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태평
- 감독
- 이규환
- 제작년도
- 1960
- 출연
- 조미령, 이예춘, 박광수, 도금봉, 이빈화, 정애란, 허장강, 장훈, 정철, 남춘역, 양일민, 김주오, 박응수, 박빈, 추봉, 박진
<소년시절의 너> 중 / 사진: Far East Film Festival 대만, 중국, 홍콩을 아우르는 동시대 중화권 청춘영화는 어딘가 안전한 자리로 호출되곤 한다. 이는 가볍고 말랑한 감정의 외피를 두른 ‘틴 로맨스’나 ‘학원물’이 지배적인 인상으로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어두운 골목과 방 한 칸을 배경으로 한 ‘도시 로맨스’, 혹은 성적 지향이나 계급적 주류 범주에서 벗어나는 ‘아웃사이더’의 지난한 성장 서사 또한 그 반경을 꾸준히 확장해왔다. 거짓 없는 미소와 서툰 고백에서 길어 올린 풋풋한 청춘의 초상과, 체제와 현실의 제약 속에서 너무 이르게 마모되어 버린 성장의 잔혹한 기록. 두 계열은 서로 다른 미학과 정서를 지닌 채 엇갈린 방향을 향하는 듯 보이지만, 성장의 희미한 슬픔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교차하고 중첩된다. 우리가 중화권 청춘영화로 부르는 범주는 어디에서 기원하는가? 이 영화들은 어떻게 하여 이토록 ‘범아시아적’ 생명력을 유지하는가? 질문은 자연스레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 누군가는 <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구파도, 2011)나 < 우리가 잃어버릴 청춘 >(조미, 2013)을 기점으로 삼을 테고, 또 다른 이는 < 남색대문 >(이치엔, 2002)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야를 조금 더 긴 역사적 궤적 속으로 옮기면, 중화권 청춘영화가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한 동시대 현상만은 아니라는 점이 보다 분명해진다. 우선, 대만 뉴웨이브와 중국 6세대 영화, 그리고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덜 논의되어 온 홍콩 뉴웨이브의 성취 속에서 그 정서적, 미학적 뿌리를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하나 아닌 여럿: 중화권 청춘영화의 기원들 누구나 겪지만 결국 지나간 과거로 남게 될 통과의례의 순간. 대만 뉴웨이브는 이러한 청춘을 형상화하는 데 탁월했던 시기로 기억될 만하다. 교복 입은 인물들의 초상이 전면에 놓인 작품도 가히 많았다. 그 출발점에 자리한 < 광음적고사 >(에드워드 양 외 3인, 1982)의 옴니버스 구성 가운데 타오더천과 에드워드 양이 각각 연출한 첫 두 에피소드(“작은 용 머리”와 “기대”), 그리고 진곤후 감독의 < 샤오피 이야기 >(천 쿤하우, 1983)는 소년·소녀들의 작고 애틋한 바람결 같은 초상을 내세운다. 그 물밑으로는 미국 이민, 대학 진학, 도시 중산층 진입이라는 당대 사회적 분위기의 기대와 규범이 조용히 도사리고 있다. 학교와 가정을 중심으로 일상의 반복을 미묘하고 리드미컬하게 포착한 이 감각은 <남색대문>과 같은 영화들의 정서적 결이 어디서 기원했는지를 일깨우는 동시에, 오늘날 중화권에서 ‘작은 청신함’이라 불리는 샤오칭신(小清新, Xiao qingxin)의 감정 구조와 그것이 하나의 서브 장르로 체화되어 온 흐름의 잠재태를 내포하고 있다. [1] 그러나 이 계보는 허우샤오셴의 < 연연풍진 >(1986)을 비롯한 성장영화에서 에드워드 양의 <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1991)까지 대만 뉴웨이브 1세대가 소외된 젊은 세대를 응시해온 흐름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이 영화들은 포스트-경제 기적 시기에 접어든 관점에서 계엄령 시기의 역사적 조건을 되비추는 장치로서 청춘을 호출하며, 어쩔 수 없이 감내하며 통과해야 했던 국면으로 그것을 바라본다. 그 풍경은 담담한 일상으로, 때로 서늘하고 비정한 상태로 각인되는 한편으론 감독들의 노스탤지어와 자전적 경향을 투사한다. 도시로 향한 젊은 연인들이 이뤄질 수 없는 첫사랑을 흘려보낸 기억으로 남기거나(<연연풍진>), 백색 테러의 광풍과 외성인이라 불린 본토 이주민들의 불안정한 삶의 궤적을 통과하던 청년이 끝내 파국적인 폭력으로 치닫는 시간(<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속에서, 청춘은 이미 상실을 예감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광음적고사>,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중 (사진: Film at Lincoln Center , Asian Film Archive ) 이러한 정조는 중국 6세대 영화에 이르러 또 다른 시선으로 변주된다. 1989년 이후 중국에서 독립영화 [2] 로 분류될 수 있는 체제 외부의 작품들이 활성화되어, 급격한 시장화 한복판에서 방향성을 잃은 청춘의 초상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아장커의 < 소무 >(1997)를 기점으로 가시화된 이 흐름은 로우예, 왕샤오슈아이, 장위안 등의 작업으로 이어지며 6세대라는 미학적 진영으로 일컬어졌다. 