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티의 미학
- 감독
- 조현채
- 제작년도
- 2018
<폭싹 속았수다> 중 (사진: 한겨레 /© 넷플릭스) 올 한 해 TV와 OTT를 통해 공개된 시리즈들을 필자의 시선으로 바라봤습니다. 관심을 끌어모은 화제작부터, 스쳐 지나갔지만 돌이켜 볼 만한 문제작들까지 정리합니다. 며칠 전, 12.3 비상계엄 이후 1년을 돌아보는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눈물이 났다. 그 시간을 통과할 때는 미처 감각하지 못했는데, 지나고 보니 우리가 모두 참으로 위험한 시간을 지나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내란 사태를 수습하느라 사회 전체는 긴장 상태에 놓여 있었다. 정치뿐 아니라 경제 상황 역시 불안정했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과 씨름하느라 많은 이들이 ‘각자의 내란’을 견뎌야 했다. 그래서였을까. 2025년의 시리즈에는 유난히 어려운 시절을 버티며 살아낸 이들의 이야기, 그중에서도 가족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눈에 띄었다. 버틴 사람들의 이야기 올해 가장 많은 이들이 언급한 드라마는 < 폭싹 속았수다 >(김원석/넷플릭스)가 아닐까? <폭싹 속았수다>는 거친 바다를 온몸으로 견뎌낸 해녀, 광례( 염혜란 )에게서 시작한다. 광례와 딸 애순( 아이유 · 문소리 ), 손녀 금명(아이유)으로 이어진 모녀 3대는 한국 현대사를 가로지르며 각자의 방식으로 삶의 파도에 맞선다. 인생을 사계절에 빗댄 이 이야기에는 해녀 공동체의 연대, 애순과 관식( 박보검 )의 풋풋한 사랑, 그리고 모두의 생애를 지탱한 가족애가 가득 담겼다. <폭싹 속았수다> 속 인물들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삶의 과제를 감당하며 버텼다면, <태풍상사>(이나정, 김동휘/tvN)의 태풍( 이준호 )은 1997년 IMF 외환위기라는 경제적 폭풍을 견딘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불어닥친 회사의 위기 앞에서 태풍은 직원들을 신뢰하며 열정적으로 회사를 지키고 살려낸다. <태풍상사>는 마치 ‘국난’을 극복하듯 회사를 되살리는 이야기인 동시에 “가장 평범한 곳부터” 도려내졌던 IMF 시대를 살아낸 보통 사람들의 얼굴도 놓치지 않는다. 태풍이 청년 사업가로 성장하던 IMF 시기, 낙수( 류승룡 )는 치열한 취업 전쟁을 뚫고 대기업에 입사한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탄탄대로를 걷던 그는 어느새 명예퇴직 대상자가 된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조현탁/JTBC)는 사회의 중심축에서 밀려난 중년 세대의 현실을 생생하게 포착한다. 사회적 ‘쓸모’가 사라졌다는 자각과 거듭되는 실패 앞에서 낙수는 모멸감과 상실감, 불안 속에서 흔들리며 우울과 공황을 겪는다. 이 시리즈는 중년의 위기를 유머와 애잔함으로 감싸며, 낙수가 가족의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상) <폭싹 속았수다> 중 (사진: 한겨레 , PD저널 / © 넷플릭스) (하) <태풍상사>,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중 (사진: tvN , JTBC ) 여성들의 세계, 더 넓어지다 가족을 중심으로 한 시리즈 너머, 여성을 생애사적·사회적 이야기로 확장한 시리즈도 눈에 띄었다. < 은중과 상연 >(조영민/넷플릭스)은 은중( 김고은 )과 상연( 박지현 ), 두 여성의 30년에 걸친 관계를 따라가며, 서로를 사랑하지만 미워하기도 하고,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배신도 하는 등 서로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여성들의 복잡한 관계를 밀도 있게 그린다. 그중에서도 상연을 단순한 ‘빌런’이 아니라 결핍과 외로움이 빚어낸 인물로 끝까지 이해하려는 시선이나, 성소수자인 상학( 김건우 )의 죽음과 안락사를 선택한 상연의 죽음을 “내가 있어도 되는 세상”을 갖지 못한 존재들의 죽음으로 연결하는 감각이 인상적이었다. <미지의 서울>(박신우, 남건/tvN)은 일란성 쌍둥이, 미지와 미래( 박보영 )의 ‘삶 교환’을 중심으로 청년 세대의 불안과 고립, 직장 내 괴롭힘, 비정규직 차별, 장애와 성소수자 문제를 복합적으로 짚는다. ‘마론제과’ 무기계약직 여성들의 이야기 <달까지 가자>(오다영, 정훈/MBC)와 아파트에서 발생한 사건을 추적하는 여성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살롱 드 홈즈>(민진기, 정현남/ENA)는 가족의 확장된 형태로서 여성들의 우정과 연대를 보여준다. < 피라미드 게임 >(박소연/TVING)과 < 선의의 경쟁 >(김태희/U+TV)은 여고 내 계급과 폭력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미지의 서울>, <폭싹 속았수다>, <견우와 선녀>(김용완, 정우식/tvN), <첫, 사랑을 위하여>(유제원, 함승훈/tvN) 등 모녀 관계를 통해 여성의 생애를 입체적으로 조명한 작품들도 눈에 띄었다. 