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삼태보
- 감독
- 이정륜
- 출연
- 황일화, 진옥련
<변신> 올 여름에는 < 변신 >( 김홍선 , 2019)과 < 암전 >( 김진원 , 2018), 한국 공포영화 2편이 개봉했다. 8월 21일 개봉한 <변신>은 29일까지 100만명이 넘는 관객이 들며 좋은 성적을 냈고, 8월 15일 개봉한 <암전>은 10만명의 관객이 아쉽기는 하지만 정통 공포영화로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매년 여름마다 공포영화 2, 3편이 개봉하고 적어도 한 편 정도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호시절이 돌아오는 것일까? 아직 판단은 힘들지만 공포영화가 이전보다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암전> 최근 몇 년간 한국은 물론 해외의 공포영화들이 좋은 흥행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시작은 2013년 제임스 완의 < 컨저링 >이었다. 이후 애너벨 시리즈와 <더 넌> 등으로 확장된 컨저링 유니버스의 출발인 <컨저링>은 한국에서 226만명의 관객이 관람했다. 보통 5백만은 넘어야 히트작이라고 보겠지만 공포영화의 경우는 다르다. 한국에서 공포영화는 한국이나 해외 작품 가리지 않고 마이너 장르다. 한때 < 여고괴담 >( 박기형 , 1998), < 장화, 홍련 >( 김지운 , 2003) 등의 히트작이 나오기는 했지만 지속된 흐름으로 정착되지는 못했다. 4, 5편의 공포영화가 경쟁하던 여름도 있었지만 시류에 맞춰 조잡하게 만들어낸 작품은 관객의 실망으로 이어졌다. 공포영화에 관심이 없고, 좋아하지도 않는 프로듀서와 감독이 저예산으로 관객의 관심을 끌기 위해 급조된 작품이 많았다. 공포영화의 ‘스릴’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정교한 테크닉이 필요할 뿐 아니라 ‘공포’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 무서운 분장과 깜짝 효과만으로는 공포영화를 만들 수 없다. <컨저링>이 성공한 후 2014년 < 애나벨 >(존 R. 레오네티)은 92만명, 2016년 < 컨저링 2 >(제임스 완, 2016)는 192만명의 관객이 들었다. 호러영화의 전통적인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리메이크한 ‘컨저링 유니버스’는 젊은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리고 2015년에는 장재현 감독의 < 검은 사제들 >이 544만명의 대성공을 거두었다. 사제복을 입은 미남이라는 컨셉을 앞세운 트렌디한 영화였고, 공포의 문법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였다. 장르적 완성도가 높았다. 2017년에는 미국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조던 필 감독의 < 겟 아웃 >이 213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해외에서 화제를 끌기는 했지만, 무명 감독 연출에 흑인들이 주연을 맡은 <겟 아웃>의 성공은 놀라운 일이었다. < 애나벨:인형의 주인 >(데이비드 F. 샌드버그>도 193만명의 관객이 들었다. 전작의 2배가 넘는 흥행이었다. 미국에서 대성공을 거둔, 스티븐 킹 원작의 < 그것 >(앤드레스 무시에티)이 88만명이라는 아쉬운 성적이기는 했지만, 한국에서도 화제성을 가진 공포영화라면 대중성이 있음을 증명했다. 2018년에는 다양한 공포영화가 선보였다. 실화 괴담을 소재로 한 < 곤지암 >( 정범식 )을 267만명의 관객이 봤고, 컨저링 유니버스에 속하는 <더 넌>이 101만명이었다. 공포만이 아니라 예술영화의 범주로도 가능한 < 유전 >(아리 에스터)은 17만명이 들었다. 페이크 다큐 형식으로, 실재했던 곤지암의 폐건물을 찾아가는 내용인 <곤지암>은 한국 공포영화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평가할 수 있다. 특별한 스타나 화제 없이도 관객들은 흥미로운 공포영화를 선택한다. 또한 공포 장르는 중독성이 높아 한 번 좋아하게 되면 지속적으로 장르를 소비한다. <사바하> 올해는 <검은 사제들>의 장재현 감독의 신작 < 사바하 >가 239만명, < 겟 아웃 >의 조던 필 감독의 신작 < 어스 >가 147만명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애나벨 시리즈 3번째 영화인 < 애나벨 집으로 >(게리 도버먼)도 48만명이 들었다. 모두 관객은 전작보다 줄었지만, 전작보다 약한 화제와 임팩트에도 이 정도의 거둔 것은 평가할 수 있다. 