소매치기인 주인공과 ‘사업가’로 변신한 옛 동료를 대조하며 중국 소도시 시장경제의 비루한 풍경을 날것으로 포착한 <소무>의 감각은 < 쑤저우강 >(로우예, 2000), < 여름궁전 >(로우예, 2006), < 북경 자전거 >(왕샤오슈아이, 2001), < 북경 녀석들 >(장위안, 1992) 등에서 목표를 갖지 못한 채 그저 머물고 떠밀리며 시간을 견디는 젊음에 대한 묘사로 이어진다. 6세대는 이처럼 국가 주도 계획경제와 개혁개방 사이의 격변기에 놓인 청춘이 조기에 소진되어버리는 감정 상태를 대변하는 성취를 보였고, 이는 세계 영화제 회로에서 환대를 받았다. 말하자면 이 시기는 중국 본토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독립영화’ 정신이 만개했던 때로 기록된다. 작가영화마저 상업영화 및 주선율 영화의 논리에 함몰되어가는 현 풍경을 떠올릴 때, 동아시아 청춘영화의 한 모델―즉, 비관적이지만 정직한 모델―을 제시한 당시 6세대의 성취는 그리움으로 남는다. 2010년대에 들어서며 독립영화의 ‘죽음’이 목격되기 전 [3] , 이러한 계보를 근과거까지 계승하며 그 정서적 맥을 잇고 있는 작품으로 리위 감독의 < 관음산 >(2010)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소무>, <관음산> 중 / 사진: IMDb( 1 , 2 ) 홍콩영화의 경우 상황이 조금 달랐다 할 만하다. 서극의 < 제일유형위험 >(1980)이 보여주듯, 초기 홍콩 뉴웨이브에서는 청춘의 권태와 분노를 폭발할 듯한 폭력과 뒤섞어내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럼에도 담가명이 호화롭고 자신감 넘치던 당시의 홍콩을 배경으로 도시 노마드들을 그려낸 < 열화청춘 >(1982)과, 왕가위의 < 중경삼림 >(1994)을 비롯한 1990년대 작품들은 청춘의 감정 구조를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이어진 프룻 챈의 < 메이드 인 홍콩 >(1997)은 포스트-반환 시기 처음으로 등장한 뛰어난 청춘영화가 아닐까. 영화는 고등학교를 중퇴한 두 소년과 이에 합세한 소녀로 구성된 아웃사이더들이 비가역적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는 점에서는 <제일유형위험>을 환기시키면서도, 한결 차분한 시선으로 홍콩의 내면적 심상에 집중한다. 한편 왕가위와 같은 홍콩 뉴웨이브 2세대의 동시대에 함께 활동한 임영동의 <학교 풍운>(1988)은 전형적인 청춘영화의 문법과 거리가 있을지라도, 학교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성장기 소년·소녀들의 위태로움을 그려낸 가장 ‘홍콩적인’ 작품 중 하나로 기억될 만하다. <제일유형위험>, <메이드 인 홍콩> 중 / 사진: IFFR , IMDb 중국 문혁 세대와 Z세대의 초상: <방화>, <소년 시절의 너> 그렇다면 지난 10년으로 범위를 좁혀 중화권 영화로 시선을 옮겨보자. 동시대 작품들은 어떤 청춘의 풍경을 담아내왔을까? 이 작품들을 한눈에 조망하기란 쉽지 않고 필자의 한계도 있기에, 이어지는 글은 그 흐름을 가늠하는 데 참고가 될 만한 몇몇 인상적인 작품들에 대한 간략한 스케치를 제공하고자 한다. 먼저, 중국에서 제작된 청춘영화들은 대만발 ‘샤오칭신’ 장르가 중화권 전반에 끼친 영향력을 입증하듯 캠퍼스 로맨스가 주류를 이룬다. 매력적인 주연 배우들의 청신함, 푸르른 여름 하늘, 첫사랑과 서투른 고백 등 이 장르의 관습으로 간주될 만한 요소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공부’ 자체가 단순한 성장담의 소재를 넘어 과열된 입시와 신자유주의적 경쟁에 짓눌린 청춘 서사의 엔진이 된다는 점은, 중국 청춘영화만의 독특한 지점이다. 모범생 소녀가 불량스럽지만 순수한 문제아 소년의 공부를 도와주며 사랑이 싹튼다는 대만 영화의 공식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가 보여주듯 다소 귀여운 수준에 머물지만, 중국의 대히트작 <우리가 잃어버릴 청춘>(2013)에 이르면 사뭇 다르게 변주된다. 이는 공부만이 ‘흙수저’인 자신의 유일한 생존 전략이라 믿으며 로맨스를 아예 거부하는 주인공의 철벽같은 마음을 공략하기 위한 작전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우리가 잃어버릴 청춘> 중 / 사진: IMDb( 1 , 2 ) 증궈샹 감독의 < 소년시절의 너 >(2019)는 중국발 학원 영화들의 흐름 속에서 가장 성공한 판본인 동시에 사회성 짙은 텍스트로 각인된다. 대입 시험인 ‘가오카오’를 코앞에 둔 시기, 주인공 첸니엔(주동우)이 한 소녀가 학교에서 자살한 현장을 목격한다. 죽은 소녀는 교내 가해자들의 악명 높은 괴롭힘에 희생되었음이 드러난다. 가해자들의 다음 표적이 된 첸니엔은 자신을 보호해 주려는 십대 거리의 소년(이양천새)과 운명적으로 엮인다. 영화는 입시 위주 고등학교를 지배하는 잔혹함의 심리를 사회적 리얼리즘으로 탐구하며 시작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온 세상에 맞서 싸우는 두 십대의 서로를 향한 헌신과 그 과정에서 피어나는 순수한 로맨스에 집중한다. 그러나 이처럼 교육의 살풍경과 두 연인의 낭만적 비극을 대비시키는 방식은 미덕이라기엔 다소 한계를 노출한다.