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in
- 감독
- 박진선, 김우진, 황상준, 박현정, 전숙영, 정기채, 조상현
- 제작년도
- 2006
오페라 영화 < 춘향뎐 >(2000)은 한국의 예술적 유산인 판소리와 시네마의 형식을 병합하고자 한 거대한 야심의 소산이다. 임권택 영화 세계의 큰 성취 중 하나인 이 영화는 서구 오페라 영화의 표준 관행에서 벗어나 한국의 토착적 오페라인 판소리의 특징에 의해 그 독창성이 발현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판소리는 완전히 드라마틱한 장르가 아니라 사설이 포함된 내러티브와 배우들의 가상 연기로 구성된 드라마 장르의 경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판소리는 임권택의 다른 영화 < 서편제 >(1993)의 주제였으나 <춘향뎐>에서 그의 관심은 소리에 통달하기 위해 시력을 희생한 여인의 삶을 묘사하는 것과는 근원적으로 다르다. 판소리가 등장인물들의 연기를 통해 영화에 통합되는 <서편제>와 달리 <춘향뎐>에서는 판소리의 형식이 서사를 추진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춘향뎐>의 서사는 영화 속 영화의 형식으로 미장 아빔의 구조를 형성한다. 임권택은 판소리 설화의 시각적 삽화에 의해 중단, 중첩, 교차하는 모의 무대 공연을 겹쳐둔다. 즉, 내러티브 공간은 단일화되지 않고 서로 다른 두 층위로 나뉘며 영화의 이미지는 판소리 공연 연출과 춘향 이야기의 시각화라는 이중적 기능을 갖는다. 구체적으로 그 양상을 살펴보자. 소리꾼 조상현의 노래와 사설은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의 기능을 하고 용의주도하게 계산된 배치에 따라 내레이션과 영화 속 배우들의 대사가 교차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무대 공연은 내러티브 전개의 중요한 길목에서 다섯 번 등장한다. 몽룡(조승우)과 춘향(이효정)이 만난 직후, 몽룡이 춘향을 떠난 이별 직후, 몽룡의 장원급제 직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안과 바깥을 나누는 액자구조로 출발하여 액자의 프레임이 점점 그 경계를 지워버리는 구성은 이미지와 사운드라는 영화의 언어를 판소리의 언어와 병합하려는 예술적 작의의 산물이다. 다섯 개의 공연 장면 사이에 끼워 넣어진 삽화는 판소리의 서사 전개 방식과 영화적 어휘의 조화를 곳곳에서 연출한다. 특별히 임권택은 소리꾼의 입을 통한 구술 전개와 시각적 재현을 절묘하게 겹쳐놓음으로써 그 속성에 있어서 상이한 두 예술 매체(판소리와 영화)의 공감각적 합일을 이루고 있다. 소리꾼의 노래와 사설이 흘러갈 때의 리듬과 음율, 호흡의 고저/강약, 정서의 기복은 쇼트의 형태, 길이, 편집, 배우의 연기로 적확하게 번안된다. <춘향뎐>의 정신분열적인 디제시스는 이 영화가 서양 오페라 영화의 전통과 변별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잉마르 베리만의 <마술피리>(1975)나 조셉 로지의 <돈 지오반니>(1976) 같은 오페라 영화들에 무대 공연과 오페라 서사의 영화적 시각화 사이에 위반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는 뚜렷이 대비된다. <춘향뎐>의 정신분열적 디제시스 구성에서 흥미로운 점은 연극 무대 가창자들의 목소리와 영화 속 영화에서 배우들의 목소리가 춘향 이야기 안에 공존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말하는 목소리는 그것이 속한 디제시스에 국한되는 반면 노래하는 목소리는 두 디제시스를 초월한다. 