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면객
- 감독
- 김선경
- 제작년도
- 1978
- 출연
- 김추련, 김선옥, 김기주, 장일도, 현길수, 서정아, 최민규, 한국남, 김회문, 문미봉, 권일수, 박희진, 김대현, 정영국, 신황주, 장인한, 윤일주, 이백, 김경란
[사진] 영화 <물망초>에서 주증녀 남편 유지 이은 <조국의 어머니> 주증녀는 1950년대를 눈앞에 둔 1949년 3월 윤대룡 감독의 <조국의 어머니>로 스크린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다. 독립운동을 하던 남편이 일본 헌병에 체포돼 모진 고문으로 죽자 아내가 그 유지를 이어 싸우다가 광복을 맞게 되는, 이른바 이 시기의 특징인 항일 영화이다. 잇따라 황정순, 주선태, 황해, 최남현, 이민 등 신인이 몇 달 사이에 쏟아져 나온다. 이렇게 이름을 알린 주증녀는 16밀리로 찍은 최초의 천연색 극영화 <여성일기>(홍성기, 1949)에 이어 <여인애사>(신경균, 1950), <흥부와 놀부><이경선, 1950) 두 편에 출연한다. [사진] <여성일기> 현장 사진(앞열 왼쪽이 주증녀, 오른쪽이 황정순) 하지만 6.25 전란 후 주증녀가 다시 활동을 재개한 것은 전쟁으로 헤어졌던 연인이 재회하는 김성민 감독의 <애원(哀怨)의 향토>(1954)부터였다. 잇따라 <자유전선>(김홍, 1955), <인생역마차>(김성민, 1956), <애인>(홍성기, 1956), <처와 애인>(김성민, 1957), <실낙원의 별>(홍성기, 1957), <청실홍실>(정일택, 1957), <인생화보>(이창근, 1957), <별아 내가슴에>(홍성기, 1958), <실낙원의 별 후편)(홍성기, 1958), <모녀>(최훈, 1958), <별만이 아는 비밀>(이선경, 1958), <마도의 향불>(신경균, 1958) 등 11편에 기용된다. 대부분이 당시 작고한 김내성의 「애인」, 「실낙원의 별」 류의 인기 통속소설과 방송극을 원작으로 한 것이었다. [사진] <실낙원의 별> 스틸 사진(중앙이 노경희, 우측이 김동원) ‘국산 갱스터 ’(「영화주평」. 『한국일보』, 1956.09.16) 를 지향한 <인생역마차>는 신문기자와 암흑가의 두목(이향, 1인2역) 사이에서 사랑을 선택해야 하는 비운의 여성을 보여 주는가 하면, <처와 애인>에서는 월남한 남편의 외면 속에 참고 견뎌야 하는 실향민의 비애를, <실낙원의 별>과 <실낙원의 별 후편>에서는 애독자(노경희)와 사랑에 빠진 인기 작가 아내(옥영)의 좌절과 반전의 삶을, <청실홍실>과 <별만이 아는 비밀>에서는 전쟁미망인과 딸의 행복을 위해 참고 견디는 애틋한 모성애를 각기 표출해 낸다. 주증녀는 특히 <실낙원의 별>의 호연으로 보다 더 좋은 의미의 대중성을 갖게 되었다. (유동준, 「영화로 보는 실낙원의 별」, 『경향신문』, 1957.09.28.). [사진] <청실홍실>의 한 장면, 좌측은 영화배우 엄앵란(사진제공 김종원) 그 이후 <낭만열차>(박상호, 1959), <그 여자는 행복했던가>(송국, 1959), <아내>(김묵, 1959) 등 주로 여성 멜로물에 출연했으나 자신이 제작한 <그 여자는 행복했던가>(기획 허영)의 흥행 실패와 잇따른 언론계 종사자와의 스캔들로 인해 이미지에 타격을 입게 된다. 그러나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 <고려장>(1963)에 이어 김수용 감독의 <만선>(1967)과 <산불>(1967) 등 1960년대의 출연작에 이르면서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상투적인 내용과 도식적인 인물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작품 선택에 변화가 온 것이다. 재봉틀 일로 가계를 도우며 두 자녀와 가정부의 유혹에 빠진 남편(김진규)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하녀>의 아내, 잘못된 효행의 악습에 따라 산채로 버려져야할 운명에 처한 <고려장>의 할머니, 바다에 나간 두 아들을 잃고, 실성해버린 <만선>의 어머니(곰치 아내), 마을에 숨어들어온 인민군 탈영자를 사이에 두고 다른 과부와 성적 비밀을 공유해야 하는 <산불>의 과부 점례 등 다양한 캐릭터가 그런 예이다. 