다음 작품의 완성도가 이 감독들의 미래를 결정지을 것이다. 공포영화는 메이저에서 성공을 거두기가 쉽지 않은 장르다. 드라큘라와 프랑켄슈타인, 늑대인간 등이 등장한 유니버설 호러의 성공 후에도 호러는 서브컬처의 영역에 속했고, B급영화로 주로 만들어졌다. 호러가 메이저로 복귀한 것은 윌리엄 프리드킨의 < 엑소시스트 >(1973)가 대성공을 거둔 덕이었다. 그리고 1980년대 <할로윈>, < 13일의 금요일 >, < 나이트메어 > 등 10대 관객이 좋아하는 슬래셔 호러가 인기를 끌었다. 90년대 들어 주춤하던 할리우드 호러는 슬래셔 호러를 변주한 웨스 크레이븐의 < 스크림 >(1996), < 링 >(나카다 히데오, 1998)과 < 주온 >(시미즈 다카시, 2002)이 주도한 J호러가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되면서 잠깐 주목을 받았다. 최근 공포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공포영화가 선전하고 있는 것은, 세계적인 흐름의 영향이기도 하다. 할리우드는 물론 동남아에서도 요즘 공포영화는 약진하고 있다. 제임스 완 감독의 컨저링 유니버스가 대성공을 거두었고, <겟 아웃>과 <유전> 등 예술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 호러영화가 선전했다. 케이블 채널과 넷플릭스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는 9시즌까지 나온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를 비롯하여 넷플릭스의 <힐하우스의 유령>, 스티븐 킹 원작의 <제럴드의 게임> 등 저예산의 공포영화와 드라마가 탄탄한 인기를 과시한다. 또한 동남아인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대만 등에서 공포영화가 그 해 흥행 1위나 높은 순위에 오르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전통적 호러 강국인 태국에 이어 <사탄의 숭배자>와 <드레드 아웃>의 인도네시아, <마신자> 시리즈와 <카르마>의 대만 그리고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에서도 활발하게 호러영화가 만들어지고 흥행에서도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저예산이 가능하면서 확실한 마니아를 거느리는 호러영화는 다큐멘터리와 함께 21세기 들어 제작편수가 가장 많이 늘어난 장르이며 인기 장르가 되었다.
공포영화를 고르는 방법은 간단하다. 무조건 본다. 소재가 흥미롭거나, 취향에 따라 고어 장면이 많을 것 같거나, 귀신이 나온다거나 뭐든지 상관없다. 자신이 좋아하거나 끌리는 것을 선택한다. 하지만 소재가 무엇이건, 고어가 많이 나오건 말건, 원하는 즐거움과는 거리가 멀 수 있다. 아무리 설정이 그럴듯해도 긴장감이 전혀 없다면 허탕이다. 고어 장면이 많아 나오면 적당히 볼 수 있지만 그래도 마찬가지다. 공포영화를 보는 이유는 주로 하나에 집중된다. 공포감, 긴장감, 두려움을 느끼기 위해서. 하위 장르로 내려가면 단 하나의 포인트에도 만족할 수 있지만 그것은 극단적인 마니아들에 한정한다.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똑같은 내용이라도 연출력에 따라서 너무 차이가 난다. < 링 > < 주온 > 등을 제작하며 J-호러를 이끌었던 프로듀서 이치세 다카시게는 공포영화야말로 가장 테크니컬한 장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캐릭터가 좋고, 플롯이 뛰어나다 해도 연출력이 부족하여 지지부진하다면 공포영화로는 낙제점이다. 공포 없는 공포영화는 일반인에게 호평을 받을 수도 있지만 공포영화 마니아들에게는 비난을 받는다. 반면 < 데드 캠프 >처럼 너무나 식상한 소재일지라도 긴장감이 뛰어나면 찬사를 받는다. 물론 장르 영화의 특성상 관습은 중요하다. 공포영화 마니아는 특촬물 마니아 못지않게 관습을 좋아한다. 난도질 영화에서 살인마들은 언제나 뚜벅뚜벅 걸어 다닌다. 마이클 마이어스도, 제이슨도 절대로 뛰지 않는다. 그러나 열심히 달려서 도망치는 희생자들은 언제나 발목을 잡힌다. 살인마의 위엄을 지키면서도 살육의 순간은 반드시 필요하니까. 그래서 공포 패러디 영화에서는, 카메라가 찍지 않을 때 맹렬하게 뛰는 살인마를 보여주기도 한다. 관습만 제대로 보여준다면 일반 관객에게는 역겹고 식상한 영화가 되겠지만 마니아는 만족한다. 결론을 말하자면, 공포영화 마니아들은 일단 모든 공포영화를 보고 싶어 한다. 아니면 내키는 대로 본다. 소재가 약간 흥미로운 영화를 고르긴 하지만 확률은 동일하다. 캠핑을 간 젊은이들이 살인마를 만난다. 그야말로 뻔하지만 일단 본다. 