르곤 한다.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로비 전경 건물 내부를 살펴보자면, 4층까지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올라갈 수 있어서 장애인 접근성이 좋은 편이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라운지가 나오는데, 정면에 필름 영사기가 크게 보인다. 영사기 너머로 테이블과 소파 의자 등이 놓여 있다. 라운지 안에는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의 대기 공간과 매표소가 있다. 기다리는 동안 자료를 둘러보고 차와 커피, 음료는 물론 팝콘을 구매할 수 있다. 한쪽 벽에는 현재 상영 중인 영화 홍보물들은 물론 이전 상영작들의 포스터들이 붙어 있어서 작은 영화 박물관 같은 느낌을 준다. 또, 대여할 수 있는 블루레이와 DVD도 진열되어 있고 음료는 물론 팝콘도 구매할 수 있다. 한쪽 벽에 흰 타일로 재개관 당시 극장의 보증금을 후원한 사람들과 기관들의 이름이 적혀 있고, 이전 신영극장일 때의 좌석 배치도와 관람자 준수사항이 적힌 오래된 액자도 걸려 있다. 우여곡절의 역사 신영극장은 강릉의 네 번째 극장으로 1965년 11월 1일, 극장주 최종승 씨에 의해 문을 열었다. 당시 810개의 좌석을 가진 극장으로 강릉의 다른 극장보다 규모가 꽤 커서 학교 학예발표회나 지역의 공무원 교육장으로도 많이 이용되었다고 한다. 1990년 강릉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을 때 쌓인 눈을 이기지 못하고 지붕이 무너졌는데 다음 해인 1991년 9월 6일 최종승 씨는 무너진 신영극장 자리에 새로 쌍둥이 건물을 올린 뒤 신영 1, 2관을 오픈해서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2005년 최종승 씨 사망 이후 직원들이 극장 경영을 유지하다 2007년부터 아들인 최상순 대표가 인수해 운영했다. 그러나 2000년대부터 강릉 지역의 영화관람 가능 인구와 관람객이 감소한데다 멀티플렉스의 위세에 밀려 2007년 7월 2관을 폐관하고, 2009년 2월 4일 마지막 상영을 하며 1관마저 폐관하게 되었다. 상영관 내부 이후, 강릉의 시민모임이자 영화 단체인 ‘강릉씨네마떼끄’가 기금 모금과 영화진흥위원회 지원사업 선정으로 구 신영극장의 2관에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을 다시 열게 되면서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으로 재탄생했다. 강릉씨네마떼끄는 극장 좌석마다 시민들의 후원금을 받아 이름을 새겨주는 ‘나는 주인이다’ 프로젝트로 보증금을 마련해 지역 최초 민간 비영리 극장으로 2012년 5월 18일 문을 열었다. 신영극장 2관에서 ‘독립예술극장 신영’으로 개관한 이후 현재까지 강릉의 유일한 독립예술영화 전용극장이자 단관 극장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운영은 강릉 지역 유일의 영화단체 ‘강릉씨네마떼끄’가 지속하고 있다. 강릉씨네마떼끄는 1996년에 창립된 영화단체로 독립예술극장 신영의 운영과 함께 매년 8월에 열리는 ‘정동진독립영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이후 재정적인 이유로 2016년 3월 1일부터 1년여 간 임시휴관을 한 뒤 강릉시의 안정적인 지원 약속을 바탕으로 다음 해인 2017년 3월 24일 재개관했다. 당시 강릉시는 “독립영화에 대한 시민들의 접근성을 확보하고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한다”라며 5천만 원 지원을 결정했다. 이는 기초자치단체로서는 전국 최초로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에 직접 지원한 사례이다. 재개관과 동시에 내부를 리뉴얼을 했는데, 기존 200석에서 111석으로 좌석을 변경했다. 이후 2022년 2월 10일에는 전 좌석을 가죽 시트로 변경하고 4K 레이저 영사기를 도입했다. 그러나 2023년 다시 폐관 위기에 놓이는데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을 지원하는 강릉시와 강원도의 보조금이 2023년 들어 전액 삭감되면서 심각한 운영난을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이에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은 극장을 이어가기 위해 2월부터 3월까지 2개월간 후원 캠페인을 벌여 4천만 원의 후원금을 달성하였고 지자체로부터도 추가경정예산을 약속받았다. 