셉템버 이슈
- 감독
- R.J. 커틀러
- 제작년도
- 2009
- 출연
- 안나 윈투어
1980년 부정의 하게 권력을 찬탈한 신군부 정권은 여러 가지 유화책을 시도한다. 그중 컬러TV 방송과 통금 해제는 1980년대 한국영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는데, 통금 해제의 해방감을 틈타 심야 영화 상영은 폭발적인 흥행으로 이어졌다. 1982년 3월 < 애마부인 >( 정인엽 )을 보기 위해 20-30대 젊은 커플들이 줄을 이었고, 장기 침체에 빠져있던 한국영화계는 탈출구를 에로영화에서 찾았다. <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 >는 <애마부인> 신드롬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1983년 한국영화 흥행 6위에 올랐다. 이 영화는 신인감독의 데뷔작에다 아직 한국영화에서는 생소한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 영화이며, 주연으로서의 존재감을 미처 입증하지 못한 두 여배우의 출연은 분명 위험요소였을 것이다. 1970년대 유신시대의 혹독한 검열로 인해 난자당한 한국영화는 점차 관객의 외면을 받았고, 이는 1980년대 초반까지 신인감독의 등장을 보기 힘들었던 이유였다. 당시 에로영화의 성행을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의 결과로 단순화시킬 수는 없다. < 애마부인 >은 꽉 막힌 한국영화계 현실에 숨 쉴 틈을 만들어주었고, 에로영화는 경제 호황 및 부동산 열풍을 통해 중산층 의식을 확고하게 다지게 된 관객에게는 화려한 도시영화로 받아들여졌다. <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 >는 이전의 여느 에로영화보다 더 에로틱한 데다, 스릴러, 미스터리, 호러의 장르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훗날 사회 비판적 리얼리즘 영화의 거장이 된 정지영 감독의, 조금은 예상을 비껴가는 데뷔작으로 알려져 있지만, 필자는 너무도 매혹적이었지만 너무도 비극적인 삶을 마감해야했던 자매 배우 오수미 와 윤영실 의 영화로 기억한다. 이국적인 미모로 등장부터 화려했던 오수미가 스캔들로 영화계에서 거의 퇴출되다시피 했다가 재기하게 된 작품이고, 최정상급 패션모델이었던 윤영실이 자신의 이름을 처음으로 내건 주연작이었다. 상대 남자배우는 70년대 남배우 트로이카 중 한 명으로서 남성적 매력을 뽐내던 신일룡 이었다. 세 명의 개성파 배우들의 존재감이 스크린을 압도한다. 정지영 감독은 히치콕의 <싸이코>를 좋아하다가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히치콕 류의 미스터리 스릴러 각본을 직접 쓰고 연출했다. 패션 디자이너인 아내( 오수미 ) 덕에 무위도식하는 상류층 남자( 신일룡 )가 아내의 후배이자 자신의 내연녀인 패션모델( 윤영실 )과 짜고, 아내를 죽인 후 재산을 가로채려고 한다. 하지만 죽었다고 생각한 아내가 전화와 편지를 보내고, 남자는 때때로 아내의 환영을 보는 등 신경불안증세를 보인다. 죄의식으로 인해 남편은 점점 미쳐가고, 결말부는 수차례 반전을 거듭하며 범인에 대한 단죄를 지연시킨다. 남편, 아내, 모델, 재산관리인 김 부장의 배신과 연대가 여러 차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총 5번의 반전이 이루어지는 서사는 참신할 뿐만 아니라 한국영화가 본격적으로 할리우드식 스릴러 영화의 제작 단계에 이르렀다는 역사적 신호이다. 본격적인 소비자본주의 시대로 돌입한 한국사회 상황에서 서로 뒤통수를 치는 연쇄구조는 자본과 성에 대한 집착으로 탐욕적인 도시로 변해가는 당시 사회상을 반영한다. 주인공들은 시크하고 차가운 표정, 그리고 실루엣을 강조하는 세련된 의상을 특징으로 하는데, 이는 자본을 추종하며 비인간화된 시대성을 상징한다. 