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블랙박스-고속도로 졸음운전의 최후 대형사고날뻔
- 제작년도
- 2009
박찬욱 감독의 11번째 장편영화 < 헤어질 결심 >(2022)의 제목은 주체의 ‘의지’를 강조한다. 제목의 주체는 이별을 방해하는 것에 대항해 자기 의지를 다지고 필요한 전략을 실행하고 목표에 도달하고자 한다. 제목만 보면 이 영화는 낭만적인 주체의 세계 대 자아 혹은 자율적인 이성 대 (무)의식적인 욕망 간의 투쟁으로 추정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의 실체는 정반대다. 인간중심적인 주체의 의지를 강조한 이 제목은 반전을 위한 ‘미끼’다. 실제로 영화가 강조하고 관심을 갖는 것은 인간들 사이의 정서적이고 투쟁적인 관계를 넘어, 인간과 비인간, 생물과 무생물, 인공과 자연, 물질과 비물질, 감정과 행위, 데이터와 의미, 사건과 시스템을 가로지르는 다양한 행위자들(actors)의 복잡한 배치와 네트워크이다. 그렇기에 박찬욱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이 영화와 가장 닮은꼴을 찾아본다면 < 파란만장 >(2011, 33분)일 수 있다. 이정현과 오광록 주연의 <파란만장>은 KT의 제작지원을 받아 미디어아트 작가인 박찬경과 함께 작업한 단편으로 당시 신형이었던 아이폰4로만 촬영을 해서 극장 개봉을 했다. 이 영화는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던 시점에 전문가적 역량을 어디까지 구현할 수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제작된 캠페인 영화였다. 두 감독은 각종 취미 및 생활기계가 하나의 기기 안에 통합돼 있으면서도 휴대성과 편재성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개별 기기들의 고성능 라인에 근접하려는 목표를 세우고 있던 스마트폰을,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귀신의 시공간에 접속할 수 있는 영매의 역량으로 은유화 한다. 즉 비인간 기계와 초월적인 영적 존재 사이의 경계를 허물면서 이질적인 것들을 채널링하는 그들의 공통역량을 조명한다. <헤어질 결심>은 짐짓 ‘나’의 정체성을 허물 정도로 깊은 사랑에 빠진 두 사람, 서래(탕웨이)와 해준(박해일)의 파괴적 관계에 집중하는 전통적인 멜로드라마를 가장한다. 그러나 자아와 타자의 경계와 정체성의 “붕괴”는 인간들 사이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 시대 행위자들의 경계는 어떤 면에서 이미 ‘나’ 아닌 것에 매개되고 ‘지금-여기’ 아닌 시공간에 연결되어 있기에 이미 붕괴되어 있다. 영화는 ‘사랑’이라는 근대 사회에서 헤게모니를 갖고 있는 감정언어로 최종적으로 번역되기 이전의 현상, 즉 다층적으로 배치되고 네트워크 되어 있는 행위자들과 그들이 모이고 교차하는 마디점들(nodes)의 감각적 민족지학에 더 관심이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의지(의식의 의미화)와 감정(정동의 의미화)이 있기 전의 사건들을 관찰한다. 경찰인 해준이 졸음 방지를 위해 동료인 수완(고경표)과 통화를 하며 밤 운전을 하는 장면에 나온 대사는 인간주체의 의지를 먼저 앞세우는 습관에서 벗어난 인과관계의 전복을 보여준다. 주체로서의 ‘너랑 나랑’을 강조하는 수완에게 해준은 “잠복해서 잠 부족이 아니라 잠이 안 와서 잠복근무하는 거야”라고 말한다. 영화는 이러한 경계의 무너짐과 네트워크 현상을 강조하기 위해 의인화를 탈피한 비인간 중심의 응시를 곳곳에 배치하고 이질적 시공간을 오고가며 낯설게 사건들을 연결하는 교차편집 기술을 부각시킨다. 특히 시체와 휴대폰부터 디지털 워치, 소프트웨어, 유튜브 플랫폼, 오늘날의 영화체계, 산과 바다, 폭력적이고 잔인한 이민 체계와 가부장제까지 무생물과 비물질의 응시가 이 영화에선 탈인칭 쇼트뿐 아니라 시점 쇼트로도 작동한다. 그래서 영화는 두 사람의 관계와 감정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영화 전반적으로 매우 소란스럽다(내가 끝내 이 영화에 몰입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뿐 아니라 다종다양한 무생물 행위자들도 네트워크에 연결된 자기의 행위성을 숨기지 않기 때문이다. 시끌벅적한 눈들은 일종의 평등함을 부여받는다. ‘인간중심의 좌표를 벗어난 주체의 해체, 비인간적 주관성은 인간도 물질적이고 창발적인 세계의 질료 중 하나가 되게 만든다.’ (스테이시 알라이모) 비인간 시점은 영화사에서 여러 감독들에 의해 다양한 목적을 갖고 사용되어 왔다. 동물, 유령, 신, 사물들, 자연 풍경, 기계와 시스템은 비인간 시점을 표현해온 대표적 행위자들이다. 이 비인간-눈들은 장르적이든 그렇지 않든 대개는 친밀하고 낯선 기이함(the uncanny)의 느낌을 통해 자아와 타자, 내부와 외부,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흔들면서 불안정성을 만드는 데 기여해왔다. 비인간 시점의 미학적 실천은 최근 들어 한층 빈번해지고 있는데 주요하게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하나는 기후위기에 대한 발본적 성찰로 인간중심성을 해체하려는 경향이고, 다른 하나는 디지털화로 인한 물질적인 것의 재규정이다. <헤어질 결심>의 비인간 시점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사랑으로 번역된 것의 네트워크에는 두 사람의 마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인간과 비인간의 동맹이 있다. 