로비의 DVD, 블루레이 컬렉션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은 현재 국내외 다양한 작품을 하루에 5편씩 매일 상영하고 있다. 강릉씨네마떼끄 회원 회비는 월 1만 원 이상으로 회원들에게는 기념 스탬프 발행과 할인 혜택을 주고 있고,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이 보유하고 있는 DVD, 블루레이도 무료로 대여 가능하다. 비회원은 DVD 2000원, 블루레이 3000원을 내고 대여한다. 지역민들의 주도로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이라는 점이 현재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의 가장 큰 특성이다. 신영은 버스정류장 이름으로 유적처럼 강릉 주민들에게 남기보다는, 동시대를 살고 있는 문화예술공간이자 극장으로 살아남기 위해 꾸준한 행보와 더불어 치열한 고민과 모색을 하는 기로에 있다. 공간 및 운영 개요 1. 위치 : 강원 강릉시 경강로 2100 4층 2. 설립일 : 최초 신영극장은 1965년 11월 1일에 개관 2012년 5월 8일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이라는 이름으로 재개관 3. 대표자 : 강릉씨네마떼끄 (비영리 민간극장) 4. 규모 : 상영관 크기 (W*D*H) 11.2 * 18.4 * 5, 62.5평, 주차장 없음 5. 극장 구성 (관수, 관별 좌석수) : 1개관 111석 (일반좌석 107석, 휠체어 4석) 6. 운영시간 : 평일 12시 오픈, 주말/휴일 10시30분 오픈 (하루 작품 5~6편 상영), 매월 첫째 주 월요일 정기휴무일 7. 입장료 : 일반 8,000원, 회원(강릉씨네마떼끄/나는주인이다/시네필) 7,000원, 청소년 7,000원, 초등학생 5,000원, 노인/장애인/미취학아동 4,000원, 조조 6,000원 8. 조직 구성 (5인) 대표(권정삼), 사무처장(프로그래머 겸임, 송은지), 사무국장(운영팀, 김슬기), 홍보팀(자원활동가 2인) 9. 공간 구성 상영관 1관, 매점 1개(매표소와 같은 공간), 휴게실 1개(매표소와 같은 공간으로 의자 20석 비치되어 있음) 필자 : 김문경 사진촬영 : 허 성 취재 및 인터뷰 일자 : 2023년 4월 24일
2011년 10월,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내가 연출한 첫 번째 장편영화 < 물고기 >가 처음 상영되었다. 이전에 7편의 단편영화를 찍었지만 국내 영화제에 단 한 번도 초청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감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3D영화인 <물고기>는 연출자인 내가 후반작업 공정을 감당해야 했는데, 너무 힘든 과정이었다. 3D작업은 많은 작업량이 필요한데다, 사실 촬영 전부터 제작사가 투자 이외에는 작품 제작에 관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4평 남짓한 조그만 방에서 오랜 시간 작업하며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는데 다행히 부산에 초청된 이후, 로테르담국제영화제부터 밴쿠버국제영화제까지 열 군데가 넘는 해외 영화제에 초청되며 토니 레인즈(영화 평론가), 거윈(로테르담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등 많은 해외 영화인들과 가까워지게 되었다. 또한 이광국 감독(< 로맨스 조 > < 꿈보다 해몽 >), 박정범 감독(< 무산일기 > < 산다 >), 이돈구 감독(< 가시꽃 > < 현기증 >) 등 멋진 작업을 하는 감독들과 교류하며 영화작업 외적인 행복감도 느꼈다. 이후 < 물고기 >는 2013년 1월에 개봉했고, 언론배급시사회와 유료시사회는 전부 3D로 상영했지만 정작 본 개봉은 3D 관을 하나도 잡지 못하고 소수의 일반 상영관에서만 개봉을 하며 500명을 간신히 넘는 스코어를 기록하고 말았다. 열패감이 심했지만 그래도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그사이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상태에서 2년간 <황사>라는 시나리오를 열심히 취재하며 썼고, 2년 넘는 작업 끝에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그러나 결국 여러 지원 프로그램에서 떨어지고 제작하려는 사람도 없게 되자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방향을 잃어버리니 스스로가 점점 고립되어 갔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될 그즈음 이광국 감독은 굉장히 힘든 상황에서 < 꿈보다 해몽 >을 완성하였고(정말 대단하신 분이다), 내가 매일 혼자 방에 있는 것을 알고는 수시로 작업실로 찾아오며 대화상대를 해줬다. 