즉, 노래하는 목소리는 노래의 시각적 삽화를 동반하는 보이스오버로 자주 사용된다. 예를 들어 판소리 연주자의 노래 내용이 이몽용과 춘향이 만나는 곳의 풍경을 묘사할 때, 이미지 트랙은 오페라 무대에서 그 풍경의 사실적인 영화적 이미지로 이동한다. 이때 노래하는 목소리는 보이스오버로 계속된다. 판소리 연주자들은 노래 하는 것이 아니라 가끔 말하는 목소리를 가진 화자가 된다는 점에서 서양 오페라 영화와 구별된다. 판소리에서 노래하는 부분을 ‘소리’로, 말하는 부분을 ‘아니리’로 구분하는데, 가창자가 등장인물과 화자의 이중 역할을 하는 것은 서양 오페라의 전통에 존재하지 않는 판소리만의 특징이다. 이러한 이중적 역할은 영화적 이미지와 오페라 가창의 상호작용 측면에서 판소리의 영화적 제작을 서양 오페라보다 더 복잡하고 정교하게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창출한다. <춘향뎐>에서 이미지와 음악의 관계를 살펴보면 이러한 잠재력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춘향뎐>에서 판소리 가수가 연극 무대에서 공연하는 이미지는 영화의 메타 내러티브에서 따온 것이며, 이러한 다중 내러티브는 음악과 이미지의 관계를 보다 복잡하고 다양하게 만든다. 이 영화에서 음악-이미지 관계는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가장 단순한 형태는 무대에서 이루어지는 판소리 가수의 공연이다. 즉, 이미지는 극장에서 노래를 부르든 말을 하든 판소리 공연을 보여준다. 둘째, 앞서 언급했듯이 판소리 가수의 내레이션이 노래를 부르든 말을 하든 그 내레이션의 내용을 시각적으로 설명하는 보이스오버가 되는 것이다. 목소리는 메타 디제시스 세계에서, 이미지는 판소리 서사의 디제시스에서 유래하여 두 가지 차원의 디제시스가 결합되는 순간이다. 셋째, 이미지와 사운드 모두 판소리 무대의 메타 디제시스를 떠나 영화 속 춘향 이야기의 디제시스로 이동한다. 판소리 사설과 노래과 영화로 만들어진 것처럼 완전히 영화적이 되는 순간이다. 가장 흥미롭게도 네 번째 형태의 음악-이미지 구성에서는 영화에서 말하는 대사와 무대에서 판소리 가수가 부르는 가창이 동시에 제시되는, 일종의 ‘더블 보이싱’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형태이다. 변학도가 춘향을 고문하는 신은 이 네 가지 형태의 음악-이미지 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들을 제공한다. 고문 신은 위에서 설명한 네 가지 유형 중 세 번째 유형인 판소리 내러티브의 영화적 시각화로 시작됩니다. 판소리 공연에서 고문 현장으로 이미지가 이동할 때 노래하는 목소리가 멈추고 판소리의 말하는 목소리로 대체된다. 변학도가 춘향을 고문할 준비를 지시한 후 변학도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무대에서의 가창이 보이스오버 사운드 트랙으로 돌아온다. 판소리 보이스오버는 집장사령이 고문을 위해 이동하는 거동과 움직임, 형장을 들고 와 땅바닥에 흩뿌리고 그중 하나의 형장을 선택하여 들어 올리는 행위를 설명한다. 음성과 이미지의 이러한 구성은 위에서 이야기한 음성-이미지 유형의 두 번째 범주를 보여준다. 다음은 세 번째 범주로 돌아가는 것인데, 이번에는 가창의 보이스오버가 아니라 집장사령의 말과 겹쳐지는 대사가 보이스오버 역할을 하여 고문당하는 춘향의 마음과 몸의 움직임을 사설로 묘사한다. 고문 장면의 극적이고 음악적인 클라이맥스에서 춘향은 일자 포악으로 변학도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단을 말로, 그 위에 겹쳐지는 판소리 가창은 노래로 분리된다. 