영화는 그것을 종종 쇼트와 역쇼트를 하나의 쇼트 내에 보여주는 유사-주관적 시점으로 보여준다. 크레딧 타이틀 이후 나오는 첫 씬에선 서래의 남편인 기도수의 시체의 눈 안쪽으로부터의 응시를 보여준다. 시체 내부로부터의 시점으로 인해 눈동자의 실핏줄과 망막 위를 기어 다니는 클로즈업된 개미가 보인다. 그리고 저 멀리 역쇼트에 해당하는 암벽을 오르는 해준과 수완이 한 프레임에 담기게 된다. 쇼트에 해당하는 보는 주체와 역쇼트에 해당하는 보이는 대상이 한 프레임 안에 담긴다. 그러나 이것은 전통적인 주관적 시점이 아니다. 시체를 ‘보고 있는 주체’로 설정할 수 없기 때문에 영화는 보고 기록하는 기능을 갖고 있는 기계와 같은 시스템으로 표현할 뿐이다. 해준이 그 시체를 보지만 시체 또한 해준을 보고 있다. 그 눈은 살인의 증거를 보았던 눈이기도 하고 살아있을 적에 서래를 폭력적으로 소유하고 통제하던 눈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눈이 현재 어떤 인간적인 욕망과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표현은 특히 병원의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 띄워진 서래 몸의 멍든 사진을 보며 해준이 마우스로 이미지를 확대해 픽셀이 가시화될 때, 휴대폰으로 서래와 문자를 나누거나 녹음된 음성파일을 들을 때 두드러진다. 화면 내부로부터의 시선, 즉 시스템의 시선은 해준과 기계가 서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해준과 서래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 이포와 부산에 떨어져 있을 때, 해준은 밤에 잠이 오지 않자 서래와 문자를 주고받는다. 서로만 아는 방식으로 농담을 할 정도로 관계가 발전해 가는 상황에서 서래가 문자를 쓰고 있는 중임을 표시하는 “…”는 해준의 마음을 동요시킨다. 그것은 기대와 설레임 등으로 언어화할 수 있다. 이 순간 카메라는 다시 휴대폰 내부로부터의 시선을 유지하며 스크린에 표시된 “…”와 휴대폰 스크린을 보고 있는 해준의 얼굴을 디졸브 시킨다. 해준은 “…”의 표현(농도, 깜박임, 지속시간 등)을 포함한 휴대폰의 문자 시스템과 동맹 중이다. 서래와 해준이 서로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번역기와 녹음기를 사용하는 설정도 마찬가지다. 번역기 사용으로 인해 둘의 표현은 문어체에 가깝거나 직설적이게 되고, 심지어 오역을 만들어 낸다. ‘마음’은 ‘심장’으로 번역된다. 사극 드라마를 통해 배운 서래의 한국어는 고풍스럽다. 해준은 서래가 ‘꼿꼿해서’ 좋다고 고백한다. 소프트웨어와 미디어의 사용은 서래를 더 ‘꼿꼿한’ 이미지로 만들어 준다. 해준과 서래가 이포에서 재회한 후, 해준은 서래가 입은 옷의 색상에 집착한다. 그 옷은 청색인가, 녹색인가. 서래를 목격한 사람들은 동일한 드레스를 저마다 달리 증언한다. 그리고 해준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진다. 이 장면은 다분히 2015년 즈음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던 드레스의 색상 논란을 염두에 둔 농담이다. 당시 같은 드레스를 놓고 흰색 바탕에 금색 줄무늬로 보는 사람들과 검은색 바탕에 파란색 줄무늬로 보는 사람들로 나뉘어 뜨겁게 논쟁을 했다. 드레스의 주변 밝기가 동일한 드레스를 다르게 보이게 한 것이다. 인간은 대상만을 떼어내 색을 판별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밝기에 맞춰 원래 색을 판별하려 한다. 뇌는 환경에 맞춰 색체보정을 하고 여러 번 보다보면 학습에 의해 색은 새로운 정보에 상관없이 고정된다. 해준은 서래를 판단함에 있어 새로운 정보가 들어올 때마다 지속적으로 조정한다. 해준은 끊임없이 정보를 찾고 주변 환경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며, 사건이 종결되기 전까지 의미는 고정되지 않은 채 열려 있어야 한다.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는 이상 잠은 불가능하다. 심지어 해준은 꾸준하게 정보를 잘못 읽는다(서래의 몸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운다고 착각했던 것을 생각해 봐라). 오늘날의 세상에서 정보는 쉴 틈 없이 생산되고 또한 왜곡되기 때문에 세계(사건)의 종결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서래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종결하는 법을 안다. 그는 살인자다. 그는 타인뿐 아니라 자신의 삶마저 언제 끝낼지를 주체적으로 정하려 하는 이다. 서래는 주변 환경에 크게 휘둘리지 않고 욕망을 응시하는 이다. 그렇다고 비인간 네트워크를 거부하는 자는 아니다. 그는 오히려 자기가 갖고 있는 기기들을 목적에 맞게 이용한다. 스마트폰의 위치기록 기능을 정확히 알고 있으며, 그 기능을 역으로 사용해 정보를 기록하고 자신의 알리바이를 만든다. 시스템에는 구멍이 있다. 해준은 ‘사랑’이란 말을 직접적으로 한 적이 없지만 서래는 해준이 범행증거를 없애버리라고 한 말과 해준 자신이 붕괴되었다는 말을 ‘사랑’으로 번역한다. 해준이 정보 수집가라면 서래는 번역하는 사람이다. 해준이 미결자라면 서래는 종결자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상대적으로 꼿꼿한 사람이고, 스스로 소프트웨어 혹은 시스템이 될 줄 아는 사람이다. 서래는 해준이 멀리 바다에 던져버리라던 휴대폰 대신 스스로를 바다에 묻는다. 위치기록 소프트웨어에서 그의 위치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사랑의 네트워크에 구멍을 낸다. 이제 사건 혹은 의미화의 종결은 구멍으로서만 가능하다.
