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 보고서
- 감독
- 남상욱, 송선의, 문성진, 김재훈, 백일두
- 제작년도
- 2004
- 출연
- 김일, 정남
8년 동안 다니던 회사에서 ‘명퇴’당했다. 갈 곳이 없다. 결혼을 약속한 애인은 그 사실을 숨겼던 남자에게 결국 결별을 선언한다. 막막하다. 생계를 위해 낮에는 닭꼬치 만드는 공장에 다니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뛰지만, 밀려오는 자괴감에 점점 자신감을 잃어간다. 그때, 애인의 남동생이 위험한 제안을 해 온다. 자동차 절도를 같이 해보지 않겠느냐는 것. 이 남자 민수는 그 이후 자신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윤계상 , 김규리 주연의 < 풍산개 >는 순제작비 2억여 원으로 완성했다. 그리고 여름 대작들의 틈바구니에서 71만 명을 동원했다. 아마도 김기덕 감독이 각본을 쓰고, 김기덕의 ‘제자’들이 연출한 영화 중 손에 꼽을 정도의 관객 수일 것이다. < 살인재능 >은 그 <풍산개>의 전재홍 감독이 4년 만에 만든 작품이다. 어쩌면 이천희 , 차수연 주연으로 그가 31살에 찍었다는 데뷔작 < 아름답다 >와 닮았을 거라 지레짐작할 수도 있겠다. 이번 역시 김범준 , 배정화 라는 신인 배우를 내세운 저예산 영화지만 단언컨대, 전혀 다르다. 전재홍 감독이 연출은 물론, 각본과 촬영, 음악까지 참여해서가 아니다. 그 사이 거대 예산 영화의 연출 제의를 받았다가 고배를 마셔야 했던 전재홍 감독은 “세 번째 영화를 만들고 나서야 ‘현실’이 보였다”고 말한 바 있다. 그 현실이란 한국사회의 어떤 풍경과 그 풍경을 목도한 전재홍 감독의 체험과 맞닿아 있다. 소위 ‘청년실업’과 비견되는 민수의 실직과 심리는 3년여 동안 영화 연출과 거리를 둬야 했던 감독의 경험들과 겹쳐져 있다고 한다. 청년실업뿐 아니다. 좁은 오피스텔에 거주하며 결혼, 취업, 성공을 고민하는 < 살인재능 >의 민수는 지금, 여기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의 초상이다. 그러한 현실성을 기반으로 민수라는 인물의 비루한 일상과 심리를 쫓아가던 영화는 중반 이후 과감한 전환을 시도한다. 민수가 우연히 만난 옛 직장 상사를 충동적으로 죽이게 되면서, < 살인재능 >은 사이코 심리스릴러로 탈주하기 시작한다. 낯선 타인을 죽이는 것은 내 의지인가, 본능인가. 살인의 지속은 쾌락 때문인가, 생존(돈벌이)을 위함인가. 남동생의 “형, 재능이 있는 것 같아요”라는 칭찬은 자동차 절도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민수는 그 말을 살인에 관한 재능으로 인식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보인다’는 표현은 중요하다. 민수는 멈출 수 없을 뿐이다. 재능이라기보다 중독에 가깝다. 평범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애인과의 미래를 위해서도, 스스로의 자존감을 위해서도 살인은 계속돼야 한다. 여기서 멈추면 다시 닭 비린내에서, 새벽에 남의 차 운전대를 잡는 삶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 무엇이 민수를 살인 ‘중독’으로 이끄는가. 흔한 심리스릴러를 거부하는 전재홍 감독은 민수를 살인으로 내모는 동인을 결국 사회적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결혼이라는 안정적인 조건의 상징인 애인과의 관계는 유형무형의 압박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 남을 죽이는 민수의 행위는 무한경쟁을 요구하는 이 사회의 가치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민수가 흔한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피해자가 남긴 아이의 사진을 발견하고 민수의 감정이 짐짓 흔들리는 장면에서, 우리는 전재홍 감독이 민수를 특별한 살인자가 아닌 보편의 억압 받는 젊은이로 은유하고 있음을 재차 확인하게 된다. 결국 그의 범행을 알게 된 동생까지 죽이고, 애인이 이 모든 사실을 눈치채게 된 후, 민수는 수감된다. 민수는 애인에게 그간 모은 돈이 든 통장을 남긴다. 그 통장을 두 눈으로 확인한 애인의 뒷모습, 웃고 있는지 울고 있는지 모를 뒷모습으로 끝나는 라스트 신은 꽤나 여운이 길다. 그 재능으로 남긴 유산이 보잘것없을 것이기에 더더욱.