일종의 아리아라고 볼 수 있는 이 장면에 대한 임권택의 영화적 표현은 ‘더블 보이싱’의 사례를 제공한다. 화면에서 춘향의 목소리와 보이지 않는 무대에서 노래하는 가창자의 소리는 동일한 가사를 각각 말과 노래로 발음한다. 그리고 춘향의 고문 이미지 위에서 서로 다른 층위의 두 목소리가 동시에 들린다. 춘향의 저항과 변학도의 명령, 집장사령의 타격이 교차하는 매질 현장에서 무대의 메타 디제시스 세계로 이미지 트랙이 이동함에 따라 춘향의 말하는 목소리가 이중 보이스에서 빠져나간다. 그리고 판소리 가수의 목소리가 최종적인 형태로 구현된다. 즉, 위에서 언급한 첫 번째 유형, 극장에서 춘향을 공연하는 판소리 가수의 노래를 화면에서 듣고 본다. 고문 신은 원천 판소리처럼 음악적 정교함과 감정적 강렬함 면에서 가장 흥미롭다. 이 장면을 통해 임권택은 연극 무대에서 노래로 이야기를 표현한다는 넓은 의미의 오페라라고 할 수 있는 영화적 연출을 완벽히 실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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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 태흥영화사 감독: 임권택 | 각본: 김명곤 강혜연 | 제작: 이태원 | 촬영: 정일성 | 미술: 민언옥 | 음악: 김정길 | 판소리: 조상현 CAST 이효정 : 성춘향 | 이몽룡: 조승우 | 변학도: 이정헌 | 월매: 김성녀 | 방자: 김학용 | 향단: 이혜은 한국영화 최초로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 받았던 < 춘향뎐 >(2000)은 임권택 감독의 97번째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는 판소리와 영화를 일치시키는, 매우 실험적인 영화였죠. 고전을 새로운 형식으로 재해석한 작품 <춘향뎐>. 그렇다면 임권택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어떤 감정을 전하고 싶었을까요? “<춘향뎐>은 기본적으로 사랑 이야기지요. 젊은 두 남녀가 만나 서로에게 깊이 함몰되는 과정과, 춘향이의 절절한 마음 같은 것을 그리고 싶었어요. 또 한 가지는 당시 민중들의 정서예요. 임진왜란 이후 신분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민중들 사이에서는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가 높아졌어요. 기생의 딸로서 양반가의 자식과 사랑을 이루려는 춘향의 의지를 통해 당시 민중의 신분 상승 욕구를 표현하고자 했어요.” 임권택 감독은 < 서편제 >(1993) 때의 경험을 살려 판소리를 영화에 입하기로 마음 먹었지만 막상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니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판소리와 영화를 번갈아 반복한다는 것이 사실 상식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죠.” 그래서일까요? 임권택 감독은 그때까지 만든 97편의 영화들 중 가장 힘든 작업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1999년 5~6월에 찍은 필름을 모두 폐기해야 했는데요, 영상과 판소리가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7월이 되어서야 겨우 윤곽을 잡을 수 있었고, 7개월의 현장을 거쳐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1999년 9월 민속촌 촬영 현장이 공개되었는데요, 수청을 거부한 춘향(이효정)은 급창들에 의해 댓돌 아래로 끌어내려집니다. 