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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합시다, 에베소서 강해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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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주제가 특선(韓國映畵 主題歌 特選) 제1집-1980~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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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의 대가 Script 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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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영화 제작신고 사항 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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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심의신청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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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허락된 주체성, 뿌연 환상
<도라지 불고기> 중 타인의 삶이 모이고 흩어지는 한 순간을 카메라로 붙잡기로 결심한 또 다른 순간에 대해, 프레임 밖에서 감독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기획 배경 <도라지>의 주인공인 XX형과 나는 대학 동기다. 우리는 시각디자인과 축구 소모임에서 함께 뛰었다. 어느 날 형은 자기가 초·중·고교를 조선학교에서 보냈으며, 그곳은 일본에서 교포들이 다니는 학교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그 사실에 특별한 호기심이 생기지 않아 더 묻지 않았다. 2학년을 마친 뒤 나는 군대에 갔고, 형은 휴학 없이 졸업해 일본으로 돌아갔다. < 포수 >(2022)로 처음 영상 매체를 다루기 시작했을 무렵, 내겐 다큐멘터리를 많이 찾아봐야만 할 것 같은 긴장감이 생겼다. 그러다 조선학교를 다룬 영화를 접하게 되었고, 이어서 비슷한 작품들을 찾아보았다. 영화들이 내는 목소리에 대체로 동의할 수 있었다. (동의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영화임에도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차별 속에서도 조국과 정체성을 잊지 않고 투쟁하는 영웅’으로 그려져 있었다. 영화는 그들을 ‘우리 민족’이라 강조하지만, 정작 우리에게 너무도 당연한 일상을 지우는 방식으로 그들을 철저히 ‘그들’로 격리하는 것 같았다. 이 영화들의 시선은 그들이 일본에서 핍박을 받더라도 조국을 잊지 않고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다는 인상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잊고 살아왔기 때문에 ‘늦게나마 돌봐야 할 불쌍한 사람들’이거나, ‘아픈 우리 역사의 교보재’였다. 선과 악, 피해와 가해의 구도가 분명하게 설정된 구조를 보며 ‘재일조선인’과 ‘조선학교’라는 소재가 어떤 정치적 필요에 의해 선택된 대상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XX형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지만, 좀처럼 겹치지 않았다. 불온한 이미지 다큐멘터리들이 전하는 이야기는 대체로 이렇다.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된 조선인을 향한 배제는 오늘날 조선학교를 향한 행정적 차별로 이어지고 있다. 고교무상화 제외는 제국주의의 잔재이며 우리 민족을 향한 차별이다. 이에 맞서 학교와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주장이 틀렸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조선학교 진학을 선택하고 이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더 훌륭하다거나, 일본인으로 살아가기를 선택한 사람들이 지탄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재일조선인’이라는 이름 아래 존재하는 수만 가지의 삶을 윤리의 잣대로 평가할 수 없다. 어쩌면 스스로를 규정하려는 개인에게 국가와 민족이라는 개념은 이제 안식처가 아닌 억압의 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학교와 총련의 영향력이 점점 옅어지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일 것이다. ‘북한’이라는 짐을 굳이 짊어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 조선학교가 북한을 미화하거나 찬양하는 등 인권의 가치에서 벗어나는 교육 내용을 유지하는 한, 일본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내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교육은 정치를 떠나 보편적인 인권의 영역이며, 아이들의 학습권이 정치적 논리에 의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인권’의 문제가 양쪽 모두에 공존한다. 이렇게 학생 수 감소나 고교무상화 배제의 이유를 일본인의 차별로만 단순화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영화는 이 복잡함을 가린다. <도라지 불고기> 중 밝히자면 나 역시 조선학교가 고교무상화에서 늘 제외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곳은 다양한 정체성의 가능성을 유지하게 하는 중요한 공간이(었)다. 이 논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려면 먼저 가려져 있던 것들을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의 슬픈 얼굴들을 앞세워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을 가리는 수법에 더 이상 진보가 있을까. 감출수록 더 미심쩍게 드러나는 것들이 있다. 가려졌던 것들을 드러낸 상태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말하고 싶었다. 북한과의 연관성을 인정하더라도, 그것이 정말 남한과 일본 사회를 벌벌 떨게 할 만큼 실체적인 위협인지 되묻고 싶었다. 그래서 ‘불온한 이미지’를 원했다. 너무 당연한 모습이지만 조선학교와 재일조선인을 다루는 영화에서는 금기처럼 여겨질 법한 것들. 그러나 너무 당연한 모습들. 촬영 과정 XX형에게 종종 나고야로 놀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때마다 나는 나고야에 갈 바에야 도쿄에 가겠다며 진심을 담아 거절해 왔다. 그런데 막상 ‘찍을 거리’가 생기니 촬영 장비를 꾸려서 쫄래쫄래 나고야에 갈 계획을 세우는 내 모습이 꽤 머쓱했다. 브이로그 형식을 택한 현실적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 오랜만에 보는 형은 물론, 처음 만나는 사람들까지 대뜸 카메라에 담아야 했다. 그러니 비교적 작은 카메라가 서로에게 덜 민망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 작업에서 나는 사명감 넘치는 다큐멘터리스트가 아니라 재치 있는 브이로거여야 했다. 앞서 언급했듯, 실재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지우고 그들을 하나의 범주로만 불러내는 방식에 대해 나름의 대답을 내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객의 기대에서 벗어나는, 별다른 사건 없는 일상을 담기로 했다. <도라지 불고기> 중 / 편집된 장면 중 다행히 형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무사히 나를 소개해 주었고, 다들 내 카메라를 크게 경계하지 않았다. 나 역시 촬영을 위해 웃기고 귀여운 동생처럼 보이려 부단히 노력했다. 어릴 적부터 친구의 부모님에게는 늘 호감을 샀다는 경험에서 나온 자신감도 있었다. 서울과 나고야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많이 가까워졌다. 물론 내겐 꿍꿍이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이는 된 것 같았다. 덕분에 <불고기>를 촬영할 때는 한결 편한 마음으로 ‘본격적인’ 카메라를 들이밀 수 있었다. 나고야를 방문할 때마다 약과와 참기름, 고춧가루, 안동소주, 도라지즙, 쫀드기 같은 것들을 챙겨갔다. 누나들과 형들의 어머니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정도는 더 이상 묻지 않아도 됐다. 비록 나의 불순한 의도로 시작된 관계였지만, 어느새 그들은 내게 소중한 친구들이 되었다. 그래도 이제는 나고야보다 도쿄에 가고 싶다. (상) 편집된 장면 중 (하) <도라지 불고기> 중 / 서울에 놀러온, 나고야에서 만난 친구들 (사진: 양지훈) 지워낸 얼굴 얼굴을 블러 처리한 선택은 예상보다 많은 말을 낳았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는 이를 두고 “존재를 부정당한 저들의 실체가 없는 아이덴티티의 시각화”라고 리뷰했지만, 그렇게 정의하면 내 의도와는 반대가 된다. 아마도 그 문장은 내 작업을 보호하기 위해 덧붙여진 수사였을 것이다. 보편의 윤리를 생각한다면 그렇게 익숙한 방식으로 묘사하는 편이 모두에게 안전했을 테니까. 블러 처리의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나는 누군가 나를 카메라로 찍는 일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특정한 범주로서 누군가의 카메라 앞에 서야 한다면, 아마 더 힘들 것 같다. 그런데 바로 그 일을 내가 하고 있다는 데서 오는 근원적인 미안함이 있다. 