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와 다이아몬드
- 감독
- 안제이 바이다
- 제작년도
- 1958
- 출연
- 이와 크리제브스카, 이그나시 마초브스키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이미지 클릭 시 유튜브 인터뷰 영상으로 이동) * 위 이미지와 영상에 표기된 참여자의 직급과 부서는 인터뷰 일자 기준이며, 현재와 다를 수 있습니다. 국내 유일의 영상 아카이브 기관 한국영상자료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영화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수집, 보존, 서비스하는 영상 아카이빙 전문기관이다. 영상자료원은 자료의 수집 및 보존뿐 아니라 일반 시민이 영상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다양한 대민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다양한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영화관인 ‘ 시네마테크KOFA ’에서는 국내외 고전, 예술, 독립영화를 상영하고 있으며, ‘ 한국영화박물관 ’에서는 한국영화의 지난 역사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전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 영상도서관 ’에서는 국내 최대 규모의 영화 자료들을 열람할 수 있다. 그 외 연구 및 발간 사업, 소외 지역 및 시설을 찾아가 영화를 상영하는 ‘ 찾아가는 영화관 ’ 사업, DB 구축 및 한국고전영화 VOD 등 다양한 온라인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2024년 현재 상암본원은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 5개 층을 운영하고 있으며(주차공간 제외) 지하 1층에 시네마테크KOFA 1, 2, 3관, 1층에 한국영화박물관과 교육실, 2층에 영상도서관, 3층에 수장고, 4층에 사무실이 위치해 있다. 공용공간을 합쳐 대략 3,000평(9,912.11㎡) 규모이다. 2024년 3월 현재 보유자료는 영화 22,449편, 시나리오, 스틸사진, 포스터 등 관련 자료 1,350,028건으로 방대한 한국영화·영상 관련 자료를 보유하고 있는 아카이빙 기관이라 할 수 있다. 지하 1층 영화관 시네마테크KOFA 1관 내부 전경 한국영상자료원의 정원은 96명이며, 조직은 원장과 사무국장, 이사회, 감사 외에 8개의 팀이 있는데, 전략기획팀, 경영관리팀, 수집팀, 보존관리팀, 디지털복원팀, 학예연구팀, 정보자원팀, 프로그램팀이다. 이러한 팀들의 명칭만으로도 자료원 전체 역할과 임무를 짐작해 볼 수 있다. 한국영상자료원 본원은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igtal Media City, DMC) 내 위치하고 있다(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 400). 디지털미디어시티는 서울시 주관으로 2000년에 기본 계획을 수립해 2004년 본격적으로 조성 사업이 시행된 첨단 콘텐츠 생산 및 유통 단지다. 짧은 역사에 비해 빠르게 지상파 및 종편 방송사, 제작사 등 미디어 콘텐츠 분야의 주요 기업·기관 등이 입주하며 영상 제작·유통의 중심지로서 기능하고 있어,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중요한 영상미디어 생산지로 성장하였다. 한국영상자료원이 자리한 서울경제진흥원 외에 정보통신산업진흥원에서 운영하는 누리꿈스퀘어와 문화방송(MBC) 등이 인접해 있다. 50주년을 맞이하다 한국영상자료원은 1974년 1월 18일 서울 중구 남산동 3가 34-5, 영화진흥공사 사옥 내에 ‘재단법인 한국필름보관소’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 올해 50주년을 맞이한 셈이다. 냉전 경쟁이 심했던 박정희 정권기, 북한 국가영화문헌고가 국제영상자료원연맹(FIAF)에 가입하자 급하게 추진된 결과였다. 