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속에든 바퀴벌레
- 감독
- 조경환
- 제작년도
- 1980
강철중은 나쁜 형사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마약상에게 마약을 빼앗느라 부어오른 강철중의 얼굴이 보이고, 부패 혐의로 내사를 받던 파트너는 권총으로 자살한다. < 마이 뉴 파트너 >를 인용한 < 투 캅스 >의 캐릭터와도 비슷하지만 이건 개과천선의 이야기가 아니다. 개인의 폭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지만 < 더티 해리 >의 캘러핸 형사도 아니다. 아시안 게임에서 은메달을 받아 경사로 특채된 권투 선수 출신의 강철중은 자신의 욕망에 따라, 직감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는 야수 같은 존재다. 그가 속한 경찰 조직은 단지 그에게 무기를 쥐여주는 수단일 뿐, 경찰의 ‘의무와 책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악당들에게 적당히 돈을 뜯고, 보통 사람들에게 적당히 뇌물도 받아가며 살아간다. 그런데 시대가 걸린다. 제목을 따온 할리우드 영화 < 공공의 적 Public Enemy >의 악당은 자본주의 구조의 이면에서 자신의 왕국을 세워 가는 갱스터였지만, 강우석 이 지목하는 21세기 벽두의 ‘공공의 적’은 다국적 금융자본의 첨병으로 한국사회, 경제를 이끌어가는 엘리트 펀드 매니저다. 강우석의 <공공의 적>이 개봉한 것은, 2002년 월드컵으로 한국이 들썩이기 직전인 1월이었다. 1997년 IMF 사태로 한국사회가 요동치고, 취업과 고용을 비롯한 모든 것이 불안정해졌다. 2001년에는 9.11. 테러로 세상의 모든 것이 뒤집어졌다. 21세기는 모든 것이 불투명하고 언제 어디서건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극도의 위험사회였다. 그리고 그 불안과 두려움을 이용하여 열심히 돈을 벌어들이는 누군가가 있었다. 강우석 은 언제나 ‘먹물’들을 싫어했다. 잘난 척하는 지배계급, 고위관료와 지식인들을 혐오했다. 강우석은 1997년에 < 주유소 습격사건 >을 제작했다. 무정부주의적인 소란과 반항. 어디에도 돌파구는 보이지 않고, 그럴듯한 미사여구로 장식하기는 힘들었지만 날것의 분노가 있었다. 들끓는 에너지를 감지하는 힘이 당시의 강우석에게는 있었다. < 공공의 적 >에서 강우석은, 이성재 가 연기한 조규환을 ‘공공의 적’으로 지목한다. 승승장구하던 펀드 매니저 조경환은 철저한 자본주의형 인간이다. 위기에 몰린 회사를 냉정하게 부도 처리하여 사장을 자살로 내몰고, 자신을 화나게 한 택시기사는 벽돌로 때려죽인다. 한 달만 기다리면 수백억 원으로 불어날 투자금을, 철거 위기에 몰린 고아원을 돕겠다며 빼 오라는 아버지를 조규환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아니 용서할 수 없다. 그래서 조규환은 태연하게 부모를 죽인다.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잔인하게 내쳐버린다. 부모를 죽인 날 밤, 강철중을 만나기 전까지는. 조규환은 누가 봐도 악인이다. 그런 인간을 처단, 응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강우석 은 반대편에 강철중을 놓는다. 강철중은 착한 사람이 아니다. 도덕적 인간이 아니고,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의지도 없다. 강철중은 세상이 악의 구렁텅이이고, 자신도 그 틈에서 얼렁뚱땅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강우석은, 그런 정도는 상관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조규환은 강철중의 악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악을 행하는 인간이다. 적당한 악인인 강철중은 비로소 ‘공공의 적’을 보게 된다. 아벨 페라라의 < 나쁜 경찰 >에서의 형사는 수녀를 강간하고 강도질을 하는 범인들을 추적하며, 그들이 단지 세상의 악에 물들어버린 평범한 소년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좌절에 빠지고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악인이 회개하고 선을 행하거나, 스스로 파멸해 버리는 것은 일반적인 공식이다. 하지만 강철중은 단순한 인간이다. 조규환의 악행을 알고, 강철중은 술집에서 후배 형사에게 말한다. 인간이, 그래도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돈 좀 뺏을 수도 있고, 몇 대 팰 수는 있지만, 조규환처럼 ‘그런 짓’을 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세상이 그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조규환이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어떤 역할인지 그런 것에는 일절 관심이 없다. 말해도 모른다. 