그래서 가렸다. < 도라지 불고기 >(2025)에서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얼굴을 드러내는 일이 자연스럽고 정당한 선택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카메라에 기록되어 특정 범주 안에 위치 지어질 가능성을 생각했을 때, 그게 꼭 의미 있거나 유익한 방식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그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늘 미안함은 욕망에게 지곤 한다. 그들의 삶에 기대지만, 얼굴까지 팔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맨얼굴을 구경하고 싶어 하는 관객의 기대를 배신하고 싶었다. 창작자와 수용자 사이에 대상이라는 매개가 있고, 카메라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의 ‘날 것의 얼굴’은 관객에게 가장 좋은 구경거리다. 우리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거나 마주 볼 수 없다. 일방적으로 응시할 뿐, 타인에게 얼굴을 내어주지는 않는다. 가려진 얼굴을 보며 관객들이 이 불균형한 관계를 자각하기를 바랐다. 이미지(를 보는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얼굴을 탐닉하고 점유해 왔다. 그것을 윤리라고 믿는 방식으로. 편집된 장면 중 드러낸 주체성 얼굴을 블러 처리한 선택 때문에 많은 비판을 전해 들었다. 비판은 대체로 한 곳으로 향한다. “감독이 대상의 개별성과 주체성을 소거했다”라는 의견이다. ‘개별성’을 소거했다는 지적은 겸허히 받아들인다. 얼굴은 그 사람을 증명하는 상징이다. 그 얼굴들을 모두 같게 만듦으로써, ‘재일조선인’이라는 집단화된 이미지를 내가 가장 적극적으로 생산한 모양새가 되었다. 작업의 가장 핵심적인 형식이 정작 작업이 문제 삼으려 했던 것을 스스로 앞장서 재현하고 말았다. 내가 극복하지 못한 부분이다. 하지만 ‘주체성’의 문제에서는 다르게 생각한다. 나는 창작자가 누군가에게 주체성을 주거나 뺏을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도라지 불고기> 밖에서 그들은 각자 자기 삶의 주인이다. 하지만 작업(영화)의 주체는 작가(감독)이다. 프레임 안에 가둔 대상의 주체성을 드러내 보겠다는 고민은, 어쩌면 감독이 자기 윤리를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처럼 보이기도 한다. 감독이 전권을 휘두르는 과정에서 대상의 주체성을 논하는 일은 그 자체로 시혜적이다. 감독이 ‘드러낸’ ‘주체성’이란 그 자체로 형용모순이며, 편집자의 손끝에서 빚어진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창작자가 제작 과정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태도는 자신의 욕망을 가장 앞에 두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 욕망을 명분 뒤에 숨길수록, 영화를 향한 비평은 도덕의 문제로 치환되고 만다. 작품이 아닌 ‘의제’를 방패 삼아, 비판하는 사람을 도덕적으로 나쁜 위치에 세워버리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창작자는 안전한 울타리 안으로 숨어든다. 누군가를 위해 카메라를 든다는 사람의 말은 아직까지 믿지 못하겠다. 그 말은 카메라의 작동 원리를 타인에게 전가하며, 자신을 선한 주체의 자리에 올려놓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는 타인의 삶을 연료 삼아 예술가로 살아가려는 창작자의 야심과, 타인을 안전하게 관음하려는 관객의 시선이 만나는 지독히 탐욕적인 장소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이 비대칭적이고 폭력적인 구조를 ‘대상의 주체성’이나 ‘재현의 당위’라는 말로 포장하는 순간, 예술은 비겁해진다. 감독이 ‘구원자’의 탈을 쓸 때 대상은 ‘수혜자’로 전락하지만, 감독이 ‘욕망하는 창작자’로 설 때 대상은 비로소 그 욕망과 거래하거나 타협할 수 있는 당사자가 된다. 물론 당장 이 기울어진 무게추를 평평하게 맞추지는 못하겠지만, 어쩌면 대상의 주체성이 생겨날 수 있는 희미한 가능성은 거기에 있지 않을까. <불고기> 촬영 현장 (사진: XX형) 양지훈(시각예술가) l 다큐멘터리 제작에 수반되는 본질적인 폭력에 주목하며 다큐멘터리 이미지를 만든다. <포수>(2022), < 테이큰 >(2023), <도라지 불고기>(2025)를 만들었다.
성장 잔혹사와 ‘귀여움’의 레짐 사이
<소년시절의 너> 중 / 사진: Far East Film Festival 대만, 중국, 홍콩을 아우르는 동시대 중화권 청춘영화는 어딘가 안전한 자리로 호출되곤 한다. 이는 가볍고 말랑한 감정의 외피를 두른 ‘틴 로맨스’나 ‘학원물’이 지배적인 인상으로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어두운 골목과 방 한 칸을 배경으로 한 ‘도시 로맨스’, 혹은 성적 지향이나 계급적 주류 범주에서 벗어나는 ‘아웃사이더’의 지난한 성장 서사 또한 그 반경을 꾸준히 확장해왔다. 거짓 없는 미소와 서툰 고백에서 길어 올린 풋풋한 청춘의 초상과, 체제와 현실의 제약 속에서 너무 이르게 마모되어 버린 성장의 잔혹한 기록. 두 계열은 서로 다른 미학과 정서를 지닌 채 엇갈린 방향을 향하는 듯 보이지만, 성장의 희미한 슬픔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교차하고 중첩된다. 우리가 중화권 청춘영화로 부르는 범주는 어디에서 기원하는가? 이 영화들은 어떻게 하여 이토록 ‘범아시아적’ 생명력을 유지하는가? 질문은 자연스레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 누군가는 <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구파도, 2011)나 < 우리가 잃어버릴 청춘 >(조미, 2013)을 기점으로 삼을 테고, 또 다른 이는 < 남색대문 >(이치엔, 2002)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야를 조금 더 긴 역사적 궤적 속으로 옮기면, 중화권 청춘영화가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한 동시대 현상만은 아니라는 점이 보다 분명해진다. 우선, 대만 뉴웨이브와 중국 6세대 영화, 그리고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덜 논의되어 온 홍콩 뉴웨이브의 성취 속에서 그 정서적, 미학적 뿌리를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하나 아닌 여럿: 중화권 청춘영화의 기원들 누구나 겪지만 결국 지나간 과거로 남게 될 통과의례의 순간. 대만 뉴웨이브는 이러한 청춘을 형상화하는 데 탁월했던 시기로 기억될 만하다. 교복 입은 인물들의 초상이 전면에 놓인 작품도 가히 많았다. 그 출발점에 자리한 < 광음적고사 >(에드워드 양 외 3인, 1982)의 옴니버스 구성 가운데 타오더천과 에드워드 양이 각각 연출한 첫 두 에피소드(“작은 용 머리”와 “기대”), 그리고 진곤후 감독의 < 샤오피 이야기 >(천 쿤하우, 1983)는 소년·소녀들의 작고 애틋한 바람결 같은 초상을 내세운다. 그 물밑으로는 미국 이민, 대학 진학, 도시 중산층 진입이라는 당대 사회적 분위기의 기대와 규범이 조용히 도사리고 있다. 학교와 가정을 중심으로 일상의 반복을 미묘하고 리드미컬하게 포착한 이 감각은 <남색대문>과 같은 영화들의 정서적 결이 어디서 기원했는지를 일깨우는 동시에, 오늘날 중화권에서 ‘작은 청신함’이라 불리는 샤오칭신(小清新, Xiao qingxin)의 감정 구조와 그것이 하나의 서브 장르로 체화되어 온 흐름의 잠재태를 내포하고 있다. [1] 그러나 이 계보는 허우샤오셴의 < 연연풍진 >(1986)을 비롯한 성장영화에서 에드워드 양의 <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1991)까지 대만 뉴웨이브 1세대가 소외된 젊은 세대를 응시해온 흐름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이 영화들은 포스트-경제 기적 시기에 접어든 관점에서 계엄령 시기의 역사적 조건을 되비추는 장치로서 청춘을 호출하며, 어쩔 수 없이 감내하며 통과해야 했던 국면으로 그것을 바라본다. 그 풍경은 담담한 일상으로, 때로 서늘하고 비정한 상태로 각인되는 한편으론 감독들의 노스탤지어와 자전적 경향을 투사한다. 도시로 향한 젊은 연인들이 이뤄질 수 없는 첫사랑을 흘려보낸 기억으로 남기거나(<연연풍진>), 백색 테러의 광풍과 외성인이라 불린 본토 이주민들의 불안정한 삶의 궤적을 통과하던 청년이 끝내 파국적인 폭력으로 치닫는 시간(<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속에서, 청춘은 이미 상실을 예감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광음적고사>,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중 (사진: Film at Lincoln Center , Asian Film Archive ) 이러한 정조는 중국 6세대 영화에 이르러 또 다른 시선으로 변주된다. 1989년 이후 중국에서 독립영화 [2] 로 분류될 수 있는 체제 외부의 작품들이 활성화되어, 급격한 시장화 한복판에서 방향성을 잃은 청춘의 초상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아장커의 < 소무 >(1997)를 기점으로 가시화된 이 흐름은 로우예, 왕샤오슈아이, 장위안 등의 작업으로 이어지며 6세대라는 미학적 진영으로 일컬어졌다. 소매치기인 주인공과 ‘사업가’로 변신한 옛 동료를 대조하며 중국 소도시 시장경제의 비루한 풍경을 날것으로 포착한 <소무>의 감각은 < 쑤저우강 >(로우예, 2000), < 여름궁전 >(로우예, 2006), < 북경 자전거 >(왕샤오슈아이, 2001), < 북경 녀석들 >(장위안, 1992) 등에서 목표를 갖지 못한 채 그저 머물고 떠밀리며 시간을 견디는 젊음에 대한 묘사로 이어진다. 6세대는 이처럼 국가 주도 계획경제와 개혁개방 사이의 격변기에 놓인 청춘이 조기에 소진되어버리는 감정 상태를 대변하는 성취를 보였고, 이는 세계 영화제 회로에서 환대를 받았다. 말하자면 이 시기는 중국 본토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독립영화’ 정신이 만개했던 때로 기록된다. 작가영화마저 상업영화 및 주선율 영화의 논리에 함몰되어가는 현 풍경을 떠올릴 때, 동아시아 청춘영화의 한 모델―즉, 비관적이지만 정직한 모델―을 제시한 당시 6세대의 성취는 그리움으로 남는다. 2010년대에 들어서며 독립영화의 ‘죽음’이 목격되기 전 [3] , 이러한 계보를 근과거까지 계승하며 그 정서적 맥을 잇고 있는 작품으로 리위 감독의 < 관음산 >(2010)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소무>, <관음산> 중 / 사진: IMDb( 1 , 2 ) 홍콩영화의 경우 상황이 조금 달랐다 할 만하다. 