후다닥 들이닥쳐 춘향을 끌어내리는 장면이기에 치맛자락이 찢어지기도 했는데요, 좀 더 빨리 끌어내리기를 바라는 임권택 감독의 요구에 테이크가 반복되었습니다. 드디어 춘향이 형틀에 앉았습니다. 이후 장면은 현장에 국창 조상현의 ‘춘향가’ 중 ‘십장가’ 대목을 틀어놓고 촬영이 이뤄졌습니다. 십장은 형틀에 묶여 집장사령에 의해 10대의 매를 맞는 것이지요. 변 사또의 수청을 거부한 죄인데요, 이때 판소리가 흐릅니다. “집장사령 거동을 보아라. 별형장 한아름 덤쑥 안아다가 동틀 밑에다가 좌르르르르르. 형장을 고르는구나. 이 놈도 잡고 느끈능청, 저 놈도 잡고 느끈능청, 그 중 손잡이 좋은 놈 골라잡고, 꼼짝 마라, 뼈 부서질라, 매우 쳐라!” 대사 구절에 정확히 액션이 일치해야 했는데, 특히 “좌르르르르르” 부분에서 형장이 쏟아져야 했고 여러 번의 리허설 끝에 촬영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임권택 감독은 “대사와 판소리가 충돌하지 않으면서 양쪽 모두 선명하게 표현됐다”며 만족감을 표현했습니다. 집장사령이 춘향에게 뒷속말 하는 장면을 임권택 감독이 직접 시연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촬영분은 없지만 현장을 방문한 조승우가 형틀에 묶인 이효정에게 간식을 먹여주고 있습니다. 이 영화로 데뷔 하는 조승우는 <춘향뎐> 현장이 “처음에는 부자연스럽고 어색해서 답답”했지만, “차츰 연극과 다른 감정을 찾아냈고 나름의 매력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 한편 16세 고등학교 1학년생이었으며 역시 첫 영화를 찍은 이효정은 ““춘향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어요. 그저 정숙하고 얌전하다고 생각”했지만, 촬영에 들어가선 훨씬 발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하네요. 한편 임권택 감독은 이렇게 말합니다. “처음에는 애를 먹었어요. 저도 흔들렸지요. 연기뿐만 아니라 판소리 리듬에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어요. 꾸중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소질도 있고 갈수록 자신들의 역할에 적응했어요.” 월매 역은 베테랑 배우이자 소리꾼인 김성녀가 맡았습니다. 마당극 <변사또뎐>에서 남장을 하고 몽룡 역을 맡았죠. 방자(김학용)와 춘향과 향단(이혜은)입니다. 김학용은 국립 창극단에서 방자 역을 단골로 연기한 배우입니다. 이혜은은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연기파 배우죠. 처음 변학도 역에 캐스팅 되었던 배우는 중견배우 유인촌이었지만 촬영이 늦어지면서 스케줄 조절이 어려워졌죠. 그래서 캐스팅 된 배우는 당시 서른 살이었던 이정헌이었습니다. < 기막힌 사내들 >( 장진 , 1998)로 데뷔한 서울예전 연극과 출신 배우인데요, 우리에겐 < 실미도 >( 강우석 , 2003)의 박 중사로 익숙한 배우죠. 이날 가장 힘든 신은 곤장 맞은 춘향을 방자가 업고 나오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뒤를 월매와 향단이 울며 뒤따르는데요, 화면의 심도가 깊어 동헌 초입부터 끝까지 한 눈에 보이는 터라 쉽사리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방자 역의 김학용 배우가 많이 고생했죠. 