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스파크
- 감독
- 최유진, 김명주
- 제작년도
- 2018
- 출연
- 김연아, 이영기, 조선, 진양욱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 내리면 도착하는 영화제가 있다. 영화제에 온 사람들은 공항 안에서 영화를 보고, 파티를 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자다 보니 마치 영화 < 터미널 >이 떠오른다며 한 마디씩 거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간도 공간도 낯설어지고 ‘하늘이 보고 싶어’라는 말이 농담처럼 오고 간다. 단 4회의 영화제 만에 해외의 수많은 애니메이션 작가들이 가보고 싶어 하는, 다시 오고 싶어 하는 영화제로 자리 잡은 이 영화제는 가까운 일본에서 열리는 신치토세공항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이다. 올해 영화제는 11월 2일에서 5일까지 신치토세 공항에서 개최되었다. 신치토세 공항은 삿포로를 갈 때 거치게 되는 공항으로 국내선과 국제선을 탈 수 있는 중소규모의 공항이지만, 공항 분위기는 하나의 멀티플렉스 같은 느낌이다. 공항 안에는 영화관이 있고, 호텔이 있고 홋카이도 지역의 유명한 맛집들이 들어와 있고, 홋카이도 지역의 다양한 기념품 가게들이 들어와 있다. 뿐만 아니라, 도라에몽, 헬로키티와 같은 인기 캐릭터 박물관과 로이스 초코 공장을 볼 수 있고, 심지어 일본에 가면 꼭 하고 싶은 온천 시설까지 갖췄다. 심지어 노천 온천도 있다. 공항 안에서 영화제가 가능한 것도 바로 이런 다양한 시설들이 갖춰져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영화제를 찾은 게스트들은 영화를 보고, 호텔에서 잠을 자고, 온천에서 하루를 정리하고, 수많은 레스토랑을 돌아다니며 식사를 해도 공항을 다 돌아볼 시간이 부족하다. 공항 이야기로 지면을 다 쓸 것 같으니, 공항 이야기는 이쯤으로 정리하자. 재미있는 인연으로 첫해부터 올해까지 영화제를 매해 참석할 수 있었다. 한 해 한 해 영화제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지만, 새로운 작가를 만나는 것만큼 지난해에 왔던 감독을 다시 만나는 것 또한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한 번 오면 다시 오고 싶게 만드는 힘이 이 영화제에는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들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우선 프로그램이다. 아주 많은 영화제를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자그레브나 안시, 히로시마 애니메이션 영화제에 참석해서 작품들을 보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제의 작품들은 또 뭔가 다르다. 올해 나는 영화제의 아트 디렉터인 도이 노부아키씨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작품들이 하나같이 이상해서, 이상한 게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라고. 아마 다른 영화제에서 봤으면 ‘이게 뭐지’ 이랬을 작품도 그런 작품들 사이에 있으니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바로 이 ‘이상함’이 최근 개인적으로 느끼고 있는 애니메이션의 매력이다. 가끔 작품들을 보면서 ‘왜 애니메이션을 하고 있을까?’란 원초적인 질문을 떠올릴 때가 있다. 나는 바로 그 답이 바로 이 ‘이상함’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인가를 움직인다는 것,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상상 그것이 그저 현실의 모방이 아닌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는 것이 바로 애니메이션을 하게 만드는 매력이 아닐까란 생각. 그래서 그냥 퀄리티가 높고, 이야기가 잘 짜여 있는 그런 애니메이션이 아닌 바로 ‘이상한’ 즉, 정제되지 않은 작가 고유의 세계가 만들어내는 살아있는 움직임에 끌리게 된 게 아닐까란 생각. 결국 전체적으로 이상한 작품들이 모여있는 이 영화제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과 고민을 던져줌과 동시에, 다소 다른 방식으로 작품에게 접근할 수 있게 해주며, 작가들을 새롭게 발굴하는 역할을 이 영화제는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만남의 장으로서의 공간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영화제는 기간 내내 공항이라는 좁은 곳에서 모든 행사가 이루어진다. 영화제를 찾은 사람들은 만나지 않을 수 없다. 영화관에서 만나고, 호텔에서 만나고, 식당에서도 만나고, 길을 걷다가 만난다. 그리고 이 영화제의 하이라이트 바로 ‘바’이다. 공항의 특성상 모든 시설은 9시면 문을 닫는다. (정확히는 온천을 제외하고) 그래서 영화제에서는 밤에 갈 곳이 없는 게스트들이 모일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빌려 바를 운영한다. 