서극의 < 제일유형위험 >(1980)이 보여주듯, 초기 홍콩 뉴웨이브에서는 청춘의 권태와 분노를 폭발할 듯한 폭력과 뒤섞어내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럼에도 담가명이 호화롭고 자신감 넘치던 당시의 홍콩을 배경으로 도시 노마드들을 그려낸 < 열화청춘 >(1982)과, 왕가위의 < 중경삼림 >(1994)을 비롯한 1990년대 작품들은 청춘의 감정 구조를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이어진 프룻 챈의 < 메이드 인 홍콩 >(1997)은 포스트-반환 시기 처음으로 등장한 뛰어난 청춘영화가 아닐까. 영화는 고등학교를 중퇴한 두 소년과 이에 합세한 소녀로 구성된 아웃사이더들이 비가역적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는 점에서는 <제일유형위험>을 환기시키면서도, 한결 차분한 시선으로 홍콩의 내면적 심상에 집중한다. 한편 왕가위와 같은 홍콩 뉴웨이브 2세대의 동시대에 함께 활동한 임영동의 <학교 풍운>(1988)은 전형적인 청춘영화의 문법과 거리가 있을지라도, 학교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성장기 소년·소녀들의 위태로움을 그려낸 가장 ‘홍콩적인’ 작품 중 하나로 기억될 만하다. <제일유형위험>, <메이드 인 홍콩> 중 / 사진: IFFR , IMDb 중국 문혁 세대와 Z세대의 초상: <방화>, <소년 시절의 너> 그렇다면 지난 10년으로 범위를 좁혀 중화권 영화로 시선을 옮겨보자. 동시대 작품들은 어떤 청춘의 풍경을 담아내왔을까? 이 작품들을 한눈에 조망하기란 쉽지 않고 필자의 한계도 있기에, 이어지는 글은 그 흐름을 가늠하는 데 참고가 될 만한 몇몇 인상적인 작품들에 대한 간략한 스케치를 제공하고자 한다. 먼저, 중국에서 제작된 청춘영화들은 대만발 ‘샤오칭신’ 장르가 중화권 전반에 끼친 영향력을 입증하듯 캠퍼스 로맨스가 주류를 이룬다. 매력적인 주연 배우들의 청신함, 푸르른 여름 하늘, 첫사랑과 서투른 고백 등 이 장르의 관습으로 간주될 만한 요소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공부’ 자체가 단순한 성장담의 소재를 넘어 과열된 입시와 신자유주의적 경쟁에 짓눌린 청춘 서사의 엔진이 된다는 점은, 중국 청춘영화만의 독특한 지점이다. 모범생 소녀가 불량스럽지만 순수한 문제아 소년의 공부를 도와주며 사랑이 싹튼다는 대만 영화의 공식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가 보여주듯 다소 귀여운 수준에 머물지만, 중국의 대히트작 <우리가 잃어버릴 청춘>(2013)에 이르면 사뭇 다르게 변주된다. 이는 공부만이 ‘흙수저’인 자신의 유일한 생존 전략이라 믿으며 로맨스를 아예 거부하는 주인공의 철벽같은 마음을 공략하기 위한 작전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우리가 잃어버릴 청춘> 중 / 사진: IMDb( 1 , 2 ) 증궈샹 감독의 < 소년시절의 너 >(2019)는 중국발 학원 영화들의 흐름 속에서 가장 성공한 판본인 동시에 사회성 짙은 텍스트로 각인된다. 대입 시험인 ‘가오카오’를 코앞에 둔 시기, 주인공 첸니엔(주동우)이 한 소녀가 학교에서 자살한 현장을 목격한다. 죽은 소녀는 교내 가해자들의 악명 높은 괴롭힘에 희생되었음이 드러난다. 가해자들의 다음 표적이 된 첸니엔은 자신을 보호해 주려는 십대 거리의 소년(이양천새)과 운명적으로 엮인다. 영화는 입시 위주 고등학교를 지배하는 잔혹함의 심리를 사회적 리얼리즘으로 탐구하며 시작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온 세상에 맞서 싸우는 두 십대의 서로를 향한 헌신과 그 과정에서 피어나는 순수한 로맨스에 집중한다. 그러나 이처럼 교육의 살풍경과 두 연인의 낭만적 비극을 대비시키는 방식은 미덕이라기엔 다소 한계를 노출한다.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에 책임이 있는 체제 내부의 어른들(교사와 경찰들)이 지나치게 선량하고 도덕적인 인물로만 묘사되고, 가해자들 역시 충분한 전사나 깊이 없이 평면적 캐리커처에 가깝게 제시되면서, 두 상처 입은 영혼들의 고립은 사회적 압박 못지않게 스스로 세상과 단절하려는 관계의 내향성에 의한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오카오’ 점수가 부르주아로의 격상과 잔인한 빈곤의 삶 사이 간극을 결정짓는 상황에서, 첸니엔이 통과해야 하는 절박함의 정동은 한 편의 ‘십대 오페라’ 같은 이 영화를 잊을 수 없게 만드는 강력한 요소일 테다. <소년시절의 너> / 사진: IMDb <방화>(2017)는 문화대혁명 말기, 문공단(문화예술선전대)에 입대한 젊은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공간이 당대의 예술학교나 사실상 다름없었던 현실이 재현될 뿐 아니라, 영화 역시 학원영화의 문법을 상당 부분 따르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블록버스터와 풍자극을 넘나들며 < 집결호 >(2007), < 아부시반금련 >(2016) 등을 연출해온 중국의 대표적 감독 펑샤오강의 야심작이다. 무용수가 되기를 꿈꾸는 샤오핑은 문공단에 입성한 첫날, 자신을 마중 나온 선배 류펑에게 한눈에 반한다. 하지만 이타적이고 충직한 성정의 류펑은 정작 자신의 호의를 이용하기만 하는 피아노 반주자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영화는 마오쩌둥의 사망과 4인방 숙청, 그리고 1979년 중-베트남 전쟁으로 이어지는 약 5년간의 격동을 통과한다. 그 사이 샤오핑은 재교육 시설에 수감돼 있던 아버지의 죽음을 접하고, 류펑과 샤오핑 모두 전쟁에 참전한 뒤 정신적·신체적으로 소진된 상태로 귀환한다. 하지만 <방화>는 문화대혁명이 야기한 전면적인 비극을 정면으로 성찰하기보다는, 학교 청춘물의 형식을 빌려 이들에게 고통을 안긴 공산당 간부나 상하이 상류층 자녀들과의 격차를 부각한다. <소년시절의 너>의 첸니엔처럼, 샤오핑 역시 수줍음과 서투름, 그리고 계급 지위로 인해 조롱과 배제의 대상이 된다. 즉, 시대의 광기보다는 오늘날 중국사회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비판 가능한 엘리트 부유층의 부패와 계급적 소외에 비극의 화살을 돌리는 것이다. 제목인 방화(芳华)는 ‘꽃다운 청춘’ 혹은 ‘향기로운 시절’을 뜻한다. 세월이 흘러 1990년대 중반, 두 주인공이 재회하는 장면에서 문공단 시절은 노스탤지어 깃든 기억으로 남고, 그 공식적 종언을 알리는 해산식 장면에서 샤오핑은 생애 가장 아름다운 춤을 춘다. 대만 청춘 영화의 속삭임: <조니를 찾아서>,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 한편 오늘날 대만 청춘영화의 흐름이야말로 젊은 시절을 ‘아팠지만 예뻤던’ 감정으로 재배치하는 ‘샤오칭신’ 감성 구조와 떼어내 설명하기 어렵다. 동시에 그 한편에서는 이전 세대 영화들이 간직했던 불안과 공허의 정조를 일정 부분 봉합하면서도, 이를 동시대적인 감각으로 변주하려는 흐름 또한 포착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만 청춘 영화들은 불확실한 현재를 견디기 위한 하나의 정서적 피난처를 제공하는지도 모른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는 일상 속에서 작고 사소한 것들, 곧 ‘작은 행복과 미세한 슬픔’을 섬세하게 건드리는 이 방식은 개인주의적 정서를 중시하며,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로부터 물러나 자기만의 세계에 침잠하려는 태도를 전시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평론가이자 제작자인 페기 차오는 자신의 제작 영화 <남색대문>이 ‘샤오칭신’ 장르로 호명되는 데 대해 조금 다른 관점을 내놓는다. 그 미덕이 “대만 사회에 뿌리를 둔 일상적 디테일의 축적을 통해 그려낸 삶의 초상이자, 자비로 가득하며 악의가 없는 세계”의 포착에 있다는 것이다. [4] 후앙시 감독의 < 조니를 찾아서 >(2017)는 이러한 설명에 잘 부합하는 텍스트다. 타이베이를 배경으로 한 세 젊은 인물의 이야기는 인상 깊은 오프닝으로 시작된다. 지하철에서 작은 상자를 들고 탄 여자에게 한 청년이 다가와 새장이 아니냐고 묻는다. 여자는 나중에 답을 주겠다고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예전에 그런 상자에 새를 담아온 적이 있다고 덧붙인다. 같은 빌라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적당한 거리를 둔 채 걸어가는 긴 시퀀스를 통과할 때까지도 이들이 우연히 스친 타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후앙시는 허우샤오셴의 < 남국재견 >(1996)과 < 자객 섭은낭 >(2015) 제작부를 거치며 선배 감독의 인장과도 같은 롱테이크를 체득한 인물이며, 이 영화에는 실제 허우샤오셴이 제작자로 참여했다. 영화는 인물과 그들을 둘러싼 주변을 어떠한 판단 없이 평등한 시선으로 관조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일상의 미스터리를 낯설고도 신선한 방식으로 전달한다. 이를테면 화면에 익숙해진 뒤에야 청년의 티셔츠 무늬가 작은 새들이라는 사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순간처럼, ‘조니’라는 사람을 찾는 이상한 전화들을 계속 받아오던 여자는 문득 옛 애인을 조니라고 부른다. 앵무새를 키우는 여자와 자폐 성향을 지닌 청년, 그리고 탈출한 앵무새를 계기로 이들과 관계를 맺게 된 수줍음 많은 집수리공이 왜인지 모를 기분 좋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이야기. 이는 느슨하며, 너그럽고, 명확한 해답은 없지만 삶에 대한 낭만을 포기하지 않는 순간들로 가득하다. <조니를 찾아서> 중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2020)을 논하기 위해서는 대만발 청춘영화의 또다른 국면을 호출해야 한다. 전형적으로 이상화된 여성성보다는 강인하고 때로 보이시한 여성 캐릭터가 선호되고, 완성된 사랑보다는 첫사랑의 어슴푸레하고 틀이 잡히지 않은 감정에 집중해 온 흐름 말이다. <남색대문>, < 영원한 여름 >(2006), <여친 남친>(2012) 등이 보여주듯, 대만 청춘영화에는 퀴어 서사와 삼각관계의 묘사를 통해 장르의 영토를 확장해 온 하나의 계보가 존재한다. ‘사랑과 우정 사이’의 미묘한 긴장, 그리고 그 과정에서 종종 촉발되는 모호한 섹슈얼리티에 대한 섬세한 터치는 대만 청춘영화만의 고유한 미학을 구축해왔다. 