1930년 1월 조선극장과 단성사가 토키를 상영하기 시작하면서, 조선의 활동사진 변사들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조선의 영화 문화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던 변사들의 연행이 ‘화예(話藝)’라는 말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원숙한 경지에 이른 때였다. 무성영화 시대를 대표하는 변사의 한 사람, 김영환은 곱상한 외모와 단정한 매너로 흥행계에서 인기를 얻어왔을 뿐 아니라, <장화홍련전>(1924), <세 동무(삼걸인)>(1928), <약혼>(1929), <젊은이의 노래>(1930), <연애광상곡>(1931) 등을 연출한 영화감독이기도 했으며, “낙화유수”, “세 동무” 등의 영화 주제가와 “강남제비”, “추월색” 등의 유행가를 작곡할 정도로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1928년에 단성사에서 조선극장 해설부 주임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앞으로 수년 내에 변사라는 직업이 사라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조선에서의 영화해설 역사를 설명한 음반 《역려》(1932)에서, 그는 자신이 서있는 격변의 시간을 “활동사진이란 그 이름이, 영화라는 이름으로 바꾸이는 동시에 변사라고 하든 것도, 해설자라는 것으로 고치어진 오늘” 1 이라는 정도로 인식했다. 그가 보기에 토키 이후의 변사는 ‘활동사진 변사’에서 ‘영화의 해설자’로, 그러니까 극장의 엔터테이너에서 필름 텍스트에 한걸음 더 다가가 영화의 번역자로서 자기 인식을 가져야 하는 존재였다. 김영환에게는 더 나은 해설자가 되는 것이 중요할 뿐 굳이 다른 분야를 곁눈질할 필요가 전혀 없어 보였다. 김영환은 ‘조선인 변사 1세대’ 서상호와 김덕경의 견습으로 흥행계에 입문했다. 경상도 출신으로 사투리 탓에 견습 시절에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고 꽤 오래 생활고에도 시달렸지만, 이제 영화해설계의 중진이 되자 변사의 화예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는 외국영화뿐 아니라 국산영화를 상영할 때도 변사의 해설이 붙는 일본이나 조선에서 “해설은 외국인들도 일찍 발견치 못한 영화감상의 효과를 한층 더 힘 있게 하는 일종 특수적 색채”이며 “영화를 일반적으로 감상시키는 동시에 영화의 색채와 더 예민한 감각과 인상을 주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작품을 해부하여 일반적 감상에 바치는 일종 수단”인 영화해설에는 그야말로 ‘연구’가 필요하다. “지껄이되 잘 지껄이자는 것이며 어떻게 해야 조리 있게 잘 지껄일까를 힘써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한 연구 끝에 김영환은 영화의 주제와 플롯, 분위기를 이해하고, 작자의 주안(主眼)과 세선(細線)을 분별하는 안목을 보유하며, 영화 번역에 창의성을 발휘하되 자기도취에 빠지지 않는 것이 해설자의 자질이라고 풀어 설명했다. 2 1931년 조선극장에서 <럭비시대>(The Forward Pass, 1929)와 <크랙 장군>(General Crack, 1929)을 상영하던 때, 김영환이 기록한 일기에는 이제 막 토키 시대로 진입한 조선 변사의 일상이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는 하루하루가 바쁜 변사였다. 조선극장에서는 이미 외국의 토키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는데, 김영환은 그 외국어 자막을 번역해 설명하는 연행을 했다. 그런 한편 개인적으로 유성기 극음반을 취입해 상당한 재미를 보기도 했다. 유성기와 라디오 보급률이 서서히 증가하면서 극장에서 ‘오리지널’한 변사의 목소리는 레코드를 통해 ‘복제’되고 방송을 통해 ‘전파’되었다. 변사가 자신의 다른 목소리들과 공존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1930년대의 김영환은 라디오에 출연해 영화를 해설하고 극음반 취입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새로운 ‘재생 예술’들과 상보적인 관계를 형성했다. 어떤 면에서 그는 ‘소리 복제 시대’를 반기고 있었다. 1931년 봄 김영환이 콜롬비아레코드에서 취입한 《춘향전》은 윤혁과 이애리수의 실연(實演)과 박록주의 창, 그리고 그 자신의 설명이 어우러진, 다시 말해 연극과 판소리, 영화해설이 뒤섞인 음반으로서 구매자들에게 풍성한 즐거움을 제공했다. 