현대극뿐 아니라 시대극 역시 여성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옥씨부인전>(진혁/JTBC)은 조선시대 노비로 태어나 양반 마님이 되어 ‘변호사’로 활약한 구덕이( 임지연 )를 중심으로 계급, 여성 차별, 성소수자, 아동·약자 착취 문제 등을 녹여내 ‘조선판 인권 선언문’과 같은 역할을 했다. < 애마 >(이해영/넷플릭스)는 1980년대 충무로를 배경으로, 에로 영화 전성기의 포문을 연 영화 < 애마부인 >(정인엽, 1982) 촬영기를 극중극 형태로 재현하며 ‘남성적 응시’에 맞선 여성들의 연대를 메타 비평적으로 풀어낸다. 여성의 성적 욕망을 부정하던 1980년대 시골 마을에서 성인용품 판매를 하게 된 여성들의 이야기인 <정숙한 세일즈>(조웅, 김미진/JTBC)와 1990년대 버스 안내양들의 우정을 담은 <백번의 추억>(김상호/JTBC)은 그간 주목받지 못한 여성의 역사를 복원해, 가부장 사회에서의 여성 억압의 문제, 노동과 우정의 연대기를 보여준다. (상) <은중과 상연>, <미지의 서울> 중 (사진: MBC /© 넷플릭스, tvN ) (하) <애마>, <백번의 추억> 중 (사진: 넷플릭스 , JTBC ) ‘보편성’이라는 이름의 한계 이렇게 여성들의 이야기가 다양하고 폭넓게 등장했음에도 ‘가족’ 바깥을 상상하게 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폭싹 속았수다>를 여성 서사로도 볼 수 있지만, 결국 부모 세대와 가족의 이야기로 수렴된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또한 낙수의 아내 하진( 명세빈 )이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하지만, 시리즈는 결국 “김부장 이야기”, 즉 가장을 이해하고 북돋우며 가족애로 회복에 이르는 데 집중했다. <태풍상사>도 마찬가지다. IMF로 일자리를 잃거나 불안정한 노동에 배치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보여주지만, 이런 이야기는 로맨스 서사에 묻히고 만다. 이런 한계에도 이 시리즈들은 ‘보편성’을 가진 좋은 이야기로 회자됐다. K-드라마의 보편성이란 여전히 ‘아버지’ 중심의 가족 서사라는 게 재확인된 셈이다. 이런 특징은 결국 세대, 노동, 차별 등 사회 구조적 문제로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이른바, ‘여성 서사’라 불리는 드라마에서도 극소수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가족 다양성, 가족 너머의 서사를 온전히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흐름을 어떻게 봐야 할까? 『페미니즘 리부트』(2017)에서 영화평론가 손희정이 IMF 이후 영화의 여성 재현에 관해 지적했듯, IMF 이후 또 다른 위기의 시대를 통과하는 지금, 이런 흐름은 가족이라는 안전하고 효율적인 이데올로기를 작동시켜 ‘위기의 시대’를 손쉽게 통과하려는 징후가 아닐까.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태풍상사> 중 (사진: JTBC , tvN ) 그런데 흥미롭게도, 가족과 연대로는 포착되지 않는 또 다른 층위의 이야기들도 있었다. 가족주의로는 설명할 수 없는 폭력, 사회가 방치하고 묵인해온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들이다. 그 ‘사이코패스’들은 무엇을 보여주었는가 올해 시리즈의 또 다른 흐름은 < 하이퍼나이프 >(김정현/디즈니+)의 소시오패스 의사 세옥( 박은빈 )을 비롯해 사이코패스 성향의 인물들이 전면에 등장했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단지 반사회적 인물로 등장했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그 재현을 통해 무엇을 드러내고 질문했는가에 있다.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변영주/SBS)의 연쇄살인범 이신( 고현정 ), < 친애하는 X >(이응복, 박소현/tvN)의 사이코패스 아진( 김유정 ), < 당신이 죽였다 >(이정림/넷플릭스)에서 남편을 살해하는 희수( 이유미 )와 그의 친구 은수( 전소니 ), < 자백의 대가 >(이정효/넷플릭스)의 모은(김고은) 등 폭력을 행하거나 살인을 저지른 반사회적 여성들을 통해 아동 학대, 가정폭력, 성폭력을 묵인하는 가부장제와 권력의 문제를 드러낸다. 이 시리즈들은 반사회적 선택이 개인의 선택이나 비정상적 일탈이 아니라 사회가 만든 산물임을 보여줬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품은 초반의 기세와는 달리, 후반부에는 장르적 쾌감이나 개인에 대한 처벌로 귀결되며 구조 비판의 힘을 잃었다. 