그러다 보니 초기 한국영상자료원은 제대로 된 조직과 공간, 설비를 갖추지 못했고, 1970년대 내내 제한된 시설과 인력으로 최소한의 업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아카이브 기관과 진흥기관이 분리되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FIAF가 정회원의 조건으로 공간과 조직의 독립을 요구하면서, 1980년대 중반에서야 영화진흥공사로부터 조직적으로 독립하였고, 그 결과 1985년에 FIAF 정회원에 가입할 수 있었다. 1990년 9월 15일 예술의전당으로 이전하며 독자적인 공간을 갖추게 되었고, 공간의 이동과 함께 1991년 9월 1일 ‘재단법인 한국영상자료원’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서초동 예술의전당 시절 한국영상자료원 건물 입구 예술의전당 내 한국영상자료원의 공간은 대략 520평 남짓이었다. 총 520평의 한국필름보관소 공간이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필름 보관고, 영화 시사실, 영상 자료실, 보존 처리 공간, 사무실 등 남산동 영화진흥공사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는 독자적인 공간 분할과 체제를 갖췄다. 이 공간을 바탕으로 한국필름보관소는 새롭게 출발할 수 있게 됐다. 1994년 1월부터 영상자료 보존에 대한 국고지원이 시작되었고 1996년 7월부터 국내영화 필름 등의 제출제도가 시행되었으며, 2002년 6월 10일 영화진흥법 제24조의3에 법적인 설립 근거가 마련되어 현재의 형태인 ‘특수법인 한국영상자료원’으로 안착했다. 2007년 5월 16일 현재 위치인 상암동 청사(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 400)로 이전하였고, 그해 6월 1일 영상도서관을 개관했다. 이듬해인 2008년 5월 9일, 시네마테크KOFA와 한국영화박물관을 공식 개관했다. 별도 청사의 마련과 함께 한국영상자료원의 운영 역시 본격화된다. 2016년 5월 19일 영상자료 보존기술 향상과 이원 보존을 위해 파주보존센터를 개관하여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2층 영상도서관 내부 영상문화를 만끽할 수 있는 공간들 층별 구조를 중심으로 공간과 역할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지하 1층은 시네마테크KOFA라 이름 붙은 3개의 극장(1관, 2관, 3관)이 있다. 각각 321석, 150석, 30-40석(가변적)의 좌석을 갖추고 있는데, 최근 3관에서는 상영은 이루어지지 않으며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 및 성인 강좌용으로 활용된다. 1관과 2관에서는 상영프로그램이 진행되며, 영화의 예상 관객에 따라 1, 2관이 구분되어 운영된다. 대개 국내외 고전 및 예술영화, 독립영화 등이 상영된다. 1관과 2관을 합쳐 1일 2회 상영(오후 14~15시, 오후 18~19시)을 표준으로 하며, 경우에 따라 특별 편성되기도 한다. 무료로 운영되며, 일요일과 월요일은 휴무이다. 1층 영화박물관 상설전시실 내부 1층에는 박물관과 교육실이 위치해 있다. 대략 300평 내외의 공간으로 상설기획 전시공간 755.12㎡(229평), 교육실 77.75㎡(24평), 수장고 및 로비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실은 기획전 공간과 상설전 공간으로 구분된다. 상설전은 한국영화사를 연대기로 볼 수 있는 “한국영화를 보다” 코너와, 초기영화의 역사를 체험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초기영화로의 초대” 코너로 구성된다. 기획전시는 주로 한국영화의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1년에 2회 내외로 진행된다. 매주 일요일과 월요일은 휴무이며, 운영시간은 10:30~19:00이다. 전시는 학예연구팀이 담당한다. 2층에는 영상도서관 등이 위치하고 있다. 영상도서관은 국내외 영화 관련 서적, DVD 및 블루레이, 음반 등을 열람할 수 있는 공간이다. 또한 자체 변환 VOD, 시나리오, 검열서류 등 한국영상자료원이 보유하고 있는 자료를 온라인으로 열람할 수 있다. 1인 감상석 31석, 2인석 6석, 다인실(6인실, 8인실 각 1)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2층에는 그 외에도 영상자료원의 디지털 보존고 및 디지털 아카이빙실, 카탈로깅실, 전산실, 필름 검색실 등이 위치한다. 3층에는 수장고가 위치한다. 영화필름 보관실 5실이 위치하고 있다. 2007년 이전 당시 3층 전부와 4층의 일부가 필름 및 비필름 수장고로 활용되었으나, 2016년 파주보존센터 건립 이후 대부분의 자료는 파주로 이전하고 영화필름 보관실만 위치하고 있다. 