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 감독
- 정연주
- 제작년도
- 2006
본 게재글은, 17-19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국영화박물관 교육 프로그램 ‘청소년을 위한 영화 글쓰기 키트’의 최종 과제입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영화 자서전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의 서문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영화에 관해서는 망설임이 더했고 지금도 그렇다. 이는 남에게 지적받을 것도 없이 바로 나 스스로 순수한 영화인이 아니라는 자각이 있기 때문이다.” TV 프로그램의 AD와 다큐멘터리 연출자의 시절을 거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본인의 영화 언어가 텔레비전 방언이 밴 변칙적인 언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그는 스스로를 ‘순수한’ 영화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2018년 5월, 그는 <어느 가족>(2018)으로 제 71회 칸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다. 최고의 권위를 가진 영화제에서 전 세계의 영화인들에게 가족 영화의 대가임을 인정받은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영화 언어의 순도가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 그가 전하는 밀도 높은 감정일 것이다. 이별 후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는 이야기(<환상의 빛>), 뒤바뀐 가족에 대한 이야기(<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어머니가 다른 가족의 이야기(<바닷마을 다이어리>), 헤어진 가족의 이야기(<태풍이 지나가고>) 등 줄곧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영화 속에 담아낸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어느 가족>에서도 다시 한번 가족의 의미를 재정의한다. 도둑질과 납치 <어느 가족>의 원제는 '만비키 가족'으로, 해석하면 '좀도둑 가족'이라는 뜻이다. 가르칠 것이 도둑질밖에 없다는 오사무(릴리 프랭키)와 세탁 업체에서 일하며 주머니 속 물품들을 빼돌리는 노부요(안도 사쿠라) 부부는 성매매 업소에서 여동생의 이름으로 돈을 버는 가출 청소년 아키(마츠오카 마유), 열 살 정도 되어 보이지만 초등학교에 다니지 않는 쇼타(죠 카이리), 죽은 남편 덕분에 연금을 받는 할머니 하츠에(키키 키린)와 함께 살아간다. 피가 섞이지는 않았지만 좁은 집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이 ‘가족’은 하츠에의 연금과 상습적인 도둑질로 생계를 이어간다. 쇼타는 문득 노부요에게 질문을 던진다. “물건 훔치는 건 나쁜 일이야?” 잠시 고민하던 노부요는 쇼타에게 되묻는다. “아빠(오사무)는 뭐라고 했어?” 쇼타는 답한다. “가게에 진열된 물건은 아직 누구의 것도 아니래.” 한편, 시간이 흘러 취조를 당하는 노부요는 하츠에를 땅에 묻은 사실에 대해 이런 말을 한다. “버린 게 아니라 주운 겁니다. 누군가가 버린 걸 주웠습니다. 버린 사람은 따로 있는 거 아닙니까?” 어쩌면 정말 좀도둑 가족은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이 아니라 주인 없는 것을 가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의 다툼을 피해 밖으로 나와 있던 5살 유리(사사키 미유)는 방치된 아이였고, 이 가족은 그런 유리를 품었을 뿐이니 말이다. 사람에게 버림받은 이들이 뭉쳐 서로를 보듬어주는 가족이 되었다. 누구의 것도 아닌 물건을 가지고서 겨우 겨우, 그렇지만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가게가 안 망할 정도로만, 사회에 커다란 피해를 주지 않을 정도로만 살아가려 했는데 세상은 그것조차 내버려두지 않는다. 