부모를 죽인 냉혈한과의 싸움이라는 소재는 코미디보다는 서늘한 누아르에 적합해 보이지만 강우석 은 < 마누라 죽이기 >처럼 스릴러에 어울릴법한 소재를, 코미디로 능청맞게 뽑아내는 솜씨가 있다. < 공공의 적 >은 권력과 시스템 자체에 진지하고 날 선 비판을 가하지는 않는다. 그냥 강철중처럼 치받아버린다. 강철중은 편의에 따라 증거를 조작하고, 시스템을 조롱한다. 그건 시스템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엿 먹어라’ 외치고는 도망쳐버리는 것이다. 강철중은 ‘공공의 적’, 인간이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한 자들을 응징한다. ‘사회 질서 수호’ 같은 데에는 추호의 관심도 없다.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한 자들만 골라내서 반 죽여 버린다. ‘공공의 적’을 발견한 강철중은 이 사회를 이끌어간다는 ‘엘리트’를 무참하게 박살 낸다. 결코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주먹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지만 그 통쾌함과 후련함으로 < 공공의 적 >은 관객을 흥분시킨다. 즐겁게 만든다. 그게 상업영화의 힘이다.
나는 상상해본다. 만약 4.19 민주화 혁명이 5.16의 군홧발에 짓밟히지 않고 순리대로 흘러왔다면 1970년대는 한국영화의 지독한 암흑기가 아니라 전성기가 되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만약 그랬다면 1970년대는 민주화의 경험을 했던 4.19 세대들의 의식과 기타와 청바지로 상징되는 청년문화가 만나 한국영화는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하길종 은 이런 암울한 시기에 한국영화계에 등장했다. 그리고 그의 주위로 패기 넘치는 젊은 영화인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영상시대라는 이름을 내걸고 패악적인 한국의 제도권 아래에서 영화를 통해 파문을 일으키고자 했다. 그 도전이 성공이었는지 실패였는지에 대한 평가는 이 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다만 나는 그 동인의 한사람이었던 홍파 감독의 77년 작품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를 보면서 그들의 위풍당당함이 어떻게 큰 불꽃을 만들지 못하고 사라져야만 했는지 나름대로 짐작해 보고 안타까워할 뿐이다. 한국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한국적이라 할 만한 것들을 찾아나서는 여정일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와 주체적 이미지를 찾고자 하는 노력이야말로 이 땅에서 영화예술을 한다는 사람들의 사명이었을 것이고, 영상시대 동인들도 그 부분을 고민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이 고민했을 법한 한국적 이야기와 이미지를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와 함께 하길종 감독이 비슷한 시기에 발표한 < 한네의 승천 >을 보며 어렴풋이 짐작해 본다. 이 두 편의 영화는 전통적으로 한국적 스토리라 이야기 되어온 한恨이라는 정서를 밑바탕에 두고, 불교의 윤회설을 끌고 들어온다.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는 과거와 현재라는, 두 개의 이어지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과거의 이야기는 승려가 된 남편 광덕을 둔 아내의 이야기 - 그녀가 아내인지는 영화에서 설명하지 않는다. 단지 내가 스토리를 통해 유추한 것이다- 로 아내는 성욕을 억제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지만 탈을 쓰고 침입한 남자에게 강간을 당하고 절벽에서 떨어져 자살한다는 이야기다. 이 스토리는 현대에 와서 그들의 환생이라 할 대학생 커플 엄장우와 현진 커플과 중첩된다. 탈춤을 추는 장우는 갑자기 탈을 쓰고 춤을 추는 것을 거부한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불안감과 환영에 시달린다. 장우는 탈을 보면서 기이할 정도로 불안정함을 느끼는데, 결국 그 원인은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죄의식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는다. 과거 비극의 진원지였던 안동 하회마을에서 다시 만나 장우와 현진은 과거에 있었던 사건과 똑같은 방식으로 강간사건을 겪는다. 과거 광덕이 아내의 강간과 죽음을 막지 못했듯, 현재에서 장우는 애인이 강간당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 결국 이 영화도 < 한네의 승천 >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비극적 상황을 순환시켜 패배주의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가하고 불편해 할 때 쯤, 영화는 작은 반전을 준비한다. 