그 결과 폭력은 사회의 문제로 제시되지만, 변화의 책임은 다시 개인의 파멸이나 응징으로 환원된다. 2010년대 이후 빈번하게 등장한 ‘사적 복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이다.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 <자백의 대가> 중 (사진: SBS , 넷플릭스 ) 결국, 살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2025년 시리즈를 회고하다가 ‘돌봄’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폭싹 속았수다>의 해녀 공동체가 서로를 살피고, <태풍상사>의 태풍이 직원들을 신뢰하며 회사를 지켜내고,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에서 가족이 함께 위기의 시간을 견디고, < 다 이루어질지니 >(안길호/넷플릭스)에서 마을 사람들이 사이코패스인 가영( 배수지 )을 사랑으로 키워내는 것. <미지의 서울>에서 미래가 딸기 농원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신을 추스르고, <첫, 사랑을 위하여>에서 골수암에 걸린 효리(최윤지)가 꽃 농사를 짓는 보현(김민규)을 만나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고, <폭군의 셰프>(장태유/tvN)에서 지영( 윤아 )이 음식으로 사람을 살리고, < 내가 죽기 일주일 전 >(김혜영, 최하나/TVING)에서 이미 죽어 저승사자가 된 람우( 공명 )가 생기를 잃고 사는 첫사랑 희완( 김민하 )를 살리고, <견우와 선녀>에서 곧 죽을 운명에 처한 견우( 추영우 )를 무당인 성아( 조이현 )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살리는 것. 이 모든 장면의 공통점은 어떤 대상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이야기라는 점 아닐까? 그래서인지 올해 시리즈에는 유난히 식물을 키우는 설정이 자주 등장했다. 식물을 정성껏 가꿀 뿐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서로의 곁을 지켰다. 올해 시리즈는 ‘죽이는 것’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끊임없이 ‘살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연대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가족주의라는 안전한 이데올로기에 기대고, 그것을 넘어서려 애쓰면서 2025년 시리즈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선택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문제는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돌봄과 버티기만으로는 구조를 바꿀 수 없다. 가족 간의 사랑을 앞세우고, 개인의 파멸로 끝나는 응징은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흐릿하게 만들고, 더 나은 세계를 향한 상상력의 시계를 좁게 한다. <애마>에서 희란( 이하늬 )과 주애( 방효린 )가 “각자의 링” 위에서 싸우며 “다시 돌아오지 않을“ 세계로 나아갔듯, 지금 우리에게는 낡은 세계로 회귀하지 않으면서 “미래를 앞당기는” 이야기들이 필요하다. <미지의 서울> 중 (사진: tvN ) 오수경(드라마평론가) l 인간과 사회에 관심이 많아 문학을 전공했고, 신앙인으로 살고 있으며, 드라마를 들여다본다. 여러 매체에 칼럼 기고. 『을들의 당나귀 귀 』(2019) 공동 집필, 『드라마의 말들 』(2022) 집필.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이미지 클릭 시 유튜브 영상으로 이동) 필름포럼 은 이화여대 후문 건너편, 연세대 동문으로 가는 방향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위치에서 2012년 5월 개관하여 2013년 예술영화 전용관으로 선정되었다. 필름포럼 영화관의 운영 주체는 ‘사단법인 필레마’로, 필레마는 ‘ 서울국제사랑영화제 (2003년 서울기독영화제로 시작)’ 운영도 함께 하고 있다. 예술, 독립, 기독 영화의 발굴과 상영을 추구한다. 본래 영화평론가인 임재철 씨가 종로에서 필름포럼 영화관을 운영하다가 2008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고, 2012년 사단법인 필레마가 임재철 평론가로부터 운영권을 인수하여 법인 성격에 맞게 운영하기 시작했다. 필름포럼이 입주해 있는 하늬솔 빌딩은 건물 자체는 도로변에 있으나 영화관으로 들어오는 입구는 도로 뒤편 골목에 있다. 또한 인근에 대학교가 많고 자취생들이 많은 입지 특성상 자취하는 20대 대학생들을 제외하고는 실 거주인이 많지 않다 보니, 인근 지역 자체가 평일 낮에는 굉장히 활발하고 평일 저녁이나 주말이 되면 조용하다. 그러한 분위기는 필름포럼을 찾는 관객들의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쳐, 청년들 같은 경우 혼자 와서 영화를 보고 가거나 여럿이 오면 세미나를 하는 등의 학구적인 모습이 많이 보인다. 