상처를 알아봐주는 존재 “팔 좀 보자꾸나. 여긴 왜 이러니?” 유리를 처음 만난 날, 하츠에는 유독 말라 있는 유리를 걱정하며 온몸에 난 상처를 살핀다. 상처에 꼼꼼하게 약을 바르는 하츠에의 행동은 애정을 표현하는 그의 방식이다. 무심해 보이던 쇼타 또한 유리의 상처를 발견한다. “그 상처 왜 났어?” “넘어졌어.” “그거 화상자국이잖아.” 쇼타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유리에게 “나한테 애써 거짓말하지 않아도 돼.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유리의 상처는 외적인 것뿐만 아니라 이제껏 겪은 내면의 상처까지 포함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하츠에와 쇼타의 관심 덕분에 유리는 신체의 상처와 함께 마음의 상처도 거의 회복한 것처럼 보인다. 치유 받는 입장에 처해 있던 유리는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난다. 유리는 샤워하는 노부요의 팔을 보고 묻는다. “거기 왜 그랬어?” 그리고는 이내 자신의 팔을 내밀며 자신에게도 같은 위치에 상처가 있음을 보여준다. 얼굴이나 성격은 달라도 흉터의 모양이 꼭 닮은 둘은 정말이지 ‘모녀’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유리가 노부요의 팔을 쓰다듬는 이 장면은 결이 비슷한 단편영화 <손님>(2011)을 떠올리게 만든다. 특히 <손님>은 한국의 고레에다 히로카즈로도 불리는 윤가은 감독의 초기작이라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손님>의 주인공 자경(정연주)은 잔뜩 화가 난 채로 아빠의 불륜녀가 살고 있는 집에 찾아간다. 하지만 그곳에는 죄 없는 어린 남매만이 있을 뿐이다. 남매 중 동생인 기림(송예림)은 이마에 밴드를 붙여주는 자경의 눈썹에 흉터가 있음을 발견한다. “언니 왜 그래. 아파?” 밴드를 붙이는 자경과 눈썹의 흉터를 만지작거리는 기림은 오늘 처음 만났지만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고 공감하는 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손님>과 <어느 가족>에서 ‘상처를 알아보는’ 행위는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한편 영화의 후반부, 원래의 집으로 돌아가게 된 유리는 친엄마의 상처를 발견한다. 유리가 상처를 만지자 친엄마는 “만지지 말랬잖아.”라며 짜증 섞인 말을 내뱉는다. 친엄마와 노부요의 차이는 여기에서 나타난다. 만지면 아플 정도의, 그러니까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래서 아이의 위로를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물론 아이의 상처 또한 보듬어주지 못한다는 것. 홀로서기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이 각자 다른 프레임 속에서 취조 당하는 이 영화의 후반부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초기작 <원더풀 라이프>(1998)의 장면과도 닮아있다. 화면을 꽉 채우던 가족들은 온데간데없이, ‘혼자’가 된 사람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가족의 분리를 보여주려는 감독의 의도는 면회 씬에서도 적확하게 드러난다. 투명 유리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는 쇼타와 노부요는 사실상 같은 장소에 있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들을 철저하게 떼어놓는다. 동그란 대화 구멍의 은색 테두리라는 또 하나의 프레임을 만들고 노부요의 얼굴을 가두어버린다. ‘집에서 공부할 수 없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거 아닌가요?’라는 쇼타의 질문은 이제껏 쇼타의 세상이 얼마나 좁았는지 말해주고 있다. 양쪽 손끝을 맞대고 검지를 빙글빙글 돌리다가 주먹을 쥐어 얼굴에 콩. 훔친 물건을 숨기던 파란 가방 대신 책이 들어 있는 새 가방을 멘 쇼타는 이제 학교에 다닌다. 오사무 또한 “아빠는 이제 아저씨로 돌아갈게.”