이돈구 감독도 시간이 날 때마다 작업실에 와서 재능을 의심하고 있는 나에게 큰 힘을 주곤 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괴로워할까. 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영화를 찍고 싶다. 왜 찍고 싶을까? 영화를 통해서 내 고민을 표현하고 싶다. 그렇다면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을 내가 흥미 있는 방식으로 솔직하게 영화로 만들어보자. 또한 어차피 고독할 거라면 내가 모든 제작 공정을 전부 컨트롤 할 수 있는 시스템 안에서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며 시작한 영화가 바로 < 혼자 >이다. < 혼자 >라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자체에 몰입하며 여러 복잡한 마음을 한 곳으로 모을 수 있었다. 한참 그렇게 방에 틀어박혀 구상하고 있을 때 박정범 감독이 갑자기 차를 몰고 왔고, 함께 정동진독립영화제에 가게 되었다. 바닷가에서 돗자리만 펴고 잠든 다음 날, 나는 박정범 감독에게 “대낮에 살인을 저지른 괴한이 내 작업실에 창문을 부수고 들어와 목격자인 나의 머리를 망치로 내리치는데, 나는 죽지 않고 맞은편 정자에서 알몸으로 깨어난다.”는 기본 줄거리를 처음 이야기했고 그러자 “재밌겠네. 꼭 만들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해주었다. 내가 있는 작업실의 맞은편 동네는 신당9구역 재개발지역으로 신당동에 마지막 남은 재개발 구역이다. 현재는 재개발과 도시재생 사이에서 첨예한 대립각에 놓여있다. 힘들 때 옥상에 올라가면 이 동네의 모습이 한눈에 보이는데, 언덕 빽빽이 놓인 집들의 모습을 보면 묘한 느낌이 든다. 왠지 아름답기도 하고 압도적이기도 하고. 힘들 때 동네를 보고 있으면 이 동네의 모습이 마치 내 뇌 속 같다는 느낌도 들곤 했다. 이러한 느낌들을 영화로 구현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매일 그 동네를 걸어 다니며 고민하고 관찰했다. 그리고 그 복잡 미묘한 동네의 모습과 내 무의식의 흐름을 대입시켜 표현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움직이는 롱테이크를 사용하면 무의식의 흐름이 긴 줄기처럼 효과적으로 표현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칙은 CG는 가능한 사용하지 않고 본 촬영에서 최대한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감당할 것. 그리고 무의식의 흐름을 긴 줄기처럼 표현하기 위해 움직이는 롱테이크 기법을 최대한 활용할 것. 이었다. 움직이는 롱테이크를 잘 구현하려면 안정적인 카메라 움직임이 필요했고, 이에 대해 고민을 해야 했다. 직접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일단 테스트가 필요했고, 장비 렌탈을 하기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직접 구비하고 되파는 방식을 선택했다. 우선 갖고 있는 물건들을 팔고 빌려 돈을 마련했고, 필요한 촬영 장비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사진 설명] 블랙매직 포켓 카메라 이미지 출처: https://www.blackmagicdesign.com/products/blackmagicpocketcinemacamera 일단 작은 카메라를 사용하고 싶어서 블랙매직 포켓 카메라를 구매했다(마침 차기 제품이 나오기 전 반값으로 할인하는 특별행사 기간이었다). 일반적인 DSLR류 카메라는 압축코덱을 사용하여 색보정 시 열화가 발생할 확률이 높지만 이 카메라의 경우는 저가 카메라에서는 보통 채택하지 않는 무압축 코덱(RAW)을 지원하고 계조가 13스톱이기 때문에 색보정 시 여러 가지 유리한 점이 많았다. 대신 단점도 많았는데 일단 선예도가 뛰어나지 않고 환산화각이 2.88:1 배율이라 화각이 너무 좁아 12mm 렌즈를 사용해야 간신히 표준 사이즈로 들어올 수 있었다. 