2009년 여름, 유명 영화제에서 소개된 것도 아니고, 극장 개봉을 하지도 않았으면서 오로지 입소문 하나만으로 수십차례의 상영회를 통해 수많은 관객을 만나는 사건을 일으킨 영화가 등장했다. 20대의, 20대를 위해, 20대가 스스로 이야기 하는 < 개청춘(開청춘) >이다. 영화는 세명의 20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7년차 대기업 직장인 민희는 남들이 보면 번듯한 정규직 직장을 다니고 있다. 고졸이라는 한계로 몇 년째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회사 일에 익숙해지는게 답답하고 무섭지만 그만두고 싶어도 자신이 없다. 술집 직원 인식씨는 젊음 하나로 무슨 일이든 헤쳐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친다. 사지 멀쩡한데 왜 일을 할 수 없는지, 청년실업이라는 말이 우습기만 하다. 그러나 현실은 의지 하나만으로 살아가기에 그리 녹록치 않다. 촛불집회에서 만난 방송국 막내작가 승희는 매사가 활발하고 적극적이다. 입봉을 위해 휴일도 없는 빡빡한 회사생활을 버티고 있지만, 정작 작가로서 글을 쓸 기회는 회사에서 주어지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방송국에서는 비용절감을 이유로 방송작가 자체를 없애려고 한다. 여기에 또 하나의 주인공, 제작진 반이다는 20대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담고 싶지만, 돈도 없고 경험도 없는 터라 자꾸 문제가 생긴다. ‘88만원 세대’로 이름지워질 정도로 이 시대의 20대에게 청년실업 문제는 심각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사회를 고발하거나 무언가 대책 마련을 호소하지 않는다. 취업을 위해 어떤 스펙을 쌓고 준비를 해야 한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다만 카메라를 든 20대와 카메라에 찍히는 20대가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관객들에게까지 ‘너희도 같이 한번 이야기 해 보자’며 은근히 추파를 던진다. 마치 끝없는 수다를 통해서만이 ‘20대’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지는 수많은 젊은이들 각자의 차이와 생동감을 잡아낼 수 있다고 믿는 듯이 말이다. 반이다는 ‘젊을 땐 다 그런거야’라는 말을 들으며 현실을 고스란히 견디기는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20대들의 일상과 고민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대로 보여주고 같이 얘기하고 싶었다고도 한다. 영화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일자리를 갖게 된다면 행복해지는가를 묻고 있다. 스스로도 영화를 완성하게 되면 행복해질까를 질문하면서. 상영회에 참석한 관객들은 이 쉽고 재미있는 영화에 자연스럽게 동화되었다. 졸업을 앞둔 상황에서 취업이냐 진학이냐를 묻는 고민상담부터, 대학을 가지 않고 직장생활을 하는 친구들의 생각을 이해하게 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에, 심지어 자신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찍어서 나눌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까지, 이 영화는 관객 스스로를 이야기하게 하는 묘한 힘을 지니고 있다. < 개청춘 >은 말그대로 개같은 청춘이라며 자조하는 말을 하다 제목이 되었는데, 그러다 너무 패배한 느낌이 싫었고,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으로 작업을 하며, 열릴 개자(開)를 써서 ‘開청춘’이 되었다고 한다. 정말 말 그대로, 청춘이 열리길 바라는 마음을 가진 분들은 한번쯤 이 영화를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