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에 책임이 있는 체제 내부의 어른들(교사와 경찰들)이 지나치게 선량하고 도덕적인 인물로만 묘사되고, 가해자들 역시 충분한 전사나 깊이 없이 평면적 캐리커처에 가깝게 제시되면서, 두 상처 입은 영혼들의 고립은 사회적 압박 못지않게 스스로 세상과 단절하려는 관계의 내향성에 의한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오카오’ 점수가 부르주아로의 격상과 잔인한 빈곤의 삶 사이 간극을 결정짓는 상황에서, 첸니엔이 통과해야 하는 절박함의 정동은 한 편의 ‘십대 오페라’ 같은 이 영화를 잊을 수 없게 만드는 강력한 요소일 테다. <소년시절의 너> / 사진: IMDb <방화>(2017)는 문화대혁명 말기, 문공단(문화예술선전대)에 입대한 젊은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공간이 당대의 예술학교나 사실상 다름없었던 현실이 재현될 뿐 아니라, 영화 역시 학원영화의 문법을 상당 부분 따르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블록버스터와 풍자극을 넘나들며 < 집결호 >(2007), < 아부시반금련 >(2016) 등을 연출해온 중국의 대표적 감독 펑샤오강의 야심작이다. 무용수가 되기를 꿈꾸는 샤오핑은 문공단에 입성한 첫날, 자신을 마중 나온 선배 류펑에게 한눈에 반한다. 하지만 이타적이고 충직한 성정의 류펑은 정작 자신의 호의를 이용하기만 하는 피아노 반주자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영화는 마오쩌둥의 사망과 4인방 숙청, 그리고 1979년 중-베트남 전쟁으로 이어지는 약 5년간의 격동을 통과한다. 그 사이 샤오핑은 재교육 시설에 수감돼 있던 아버지의 죽음을 접하고, 류펑과 샤오핑 모두 전쟁에 참전한 뒤 정신적·신체적으로 소진된 상태로 귀환한다. 하지만 <방화>는 문화대혁명이 야기한 전면적인 비극을 정면으로 성찰하기보다는, 학교 청춘물의 형식을 빌려 이들에게 고통을 안긴 공산당 간부나 상하이 상류층 자녀들과의 격차를 부각한다. <소년시절의 너>의 첸니엔처럼, 샤오핑 역시 수줍음과 서투름, 그리고 계급 지위로 인해 조롱과 배제의 대상이 된다. 즉, 시대의 광기보다는 오늘날 중국사회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비판 가능한 엘리트 부유층의 부패와 계급적 소외에 비극의 화살을 돌리는 것이다. 제목인 방화(芳华)는 ‘꽃다운 청춘’ 혹은 ‘향기로운 시절’을 뜻한다. 세월이 흘러 1990년대 중반, 두 주인공이 재회하는 장면에서 문공단 시절은 노스탤지어 깃든 기억으로 남고, 그 공식적 종언을 알리는 해산식 장면에서 샤오핑은 생애 가장 아름다운 춤을 춘다. 대만 청춘 영화의 속삭임: <조니를 찾아서>,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 한편 오늘날 대만 청춘영화의 흐름이야말로 젊은 시절을 ‘아팠지만 예뻤던’ 감정으로 재배치하는 ‘샤오칭신’ 감성 구조와 떼어내 설명하기 어렵다. 동시에 그 한편에서는 이전 세대 영화들이 간직했던 불안과 공허의 정조를 일정 부분 봉합하면서도, 이를 동시대적인 감각으로 변주하려는 흐름 또한 포착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만 청춘 영화들은 불확실한 현재를 견디기 위한 하나의 정서적 피난처를 제공하는지도 모른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는 일상 속에서 작고 사소한 것들, 곧 ‘작은 행복과 미세한 슬픔’을 섬세하게 건드리는 이 방식은 개인주의적 정서를 중시하며,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로부터 물러나 자기만의 세계에 침잠하려는 태도를 전시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평론가이자 제작자인 페기 차오는 자신의 제작 영화 <남색대문>이 ‘샤오칭신’ 장르로 호명되는 데 대해 조금 다른 관점을 내놓는다. 그 미덕이 “대만 사회에 뿌리를 둔 일상적 디테일의 축적을 통해 그려낸 삶의 초상이자, 자비로 가득하며 악의가 없는 세계”의 포착에 있다는 것이다. [4] 후앙시 감독의 < 조니를 찾아서 >(2017)는 이러한 설명에 잘 부합하는 텍스트다. 타이베이를 배경으로 한 세 젊은 인물의 이야기는 인상 깊은 오프닝으로 시작된다. 지하철에서 작은 상자를 들고 탄 여자에게 한 청년이 다가와 새장이 아니냐고 묻는다. 여자는 나중에 답을 주겠다고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예전에 그런 상자에 새를 담아온 적이 있다고 덧붙인다. 같은 빌라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적당한 거리를 둔 채 걸어가는 긴 시퀀스를 통과할 때까지도 이들이 우연히 스친 타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후앙시는 허우샤오셴의 < 남국재견 >(1996)과 < 자객 섭은낭 >(2015) 제작부를 거치며 선배 감독의 인장과도 같은 롱테이크를 체득한 인물이며, 이 영화에는 실제 허우샤오셴이 제작자로 참여했다. 영화는 인물과 그들을 둘러싼 주변을 어떠한 판단 없이 평등한 시선으로 관조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일상의 미스터리를 낯설고도 신선한 방식으로 전달한다. 이를테면 화면에 익숙해진 뒤에야 청년의 티셔츠 무늬가 작은 새들이라는 사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순간처럼, ‘조니’라는 사람을 찾는 이상한 전화들을 계속 받아오던 여자는 문득 옛 애인을 조니라고 부른다. 앵무새를 키우는 여자와 자폐 성향을 지닌 청년, 그리고 탈출한 앵무새를 계기로 이들과 관계를 맺게 된 수줍음 많은 집수리공이 왜인지 모를 기분 좋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이야기. 