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 감독
- 류충식
- 제작년도
- 2003
- 출연
- 조성희, 김은비, 정대옥
“이것은 사랑 이야기입니다.” 혹시 읽어본 사람이 있는지 부드럽게 묻는 미국인 교수의 질문에 손을 드는 학생은 아무도 없다. 나는 그가 강의실 연단에 서서 들어 보인 그 책을 「벙어리」라는 제목의 번역본으로 먼저 보았다. 열아홉 살, 진로상담을 하고 난 다음 날 저녁 시간에 담임선생이 나를 중국집으로 데려가 짜장면을 사주며 함께 건넨 선물이었다. 손때가 많이 타 있던 그 책은 살짝 접어놓거나 흐릿하게 밑줄이 그어진 페이지를 곳곳에 숨겨놓고 있었는데, 나는 시험 답안지라도 미리 전달받은 사람처럼 몰래 숨겨가며 그것을 읽었다. 그중에 거의 통째로 괄호가 처져 있던 페이지들이 기억난다. 그것은, 청각장애가 있는 주인공 ‘존 싱어’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러 간 부분이다. 그동안 존 싱어가 편지로 다 전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정신없이 빠르게 수화로 늘어놓으면, 친구는 다 이해한다는 듯 우아하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짜증을 내며 침대를 발로 쾅쾅 찬다. 그러다가 또 졸린 눈이 되어 알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으면서 존 싱어의 얘기를 듣는 것이다. 마음속에 쌓아둔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 당황할 시간조차 아까운 존 싱어는 친구와 같은 병실을 쓰며 매일을 함께 보내는 환자들이 부럽기까지 하다. 면회시간이 끝나고, 병실을 나서던 그는 작별인사 대신에 조용히 주먹을 꽉 쥔다. 열아홉 살,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의 내 머릿속엔, 존 싱어의 그 ‘조용히 꽉 쥔 주먹’이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의 비주얼이 너무 생생해서 그대로 그려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것은 사랑 이야기입니다.” 라고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The Heart is a Lonely Hunter」이란 책을 소개하던 미국인 교수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매번 속으로 대답한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열아홉 살 때는 미처 몰랐지만.’ 이제는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고 이름마저 확신을 할 수 없게 된, 당시의 미국인 중년 남자는 ‘현대 미국소설’이라는 소설강독 수업시간으로 처음 만난, 내 대학 시절 영문과 교수였다. 지금의 내 독서편력과 취향의 척추를 만들어준 사람이기도 한 그가, “이것은 사랑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하나의 거대한 농담이라서 맥주 한잔하며 읽기에 좋습니다.”, “이 책은 커버에 손을 대고만 있어도 뜨거운 것 같습니다.” 식의, 마케팅용 한 줄 카피처럼 책에 대한 소개를 시작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그러니까 나는 책 그 자체 보다 그의 소개말에 더 관심이 가고, 간혹 소름마저 돋는 것이다. “존 싱어의 꽉 쥔 주먹은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사랑 이야기인 것이죠.” 언젠가 강의실 연단에 서게 되면 나도 그렇게 얘기할 것이다. 카슨 매컬러스 Carson McCullers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은 카슨 매컬러스가 스물세 살일 때 쓴 장편 소설이다. 거의 평생을 소아마비, 뇌졸중, 흉막염, 패혈성 질환, 유방암에 시달리며 휠체어에 앉아 지내다가 쉰 살의 나이에 세상을 뜬 그는, 뭔가 심한 벌을 받고 있는 듯한 신체적 외양과 고독한 내면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룬 작가다. 이러한 배경을 알고 보면, 그의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작가 자신의 의식과 무의식을 조금씩 분리해 만들어진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결혼식의 멤버 The Member of the Wedding」의 주인공 프랭키는 열두 살이라는 나이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구인 소녀이고, 「슬픈 카페의 노래 The Ballad of the Sad Cafe」의 야비하고 인색한 카페 주인 아멜리아는 엄청나게 큰 키와 근육, 사팔뜨기 눈을 가진 주인공으로, 꼽추와 사랑에 빠진다. 