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
- 감독
- 박찬홍
- 제작년도
- 2007
- 출연
- 엄태웅, 신민아, 주지훈, 정동환, 최덕문, 윤혜경, 김영재, 한정수, 오용, 조재완, 주진모, 박그리나, 김영준, 이보희, 이은, 김규철, 임승대, 박광정, 유연수, 이도련
지루한 영화를 보는 것만큼 우리를 소외시키는 경험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영화는 몰입감과 소외감을 동시에 느끼도록 함으로써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고, 길을 잃게도 하며, 끝내 좌절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혼란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두 가지 중 하나이다. 첫 번째 스토리를 해석하는 인지 활동에 몰두하는 것, 두 번째 혼란을 유발하는 퍼즐을 풀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혼란 자체를 경험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혼란에 투항할 때 발생하는 쾌감에 자신을 의탁하는 것이다. 혼란의 출구를 찾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일 것이나, 때로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이동해보는 것이 즐거움을 제공할 수도 있다. 방향감각의 상실은 모 아니면 도의 문제가 아니며, 우리가 어떤 종류의 혼란에 처해 있는지에 주목하는 것이 영화의 성취를 이해하는 데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해피엔드 >(1999)는 이와 같은 관람의 속성 안에서 혼란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엿보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외환위기가 조성한 환란의 무드 아래 실업과 파산, 자멸의 사연들이 곳곳에 넘쳐나고 세기말의 불확실성과 새로운 세기에 대한 불안이 교차하던 20세기 말 한국 사회의 공기를 배음으로 깔고 있다. 성별 위계질서의 변화, 여성 권리의 부상, 근대적 국가 정체성과 남성성에 대한 회의(懷疑), 가부장제의 위기 따위로 요약되는 당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징후들을 드러낸다. 영화의 도입부는 불륜과 추리, 애틋한 로맨스를 골자로 하는 대중 소설에 탐닉하는 남자 서민기(최민식)를 등장시켜 두 가지 중추적인 플롯 포인트를 설정한다. 플롯의 핵심을 이루는 사건은 민기의 부인인 최보라(전도연)와 그녀의 애인 김일범(주진모), 그리고 민기의 뿌리뽑힌 관계 사이에서 벌어진다. 민기는 (아마도) IMF의 여파 속에 실직한 뒤 딸을 돌보고 공원에서 소설을 읽는 한가로움에서 보람을 느끼는 전직 은행원이다. 민기의 아내 보라는 어학원을 운영하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으로 군대에 징집되어 몇 년 전에 헤어진 전 남자친구 일범과 혼외관계에 빠져 있다. 처음에는 보라와 민기를 묶는 불운한 결혼을 제외하고는 인물들이 거의 교차하지 않는다. 보라와 일범은 열정적인 연애와 사진 촬영에 몰두하면서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민기는 자신의 도피처인 헌책방에서 매일 탐정 소설과 로맨스 소설을 읽는 것에서 성취감을 느낀다. 민기가 탐닉한 세계는 보라와 일범이 누리는 세계와 닮아있는데, 우리가 영화를 통해 전달받게 될 사연은 바로 이 두 장르(탐정 + 로맨스)를 결합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서로에게 매료된 불륜 커플이 섹스 이상의 것을 갈망하는 동안 민기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게 되면서 점진적으로 파국의 분위기가 고조되어 간다. 조용한 탐정의 역할을 수행하던 민기가 평정심을 잃게 되는 이유는 보라가 일범을 만나기 위해 아이에게 수면제를 탄 우유를 먹였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부터이다. 민기의 상처 난 가부장의식이 발동하는 순간 살의도 피어난다. <해피엔드>의 전체적인 톤은 무기력하고 조용히 인간을 갉아먹는 메스꺼움 같은 불안, 때때로 폭발적인 폭력으로 표출되는 비극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극중 보라가 지저분한 일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전도연이 캐릭터에 부여한 감정적 깊이 때문에 우리는 그녀에게 동정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보라는 항상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반면, 민기는 금욕적이고 심지어 시들어있는 모습이다. 