나는 장우와 현진의 미래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윽 몇 초 끼워 넣은 장면이 참 좋았다. 이 몇 초가 관객을 편안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하길종 감독이 <한네의 승천>에서 끊어지지 않고 윤회를 통해 반복되는 비극을 그리며 끝나지 않는 고통을 강조하고 있는데 비해, 홍파 감독은 강간범의 체포, 장우와 현진의 결혼으로 마무리 한다는 점에서 이런 결말이 더 현대적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결국 장우의 죄의식은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불행할 수밖에 없었던 모든 여성들에 대한 죄의식이기도 하겠고, 좀 더 의미를 확장하자면 당시 유신 독재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던 민중에 대한 죄의식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가 할 수 있는 일이 알레고리를 동원한 우회적 사회비판일 수밖에 없을 때 느껴지는 영화작가의 자괴감도 동시에 느껴진다. 그래서 현생의 에피소드에서 절벽에서 떨어지는 사람의 목소리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의 목소리였을 것이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극중 인물인 장우든, 감독의 것이든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것은 유신과 독재를 막지 못한 모든 남자들 혹은 지식인들의 목소리이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더더기처럼 붙어있는 마지막 시퀀스, 뜬금없이 삽입되는 “회개하시오”라는 기독교적 외침을 이해 못할 것도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불친절한 것은 어쩔수가 없다. 민속과 윤회를 통해 한국적 스토리와 영상미에 대한 고민은 분명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전생과 현생을 오가는 편집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끊임없이 몰입을 방해하는 편이다. 이러한 시도가 분명 상업적 헐리우드 영화 스타일에 대한 대항마로서 끌고 왔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적절하게 절제되지 못하고 지나치게 과해 지다보니 오히려 혼란만 부축이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아쉽게도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는 외화 쿼터를 따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로 전락해 창고에 처박혀 버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개봉되었다는 기록이 없다. 대중과 만나지 못한 한국적 영상 혹은 소수의 대중만이 본 한국적 영상미는 관객들의 취향을 변화시키지 목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영화가 보여주는 도전과 오류를 보면서 영상시대가 혁명이 되지 못했던 원인을 관객에 대한 배려부족에서도 찾아보게 된다. 하지만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오듯, 영상시대 동인들의 이러한 도전정신은 시나브로 한국영화계에 단비가 되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비록 뒤집어엎지는 못했지만 그 영향력은 서서히 깃들었다. 이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한국적 스타일은 이듬해 임권택 감독이 <족보>에서 좀 더 섬세하게 구현한다. 영상시대 동인이든 아니든 의식 있는 동시대 영화인들의 노력이 결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영상시대의 끝자락에 나온 홍파 감독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의 실패가 사랑스럽다. 김윤택 유정희 윤영실 장두이 감독 홍파 각본 이원영 촬영 권재홍 음악 황병기 미술 조경환 편집 장길상 1977년 100분 칼라 판매원 (주)일진프로덕션 영상도서관 배가번호 0197