필름포럼이 위치한 하늬솔 빌딩 20대 관객들 같은 경우,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 등 명작들을 필름포럼 스크린에서 처음 접해보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인근 지역에 사는 50대 이상의 주민들 상당수는 그림 감상, 아카데미 강좌 수강 등을 이유로 방문했다가 카페도 이용하고 영화를 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한다. 복합문화공간을 지향하는 극장 현재 필름포럼을 운영하는 인원들은 성현 대표와 조현기 프로그래머를 비롯해서 팀장, 카페 매니저, 카페 아르바이트 등을 포함하여 전체 10여 명 정도다. 성현 대표는 영화관의 전체적인 기획과 경영 및 프로그래밍에 대한 조율 업무를 맡고 있고 조현기 프로그래머는 상영작들의 큐레이션 업무 등을 담당하고 있다. 프로그래머는 본래 2명이었는데 현재는 1명인 상태다. 상영관은 2개관으로 1관은 90석이고 2관은 52석이다. 연중무휴이며 광고 없이 정시에 시작한다. 외부 철제 계단에서 아래로 내려오면 정원이 보여 지하인데도 지하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정원이 딸린 카페 같은 외관인데 유리문을 열면 로비가 펼쳐지면서 카페가 같이 있다. 카페는 갤러리 공간으로도 쓰이고 있고, 카페 계산대에 영화관 키오스크가 설치되어 있어서 키오스크나 직원을 통해서 티켓 발권과 음료 주문을 한다. 전체적인 건물 평수는 약 500평 정도인데, 이중 상영관은 350평 정도 규모이고 나머지 공간을 카페를 겸한 로비와 세미나실로 구성하여 사용하고 있다. 필름포럼 로비 전경 상영 시스템의 경우, 개관 초기에는 필름으로도 상영을 했었지만 지금은 모두 디지털 영사기로 바꿨다. 1관은 디지털 시스템을 모두 갖췄고, 2관은 아직 국제인증을 받지 못해 한국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서버를 갖추고 있다. 2024년 현재 영화진흥위원회 시설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2관도 1관처럼 디지털로 완전히 개편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영화관 로비가 카페이자 갤러리 역할을 하는 것은 처음부터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하고 지향했던 필레마의 방향성이다. 실제로 관객들은 이 공간을 영화 상영 전 대기 장소로서뿐만 아니라 만남의 장소로서도 이용한다. 이 공간에서는 아마추어들에게도 전시 기회가 열려있는데, 운영자들이 프로페셔널과 아마추어들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남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1관 상영관 내부 전경 관객과 함께 하는 공간 로비 중앙에는 출석부와 방명록이 놓여 있어서 관객이 참여하고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마련되어 있다. 영화 출석부의 경우 여러 횟수가 쌓이면 영화관으로부터 초대권을 받을 수 있으며, 평론가처럼 출석부에 본인이 본 영화에 대한 별점과 한 줄 리뷰를 남기게 되어 있다. 이는 관객 개인이 가지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로비에 오픈되어 있어서 해당 영화에 대한 감상평을 다른 관객들과도 나눌 수 있게 한다. 로비에 있는 ‘북 큐레이션’은 12권의 책을 한 달에 한 번씩 바꿔서 소개하고 있는데 상영 영화는 물론 현재 동시대성을 띤 책들이 섞여 있어서 관객들로부터 호응도가 매우 높다. 필름포럼 출석부 강연장에서는 자체적으로 기획한 인문/문화예술/종교와 관련된 아카데미를 꾸준히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커뮤니티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처음에는 시네필 쪽에 포커스를 두고 강좌를 기획하고 운영했는데, 실제로는 예술영화를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관객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고 좀 더 다양한 방향으로 바뀌었다. 예를 들어 ‘시네마 브런치’는 월요일 오전 10시에 예술영화를 함께 보고 샌드위치 들고 영화관 안에 들어와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영화에 대한 해설을 듣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인데, 큰 호응을 얻었다. 상영되는 모든 영화는 기본적으로 큐레이션 된 영화들이다. 기획전 상영작들은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비롯하여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기독교 영화들도 많다. 