단란한 가족의 소중함을 알고 있지만 보라는 새로 찾은 사랑의 포로가 되었고, 일범은 두 번째 이별을 상상할 수 없다. 민기는 이미 파탄이 난 부부관계에 큰 미련이 없지만, 가정을 파괴할 생각이 없으며 보라가 가족의 안위를 해칠 행동을 했을 때 분노한다. 어떤 캐릭터도 완전히 잘못했다고 말할 수 없고, 그들의 행동이 완전히 정당화되지도 않는다. 모두 현실에서 벗어나 섹스와 혼외정사, 사진 또는 책을 통해 자신만의 위안을 찾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인물들이 거짓에 의존할 뿐 아니라 그들의 행동은 거짓에 의해 자극을 받는다. 하지만 환상(거짓)에 오래 빠져들수록 현실의 위기는 깊어진다. ‘거짓의 위기’를 통과하는 이 인물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해피엔드>는 어떤 의미에서 경제적 몰락이 결혼, 성 역할, 고용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사회적 논평이자 심리적 황폐화, 그리고 일부 관객들에게는 가슴 아픈 로맨스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야기이다. 이와 관련하여 보라가 떠다니는 풍등을 붙잡으려 애쓰는 <해피엔드>의 몽환적인 라스트 신은 주목할 만하다. 이 장면은 한국영화 사상 가장 아름답고 수수께끼 같은 결말 중 하나이다. 클라이맥스에서 엔딩으로 이어지는 20여 분의 시퀀스는 이전까지 느슨하게 얽혀 있던 서사의 실타래를 태피스트리로 묶어내려는 시도로부터 도리어 멀어진다. 이 신으로 넘어옿기 전 민기는 잔혹한 방식으로 보라를 살해했다. 이야기 안에서 처음으로 응집력 있는 흐름이 발생하고 가시적인 잔학 행위가 벌어지는 국면이다. 촘촘한 형식과 정서적 강렬함을 가진 이 영화의 모호한 결말 구조는 곱씹어볼 만한 여지를 남긴다. 이 혼란스러운 이중 결말은 먼저 민기가 보라를 살해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뒤에는 보라의 죽음을 의심하게 하는 호환되지 않는 결말이 이어진다. 혼란, 우발성, 자의성에 기초한 정지우의 영화를 돌이켜보면 이 이중 결말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연결고리를 미묘하게 도입하여 관객의 반응을 수정하게 만드는 것에 흥미를 느끼는 감독이다. 여기서 정지우는 실패한 관계의 잔해 위에서도 낙관적인 미래를 갈망하는 사람들에 관한 탁월한 미장센을 전개한다. 거울이 놓인 화장실에서 민기가 ‘장미빛 인생’이라고 적힌 성냥 케이스 안에 보관된 은반지를 변기 속에 던져버리고 폴라로이드 사진 안에서 행복하게 웃는 보라의 이미지에 불을 붙이는 순간, 녹아내리는 모양으로 타들어 가는 사진은 아파트 창가에서 담배를 피우는 보라의 이미지로 오버랩된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보라의 시점으로 주황색 풍등이 바람이 실려 떠오르고 걸쇠에 잠시 걸려 보라의 눈앞에 머무르던 풍등이 다시 하늘로 솟아오른다. 손을 뻗어 그것을 잡으려는 보라의 제스쳐에도 불구하고 풍등은 잡히지 않는다. 이어지는 쇼트에서 온화한 햇살 아래 아이와 함께 잠들어있던 민기가 깨어난다. 보라는 그의 곁에 없는 것 같다. 민기는 보라를 살해한 것인가 또는 풍등을 잡으려는 보라의 애절한 몸짓은 민기의 꿈인가? 정지우는 확실히 혼란과 방향 감각의 상실에 관심이 있는 작가이다. < 사랑니 >(2005)와 < 모던 보이 >(2008), < 은교 >(2012)로 이어지는 필모그래피는 자의적이고 우발적인 사건들에 직면함으로써 방향 감각을 잃는 인간에 대한 탐구로 요약될 수 있다. <해피엔드>의 결말이 야기하는 혼란과 방향 감각 상실은 영화의 의미와 방법 모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련의 신들의 교환은 현실과 바깥을 왕래하면서 이야기의 목표가 성취되었다는 안도감을 주지 않는다. 결과 없는 원인, 울림 없는 행동, 긴장의 끈이 풀려버리는 이 결론은 민기가 읽고 있는 소설과 비슷하다. 