1980년대 이른바 ‘에로영화’의 전성기, 오직 힘 하나 뿐인 강한 남자의 대명사가 이대근 이었다면 서구 에로영화를 연상시키는 부드러운 남자는 바로 짙은 눈썹의 마흥식 이었다. 임성민 이나 이영하 처럼 종종 대종상도 수상하는 주류영화계의 미남자는 아니었지만, 일단 에로영화에 출연하는 횟수가 훨씬 많았고 ‘고개 숙인 남자’로서의 연기력 또한 뛰어났다. 임성민과는 < 탄드라의 불 >(1984), 이영하와는 < 여자가 두 번 화장할 때 >(1984)에 함께 출연한 적 있다. 아무튼 그들과 비교해 감독이나 선배들로부터 ‘마군’이라 불렸던 그는 그 성 때문인지 어딘가 ‘마성’의 매력을 지닌 배우처럼 다가왔다. 1988년 88올림픽이 열리기 직전 <동아일보>에서 ‘국산영화 포르노화 너무 한다’는 제목으로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규제가 완화된 기회를 틈타 국산영화의 성적 표현이 대담하다못해 포르노영화에 가깝게 되어가고 있다. 이런 경향에 맞춰 연기자들 중에서도 에로물을 전담하는 배우들까지 생겨나고 있다”며 이대근 과 함께 에로영화를 ‘전담’하는 단골 배우로 지목된 이가 바로 마흥식 이었다. 실제로 1987년 임권택 감독의 < 씨받이 >가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강수연 )을 수상하고 이규형 감독의 <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가 놀라운 흥행성적을 기록하면서 한창 한국영화계의 새로운 기운이 숨쉬던 때 마흥식은 이대근, 강수연에 이어 당시 세 번째로 작품 편수가 많은 한국영화계의 대표 남자배우였다. 그해 < 풍녀 >(1987), < 웅담부인 >(1987) 등 총 5편에 출연해 신성일 , 나영희 , 이보희 보다 많은 작품 편수를 자랑했다. 마흥식 의 시작은 TV 탤런트였다. 1948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TBC TV 7기생 탤런트로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았던 그는 1969년 MBC TV가 개국하자마자 이적했고, 연달아 주인공을 맡으며 큰 인기를 누렸다. 김자옥 과 함께 드라마 <얼굴>(1974)의 주인공을 맡는 등 당시 최불암 , 김자옥, 김영애 , 조경환 , 박원숙 , 김용건 등과 함께 MBC TV를 대표하는 젊은 탤런트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마성의 매력 때문인지 1977년에는 여자관계가 복잡해 이런저런 이유로 구속까지 됐다가 피해자와의 합의로 풀려나는 일도 겪었고, 방송윤리위원회는 그런 이유로 1년간 출연 정지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심지어 그런 바람둥이 혹은 호색한 이미지 때문인지 드라마 <꽃사슴>(1977)에 극중 김윤경 의 약혼자 역으로 출연할 때는 ‘극중이지만 그녀를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는 요지의 팬들의 극성스런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는 신문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이후 영화에 뜻을 둔 마흥식 은 이영실 감독의 < 반노 >(1982)에 출연하게 되는데, 어쩌면 이 영화가 그의 이후 이미지와 운명을 결정지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염재만 원작의 소설 <반노>는 1969년 ‘음란문서제조’ 혐의로 기소돼 1975년이 되서야 무죄확정판결을 받았고 너무나 오랜 기간 험난한 영화화 과정을 거쳤다. 진두(마흥식)와 홍아( 원미경 )의 동물적인 성생활을 대담하게 묘사한 <반노>는 아마도 한국영화계에서 ‘예술과 외설’ 논란에 휩싸였던 첫 번째 작품이라 할 것이다. 당시 이영실 감독은 마흥식에 대해 “맡겨진 배역의 이미지에 보다 접근하기 위해 보름 이상 굶어가며 연기에 몰두했다”고 칭찬하기도 했다. 그렇게 < 반노 >를 시작으로 마흥식 은 본격적인 에로배우의 길을 걷게 되는데 < 반노2 >(1984)는 물론 < 산딸기2 >(1984), < 훔친 사과가 맛있다 >(1984), < 탄드라의 불 >(1984), < 길고 깊은 입맞춤 >(1985), < 물레방아 >(1986), < 옹기골 뽕녀 >(1987), < 야누스의 불꽃 여자 >(1987), < 매춘 >(1988) 등 제목만으로도 그 필모그래피는 현대물과 사극을 가리지 않고 에로영화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대근 에게 < 변강쇠 > 시리즈가 있다면 그에게는 선우일란 과 함께 했던 < 산딸기 > 시리즈가 있었다. 고개 숙인 남자로 나오건 호색한으로 나오건 당시 에로영화를 기획하는 영화사들은 일단 그의 스케줄부터 확인하는 게 일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에는 당시 3D 입체영화를 표방했던 < 공포의 축제 >(1986)도 있다. 그로도 채워지지 않는 배우로서의 허기는 종종 연극 무대로도 옮아갔는데 추송웅과 함께 <도둑들의 무도회>, 윤소정과 함께 <올페> 무대에 오르는 등 단순히 에로배우로만 바라보기에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였다. 그렇게 그는 줄곧 이미지 변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그가 원하던 한국영화의 봄날은 쉬이 찾아오지 않았다. 영화배우로서는 이두용 감독의 < 애 >(1999)를 마지막 작품으로 남겼다. / 글: 주성철 (씨네21 취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