「황금빛 눈동자에 비친 그림자 Reflections in a Golden Eye」라는 중편소설엔 자신이 혐오하는 아내를 밤마다 훔쳐보는 군인에게 도착적인 매력을 느끼는 성불구자 남편이 등장한다(67년에 만들어진 영화 버전에선 무려 말론 브랜도가 그 역할을 했다). 마지막으로,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의 주인공이자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존 싱어’와, 그의 유일한 친구 ‘스피로스 안토나풀로스’는 둘 다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들. 공통적으로, 뭔가 되게 암울해 보이는 환경 속에서,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결국엔 다 비극을 맞이하면서 끝날 것 같은 불길한 암시를 시작부터 던져주는 이야기들이지만, 지금 이렇게 ‘내 마음대로 각색하기’ 같은 칼럼에서 시간과 지면을 들여 그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적어도 내겐 이 책이 ‘술 한잔하고 읽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데다, 책 커버에 손만 대고 있어도 뜨거운 느낌을 주는, 진짜 러브 스토리’ 이기 때문이다. 이 책엔 말 못 하는 두 명의 청각장애인들 외에, 음악가가 되고 싶은 사춘기 소녀, 흑인 인권운동에 삶을 바치는 흑인 의사,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는 노동자, 그들이 모이는 카페의 주인 남자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서두에 언급한 ‘존 싱어’와 ‘스피로스 안토나풀로스’의 만남과 이별을 다룬, 첫 번째 챕터의 오프닝 십여 페이지를 유난히 많이, 또 자주 생각한다. 이 짧은 챕터는 그 자체만 따로 떼어놓고 보아도 하나의 독립된, 아름다운 단편소설에 다름없다. 그래서 몇 년 전에 구한 오디오북 파일에서 이 오프닝 챕터만 따로 잘라내 핸드폰에 넣고 다니면서 자주 듣는다. 총 열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의 이 오디오북을 읽은 사람은 체리 존스(Cherry Jones)라는 배우로, 영화 < 다우트 >의 원작인 연극무대에서 원장수녀로 나와 토니상을 수상한 브로드웨이의 베테랑이다. (영화버전에선 아시다시피 메릴 스트립이 그 역할을 연기했다) 미드 <24>의 팬이라면 위풍당당한 앨리슨 테일러 대통령으로 나왔던 그를 기억할 것이고. 낙엽이 바스러지는 소리처럼 마르고 가차 없는 체리 존스의 목소리가, ‘마을에 벙어리가 둘 있었는데, 그들은 항상 함께 다녔다.’ 는 문장을 읽으며 시작하는 오프닝 챕터를 듣고 있노라면, (어쩌면) 이 책의 ‘존 싱어’라는 남자는 영미문학 역사상 가장 외롭고 고독하기 짝이 없는 주인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 와중에도 그 목소리에 물기가 묻은 것처럼 들리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오프닝 챕터의 마지막 문단으로, ‘존 싱어’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다리를 질질 끌며 홀로 거리를 걸어가는 모습을 묘사한 장면이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어도, 차가운 비가 내려도, 따뜻한 봄기운이 찾아오는 날에도, 그의 걸음은 주저하고 얼굴은 고요했다고, 매우 슬프거나 아주 현명한 사람의 얼굴에서나 볼 수 있는 ‘생각에 잠긴 듯한 평화로움’이 그에게도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그런 얼굴과 걸음으로 여전히 그렇게 마을의 거리를 혼자서 돌아다녔다고, 항상 조용히, 혼자서. 자, 그렇다면, ‘일방적인 사랑의 대가는 가늠조차 하지 못할 고독함’ 이라는 것이, 이 두 청각장애인 친구의 만남과 이별을 다룬 오프닝 챕터를 ‘내 마음대로 각색한’ 버전의 테마가 될 것이다. 두 주인공이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설정도 지금 당장 내게 꼭 필요한 도전이다. 등장인물이 항상 말이 많고 수다를 떨어야 안심이 되고 직성이 풀리는 이야기를 주로 쓰고 만드는 나로선, 러닝타임 내내 한마디의 말도 없이 관객을 웃기고 울리는 창작자들에 대한 매혹과 질시가 어쩔 수 없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신병원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탄 친구를 향해 ‘존 싱어’가 버스 아래에서 미친 듯이 수화를 하며 마음속의 말을 내뱉던 그 순간, 친구는 아침에 싼 도시락이 잘 있는지 확인하느라 바빠서 그를 보지 못한다. 