패트릭 류 감독의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은 막 계엄령이 해제된 1980년대 후반 대만을 배경으로 한다. 아한은 가톨릭 기숙학교에서 버디를 만나 단짝 친구가 되고, 두 소년 사이에 형성된 감정은 학교가 여학생을 받기 시작하면서 시험대에 오른다. 신입 여학생 반반의 등장은 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성적 정체성을 직면하도록 압박하는 계기가 된다. 표면적으로는 삼각관계를 통한 ‘사랑과 우정 사이’라는 테마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 보이지만, <네 마음>은 정통 퀴어 영화라기에는 터치가 다소 가벼웠던 기존의 청춘영화 흐름에서 한 발 더 묵직하게 나아간다. 기숙학교 내에 공공연히 만연한 호모포비아와, 스스로 게이였음에도 아한에게 ‘교정’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던 캐나다인 신부의 모순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영화는 계엄령 해제라는 조용한 변화의 출발점에서 시작해,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시간으로 닿는다. 과거의 고통과 열정을 다시 마주하며 잃어버린 줄 알았던 시대의 기억을 되찾으려는 듯, 주제곡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이 흐르는 가운데 두 주인공은 죽은 신부의 교구가 있던 퀘벡의 밤거리에서 우연히 재회하는 결말로 향한다. 홍콩 독립 청춘영화의 새로움: <쪽빛 하늘>, <좁은 길> 마지막으로 최근 홍콩 독립 청춘영화는 대만의 청춘물이 제공하는 감정의 완충 지대나, 중국 본토 학원영화의 서사와는 사뭇 다른 궤적을 그려낸다. 이 글을 준비하며 마주한 가장 큰 수확은 홍콩 반환 이후 감독들의 본토행에 따른 영화 산업의 공동화나 정체성의 약화라는 오랜 우려를 불식시키는, 독립영화 진영의 새로운 세대를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저예산으로 제작되면서도 도시 청춘들의 표정과 삶의 결을 세밀하게 기록해 온 이 영화들은, 때로는 홍콩을 향한 러브 레터처럼 읽히기도 한다. 아모스 와이의 <닷 투 닷>(2014), <냅핑 키드>(2018), <먼 곳에서>(2022) 등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주목할 점은 홍콩영화발전위원회(Hong Kong Film Development Council)가 주관하는 신인 감독 지원 사업(First Feature Film Initiative)을 통해 입봉하는 신예가 점차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업은 신인 감독의 데뷔작을 지원할 때 홍콩 영화계의 거장 감독이나 베테랑 제작자를 멘토로 매칭해 주는 방식을 취한다. 2013년부터 시작된 이 세대 간 유기적 결합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 덕분에, 최근 홍콩 독립영화를 보면 타이틀 크레딧에서 제작자로 이름을 올린 익숙한 홍콩 감독들을 발견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쪽빛 하늘> 중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 그중에서도 <쪽빛 하늘>(2017)은 동시대 홍콩을 대표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중 하나인 청킹와이의 극영화 데뷔작이다. <천하태평>(2008), <음악 인생>(2009), <하나의 국가, 두 개의 도시>(2011), <테이스트 오브 유스>(2016) 등 홍콩의 현실에 대한 다큐멘터리 작업들과 허안화의 <밤과 안개>(2009)의 각본을 쓰며 다져온 청킹와이의 서늘한 시선은, 부모 살해 사건이라는 충격적인 소재를 통해 홍콩 사회가 청춘에게 드리운 그림자를 냉정하게 응시한다. <쪽빛 하늘>에서 부모의 시신이 지역 저수지 인근에서 발견된 뒤, 어린 코니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한다. 이 강렬한 스릴러는 누가 저질렀는가를 이미 알려주고 시작하기에, 질문의 중심은 ‘왜’라는 동기로 집중된다. 빈곤과 학대로 점철된 코니의 가정환경, 그녀가 학교 친구를 공범으로 끌어들이는 과정, 그리고 사건에 깊이 관여하면서 점차 자신의 사적인 삶까지 흔들리기 시작하는 여성 수사관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선정적으로 흐르지 않으면서도 세심하게 펼쳐지는 이 탐구의 형식은 평소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코니와 같은 인물들이 스스로 말하게끔 유도한다. 대만이나 중국의 청춘 학원 영화에서 ‘파란 하늘’이 젊음의 자유를 상징한다면, 이 영화의 어스름한 ‘쪽빛’은 홍콩의 비좁고 폐쇄적인 공간을 짓누르는 색채로 활용된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안전하지 못한 채 위협받는 십대들을 압박감 가득한 스릴러에 담아낸다는 점에서 <학교풍운> 같은 홍콩영화의 고전적 전통이 환기되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부모 살해를 자행한 소녀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거부하는 젊은 여경의 윤리적 딜레마는 평행선을 달리는데, 이는 세대 갈등의 단면이자 출구 없는 미로 같은 도시에 갇힌 홍콩 현세대의 실존적 질식 상태를 대변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좁은 길>(2022)은 2019년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 당시 자살을 예고한 어린 시위대를 구하려는 청년 구조대의 이야기를 담은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기를>(2021)을 렉스 렌과 공동 연출했던 람섬 감독의 단독 연출작이다. 이 영화 역시 대만의 낭만이나 중국의 열망과는 또 다른, 도시 속에서 존엄을 지키려는 홍콩 청춘들만의 정직하고도 아픈 초상을 그려낸다. 코로나19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 영세 청소 대행업체의 일원인 노동자 자크가 늦은 밤 식당을 방역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주로 가라앉은 팬데믹 시기의 밤 장면으로 구성된 <좁은 길>은 조용한 노동계급의 고독을 포착하지만, 음울하거나 비관적이기보다는 사회 주변부의 고단한 상황을 응시하면서도 어딘가 미묘한 위로와 해방감을 안겨준다. 일손이 절실하지만 도시를 덮친 팬데믹 탓에 자크의 형편은 넉넉지 않다. 그는 충동적으로 지원한 캔디의 비공식적인 구직 요청을 받아들이고, 매일 밤 일당을 현금으로 지급한다. 비교적 어린 여성인 줄로만 알았던 캔디는 사실 어린 딸을 키우는 싱글맘이다. 두 사람은 감정적 방어 기제를 세우면서도 서서히 비즈니스 파트너에서 친구 사이로 발전하지만, 영화는 연애담을 전형화하지 않는 선에서 결말을 열어둔다. 람섬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지난 몇 년간 힘든 시간을 보낸 홍콩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었고, 우리 모두가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자 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5] 취약함을 인정하는 용기는 <좁은 길>의 가장 큰 미덕이자, 고립 속의 유대를 형성하는 두 주인공의 서사에 깊이 공감하게 만드는 동력일 것이다. 청춘영화라는 틀 안에서 보자면 입체적으로 그려진 젊은 청소 노동자와 싱글맘의 묘사 자체가 인상적인 ‘캐릭터 스터디’라 할 만하다. <좁은 길> / 사진: IMDb *** [1] Papan Yang, “The Taste of Ice kacang: Xiaoqingxin Film as the Possible Prospect of Taiwan Popular Cinema”, The IAFOR JOurnal of Asian Studies, 2:1, 2016, p. 75. [2] Chris Berry, “Cinema: Reconsolidation of Party-State Hegemony in a Market Economy,” in M Dahl, M. Szatkowski & H. Kups (eds.), China under Xi Jinping: An Interdisciplinary Assessment , Leiden & Boston: Brill, 2016, p. 351. 중국 독립영화는 일반적으로 정부 당국의 검열을 거치지 않은 영화를 말한다. 이는 체제 내 상영이 허가된 예술영화(艺术片, yishupian)와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공식적으로 상영되지 못하는 독립영화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중국 내 독립 영화제(난징, 베이징 등)나 대안적 상영 공간을 통해 소개되거나, 주로 해외 영화제를 거점으로 유통되는 경향을 보였다. [3] Chris Berry, ibid., p. 350. [4] Song Hwee Lim, Taiwan Cinema as Soft Power: Authorship, Transnationality, Historiography , London & NY: Oxford University Press, 2022. p. 129에서 재인용함. [5] Elizabeth Kerr, “ Portrait of a City: The Narrow Road ” , ZOLIMA citymag (접속일: 2025. 12. 26.). 박은지(영화 연구자) l 프랑스 탈식민주의 영화와 동시대 동아시아 영화를 연구하고 글을 쓴다. 부산대학교 영화연구소 전임연구원 및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프로그래머. 지은 책으로 『지중해의 영화』, 주요 논문으로는 「장-뤽 낭시를 경유한 클레르 드니의 여정: ‘신체-지리학’ 영화, 생태적으로 그려내기」, 「부산 프랑스문화원과 트랜스로컬 시네필리아」, 「홍콩 누아르에서 포스트-홍콩 누아르까지 성찰적으로 바라보기」, 「두기봉의 밀키웨이 제작사와 포스트-1997 홍콩영화 정체성의 문제」 등이 있다.
[KOFA 특강노트] 목적지 홍콩: 한국과 중국어권 영화와의 조우