영화를 좋아하는 시네필들의 재방문율이 높은 편이며 예술가의 삶이나 회화에 관련된 영화 기획전도 많이 열린다. 엠네스티와 같은 국제단체를 비롯하여 단체나 학교, 지역주민모임, 서점이나 사진관 등과도 협업한 기획전을 종종 개최하기도 한다. 필름포럼 세미나실 공간 및 운영 개요 1) 위치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성산로 527 하늬솔빌딩 A동 B1 2) 설립일 : 2005년 4월 22일 3) 대표자 : 성현 4) 규모 : 하늬솔빌딩 A동 1749.38m2 5) 극장 구성 (관수, 관별 좌석수, 훨체어석) : 1관 90석, 2관 52석, 총 142석 6) 운영시간 및 정기휴무 : 09:30~22:00, 연중무휴 7) 입장료 및 할인 정책 - 평일: 성인 10,000원, 청소년 9,000원, 경로/국가유공자/장애인 7,000원. 조조 7,000원 - 주말: 성인 11,000원, 청소년 10,000원, 경로/국가유공자/장애인 7,000원, 조조 8,000원 - 단체 할인: 10인 이상 1,000원 할인 / 30인 이상 2,000원 할인 8) 조직도 및 조직 구성 - (주)필레마 서울국제사랑영화제(극장운영주최) - 문화선교연구원(이론, 학술배경 제작) - 필름포럼(극장) 9) 구성원 : 성현 대표, 프로그래머, 조현기 프로그래머, 팀장, 매니저 취재 일자: 2024년 11월 19일 글/인터뷰 진행: 김문경 사진: 허 성
<동두천> 중 '실사'에 드리운 한계를 넘으면 비로소 선명해지는, 영화가 낳은(을) 새로운 감각과 지형을 발견합니다. 김진아(UCLA 영화과 교수, 영화감독) < 두번째 사랑 >(2007), < 파이널 레시피 >(2013) 등 다섯 편의 장편영화와, 미군 위안부 3부작 < 동두천 >(2017), < 소요산 >(2021), < 아메리칸 타운 >(2023) 등을 연출. 미국 UCLA 대학 종신교수로 시각예술의 재현 윤리, 초국가적 영화론을 가르치고 연구한다. 모든 예술매체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타인의 고통을 느끼기 위해서는 자발적인 유배가 필요하다. 편안하고 안락한 나의 공간에서 벗어나, 타인의 고통이 존재하는 불편한 세상으로 스스로를 떠밀어야 한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2021)에서, 새를 찾아 사투를 벌이는 주인공의 여정은 너무 고통스러워 한 번에 읽어낼 수 없었다. 눈밭에 굴러 떨어져 혼절하고, 다시 일어나 겨우 도착한 친구의 집에서 죽어 있는 새를 마주하는 그 여정은, 문장마다 숨이 막혀 몇 번이고 책을 덮었다가 다시 펼쳐야만 했다. 그레이스 조의 『전쟁 같은 맛(Tastes Like War)』(2023)에서, 한때 기지촌 여성으로 살아냈고 끝내 조현병으로 생을 마감한 작가 자신의 어머니의 고통 또한 그러하다. 마치 홀린 사람처럼 야생버섯과 블랙베리를 찾아 숲을 헤매는 그녀의 모습은, 책을 덮고 돌아본 방 안의 벽과 창문조차 낯설게 만들었다. 문학은, 이토록 깊은 몰입 끝에, 언어로 짜인 세계를 읽는 이의 의식 속에 스스로 구축하게 만드는 경이로운 예술이다. 영화는 어떤가? 공간예술인 동시에 시간예술이라는 특수성을 지닌 영화는 몰입과 감정이입을 위해 편집과 음악 등 갖가지 방법을 고안해 내었다. 주인공이 겪는 아픔은 눈물방울의 클로즈업으로, 그것으로도 모자라면 처연한 바이올린 소리로 우리에게 주입된다. 얼핏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게 하는 강력한 매체로 보이지만, 그러나 이 공감은 순간적/피상적이고, 고통을 겪는 타자를 철저히 대상화하는 경험이 될 수도 있다. 카메라의 앞에 선 피사체와 뒤에 선 촬영의 주체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있기 때문이다. 관객은 아무리 몰입되어도 이 보이지 않는 선을 절대로 넘을 수 없다. 이 선은 화면 속 세계를 심리적/물리적으로 관객이 위치한 공간과는 다른 차원으로 완벽하게 분리해낸다. 섹스와 폭력은 물론, 빈곤 포르노(Poverty porn)라는 장르가 생길 정도로, 2D 영상매체는 인류 역사상 그 어떤 매체보다 강력하고 공공연하게 타인의 고통을 오락거리로 삼게 되었다. 그 선 덕분이다. 더 큰 문제는 힘의 역학이다. 큰 비용이 들어가는 실사(實寫, live action) 이미지 제작의 특성상, 전통적으로 카메라의 뒤에는 권력을 가진 자가 있어 왔고 카메라 앞에 서는 피사체는 그 권력에 의해 대상화되어 왔다. 식민 지배국, 제1세계의 시민, 남성, 자본을 가진 자는 카메라의 뒤에서 이미지를 통제하는 힘과 발언권을 갖고, 식민 피지배국, 제3세계의 빈민, 여성, 자본을 갖지 못한 자는 카메라의 앞에서 피사체로 전락하여 목소리를 잃는다. 결과적으로 이 보이지 않는 선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에게 한 세계를 창조하는 신에 비교되는 전무후무한 권력을 주었다. 우리가 듣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피사체의 목소리는, 실상 카메라 뒤에 선 권력의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공감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이, 우리는 실은 타인의 고통을 착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상현실에서는 이 공식들이 교란된다. 