라고 말하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선다. 영화 초반부의 쇼타는 유리에게 밀개떡을 사준다. 천국에 있는 유리 할머니의 존재를 알고 “그러면 이제 잊도록 해.”라고 말한다. 이제는 쇼타와 유리가 노부요와 오사무, 그리고 야키와 하츠에를 잊어야 할 차례가 되었다. 버스 창문 너머의 오사무가 사라지고 나서야 마침내 ‘아빠’라는 말을 내뱉는 쇼타, 쇼타네 가족들과 부르던 노래를 아파트 복도에서 홀로 부르는 유리. 이름을 숨기고 살아가는 이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름이나 호칭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이 가족들은 서로가 함께였던 순간들을 쉽게 잊지 못할 듯하다. 사실 <어느 가족>을 따뜻한 영화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렇지만 마냥 슬프고 비극적인 영화로 해석하기에도 적합하지 않다. 보통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 가족은 마음뿐만 아니라 돈 문제로도 얽혀있는 보통 가족이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서로를 ‘선택한’ 사람들이기도 했다. 이제는 홀로 서야 할 때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비혈연 가족의 이야기가 아닌 모여 있는 가족과 흩어진 가족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촬영 감독. 써놓고 보니 그야말로 멋진 단어가 아닌가. 아마도 그 멋의 대부분은 영화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지 않은 사람의 경우 보통은, 이게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데에서 나올 것이다. 모니터 앞에 앉아서 “액션”이라든가 “컷”이라든가 하는 말들을 외치면서 배우를 감독하는 사람이 아마도 감독일 터인데, 촬영 감독이란 사람은 무엇을 감독한단 말인가. 잘은 모르겠지만 뭐라도 감독한다니 멋이 나는구나! ...그러니까 촬영 감독이란, 말하자면... 카메라를 감독하는 사람이리라. 영화란 매우 당연하게도, 카메라로 찍는 것이다. 제아무리 명작가가 기가 막힌 시나리오를 쓰고 명감독이 액션과 컷을 멋들어지게 외치고 명배우가 울고 웃어도, 그 촬영장 어딘가에 카메라가 서 있지 않으면, 좀 더 생색을 내자면 촬영 감독이(엣헴) 카메라의 REC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그 순간들이 영화로 기록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그렇다면 촬영 감독이란 인간은 고작 버튼 정도를 감독하는 사람인가,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을 터인데,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게 이것이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카메라가 그냥 서 있을 것인지, 움직일 것인지, 혹은 움직이기로 사전에 결정을 해 두었는데 막상 움직여보니 그냥 서 있는 편이 나은 것 같은데, 그러는 사이 해는 져 가는데 접고 내일 다시 찍어야 하는지 하는 문제들이 꼭 일어나고야 마는 것이다. 그런 문제들엔 정답이라는 것이 없고, 누군가는 그것들을 조율하고 결정을 내려서 어느 순간에는 계속 버튼을 누를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고로 촬영 감독이란, 촬영장에서 생기는 기술적인 문제를 감독하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럼 어떻게 하면 촬영 감독이란 직업을 가지게 되는가. 소싯적부터 카메라에 숨길 수 없는 재능을 보여 빨간 버튼만 보면 누르지 못해서 안달이 난다든지 왠지 모르게 팀 버튼 영화가 취향이라든지 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그것은 본인의 경우는 아닌 듯하고, 무언가 영화 언저리에서 기웃거리는 일을 하고 싶어 어찌어찌 영화학교에 들어갔으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하는 건 어째 내 길이 아닌 듯한 와중에, 이것 봐라 카메라맨이란 직업이 꽤 나쁘지 않은 것이다. 