나들이 하기 좋은 가을 날, 민속촌은 관광객과 소풍을 온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임권택 감독은 사인 공세에 시달리기도 했죠. 임권택 감독은 현장에서 특유의 느린 목소리로 “레디, 고!”를 외쳤습니다. 하지만 판소리와 액션을 일치시키기 위해 작은 부분도 꼼꼼히 챙겼습니다. “영화의 큰 틀은 조상현의 ‘춘향전’ 창본입니다. 대략 4시간 35분 길이인데 이 가운데 영화에서 다룬 부분은 22퍼센트 정도예요. 영화에서 판소리가 차지하는 부분은 40퍼센트 정도고요. 현장 콘티를 짜는 작업은 엄청나게 힘들었어요. 판소리를 초 단위로 세분화했고 이에 따라 영상의 길이도 정확하게 계산했어요. 이렇게 해도 나중에 편집할때 보면 길이와 리듬이 맞지 않아서 애를 많이 먹었어요. 더구나 한번도 해보지 않은 작업이었기 때문에 더 힘들었어요.” <춘향뎐>은 임권택 감독과 정일성 촬영감독이 14번째로 호흡을 맞춘 영화였습니다. 1979년 < 신궁 >에서 시작해서 < 만다라 >(1981) < 안개마을 >(1982) < 길소뜸 >(1986) < 아다다 >(1987) < 장군의 아들 >(1990) < 서편제 >(1993) < 태백산맥 >(1994) 등, 수많은 걸작에서 그는 임권택 감독의 카메라가 되어 주었죠. < 이재수의 난 >(1999) 촬영을 마치고 여유가 생긴 박광수 감독이 현장을 찾았습니다. 대선배의 현장에서, 마치 연출부의 일원들처럼 주변의 관광객 통제를 직접 맡기도 했죠. 1980년대부터 임권택 감독과 함께 한 태흥영화사의 이태원 사장과 역시 오랜 파트너인 정일성 촬영감독의 모습입니다. 쉬는 시간 친구와 문자를 주고 받는 이효정 배우의 모습입니다. 중학교 시절 CF 모델로 카메라와 인연을 맺었고 오디션을 통해 <춘향뎐>의 주인공이 되었죠. 당시 고등학교 1학년으로 연극영화과를 꿈꾸었는데요, 이후 법학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춘향뎐>은 이효정의 유일한 작품이죠.
에퀴발랑스와 보존의 리얼리즘 한국영화사에서 ‘춘향전’의 뿌리는 유서가 깊다. 해방 후만 치더라도 이규환 감독의 < 춘향전 >(1955)을 필두로 하여 근년의 < 방자전 >(2010)에서 시도된 현대적 변주에 이르기까지 물경 20편에 달하는 다양한 버전의 ‘춘향 이야기’가 존재한다. 하나의 스토리를 숱하게 번안, 각색한 이들 작품 가운데 최고의 영화적 성취라면 임권택 감독의 < 춘향뎐 >(1999)이 단연 돋보인다. 아니, <춘향뎐>은 비단 <춘향전>의 역사 뿐 아니라 101편에 이르는 임권택의 필모그래피 안에서도 천의무봉의 경지라 할 만한 걸작이다. <춘향뎐>이 이전까지의 <춘향전>들과 근본적으로 구별되어야만 하는 이유는 그것이 ‘판소리’를 번안의 기초로 삼았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기왕의 <춘향전> 영화들이 공중(公衆)이 선호하는 ‘이야기’로서 그것이 지닌 매력을 스크린에 옮겨 내는 작업에 몰두한 반면, 임권택은 ‘판소리’라는 한국적 연행의 양식이 서양적 시각체계에 근간을 둔 ‘시네마’의 형식과 어떻게 변증법적으로 조응할 수 있는가를 형식의 실험을 통해 입증하려 든다. 기념비적 논문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에서 프랑수아 트뤼포는 문학 작품의 영화로의 각색과 관련하여 ‘에퀴발랑스 Equivalence’라는 개념을 주창한 바 있다. 훌륭한 각색을 판가름하는데 있어 첫 손에 꼽히는 기준은 에퀴발랑스가 있는가의 여부인데, 트뤼포가 말한 에퀴발랑스란 문학적 표현에 부합하는 영화적 대체물을 의미한다. 요컨대 문자적 상상력에 값하는 영화적 표현의 형식을 찾았는가에 의해 각색의 성패가 가름된다는 것이다. 임권택이 시도한 ‘판소리의 영화적 각색’에 대하여 트뤼포의 기준을 적용하자면 < 춘향뎐 >은 창조적인 에퀴발랑스를 발견한 전범으로 손색이 없다. 