카메라의 앞과 뒤를 구분 짓는 그 선이 와해 되기 때문이다. 프레임으로 제한된 세계를 그 세계 밖에서 관망할 수 있는 평면 영화와 달리, 360도 터진 가상현실의 공간은 관객이 그 세계 안에 들어가게 만든다. 앞서 언급한 자발적인 유배 가 장소적 으로 이루어지는 셈이다. *주1 그 세계 안에 내 자신이 던져진다는 것만으로도 2D 평면 영화의 근본적인 심리적 기제인 ‘관음’이 작동하기 어렵다. 더 중요한 유배는 존재론적 차원에서 일어난다. 시선의 주체(관객)는 가상현실 세계에서 자신의 몸을 잃는다. *주2 시선은 성성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 대처할 물리적 몸이 사라진다는 것은, 당황스럽다 못해 악몽에 가위를 눌리는 것 같은 공포스러운 경험이다. <소요산>(좌)과 <아메리칸 타운>(우) 중 이렇게 주권(agency)과 권력을 잃고 상처 입기 쉬워진(vulnerable) 관객 앞에, 고통받는 타자의 모습은 전혀 다른 차원의 울림을 갖는다. 이는 대상화된 타자의 고통에 대한 반응과는 사뭇 다른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밥상머리 텔레비전 속 평면화면에 등장한 서식지를 잃은 북극곰은 이미 식상해진 이미지일지 모른다. 그러나 VR 기어를 쓰고 북극해의 빙산 위에 선 내 앞에, 해빙으로 작아진 빙산에 필사적으로 올라타려 애쓰는 북극곰이 있다면, 과연 그렇게 무심할 수 있을까. 어차피 내 눈앞의 세계가 실재하는 것도 아닌데 뭐 그리 유난스러울까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두뇌의 입장에서 보자면 눈앞의 세계가 실재인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다. 시신경을 통해 접수된 정보는 실재/가상을 떠나 두뇌를 자극하는 똑같은 전기신호일 뿐이다. 눈앞에 나타나는 사람들과 사물들이 실재가 아님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뇌어도, 그 세계 안에서 느껴지는 감각과 감성(affect)은 우리의 심리를 뒤흔든다. 가상현실 세계에서 이렇게 관객은 몸(physical agency)을 잃고 영상 속에 등장하는 피사체와 같은 차원에 서게 된다. 이는 피사체의 대상화, 타자화를 극복한 새로운 공감기제(empathy-schema)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렇듯 촬영 주체와 피사체, 즉 관객과 영화 속 대상이 동일한 차원에 존재하게 되는 가상현실 매체의 속성은 미군 위안부 3부작을 만들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1992년, 주한미군에 의해 처참히 살해당한 기지촌 여성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영화 이상의 매체가 필요했다. 그녀의 죽음을 전하기 위해, 대상화된 피해자를 ‘공감’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착취할 수 있는 매체는 선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동두천의 쪽방에서 피를 흘리며 수 시간에 걸쳐 죽어간 그녀가 느꼈을 외로움, 감히 입 밖으로 말해질 수 없는 그 처참한 죽음과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기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1992년의 그날을 잊힌 역사 속 한 문장이 아니라,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간 관객에 의해 매번 새롭게 살아나는 현재의 사건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이 질문들은 궁극의 답을 찾지 못해 머릿속을 맴돌며 < 동두천 >(2017) *주3 을 완성하게 했고, 이후 8년간 3부작을 VR로 만들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동두천>, <소요산>, <아메리칸 타운> 포스터 많은 평론가가 미군 위안부 3부작을 두고 역사의 은유와 상징, 혹은 화자로 등장하는 유령에 대해 분석해왔다. 일면 타당한 분석이다. 하지만 이 3부작의 진짜 핵심은, 비극이 자행된 공간에서 화자로서의 유령을 ‘보는’ 데 있지 않다. 핵심은 관객, 곧 우리 자신이 몸을 잃은 시점(視點, point of view), 다시 말해 유령이 ‘되는’ 데 있다. 이는 오직 VR 매체를 통해 가능한 존재론적 유배를 통해 실현된다. 관객이 자신의 존재의 본질이 바뀌었음을 깨닫는 순간은 예기치 않게 다가온다.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인 <동두천>에서, 처음 관객은 무고한 방관자로서 기지촌의 풍경을 흥미롭게 관찰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시야의 언저리를 스치는 한 여성의 존재를 느낀다. 