영화는 소비자본주의의 핵심 주체로 등장한 여성들로 인해 권력의 자리에서 점차 물러나게 되어버린 남성의 위기감과 불안을 투사하는 한 측면이 있고, 또 한 측면에는 소비주체로서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게 된 중산층 여성의 섹슈얼리티에의 욕망이 있다. 대저택과 별장, 자가용, 화려한 의상, 장식물, 가구, 칵테일파티, 드레스, 샹들리에, 패션잡지, 벽에 걸린 사진액자, 치렁치렁하게 드리워진 커튼, 화장품, 마네킹, 실내 가운 등 소비재들의 병치는 스크린 공간을 반짝이는 원색의 스펙터클로 만들어낸다. 클로즈업으로 비춰지는 사물의 상징적 활용, 계속해서 사건을 오인하게 만드는 교차편집, 끊임없이 유동하며 불안감을 상승시키는 카메라 등 여러 면에서 미스터리 스릴러의 장르적 장치가 효과를 발휘한다. 미장센은 물질적 풍요로움을 전시하는 것과 함께 소비와 탐욕의 시대를 잘 보여준다. 과잉된 소비주의의 미장센과 과잉된 성적 욕구의 병치는 ‘자본과 성’의 기호로서 1980년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도구가 된다. 하지만 영화는 팜므파탈로 구성된 중산층 여성을 가해자로 바라보지 않고, 대신 진정한 주체로서 호명하는 파괴적 힘을 가진다. 이 영화의 성공으로 인해 < 여자는 비처럼 남자를 적신다 >( 이혁수 , 1983), < 여자의 대지에 비를 내려라 >( 노세한 , 1985) 등 ‘여자’가 들어간 긴 제목의 여성 복수 영화의 제작이 연이어 이어졌다.
암전된 화면에 조용히 깔리는 차 소리. 크레딧이 이어지다 제목이 뜨면 화면 가득히 흰색의 복면이 보인다. 극대화된 클로즈업이라 세세한 천의 격자무늬 질감마저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와 함께 심장박동처럼 둥둥둥 울리는 저음의 빠른 타악 리듬, 불안한 심정을 마구 휘젓는 속삭임의 보컬이 귓가를 간지럽힌다. 그리고 이국적인 구음의 노래가 펼쳐지면 그제야 비로소 공간과 인물이 소개된다. 달리는 차 안. 무장한 군인. 흙바닥의 경치. 생소한 아라비안 문자. 회반죽의 건물들과 히잡 그리고 카피에까지. 여기는 미국이 아니다. 불타는 화약고, 중동이다. 남자는 지금 복면을 쓴 채 헤즈볼라 무장단체 지도자를 섭외하러 가는 길이다. 이 긴박감 넘치는 오프닝을 통해 마이클 만 감독은 < 인사이더 >라는 영화에 대해 명료하고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진실에 도달하는 길이 얼마나 힘든 여정인지에 대해. 여기에서 흐르는 곡은 호주의 뉴웨이브 듀오 ‘데드 캔 댄스’ 출신의 리사 제라드 2집에 실린 ‘Tempest’란 노래로, (제목 그대로) 잘 살던 두 남자 인생에 갑자기 몰아닥친 ‘폭풍’의 전조를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다. 번뇌에 찬 목소리와 혼동에 가까운 퍼커션을 통해 그들에게 닥칠 폭풍이 결코 만만하지 않음을 짐작게 한다. 로웰 버그만, 제프리 와이건 \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센델의 강의를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제프리 와이건 박사는 기로에 서 있다. 그는 자고로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는 남자였다. 그 지식이 공익적으로 사용되지 않음을 불편해했고, 미국 굴지의 담배회사 브라운 앤 윌리엄스는 그러한 그의 자의식을 부담스러워 했다. 그래서 원만치 못한 대인 관계를 핑계 삼아 그를 해고해버린다. 비밀서약과 가족의 안정을 빌미로 그의 목을 서서히 옥죄어온다. 안전한 비겁자가 되느냐, 용감한 희생자가 되느냐 그 사이에 낀 그는 신념과 도덕적 가치를 좇아 싸워온 PD 로웰 버그만과 만나 위대한 결단을 내린다. 비록 자신에게는 최악의 결정이 되겠지만. 