책을 읽을 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영화에서도 이 부분에선 보는 이들의 가슴이 으깨지거나 찢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 버스가 출발하면서 ‘존 싱어’는 도시락을 확인하고 마음이 편해진 친구와 아주 잠깐 눈이 마주치는데,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그 친구는 ‘이미 저 멀리로 가 버린 듯한 눈빛’으로 ‘존 싱어’를 바라본다. 결국, 친구는 그 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고, ‘존 싱어’는 휘청대는 걸음과 자포자기와 체념이 섞인 평화로운 얼굴로, 마을을 돌아다니게 된다. 조용히, 혼자서... 그리고, 디 엔드. <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1968) 포스터 이 책은 1968년도에 영화로 한 번 만들어진 적이 있다. 당시 ‘존 싱어’를 연기해 아카데미 후보지명을 받았던 사람이 바로 ‘알란 아킨’이다. 그게 누구냐면, < 미스 리틀 선샤인 >의 그 괄괄한 할아버지. 나는 오로지 그를 비극적 멜로드라마의 히어로인 ‘존 싱어’로만 기억하고 있어서, 사회 부적응자처럼 보이는 손자에게 “젊었을 때 섹스를 많이 해야 해~” 라고 능글맞게 충고하던 <미스 리틀 선샤인>의 할아버지로 나온 그를 처음 봤을 때 조금 충격을 받았다. 죽었던 ‘존 싱어’가 무덤에서 돌아와서 내는 것처럼 허스키한 목소리를 갖고 있다는 것도 충격이었지. <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1968)의 알란 아킨 (위) < 미스 리틀 선샤인 >(2006)의 알란 아킨 (아래) “이것은 사랑 이야기입니다.” 다시 돌아간 그곳은 학교 근처의 중국집으로, 담임선생과 마주 앉아 짜장면을 먹고 있는 당시의 나는 뭔가 비밀이 많은 척하는 열아홉 살이다, 전날 있었던 진로상담에서 그에게 신방과에 진학해 방송국 피디가 되겠다고 적어냈지만, 사실은 작가가 되어 소설을 쓰고 싶다는 얘기를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털어놓았었다. “고개 들고 만두도 좀 먹으라”며 군만두 접시를 밀어주는 담임은 자기도 대학생일 때 소설을 몇 편 쓴 적이 있고 신문에 투고까지 했다고 말한다. 그러다 큰 상도 한 번 탄 적이 있는데 시상식에 참석하러 서울까지 가는 버스 안에서 내내 발을 동동 구르고 속으로 끅끅대며 고함을 쳤다고도 한다. 좋아서... 그러더니 집에 있는 책 중에서 지금 내가 읽으면 좋을 만한 걸 하나 가져왔다며 손때가 많이 탄 책 한 권을 건넨다. 추상으로 그려진 사람 얼굴 그림이 있는, 칙칙한 색깔의 커버엔 「벙어리」란 제목이 보인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이라는 원제를 몇 번이나 강조해서 말해주는 담임선생의 담당 과목은 ‘화학’이다. 열아홉 살, 그해 고3 수험생이 된 나는 학급일지를 작성하는 ‘서기’ 였고, 매일 정규수업시간이 끝나면 교무실에 들러 담임선생의 사인 받는 일을 했다. 당시 담임선생은 중년의 나이도 훌쩍 넘겨 슬슬 노년으로 접어들던 시기의 남자였고, 빈틈이라곤 없어 보이는 엄격한 분위기의 사람이었지만, 학급일지의 사인을 해주며 내게 한 마디씩, 두 마디씩 건네던 그의 목소리는 매번 친절하고 따뜻했다. 나는 그 후로도 가끔씩 그로부터 손때가 탄 책을 몇 권 전달받았다. 어떤 책은 읽고 나중에 돌려달라는 것도 있었고, 그냥 가지라고 했던 책도 있었다. 그게 뭐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중에서 단 한 번도 책에 대한 감상이나 소회를 그가 내게 따로 물어보거나 내가 그에게 먼저 얘기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나로 하여금 뭔가 신기하면서도 왠지 송구스런 기분을 들게 한다. 그가 그런 비밀스런 호의를 일부러 내게 건넬 이유가 없었다는 걸 굳이 떠올려보면, 그 후 근 이십 년이라는 시간을 통과하는 동안, 그가 내게 최초로 선물한 「벙어리」란 책이 어떻게 내 안에서 살아남고 오랫동안 가지를 쳐서 < 장례식의 멤버 >라는 내 첫 번째 장편 영화의 무의식이 되었는지, 그 영화의 주인공 소년과 ‘존 싱어’ 사이에 놓여있는 브리지라고 해야 할까, 뉴욕 카페의 손님들이 ‘존 싱어’를 붙잡고 자기 얘기를 늘어놓듯, 영화 속 소년을 둘러싼 가족들이 어떻게 그 아이에게 자기들의 외로움을 토로하고 있는지, 에 대해서 다소 두서없는 이야기일지언정 편지로 써야 하지 않을까, 싶은 거다. 그렇다면 그 편지는 이렇게 시작할 것이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이것은 사랑 이야기네요. 그동안 저도 조용히 주먹을 몇 번씩 꽉 쥐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존 싱어처럼.” #1 펀 홈 #2 안녕, 내일 또 만나 #3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4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5 이모와의 여행, 그 외 몇몇