이는 느슨하며, 너그럽고, 명확한 해답은 없지만 삶에 대한 낭만을 포기하지 않는 순간들로 가득하다. <조니를 찾아서> 중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2020)을 논하기 위해서는 대만발 청춘영화의 또다른 국면을 호출해야 한다. 전형적으로 이상화된 여성성보다는 강인하고 때로 보이시한 여성 캐릭터가 선호되고, 완성된 사랑보다는 첫사랑의 어슴푸레하고 틀이 잡히지 않은 감정에 집중해 온 흐름 말이다. <남색대문>, < 영원한 여름 >(2006), <여친 남친>(2012) 등이 보여주듯, 대만 청춘영화에는 퀴어 서사와 삼각관계의 묘사를 통해 장르의 영토를 확장해 온 하나의 계보가 존재한다. ‘사랑과 우정 사이’의 미묘한 긴장, 그리고 그 과정에서 종종 촉발되는 모호한 섹슈얼리티에 대한 섬세한 터치는 대만 청춘영화만의 고유한 미학을 구축해왔다. 패트릭 류 감독의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은 막 계엄령이 해제된 1980년대 후반 대만을 배경으로 한다. 아한은 가톨릭 기숙학교에서 버디를 만나 단짝 친구가 되고, 두 소년 사이에 형성된 감정은 학교가 여학생을 받기 시작하면서 시험대에 오른다. 신입 여학생 반반의 등장은 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성적 정체성을 직면하도록 압박하는 계기가 된다. 표면적으로는 삼각관계를 통한 ‘사랑과 우정 사이’라는 테마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 보이지만, <네 마음>은 정통 퀴어 영화라기에는 터치가 다소 가벼웠던 기존의 청춘영화 흐름에서 한 발 더 묵직하게 나아간다. 기숙학교 내에 공공연히 만연한 호모포비아와, 스스로 게이였음에도 아한에게 ‘교정’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던 캐나다인 신부의 모순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영화는 계엄령 해제라는 조용한 변화의 출발점에서 시작해,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시간으로 닿는다. 과거의 고통과 열정을 다시 마주하며 잃어버린 줄 알았던 시대의 기억을 되찾으려는 듯, 주제곡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이 흐르는 가운데 두 주인공은 죽은 신부의 교구가 있던 퀘벡의 밤거리에서 우연히 재회하는 결말로 향한다. 홍콩 독립 청춘영화의 새로움: <쪽빛 하늘>, <좁은 길> 마지막으로 최근 홍콩 독립 청춘영화는 대만의 청춘물이 제공하는 감정의 완충 지대나, 중국 본토 학원영화의 서사와는 사뭇 다른 궤적을 그려낸다. 이 글을 준비하며 마주한 가장 큰 수확은 홍콩 반환 이후 감독들의 본토행에 따른 영화 산업의 공동화나 정체성의 약화라는 오랜 우려를 불식시키는, 독립영화 진영의 새로운 세대를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저예산으로 제작되면서도 도시 청춘들의 표정과 삶의 결을 세밀하게 기록해 온 이 영화들은, 때로는 홍콩을 향한 러브 레터처럼 읽히기도 한다. 아모스 와이의 <닷 투 닷>(2014), <냅핑 키드>(2018), <먼 곳에서>(2022) 등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주목할 점은 홍콩영화발전위원회(Hong Kong Film Development Council)가 주관하는 신인 감독 지원 사업(First Feature Film Initiative)을 통해 입봉하는 신예가 점차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업은 신인 감독의 데뷔작을 지원할 때 홍콩 영화계의 거장 감독이나 베테랑 제작자를 멘토로 매칭해 주는 방식을 취한다. 2013년부터 시작된 이 세대 간 유기적 결합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 덕분에, 최근 홍콩 독립영화를 보면 타이틀 크레딧에서 제작자로 이름을 올린 익숙한 홍콩 감독들을 발견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쪽빛 하늘> 중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 그중에서도 <쪽빛 하늘>(2017)은 동시대 홍콩을 대표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중 하나인 청킹와이의 극영화 데뷔작이다. <천하태평>(2008), <음악 인생>(2009), <하나의 국가, 두 개의 도시>(2011), <테이스트 오브 유스>(2016) 등 홍콩의 현실에 대한 다큐멘터리 작업들과 허안화의 <밤과 안개>(2009)의 각본을 쓰며 다져온 청킹와이의 서늘한 시선은, 부모 살해 사건이라는 충격적인 소재를 통해 홍콩 사회가 청춘에게 드리운 그림자를 냉정하게 응시한다. <쪽빛 하늘>에서 부모의 시신이 지역 저수지 인근에서 발견된 뒤, 어린 코니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한다. 이 강렬한 스릴러는 누가 저질렀는가를 이미 알려주고 시작하기에, 질문의 중심은 ‘왜’라는 동기로 집중된다. 빈곤과 학대로 점철된 코니의 가정환경, 그녀가 학교 친구를 공범으로 끌어들이는 과정, 그리고 사건에 깊이 관여하면서 점차 자신의 사적인 삶까지 흔들리기 시작하는 여성 수사관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선정적으로 흐르지 않으면서도 세심하게 펼쳐지는 이 탐구의 형식은 평소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코니와 같은 인물들이 스스로 말하게끔 유도한다. 