장철과 호금전의 무협에서 이소룡과 성룡의 쿵푸 액션으로. 오우삼과 서극, 왕가위에 이르는 뉴웨이브까지. 20세기 중·후반 홍콩영화는 각기 다른 색깔의 ‘신드롬’을 일으키며 한국에 스며들었다. 대만, 싱가포르, 중국 등 중국어권 영화 전반 역시 (정치, 외교, 경제 정책에 따른 변함은 있더라도) 예술과 산업의 측면에서 한국영화와 인연을 맺으며 그간 서로가 아시아영화의 한 종류로 자리 잡는 데 영향을 주고받았다. 한국영화가 중국어권 영화와의 상관관계 속에서 어떻게 초국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이를 영화에 반영했는지를, 홍콩 시티대학교(City University of Hong Kong)와 한국영상자료원(이하 ‘영자원’)이 공동으로 개최한 컨퍼런스 ‘ 목적지 홍콩: 한국과 중국어권 영화와의 조우(Destination Hong Kong: South Korean Cinema’s Encounter with Chinese-Language Cinemas) ’에서 되짚어보았다. 홍콩 시티대 이상준 교수와 한국영상자료원 정종화 학예연구팀장이 공동 의장을 맡았으며, 2025년 5월 16일과 17일, 다양한 세대로 구성된 각국의 연구자 및 아카이브 관계자들이 발표를 위해 홍콩 시티대를 찾았다. 중국어권과의 영화 교류의 흐름을 조망하는 자리가, 한·홍 합작의 주요 결과물 제작에 기여한 제작사 쇼브라더스의 설립자 런런쇼(Run Run Shaw)가 건립을 지원한 (홍콩 시티대 내) 런런쇼 창의미디어센터에서 진행되어 더욱 뜻깊었다. 시티대 이상준 교수는 “1950년대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홍콩,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중국 등과의 초국가적 및 초지역적 네트워크 속에서 한국영화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알아본다”라는 컨퍼런스의 목적을 밝혔다. 초청 강연자로 함께 한 한국영상자료원 김홍준 원장은 “기관의 대표자일 뿐만 아니라 홍콩영화의 오랜 팬으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게 되어 더욱 감회가 깊다”라면서, “이번 행사는 한국영상자료원이 해외 학술기관과는 처음으로 공동 개최하는 컨퍼런스일 텐데, 관련 주제를 연구하는 작은 한 걸음이 위대한 도약의 발판이 되기를 바란다”라며 응원을 건넸다. 정종화 학예연구팀장 역시 본 컨퍼런스를 “한국과 중국어권, 특히 홍콩 간 영화적 교류에 대한 연구를 진작하는 특별한 기회”라고 평가했다. 또한 “이번 컨퍼런스를 계기로 이상준 교수와의 협업을 지속하며 더욱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주최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며 컨퍼런스 이후에도 관계 기관과의 협력을 이어가며 연구 성과를 가다듬는 데 대한 의지를 밝혔다. 1950~60년대 한국과 중국어권 간 합작 사례부터 양국 21세기 감독들의 화제작까지, 시대나 장르에 제한을 두지 않고 이어진 양일간의 열띤 발표와 토론 내용을 기록한다. 먼저, 두 패널의 발표가 진행된 컨퍼런스 1일차 현장을 담았다. * 컨퍼런스 '목적지 홍콩: 한국과 중국어권 영화와의 조우' 개최 개요 및 프로그램 북( 링크 ) <패널 1> 한국과 중국어권 영화 간 전후(戰後) 합작 1950년대 이후의 전후 한국영화계에서 중국어권과의 합작이 시도된 배경과 방식, 그리고 결과의 함의를 다뤘고, 홍콩 침례대학교 김신동 교수가 이끌었다. 한국영화인 강범구를 통해 본 1960년대 한국-대만 영화 교류사 (한국영상자료원 정종화 학예연구팀장) 정종화 학예연구팀장은 1960년대 액션 장르 흥행을 이끌었던 강범구 감독의 작품이 한국영화 최초로 대만에 수출되거나 대만과의 합작을 통해 제작된 과정에 집중했다. 1960년대 한국과 대만의 영화 합작에 관한 첫 번째 학술적 연구다. 냉전 시기 동아시아 정세를 반영한 대만의 정치적 상황과 반일 감정이 한국 영화산업의 현실과 맞물리며 두 국가의 영화적 교류의 토대가 마련되었는데, 흥미롭게도 과거 양국과 식민지-제국 관계였던 일본의 영화기술이 필요한 현장이었음을 포착한다. 영자원이 2009년부터 2014년까지 강범구 감독을 면담해 기록한 구술채록문과 작품별 심의서류, 합작 계약서 등이 근거가 되었다. 전후 냉전 상황 속 동아시아에서 지정학적, 산업 및 기술적 요소가 상호작용하던 도중, 영화산업을 매개로 세 국가의 관계가 형성되는 한 지점을 재발견하는 연구였다. 강범구 감독은 1950년대 신상옥 감독의 현장에 촬영보조로 합류하며 영화계에 입문했고, < 지옥화 >(신상옥, 1958) 등의 작품에서 촬영감독으로 활약했다. 제작자 최관두 가 속한 한흥영화사와 협력하면서부터는 액션 스릴러에 초점을 두고 연출 활동을 시작해 독특한 액션 연출 및 촬영 기법으로 주목받았지만, 한국영화사에서는 아쉽게도 주변부 인물로 비춰지는 데 그쳤다. 그런데 그가 세 번째로 연출한 < 안개낀 거리 >(1963)는 1963년, 한국영화로서는 최초로 대만에 수출된 후 놀랍게도 흥행을 기록했다. 강범구 감독은 구술채록 당시 이러한 흥행의 비결이, (대만 역시 냉전 시기를 통과 중인 동아시아의 일부였음을 감안할 때) 상업적 장르영화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전후 사회적 현실을 비판적으로 묘사 한 데 있었다고 회고했다. 게다가 양국 간 외교적 긴장을 야기한 지정학적 요인 [1] 의 영향으로 대만은 일본영화의 수입을 일시적으로 금지하는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안개낀 거리>는 이때 대만에 수출되면서 현지 관객으로부터 공감을 얻고 일본영화의 빈자리를 메꿔 보다 쉽게 흥행을 달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1964년 6월, 대만의 일본영화 수입이 재개되면서 그러한 이점의 효력이 상실되었고, 대만에서 한국영화의 입지는 다시 변방으로 밀려났다. 강범구 감독과 박상호 감독 / <안개낀 거리>, <탈출명령> 포스터 하지만 1965년, 한국과 대만은 강범구 감독을 필두로 최초의 합작을 시도한다. 그의 액션 연출을 인상 깊게 바라본 대만의 감독 겸 제작자 가오 런허(Gao Renhe)의 제안을 시작으로 제2차 세계대전 배경의 전쟁·액션 영화 < 탈출명령 >(1966) 제작을 위해, 대영영화주식회사와 대만 중흥영업유한공사(Chung Shing Films Corporation)가 합작했다. 계약서상 한국은 각본, 연출, 캐스팅을, 대만은 주로 재정 지출을 담당했음이 나타난다. 두 국가 간 최초의 합작은 한국의 창작적 리더십과 대만의 투자가 결합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탈출명령> 합작 과정에서 국내 영화인들의 작업 편리성이 일본 영화산업 의 기술을 통해 향상되었을 여지도 발견된다. 강범구 감독은 푸티지를 매일 일본 도요랩(Toyo Laboratory)으로 운송해 최신 기술을 바탕으로 현상·편집했으며, 본 합작을 계기로 일본의 영화 기자재와 소품용 총기가 항공편을 통해 본격적으로 국내에 수입되기 시작했고, 촬영 현장에 중국어 통역사가 동반했음에도 일본 관계자가 소통을 도왔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그러나 결과는 아쉬웠다. 제작비 규모가 계획한 예산을 초과해 대만 중흥영업유한공사의 재정적 부담이 컸는데, 박스오피스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흥행 불발에 더해 한국과 대만의 최초 합작 사례이다 보니 제도적 지원 역시 부족했던 터라, <탈출명령>은 한 번의 실험적 합작 시도의 결과물로만 남고 말았다. 하지만 정종화 팀장에 따르면, 해외 영화 수입 비율 충족을 위한 위장 합작이 만연했던 당시, 양국의 영화적 역량과 자본을 충실히 투입한 작업이었다는 점에서 위 사례는 재조명될 가치가 있다. 정치, 외교, 기술적 측면에서 세 국가의 역할이 교차하며 쓰인, 동아시아 영화사의 독특한 협업 역사로도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한·홍 합작 멜로 속 여성 캐릭터의 민족 수행: <이국정원>과 <사랑의 스잔나>를 중심으로 (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 윤서연 연구원) 윤서연 연구원은 한국과 홍콩이 합작한 멜로드라마 영화의 여성 인물이 민족성이나 국적을 수행의 방식으로 전환하는 현상을 소개했다. 나아가 동 시기 한국 정세의 영향으로 극중 인물들의 젠더가 국적을 대변하는 양상을 띠는 점 역시 짚었다. 이렇게 제2차 세계대전(한국의 경우 6.25 전쟁 포함) 후 한국과 홍콩의 역사·문화적 의식이 인물을 통해 알레고리화되는 합작 멜로드라마 중에서도, 윤서연 연구원은 주인공의 부모가 국적이 다른 남녀의 이성 교제를 허락하는 구조를 띤 < 이국정원 >(전창근, 도광계, 와카스기 미쓰오, 1957)과 < 사랑의 스잔나 >(김종용, 송존수, 1976)에 대해 설명했다. 두 작품에는 홍콩 출신 여성 인물이 한국문화를 경험하며 국적이나 민족성을 ‘유동적으로 수행’ 하는 모습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2] <이국정원>에서는 한복에 가깝게 디자인된 주인공 방음(우민)의 의상이, 그의 민족성 수행을 암시하는 전략적 수단으로 활용된다. 방음의 모친 역시 과거에 교제했던 한국인 남성과 찍은 사진에서 한복을 입은 모습이다. [3] <사랑의 스잔나>에서 국휘( 이승용 )와 추하(진추하) 두 사람은 민속촌을 방문해 한국의 전통 혼례식이 치러지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고, 그 순간 국휘는 추하에게 청혼한다. 홍콩 출신 여성 인물과 한국의 민족성 간 격차를 좁히고 여성 인물의 적극적인 민족성 수행을 가능하게 하는 대목이다. 윤서연 연구원은 메리 앤 도안(Mary Ann Doane)의 “ 여성 가면(Female masquerade) ”이라는 개념을 빌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계기를 설명했다. 메리 앤 도안에 따르면, 영화 속 여성 인물들은 의상이나 몸짓을 통해 소위 ‘여성적인’ 특성을 과도하게 강조함으로써, 가부장적 사회 체계 안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생존 전략을 추구한다. [4] 한·홍 합작이라는 특수한 맥락에서 이 생존 전략은 타국의 문화적 맥락에 적응 하는 데 필요한 의상과 몸짓을 선보이는 홍콩 출신 여성 인물들에 의해 연기된다. (좌) <이국정원> 중 과거 교제한 한국인 남성과 촬영한 사진에서 한복을 입고 있는 방음의 모친 (우) <사랑의 스잔나> 중 추하와 국휘 그렇다면 왜 한·홍 합작 멜로에서는 대부분 한국인이 남성으로, 홍콩 출신이 여성으로 설정되어있을까? 윤서연 연구원은 한국과 남성을, 그리고 아시아의 타국과 여성을 연결해 한국이 국가적 남성성(National masculinity)을 회복 하려고 했다는 이영재의 주장을 인용했다. 