이 같은 질적 성취는 결국 제5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산불)과 제11회 부일영화상 여우주연상(산불), 그리고 제6회 대종상 여우조연상(만선) 등 세 개의 큰 상을 받게 되는 경사로 나타난다. [사진] <하녀>의 한 장면 [사진] <고려장>의 한 장면 여덟 살 연극소녀에서 은막의 유망주로 강렬한 눈매와 우수의 그늘을 드리운 독특한 마스크로 팬들에게 사랑받은 주증녀는 1925년 2월10일 함경남도 영흥군 엄기면 덕하리에서 태어났다. 부농의 무남독녀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함남여고를 졸업하자 동경하던 극단 고협(高協)에 들어갔다. 1943년 열여덟 살 때였다. 그녀가 처음 무대에 선 것은 <무영탑>(연출 유치진)의 단역인 시녀 구슬아기 역이었다. 이후 <청춘의 윤리>, <맹진사댁 경사> 등 연극에 출연하며 연기력을 다졌다. 이 무렵 그녀는 극단 예원좌(藝苑座)에서 고협(高協)으로 옮겨온 배우 허영(許影)과 눈이 맞아 혼인하고, 대건사(大建社)의 직속극단 청탑(1946년 11월23일~)의 첫 연극 <보검>(3막4장)에 김승호, 허영 등과 함께 출연했다. (『자유신문』, 1946.11,09) 조용하고 섬세하면서도 선이 뚜렷한 그녀의 연기는 보는 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이런 그의 재능은 얼마 못가 새 얼굴을 찾는 윤대룡 감독에 의해 발견된다. 허영 외에 손전과 권일천이 공연한 <조국의 어머니>였다. [사진] <만선>의 한 장면(사진제공 김종원) 이렇게 은막에 진출한 주증녀는 1950년대까지 ‘잘 나가는 배우’로, 60년대 이후에는 ‘연기파 배우’로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다. 그 사이 신변에도 변화가 있었다. 허영과 헤어지고 가십에 오르내리던 언론계 종사자 윤호중과 재혼한 것이다. 하지만 70년대 초반부터 갑자기 눈앞이 흐려지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정상적인 연기를 계속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1974년 검객영화 <철면객>(이형표, 장청천)에 출연할 무렵이었다. 종합 진단 결과 뇌종양이었다. 수술을 포기한 채 스스로 육체를 갉아먹는 고통 속에서 약물 치료만 계속했다. 다만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열일곱 살 큰 딸이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듣는 일이었다. “추석이 며칠 안 남았구나. 추석빔을 마련해야 할 텐데…” 유족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주증녀는 1980년 9월18일 동트는 새벽 6시30분 남편과 1남 1녀, 정들여 가꾼 정원의 나무와 마지막 작품 <청색시대>(1976, 정인엽) 등 3백여 편의 영화를 남기고 25년에 이르는 연기생활을 마쳤다. 당시 56세였다. “예술인마을에 정착한지 벌써 5년이 돼간다. 시골도 아닌 서울의 주택가에 무슨 마을이냐고 하겠지만 기실 이 마을이란 어휘에 나는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정감과 향수를 느끼고 있다. 나에게 있어서 어쩌면 유일한 안식처가 될지도 모르는 이곳 예술인마을- 이름처럼 황토색 짙은 옛날의 마을은 아닐지라도 서울에서 유일한 ‘마을’이라는 희소가치가 있다.” 이는 주증녀가 뇌종양을 앓을 무렵 영화진흥공사 발행 월간 《영화》(1974년 5월호)에 발표한 수필 「예술인마을 우거기(寓居記)」의 한 대목이다. *