촬영장에서 무언가 무거운 것도 척척 나르고 문제들을 척척 해결해 나가는 것이 무언가 척척 만들어 나가는 느낌이 있었다. 그런 와중에 졸업 작품으로 촬영한 단편 영화가 프랑스의 썩 유명한 영화제에서 그럭저럭 괜찮은 상을 받는 바람에, 또 그런 마음이 들어 버린 것이다. 이렇게 계속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해서 어쩌다 보니, 덜컥 영화 아카데미에 들어가 촬영을 전공하게 되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빼도 박도 못하게 카메라맨의 삶을 선택한 거지. 카메라 뒤에 계속 있기로 한 것은 기쁜 일이었으나 졸업 후 통장의 잔고를 돌아보니 매우 슬퍼져서 이런저런 촬영 일들을 하면서 버티던 차에, 손태겸 감독이 영화 아카데미 장편과정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이 친구와는 영화학교 동기이자 문제의 그 졸업 영화를 함께 만드는 바람에 영화 아카데미에서까지 동기가 되고 마는 불행한 인연을 계속 이어온 사이었으며, 언젠가는 장편 영화라는 걸 한 번쯤 만들어 봐야 하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꿈을 공유하고 있는 친구이자 무엇보다 개그 코드가 서로 잘 맞는다는 결정적인 장점이 있었다. < 아기와 나 >는 그가 예전부터 장편으로 해보고 싶다 말하던 이야기로, 큰 파고의 감정을 다루는 걸 피해가지 않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하여 때는 2015년 여름, 본격적인 < 아기와 나 >의 제작에 들어가게 되었다. 장편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우선 사무실에 출근하는 일이어서, 홍대 모처의 냉방이 좀처럼 되지 않는 사무실에 스태프들과 모여앉아 여러 가지 촬영 계획을 짜야 했다. 처음으로 장편 영화의 촬영을 맡게 된 것은 기쁜 일이었으나 제작비 통장을 볼 때마다 문득 슬퍼지곤 해서, 이런 돈으로 사람을 쓰려 하면 안 된다고 훈계하신 미술 감독님도 계셨고, 미팅을 하러 왔다가 페이를 듣고 허허 웃으면서 사라져 가신 녹음 감독님도 계셨더랬다. 어찌 되었든 영화는 찍어야 되지 않겠는가. 연출부는 손태겸 감독의 지인들이었는데, 여러 가지 처참한 상황에도 쉽지 않은 준비 기간 동안 쉽지 않은 일들을 함께해 주었다. 보통은 영화 준비 기간에 본 촬영에 들어가면 이러이러한 동선과 화면으로 이래이래 찍자 하고 계획을 짤 때면 콘티 작가가 붙어 그림을 그려서 계획을 세우고는 하는데, 우리는 대신 감독과 연출부들이 사무실 근처 공간들을 오가며 촬영 현장을 가정하고 연기하면서 실제 사진을 찍어 콘티 작업을 대신했다. 이런 작업 방식은 많은 사람들이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퇴근을 하지 못하고 고민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아픔이 많은데, 모두가 한마음으로 영화에 관한 열정이 있었으니까...!! 라고 말한다면 적잖이 간지러운 이야기이고, 사실은 우리 모두 이 과정이 꽤 즐거웠었으니까. 라는 생각이다. 영화를 만들어 나간다는 것은 실은 그런 종류의 일들이 연속되는 나날들이다. 어쨌거나 영화를 만드는 일 밖에는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으니까. 우리가 만들 영화는 이런 모습이 될 거야, 라고, 준비하는 시간이나마 낙관하는 일. 화이트보드 언제나 실제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주연으로 결정된 이이경 배우는 한창 떠오르는 스타로 TV 프로그램과 드라마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바빴고, 정연주 배우는 실제 촬영 회차는 많지 않았음에도 TV 쇼에서 고정 패널을 맡고 있어서 일정 조율이 쉽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독립영화의 수없이 많은 변수들 덕분에 프로덕션을 앞둔 우리는 사무실의 화이트보드에 스케줄을 작성해놓고는 가안과 수정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끼리는 ‘강 건너기 게임’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왜 있잖는가, 양치기가 늑대와 양과 양배추를 강 건너까지 보내야 하는데 늑대와 양을 두고 가면 늑대가 양을 잡아먹고 양과 양배추를 두고 가면 양이 양배추를 먹어치우고 하는 문제들. 