극음반이 잘 팔린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던 김영환은 극음반 취입의 소감을 이렇게 기록했다. “영화는 형태의 촬영이라면 레코드는 음성의 촬영이다.” 3 기술적 격변의 시기에 그는 쏟아지는 신작 영화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세계 영화계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자, 일본의 영화 잡지 『키네마순보(キネマ旬報)』와 『키네마주보(キネマ週報)』를 구독하며 동시대적인 감각을 익히려 노력했다. 어느 날은 자신이 취입한 음반이 많이 판매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솔직하게 적었지만, 또 어느 날은 일본의 명변사 도쿠가와 무세이(德川夢聲)가 ‘토키영화 설명 반대론’에 대해 반론을 펼친 데 깊이 동조했다. 김영환은 여기서 언어와 계급의 불평등이라는 문제를 제기하며, 토키영화를 해설하지 않는 것은 민중 오락인 영화를 “일부 유식급(有識級)만이 즐길 수 있는 일종 독락적(獨樂的) 기호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새로운 기술 도입으로 인해 일본영화 산업계의 구조 조정이 시작된 것을 영화 노동자의 입장에서 아프게 바라보기도 하는데, 체계를 갖춘 스튜디오 하나 없이 산업적으로 허약한 조선영화의 현실에서는 그것조차도 남의 이야기에 불과했다. 4 기술과 산업의 후진성이 어떤 경험을 ‘결핍’시키거나 ‘지연’시키는 조선의 현실에서, 1930년대 초반의 변사들은 기존의 상영 관습을 이어가는 차원에서, 또 외국어 토키에 대한 관객들의 언어적 소외를 최소화하는 차원에서 발성영화의 음향을 줄이고 영화해설을 곁들이는 ‘토키 연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관객의 항의에 부딪치지는 않았다. 비단 외국어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조선에서는 여전히 무성영화가 제작되고 있었고 아직 토키 상영 설비를 갖추지 못한 극장들도 많았다. 무성영화 프린트는 계속 유통되었고, 변사는 여전히 중요한 존재였다. 그러나 이 시기를 지나며 관객들이 영화 사운드와 영상 동조 시스템을 이해하고 자연스레 토키 감상에 익숙해지자 변사는 점차 불필요한 존재로 그의 연행은 ‘낡은 문화’로 인식되어갔다. 김영환의 일기로부터 몇 년이 지난 1930년대 후반, 경성의 이른바 ‘일류관’에서 변사의 해설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근대 문화의 첨단에 서 있었던 변사들은 불과 몇 년 사이에 활동사진 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1938년 가을, 조선일보영화제에 자극을 받은 ‘재경해설유지연맹(在京解說有志聯盟)’이 동양극장 영화부의 후원을 얻어 11월 16일부터 3일간 ‘무성영화 감상제’를 개최했다. 그해 여름 우미관 화장실에서 변사한 왕년의 인기 변사 서상호를 추모하듯, 무성영화 감상제에서는 과거의 동료들인 ‘무성영화 해설계의 권위’ 변사 이십여 명이 해설을 하고 그들과 함께 이름을 날리던 악사들이 영화음악을 연주했다. 5 <선라이즈>(Sunrise: A Song of Two Humans, 1927), <부활>(Resurrection, 1927), <거리의 천사>(Street Angel, 1928), 그리고 조선영화 <철인도>(1930), <아리랑 전·후편>(1926, 1930) 등 ‘추억의 명화들’이 이병조, 최병룡, 서상필 등의 해설로 다시 상영되었다. 그때가 아마도 ‘잊혀졌던 암실의 웅변가’들이 마지막으로 화려하게 조명된 시간이었을 것이다. 사진 2. ‘무성영화감상제’ 광고 출처: 『동아일보』 1938년 11월 16일자, 3면. 1) 배연형·구인모,「역려」『유성기 시대, 변사의 화예』, 한국문화사, 2018, 321쪽. 2) 김영환,「영화해설의 소고(小考)」『대중영화』 제4호(1930년 7월), 8~13쪽. 3) 김영환,「영화생활」『영화시대』 1권 3호(1931년 5월), 32쪽. 4) 김영환, 위의 글, 30~31쪽. 5) 「해설유지 주최 무성영화감상제」『동아일보』 1938년 11월 17일자, 4면. 상단사진 1. 변사 김영환의 영화일기 출처: 「영화생활」, 『영화시대』(1931년 5월) (아단문고 미공개 자료 총서 2013, 7권, 104쪽) <자료> ※ 이하 자료는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현대어 표기에 맞게 다시 썼다. 일부 표현은 문맥에 맞게 다듬었다. 1. 김영환, 「영화생활」 『영화시대』 1권 3호(1931년 5월), 30~32쪽. (부분 발췌) 3월 7일 (토) 10시 기상— 근래 처음으로 충분히 잠을 잔 모양이다. 어린애가 몸성히 잘 있다는 편지가 왔으므로 오늘은 마음이 좀 편해진다. 오늘은 토요일, 주야(晝夜) 곱빼기를 또 마시는 날이다. 『영화시대』에 보낼 원고 몇 장을 쓰고 나니 벌써 무대 교대 시간이 되었다. 마음에 없는 작품을 지껄이는 것이야말로 울면서 겨자 먹기, 이를테면 ‘빵’ 구실에 지나지 못하니 ‘밥’이 시키는 것이라 어쩔 수 없다는 그것뿐. 밤에 김연실, 강석연, 강석제, 유영광 이 네 분의 양(孃)들이 놀러 왔었다. 편지 쓰고 있던 때라 고급적 인사를 못하였더니 “방해가 너무 많아 미안합니다”라고 석제 씨의 꼬는 말씀 한마디에 낭자군은 일제 행동! 