이영재는 한국인 남성이 외국인 여성과 교제하는 구도(이를 반영한 멜로드라마 영화의 합작에 한국영화계가 투자한 이력 포함)를,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전후 한국사회가 문화적 영향력을 분출함으로써 권력을 지닌 가부장적 개념의 남성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라는 점을 언급했다. [5] 국가로서의 주권을 되찾고 전쟁까지 거친 후, 아시아의 패권 다툼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는 열망이 극중에서는 젠더를 통한 국적 은유의 방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외에도 남성 인물의 한국적 민족성과 경제적 능력 보장 여부에 따라 결말이 달라지는 양상도 언급하면서 인물과 내러티브가 설정된 맥락을 주제와 연관 지어 더욱 구체화했다. 가부장제의 한계를 반영한 젠더적 수행과 국가적 권력에 대한 당시 한국의 시각을 포착해, 한·홍 합작의 결과물로서는 깊이 분석된 적이 드문 멜로드라마 장르를 다각도로 관찰하는 계기를 마련한 연구였다. ‘자유의 꾀꼬리’ 정형의 스타덤: 1960년대 영광영업공사의 한·홍 합작 영화 네 편을 중심으로 (홍콩 링난대학교 디지털아트·문화산업학부 연구 조교수 제시카 시우인 여웅) 제시카 시우인 여웅(Jesscia Siu-yin Yeung) 교수는 1960년대 광둥어권 지역의 영광영업공사를 중심으로 제작된 한·홍 합작 영화의 흥행을, 네 편의 작품에서 배우 정형(Ting Yang)의 역량과 연관 지어 설명했다. 그간 만다린어권이나 일본에 비해 충분한 조명을 받지 못한 광둥어권 아시아 여성 배우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리처드 다이어(Richard Dyer)의 스타 이론을 비롯해 정형 출연작을 다수 제작한 제작자 황척한(Wong Cheuk-hon)의 회고록, 그리고 각 작품의 전단을 참고했다. 정형은 황척한이 설립한 만다린어권 제작사 자유영업공사의 1960년대 작품에서 사실적이고 섬세한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활약했다. 이후 황척한이 작품 심의 및 개봉 기준이 비교적 유연한 광둥어권에 영광영업공사를 세웠고, 영광영업공사 제작 작품 여러 편에도 주연으로 발탁돼 흥행에 기여하면서 스타덤에 오른다. < 서유기 >(김수용, 1962)의 경우 당시 한국에서 박정희 정부가 지원한 한양영화공사가 자유영업공사의 막 웡 헤이 감독과 협업하면서 김수용 감독이 연출에 나선 작품이다. 광둥어권에서는 이스트만 컬러 필름과 테크니컬러의 와이드스크린 포맷, 그리고 일본의 특수효과를 최초로 이용해 촬영한 작품이기도 하며, 이 작품에서 정형은 칠선공주로 분해 열연했다. 다음 합작 결과물인 < 에스 오 에스 홍콩(SOS 홍콩) >(최경옥, 1966)은 당시 아시아에서 열풍을 일으킨 제임스 본드 시리즈와 유사한 첩보 액션 장르로 합작하기를 신상옥과 최은희 가 황척한에게 제안해 신필름과 영광영업공사와의 협업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정형은 이 작품에 주연 백민( 박노식 )을 돕는 요원 마리나를 연기했는데, 이때 배포된 전단을 보면 ‘대역 없이 정형 스스로 공중의 헬리콥터를 타고 오르는 모습에 주목해라’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제시카 교수는 주·조연 여부와는 관계없는 정형의 열연이 담긴 이러한 기록을 바탕으로, 소규모 독립영화사로서의 영광영업공사을 대표하는 여성 배우 로서 그가 최선을 다해 연기했음을 보인다. 세 번째 작품은 멜로드라마 < 조용한 이별 >(정창화, 1967)이다. 정형은 이 작품에서 주연 정예화를 연기했고, 함께 연기한 남정임 은 당시 한국 최고의 여성 배우였음에도 불구하고, ‘홍콩 최고의 여성 배우 정형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임을 감안해 조연을 연기하라’라는 동료 배우 최은희의 조언에 설득되어 출연을 결심했다고 제시카 교수는 전했다. 마지막으로, 전쟁 블록버스터 < 장렬 509 대전차대 >(김동학, 1967)는 다른 배역들의 캐스팅은 황척한이 바라는 대로 진행하되, 주연으로는 반드시 신영균 과 정형이 캐스팅되어야 한다는 조건으로 제작되었다. 정형은 남매를 찾기 위해 군대에 합류한 간호장교 임수랑 역을 맡았고, 제시카 교수는 추운 날씨와 열악한 현장에서 노고가 많았다고 전한 정형의 발언을 강조했다. <에스 오 에스 홍콩(SOS 홍콩)> 중 마리나(정형) / <장렬 509 대전차대> 중 신성호(신영균)와 임수랑(정형) 광둥어권 관객을 타겟으로 작품을 제작하는 소규모 독립영화사로 시작한 영광영업공사. 이를 이끈 황척한은 다른 대형 제작사에 대항해 경쟁력을 갖추고자 정형의 스타덤을 동원했다. 뿐만 아니라 이스트만 컬러 필름이나 테크니컬러의 와이드스크린 포맷, 일본의 특수효과를 도입하는 등 최첨단 영화 제작 기술까지 뒷받침되었음을 보이며, 제시카 교수는 영광영업공사가 1950~60년대 중국어권 영화계에서 정형을 필두로 차별화되기 위해 노력한 역사를 되짚었다. <반혼녀>와 신상옥·최은희의 기구한 운명: 홍콩 속 영화적 모험 (홍콩 침례대학교 영화과 조교수 케니 응) 케니 응(Kenny NG) 교수는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 배우가 홍콩 영화계에 입문하고 합작을 시도하게 된 계기를 해설했다. 신상옥은 1960~7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하나로서 제작사 신필름을 운영했으며, 첩보, 액션 스릴러, 멜로드라마는 물론 초자연적 소재까지 다루면서 다양한 장르에 걸쳐 연출을 이어간 유능한 창작자였다. 하지만 국내 영화검열의 강도는 1970년대 중반까지 매우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었고, 영화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주제와 표현 방식의 폭이 매우 좁아진 터라 한국영화의 질적 완성도는 저하될 수밖에 없었다.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자 했던 신상옥 감독에게는 불리한 환경이었으며, 그가 운영하던 신필름도 1975년에 폐업하기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신상옥 감독은 홍콩 제작사 쇼브라더스와 합작을 시작했다. 쇼브라더스가 제작한 작품에 한국인 배우들이 출연하도록 하는 ‘ 위장 합작(Counterfeit co-production) ’의 방식이었는데, 케니 응 교수는 이것이 신상옥 감독으로 하여금 제작 과정에서의 경제적 부담을 덜고 양국 영화산업의 역량을 개발하는 데도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6] <반혼녀> 중 한도령(이승용)과 연화(리칭) 한편, 신상옥 감독이 시대적 한계를 지닌 사회 제도로 인해 고통받는 여성과 그를 에워싼 금기시된 사랑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케니 응 교수는 당시 검열을 비롯한 사회적 권력의 억압에 의해 억눌리고 은폐된 욕망이 분출되는 양상 을 관찰했다. 특히 한·홍 합작 영화 < 반혼녀 >(신상옥, 1973)에서, ‘유령’이라는 초현실적 소재가 죽음을 초월한 사랑을 추구해 상대를 끊임없이 갈망하는 내러티브에서 이 점이 잘 드러난다고 봤다. 거액의 돈을 가지고 연인 연화(리칭)에게 가려고 했던 한도령(이승용)은 산적에게 기습을 당하고, 한도령과 만나지 못한 채 생을 다한 연화가 유령이 되어 그를 찾아와 사랑을 이어간다는 이야기이다. 케니 응 교수는 유령과 인간 사이의 사랑이라는 설정 자체가 사회적 통념에 반하려는 시도이며, 여기에 호러와 코미디 요소가 섞여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고 말한다. 또한 성과 폭력에 관한 묘사가 비교적 엄격히 규제되었던 1970년대의 시대적 한계를 그만의 예술성으로 극복한 방식 역시 인상적이라고 덧붙였다. [7] 신상옥 감독과 쇼브라더스 간 이와 같은 협력을 기점으로, ‘유령이 등장하는 로맨스’가 아시아 영화에서 장르로 인식되고 활발히 제작되는 데 기여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 토론 * 패널 1의 발표자 4인이 발표한 후, 홍콩 링난대학교 디지털아트·문화산업학부 연구 조교수 에녹 이욕 탐(Enok Yee-Iok Tam)이 아래와 같이 질문했고, 발표자들이 답변했다. Q. 제시카 시우인 여웅 교수에게 (질문1) 본 연구에서 정형만큼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은 홍콩 자유영업공사와 영광영업공사의 설립자 황척한 이다. 그가 활동하던 당시 한국과 홍콩의 합작이 활성화될 수 있었던 지정학적 요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또한 영광영업공사 는 소규모의 독립영화 제작사에 가까웠음에도, 한국은 어떻게 이들과 합작을 고려하게 되었을까? (답변) 냉전 시기 홍콩과 대만, 한국(남한), 일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은 아시아의 반공 지역으로 구분되었고, 황척한은 이들 중 대만과 일부 동남아시아 국가의 영화시장에 진입을 시도했지만 결과가 성공적이지 않아 다시 홍콩으로 돌아왔다. 그러다가 <서유기>가 흥행하면서 제작자로서 그의 명성이 한국에 전해지고 합작 대상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그리고 당시 개최되어오던 아시아영화제도 아시아 국가들 간의 합작을 매개하는 장으로 기능했을 수 있다. (질문2) 한·홍 합작이 활성화되던 시기 아시아에서 ‘ 007 시리즈 ’가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고 말씀하셨다. 007 시리즈 열풍을 중심으로 한 당시 첩보 액션의 인기가 황척헌과 한국영화계의 합작에 미친 영향이 궁금하다. (답변) 007 시리즈는 비슷한 시기 여러 문화권에 의해 이용된 영화적 트렌드였다. 세계 각지에서 제작된 작품들이 유사한 그림을 연출하고 싶어 했고, 헬리콥터 액션 신 촬영에 동참한 정형 역시 이 트렌드에 합류하는 배우로 인식되려는 의지를 지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다른 국가들 역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이 시리즈와 유사한 장르에 안착해, 박스오피스 흥행을 보장하고 상업적 성공을 이룩하려고 했으리라고 본다. Q. 정종화 팀장에게 (질문1) 위에서 제시카 교수가 언급하셨듯이, 팀장님께서도 007 시리즈 개봉과 더불어 첩보 액션 장르의 인기가 합작 영화의 장르 설정 및 제작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렇다면 이로부터 영향을 받은 한국형 첩보 액션이 냉전이 진행 중이던 당시 대만 관객으로부터 호응을 얻은 배경을 더욱 자세히 알고 싶다. (답변) 한국에서 개봉한 첫 007 시리즈는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 007 제2탄 – 위기일발 >(테렌스 영, 1963)이었다. 