추가 화각을 확보하기 위해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결국 30%가량의 화각을 더 확보할 수 있는 아나모픽 렌즈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화각 확보도 확보인데 포커스 아웃에서 발생하는 망울 느낌과 아나모픽 특유의 푸른 가로선 등이 내가 고민하는 영화의 기호와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AG-LA7200 어댑터 렌즈 이미지 출처: https://youtu.be/WkmS-9MTyR8 저가형 아나모픽 렌즈를 구매하고 팔며 테스트도 해보고 여러 군데를 다니며 공부를 하던 중, 파나소닉에서 예전에 캠코더의 4:3 사이즈를 16:9로 바꿔주는 AG-LA7200 어댑터 렌즈를 발매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제품을 16:9 렌즈에 장착하면 2.35:1로 바꿔주는 효과가 생긴다. 또한 대다수 아나모픽 렌즈는 아나모픽 렌즈에서 포커스 조정을 한 번 더 해줘야 하는데 이 제품은 본 렌즈의 포커스만 조정해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이 제품은 절판된 데다가 국내 중고장터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어 해외 이베이를 뒤지기 시작했고, 겨우 독일에서 판매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국내 도착까지 2주가량 걸렸는데 다행히 장비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대신 이 제품이 원래 캠코더용이기 때문에 일반 렌즈에 장착하려면 여러 어댑터 링이 필요해서 종류에 맞춰서 구비해 놨다. 이 상태에서 여러 테스트 영상을 찍기 시작했는데 카메라가 너무 흔들려서 도저히 영상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카메라 스테빌라이저 장비를 사용해야겠다고 판단했고 다시 조사를 하던 중, DJI 사의 로닌이라는 제품이 발매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전에도 몇몇 업체에서 자체적으로 짐벌을 제작하고 발매하였지만 감당할 수 있는 무게와 안정성에 있어서 의문이 드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 제품의 제원은 내가 원하는 수준에 있었다. 현장에서의 짐벌, 이지리그 사용 모습 짐벌을 구매하고 나서 다시 생긴 문제는 포커스 부분이었다. 짐벌에 올린 상태에서는 카메라 수동 포커스 플레이가 불가능 한 것이다. 수동으로 포커스 플레이를 하기 위해서는 무선 팔로우 포커스가 필요했는데 가장 유명한 바텍이라는 업체의 무선 팔로우 포커스는 가격대가 1000만 원 가까이라 너무 비쌌다. 그렇다고 중국 제품을 쓰기에는 소음문제나 연동문제에 있어서 불안한 부분이 꺼려졌다. 그때 프랑스 이베이에 올라온 영화 장비 경매에서 바텍 무선 팔로우 포커스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격도 원가의 1/10에서 경매를 시작했고, 관세 포함 1/5 가격 정도에 낙찰받았다. 물품이 배송되는 몇 주 동안 문제가 발생할까 봐 정말 피를 말렸는데 다행히 도착한 제품은 크게 문제가 없었다. 무선 팔로우 포커스가 장착된 무선 모니터 이후, 카메라에 무선 팔로우 포커스와 짐벌을 장착하고 테스트를 했는데 카메라의 움직임은 만족스러웠지만 영상을 모니터 할 수가 없어 저가의 중고 소형 모니터 2대를 추가로 구매했다. 그리고 무선 영상 송수신기와 여러 장비들을 장착하니 너무 무거워져 안정적으로 카메라를 지지할 수 있는 이지리그 등을 추가로 구매했다. 또한 골목길에서 계단을 올라다니며 촬영을 하려면 촬영자가 수동으로 짐벌의 움직임을 조정할 컨트롤러가 필요한데, 지금은 정품 발매가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로닌에서 썸 컨트롤러가 발매되지 않아서 인도 이베이에서 개조해서 쓰고 있는 판매자를 통해 모사품을 구매하여 장착했다. 이러한 과정으로 기본 카메라 세팅을 했지만 촬영 과정에서 준비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다행히 그쯤 김병정 촬영감독님이 작업에 참여하시게 되어 함께 준비할 수가 있었다. 스토리보드에 짜 놓은 모든 장면이 영상으로 가능한지 전부 테스트를 해보고 싶었는데 대부분의 장면이 호락호락하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많이 고민했던 미장센을 타협하고 싶지 않았다. 