판소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오로지 소리꾼(performer)의 노래(창)와 서술(아니리)에 모든 것을 의존하는 비시각적 연행의 형식이다. 객(客)들은 소리꾼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며, 노래와 사설의 리듬, 호흡을 따라 이야기의 공백을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춘향뎐>에서 임권택이 수립한 사운드와 이미지의 조응 전략을 서구의 뮤지컬 장르의 양식적 특징에 견주는 것은 맥을 잘못 짚은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춘향뎐>은 유니크한 서사의 구성을 통해 판소리에 내재한 고유한 양식성, 이를테면 이야기의 단위의 분절과 리듬, 내러티브가 진행되면서 심화되어가는 연행자와 청중의 밀착성을 영화적 형식으로 옮겨 내고 있다. 몇 가지 사실만으로 이것이 입증된다. 우선 < 춘향뎐 >의 서사구조를 일별하자면, 영화를 열고 닫는 명창 조상현의 판소리‘춘향전’완창 공연 사이에 본편이 삽입되어 있는 액자구성을 취하고 있다. 본편에서 소리꾼 조상현이 들려주는 노래와 설명은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의 기능을 하고 면밀한 계산에 따라 나레이션과 극중 배우들의 대사가 교차한다. 조상현의 판소리 공연 장면은 총 다섯 차례 삽입되는데, 내러티브 전개의 흐름 상 중요한 분기점에서 어김없이 등장한다. 예컨대 몽룡과 춘향이 만난 직후, 몽룡이 춘향을 떠난 이별 직후, 몽룡의 장원급제 직후에 공연 장면이 삽입된다. 흥미로운 것은 임권택 이 다섯 번의 공연 장면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촬영했다는 것인데, 오프닝에서는 소리꾼을 잡은 단독 쇼트로 처리한 반면, 두 번째 공연 장면은 소리꾼과 객석을 정사/ 역사 구성으로 보여주고, 세 번째 공연은 소리꾼과 청중의 반응을 다양한 각도로 편집하여 시각화한다. 네 번째 공연은 무대와 객석이 동화된 풍경으로 나아가더니, 클로징은 판소리 공연과 본편이 디졸브되면서 합일되는 순간으로 마무리된다. 안과 바깥을 나누는 액자구조로 출발하여 액자의 프레임이 점점 그 경계를 지워버리는 조화로운 합일의 순간으로 끝나는 서사구조는 이미지와 사운드라는 영화적 표현의 형식을 통해 판소리를 영화적으로 번역해내려 한 작의(作意)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고 있다. 다섯 개의 공연 장면 사이에 끼워 넣어진 단락화된 에피소드 구성은 판소리의 서사 전개 방식과 영화적 어휘의 조화를 곳곳에서 연출한다. 특별히 임권택 은 소리꾼의 입을 통한 구술 전개와 시각적 재현을 절묘하게 겹쳐놓음으로써 그 속성에 있어서 상이한 두 예술 매체(판소리와 영화)의 공감각적 합일을 이루고 있다. 소리꾼의 노래와 사설이 흘러갈 때의 리듬과 음율, 호흡의 고저/강약, 정서의 기복은 쇼트의 형태, 길이, 편집, 배우의 연기로 적확하게 번안된다. 스토리 공간 안에 존재하는 디제틱 사운드와 외재적으로 삽입된 논디제틱 사운드(소리꾼의 보이스 오버)가 하나로 합쳐지고 판소리의 언어가 영화의 어휘로 번역되는 마술 같은 순간들을 곳곳에서 체험할 수 있다. 이처럼 < 춘향뎐 >의 모든 시퀀스는 판소리의 신명과 감흥을 대체하는 영화적 에퀴발랑스를 성립시킨다. 임권택은 여기서 “영화화할 수 없는 장면은 없다”는 영화적 각색의 명제를 입증하는 한편, 다루는 대상과 질료의 성질을 훼손하지 않고 영화로 옮겨 오는 ‘보존의 리얼리즘’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