국내 개봉 연도인 1965년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기록했을 정도로 엄청난 흥행 성과를 거뒀고, 당연히 한국 스타일의 첩보 액션 장르가 확립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국에서는 특히 북한을 적대자로 설정하는 반공 기조의 내러티브가 결합되었다. 또한 스파이 출신의 여성과 한국 남성 요원이 연인으로 거듭나는 과정, 이국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스릴 넘치는 모험 등 여러 대목에서 007 시리즈의 흥행 공식을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007 시리즈의 자장 아래 제작된 작품들은 당시까지 제작 및 개봉된 한국영화에서는 관찰되지 않은 특징들을 지니고 있다. 강인하고 생기 넘치는 남성 주인공 이 등장하며, 서구의 007 시리즈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가족’에 대한 강한 집착 을 보여주기도 한다. 대만을 포함한 해외 국가에서 제작된 작품들과 대만 박스오피스에서 경쟁해야 했던 강범구 감독의 관점에서, 007 시리즈 첩보 액션의 이러한 특징들은 대만 관객을 사로잡는 데 유용한 기회로 작용했다. 그는 장르영화에 관한 새로운 미학 을 추구하고, 빠른 편집 을 시도했으며, 현대적이면서도 한국적인 액션 내러티브 를 고안했다. 그 결과, 같은 시기의 대만 장르영화들에 비해 그의 작품이 국제적 감각을 지녔다고 평가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코멘트_패널 체어 김신동 교수) 개인적으로, 007 시리즈는 첩보 액션 스릴러임과 동시에, 세계 각지의 생활 모습을 노출하며 낯선 지역의 풍경을 매혹적인 소재로 소비하는 이국주의(Exoticism)의 관점에서 제작된 관광 영화 (Tourism film)에 가깝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당시 한국영화계 역시 이러한 시각적 즐거움이 전시된 영화를 만들 기회를 찾고 있었던 것 같다. 다만 1960~70년대에는 멀리 위치한 해외 국가에 접근하기가 여의치 않았고, 홍콩을 비롯해 일본의 오사카, 필리핀의 마닐라, 대만 정도가 그들이 지리적 배경으로 선정할 수 있는 ‘외국’의 범위에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홍콩은 그중에서도 한국영화계와 관객 모두가 매력을 느낀 공간이었다. <패널 2> 아시아 영화 속 경계 허물기 일본 교토대학교 김수현 연구원이 이끈 패널로, 동시대 중국어권 영화가 서로 다른 국적이나 지역성, 젠더 등의 ‘경계’를 사유 또는 표현하는 방식을 분석했다. 중국어권 동아시아의 ‘악센트 차이니즈 시네마’: 장률의 <야나가와> 등 트랜스내셔널 영화 제작을 이론화하기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동아시아언어문화학과 박사 수료자 클로이 원셴 장) 클로이 원셴 장(Chloe Wenxian Zhang)은 영화 속에서 관찰되는 억양과 방언이 작품의 형식과 미시적 담론, 그리고 인물들의 자기 정체성 인식의 측면에서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는지를 연구했다. 한국에서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는 재중동포 3세로서 국가나 민족의 경계에 관한 ‘트랜스내셔널 시네마’를 선보였던 장률 감독의 < 야나가와 >(2021)를 텍스트로 선정했다. 장률 감독은 ‘국적’을 주제로 디아스포라 감성을 일깨우는 비주류 독립영화, 하나의 문화에 국한되지 않고 ‘경계를 가로지르는(Border-crossing)’ 영화를 발표한 초국가적 작가(Transnational auteur)로 알려져 있다. 클로이는 장률이 대사의 ‘ 억양(Accent) ’을 사유하는 방식을 통해 본 작품이 색다른 트랜스내셔널 시네마가 될 수 있음을 보였다. <야나가와>에서 주인공 아추안, 그리고 형제 리동과 리천은 보편적이고 이상적인 표준 중국어로 인식된 ‘부동화’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차별을 경험했고, 이에 대한 인물들의 기억은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같은 중국인이더라도 표준 중국어인 부동화를 구사하지 못하는 이는 소외되도록 하는 관습으로서의 ‘내부 타자화(Internal othering)’를, 클로이는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의 ‘ 타자의 단일언어주의(Monolingualism of the Other) ’ 개념을 적용해 설명했다. 데리다는 인간은 오직 한 가지의 언어를 모국어로 습득하지만 이는 본래 ‘타자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타자는 권력을 바탕으로 그의 언어만을 말하도록 교육하거나 강요하고, 이러한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인간은 언어를 배우고 소통하게 된다는 것이다. 베이징 방언을 사용하던 아추안이 부동화를 선호하는 다수로서의 ‘타자’가 지닌 권력에 의해 소외되자, 그가 공동체 안에서 존립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리동이 자신 역시 베이징 방언을 사용하지 않는(타자가 강요한 언어에 따르기로 결심하는) 것처럼 말이다. <야나가와> 중 아추안과 리동 한편, 클로이는 억양이 단순히 누군가의 정체성을 재단하는 지표가 아니라, 그 자체를 실존하는 행위 로 인정할 수 있음을 보였다. 억양이 무언가를 욕망하거나 열망하고, 그에게 친밀감을 표현하는 방식을 가리킨다고 설명한 문화비평가 푸자 라간(Pooja Ragan)을 인용했다. <야나가와>의 후반에 아추안과 일본인 여성이 서로 다른 언어로 대화하지만 상대의 이야기를 ‘느낄’ 수 있다고 표현한 장면과, < 후쿠오카 >(2019)에서 한국인과 중국인(만다린어 구사), 일본인이 단어가 아니라 발화의 톤과 몸짓을 통해 소통하는 모습이 그 예다. 단어가 무너지면, 삶의 방식으로서 실존하는 억양과 몸짓 등이 비로소 언어를 초월해 공명을 일으키고, 장률의 작품에서처럼 아시아 국가 간의 친밀감을 도모하는 데 기여하게 된다. 클로이는 <야나가와>를 내셔널, 트랜스내셔널 시네마라는 개념의 이분법을 바탕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대신 작품이 선택한 ‘억양’의 색다른 의미를 철학적 차원에서 발굴해 장률 작품 세계의 새로운 지평을 소개했다. 내러티브를 매개하고 인물들의 감정을 증폭하는 핵심 요소로서, 그리고 언어로는 극복할 수 없는 서로 다른 화자 간의 장벽을 친밀감으로 허무는 행위 그 자체로서 ‘억양’을 상정한다. 언어의 형태가 아니면서도 영화에서 인물 간 본연의 소통을 돕는 실천적 행위로서 ‘억양’의 지위를 재정립하려는 의미 있는 시도였다. 소속감의 한계를 질문하기: 동시대 한국영화 속 화교 인물 연구 (홍콩대학교 현대언어문화학과 방문 교수 김소혜) 김소혜 교수는 동시대 한국영화가 화교 또는 조선족 출신 인물을 묘사하는 방식을 관찰하고, 한국영화가 인물들의 다양한 정체성을 재현하는 데 여전히 한계를 보임을 지적한다. 화교와 조선족은 내/외국인을 가르는 이분법에 도전하고, 민족적 동질성에 관해 일부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통념을 흔든다. 이렇게 국적이나 민족 인식에 관한 긴장을 논의하는 장이, 2000년대 이후 한국영화를 통해 마련되기 시작했다. 김소혜 교수는 화교를 이주 시점을 기준으로 두 종류 [8] 로 구분하고, 그중에서도 < 고양이를 부탁해 >(정재은, 2001)와 < 극한직업 >(이병헌, 2018), 그리고 < 신세계 >(박훈정, 2012)를 사례로 연구했다. 인천에서 살아가는 젊은 여성 다섯 명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낙후된’ 지역으로 묘사되는 인천은 번화한 서울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동시에 화교 인구가 이주한 공간이라는 이미지도 덧붙여지면서 작품 전반에 ‘소외’의 분위기가 조성된다. 더불어, 인물 다섯 명 중 화교의 후손으로 설정된 일란성 쌍둥이 비류( 이은실 )와 온조( 이은주 )는, 다른 인물들과 달리 개성을 지닌 주체로 비춰지지 않는다. 일란성 쌍둥이라는 인물 설정에서 나타나듯,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개인’으로서의 캐릭터는 그들에게서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인물들 모두가 불확실한 미래를 찾아 떠나고, 그들이 함께 돌보던 고양이가 유일하게 인천에 남은 비류와 온조에게 건네진다는 내러티브 역시, 두 인물이 인천에게 입혀진 ‘소외된 지역’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징함을 암시한다. 비류와 온조는 다른 인물들과 같이 몸소 성장을 경험하는 주체가 아닌 그들의 성장에 기여하는 주변적 인물 로만 그려진다. 2000년대 이후 화교 인물은 특유의 언어적, 문화적 유동성을 바탕으로 한국과 더욱 광범위한 중국어권 사회 사이의 소통을 매개하는 존재로 묘사되는데, 이 과정에서 한국문화에 더욱 잘 동화된 ‘ 안전한 비주류 ’로서의 화교 인물이 형성된다. 배우 진선규 는 매우 폭력적이고 무자비한 인물로 그려진 전작 < 범죄도시 >(강윤성, 2017)에서의 역할과 다르게, <극한직업>에서는 전직 유도 국가대표이자 현직 경찰로 등장하며 유순하고 정직한 이미지를 표방한다. 한국인 여성 장 형사( 이하늬 )와의 로맨스까지 등장하면서 그가 민족적 배경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 내 위치를 점한다는 인식이 강화된다. <신세계>에서 이자성( 이정재 )은 화교 출신 인물이지만 이를 이용해 폭력 조직에 잠입하며 한국 경찰로서의 임무를 수행한다. 반면, 이 작품에서 정청( 황정민 )이 일시적인 폭력 행사를 위해 불러들인 조선족 인물들은 의상과 말투 등에서 한국인과 크게 대비되도록 설정되어있다. 게다가 후반부에는 이자성마저도 끝내 경찰 조직으로부터 버림받은 후 폭력 조직에 동화되고, 한국의 공식적인 사회 구조가 아니라 스스로 진입한 지하세계에서 소속감을 획득한다. 한국영화에서 화교 인물이 배경으로만 소비되지 않고 존재감을 드러낸 사례임을 인정하더라도, <극한직업>과 <신세계>와 같은 동시대 작품은 그들을 ‘한국에 동화되기 쉬운 덜 잔인한 비주류’라는 이미지로 재단한 후에 소환하려고 한다. 김소혜 교수는 이러한 설정이, 화교 인물들을 한국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를 주저하는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라고 주장한다. 화교 인물들에 대한 가시성은 확보되었지만, 한국사회의 다양성 담론의 한계와 더불어 한국영화가 긴 시간 침묵을 강요받은 비주류 공동체를 재현하는 데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경계 위의 여성 동성애: <녹야>와 <블루 송> 속 한·중 퀴어의 조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학교 미디어학과 박사 수료자 앤디 주) 앤디 주(Andy K. Zhu)는 중국 퀴어영화에서 한국과 중국의 퀴어적 조우가 발생하는 맥락을 설명한다. 