네 분의 양군(孃群)은 객석으로 달아났다. 저녁 일을 마치고 『키네마순보(キネマ旬報)』(3월 1일 제393호)를 통독함. 유니버설 춘계 작품 에드윈 커리우 (Edwin Carewe) 감독, 루프 벨레즈 (Lupe Velez) , 존 볼스 (John Boles) 주연으로 톨스토이의 『부활』이 재차 영화화가 된 모양. 반가운 소식이다. 돌로레스 델 리오 (Dolores del Rio) 가 지긋지긋하게 싫으니만큼 전(前) 영화 <부활> (Resurrection, 1927) 에서도 나는 호감을 가지지 못했던 것이라 재차 영화화인 루프 벨레즈와 존 볼스의 이 신(新) <부활> (Resurrection, 1931) 에 나는 기대를 가져본다. 메트로골드윈메이어 영화로 세실 B. 드밀 (Cecil B. DeMille) 감독 <마담 사탄> (Madam Satan, 1930) 의 발표는 그리 반갑지가 않다. 또 어느 구석에서든지 기필코 하나님이니 무엇이니 하고 씨부렁대놓은 구절이 있을 것 같아서 평(評)이나 시사를 대하기 전까지는 믿고 싶지가 않다. 동 회사 클래런스 브라운 (Clarence Brown) 감독 <불사조> (Wonder of Women, 1929) , 문호 주더만 (Hermann Sudermann) 의 원작인 만치 스토리의 통속적이 아니요, 비상업적인 그 점에서 어서 좀 보고 싶다. 일활(日活) 촬영소에서는 소원(所員)의 감봉 정리를 단행하였다고? 해고당한 50명 중에는 기술자나 배우로서 제일선에 나선 사람은 하나도 끼이지 않은 모양. 그러고 본즉 결국 수하 자(手下者) 참수 단행이나 아닌지 원! 먹을 것이 제법 생긴다는 저 땅에서도 영화 노동자의 수난이 생길 데에야 백사지(白沙地) 이 땅 위에서 갈팡질팡 헤매는 우리 영화 노동자들이야 말해서 무엇 하리. 아직도 참수 단행은 당하지 않았으니 그것으로나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도쿠가와 무세이(德川夢聲) 씨의 「영화연첨일기(映畫軟尖日記)」, 『키네마주보(キネマ週報)』소재, 토키영화 설명 반대론에 대한 대항전은 흥미 있게 읽었다기보다도 장차 우리에게도 전환되어올 수난일 듯한 거기에서 같은 감정에 가슴이 흔들린다. 토키영화 설명 반대론에 대해서는 나 역시 거기에는 수긍하지 않는다. 당사자의 직업적 입장에서가 아니라 제3자의 견지로도 물론 그러하다. 만일 세계 공통어가 세계적 보급과 발달을 얻고, 그리하여 그 세계 공통어로 취입(吹込)하여 토키영화를 제작한다면 모르되, 그것을 얻지 못하는 금일에 있어서 토키영화 설명 반대를 고창(高唱)하는 것은 민중 오락에 본위를 가진 영화 그 물건으로 하여금 일부 유식급(有識級)만이 즐길 수 있는 일종 독락적(獨樂的) 기호물을 만들어 버리겠다는 전횡적 야심인 동시에 가공적 잠꼬대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아! 과학문명의 발달은 노동자의 생명을 뺏는 독와사(毒瓦斯)! 축음기의 권위로 말미암아 음악사(音樂士)의 희생을 본 오늘에 있어 토키영화의 출현으로 해서는 또다시 해설의 존재까지 그러하지 않은가! “아- 쿠오바디스 (Quo Vadis) 변사여!” 무세이 씨의 차탄사(嗟歎詞)이다. 참 아닌 게 아니라 어디로 갈꼬! 3월 8일(일) 9시 기상- <럭비시대> (The Forward Pass, 1929) 를 오늘도 주야로 두 번씩이나 씨부렁댈 일을 생각하니 졸음이 온다. 존 배리모어 (John Barrymore) 주연 <크랙 장군> (General Crack, 1929) 은 내가 보지는 않았으나 생각건대 <럭비시대>보담은 지껄일 재미가 좀 있으리라 했더니 후반을 담임한 성동호 군, 지긋지긋해 죽겠다는 말. 그러나 <럭비시대>나 <크랙 장군>이 태작이라고 할 지경이면 배급소의 시비를 받을 말인 고로 이를테면 어디까지든지 태작이 아니요, 걸작이란 말이다. 요컨대 이 두 개의 걸작이 유감천만히도 우리들의 입에는 맞지 않는 음식과 같아 씨부렁대기에 매우 부아통이 터질 뻔 했다는 그것뿐이니 당해 배급소여! 달은 잡지 마실지어다. 적선동 강대원 씨에게 조극(朝劇) 초대권으로 미성(微誠)을 표하였다. 콜롬비아축음기회사 문예부 강윤석 씨 방문, 나의 취입한 레코드 초회 발매, 레코드 대회, 2회 발매, 《춘향전》은 상당히 잘 팔린다는 말 듣기에 기쁘다. 영화는 형태의 촬영이라면 레코드는 음성의 촬영이다. 촬영을 마친 영화배우나 취입을 마친 취입자의 궁금증은 피차가 일반이니 시사나 시험반(試驗盤)을 대하기까지에 일력장(日曆帳)이 곤죽이 되어버리는 것도 똑같은 일이다. 3회 발매품은 무엇인지 어떻게 되었을까. 잘 되었으면 좋고, 못 되었으면 낙망! 낙망! 단성사 해설부 견습이던 편순만 군. 조극 무대로 오겠다는 것을 단성사 해설 주임 김덕경 씨의 승낙을 맡아오라 했더니 저녁에 씨(氏)의 쾌락을 맡아왔음으로 즉시 출연을 허락하였다.