“이것은 사랑 이야기입니다.” 혹시 읽어본 사람이 있는지 부드럽게 묻는 미국인 교수의 질문에 손을 드는 학생은 아무도 없다. 나는 그가 강의실 연단에 서서 들어 보인 그 책을 「벙어리」라는 제목의 번역본으로 먼저 보았다. 열아홉 살, 진로상담을 하고 난 다음 날 저녁 시간에 담임선생이 나를 중국집으로 데려가 짜장면을 사주며 함께 건넨 선물이었다. 손때가 많이 타 있던 그 책은 살짝 접어놓거나 흐릿하게 밑줄이 그어진 페이지를 곳곳에 숨겨놓고 있었는데, 나는 시험 답안지라도 미리 전달받은 사람처럼 몰래 숨겨가며 그것을 읽었다. 그중에 거의 통째로 괄호가 처져 있던 페이지들이 기억난다. 그것은, 청각장애가 있는 주인공 ‘존 싱어’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러 간 부분이다. 그동안 존 싱어가 편지로 다 전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정신없이 빠르게 수화로 늘어놓으면, 친구는 다 이해한다는 듯 우아하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짜증을 내며 침대를 발로 쾅쾅 찬다. 그러다가 또 졸린 눈이 되어 알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으면서 존 싱어의 얘기를 듣는 것이다. 마음속에 쌓아둔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 당황할 시간조차 아까운 존 싱어는 친구와 같은 병실을 쓰며 매일을 함께 보내는 환자들이 부럽기까지 하다. 면회시간이 끝나고, 병실을 나서던 그는 작별인사 대신에 조용히 주먹을 꽉 쥔다. 열아홉 살,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의 내 머릿속엔, 존 싱어의 그 ‘조용히 꽉 쥔 주먹’이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의 비주얼이 너무 생생해서 그대로 그려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것은 사랑 이야기입니다.” 라고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The Heart is a Lonely Hunter」이란 책을 소개하던 미국인 교수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매번 속으로 대답한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열아홉 살 때는 미처 몰랐지만.’ 이제는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고 이름마저 확신을 할 수 없게 된, 당시의 미국인 중년 남자는 ‘현대 미국소설’이라는 소설강독 수업시간으로 처음 만난, 내 대학 시절 영문과 교수였다. 지금의 내 독서편력과 취향의 척추를 만들어준 사람이기도 한 그가, “이것은 사랑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하나의 거대한 농담이라서 맥주 한잔하며 읽기에 좋습니다.”, “이 책은 커버에 손을 대고만 있어도 뜨거운 것 같습니다.” 식의, 마케팅용 한 줄 카피처럼 책에 대한 소개를 시작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그러니까 나는 책 그 자체 보다 그의 소개말에 더 관심이 가고, 간혹 소름마저 돋는 것이다. “존 싱어의 꽉 쥔 주먹은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사랑 이야기인 것이죠.” 언젠가 강의실 연단에 서게 되면 나도 그렇게 얘기할 것이다. 카슨 매컬러스 Carson McCullers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은 카슨 매컬러스가 스물세 살일 때 쓴 장편 소설이다. 거의 평생을 소아마비, 뇌졸중, 흉막염, 패혈성 질환, 유방암에 시달리며 휠체어에 앉아 지내다가 쉰 살의 나이에 세상을 뜬 그는, 뭔가 심한 벌을 받고 있는 듯한 신체적 외양과 고독한 내면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룬 작가다. 이러한 배경을 알고 보면, 그의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작가 자신의 의식과 무의식을 조금씩 분리해 만들어진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결혼식의 멤버 The Member of the Wedding」의 주인공 프랭키는 열두 살이라는 나이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구인 소녀이고, 「슬픈 카페의 노래 The Ballad of the Sad Cafe」의 야비하고 인색한 카페 주인 아멜리아는 엄청나게 큰 키와 근육, 사팔뜨기 눈을 가진 주인공으로, 꼽추와 사랑에 빠진다. 