로웰 버그만 역시 압력과 회유에 시달린다. 보도를 통해 소송에 걸리면 회사 매각과 관련해 주가가 폭락할 것을 염려한 간부들의 방해로 방영금지라는 초유의 결정을 받아든다. 모든 상황이 무(無)로 돌아가 버릴 위기에 빠지자 그는 다른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미디어를 폭로하는 극단의 조치를 취하게 된다. 결국 인터뷰는 무삭제로 방영되지만 제프리 와이건은 고소당하고 이혼하며, 로웰 버그만은 직장을 떠난다. 이 인터뷰가 방영되는 감격스러운 장면에서 다시 리사 제라드 2집에 실린 ‘Sacrifice’가 흐른다. 처연하고 소름 끼치는 마력의 보이스가 그들의 희생을 위로하고 달래준다. 어쩌면 감독은 이 두 곡을 쓰기 위해 리사 제라드와 피터 버크에게 음악을 맡겼는지 모른다. 마이클 만은 영화만큼이나 음악에서도 완벽을 추구하는 감독이다. 데뷔작 <비정의 거리> 와 그다음에 찍은 <악마의 성>에선 당시 하이테크한 유행의 정점에 오른 탠저린 드림의 차갑고도 강렬한 전자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인기 TV 시리즈였던 <마이애미 바이스>에선 감각적이고 현란한 얀 해머의 신디 사운드로 스타일을 과시했다. 고전적인 멜로 서사극의 절정을 보여준 < 라스트 모히칸 >에선 트레버 존스와 랜디 에델만이란 정반대적인 성향의 작곡가를 고용해 인상적인 교향시를 조율하기도 했다. <히트>와 <퍼블릭 에너미>에서는 시대의 흐름을 보여주는 다양한 삽입곡들과 함께 엘리웃 골든탈의 미니멀하면서도 전위적인 스코어로 임팩트를 남겼으며, 도시의 어두운 이면과 우울한 범죄의 초상을 담은 < 콜래트럴 >과 극장판 < 마이애미 바이스 >에서는 제임스 뉴톤 하워드와 존 머피를 통해 HD 질감에 걸맞은 세련된 감성의 잿빛 스코어를 요구했다. 남자의 로망을 자극하고, 비정한 도시(장소)의 슬픔을 간직한 그의 영상 속에서 설명과 대사는 지엽적이다. 대신 음악이 그 감성을 묘사한다. 모자란 설정을 채워주고 있다. <인사이더>에서도 마찬가지. 대사는 적되, 카메라는 인물에게 초근접해 다가가고, 사건의 무게와 심각성은 그들의 얼굴과 뒷모습에 진 음영을 통해 표현되며, 감정은 음악으로 발현된다. 대기처럼 영화 내 부유하는 스코어는 조용하지만 은은한 울림으로 그들의 심적인 고통과 피로함을 호소한다. 상처뿐인 영광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텁텁한 뒷맛이다. 리사 제라드, 피터 버크 80년대 초반부터 리사 제라드는 브랜든 페리와 함께 ‘데드 캔 댄스’를 통해 아프리칸 폴리리듬과 아일리쉬 민속음악, 그레고리안 성가에 중세 진언까지 포용한 월드뮤직 스타일의 뉴웨이브로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해갔다. 그들이 시도한 다크 웨이브는 고딕적인 성향의 복합적인 엠비언트 사운드와 아트록의 만남으로 비록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진 못했지만 지속적인 반응과 평단의 호응을 얻어냈고, 90년대 초반 그들의 앨범이 본격적으로 미국에 소개되면서 차츰 인지도를 얻기 시작한다. 1995년 < 히트 >에서 그녀의 곡 ‘La Bas’와 ‘Gloradin’, ‘Celon’을 사용하며 눈여겨봤던 마이클 만은 전격적으로 차기작이었던 <인사이더>의 음악을 리사 제라드와 그녀의 음악적 파트너였던 피터 버크에게 맡기는데, 앞서 소개한 삽입곡 외에 다양한 트랙에서 미니멀하면서 에스닉한 분위기의 엠비언트 사운드를 구사하며 숨은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정형화되고 단조로울 수 있는 느낌을 탈피하는 건 신비스러운 구음을 구사하는 리사 제라드의 목소리 덕분이다. 두성과 가성, 진성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아프리카 토속적인 주술서부터 그레고리안 성가 스타일까지 두루 연결 짓는 그녀의 보이스톤은 영화에 묵직하면서도 숭고한 정신을 부여하고 있다. 