살인마의 캐릭터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추격 장면이 살아 있고 죽음의 순간이 짜릿하기만 하다면 좋다. 공포영화 마니아 역시 전작이 좋았던 감독을 일단 고르고, 다음으로는 마구잡이로 본다. 대체로 실망한다. 확률은 높지 않다. 수작을 만나는 건 1/5 정도 될까. 요즘 같이 공포영화가 침체되어 있는 시대라면 수작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더욱 신중하게 고른다. 신작이 나와도 가급적 보지 않다가 감상평이 나오는 것을 기다린다. < 사우스바운드-죽음의 고속도로 >(이하 사우스바운드)도 볼만하다는 말을 들은 후에야 손이 갔다. 옴니버스 공포영화다. < V/H/S: 죽음을 부르는 비디오 >가 작은 성공을 거둔 후 옴니버스 공포가 많아졌다. 일본은 아예 옴니버스가 대세다. 실화 괴담이 공포물의 주류가 되다 보니까 세밀한 플롯이 없어도 되는, 간단하면서도 임팩트가 있는 옴니버스 공포에 주력한다. <신미미부쿠로> <토리하다> <정말로 있었던 무서운 이야기> 등등. 옴니버스는 길면 30분, 짧으면 3분에서 5분 정도의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유가 무엇인지, 결말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여줄 필요도 없다. 길을 가다가 귀신을 만났고, 도망쳐서 겨우 벗어났다. 그런 정도로만 있어도 충분하다. 귀신이 등장하고 쫓길 때의 임팩트만 있으면 성립하니까. 하지만 실화 괴담의 유행은 공포의 근원을 깊숙하게 파고드는 기본기를 잊게 하는 경우도 많다. < 사우스바운드 >는 남쪽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접어든 이들의 이야기다. 피를 뒤집어쓰고 운전하는 남자 두 명이 있다. 재즈를 연주하는 여성 세 명이 있다. 아내와 통화하며 집으로 돌아가던 남자가 있다. 실종된 여동생을 찾아 헤매는 남성이 있다. 일단 죽음의 고속도로에 들어서면 그들은 헤어날 수 없다. 끝없이 반복하다가 결국은 죽거나 갇혀버린다. <사우스바운드>의 첫 에피소드에서는 이상한 존재가 등장한다. 휴게소에 들렀다가 같은 길을 계속 가고 있는 두 남자에게 이상한 것이 보인다. 허수아비 같기도 하고, 해리 포터 시리즈의 디멘터 같기도 하다. 그들이 뒤를 따른다. 아무리 달려도 같은 길 위에 있고, 기이한 존재들이 뒤를 따른다. 그러니까 <사우스바운드>는 초자연적인 공포영화다. 한 번 길에 들어선 후 헤어날 수 없는 가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공포물. 완전하게 독립된 이야기들은 아니고, 기묘한 고속도로를 달리는 사람들이라는 설정이 같다. 그리고 한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다음 이야기와 미세하게 겹친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기도 하고 극적인 사건으로 조우하기도 한다. 그리고 하나의 주제를 공유한다. 자책. 그들은 모두 과거에 사로잡혀 있고, 스스로를 책망한다. 죽은 딸을 위해 복수하기도 하고, 실종된 여동생을 찾아 악마 같은 존재들과 싸우기도 한다. 친구의 죽음에 자신의 책임이 있다고 자책하기도 한다. 죽음의 고속도로에 들어선 그들에게 과거를 상기시키는 사건들이 벌어진다. 아니 그들이 스스로 사건을 만들기도 한다. 결과는 동일하다. 그들 모두 길 위에서 맴돈다. 살았건, 죽었건. 마치 오대양을 떠도는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같기도 하다. 자신의 죄 때문에 결코 헤어날 수 없는 저주에 빠져 길 위에서 방황하는 사람들. < 사우스바운드 > 각각의 에피소드는 긴밀하게 이어지지 않는다. 허수아비 같은 존재가 무엇인지, 사이비 종교는 대체 무엇을 섬기는 것인지, 그들의 목적은 대체 무엇인지 드러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요소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그들은 그저 꿈을 꾸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책망하다가 스스로를 무간지옥으로 밀어 넣은 것일지도. <사우스바운드>는 무리하게 설명하지 않고, 지나치게 의미부여를 하지 않으면서 상황에만 집중한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저마다 다른 분위기에서 각각의 공포를 안겨준다. 엄청난 감흥은 없지만 계속 보게 된다. 어차피 걸작이 아니라면, 공포영화는 그것만으로도 좋다. 순간의 호기심과 긴장감을 느끼기만 한다면 만족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