대만이나 중국의 청춘 학원 영화에서 ‘파란 하늘’이 젊음의 자유를 상징한다면, 이 영화의 어스름한 ‘쪽빛’은 홍콩의 비좁고 폐쇄적인 공간을 짓누르는 색채로 활용된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안전하지 못한 채 위협받는 십대들을 압박감 가득한 스릴러에 담아낸다는 점에서 <학교풍운> 같은 홍콩영화의 고전적 전통이 환기되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부모 살해를 자행한 소녀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거부하는 젊은 여경의 윤리적 딜레마는 평행선을 달리는데, 이는 세대 갈등의 단면이자 출구 없는 미로 같은 도시에 갇힌 홍콩 현세대의 실존적 질식 상태를 대변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좁은 길>(2022)은 2019년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 당시 자살을 예고한 어린 시위대를 구하려는 청년 구조대의 이야기를 담은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기를>(2021)을 렉스 렌과 공동 연출했던 람섬 감독의 단독 연출작이다. 이 영화 역시 대만의 낭만이나 중국의 열망과는 또 다른, 도시 속에서 존엄을 지키려는 홍콩 청춘들만의 정직하고도 아픈 초상을 그려낸다. 코로나19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 영세 청소 대행업체의 일원인 노동자 자크가 늦은 밤 식당을 방역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주로 가라앉은 팬데믹 시기의 밤 장면으로 구성된 <좁은 길>은 조용한 노동계급의 고독을 포착하지만, 음울하거나 비관적이기보다는 사회 주변부의 고단한 상황을 응시하면서도 어딘가 미묘한 위로와 해방감을 안겨준다. 일손이 절실하지만 도시를 덮친 팬데믹 탓에 자크의 형편은 넉넉지 않다. 그는 충동적으로 지원한 캔디의 비공식적인 구직 요청을 받아들이고, 매일 밤 일당을 현금으로 지급한다. 비교적 어린 여성인 줄로만 알았던 캔디는 사실 어린 딸을 키우는 싱글맘이다. 두 사람은 감정적 방어 기제를 세우면서도 서서히 비즈니스 파트너에서 친구 사이로 발전하지만, 영화는 연애담을 전형화하지 않는 선에서 결말을 열어둔다. 람섬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지난 몇 년간 힘든 시간을 보낸 홍콩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었고, 우리 모두가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자 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5] 취약함을 인정하는 용기는 <좁은 길>의 가장 큰 미덕이자, 고립 속의 유대를 형성하는 두 주인공의 서사에 깊이 공감하게 만드는 동력일 것이다. 청춘영화라는 틀 안에서 보자면 입체적으로 그려진 젊은 청소 노동자와 싱글맘의 묘사 자체가 인상적인 ‘캐릭터 스터디’라 할 만하다. <좁은 길> / 사진: IMDb *** [1] Papan Yang, “The Taste of Ice kacang: Xiaoqingxin Film as the Possible Prospect of Taiwan Popular Cinema”, The IAFOR JOurnal of Asian Studies, 2:1, 2016, p. 75. [2] Chris Berry, “Cinema: Reconsolidation of Party-State Hegemony in a Market Economy,” in M Dahl, M. Szatkowski & H. Kups (eds.), China under Xi Jinping: An Interdisciplinary Assessment , Leiden & Boston: Brill, 2016, p. 351. 중국 독립영화는 일반적으로 정부 당국의 검열을 거치지 않은 영화를 말한다. 이는 체제 내 상영이 허가된 예술영화(艺术片, yishupian)와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공식적으로 상영되지 못하는 독립영화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중국 내 독립 영화제(난징, 베이징 등)나 대안적 상영 공간을 통해 소개되거나, 주로 해외 영화제를 거점으로 유통되는 경향을 보였다. [3] Chris Berry, ibid., p. 350. [4] Song Hwee Lim, Taiwan Cinema as Soft Power: Authorship, Transnationality, Historiography , London & NY: Oxford University Press, 2022. p. 129에서 재인용함. [5] Elizabeth Kerr, “ Portrait of a City: The Narrow Road ” , ZOLIMA citymag (접속일: 2025. 12. 26.). 박은지(영화 연구자) l 프랑스 탈식민주의 영화와 동시대 동아시아 영화를 연구하고 글을 쓴다. 부산대학교 영화연구소 전임연구원 및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프로그래머. 지은 책으로 『지중해의 영화』, 주요 논문으로는 「장-뤽 낭시를 경유한 클레르 드니의 여정: ‘신체-지리학’ 영화, 생태적으로 그려내기」, 「부산 프랑스문화원과 트랜스로컬 시네필리아」, 「홍콩 누아르에서 포스트-홍콩 누아르까지 성찰적으로 바라보기」, 「두기봉의 밀키웨이 제작사와 포스트-1997 홍콩영화 정체성의 문제」 등이 있다.