편의점 그래서 구현 가능한 방법을 찾기 위해 촬영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일단 복면남이 창문을 깨고 들어오는 초반 시퀀스와 편의점 장면 등 대부분의 장면은 많은 리허설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민이 텅 빈 동네를 걸어 다니며 이곳저곳에서 나타나는 장면은 기존 장비와 상황으로는 구현하기가 어려웠다. 일단 맞은편 옥상에서 동네를 촬영할 경우 망원렌즈를 쓰면 노출이 너무 떨어진다. 그래서 ISO값이 높게 적용되어 어두운 곳에서도 촬영이 비교적 용의한 A7S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압축코덱을 사용하여 색보정 시 불리한 점과 낮은 스탑의 다이나믹 레인지, 카메라 간 질감 차이 등은 감수하기로 판단했다. 맞은편 옥상에서 반대편 동네를 걸어 다니는 수민을 관찰하듯 촬영하려면 망원렌즈를 사용해야 했다. 그래서 아답터 적용 값과 표준 사이즈 대비 카메라 크롭 정도까지 포함해서 환산화각 2000mm 이상이 되는 렌즈를 사용하여 촬영하기로 결정했다. 이 장비들의 경우 렌탈해서 테스트했는데 미세하게 조절을 하지 않으면 인물을 따라가기 어렵거나 움직임이 틀어지는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김병정 촬영감독님과 여러 변수들을 고려하여 준비를 하고 많은 테스트를 해가며 확신을 가져갔다. 또한 정말 어려웠던 장면은 동네 전경을 비추던 카메라가 서서히 내려와 수민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후, 택시를 타고 떠나는 수민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장면은 이 동네가 수민의 머릿속이고, 이곳을 수민이 벗어나기 위해 택시를 타고 달아난다는 기호를 이미지적으로 심플하게 보여주는 장면이기 때문에 꼭 한 커트여야 했다. 지미집 팀이 와서 촬영도 해보았는데 원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아 실패하게 되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내 의도를 구현해주려 많은 고민을 하시던 김병정 촬영감독님이 결국 청계천에 가서 철근과 와이어 등을 구매하여 수동 크레인을 제작하셨는데 머릿속으로 떠올렸던 장면이 나오게 되어 놀라웠다. 몇만 원도 되지 않는 제작비로 원하던 장면을 얻었던 그 날, 그 상황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계속 웃었던 기억이 있다. 이 장비를 사용하여 수민이 옥상에서 떨어지는 장면까지 촬영이 가능했다. 이 영화 작업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이런 테크니컬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주요 인물들의 감정적인 부분을 함께 섬세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장비 세팅 이후에는 배우들과도 함께 프리 프로덕션 기간 동안 여러 차례에 거쳐 영화 전체를 테스트 촬영했다. 보통은 배우들과 리딩 정도를 하고 본 촬영에 임하는 경우가 많지만 < 혼자 >의 경우는 실제 촬영할 장소로 가서 반복적인 리허설을 시도했다. 테크니컬한 것에 함몰되면 내가 의도하는 영화적 표현이 의미 없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제작비도 직접 마련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금전적인 부분에 대한 압박도 심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는 생각을 다잡으며 왜 영화를 하고 싶었는지 초심을 계속 떠올렸다. 촬영 현장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 결국 2015년 2월 중순, 총 9회차로 영화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이후, 편집과 색보정은 직접 진행을 했고 전작인 물고기 때도 함께 작업했던 VFX 업체인 IOFX 지명구 실장과 오수진 음악감독님도 흔쾌히 본 작업에 참여해 주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또한 고맙게도 부산국제영화제 ACF 후반제작지원도 받게 되어 잘 마무리되었다. < 혼자 >는 2015년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처음 소개되었고, 올해의 배우상( 이주원 )과 시민평론가 상을 받았다. 