내부자(Insider)들이 철저히 아웃사이더(Outsider)가 되어가는 과정을 건조하게 담아낸 영화에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는 건 그 한 맺힌 살풀이의 힘이 크다. 리사 제라드와 피터 버크의 부족한 부분은 베테랑 영화음악가 그레이엄 레벨이 메꾸고 있다. 전체적인 톤은 비슷하게 맞춰나가면서도 자신의 특징이었던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클래식컬한 감성을 덧붙여 두 캐릭터가 가지는 고독과 시련을 형상화했다. 영화음악가가 되기 전 인더스트리얼 밴드에서 활동한 바 있는 그답게 음울하면서도 강렬한 존재감의 짧은 큐들이다. 이들의 스코어가 영화의 전체적인 공기를 스케치한다면 쟁쟁한 네임 밸류를 자랑하는 삽입곡들은 영화 내 중요한 지점에 위치하며 마치 이 영화를 위해 작곡되었던 것처럼 효과적으로 활용된다. 재판을 앞두고 법원에서 증언할 결심을 하는 장면에서 흐르는 현란한 기타 연주곡은 두 차례 아카데미 음악상에 빛나는 구스타보 산타올라야의 개인 앨범 [Ronroco]에 실린 ‘Iguazu’로, 심란한 제프리 와이건의 용기를 대변한다. 반면 방송국의 전횡을 신문사에 고발하는 과정에서 흐르는 인상적인 색소폰 연주곡은 ECM 레이블의 간판이자 유럽 최정상급의 아티스트 얀 가바렉의 앨범 [Rites]에 실린 동명의 ‘Rites’란 곡으로, 로웰 버그만의 양심을 상징한다. 두 곡은 각각 캐릭터들의 고독과 고난, 행동과 맞물리며 스코어가 지니지 못한 질감을 명징하게 표출한다.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건 트립합의 대부 메시브 어택의 ‘Safe from Harm’이다. 방송국을 그만두고 나서는 로웰 버그만의 뒷모습을 배경으로 후일담 자막이 이어지는 부분까지 마치 재단된 것처럼 딱 맞춰 흐른다. 엔드 크레딧에선 리사 제라드와 피터 버크가 작곡한 멜랑꼴리한 분위기의 ‘Meltdown’이 영화를 마무리 짓는다. Massive Attack - Safe From Harm 마이클 만은 전통적인 할리우드 방식과 달리 이 2시간 40분에 이르는 긴 영상에 영웅주의 스코어와 상업적인 팝으로 도배하지 않았다. 음악은 단지 필요한 부분에 효율적으로 배치됐을 뿐이다. 그러나 진실과 정의, 용기와 좌절, 공포와 희망을 표현하는 데 있어 결코 모자람이 없다. 건조하고 차갑기 이를 데 없지만, 때론 침묵하고 관조함에도 이런 모노톤의 투명한 소리들의 총합이 바로 <인사이더> 사운드트랙이 가진 매력이다. 그 속에서 일말의 온기를 찾아내는 것이 진실과 정의에 다가가는 길과 비슷하지 않을까. 리사 제라드와 피터 버크는 <인사이더>로 골든 글로브 음악상에 올랐다. 작업에 만족한 마이클 만은 차기작 < 알리 >에서도 이들과 작업을 이어갔고, 이 역시 골든 글로브 음악상 후보에 오르며 노고와 실력을 인정했다. <인사이더> 사운드트랙은 영상자료원 영상도서관(F-320) 에서 직접 귀로 확인할 수 있다. Track List 1. Tempest 2. Dawn of the Truth 3. Sacrifice 4. The Subordinate 5. Exile 6. The Silencer 7. Broken 8. Faith 9. I'm Alone on This (by Graeme Revell) 10. LB in Montana (by Graeme Revell) 11. Palladino Montage (by Graeme Revell) 12. Iguazu - performed by Gustavo Santaolalla 13. Liquid Moon 14. Rites ? performed by Jan Garbarek 15. Safe from Harm ? performed by Massive Attack 16. Meltd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