민기의 살인 행각과 소설은 모두 허구이지만 죽음은 실재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가 그려내고자 하는 세계를 관객들이 모두 알 수 없다는 사실은 예술이 삶을 모방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개념을 가지고 노는 이 영화의 방식이다. <해피엔드>를 한국 사회가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남성의 불안과 폭력에 대한 비판적인 해부도를 제시한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정교한 카메라 워크와 편집은 여성 캐릭터가 다양한 비판적 관점을 대변할 수 있게 함으로써 사실, 진실과 허구가 뒤섞인 후기 자본주의 도식 아래서 곪아 터진 분노의 초상화를 통해 남성 관음증의 폭력성과 여성의 새로운 주체성에 대처하지 못하는 남성의 무능력을 그려낸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내러티브와 비유적 전략은 허구의 인물에게 우연적인 것이 반드시 관객에게 자의적인 것으로 경험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따라서 방향 감각 상실은 영화의 에너지를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증폭시켜 우리를 새로운 차원으로 이동하게 한다. 이보다 더 생산적인 활동이 있을까? (관련글) 1. 2000년 1월 1일 0시, 거꾸로 가는 기차 - <박하사탕>(1999), 2021.04.16. 2. 넥타이로 총을 겨누었을 때 - <올드보이>(2003), 2021.05.14. 3. 요리사는 어디로 가는가? - <오!수정>(2000), 2021.06.04. 4. 고반장은 이렇게 말했다 - <논픽션 다이어리>(2013), 2021.07.09. 5. 머리를 자르고 새 옷을 입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무산일기>(2010), 2021.08.10. 6. 엄마의 침통은 죄를 기억한다 - <마더>(2009), 2021.09.03. 7. 수인동성동형론(獸人同性同形論)에 따르면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2021.10.15. 8. 유능한 이야기꾼은 진실이 거기 없다는 것을 잊도록 하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 <버닝>(2018), 2021.11.12. 9. 죽음의 한 연구(硏究) - <파산의 기술>(2006), 2021.12.10. 10. 사마귀가 사마귀를 먹다 - <춘천, 춘천>(2016), 2022.01.07. 11.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우리 이러지 말아요 - <극장전>(2005), 2022.03.08. 12. 철없는 엄마와 파란만장한 남자들, 그리고 엔카 가수 - <그때 그사람들>(2004), 2022.04.06. 13.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이야기 - <형사 Duelist>(2005), 2022.05.24. 14. 철의 신이 수장(水葬)시킨 고래의 추억 - <철의 꿈>(2013), 2022.06.16. 15. 골목길을 저절로 움직이는 자전거 - <풍경>(2013), 2022.07.14. 16. 일자로 아뢰리다 - <춘향뎐>(2000), 2022.08.11. 17. 연결연결, 믿음의 벨트 - <기생충>(2019), 2022.09.08. 18. 아마도 악마가 - <곡성>(2016), 2022.10.20. 19. 말도 안돼 기분 나쁜 그 제목은 나쁜 영화 - <나쁜 영화>(1997), 2022.11.25. 20. 황야의 울부짖는 개 - <복수는 나의 것>(2002), 2022.12.14. 21.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죠. 하지만 그러한 힘을 가지고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 <88/18>(2018), 2023.01.04. 22.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진실은 없다 - <파수꾼>(2010), 2023.03.03. 23. 이미지의 확실성과 증거력에 대한 회의 - <김군>(2018), 2023.04.05. 24. 범죄의 요소 - <괴물>(2006), 2023.05.17. 25. 투명인간이 되는 법 - <빈집>(2004), 2023.07.05. 26. 어차피 우리는 유령이 될 거예요 - <후쿠오카>(2019), 2023.08.30. 27. 생라면, 참치 통조림, 라이터, 휴지, 그리고 사시미칼 - <넘버3>(1997), 2023.10.05. 28. 풍등(風燈)은 날아가고 - <해피엔드>(1999), 2023.10.18. 29. 504호, 고아, 사라진 애, 시체... 이제 마지막 남은 얘기 하나 - <소름>(2001), 2023.11.07. 30. 열여덟, 바람의 색깔 - <회오리 바람>(2009), 2023.11.20. 31. 가면고(假面考) - <반칙왕>(2000), 2023.12.11. 32. 문은 두 방향으로 나 있다 - <두 개의 문>(2012), 2023.12.28. 33. 지옥의 복도 - <아수라>(2016), 2024.01.08. 34. 삼(3)의 몰락 - <성적표의 김민영>(2021), 2024.02.05.