상암에는 주로 복사본인 활용용 필름들이, 파주에는 원본(네거티브) 필름을 포함한 유일본 등 보존용 필름들이 보존되어, 같은 자료를 다른 곳에 보존하는 이원 보존 체제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4층에는 사무실 및 회의실 등이 위치하고 있다. 3층 필름 보존실 내부 공간 및 운영 개요 1. 위치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400 한국영상자료원 2. 설립일 : 1974년 1월 18일(재단법인 한국필름보관소) 3. 대표자 : 김홍준 4. 규모 : 연면적 9,912.11㎡ / 지하1층-지상4층 5. 공간 구성 1) 지하1층: 시네마테크KOFA 1, 2, 3관 및 매표소, 로비, 전시공간 - 1관 321석(일반석 317석, 장애인석 4석) / 2관 150석(일반석 148석, 장애인석 2석) - 3관 30-40석(교육장소로 이용 중) 2) 1층: 한국영화박물관 및 교육실 3) 2층: 영상도서관 및 수장고 외 - 영상도서관: 1인 감상석 31석, 2인석 6석, 다인실(6인), 다인실(8인) - 수장고(디지털 보존고) / 필름 검색실 / 디지털 아카이빙실 / D시네마 검수실 - 카탈로깅실 / 전산실 4) 3층: 수장고(필름 보존고 / 특수자료 보존실) 5) 4층: 사무국 6. 운영시간 1) 시네마테크KOFA: 화요일-토요일 첫 회 상영 1시간 전부터 마지막 회 종영 시각까지 2) 한국영화박물관: 화요일-토요일 10:30-19:00 / 영상도서관: 화요일-토요일 10:00-19:00 7. 입장료 : 없음 8. 조직 구성: 1사무국 2팀 9. 정원 : 96명 글/진행 : 김문경 사진 : 허 성 취재 일자 : 2023년 9월 18일
'용산’이라는 사건. 2009년 1월 20일 용산 재개발 지역 철거민들이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남일당 옥상에 망루를 짓고 농성을 시작한다. 그러나 농성 시작 25시간 만에 경찰특공대에 의한 강제진압이 이뤄지고 이 과정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사망한다. MB 정권 초반에 발생한 이 사건은 사건 자체의 참혹성과 비극성, 폭력성으로 인해 정권의 명줄을 뒤흔들 거대한 스캔들이 되었고 그 폭발력을 감지한 권력은 정권의 안위를 도모하고자 사법부를 비롯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사건을 은폐, 조작한다. 그 결과 사건의 본말은 전도되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채 정권의 의도에 충실한 사법부의 일방적 판결문 낭독으로 사건은 종결처리된다. 그러나 사법부의 판결을 액면 그대로 믿는 이는 거의 없었다. 이 사건은 사법적으로는 종결되었지만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여전히 미해결인 사건이며 아무리 긴 시간이 흐르더라도 끝까지 파헤쳐 역사의 법정에 세워야할 사건으로 남아 있다. 그것이 우리가 흔히 `용산참사`라고 부르는 사건이다. 도대체 그날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정권은 무엇이 그리 두려웠기에 수천 쪽에 이르는 초기 수사기록을 감추고 현장에 있었던 카메라들 가운데 사건의 핵심에 가장 깊숙이 접근한 경찰 채증조의 촬영영상 일부를 삭제하면서까지 애초에 기록은 없었다고 발뺌하려 했을까? 사실 그들이 `용산`이라는 사건에 대한 기억을 어떤 식으로 만들고자 했는지는 명백하다. 사법부의 판결문에 그 모든 것이 담겨있다. 그 노골적인 의도가 지나치게 뻔뻔하기 때문에, 오히려 중요한 것은 정권이 그들의 `상대적 진실`을 주장하기 위해 억압한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무엇이며 정권이 만들어낸 공식기억에 저항하는 기억을 만들려는 이들은 어떤 노력을 해 왔는가,라는 점일 것이다. 실로 많은 이들이 그 대열에 동참했다. 남일당과 함께 철거된 진실을 알리기위해 용산의 찬 거리에서 긴박하게 돌려대던 그 많은 카메라들. 길거리 방송국, 개인방송을 자처한 수많은 개인들과 그들의 카메라가 기록한 파편적 영상들. 최근 몇년간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들 가운데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많이 다뤄진 것이 `용산`이라는 점에서 이 사건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으며 이 사건을 둘러싼 기억 투쟁이 얼마나 치열하게 전개되어 왔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사건을 기록한 수많은 영상들 가운데 최종적인 작품의 형태로 세상에 나온 몇몇 다큐멘터리들이 있는데 이 영화들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화염에 휩싸인 남일당 망루와 진압작전을 수행하는 경찰의 행위를 기록한 장면이 그것이다. 