영화의 여명기, 당시 ‘움직이는 사진’(motion picture)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던 에디슨 사(社)는 자신들이 제작한 단편 필름 작품의 저작권 등록을 위해 프레임 전체를 종이에 프린트해 미의회도서관에 납본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초기 무성영화의 이런 저작권 등록 방식은 실물 프린트를 통해 저작권을 등록하고 돌려받는 식으로 정책이 바뀐 1912년까지 지속되었다. 즉 1912년 이전까지 미국에서 영화는 사진의 형태를 취함으로써만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보면 번잡하기 짝이 없는 이런 저작권 등록 방식 덕분에 당대의 영화 상당수가 보존될 수 있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아이러니다. 화재에 취약한 질산염 필름(nitrate film)으로 제작되었던 초기 영화의 상영본과 오리지널 네거티브 대부분이 하나둘씩 사라져가는 동안, 미의회도서관에 보존되었던 이 ‘종이 프린트’(paper print)들은 자신이 소중하게 품고 있는 형상들의 그림자를 스크린에 다시 투사할 그날을 망각 속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에디슨 사에서 제작한 키네토스코프(Kinetoscope)용 단편 <재채기>(1894)의 종이 프린트. 총 45프레임. 저작권 등록(1894년 1월 9일)된 최초의 영화. 1942년, 당시 미의회도서관 저작권관리국 직원이었던 하워드 월스(Howard Walls)는 저작권 관련 자료들을 검토하던 중 그때까지 방치되어 있던, 1894년부터 1912년 사이에 제작된 3,000여 편의 영화의 종이 프린트 더미들을 발견한다. 월스는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의 지원을 얻어 종이 프린트들을 다시 셀룰로이드 필름에 옮기는 프로젝트에 착수했지만, 종이에서 필름으로의 매체 전환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함으로써 이 프로젝트가 결실을 보게 된 것은 켐프 니버(Kemp Niver)를 통해서였다. 1950년대 초부터 니버를 통해 프로젝트가 다시 활성화된 이후 1965년 즈음에는 종이 프린트 대부분이 16mm 필름 프린트로 전환되기에 이른다. 월스와 니버, 그리고 종이 프린트에 얽힌 이 흥미로운 역사는 사실과 허구를 뒤섞은 빌 모리슨의 아름다운 단편 <그녀의 영화 The Film of Her>(1996)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종이 두루마리에서 되찾은 미국 역사>(1953, 19분) 종이 프린트를 16mm 셀룰로이드 필름으로 전환하는 공정을 흥미롭게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당시 복원된 초기 영화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켐프 니버가 대본을 쓰고 연출했다. 미의회도서관 소장 종이 프린트의 복원 소식에 관심을 가진 이들 가운데는 미국 아방가드르 영화감독 켄 제이콥스도 끼어 있었다. 세인트존스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던 그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보여줄 요량으로 몇 편의 복원 프린트를 대여했다. 이 가운데 한 편의 영화가 특별히 그의 관심을 끌게 된다. 1905년에 빌리 비처(Billy Bitzer)가 촬영하고 연출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 릴짜리 작품 <톰, 톰, 피리꾼의 아들>이 그것이다. 스콧 맥도널드(Scott Macdonald)와의 인터뷰에서 켄 제이콥스와 그의 부인 플로 제이콥스는 이 작품을 소재로 작업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플로 제이콥스 : 하지만 이 영화들을 학생들에게 보여주기 전에 필름들이 저희 집에 배송되어 왔고 그래서 그가 그것들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는 그것들을 보면서 이래저래 만지작거리곤 했는데 요즘에 신경시스템(Nervous System: 켄 제이콥스가 고안한, 잔상효과를 이용한 환각적 영사 방식)을 가지고 하는 식은 아니었고요, 그보다는 “와! 이거 봐, 내가 이 남자를 뒤로 움직여볼게!” 하는 식이었죠. 켄 제이콥스 : 점점 더, 저는 일종의 퍼포먼스를 하듯 이 필름들을 다루기 시작했어요. 그리고는 친구들을 불러 그들 앞에서 퍼포먼스를 해 보였죠. 한 번은 퍼포먼스가 끝났는데, 제 친구인 화가 존 쿠스(John Koos)가 다가왔어요. 전 그때 완전히 기진맥진해져서는 벽에 등을 기대고 영사기 옆에 서서 어질어질한 가운데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물건들을 정리하려던 중이었거든요. 그런데 그가 말하길 “켄, 이거 끝내주는데! 이건 꼭 촬영해둬야 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러려고 생각했어.”라고 대답했죠. 실제로 그럴 생각이었고요. 그가 제 어깨를 꽉 붙들면서 말했죠. “꼭 그렇게 해!”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방가르드 영화사(社)의 기념비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톰, 톰, 피리꾼의 아들(Tom, Tom, the Piper's Son)>(1969~1971)이다. 