이날은 10씬을 찍고 20씬으로 이동하면 되지 않을까? 아뇨 그때 이경씨가 스케줄 때문에 이 시간 이후만 가능한데요? 그러면 10씬 대신 9씬을 집어넣으면? 그때는 그 장소가 몇 시부터만 된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럼 아예 8씬과 21씬을 이날 찍으면? 그러면 7, 8씬에 나오기로 한 선배님께서 일정이 어긋나는데? ...그럼 그냥 20씬만 찍는 걸로 합시다. 감독님 연락이 왔는데 그날 20씬 찍기로 한 데가 다른 날밖에 안 될 것 같대요!! ...말을 말자. 그렇다고 한들 허허 알아서들 하시고 저는 촬영장 가서 REC 버튼만 누르겠습니다. 라고 할 수가 없는 일이 아닌가. 내가 만드는 영화 속 장면 장면들이 좋은 공간에서, 좋은 빛을 받게 하고 싶으니까. 어찌어찌 그 생지옥 속에서도 최선의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배우들의 감정이, 감독이 시나리오에 묘사한 이야기가, 카메라를 통해 영화로 제대로 옮겨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모름지기 개와 애와는 영화를 찍는 것이 아니라는 격언이 있는데,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이 영화는 아직 걸음마도 못하는 아기가 어어어어어엄청나게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행히 영아치고는 몹시 수더분한 성격의 피디의 조카 예준이가 캐스팅되기는 하였으나 아니나 다를까,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영화 촬영장에서 낯선 배우의 품에 안긴 예준 배우는 얌전하다가도 액션을 외치는 순간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의 배우들은 젊은 나이에 표현하기 쉽지 않은 감정들을 때로 카메라 뒤의 본인마저 찡해질 정도로 멋지게 표현해주곤 했다. 그런 감정들을 거칠더라도 온전히 카메라에 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감독과의 의논 하에 < 아기와 나 >의 촬영은 90퍼센트 이상 들고 찍기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래서 두 달이 넘는 촬영 기간 동안 몇십 킬로그램쯤 될 카메라는 촬영의 어깨 위에 대부분 올려져 있었다. 꽤나 고생스러운 일이지만 마찬가지로, 꽤나 즐거운 일이기도 했다. <아기와 나> 촬영 현장 그래서 영화 촬영이란 결국, 무거운 쇳덩이를 짊어지는 일이다. 영화 아카데미에는 어지간한 상업 영화들에 비교해도 나쁘지 않은 촬영 장비들이 구비되어 있는데, 좋은 장비가 좋은 영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만 그러한 전문적인 장비들을 사용해 화면을 어떻게 구현할까를 고민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관객이 두 시간 남짓한 러닝타임 동안 좀 더 영화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고, < 소셜포비아 > <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 < 연애담 >과 같은 아카데미 장편들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그 뒤에서 뛰어난 촬영감독들이 성실하게 일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장비의 전문성이란 장비의 무게이기도 해서, 그것을 운용하는 데는 그 쇳덩이들이 손에 익은 사람들의 노동이 필요하다. 영화 촬영팀은 고가의 장비들이 담긴 무거운 박스들을 많이 가지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보통 12인승 스타렉스를 빌려 트렁크 쪽의 의자를 두 줄쯤 떼어내고 차곡차곡 장비를 테트리스해서 다니곤 한다. 