< 웨건 마스터 >는 여러 면에서 이색적인 서부극이다. 예산은 999,370달러로 포드 서부극 중 가장 낮은 편에 속하며, 흥행성적도 당시 포드 서부극의 평균수입의 3분의 1 정도에 그쳤다. 포드의 영화에 여러 번 등장했던 존 웨인, 헨리 폰다, 제임스 스튜어트와 같은 당대의 스타 대신 무명에 가까웠던 벤 존슨과 해리 캐리 주니어(무성영화 시절 포드 영화의 스타였던 해리 캐리의 아들)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포드의 배우라고 해도 좋을 평생의 영화적 동지였지만 영원한 조연이었던 워드 본드가 여기선 그나마 가장 알려진 배우였다. 또한 이 영화의 스토리는 포드가 스스로 작성했는데, 이것은 1930년 이후로는 유일한 사례이다. 이런 외적인 요소들만으로도 우리는 이 영화가 포드의 가장 개인적인 서부극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웨건 마스터 >에는 서부극을 이루는 거의 모든 요소들이 등장한다. 카우보이(여기선 말 장사꾼), 무법자, 인디언, 정착민 마을, 황야의 횡단, 마차의 질주, 총격전과 같은 전형적 서부극의 관습적 요소들뿐만 아니라, 술 취한 광대(철학자), 도박과 춤과 노래와 같은 존 포드 서부극의 특징적 요소들도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웨건 마스터>는 포드의 다른 서부극을 포함한 어떤 서부극과도 닮지 않았다. 극히 단순하고 느리고 천하태평이며 사소한 에피소드로 가득한 이 기이한 서부극을 두고 포드는 “내가 만들고 싶었던 것에 가장 가까운 영화이며, 가장 단순하고 순수한 서부극”이라고 말했다. 앞서 포드의 다른 서부극을 다루면서 언급했듯이, 이 최고의 서부극 마스터는 아이러니하게도 소위 고전적 서부극 혹은 관습적 서부극을 만든 적이 없다. 그의 비전형적 서부극 중에서도 가장 일탈적인 이 영화를 가장 순수한 서부극이라고 부르는 포드의 편에 선다면(사견으로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부극은 다시 정의되거나 정의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 여기엔 문명과 황야, 동부와 서부, 질서와 무질서 같은 서부극의 기본적 대립항이 아예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착민 공동체도 인디언 마을도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집단이며, 그저 마차의 경유지일 뿐이며, 악당들이 등장해 여정을 지체시키지만 짧은 액션만으로 퇴치되어 버린다. 말하자면 < 웨건 마스터 >는 가장 비서부극적인 서부극이다. 장르 연구가들이 포드의 서부극을 다루면서 <웨건 마스터>를 잘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이런 곤경을 피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그 곤경은 장르 연구가들의 것이지 포드 세계의 여행자인 우리의 것은 아니다. <웨건 마스터>는 우리의 여정에서 가장 멋진 도착지 가운데 하나이며, 또 다른 걸작이다. 스토리는 한 문장으로 요약 가능하다. 100여 명의 모르몬 교도의 마차 행렬과 그들을 이끄는 두 ‘웨건 마스터’(마차 행렬의 가이드이자 한시적 지도자)는 황야의 곤경과 무법자의 위협을 극복하고 모르몬의 정착지를 향해 순례를 계속한다. 영웅의 면모를 부각시키는 극적 장치나 로맨틱한 연애담은 물론, 포드의 다른 걸작들에도 남아있는 감상적 정념조차 없다. 마차 행렬은 몇 차례의 고비를 겪지만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고 이것이 영화의 거의 전부다. < 웨건 마스터 >를 ‘사치스런 B급 서부극’이라고 표현한 하스미 시게히코는 여기엔 마차 행렬의 ‘완만한 운동’만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풍경이 있고 인물이 있다면, 풍경 속에서 움직이는 인물의 움직임을 찍는다는 카메라의 가장 단순한 행위만 작동한다는 것이다. 태그 갤러거는 비슷한 뉘앙스로 “이 영화의 미스터리는 인물이 다음에 무엇을 하는가의 미스터리가 아니라, 주어진 순간에 그의 생동의 미스터리”라고 말했다. 질베르토 페레스는 그냥 “소박하고도 위대한 영화”라고 한마디로 표현했다. < 웨건 마스터 >는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너무도 유연한 것이어서 우리의 눈을 현혹시킨 다음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주제와 정조를 집약한 한 장면을 끄집어내 특별한 찬사를 바치고 싶어도, <웨건 마스터>는, 이상한 일이지만, 어떤 장면에서도 멈추기가 어렵다. 아마도 ‘완만한 운동’의 단단하고 매끄러운 표면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부드럽고도 민첩한 이 영화의 생동감과 역동성이 교류하는 수려한 멜로디는 평자에게 달콤한 패배감을 안기기에 충분하다. 그 아름다움을 직접 말할 수 없다면, 이 특별한 서부극의 뭔가 다른 점을 말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으리라. #1 < 웨건 마스터 >의 이례적인 점 가운데 하나는 풍경의 위상이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는 포드의 다른 서부극들을 순례하면서 풍경의 초월성을 몇 차례 거론한 바 있다. 사건들이 닿을 수 없고, 물질적으로는 이야기 내부에 존재하지만 그것의 아우라가 이야기를 초월하는 풍경의 이중성은 포드 서부극의 발명이다. 하지만 <웨건 마스터>의 풍경은 인물과 친화한다. 풍경과 인물의 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가 매우 가깝거나 거의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달리 말해 인물과 풍경이 서로를 건드린다고, 혹은 인물과 풍경이 동행한다고 말해야 맞을지 모르겠다. 포드의 다른 서부극에서는 이런 것을 상상하기 힘들다. 인물들은 모뉴먼트 밸리의 기괴한 암석봉을 거의 쳐다보지도 않으며, 주로 바위산 위에서 등장하는 인디언을 제외하고는 대개 멀리 암괴로부터 떨어져 평원을 걷거나 마차를 달린다. 하지만 < 웨건 마스터 >에서 인물은 풍경을 쳐다보고 그것과 접촉하며 때로 그것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샌디는 날카롭게 치솟은 한 암석봉을 쳐다보며 “언젠가 저걸 보고 산타페의 성당을 닮았다고 얘기했잖아”라고 말한다.