종종 이 작품은 1905년의 무성영화 필름을 소재로 작업한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작품으로 기술되곤 하는데 아주 틀린 말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러한 기술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원본 영화의 필름 복제본이나 디지털 영상클립을 가지고 작업하는 통상적인 파운드 푸티지 작품들과는 달리, 제이콥스의 <톰, 톰, 피리꾼의 아들>은 반투명 스크린에 1905년 작 원본 영화를 구식 칼라르트-빅터(Kalart-Victor) 16mm 영사기로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뒤로 그리고 다시 앞으로, 때로는 깜빡이게, 때로는 멈추는 식으로 영사한 것을 16mm 카메라로 스크린 반대편에서 재촬영한 기록물을 토대로 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이 작품은, 에이빈 뢰사크(Eivind Røssaak)가 지적한 대로, “아카이브적인 것과 퍼포먼스적인 것 사이의 인터페이스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윌리엄 호가스의 판화 <사우스워크 장터>(위)와 빌리 비처의 <톰, 톰, 피리꾼의 아들>의 첫 번째 장면(아래) 제이콥스의 <톰, 톰, 피리꾼의 아들>은 여러 다양한 방식으로 보는 이를 끌어당기는 작품이다. 이를테면 물성(materiality)에 집중하는 아방가르드 영화의 한 경향에 매혹을 느끼는 이라면, 때론 더 이상 형상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필름의 세부를 확대해 입자(grain)를 감촉하게 하면서 미적 경험을 끌어내는 부분에 흥미를 가질 것이다. 혹은 매체를 가로질러 이루어지는 표현의 역사에 관심을 지닌 이라면,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rgath)의 판화 <사우스워크 장터 Southwark Fair>(1733)에 묘사된 광경이 빌리 비처를 통해 운동감을 얻고, (종이 프린트 형태로 미의회도서관에 보관되었다가) 제이콥스의 손을 통해 다시 떠들썩한 영화적 환영으로 되살아나는 과정에 흥미를 느낄 것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불러일으키는 환각적 경험의 힘은 굉장하다. 원본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형상들을 멈추고, 확대하고, 깜빡이게 하는 영화적 안무의 광경을 지켜보는 동안 관람자는 일시적으로나마 다른 우주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제이콥스의 영화가 도취의 경험에만 탐닉하면서 원본 영화를 무정형적인 시각적 덩어리로 재가공하고 있느냐 하면 또 그렇지 않다. 몇몇 평자들이 지적한 대로 제이콥스의 작품은 일종의 “세미나 같은”(뢰사크) 분석적 구조 — 원본 영화 전체를 보여주고, 이어 제이콥스 자신에 의해 꼼꼼히 탐사되고 변주된 영화를 보여주고, 다시 원본 영화를 보여준 후에 짧은 에필로그로 마치는 방식 — 를 취하고 있다. <톰, 톰, 피리꾼의 아들>의 전체적 구조에 실제로 자신이 학교에서 영화를 가르치는 방식이 반영되어 있음은 제이콥스 스스로도 인정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니콜 브레네즈(Nicole Brenez)와 같은 평론가는 언어에 기반을 둔 종래의 이론적 연구를 확장시키는 ‘시각적 연구’(visual study)의 탁월한 사례로 <톰, 톰, 피리꾼의 아들>을 꼽기도 한다. 브레네즈에 따르면 제이콥스는 “기술적 선도라는 면에 있어서나 텍스트적이고 영화적인 표명에 있어서도 중요한 이론의 창조자”이다. 하지만 결국 <톰, 톰, 피리꾼의 아들>에 대해 가장 근사한 설명을 내놓은 것은 제이콥스 자신이다. “예술은 타격을 가해 당신을 수백만 조각으로 토막을 내고는 다음 타격을 위해 결합시킨다. 작품에는 질서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질서는 정신없는 경험을 자극하기 위한 방안(recipe)일 뿐이다.” 한편으론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는 것도 가능하겠다. 여기서 제이콥스가 겨냥하고 있는 것은 그 자신이 필름을 조작하면서 내뱉은 “와!”, 혹은 그의 16mm 퍼포먼스를 본 친구 존 쿠스가 내뱉은 “끝내주는데!” 같은 감탄을 불러일으켰던 ‘바로 그’ 시공간의 특이성 자체를 영화화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즉 여기서 제이콥스는 퍼포먼스라고 하는, 일시성과 현장성(actuality)에 속박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사건 자체의 경험을 영화적 장치로 포착하고 재구성한다는 대담한 모험에 뛰어든 것이다. 3D와 가상현실(virtual reality) 기술이 본격적으로 우리의 경험을 재구조화하기 이전에 시도된, 전통적 시네마토그래프 장치를 통한 ‘경험의 복제’라는 실험. <톰, 톰, 피리꾼의 아들>이 영화사(史)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희유한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여기서 제이콥스의 야심은 카메라 앞에 놓인 사물, 인물, 혹은 사건과 같은 현실을 복제하고 이를 재구성함으로써 영화적 경험을 제공한다는 익숙한 영화관(觀)을 이미 훌쩍 넘어서 있다.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퍼포먼스는 그것을 단순히 카메라에 기록하는 것만으로는 경험의 질감과 양감을 상실한 건조한 사건으로 남게 된다. (예컨대 무대극을 현장에서 기록한 영상물들은 어쩐지 생기 없는 인형놀이와 같은 느낌을 준다.) <톰, 톰, 피리꾼의 아들>은 제이콥스가 1905년 작 원본 영화로 16mm 퍼포먼스를 행하고 있는 광경이나 그 퍼포먼스가 이루어지는 동안 반투명스크린에 비친 영상을 단순히 기록한 것이 아니다. 