2001년 | 청년필름 감독: 김용균 | 각본: 김용균 서신혜 서용호 윤순용 | 제작: 김조광수 | 촬영: 황기석 | 미술: 이진호 | 음악: 김홍집 | 애니메이션: 이종혁 CAST 와니: 김희선 | 준하: 주진모 | 영민: 조승우 | 소양: 최강희 < 8월의 크리스마스 >( 허진호 , 1998) 이후 한국의 멜로 감성은 사뭇 바뀝니다. 과도한 신파적 감정을 자제하고 일상의 미학을 내세운 멜로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거죠. 김용균 감독의 첫 작품 <와니와 준하> 역시 그 흐름 안에 있습니다. 영화를 열고 닫는 파스텔 톤의 애니메이션처럼, < 와니와 준하 >는 정적이면서도 순정만화 같고 무엇보다도 예쁜 영화입니다. 물론 그 안엔 의붓남매 사이의 사랑이라는 가슴 아픈 사연이 깃들어 있지만요. 이날 촬영은 마당에서 물을 뿌리고 발을 씻던 와니(김희선)가 발 근처에서 달팽이를 발견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와니와 준하>에서 달팽이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메타포인데요, 평소 김희선의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하네요. 김용균 감독은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배우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곤 했다고 합니다. 이때 김희선이 모기에 질색하는 모습을 목격했고, 그러면서 와니가 달팽이를 무서워한다는 설정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껍질은 단단하지만 알맹이는 약한 달팽이를 통해 와니라는 인물을 표현한 것인데요, 영화에서 와니는 준하가 떠난 뒤 달팽이를 더 이상 피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겠죠. 현장에서 이리저리 호스를 휘두르며 장난을 치고 있는 김희선의 모습입니다. <와니와 준하>는 김희선이라는 배우의 필모그래피에서 중요한 지점인데요, 적잖은 평자들은 그녀 최고의 연기와 자연스러움이 이 영화에 담겨 있다고 이야기하죠. 이런 평가에 대해 배우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배우 자신이 불안하면 보는 사람도 불안할 거예요. 내가 그만큼 열정을 보였으니까 달라졌다고들 하는 것 같아요.” 현장에서 겉으로는 장난스럽고 유쾌한 모습이었지만, 와니는 김희선이 나름의 열정으로 만들어낸 캐릭터였습니다. 준하(주진모)가 녹슨 자전거를 닦는 장면도 이날 촬영되었습니다. 김희선처럼 주진모에게도 <와니와 준하>는 배우의 자연스러운 느낌이 잘 배어 나오는 영화였죠. 이전까진 섹슈얼한 욕망의 캐릭터를 맡았던 그는, 이 영화에서 넉넉하고 포근하고 순박한 남자 준하가 됩니다. 디테일한 동작에 대해 김용균 감독이 주진모와 함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김 감독은 주진모에 대해 “현장에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통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시나리오에선 준하의 비중이 커 보이지 않았지만, 막상 영화로 옮기고 나니 그 존재감이 커졌다고 합니다. 감독은 주진모를 “나도 되고 싶은 이상적인 남자”로 그리고 싶었다고 하네요. 영화에서 와니의 집은, 직장이 있는 춘천에 있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실제로 촬영은 서울 후암동에 있는 어느 오랜 집에서 이뤄졌습니다. 경사진 정원, 무성한 나무, 담쟁이 넝쿨 등이 빚어내는 운치가 가득한 곳이었는데요, 외관은 낡아 보이지만 그 안엔 아기자기하면서도 깔끔한 곳입니다. 지금은 리모델링을 거쳐 게스트 하우스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장에서의 자연스러운 김희선의 모습. 여유 있어 보이지만 속내는 조금 달랐다. “현장에서 왜 예민하지 않겠어요? 사람들 앞에서 괜히 노력하는 모습 같은 걸 보여주는 게, 어쩐지 자존심 상해서 일부러 티를 내지 않는 거죠.” ‘영화제작소 청년’ 출신인 김용균 감독은 ‘청년필름’의 창립작품인 <와니와 준하>의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그는 첫 영화에서 “최대한 테크닉을 배제하고 인물의 정서를 따라가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포부가 있었는데요, 인물의 정서적 여백을 전달하기 위해 한 박자 늦게 대사를 하거나 인서트를 넣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촬영 직전의 두 배우. 이 영화에서 와니와 준하 사이엔 일종의 ‘데자 뷰’가 존재합니다. 어쩌면 그들이 운명으로 엮여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설정이죠. 오프닝과 엔딩의 애니메이션에 그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김희선은 현장에서 테이크마다 여러 가지 감정선을 연기했지만, 김용균 감독은 감정의 폭이 가장 적은 장면을 선택해서 편집했다고 합니다. 그 선택이 이 영화의 정적인 톤을 만들어낸 셈입니다.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