(#1) #2 #3 #4 그들은 풍경을 보고 그것을 기억하며, 때로 접촉하고 변형시키며 그들의 여정의 일부로 만든다. 움직임 혹은 완만한 운동이 사건의 일부로 재현되는 게 아니라 순수한 운동 자체로 제시되자 풍경이 움직임을 껴안은 형국, 달리 말해 운동의 초월성이 마침내 풍경의 초월성과 조우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풍경과 인물을 함께 담는 쇼트들에서 인물들은 풍경과 가까이 있거나, 아니면 풍경이 보이지 않는 앙각 쇼트로 촬영된다. 마차 행렬을 바위산의 언덕에 길을 만들어서 오른 뒤 그들 스스로 풍경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2, 3, 4) 물론 이런 표현들은 모두 포드 서부극들에만 통용될 수 있다. 이야기를 지속시키려는 규범적 구심력과 이야기를 잊거나 폭파시키려는 탈규범적 원심력의 긴장이 포드 서부극의 특별한 활력을 빚어낸다. 모뉴먼트 밸리의 거대하고 황량하며 기괴한 형상은 후자의 원심력과 이야기를 넘어선 층위에서 내통한다. 포드의 인물들이 만취해 주정을 부리고 노래하고 춤추고 때로 이상심리의 광기를 보일 때, 혹은 이야기가 자신의 출발점을 잊은 듯 세부에 몰두할 때, 우리는 포드의 세계에 임한 취한 신의 손을 혹은 무심한 우주적 운명의 그림자를 모뉴먼트 밸리의 형상에서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 웨건 마스터 >에서는 내통할 필요가 없다. 구심력의 규범이 사라지자 원심력은 기꺼이 풍경과 친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날뛰는 말(馬)들이다. 이 영화에서처럼 말의 동작에 극의 많은 긴장이 걸려있는 포드의 다른 서부극은 없다. < 웨건 마스터 >는 날뛰는 말들의 서부극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말은 인간의 통제에 순응하도록 길들여져 있고 그것으로써 인간의 서사에 봉사하지만, 휘파람, 총소리, 뿔피리 소리와 같은 모종의 자극에 날뛸 수 있다. 말이 날뜀에도 불구하고 혹은 오히려 말이 날뜀으로써 말의 순응 능력에 의존한 인간의 운동, 황야를 가로지르는 움직임이 지속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인간과 말과 황야의 영화인 서부극의 이상일 것이다. <웨건 마스터>가 그런 영화이다. 말이 순응할 때가 아니라 날뛸 때의 아름다움에 관한 영화이다. #5 말들은 언제 날뛰는가. 말 장사꾼이자 능란한 조련사인 샌디의 휘파람에 날뛴다. 해리는 보안관이 헐값에 말을 산 뒤 올라타자, 동료인 트레비스(벤 존슨)과 눈빛을 교환하고 휘파람을 분다. 말은 날뛰고 보안관은 간신히 매달리다 땅바닥에 처박힌다.(#5) 보안관은 살인강도인 클레그 일당을 추적하는 질서의 수호자이지만, 동시에 모르몬교도를 추방하려는(그리고 나중에 알게 되지만 떠돌이 약장사이자 광대패를 이미 추방한) 문명의 악덕의 집행자기이기도 하다. 포드는 여기서 굳이 이 보안관의 캐릭터를 탐구하지도, 혹은 그가 대변하는 문명과 질서의 본질을 사색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와 거래한 뒤 골려준다. 말이 날뛴다고 문명과 질서가 무너지진 않는다. 다만 동요할 뿐이다. 문명과 질서가 되돌릴 수 없는 것이라면,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건 동요로서의 유희, 유희로서의 동요일 뿐이다. 그 동요와 유희의 한가운데 날뛰는 말의 약동이 있다. 샌디는 극의 후반부에 다시 휘파람을 분다. 이때도 당하는 건 보안관 일행이다. 수배 중인 살인강도 클레그 일당은 마차 안에서 총을 겨눈 채 대기하고 있고, 보안관 일행은 마차를 수색하려던 중이다. 많은 인명이 희생될 지도 모를 위기의 순간에 해리는 휘파람을 불고 말은 다시 날뛴다. 또 한 번 혼쭐이 난 보안관은 다시 핏대를 내며 마차 행렬을 떠난다. 살육의 총격전은 저지되며 말의 날뜀으로 비로소 말과 인간의 운동은 지속된다. #6 날뛰지는 않지만 날뛰기 직전에 이르는 장면들도 있다. 워드 본드는 분노의 말을 해서도 안 되고 술을 마셔도 안 되는 모르몬교도 행렬의 대장이지만, 사소한 일에도 곧잘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다혈질의 사내다. 이 사내가 흥분할 때마다 말들은 콧김을 내뿜으며 동요한다. 사랑스럽고 유머러스한 이 장면들이 정교하게 연출된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워드 본드의 흥분과 말들의 동요는 감탄스러울 만큼 너무나 적시에 이어져, 마치 계획된 동시화처럼 보인다. 이때 워드 본드와 말은 같은 기질 혹은 같은 운명의 존재처럼 느껴진다. 워드 본드도 말도 순응과 날뜀 사이를 오가며 황야를 가로지르는 긴 순례, 오랜 운동을 지속할 것이다. 서사 안에서 종료되지 않는 그 순례는 아마도 그들의 삶 내내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말의 거친 움직임을 오해해 욕을 쏟아낸 워드 본드가 곧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말에게 사과하는 장면(#6)은 감동적이지 않을 수 없다. #7 #8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멋진 장면은 사막 한가운데서 물을 발견한 샌디의 외침과 총소리에 마차 행렬이 미친 듯이 질주하는 장면(#7)이다. 지금 말들이 총소리에 놀라 날뛰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목마른 동물이 물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탈진해 있던 말들이 모종의 자극으로 호수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워드 본드는 우왕좌왕하며 “말을 세워!”라고 외치지만, 말도 사람도 듣지 않는다. 그 맹렬한 속도에 흙바람이 몰아치며 마차에 매달려 있던 가재도구들이 우수수 떨어진다.(#8)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라고 믿는데, 가재도구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는 장면이 그토록 강렬한 감흥을 느끼게 할 줄은 < 웨건 마스터 >를 보기 전까지는 상상하기 힘들다. 말의 질주는 고결하고 무구한 천상의 운동이 아니다. 