지나가는 성 노동자, 미군, 행인들과는 달리 어쩐지 시선을 끄는 그녀를, 관객은 점차 눈으로 좇게 된다. 그러나 발소리만 남긴 채 그녀는 좀처럼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좁디좁은 골목으로 들어섰을 때, 마침내 그녀가 관객을 향해 걸어온다. 드디어 그녀를 제대로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대가 들 찰나,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두 사람이 나란히 지나갈 수 없는 그 좁은 골목에서, 그녀는 관객을 향해 직진해온다. 관객은 자신의 몸이 있어야 할 자리를 그녀가 그대로 통과해서 지나가는 것을 경험한다. 그녀가 유령이라면, 관객 또한 이미 유령이 된 것이다. <동두천> 중 미군 ‘위안부’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인 < 소요산 >(2021) *주4 에서는 피사체가 관객을 바라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관객은 더 나아가, 피사체인 그녀의 목소리를 내보내는 몸, 곧 성대가 된다. 낙검자 수용소 곳곳을 거닐며 감금되었던 여성들의 일상을 따라가던 관객은, 어느새 그녀가 짧은 생을 마감하기 위해 뛰어내린 옥상 끝에 선다. 그녀의 몸도, 나의 몸도 보이지 않지만, 그녀의 가쁜 숨소리는 내 옆에서 들리는 것이 아니라 두 귀 사이에서 울린다. 그녀의 숨소리가 멈추고 옥상에서 보이는 산과 하늘에 서서히 밤이 내린다. 수용소의 복도에는 그녀의 흐느낌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흐느낌은 점차 통곡과 오열로 바뀌고, 관객은 또 한 번 깨닫는다. 그 울음소리가 내 몸 밖의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두 귀 사이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소요산> 중 관객과 피사체가 동일한 차원에 위치하는 가상현실 세계에서, 피사체는 더 이상 관객에게 일방적으로 관람을 당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피사체가 관객을 바라보는 역전이 일어나기도 한다. 3부작의 마지막 작품 < 아메리칸 타운 >(2023) *주5 에서는 관객(보는 자)과 피사체(보이는 자)의 역학관계가 뒤바뀌는 경험을 거울이라는 기호(記號, signifier)를 통해 제시한다. 군산 미 공군기지 주변, 주식회사 형식으로 설립된 기지촌 ‘아메리칸 타운’ 곳곳에는 이 공간의 특수성을 설명하듯, 실내 어디든 시선이 닿는 곳마다 거울이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거울 속, 마땅히 내가 비쳐야 할 자리에 정작 ‘나’는 없다. 밤이 내리고, 그녀의 기척이 과거 타운의 번성했던 소리와 함께 되살아난다. 이윽고 거울 속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그녀가 대신 등장한다. 거울 속 그녀는 미군 위안부 여성으로서 하룻밤의 일과를 담담히 수행하고 있다. 고단한 밤이 끝나고, 햇살이 비치는 마당으로 나오는 여인. 관객은 이제 빨래를 걷는 여인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빨래를 걷던 여인이 관객을 알아본다. 관객에게 다가온 여인이 마침내 말을 건넨다. 피사체가 관객을 알아보고 말을 거는 이 순간, 관객은 존재의 도치(倒置, inversion), 궁극의 유배를 경험한다. <아메리칸 타운> 중 2D 영화가 갖는 넘을 수 없는 한계, 즉 대상화의 문제는 이렇게 가상현실이라는 매체 안에서 전혀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미학적/상징적으로나마 답을 얻는다. 이렇게 보면, 가상현실 영화에서 관람(viewing) 행위를 ‘체험’이라고 부르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지 깨닫게 된다. 몸을 잃음으로써, 비로소 타자의 고통을 ‘몸소’ 체험(體驗)하게 된다는 역설. 신체성(physicality)을 포기하고 유령(幽靈)—즉, 실체 없는 영혼—이 된 관객은, 더 이상 편안하고 익숙했던 자신의 세계에 머무를 수 없다. 관객은 유배된다. 그러나 일단 자아의 물리적 경계인 몸을 잃고 나면,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인간뿐 아니라 모든 사물과 세계의 ‘---되기(becoming)’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몸을 잃고, 오로지 시선과 의식만 남은 가상의 세계 안에서, 나는 당신이, 풀이, 나무가, 고양이가, 바위가, 파도가, 지구가 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해빙으로 작아진 빙산 위에 위태롭게 선 북극곰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장소적 유배), 심지어 내가 그 북극곰이 된다면(존재론적 유배)? 