이후 로테르담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총 국내외 18군데가량의 영화제에 초청되었다. 여러 영화제에 참석해보니 생각보다 많은 해외 영화인들이 전작 < 물고기 >를 기억하고 있었고 차기작인 <혼자>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감사하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2016년 11월 24일 국내 개봉을 했다. 하지만 개봉관 수가 일반 독립영화에 비해서도 너무 적게 잡혀서 역시나 스코어가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물고기> 때보다는 훨씬 많은 국내 영화인들이 <혼자>를 봐주었고 좋은 평가를 해주었다. <혼자> 포스터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대로변에는 수많은 천막들이 있다. 사업주와의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그들이 끝으로 몰려 선택한 곳. 그곳에 콜트·콜텍 노동조합의 천막이 있다. 영화가 시작되면 주인공이 한 명씩 차례로 등장한다. 그들은 이인근, 김경봉 그리고 임재춘. 이들은 모두가 떠나간 천막을 지키는 노동조합의 조합원이자 밴드 ‘콜밴’의 멤버이기도 하다. 그들의 일상은 농성 기간을 알려주는 숫자를 ‘오늘’에 맞추고, 밥을 먹고, 합주연습을 하고, 다른 투쟁사업장에 연대를 다니는 것이다. 회사 측의 손해배상과 가압류통보 그리고 엉망이 되어가는 가정까지 처음 시작하던 1일째의 그 날과 별다를 것 하나 없는 3,170일째 ‘오늘’이지만 인근과 경봉 그리고 재춘이 견디기에 ‘오늘’은 유독 힘이 들기만 하다. 2015년 < 결혼전야 >로 정동진독립영화제의 관객상인 ‘땡그랑동전상’을 수상했던 이란희 감독의 신작 < 천막 >은 세계적인 기타회사로 이름을 날리던 콜트·콜텍의 정리해고와 폐업 이후의 노동자들이 견뎌내고 있는 3,170번째 ‘오늘’을 담담하지만 묵직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콜트·콜텍은 비인간적인 노동환경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쟁의를 유발한 회사임에도 회사 사장은 직장폐쇄를, 집권여당의 대표라는 자는 “강성 노동조합 때문에 망했다”라며 모든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겼다. 그리고 시작된 농성이 영화 속 ‘오늘’인 3,170일에 이르게 된 것이다. < 천막 >은 이런 구구절절한 사연을 일일이 설명해주지 않는다. 다만, 인상적인 장면들로 모든 것을 보여준다. 합주연습을 하는 장면에서 계속 틀리는 재춘에게 인근은 “매일 하는걸 어떻게 틀려?”라며 타박하지만 사실, 그들이 ‘매일 하는’ 혹은 ‘매일 하고 싶은’ 것은 합주연습이 아니라 기타를 만들어내는 노동일 것이며 그들이 있어야 할 자리는 천막이 아니라 공장일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할 것도 없다며 “매번 지기만 하는 싸움 언제까지 할겨?“라는 넋두리에 ”왜 없냐. 집회하고, 연대 가고, 집회하고, 연대 가야지“라고 대답하는 재춘과 경봉의 시시껄렁해 보이는 이 대화 장면은 이들의 천막이, 여의도의 수많은 천막이 가진 진짜 의미를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한다. 후속 조치 하나 없는 그야말로 말뿐인 여당 대표의 사과 한마디 듣는데 300일 넘게 걸렸지만 공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3천일 넘게 버텨온 이들의 힘 그리고 다른 모든 노동자들과 함께 연대해온 그들의 지난한 발걸음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콜트·콜텍 노동조합의 3,179일째 농성이 시작되었을 오늘(11월 29일), 대통령은 세 번째 담화를 했고, 시민들은 하야를 요구하고 있다. 영화 < 천막 >은 우리가 콜트·콜텍의 천막을, 여의도의 수많은 천막을 그리고 그들의 반복되는 ‘오늘’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대통령이 물러난다 한들 영화 속 인근과 경봉, 재춘을 연기한 이인근과 김경봉 그리고 임재춘은 내일도 그들의 3,180일째 ‘오늘’을 시작하게 될 것이며, 그들의 오늘은 우리의 내일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