타는 갈증의 표현이라는 동물적 본능의 운동이고, 소중한 가재도구를 찌꺼기로 남기는 불완전한 운동이며, 소란과 무질서의 운동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통제되지 않고 통제될 수 없는 움직임이 어떤 악덕도 조성하지 않는 운동, 물이라는 목적지를 향한 단순하고도 투명한 운동이다. <웨건 마스터>를 순수한 서부극이고 부를 수 있다면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말의 순응과 날뜀이 운동의 투명성에 이르기 때문이다. #9 < 웨건 마스터 >를 보고 난 뒤 우리는 서부극을 잠정적으로나마 다시 정의할 수 있다. 서부극은 인간과 말이 아직 도래하지 않은 약속의 땅을 찾아 황야를 가로지르는 움직임의 영화다. 그 움직임은 완료된 사건이 아니라 영원한 과정으로서의 운동이다. 비록 그 인물과 장소가 과거에 속한 것이라 해도 과거에 닫혀있지 않으며, 질베르토 페레스의 표현을 빌리면 “미래에 열려있는 과거”이다. 황야의 순례자들은 마지막 장면에서도 강을 건너고 있다.(계속)
해가 바뀌었다. 동서양이 만들어 놓은 새해의 유예기간도 음력 설이 찾아오며 끝나버렸다. 5년을 견뎌야 할 새 정부도 출범했고, 어느덧 찾아온 봄날은 초여름 수준이 되어버렸다. 바야흐로 2013년의 1/4이 술술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새 출발의 봄기운이 살랑거리는 탓일까. 만나는 사람마다 특정 질문이 많아진다. 모든 창작자가 부담스러워하는 바로 그 질문. “다음 작품은 언제 보여주실 거예요?” 물론, 막역하지 않은 감독에게 건네는 만만한 인사치레였을 것이다. 마치 “잘 지내시죠?” 와 같은 관용적 표현이었으리라.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부담스런 말이 아닐 수 없다. 딱히 차기작 제작에 돌입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면 정말,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건가. 차기작 구상이라는 핑계로 여기저기 들쑤시고 있기는 하지만, 큰 진전은 없다. 전작의 후유증이 아직 남아 있어 좀 더 쉬어야 한다는 변명이 이젠 부끄러울 때도 됐건만, 여전히 남용하고 있다. 남들 눈에는 딱 봐도 천하태평 한량이겠지 싶다. 그렇다고 이 나이에, 10여 년을 해왔던 다큐멘터리 작업 말고 할 수 있는 것도 딱히 없다.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흐르고, 인생의 궤도를 바꿔 탈 수 있는 여지도 줄어간다. 무슨 배짱이었을까? 무슨 깡이 있어 이렇게 영화 한답시고 살게 되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는 이유는 뭘까? ‘나는 왜 찍는가’에 대한 상념에 빠져있던 중, (남몰래 흠모했던) 친한 선배가 영화 잘 봤다며 선물로 준 책이 생각났다.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의 에세이집 <나는 왜 쓰는가>. 스스로 ‘MTV 영상 세대’라며 활자와는 담을 쌓고 지낸 나였지만, 거장인 조지 오웰에게 무언가 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책을 읽으며 그 선배를 향한 연정을 되새겨 보고픈 마음도 한몫.) 나는 대체 왜 찍는 걸까? 조지 오웰은 글을 쓰는 동기로 남들과 달라 보이고 싶은 ‘순전한 이기심’과 아름다움을 향한 ‘미학적 열정’을 꼽았다. 그러고 보면 나 역시 대의명분보다는, 유명한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던 유년 시절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물론 훌륭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의지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남들과 다른 삶을 살고 싶었던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이었던 것 같다. 물론 당시 생각했던 다른 삶의 롤모델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었다는 점에서 몹시도 허황한 것이긴 했지만. 하지만 내 눈을 사로잡은 이 선지자의 창작 동기는 ‘역사적 충동’이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로서의 충동. 이런 충동 덕분에 조지 오웰은 수많은 역사적 사건을 다양한 형식의 글로 남겼을 것이다. 그가 글을 쓰며 역사를 남겼다면, 다큐멘터리스트는 영상을 찍으며 역사를 보존하는 사람들 아닐까. < 종로의 기적 >을 만들며 그 누구도 기록하지 않는 종로 게이들의 역사가 다큐를 통해 남겨지길 바랐다. 2010년의 한국에서 성 소수자가 이렇게 생존했음을 후세에 남기고 싶었다. 어디에나 있는 삶이지만,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역사였으니까. 남성중심주의 속에서 외면당했던 여성의 역사가 여성주의자들을 통해 새롭게 발굴되었듯, 성 소수자의 역사를 성 소수자의 시선으로 다큐멘터리에 담아내고 싶었다.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여전히 배가 고프다. 한술 밥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었다. 남겨야 할 성 소수자들의 삶은 무수한데, 엄혹한 시대를 가로질렀던 선배 성 소수자들의 인생을 그들이 사라지기 전에 꼼꼼히 기록해둬야 하는데, 인제야 역사적 충동을 느끼기 시작했다. 결국 차기작에 대한 열쇠는 내 첫 작품이 쥐고 있었으니, 에둘러 왔지만 이제라도 정신 차렸으니 다행이지 싶다. 꽃샘추위가 지나가면 카메라를 들고 다시 종로 골목을 어슬렁거려야겠다. 아!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한 조지 오웰의 마지막 동기는 바로 ‘정치적 목적’이다. 무슨 군말이 더 필요할까. 그저 조지 오웰 작가님의 말씀을 오롯이 인용하는 게 낫지 싶다.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새 정치로 어수선한 봄날이다. 황사가 불어와도 꽃은 필 터이니, 우리 모두 충동 느끼며 정치하게 영화 찍으며 살아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