류승완 감독의 < 다찌마와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2008)라는 제목이 박노식 감독의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1976)에서 온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미처 몰랐지만 이명세 감독의 < 인정사정 볼 것 없다 >(1998)와 최호 감독의 < 사생결단 >(2006)도 각각 과거 독고성 , 장동휘 주연, 이신명 감독의 < 인정사정 볼 것 없다 >(1965)와 이두용 감독의 < 사생결단 >(1975)이 있음도 알게 됐다. 그렇게 재미삼아 찾다보니 나홍진 감독의 < 추격자 >(2007) 이전 김수용 감독의 반공영화 < 추격자 >(1969)와 김선경 감독의 ‘짝퉁’ 합작 액션영화 < 추격자 >(1979)도 발견하게 됐다. 사실 류승완 감독의 경우처럼 장르적 자의식이 새겨진 제목 모방은 아니겠지만, 어쨌건 무척 흥미로웠다. 같은 제목 다른 영화 포스터들 그러면서 다소 덜 알려진 B무비 감독 김선경 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 특히 < 추격자 >는 사운드트랙 ‘Run and Run’은 물론 올리비아 핫세가 다소 육감적으로 등장하여, 올드팬들에게는 지금도 굉장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이탈리아 B무비 < 섬머타임 킬러 >(1972)의 주인공 크리스 미첨(로버트 미첨의 아들)이 출연한 영화이기도 하다. 소련에 있는 한 한국 과학자가 새로운 에너지를 개발하고, 미국 CIA 요원(크리스 미첨)이 그의 망명을 돕는다는 내용의 첩보액션영화였다. 멋진 태권 액션을 선보인 권부길이 크리스 미첨의 태권도 스승이었던 인연으로 캐스팅이 이뤄졌고, 재미교포가 제작자였기에 한미 합작영화라는 타이틀이 붙었던 것으로 보인다. 1939년 서울에서 태어나 동국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김선경 은 < 잘 살아다오 내 딸들아 >(1972)로 데뷔했는데 이형표 , 최영철 , 김시현 , 고영남 , 이혁수 , 김정용 감독의 경우처럼 장르를 가리지 않았던 한국 장르영화 감독 계보에 포함시킬 만한 인물이다. 조감독으로는 김시현 감독의 < 필살의 검 >(1969)에 참여하기도 했다. 데뷔 이후로는 만주를 배경으로 한 항일 액션영화 < 빌리쟝 >(1974)을 시작으로 < 흑룡 >(1975), < 밀명객 >(1976), < 흑룡강 >(1976), < 금호문 >(1977), < 무림대협 >(1978), < 노명검 >(1980), < 산동반점 >(1982), < 산동여자물장수 >(1983) 등 주로 권격 액션영화나 한홍합작 액션영화들을 만들었다. 가공할 뱀떼가 등장하는, 아마도 실제 동원한 뱀 숫자만으로 기네스북에 올라도 될 법한 동물 공포영화 < 인사대전 >(1983)도 떠오른다. 김선경 감독, < 밀명객 >, < 흑룡강 > 주로 트렌드에 편승한 액션영화들을 만들긴 했지만, 그의 영화들은 나름의 선 굵은 액션 연출과 이야기 전개로 독특한 매력을 풍겼다. 특히 호쾌한 발차기가 일품이었던 액션배우 왕호가 주연을 맡은 < 밀명객 >과 < 흑룡강 >이 그러했으며, 이를 통해 왕호는 홍콩 골든하베스트로 진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영상자료원에서 영화제를 통한 필름 상영이 아닌 VOD나 DVD로 감상 가능한 김선경 의 액션영화는 < 특명 >(1976)과 < 산동여자물장수 >(1983) 정도다. 최근 TV 드라마를 통해 다시 주목받은 캐릭터 ‘각시탈’이 최초로 등장했던, ‘권격영화의 결산시대가 왔다’는 당당한 카피와 함께 김추련 이 각시탈로 출연한 < 각시탈 철면객 >(1978)도 그의 영화다. 영상자료원에 DVD가 있는 것으로 검색되지만, 영상자료실에서 재생해본 결과 왕우가 등장하는 엉뚱한 액션영화였다(자료원 담당자 분께서는 꼭 참고해주시길). 라호용 의 첫등장과 한참 후의 얼굴 공개 김선경 감독의 영화들 중 베스트 서너 손가락으로 꼽긴 아쉽지만, 어쨌건 < 특명 >은 그의 전체적인 스타일을 가늠할 수 있는 여러 단서들을 던져준다. 용( 라호룡 )은 독립군인 아버지 황대인을 잃고 한 도사 밑에서 자랐는데, 이제 그는 독립군의 지령을 받아 아버지가 목숨을 잃으며 탈취당한 불상을 찾으러 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된 현주( 김정란 )가 자신의 정혼자였음을 알게 된다. 