이 퍼포먼스가 이루어지는 동안 스크린에 비친 영상은 삼각대를 장착한 핸드헬드 카메라를 통해 다양한 크기로 촬영되었고 이후 이 촬영본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정교하게 편집되었다. (반면 오늘날 신경시스템을 이용한 제이콥스의 퍼포먼스는 스크린에 비친 시각적 형상들을 고정된 카메라로 장시간 촬영해 편집 없이 상영용 디지털 버전으로 제공되곤 한다.) 이따금 제이콥스는 어둠 속 한가운데 조그맣게 빛나는 스크린을 보여주거나, 필름이 되감기는 광경을 보여주거나, 영사 중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그림자놀이를 하는 광경을 삽입함으로써, <톰, 톰, 피리꾼의 아들>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원본 영화 자체가 아니라 스크린에 비추어 재촬영한 영화의 표면임을 꽤 직접적으로 환기시키기도 한다. (아래 그림 참조) 1905년 원본 영화의 프레임 일부가 확대되어 보이다가(좌) 갑자기 어둠 속에서 빛나는 스크린 전체가 보인다(우) 필름이 되감기는 광경 스크린 왼쪽에 영사 도중 그림자놀이를 하고 있는 누군가의 손가락이 보인다 제이콥스의 <톰, 톰, 피리꾼의 아들>이 경험의 복제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은, 이 영화가 그에 걸맞은 상영 환경을 영화적 장치로서 요구하고 있다는 뜻도 된다. 이 영화는 통상적인 영화관 환경보다는 (제이콥스가 1905년 원본 영화를 가지고 그의 16mm 퍼포먼스를 행한 환경과 유사하게) 영사기가 영사실이 아닌 객석 가운데 자리한 상태에서 주기적으로 모터 소리를 공간에 퍼뜨려가며 스크린에 이미지를 투사할 때 비로소 과거의 퍼포먼스라는 사건 자체를 현재적 경험으로 되살려 놓는 것처럼 보인다. 국내에서 <톰, 톰, 피리꾼의 아들>이 필름으로 처음 상영된 것은 2016년 10월 16일 문래예술공장에서였는데 —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을 주관하는 무빙이미지 포럼이 마련한 『영화에 관한 3개의 강연과 노트』 행사의 일환으로 —이때 상영환경 또한 바로 그러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상영될 때, <톰, 톰, 피리꾼의 아들>은 어느 순간 그것의 영사를 감싸고 있는 공간을 기묘하게 유령적인 활력으로 물들인다. 과거의 퍼포먼스라는 사건 자체가 지극히 감각적으로 현전하게 되지만 어디까지나 곧 부서질 것 같은 환영적인 느낌으로만 그러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강의를 들을 때 으레 그러하듯) 때론 졸음을 부르기도 하는 나른한 긴장 속에 임하면서, 유령화된 공간 저편에서 빛나는 스크린으로부터 문득 생생한 유령들이 튀어나와 춤추는 것을 목도할 때, 그 춤이 절대적으로 지금/이곳(now/here)에서 펼쳐지는 어디에도 없는(nowhere) 춤이라는 것을 감히 부인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 본문에서 집중적으로 다룬 <톰, 톰, 피리꾼의 아들>은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켄 제이콥스의 작업에 관심을 가진 이라면 옥스퍼드대학출판부에서 나온 선집 『Optic Antics: The Cinema of Ken Jacobs』(2011)를 참고하면 좋다. 본문에서 인용한 에이빈 뢰사크의 글 「Acts of Delay: The Play Between Stillness and Motion in Tom, Tom, The Piper's Son」과 니콜 브레네즈의 글 「Recycling, Visual Study, Expanded Theory: Ken Jacobs, Theorist, or the Long Song of the Sons」 또한 이 책에 수록되어 있다. 본문에서 인용한 인터뷰는 캘리포니아대학출판부에서 나온 스콧 맥도널드의 『A Critical Cinema 3: Interviews with Independent Filmmakers』(1998)에 수록되어 있다. 제이콥스의 영화세계 전반과 신경시스템 혹은 신경환등기(Nervous Magic Lantern)의 원리에 대한 개괄적인 안내를 얻고 싶다면 『씨네 21』에 실린 중앙대학교 김지훈 교수의 글 「 무한과 역설의 영화 」를 참고하길 바란다. 신경시스템의 원리를 활용한 제이콥스의 장편으로 가장 잘 알려진 작품 가운데 하나는 <로렐과 하디가 등장하는 시각적 익살광대극: 안녕, 몰리 Optic Antics Starring Laurel and Hardy: Bye, Molly>(2005)인데 이 또한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켄 제이콥스의 아들인 에이저젤 제이콥스(Azazel Jacobs)는 촉망받는 독립영화 감독 가운데 한 명으로, 그의 <마마스 맨 Momma's Man>(2008)에는 켄과 플로 제이콥스 부부가 주인공의 부모 역으로 출연해 거의 그들 자신을 연기하다시피 한다. 1965년 이후 이들이 거주해 왔던 뉴욕 맨해튼 아파트(꼭대기 층)가 영화의 주요 무대가 되고 있어 흥미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