「황금빛 눈동자에 비친 그림자 Reflections in a Golden Eye」라는 중편소설엔 자신이 혐오하는 아내를 밤마다 훔쳐보는 군인에게 도착적인 매력을 느끼는 성불구자 남편이 등장한다(67년에 만들어진 영화 버전에선 무려 말론 브랜도가 그 역할을 했다). 마지막으로,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의 주인공이자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존 싱어’와, 그의 유일한 친구 ‘스피로스 안토나풀로스’는 둘 다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들. 공통적으로, 뭔가 되게 암울해 보이는 환경 속에서,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결국엔 다 비극을 맞이하면서 끝날 것 같은 불길한 암시를 시작부터 던져주는 이야기들이지만, 지금 이렇게 ‘내 마음대로 각색하기’ 같은 칼럼에서 시간과 지면을 들여 그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적어도 내겐 이 책이 ‘술 한잔하고 읽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데다, 책 커버에 손만 대고 있어도 뜨거운 느낌을 주는, 진짜 러브 스토리’ 이기 때문이다. 이 책엔 말 못 하는 두 명의 청각장애인들 외에, 음악가가 되고 싶은 사춘기 소녀, 흑인 인권운동에 삶을 바치는 흑인 의사,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는 노동자, 그들이 모이는 카페의 주인 남자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서두에 언급한 ‘존 싱어’와 ‘스피로스 안토나풀로스’의 만남과 이별을 다룬, 첫 번째 챕터의 오프닝 십여 페이지를 유난히 많이, 또 자주 생각한다. 이 짧은 챕터는 그 자체만 따로 떼어놓고 보아도 하나의 독립된, 아름다운 단편소설에 다름없다. 그래서 몇 년 전에 구한 오디오북 파일에서 이 오프닝 챕터만 따로 잘라내 핸드폰에 넣고 다니면서 자주 듣는다. 총 열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의 이 오디오북을 읽은 사람은 체리 존스(Cherry Jones)라는 배우로, 영화 <다우트>의 원작인 연극무대에서 원장수녀로 나와 토니상을 수상한 브로드웨이의 베테랑이다. (영화버전에선 아시다시피 메릴 스트립이 그 역할을 연기했다) 미드 <24>의 팬이라면 위풍당당한 앨리슨 테일러 대통령으로 나왔던 그를 기억할 것이고. 낙엽이 바스러지는 소리처럼 마르고 가차 없는 체리 존스의 목소리가, ‘마을에 벙어리가 둘 있었는데, 그들은 항상 함께 다녔다.’ 는 문장을 읽으며 시작하는 오프닝 챕터를 듣고 있노라면, (어쩌면) 이 책의 ‘존 싱어’라는 남자는 영미문학 역사상 가장 외롭고 고독하기 짝이 없는 주인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 와중에도 그 목소리에 물기가 묻은 것처럼 들리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오프닝 챕터의 마지막 문단으로, ‘존 싱어’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다리를 질질 끌며 홀로 거리를 걸어가는 모습을 묘사한 장면이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어도, 차가운 비가 내려도, 따뜻한 봄기운이 찾아오는 날에도, 그의 걸음은 주저하고 얼굴은 고요했다고, 매우 슬프거나 아주 현명한 사람의 얼굴에서나 볼 수 있는 ‘생각에 잠긴 듯한 평화로움’이 그에게도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그런 얼굴과 걸음으로 여전히 그렇게 마을의 거리를 혼자서 돌아다녔다고, 항상 조용히, 혼자서. 자, 그렇다면, ‘일방적인 사랑의 대가는 가늠조차 하지 못할 고독함’ 이라는 것이, 이 두 청각장애인 친구의 만남과 이별을 다룬 오프닝 챕터를 ‘내 마음대로 각색한’ 버전의 테마가 될 것이다. 두 주인공이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설정도 지금 당장 내게 꼭 필요한 도전이다. 등장인물이 항상 말이 많고 수다를 떨어야 안심이 되고 직성이 풀리는 이야기를 주로 쓰고 만드는 나로선, 러닝타임 내내 한마디의 말도 없이 관객을 웃기고 울리는 창작자들에 대한 매혹과 질시가 어쩔 수 없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신병원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탄 친구를 향해 ‘존 싱어’가 버스 아래에서 미친 듯이 수화를 하며 마음속의 말을 내뱉던 그 순간, 친구는 아침에 싼 도시락이 잘 있는지 확인하느라 바빠서 그를 보지 못한다. 