주인공 라호룡은 김선경 감독이 야심적으로 발굴한 배우로, 액션을 시작하기에 앞서 목을 쭉 빼고 자세를 낮춘 포즈가 독특하다. 하지만 역시 액션스타도 ‘얼굴’이 중요해서인지 <특명> 이후 그의 별다른 활약상을 들어본 적 없어 안타깝다. 현주를 연기한 김정란은 태권도 3단으로 홍콩 쇼브라더스로 진출해 < 여신탐 >(1976)을 찍기도 했으며 성룡이 한국에서 촬영한 < 사학비권 >(1978), < 오룡대협 >(1978) 등에 출연했다. <여신탐>에서는 홍콩경시청의 요청으로 홍콩으로 파견된 한국 여경이었다. 당시 ‘한 액션’했던 대표 여배우 중 하나였으며 < 애권 >(1980)에서는 사부(배수천)의 애권 연마를 도운 화류계 여자였다. 기본적으로 ‘불상’을 ‘금괴’로 바꾸면, < 특명 > 역시 당시 전세계적인 트렌드라 해도 과언이 아닌 셀지오 레오네의 < 황야의 무법자 >(1964), 그러니까 이만희 의 < 쇠사슬을 끊어라 >(1971)나 < 용호대련 >(1974) 등 이두용 감독의 태권액션영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스파게티 웨스턴’의 변형에 가깝다. 가짜 불상이 판 치고, 서로 다른 세력들이 주인공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암투를 벌인다. 영화 속 누군가의 대사처럼, “불상을 노리는 사람이 많지만 불상이 하나뿐이라는 게 비극”이다. 그리고 당연히 이런 영화에서, 흑장미를 협박하며 “5분 안에 나타나지 않으면 흑장미가 똥장미가 될 줄 알아라!”라는 식의 언어유희도 빠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특명>은 이두용 감독의 영화들처럼 만주 독립군들이 가죽점퍼에 나팔바지를 입고 화려한 발차기를 구사하는 ‘무술 레지스탕스 영화’라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다. 수원화성 표현주의, 아수라 백작, 꺽기도 스타일 수원 화성을 무대로 펼쳐지는 후반부 심야의 추격 결투신은 거의 표현주의적인 명장면이다. 불상을 찾으러 나타난 아수라 백작 스타일의 선글래스 쓴 금발 남자를 비롯해, 성곽 이곳저곳에서 총을 겨누고 뛰어내리며 옥죄어오는 악당들의 위압감도 좋다. 그런 가운데 주인공은 느닷없이 <개그콘서트>의 ‘꺾기도’ 스타일로 느닷없이 ‘대’자로 드러누우며 적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이후 현주가 자신의 오래전 정혼자임을 알게 된 순간 찾아오는 황당한 연애장면들(사이좋게 자전거 타고 가다가 괜히 쓰러지는 그런) 만큼이나 당황스럽지만, 어쨌거나 설득력은 있다. 실력도 없는 사람이 비현실적으로 승리를 거두는 것은 아니니까. 나중에 다나까( 박동룡 )의 본거지를 습격할 때의 활력도 좋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쫓고 쫓기는 가운데 느닷없이 ‘쌍부채’ 액션을 펼치고, 급기야 모터사이클에서 뛰어올라 악당( 권일수 )에게 날아 차기를 후려갈기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이때도 멈춘 오토바이의 돌아가는 굉음은 멈추지 않는다. 승부는 끝났으되 관객의 감각은 여전히 열려있다는 액션영화 연출의 장인적 감각인 것. 그렇게 모든 상황이 마무리되고서야 주인공이 사실은 멀쩡하고 의협심 강한 ‘태권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요즘 사람들이 래프팅 하러 많이 가는 동강 혹은 한탄강에서 작별하는 장면을 끝으로, 그때서야 영화 제목이기도 한 ‘특명’을 받들어 떠난다. 그러니까 영화는 주인공이 비로소 ‘특명’을 받기 전까지의 이야기인 것. 한 송이 특명을 받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안타깝게도 인용하고 보니, 영화의 정서와 반대로 서정주 시인의 친일 논란을 불러일으킨 시의 한 구절일세). 라호 룡 김정란 감독: 김선경 각본: 최영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