주인을 잃고 눈폭풍에 홀로 갇힌 작은 새를 구하러 가는 『작별하지 않는다』의 화자가 나라면? 새를 포기할 수 없어 눈보라를 헤치고 걷다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해야 한다면? 아니, 춥고 어두운 새장에 갇혀 그녀가 구하러 오는 줄도 모르고 차갑게 식어가는 작은 새가 바로 ‘나’라면? 이렇게 내장 깊숙이 파고드는(visceral) 강렬한 감각으로, VR 매체는 타자의 고통을 존재의 유배로 ‘체험’하게 한다. *주6 그래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당연하지만, 중요한 것은 가상현실의 세계가 아니라 VR 기어를 벗고 돌아온 실재의 세계다. 가상의 공간에서 당신은 그들이 되어, 그들의 고통을 듣고, 보고, 느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기어를 벗은 당신에게는 목소리가, 몸이 있다. 이제 당신이 나설 차례다. *** 주1. VR 실사(實寫, live action) 영화가 평면 영상물과 달리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360도 전체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에 ‘의도가 배제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는 어불성설이다. 드넓은 세계 속에 VR 카메라로 특정 장소 하나를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연출자의 명확한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 사실, VR뿐만 아니라 카메라를 활용하는 모든 매체에서 ‘중립적 시선’이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Heisenberg Uncertainty Principle)처럼, 관찰자와 대상은 결코 분리될 수 없으며, 완벽히 중립적이고 간섭 없는 관찰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 관찰이 이루어지는 순간, 그 세계는 이미 관찰자의 개입에 의해 변화하기 때문이다. 주2. 본고에서 논하는 VR 매체의 특성은 실사 촬영 기반의 3D 360 영화적 VR 환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실사(實寫, live action) 가상현실 영화에서는 카메라의 위치가 곧 관객의 시점(point of view)이 되며, 360도로 펼쳐진 세계의 중심이 된다.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3D 360 영화적 가상현실 공간 안에서 관객에게 남는 것은 시선뿐이다. 일부 작품에서 관객에게 아바타 형태로 몸을 부여하기도 하지만, 그 아바타의 행동 범위는 극히 제한적이다. 주3. 동두천 , 360 3D 시네마틱 VR, 12분, 2017 주4. 소요산 , 360 3D 시네마틱 VR, 12분, 2021 주5. 아메리칸 타운 , 360 3D 시네마틱 VR, 16분, 2023 주6. 모든 미디어는 가치 중립적이며, 가상현실 매체 또한 마찬가지다. 가상현실이라는 매체 자체가 본질적으로 공감을 이끌어 내거나 인류애를 증폭시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매체의 특성을 활용해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실제로 ‘VR 원년’이라 불리던 2016년, 가상현실 매체를 상업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들 대부분은 공포와 폭력을 피학적 방식으로 변주하는 데 집중했다.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어 침대에 누워 있는 상태를 체험하거나, 납치·감금되어 의자에 묶인 채 가해자와 마주하는 설정의 콘텐츠들이 대표적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작품 역시 타자를 향한 폭력과 성을 관음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 자신을 피해자의 위치에 놓는 피학적 서사라는 사실이다. 시선만 남은 관객은 타인에게 상해를 입히는 능동적 가해자가 되기보다는, 움직일 수 없는 수동적 피해자 혹은 관찰자로 설정되는 것이 이 매체에 더 적합하다. 이런 관객의 위치성은 실사 다큐멘터리 영역에서는 윤리적 미덕으로 환영받았지만, 오락성과 능동적 서사 전개를 중시하는 기존 영화산업에서는 상업적 활용의 한계로 작용했다. 이는 건전한 자본의 유입을 어렵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가상현실 매체의 대중화에 제약을 걸었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 사진 - " 동두천 ", " 소요산 ", " 아메리칸 타운 ", Gina Kim - 필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