특히 최근 발표되는 중국 퀴어영화 중 다수가 랴오닝, 지린, 헤이룽장 성을 아우르는 중국 북동부의 ‘ 동북(Dōngběi) ’ 지역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9] 여기에 퀴어 연구를 접목해, 이분법적인 사고로부터 탈피해서 국적과 젠더 등에 관한 복잡한 질문을 사유하는 공간으로서 동북이 지닌 가능성 역시 제안하고, 관련 영화로는 < 녹야 >(한슈아이, 2023)와 <블루 송>(경즈한, 2023)이 언급됐다. 중국의 퀴어영화의 배경으로 동북이 부상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앤디는 영화의 본질이자 단어 자체에도 반영되어있는 ‘ 움직임 (Kino)’의 개념을 퀴어에 적용했다. 그는 다수의 퀴어영화가 인물들의 퀴어한 욕망을 바탕으로 발생하는 국경을 초월한 ‘움직임’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퀴어영화 연구에 필요한 방법론으로 ‘ 키노정치학 (Kinopolitics)’을 선택한다. 나아가, 두 작품에서 특히 돋보이는 퀴어한 인물들의 움직임을 규정하는 개념으로 “ 경계 위의 여성 동성애 (Bordering lesbianism)”를 소개했다. 국가의 중심지로부터 소외된 지역에서 역시 공동체로부터 소외된 여성 퀴어 인물들이 관계를 맺고 특유의 움직임을 실천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녹야> 중 중국인이지만 한국으로 이주해 공항에서 세관 직원으로 근무하는 진샤(판빙빙)는 가정폭력과 불안정한 사회적 위치로 고통 받던 중에 초록머리 여자( 이주영 )를 만난다. 두 사람이 공항 보안 검색 중 처음 만나게 되는 장면에서, 이방인이자 이주 노동자인 진샤에게 한국인인 초록머리 여자는 그를 유혹하듯이 미소를 지으며 가깝게 다가온다. 퀴어적 접촉의 시도 이후, 두 인물은 서로를 위협하는 존재들을 제거함으로써 국경, 젠더, 권력의 경계를 넘나들며 폭력에 저항하고 연대하는 움직임을 함께 실천한다. 작품에서 인천·서울은 공동체에 소속되지 못한 이주 노동자와, 마약 밀매에 연루되며 불안정한 삶을 지속하는 한국인이 동시에 머무는, 역시나 역동성이 가득한 공간으로 표현된다. <녹야> 중 <블루 송>에서는 북한과 중국의 접경 지역인 하얼빈에 거주하며 서로 다른 민족적 정체성의 공존으로 인해 혼란을 겪는 소녀 루시엔이, 조선족 소녀 밍메이를 만나며 퀴어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극중 루시엔은 교내 공연을 준비하며 한복을 입어야 하는 장면에서 그가 입을 차례가 되자 여성용 한복이 모자라 남성용 한복을 입게 되고, 한복 자체의 질감에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한국의 민족성을 상징하는 한복에 익숙하지 않은 것과 여성용 한복에 접근하지 않는 설정은, 국적과 젠더의 측면에서 루시엔의 정체성이 고정되어있지 않음을 드러낸다. 또한 루시엔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사진관에서 만나 그와의 관계를 이어나가는 밍메이는 하얼빈에서 조선족이 머무는 공간으로 루시엔을 안내하며 또 다른 민족성의 경험을 유도하기도 한다. 두 작품은 퀴어적 인물에 대해 널리 각인된 이미지를 재확인하지 않는다. 대신 장르적 혼종성(네오 누아르인 <녹야>, 성장과 멜로를 섞은 <블루 송>)과 언어와 의복의 뒤섞임, 키노정치학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역동적 공간에서 한국인과 중국인이 조우하는 장면을 짚으며 이들 작품의 ‘악센트 시네마(Accent cinema)’로서의 면모를 강조한다. 특히 동북과 한국, 북한의 경계에서 퀴어한 관계가 형성되는 과정을 설명함으로써 퀴어영화를 지리적 공간과 연결했다는 점이 독특했다. 이러한 지리적 경계가 지닌 영화적 가능성을 향후 중국어권 퀴어영화에 대한 연구에서 주목할 주제로 남겨두기도 했다. * 토론 * 패널 2의 발표자 3인이 발표한 후, 홍콩 링난대학교 디지털아트·문화산업학부의 박지희 조교수가 아래와 같이 질문했고, 발표자들이 답변했다. Q. 클로이 원셴 장에게 (질문1) <야나가와>의 배경이 되는 일본 후쿠오카현의 야나가와시는 국제적으로 활동한 일본의 예술가 오노 요코의 고향이자 일제강점기 조선의 윤동주 시인이 생을 마감한 지역으로, 제2차 세계대전과 제국주의 역사의 상흔이 남아있는 장소 이다. 이를 배경으로 극중 인물들이 중국어의 암묵적 위계와 그로 인한 차별, 차별이 낳은 상처와 분투한다는 설정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까? 이러한 배경 설정이, 클로이가 언급한 ‘악센트 시네마’가 경계를 가로지르는 작품이 되는 데 기여하는 것일까? (답변) 시간 관계상 장률이 야나가와를 식민지의 상흔을 간직한 역사적 공간으로서 어떻게 사유해냈는지를 다루지 못했다. 오노 요코와 윤동주 시인에 관한 이야기를 비롯해 역사적 또는 언어학적으로 참고할 만한 자료들이 많았다. 주목할 점은, 장률의 작품은 언어학적, 영화적, 역사적으로 풍부한 의미를 지닌 기호들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특히 ‘억양(악센트)’은 그러한 측면을 이해할 수 있는 이론적·역사적 핵심 주제가 되어준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꼭 적용하고자 하는 개념이다. Q. 김소혜 교수에게 (질문1) 한국영화에서 화교 인물들은 말씀해주신 대로 배경의 일부 또는 단일민족주의에 관한 고정관념을 연상시키는 객체로 소비되기도 한다. 하지만 ‘ 장르영화 ’의 문법 속에서 이들은 또 다른 종류의 매력이나 잠재력 을 발휘하기도 한다. 예시로 드신 작품들에서도 이러한 측면을 발견하셨을지 궁금하다. (답변) 본 연구에서는 화교 인물들이 그간 작품의 주요 인물의 뒤편으로 물러서는 존재로 묘사되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말씀해주신 대로 그들은 한국의 역사와 지역성을 깨닫는 기회를 마련함으로써 다른 종류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성장 장르라고 할 수 있는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비류와 온조를 일란성 쌍둥이로 설정해 서로를 거울에 비춘 대칭적 이미지로 제시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이주의 역사와 급변하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성찰할 수 있도록 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신세계>에서 역시 화교에 대한 편견을 답습하는 장면이 많이 발견되지만, 이자성의 경우 화교 출신이자 한국 경찰로 근무하는 양가적 정체성을 지닌 인물로 설정되어, 갱스터 누아르·언더커버 장르의 문법 안에서 모종의 자율성(또는 모호성)을 띤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기존의 경향을 전복할 만큼의 위력을 지녔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추후 화교 인물의 재현을 시도한 다른 작품들의 사례에서 지속적으로 확인해봐야 할 것 같다. <신세계> 중 *** [1] 1963년 10월 7일 발생한 주홍칭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도쿄에서 주홍칭(周洪景)이라는 인물이 정치적 망명을 위해 대만 입국 허가를 요청했지만 일본 정부가 그를 중국 공산당으로 보내면서 대만과 일본 사이의 외교적 긴장이 발생했다. [2] 이는 다른 작품에서 여성 인물에 대한 한국인 남성 인물의 기대로도 표출된 바 있다. < 비련 >(정창화, 1967)에서 양일환( 남궁원 )이 한국 여성의 옷은 아름답고, 상대 여성에게 잘 어울릴 것이라고 언급하거나, < 조용한 이별 >(정창화, 1967)에서 이상현( 신성일 )이 극중 유학생인 정예화(정형)와 창덕궁에서 만나 한복을 입도록 하고 시부모님께 절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장면이 예가 된다. [3] 하지만 모친은 현재 다른 남성과 결혼해 홍콩에 정착했는데, 이렇게 중년 여성 인물은 현 가정의 평화를 추구하기 위해 다른 국적의 남성과 과거에 맺은 연인 관계를 숨기는 경향이 짙다. < 나는 비밀이 있다 >(김용덕, 1963)에서도, 차경녀( 주증녀 )는 홍콩에서 결혼한 적이 있지만 이내 한국으로 넘어와 한국인 남성과 결혼하며 홍콩에서 낳은 자녀의 존재 역시 부정한다. [4] Doane, M.A., Film and the masquerade: Theorising the female spectator , Screen, 1982. [5] 이영재, 『아시아적 신체』, 소명출판, 2019. [6] 대표적으로 < 대폭군 >(임원식, 1966)이 있다. 한국어 버전에는 최은희가, 중국어 버전에는 리리화가 출연했다. 컬러로 촬영되었으며 홍콩 쇼브라더스 스튜디오와 서울 교외 지역 모두를 로케이션으로 하여 약 25,000여 명이 촬영에 임했다. 제작에는 오백만 홍콩 달러라는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어, 양국 영화산업의 역량을 적극적으로 동원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이외에도 < 보은의 구름다리 >(최경옥, 1963), < 달기 >(최인현, 악풍, 1964) 등 신필름과 쇼브라더스가 합작한 작품들도 여기에 해당한다. [7] 이외에도 < 꿈 >(신상옥, 1955)은 전후 한국 여성이 맞닥뜨린 사회적 제약을 조신( 황남 )과 달례( 최은희 )의 금기시된 로맨스, 그리고 클로즈업과 몽타주 등의 장치를 통해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승려와 여성 간의 사랑과 성적 욕망을 다루며 사회적 금기에 도전한 1950년대 영화적 실험 사례로 꼽히기도 한다. [8]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중국 산둥 성에서 조선으로 이주한 중국인을 ‘구화교’로, 중국이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1992년에 한국과 수교를 맺은 뒤 한국으로 대거 이주한 한국계 민족, 즉 조선족을 ‘신화교’로 칭했다. [9] 동북은 1990년대부터 국영 공장들의 폐쇄로 중국에서 쇠퇴와 폐허의 상징이 됐지만, 앤디는 영화를 통해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수십년간 중국사회의 변천사를 반추하게 하는 공간으로 이 지역을 재조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