짧지 않은 프로덕션 기간 동안 그곳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노라면 어차피 잠만 자고 나오는 집보다 여기가 진짜 집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 안에서 매일 만나는 촬영부 친구들은 어떻겠는가. 이 이상한 유대감의 정체는, 마찬가지로 스타렉스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이것 말고는 도통 재미가 없어하는 인간들이기 때문이겠지. 영화를 찍기 위해서 어딘가에 카메라를 세우는 것. 앵글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세상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이 글을 빌어 ‘아기와 나’의 촬영부인 이승현, 박찬희, 김선형과 데이터 매니저 오혜주에게 다시 한번 감사한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프로덕션 시간표는 흘러가고 결코 끝날 것 같지 않던 < 아기와 나 >는 한 편의 영화로 완성되었다. 영화는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에 초청되었고, 조만간 해외 영화제에서도 상영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 있는가 하면 그다지 좋지 않게 생각하는 관객들도 있었다만, 뭐 그런 거지. 마틴 스콜세지쯤 되는 거장도 영화를 찍어 놓으면 칭찬도 받고 욕도 먹고 하는데 우리 같은 쪼렙들이 좋은 소리만 듣겠냐. 우리는 꿈꿔오던 장편 영화를 만들었고, 그걸 의도하던 대로 어찌어찌 완성한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기도 하고. 장편 영화를 한 편 완성했다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통장 잔고는 계속해서 줄어들기 마련이고 그 부분은 썩 기쁘지만은 않기 때문에, < 아기와 나 > 이후에도 어떻게 REC 버튼을 꾸준히 계속 눌러 보려고 한다. 장편을 하나 찍고 나니 강의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겨서, 지금은 학교에서 막 카메라에에 흥미를 느끼는 젊은 친구들을 돌이킬 수 없게 부추기는 일을 하고 있다. 어차피 영화 만드는 거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친구들은 놔둬도 불구덩이로 뛰어들기 때문에 그다지 죄책감은 느끼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진심으로, 카메라를 책임진다는 건 꽤나 멋진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부족하게나마 이렇게 계속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라고 해주고 싶은 거지.
나는 촬영하는 배우다. 대학에 연기전공으로 입학했고, 단편 영화연출로 졸업영화를 만들어 졸업했다. 한마디로 소개하자면 ‘잡종’이다. 좋게 표현하면 촬영팀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영화에 대한 경험과 공부를 하고 있다. 때때론 촬영일 비중이 더 커 반성하기도 한다. 하지만 촬영하며 틈틈이 글을 쓰고 내 이야기를 만들고 연기하며 운이 좋아 기회가 되면 다른 영화에도 출연한다.(사실 출연은 늘 목마르다.) 이런 삶은 벌써 5년 차로 접어들었고, 이렇게 좋은 기회 얻게 되어 촬영팀의 위치에서 자전적인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와 영화를 접했던 것은 2013년 1월이었다. 강사로 나오시던 촬영감독님의 권유로 학교 선배와 함께 독립영화에 촬영팀으로 참여하게 됐다. 독립영화지만 처음 겪는 장편현장에 적응해 나가기 급급했다. 그러던 중에 촬영감독님의 부상 아닌 부상으로 갑작스럽게 촬영팀 퍼스트로 계셨던 형님이 카메라 오퍼레이팅을 하면서 나는 졸지에 촬영팀 퍼스트 위치가 되어 이 영화의 포커스를 담당하게 되어버렸다(그때는 정말 이래도 되나 싶었다). 단편 영화에서만 접해본 포커스의 영역으로 장편영화로 넘어오니 겁이 덜컥 났다. 그렇게 과분한 역할에 호되게 고생해가며 첫 장편영화를 만났고 결국 그렇게 완성된 작품은 < 문영 >이라는 영화로 탄생했다. < 문영 >이란 작품을 하면서 필름시대의 촬영감독님 덕분에 포커스의 근본적인 원리와 테크닉을 조금이나마 경험할 수 있었다. 