책을 읽을 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영화에서도 이 부분에선 보는 이들의 가슴이 으깨지거나 찢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 버스가 출발하면서 ‘존 싱어’는 도시락을 확인하고 마음이 편해진 친구와 아주 잠깐 눈이 마주치는데,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그 친구는 ‘이미 저 멀리로 가 버린 듯한 눈빛’으로 ‘존 싱어’를 바라본다. 결국, 친구는 그 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고, ‘존 싱어’는 휘청대는 걸음과 자포자기와 체념이 섞인 평화로운 얼굴로, 마을을 돌아다니게 된다. 조용히, 혼자서... 그리고, 디 엔드.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1968) 포스터 이 책은 1968년도에 영화로 한 번 만들어진 적이 있다. 당시 ‘존 싱어’를 연기해 아카데미 후보지명을 받았던 사람이 바로 ‘알란 아킨’이다. 그게 누구냐면, <미스 리틀 선샤인>의 그 괄괄한 할아버지. 나는 오로지 그를 비극적 멜로드라마의 히어로인 ‘존 싱어’로만 기억하고 있어서, 사회 부적응자처럼 보이는 손자에게 “젊었을 때 섹스를 많이 해야 해~” 라고 능글맞게 충고하던 <미스 리틀 선샤인>의 할아버지로 나온 그를 처음 봤을 때 조금 충격을 받았다. 죽었던 ‘존 싱어’가 무덤에서 돌아와서 내는 것처럼 허스키한 목소리를 갖고 있다는 것도 충격이었지.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1968)의 알란 아킨 (위), <미스 리틀 선샤인>(2006)의 알란 아킨 (아래) “이것은 사랑 이야기입니다.” 다시 돌아간 그곳은 학교 근처의 중국집으로, 담임선생과 마주 앉아 짜장면을 먹고 있는 당시의 나는 뭔가 비밀이 많은 척하는 열아홉 살이다, 전날 있었던 진로상담에서 그에게 신방과에 진학해 방송국 피디가 되겠다고 적어냈지만, 사실은 작가가 되어 소설을 쓰고 싶다는 얘기를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털어놓았었다. “고개 들고 만두도 좀 먹으라”며 군만두 접시를 밀어주는 담임은 자기도 대학생일 때 소설을 몇 편 쓴 적이 있고 신문에 투고까지 했다고 말한다. 그러다 큰 상도 한 번 탄 적이 있는데 시상식에 참석하러 서울까지 가는 버스 안에서 내내 발을 동동 구르고 속으로 끅끅대며 고함을 쳤다고도 한다. 좋아서... 그러더니 집에 있는 책 중에서 지금 내가 읽으면 좋을 만한 걸 하나 가져왔다며 손때가 많이 탄 책 한 권을 건넨다. 추상으로 그려진 사람 얼굴 그림이 있는, 칙칙한 색깔의 커버엔 「벙어리」란 제목이 보인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이라는 원제를 몇 번이나 강조해서 말해주는 담임선생의 담당 과목은 ‘화학’이다. 열아홉 살, 그해 고3 수험생이 된 나는 학급일지를 작성하는 ‘서기’ 였고, 매일 정규수업시간이 끝나면 교무실에 들러 담임선생의 사인 받는 일을 했다. 당시 담임선생은 중년의 나이도 훌쩍 넘겨 슬슬 노년으로 접어들던 시기의 남자였고, 빈틈이라곤 없어 보이는 엄격한 분위기의 사람이었지만, 학급일지의 사인을 해주며 내게 한 마디씩, 두 마디씩 건네던 그의 목소리는 매번 친절하고 따뜻했다. 나는 그 후로도 가끔씩 그로부터 손때가 탄 책을 몇 권 전달받았다. 어떤 책은 읽고 나중에 돌려달라는 것도 있었고, 그냥 가지라고 했던 책도 있었다. 그게 뭐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중에서 단 한 번도 책에 대한 감상이나 소회를 그가 내게 따로 물어보거나 내가 그에게 먼저 얘기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나로 하여금 뭔가 신기하면서도 왠지 송구스런 기분을 들게 한다. 그가 그런 비밀스런 호의를 일부러 내게 건넬 이유가 없었다는 걸 굳이 떠올려보면, 그 후 근 이십 년이라는 시간을 통과하는 동안, 그가 내게 최초로 선물한 「벙어리」란 책이 어떻게 내 안에서 살아남고 오랫동안 가지를 쳐서 <장례식의 멤버>라는 내 첫 번째 장편 영화의 무의식이 되었는지, 그 영화의 주인공 소년과 ‘존 싱어’ 사이에 놓여있는 브리지라고 해야 할까, 뉴욕 카페의 손님들이 ‘존 싱어’를 붙잡고 자기 얘기를 늘어놓듯, 영화 속 소년을 둘러싼 가족들이 어떻게 그 아이에게 자기들의 외로움을 토로하고 있는지, 에 대해서 다소 두서없는 이야기일지언정 편지로 써야 하지 않을까, 싶은 거다. 그렇다면 그 편지는 이렇게 시작할 것이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이것은 사랑 이야기네요. 그동안 저도 조용히 주먹을 몇 번씩 꽉 쥐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존 싱어처럼.”