이 좁은 공간에 모든 게스트들이 모이니, 말 그대로 안 친해지려야 안 친해질 수가 없다. 밖에는 문을 닫았으니, 어딘가로 빠져나가서 술을 마실 곳도 없다. 시내까지는 거리가 있다. 그래서 야간의 바에는 감독, 게스트, 심사위원, 영화제 관계자 모두가 모여서 온갖 언어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소한 잡담에서부터 작품 이야기에 사는 이야기까지 영화제 기간 밤마다 새벽까지 왁자지껄 파티가 계속된다. 영화제에서 작품을 보는 것만큼 중요한 네트워크를 만들기에 이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다. 공항이라는 약점이 오히려 영화제에 강점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영화제를 운영하는 스태프들이다. 운영과 같은 실무를 맡고 있는 것은 공항을 운영하는 회사가 직접 맡는다. 공간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행정력을 갖추고 있는 스태프들이 갖춰져 있다. 처음 보았을 때는 양복을 입고 있어 영화제 분위기하고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지만, 그들이 스태프를 대하는 태도는 다른 영화제 스태프들과 다르지 않아, 이제는 익숙한 느낌의 정장이 되었다. 그리고 영화제의 프로그램과 콘셉트를 정하는 중요한 자리에 도이 노부아키 아트 디렉터가 있다. 그는 일본에서는 젊은 애니메이션 평론가로 활동하며, 애니메이션 서적 집필과 애니메이션 배급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영화제를 찾아다니고, 작가를 만나는 활동가이다. 그에게 영화제의 작품 선정 기준에 대해 물었을 때, “경쟁이건 초청프로그램이건 현재 일어나고 있는 재미있는 것을 망라하고 싶다”고 대답하였고, 영화제의 프로그램은 그에 대한 대답일 것이다. 그리고 “장래를 이끌어갈 재능있는 젊은 작가들과 일본의 작가들을 발굴하는 것”을 영화제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대답은 애니메이션 작가들과 함께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대답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실무력을 갖춘 스태프들과 애니메이션 현장에서 활동하던 활동가들이 함께 만드는 영화제이기에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이씨가 생각하는 애니메이션의 매력은 ‘작가의 개성’을 꼽으면서 ‘세상에는 나와는 다른 관점과 시선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의 말 그대로 신치토세 공항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는 내가 지금까지 보고 있던 세상과 다른, 그리고 우리가 흔히 보던 애니메이션과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영화제에서 내년에는 개근상을 주겠다고 약속했으니, 내년에도 갈 수 있도록 다시 노력해야겠다. (시식코너에서 치즈 케이크를 매일 먹기 위해서거나, 30여개의 소프트 아이스크림 매장 정복이라든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다.) 영화제 홈페이지: http://airport-anifes.jp/en
2014년 4월 16일을 기억하는 어느 누구도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없는 작품이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를 보기만 해도 트라우마처럼 가슴이 아파지고 눈에 눈물이 고이는 그 기억으로부터 떠난 이들이건, 떠나보낸 이들이건, 지켜보던 이들이건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세월호가 바닷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지금도 우리의 바람은 여전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그 바람 말이다. 차갑고 어두운 밤. 세차게 쏟아지는 비와 거친 파도. 바다 위에서 표류하는 것만 같은 작은 조각배. 어두운 푸른색 톤의 배경은 너무나 차갑게 느껴진다. 마치 차갑고 어두운 바닷속 같다. 그러나 고래의 뱃속은 전혀 다르다. 그 안에는 밝고 화사한 노란색 꽃들로 가득한 정원이 펼쳐진다. 공기마저 따뜻함이 느껴진다. 이미지만으로도 두 공간은 선명하게 대비된다. 공간에 따라 인물의 구성 역시 대비된다. 바다 위의 그녀는 홀로이다. 춥고 어둡고 외롭다. 그러나 고래 뱃속에서 그녀는 그토록 찾아다니던 딸을 만난다. 둘의 포옹은 따뜻하고 애틋하다. 이러한 공간의 이미지와 구성의 대비는 엄마와 딸의 만남의 절실함을 더한다. 함께 있는 그 순간만이 밝고 아름답게 빛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 빅 피쉬 >는 이러한 절실함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고래 뱃속에서 딸을 어렵게 만나지만, 바다라는 현실적인 공간이 그녀를 바깥으로 끌어당긴다. 헤어지지 않으려 하지만, 결국 다시 차가운 바다 위에서 눈을 뜬다. 