포커스풀러는 눈이 세 개정도 있고, 그 세 개의 눈이 각기 다른 곳을 보고는 뇌로 각자 신호를 보내면서 동시다발적으로 손이 움직여야 가장 이상적인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눈이 두 개고 그 두 눈이 동시에 하나밖에 볼 수 없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었다. 인물과 카메라의 거리를 수도 없이 확인했다. 스케일이라는 줄자를 가지고 현장을 발 빠르게 돌아다녔다. 거리를 측정하고 또 측정했다. 인물이 움직이면 카메라의 앵글에 보이지 않는 바닥에 테이프로 수많은 마킹을 했다. 심지어 영화 전체가 핸드헬드 기법으로 촬영되는 영화였기에 인물이 움직이지 않아도 카메라가 움직인다. 정말 멘붕이다. 한번이라도 확인하지 않으면 맞출 수 없다. 모니터만 의지해서 뚫어져라 보고 있으면 촬영자가 인물에 절묘하게 조금씩 가까이 가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경우가 많다. 그럼 포커스는 빗맞는다. 그럼 관객이 보는 영화에서 인물의 표정이 흐릿해진다. 그 순간 하나가 감정의 전달에 독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 있지만 그로 인해 몰입에 방해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나의 손가락과 눈이 집중하지 못하고 나의 역할에 한순간 실수가 벌어진다면 몇 천만 원, 나아가 몇십 억의 예산이, 감정에 집중하여 열연하는 배우의 에너지에, 추위와 싸우는 수많은 스태프들의 노고가, 몇 년 동안 준비한 감독님의 이야기에 영향이 끼친다고 생각하면 자기 전에도 스케일을 꺼내볼 수밖에 없었다(실제로 그 당시 같이 했던 형과 자기 전에 스케일을 꺼내어 천장까지 거리를 측정하고 맞히는 실로 이상한 내기를 했다). 운이 좋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렇게 연습하고 확인하고 했던 경험을 가지고 그 뒤로도 포지션에 상관없이 촬영팀을 할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 < 문영 >에서의 경험이 없었으면 아마 이후 작품들을 만나지 못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 연애담 >이라는 작품을 할 때에는 퍼스트는 아니었지만 촬영팀 직책을 수행하면서 데이터관리를 병행했다. 데이터매니저가 존재하면 그럴 일 없겠지만 여타 독립영화에서 왕왕 겪을 수 있는 일이기에 주어진 일에 막무가내로 꼼꼼하게 하는 것이 제일이다. 영화는 제목 따라간다는 소문이 있던가, 프로덕션 기간 중 마침 개인적인 연애사도 끝났다. 그래서인지 극 중 윤주가 지수에게 헤어지기 아쉬워서 10분만, 5분만 같이 있자고 제안하는 장면에서 지켜보다가 자꾸 눈물이 나서 혼났다(핸드폰으로 현장에서의 그 장면을 촬영하여 한동안 그때 그 감정을 간직하기도 했다). 이렇듯 촬영팀이라는 포지션은 그만큼 배우와 가까이 존재하고 호흡하는 스태프라고 생각한다. 연기자, 연출자의 꿈을 품고 촬영팀 역할을 수행하는 나에게는 어느새 현장은 더할 나위 없는 공부의 장이었다. 영화 < 아기와 나 >에서는 촬영감독님의 권유로 장편영화의 퍼스트 직책을 맡게 되었다. 막무가내로 겪었던 < 문영 > 때의 경험을 되살려 촬영팀 친구들과 영화아카데미에서 여러 테스트와 사전 준비를 시작하였다. 모자랐기 때문에 열심히 했다. 귀찮았겠지만 잘 따라주었던 촬영팀 친구들이 마냥 고맙고 이렇게 고민을 하게 해준 촬영감독님에게도 감사한다. 먼저 영화아카데미에서 탄생하는 영화를 촬영팀으로 몇 차례 참여한 경험이 있어 대략적인 시스템과 장비가 파악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촬영감독님이 원하는 기술적인 것들을 준비하기에는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테스트하고 또 테스트했다. 매번 하는 역할이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일들이기에 불안한 것들을 제거하고 하나하나 체크하고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국엔 그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고 하기엔 조금은 아쉬움이 남지만 열심히 했고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한번은 < 아기와 나 > 현장에서 이이경 배우님, 정연주 배우님, 박순천 선생님, 세 명의 배우가 요람 안에 아이를 바라보며 대화하는 장면을 롱테이크로 한 컷에 담아내려했다. 