재작년인가, 어느 뜨거운 여름날에 이사 준비를 하던 친구가 있었다. 미대를 졸업하고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먹고 자고 하던 친구였는데, 어떤 이유 때문에 미술 작업을 그만두고 본가로 들어간다고 했다. 엄마 캥거루가 어쩌고, 주머니에 들어가 웅크리고 있다가 저쩌고, 하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말했는데 나는 그 수수께끼 같은 표현이 무슨 말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지만 다 알아듣고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너의 작업을 늘 좋아했기 때문에 지금 너의 결정이 슬프고,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이 상황이 무척 속상하다는 마음만큼은 진심이었기 때문에 그 마음에만 집중했던 것이다. 이삿짐 차에 주로 실릴 물건들은 그동안 작업한 캔버스 그림들과 자질구레한 미술용품들뿐이었다. 그런데 딱 하나, 이걸 그냥 버릴지, 아니면 팔아서 짜장면이라도 사 먹을지 고민했던 물건이 하나 있었다고 했다. 그건 자취방에 흔히 볼 수 있는 50리터짜리 소형 냉장고였는데, 내가 알기론, 그 냉장고에겐 이름이 있었다. ‘폴 앤 니나 (Paul & Nina)’라고... 그러니까 그 친구의 애칭이 ‘폴’인데, (당시) 그의 여자 친구의 애칭은 ‘니나’였고, 그 두 사람이 작업실 겸 자취방으로 함께 쓸 원룸을 계약하던 날, 그 냉장고도 구입하여, ‘폴 앤 니나’라는 이름을 붙여서.. (한...숨) 암튼, 뻔하기 짝이 없지만 닭살 돋게 소중한 히스토리의 물건이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재활용품센터나 중고물품 가게에 들고 가서 짜장면값이라도 받고 팔려고 했는데 막상 천 원짜리 몇 장 받아서 오자니 발길이 안 떨어지더라는 것이다. 하긴, ‘폴 앤 니나’라는 이름까지 붙어있는 냉장고니까... 그래서 그냥 들고 나왔는데 막상 뜨거운 한여름 낮의 열기를 온몸으로 받으며 집으로 돌아가자니 그만 짜증이 확, 치솟아서 당시 걷고 있던 다리 밑 하천으로 냉장고를 ‘풍덩!’ 떨어뜨렸다고 한다. 그런데 하필 그 광경이 지나가던 경찰의 시야에 고스란히 잡혔고 친구는 하천 아래로 가라앉지 않고 수면 위에 둥둥 떠 있던 냉장고를 ‘직접’ 건져서 파출소로 끌려갔다. 지금부터 나는 이 친구가 그 후 파출소 테이블에 앉아서 경찰들의 눈총을 받으며 써내려간 반성문을 ‘약간만’ 옮겨보려고 한다, 파출소에서 나올 때 담당 경찰에게 복사를 부탁해 갖고 왔다고 했다. 힘들 때 가끔씩 읽어보고 싶었다나? (예술가들이란~~) 그가 나에게 보여준 이 글을 읽으면서 난 이 반성문을 트리트먼트 삼아 단편영화를 하나 만들어보라고 친구의 예술가적 허세를 부추겼다. “반성문. 안녕하세요. 저는 아침만 해도 이사를 가려고 준비 중이었습니다. 아직까지 쓸 만한 냉장고를 버려야 한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재활용센터 사장님으로부터 그냥 버리는 게 좋겠다는 말을 듣고서부턴 이상하게도 안심이 되어서 좀 더 시원하게 버릴 수 있을 때까지 무작정 가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하천 아래로 가라앉지 못하고 반쯤 둥둥 떠 있는 냉장고를 보면서 그제야 제가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요근래 집주인 아주머니께서도 그런 제가 못 미더워 몇 달째 했던 말을 반복하고 계시는데, 밀린 월세를 내라고 하며, 환경을 바꿔보는 게 좋을 거라고도 하고, 제가 너무 게으르다고도 했습니다. 냉장고만 잘 처리하고 나면 이사를 갈 것입니다. 50리터 냉장고... 