사건의 당사자들 태반이 사망하고 유력한 증인들과의 만남이 제한된 상황에서 현장에서 촬영된 이 생생한 기록물들은 그날의 진실에 접근하는 중요한 증거물로서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현장 접근이 제한된 상황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촬영된 수많은 영상들은 실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진실도 말해주지 않는다. 케네디 암살을 기록한 저 유명한 ‘자푸르더 필름’이 모든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는 텅 빈 기표와 같다는 평가를 받듯이, 이날의 참사를 기록한 동영상 자체는(material) 아무런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 그것은 표피적 사실을 보여줄 수는 있지만 표면 너머 사건의 실체, 진실까지 보여주지는 않는다. 이 가치중립적인 이미지에 구체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현미경적이고 망원경적인 시각을 동원해 영상을 해석하는 창작자의 세계관과 미학적 전략이다. 창작자의 전략 속에서 이 동영상은 비로소 의미를 갖고 발언하기 시작하며 동일한 시각적 기록도 어떤 관점에서 제시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발생시킨다. 김일란 , 홍지유 감독의 < 두 개의 문 >은 용산이라는 트라우마적 사건을 관객에게 지극히 주관적으로 체험시키는 전략을 택한다. 영화는 사건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고 관객에게 조목조목 설명하고 설득하는 방식을 포기한다. 대신 참사의 한 복판, 검붉은 화염에 휩싸인 남일당 망루를 향해 관객을 끌어들여 그 화마의 현장 속에 푹 담가버린다.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이들의 목소리를 재연하고 그날을 기록한 영상을 수시로 인용하고 조립하는 전략을 통해 우리는 집요하게 참사의 현장 속으로 끌려들어간다. 그것은 참으로 끈질기고 집요한 반복이다. 에롤 모리스의 < 가늘고 푸른 선 >을 연상시키는 음울한 음악과 반복되는 화염의 이미지는 끊임없이 우리를 2009년 1월20일 7시 6분, 그리고 7시20분에 발생한 두 차례의 화재현장, 그 생지옥으로 초대한다. 가슴에 돌을 얹은듯 호흡마저 곤란해지는 관람의 악몽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90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우리는 속절없이 생지옥의 현장에 빨려 들어가 그 시간을 온전히 견뎌내야 한다. 트라우마의 속살을 향해 관객을 밀어넣는 집요한 반복회귀 운동. 이 쉼없는 재귀적 운동을 통해 감독이 ‘용산’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영화를 보는 관객 모두, 나아가 이 사회의 구성원 어느 누구도 이 사건에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논평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것. 우리가 ‘용산’이라는 사태를 이해하는 유일한 방식은 희생자들이 겪었을 그날의 고통을 고스란히 체험함으로써 이 사건을 나의 것으로 체화하고 남일당과 함께 법의 이름으로 땅 속에 파묻혀버린 진실을 발굴하는 책무를 공유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설명과 이해가 아니라 고통의 체험과 공유이다. 이 영화는 지극히 주관적이며 편파적이다. 이 주관성과 편파성은 궁극적으로 관객에게 질문의 형태로 돌아온다. 당신은 이 억압된 진실에 어떻게 답하겠는가? 영화는 중립적인 논평과 입장 표명을 거부한다. 진실은 처음부터 명백했기 때문이다. 그 진실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느끼고 행동하라. 그리고 당신 역시 역사의 법정에서 한 역할을 하라. 그때까지는 어느 누구도 이 범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