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불
- 감독
- 최용석
- 제작년도
- 2009
1. 먼저 고백부터 해야겠다. 부산독립영화에 대한 글을 쓸 때마다 부닥치는 문제는 얼마나 어려운 형편에서 제작해야 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다.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자면 부산독립영화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되기도 하지만, 간혹 반사 신경과 맞먹는 자기암시로 이어지기도 한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곁에서 지켜보기도 하고, 함께 읽어보고 의견을 나누는 과정을 거치고 실제 촬영을 해야 하는 기간, 편집을 하는 과정에서 한두 번씩 영화를 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친한 감독의 경우뿐 아니라 얼굴만 알고 지내는 감독의 영화를 만날 때도 비슷한 감정이 생겨난다. 한 편의 영화가 우리에게 도착하기까지의 노고를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매해 부산독립영화협회에서 부산독립영화에 대한 비평집을 만들면서 가장 큰 고민거리는 각 영화에 대한 지지만이 해답일까, 라는 점이다. 거의 대부분의 영화가 최초의 비평문을 만나게 되는 셈이라서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더욱 조심스러워진다. 조금 더 따끔한 질책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더욱 자세한 분석을 통해 이 영화가 놓친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닐까. 한 편의 영화가 생산되기 이전부터의 시간을 알고 있다는 것 때문에 영화가 성취한 지점에만 우리의 눈이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반성을 하곤 하지만 결과는 해마다 비슷한 수준에 머무른다. 작년은 『인디크리틱』 이 10년을 맞은 해였기 때문에 전 편집장과 감독, 필자들이 모여서 대담을 가졌다. 영화가 바뀌고 달라지는 것에 비해 우리의 글은 나아지고 있는가. 글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일종의 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고, 나의 고민과 유사한 이야기도 나누었지만 ‘부산’과 ‘독립영화’, ‘비평’을 나란히 놓고 생각할 때의 잠정적인 결론은 최선을 다해 영화를 보고 서로 용기를 나누자는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비평에 대한 최초의 독자이자 영화를 제작한 감독과 그 영화에 대한 고마움을 되돌려줄 방법이 그것밖에 없다는 것이 두 번째 고백이다. 2. 부산의 독립영화가 지나온 시간과 현재 진행 중인 길을 짚어볼 때 확실히 염정석, 전수일, 조성봉으로 대표되던 흐름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알려진 이들을 제외하고 현재 후반 작업을 하고 있는 몇몇 감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들은 2000년대 중반에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고, 디지털 포맷의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극영화를 만들고 있는 최용석 , 박준범 , 장희철 과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김지곤 , 오민욱 의 영화는 현재 부산에서 가장 단단한 신뢰와 지지를 받고 있다. 영화제에 상영되거나 극장에서 개봉했다는 결실의 문제를 넘어서서 이 젊은 감독들은 자신만의 관심사와 테마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접근하고 표현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영화를 대하는 태도와 그들의 영화가 던지는 질문을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될까에 대해 고민한다. 최용석 의 <그와 동행>(2004), < 제외될 수 없는 >(2007), < 이방인들 >(2012)은 부재로 인한 고통과 상실, 슬픔이 애도로 이어지거나 실패하는 과정 그 자체를 다룬다. < 도다리 >(2007)에서 20대 중반의 청년들이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루었던 박준범 은 작년에 < 디렉터스 컷 >을 완성했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영화와 사람들 간의 관계를 관찰자의 시선으로 포착하고 있다. < 미스 진은 예쁘다 >(2013)를 통해 소박한 공동체의 복구를 염원했던 장희철 도 새로운 작품인 < 눈이라도 내렸으면 >을 올해 1월에 촬영을 끝내고 현재 후반 작업 중이다. 장희철이 꿈꾸고 함께 하기를 제안하는 만남을 통한 사람됨의 회복이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지 기대된다. 김지곤 은 < 할매 > 연작을 통해 산복도로라는 장소와 할머니 개인의 삶, 사적인 기억과 공적으로 진행되는 개발에 대해 세심하게 관찰하고 조심스럽게 사회적 배우의 삶을 들여다본다. 현재는 전직 악사라는 신선하고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 악사들 >의 믹싱 작업중이다. 부산에서 가장 과감하게 형식적인 실험을 하고 있는 오민욱 은 < 상 >(2012), < 재 >(2013)를 통해 ‘부산학’적인 실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 하야리야 부대 자리에 시민 공원이 들어서면서 철거된 주변부의 장소를 통해 시간에 대해 사유한다. 그는 현재 <초원>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다. 80년대 중반부터 제작되기 시작한 부산독립영화의 지도가 이젠 꽤나 풍성해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편집실과 사무실 책상에서 작업하고 있을 새로운 시선, 새로운 태도로서의 영화를 기다리기 때문에 해마다 11월이면 설렘만큼의 고민으로 만들어진 책이 고맙다는 사실이 세 번째 고백이다.