그리고 딸을 만나기 위한 그녀의 싸움은 다시 시작된다. 보다 강하고 모진 마음으로 그녀는 작살을 단단히 잡는다. 이것은 세월호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이다. 끝나지 않는 싸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이들,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의문들. 외롭고 힘든 싸움이었고, 앞으로도 쉽지 않은 싸움이겠지만, 힘주어 작살을 들고 자신을 보호해줄 밧줄조차 끊은 채, 바다를 마주하고선 수많은 그녀들에 대한 지지를 작품 속에서 만나게 된다. 전작 <더미: 노 웨이 아웃 Dummy: No Way Out>에 이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작업을 통해 인물의 감정을 섬세하게 다루고 있는 박재범 감독의 졸업 이후에 만들어진 첫 작품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작업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세월호를 바라보는 간절함을 담아 하나하나 만들었을 감독의 손길이 작품 가득 느껴진다. 세월호를 상징하는 고래와 노란색은 감독이 하고자 하는 작품의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있다. 마지막으로 작품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작은 위안이 하나 있다. 고래 뱃속에 펼쳐진 너무나 아름다웠던 노란색 꽃밭이다. 그리고 더 이상 춥지 않은 곳에서, 예쁜 꽃이 가득한 아름다운 정원에서, 그곳에서만큼은 행복했으면 하고 조용히 기도해본다.
수컷을 사랑하게 된 남자가 있다. 아닌가. 사자를 사랑하게 된 건가. 아니지, 인형을 사랑하는 남자인가. 주인공 재근은 축구연습을 하다 자신의 공을 찾아와준 지오토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둘은 닭도리탕을 먹고, 놀이공원에 가고, 같이 셀카를 찍으며 평범한 사랑을 나눈다. 그러다 재근은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다. 갈기가 있는 사자는 수컷이라는 거다. 보통 여자들이 머리를 기르고 남자들은 머리를 자르는데, 이 사자들은 반대라는 거다. 헷갈리는 일이다. 재근은 이 사실을 알고 자신이 수컷과 사랑에 빠졌다고 고통스러워한다. 아니, 사실 누가봐도 사자랑 사랑에 빠졌다거나, 사실 그게 일반 사자가 아니라 인형이라는 게 더 놀라운 일이 아닌가. 동성애를 비난하는 자들을 작품은 직설적으로 공격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이 뿌리는 전단지나, 원색적인 비난이 담긴 피켓들이 화면에 대놓고 자료화면처럼 나오지만 말이다. 오히려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관습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괴로움을 호소하는 재근을 통해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작품은 주인공 재근과 지오토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 같다. CCTV 화면이라던가, 블랙박스 영상이 등장하고, 둘의 행복했던 시간은 스틸사진과 핸드폰 동실사 영상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지오토의 움직임은 모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소개된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는 < 바시르와 왈츠를 >이라는 장편이다. 만들어진 영상인 애니메이션과 사실에 기반한 다큐멘터리라는 상반되어 보이는 두 개의 장르의 만남을 통해 역사적 사건이나 사실을 전달하는 데 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앞에 작품이 보여주었다면 < 지오토 >는 오히려 반대편에서 접근하고 있는 작품이다. 즉, 사실에 대한 새로운 재현의 방법으로써 애니메이션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넘어서는 극단적인 허구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애니메이션을 사용하고 있다. 보통 페이크 다큐는 페이크처럼 안 보이게 만들지만, 이 작품은 페이크 다큐이면서 누가 봐도 페이크인 것을 알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누구도 속지 않을 페이크 다큐를 통해 허구적인 이야기보다 더 말도 안되는 현실을 풍자희극으로 풀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재근의 진지한 대사에서 드러나는 현실에 대한 풍자와 지오토의 어눌한 한국어와 영어 대사의 재치가 어울려 25분이라는 긴 시간이 짧게 지나가는 작품이다. 동성애라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페이크 다큐라는 새로운 형식이 잘 조합되어 있는 < 지오토 >와 같은 작품이 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