촬영감독님과 나는 요람 뒤의 공간에 쪼그리고 들어가 앵글을 만들었고 카메라와 각기 다른 위치에 서 있는 세 인물 모두에게 포커스을 맞출 순 없었다. 약간 다른 이야기. 나는 시나리오를 꽤나 많이 읽고 프로덕션에 투입되었다. 이유는 오디션을 보고 운 좋게 영화 속 승일이라는 배역을 연기할 수 있었기에 나름대로 영화의 성격이나 태도를 파악해야했고, 그리고 물론 최종적인 것은 승일이라는 인물을 연기하기 위함이었다(사실 이이경 배우님의 도일 역에 엄청난 매력을 느끼고 있었고, 부러운 마음도 있었다). 요람 숏은 꽤나 오래 찍었다. 나름대로 테이크도 많이 갔던 것 같다. 촬영감독님과 나는 결국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유 중 하나는 다름 아닌 ‘포커스’였다. 누구를 어떻게 보여주어야 하나에 대한 고민이었다. 첫 테이크에서는 대사마다 포커스를 이동시켰다. 그리고 테이크가 끝나고는 촬영감독님께 질문했다. 누구에게 포커스를 맞춰야 하나, 촬영감독님도 고민했고 나도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는 이내 둘은 시나리오에 그 씬을 다시 읽었고, 나름대로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 촬영은 재개되었다. 그렇게 테이크가 더 진행되었고, 모두에게 가는 포커스가 꽤나 작위적이었고 이질감에 불편했다. 시나리오의 내용과, 배우들의 연기가 눈앞에서 펼쳐지니 글에서 받았던 상상과는 느껴지는 것이 조금은 달랐다. 나는 꾸준히 연기적인 측면에서 고민했고, 감정에 집중했다. 촬영감독님도 그렇게 고민하셨을 것이다. 심지어 카메라를 어깨에 얹고 좁은 구석에서 조금씩 무빙을 하고 있는 그는 더 복잡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짧은 시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도일에 집중했다. 이런저런 사건들을 겪는 도일에 이입했고, 도일이 겪는 앞뒤 정황을 고민하고 포커스를 제안했고, 결국 우리는 선택했다. 정답이었는지 오답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고민은 상당히 의미 있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 초행 >이라는 작품을 포커스풀러로 마무리했다. 큰 줄기 안에서 영화는 배우의 연기를 중점으로 만들어져갔고, 모든 장면을 롱테이크로 담아내는 방식이기에 어느 때보다 즉흥성이 요구되는 작업이었다. 아마 이전 작업들이 없었다면, 그리고 내게 연기 경험이 없었다면 굉장히 어렵거나 혹은 오히려 단순하게 기계적으로 작품을 대했을 것 같다. 생각보다 흥미로운 방식의 작업이었고 이를 ‘나의 영화’에 그대로든, 다른 방식으로든 녹아낼 수 있었던 것 같아 벌써부터 설렌다. 사실 최근까지도 늘 불안했다. 미래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분명 연기면 연기, 촬영이면 촬영 하나만 택했더라면 조금은 더 빠른 시기에 조금 더 좋은 위치에 있을 수 있을지 모른다. 혹은 여기까지 올 수 없어 이 많은 작품들을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후회는 없다. 조금 더 하나의 포지션에 집중했더라면 이라는 생각은 이번 글을 끝내면서 접기로 했다. 무엇을 보여주고 보여주지 말아야 하나에 대한 고민은 연출자의 몫이다. 무엇을 어떻게 보여주고 어떻게 보여주지 말아야 하나에 대한 고민은 연출자를 포함해 촬영자의 몫이다. 그렇다면 아무 고민이 없는 촬영팀은 단지 촬영자의 모자라는 손과 발일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적어도 이 모든 고민 덕에 현장에서 조금은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살아있는 것이 아닐까? 이는 동시에 우리가 영화를 만들면서 겪는 어떤 희열이 아닐까? 그렇게 연기 전공자이면서 연출자의 꿈을 키우는 동시에 촬영자인 ‘잡종’은 영화를 하며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