정지우 감독의 첫 장편 < 해피엔드 >(1999)는 한국영화 역사상 여성 캐릭터의 욕망을 가장 도발적으로 그린 작품 중 하나다. 그 욕망이 어떤 결말을 맞는지 보여주는 방식 역시 의미심장하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그 욕망을 불뚝 들이민다. 첫 장면에서 여자 주인공 최보라( 전도연 )는 애인 김일범( 주진모 )의 집으로 찾아가 격렬한 섹스를 나눈다. 정지우 감독은 섹스 신을 잘 그리는 몇 안 되는 한국 감독이다. 정지우 감독 영화의 섹스 신은 섹스를 기계적인 과정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관객의 관음증을 자극하기 위해 카메라가 마치 그 장면을 숨어서 훔쳐보는 듯한 시선을 취하지도 않는다. 그 장면에서 배우들에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연기를 이끌어내는 것은 물론, 카메라는 어떠한 거리낌도 없이 그들이 그 순간 자유로이 느끼는 흥분과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애쓴다. 섹스를 주도하는 남성 캐릭터와 그에 반응하는 여성 캐릭터의 모습을 답습하고, 단순히 전희-삽입-오르가슴의 단계로 섹스를 보여주는 여느 한국영화와 크게 다르다. < 해피엔드 >는 최보라와 김일범, 보라의 남편 서민기( 최민식 ), 세 주인공의 이야기다. 최보라는 김일범과 서민기를 모두 가졌다. 두 남자와의 관계에서도 우위를 점한다. 남편 서민기와의 가정생활에서 최보라는 가장의 역할을 맡는다. 잘나가는 영어 학원 원장인 그는, 실직한 남편 대신 생계를 책임진다. 유치원에서 젖먹이 딸을 데려오고, 장을 보고, 분리수거를 하는 건 서민기의 몫이다. 밤마다 남편이 집에서 그를 기다리고, 최보라가 늦게 들어가는 상황이 반복된다. 김일범 역시 최보라가 자신을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신세다. 그런 그에게 최보라는, 그들의 관계는 ‘스치듯 만나는’ 것이라 못을 박는다. 이 중 서민기가 최보라에게 반발하기 시작하면서 세 사람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다시 취직하라 요구하는 최보라의 말에 서민기는 크게 자존심이 상한다. 바로 그 다음 장면에서 서민기는 아내의 외도에 대한 첫 단서를 손에 넣는다. 아내의 외도 사실을 확신할수록 서민기는 아내 앞에서 당당해진다. 차가운 눈빛의 서민기 앞에서 최보라는 앞치마를 두르고 밥을 한다. 이때 서민기가 하는 말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우리 연희(딸)한테 당신이 좋은 엄마였으면 좋겠어.” 외도하는 아내에게 서민기는 자신과의 사랑을 저버린 잘못을 따지는 대신 엄마의 역할을 다하라 요구한다. 그에게, 결혼한 여자가 지켜야 할 제일의 덕목은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이다. 김일범 역시 최보라와 스치듯 만나는 관계에 만족하지 않고 그와 ‘가정’을 꾸리고자 한다. 심지어 연희를 자신의 딸이라 믿기까지 하는 김일범. 서민기와 김일범 모두 최보라를 가정이라는 이름의 울타리 속에 가두려 한다. < 해피엔드 >는 그것을 거부한 여성의 욕망이 얼마나 처참한 단죄를 받는지 잘 보여준다. 서민기는 아내가 김일범을 만나기 위해 갓난 딸에게 상했을지 모르는 분유를 먹였다는 것을 확인하고, 아내를 죽일 결심을 한다. 아내가 엄마로서의 의무를 저버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영화의 분위기가 180도 바뀐다. 이 지점까지 영화가 세 사람의 관계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면, 이 지점부터 영화는 서민기가 별다른 고민 없이 주도면밀하게 아내를 살해하고 그 죄를 김일범에게 덮어씌우는 모습을 재빠르게 그려 보인다. 영화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로맨스 소설이 갑자기 추리 소설로 변모하는 것 같다. 이 영화가 후반 들어 스릴러라는 장르를 빌려 서민기가 최보라를 벌하는 과정의 긴장을 증폭시키는 이유는 명백하다. 그것은 살인을 저지르는 서민기의 섬뜩함을 한껏 드러내는 장치다. ‘좋은 엄마’가 될 수 없는 아내는 죽여 마땅하다고, 그것이 자신의 가정을 지키는 일이라 생각하는 서민기는 한국사회의 무의식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여성의 욕망이 갈수록 크고 다양해지는 오늘날,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가 그에 느끼는 위협과 복수심은 이렇게나 서슬 퍼렇다. < 해피엔드 >의 결말은 남성 중심적 한국 사회의 그 무시무시한 속내를 차갑게 꺼내 보인다. 여성의 뜨거운 욕망에서 시작해 한국 사회의 무의식을 이렇게 차갑게 들춰낸 장편 데뷔작이 또 있었던가. 바로 그것이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해피엔드>를 다시 봐도 그 뜨거움과 차가움이 섬뜩하게 다가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