완벽한 냉동실도, 완벽한 냉장실도 아닌 이 애매함은 그저 예전 여자친구가 남겨놓고 간 것입니다. 또 남은 것들 중에는, 제가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선물했던 비싼 색연필과, 한 여자가 호수에서 수영을 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 한 점이 있는데... 그녀는 늘 사는 게 헤엄치는 것이라 했습니다. 저희는 이 동네 미대를 나왔습니다. 남들이 인정할만한 직업은 없고, 종종 벽화로 돈을 벌었습니다.... (하략)” 자, 여기까지가, 중고 냉장고를 무단투기하는 현장이 경찰에 적발되었지만 다행히 전후사정이 참작되어 반성문을 쓰는 것으로 훈방 조처된 ‘내 친구’의 이야기로 ‘포장’한 단편영화 <중고, 폴>의 소개 글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 영화는 이 반성문을 보고 들으면서, 주인공 남자에게 어떤 일이 생겼던 것인지, 어떤 이유로 냉장고를 버리려고 했으나 결국 버리지 못하고 이사를 가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실제로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자취방과 작업실을 공유하며 미술 작업을 하는 젊은 작가 커플이 이 영화의 제작과 연출을 맡았는데, ‘애지중지 키우던 고추 모종을 몰래 훔쳐간 범인을 찾아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는 여자’가 주인공인 이야기 <고추가 사라졌다!>가 이들의 첫 영화였다는 걸 떠올려 보면, 이들은 진짜로 자신들에게 벌어졌거나/벌어졌던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를 거의 아름다울 정도로 단편스러운 러닝타임에 맞춰서 생각해내는 단단한 아티스트들이다. 그리고 나는 이 두 영화가, 비록 영화적인 센스는 위의 소개 글이 주는 기대치만큼 재치가 넘치거나 세련되지는 않지만, 무엇보다 이것이 실제로 그들에게 벌어졌던 진실한(authentic) 에피소드처럼 ‘보인다’는 것에 나는 즉각적인 호감을 느낀다. “진짜로 있었던 일 맞지?” 친분을 이용해 고집스레 물어봐도 이들은 제대로 말해주지 않는다. ‘지난밤의 숙취로 어질어질하면서도 도둑맞은 고추 모종을 찾으러 다닌다는 이야기’는 실제로 이 여성감독의 귀여운 경험이고, ‘벽화를 그리며 생계를 유지하는 가난하고 성실한 미술작가들’은 이들 커플에 대한 실제적인 묘사이지만, 높은 건물에서 벽화 작업을 하다가 크레인이 추락해 사망한, 가난한 미대생의 안타까운 죽음은 어쩌면 순수한 픽션이라서 할 말이 없었거나, 그 세계 속에 살아보았던 사람들끼리만이 짐작하고 숨길 수 있는 비밀이자 상처라서 꼭꼭 숨겨야 했기에 차마 말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영화에서 내가 좀 더 보고 싶었지만 나오지 않았던 것이 있다면, 바로 그런 가난하고 어두우며 무서운 세계에 대한 이들만의 코멘트였을 것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도 연출자를 붙잡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이러더라. 못한 말이 있으면 다음 작업에서 하겠다고. 그래서 나는 이들 커플이 내놓을 세 번째 영화를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는데, 요즘 이들은 장편 그래픽 노블 작업에 열심이라고 한다. 암튼, 최근 애니메이션 작업이 추가되어 완성된 < 중고, 폴 >이 첫 번째 영화 보다는 좀 더 많은 상영기회를 얻게 되어 이들 커플에게 기분 좋은 차기 작업의 동기가 되었으면 바라는 마음에서 추천사를 참 길게도 써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