최용석 감독의 첫 장편영화인 < 제외될 수 없는 >은 한글 제목보다는 영어 제목(After)이 이 영화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한 소녀의 자살 이후에 소녀와 가까운 관계였던 세 인물들이 어떻게 남겨진 고통을 감내하는가가 이 영화의 전부다. 딸의 자살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1년 6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오고, 소녀와 가장 가깝던 친구는 소녀의 집을 제집처럼 드나들면서 시간을 보낸다. 소녀의 담임선생은 아직도 교실에서 소녀의 흔적을 느끼는 것처럼 학교를 좀처럼 떠나지 못한다. 인물들은 모두 소녀의 죽음을 경험했지만 죽음의 원인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이 지독한 상황은 인물들에게 부재하는 소녀의 공간과 마치 정지된 듯 좀처럼 진전되지 않는 시간을 배회하도록 만든다. 아버지는 언어를 통해 딸의 죽음의 원인을 찾아내거나 추적하는데 익숙하지 못하다. 어눌하게 들리는 그의 말은 어미가 뭉개지거나 흐려지곤 한다. 마치 딸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고 딸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함에서 비롯된 죄책감이 아버지의 현재를 구성한다. 아버지는 교실을 돌아보거나 딸의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어두운 방에 주저앉아 사탕을 깨물어 먹고 찬 방바닥에 누워 잠이 든다. 소녀의 친구인 또 다른 소녀는 비어 있는 소녀의 집에 살그머니 들어오고 집이나 학교 주변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듯 물끄러미 무언가를 쳐다본다. 교사는 불면증에 시달리고 엄마처럼 보호했었던 소녀의 죽음을 떨쳐내지 못해 괴로워한다. 세 인물의 행동으로 채워진 이 영화는 아무리 생각해도 원인을 찾아낼 수 없는 서사구조 안에서 반복되는 행위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집과 학교라는 공간에서 부재를 견디고 관통하는 과정만이 나열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최용석 의 태도가 드러나는 첫 신에서 분명하게 제시된다. 소녀가 앉아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린다. 이어지는 쇼트는 아버지가 어딘가를 바라본다. 세 번째 쇼트는 교실의 창가에 서 있는 교사의 모습이다. 세 인물은 삼각형의 구도를 그리면서 시선으로 연결된다. 이들이 바라보는 방향은 서로를 향해 있고 죽은 소녀를 에워싸는 것처럼 느껴진다. 단조롭다고 느껴질 즈음, 이 영화가 기묘하게 미끄러지는 지점은 비어 있는 학교의 복도와 교실을 이동할 때 동반되는 핸드헬드의 급작스러운 움직임이나 교실의 횡축 트래킹이 소녀의 시선처럼 보일 때다. 또한 소녀의 친구와 소녀가 마치 동일인처럼 느껴지도록 구성해나가는 쇼트의 연결에서도 찾을 수 있다. 아버지가 딸의 친구인 소녀의 뒤를 쫓다가 놓치는 장면에서 소녀는 마치 유령처럼 아버지의 뒤로 휙 지나간다. 또한 아버지의 꿈에 소녀가 등장해서 뒤돌아보는 쇼트를 통해 이 지난한 애도의 과정이 끝에 도달했음을 느끼도록 만든다. 부재하지만 세 인물의 시간을 관통하고 어디에서나 등장하는 소녀의 존재는 아버지와 교사, 소녀의 친구를 마치 유사가족의 시선 아래 놓아둔 것처럼 보인다. 최용석은 이 영화를 통해 부재를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부재를 감싸 안는 시선의 구도 안에 놓아둔다. 죽음이라는 받아들이기 힘든 상태를 과장하거나 승화시키는 방법 대신 정직하게 죽음 이후의 상황을 견디고, 하릴없이 반복되는 행동으로밖에 견딜 수 없는 애도를 차근차근 따라가면서 지켜본다. 자살, 부재, 죄의식,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이야기의 구조 안으로 포함시키면서 감정들을 만들어내는 데 관심이 없는 감독의 단호한 태도에서 카타르시스의 경험은 죽음에서 불필요한 요소임을 드러내고, 사건으로서의 죽음을 통해 만들어지는 스펙터클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강직하고 딱딱할 수밖에 없는 영화적 결단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