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시
- 감독
- 이영민
- 제작년도
- 2015
- 출연
- 지은서, 전하라, 권해성, 오정태, 하연지, 광복동, 김금순, 유다미, 정이슬, 이인선, 김성준, 허동원, 박혜진, 조혜리, 맹승지, 우서현, 변주우, 이수지, 이유진, 이종현, 정남희, 김호준, 이진승
그곳에는 어른들이 있었다. *** 이 글에는 영화의 플롯이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미 결말이 알려진 실화에 기반한 이 영화에 이렇다 할 반전은 없다. 오히려 폐쇄공포증이 있거나 2014년과 2022년의 참사의 트라우마로 아파하는 이들은 이 글을 읽고 나서 영화를 볼지 말지 결정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올해 여름, 13 LIVES 를 나는 미국에서 보았다. 나는 이 영화를 비웃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백인 남자 감독이 만든 제3세계의 실화 사건, 심지어 영국 어른들이 태국의 소년들을 구하는 이야기란 말이지… 백인 남성의 자뻑이 가지가지 형태로 부활하고 인종혐오 범죄가 만연하며 낙태가 불법화 되어 세상이 거꾸로 가는 것 같은 미국의 현 시점에서 백인 구원자 서사를 사용한 재난영화라니. 심지어 감독은 론 하워드, 스콜세지도 제임스 그레이도 아닌 론 하워드란 말이다. 그러나 영화가 시작하고 10분도 되지 않아 나는 알았다. 나는 이 영화를 비웃을 수 없음을. 쏟아지는 폭우 속에 갇힌 아이들과, 칠흑같이 어두운 물 속을 헤엄치는 동굴 다이버들을 보는 순간 메이는 목에 몇 번이고 자리를 떴다가 화면 앞으로 돌아와야 함을. 나의 삐딱한 시선은 자연 앞에 작아지고 재난 앞에 무력한 모습으로,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키며 최선을 다하는 어른들의 초라하고 정직한 모습에 바뀌었음을. 2014년과 2022년을 기억하는 대한민국의 성인이, 이 영화를 객관적으로 보기는 어쩌면 처음부터 불가능함을. 2018년 태국의 탐루앙 동굴에서 때이른 장마로 13명의 축구팀 소년들과 코치가 동굴에 고립되었던 것은 뉴스의 ‘세계’ 면을 상습적으로 건너뛰는 사람들에게도 어렴풋이 기억날 큰 사건이었다. 축구 연습을 마치고 코치와 함께 동굴로 놀러간 아이들은 갑작스런 폭우에 침수된 동굴 안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고립되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 태국 정부, 전 세계에서 날아든 자원활동가와 다이버들의 협력으로 코치와 아이들, 이 열세명의 생명은 한 명도 빠짐없이 동굴을 무사히 빠져나왔다. 그러나 어떻게? 아이들이 고립된 지점은 입구에서3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고 구조대원들이 투입되기 시작하였을 때 동굴 내부의 터널은 이미 침수되어 급류가 흐르고 있었다. 심지어 이 미로 같은 터널은 성인의 몸이 겨우 빠져나갈 수 있을 만큼 좁은 데다가 날카로운 종유석이 다이버의 신체와 장비를 위협한다. 때로는 몸을 돌릴 수도 없이 앞으로만 전진할 수 있는 이 좁디 좁은 터널에는 빛도 공기도 없다. 마치 하루키의 소설 속에나 등장할 것 같은 이 터널을 헤엄쳐 아이들을 찾기 위해서는 동굴 다이빙이라는 극도로 특화된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 영국에서 자원하여 날아온 동굴 다이버, 존 볼라텐 John Volanthen (콜린 파렐 분) 과 릭 스탠튼 Rick Stanton (비고 모텐슨 분)은 죽었을 거라고 예상했던 아이들을 극적으로 찾아내지만 그들의 얼굴은 아이들을 발견하고 나서 오히려 더 어두워진다. 아이들이 모여 있는 지점은 동굴 입구의 물을 뽑아내고 가까스로 설치된 구조 캠프에서도 6시간을 쉬지 않고 헤엄쳐야 닿을 수 있는 거리이다. 산소탱크가 지탱하기 힘든 이 거리를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터널을 통해 이동하는 것은 전문 다이버에게도 생명을 내걸어야 하는 극한의 위업이다. (구조 작전을 수행하던 태국 다이버 한명은 목숨을 잃었으며 또 다른 구조대원은 상처의 감염으로 사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을 살려서 밖으로 데리고 나온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목표는, 아이들을 살려서 + 데리고 나온다는 상호충돌적인 두가지 목표로 분리되어 버린다. 영화가 미국에서 출시되었을 때 소수의 평론가들은 실망을 표했다. 헐리우드식 재난 스펙타클을 기대한 평론가들은 이 영화가 드라마와 서스펜스가 부족하며 밋밋한 졸작이라고 평했다. 영화의 주인공은 콜린 파렐과 비고 모텐슨이 연기한 두 리드 다이버 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캐릭터가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도 따랐다. 그러나 이 비판들은 아주 정확하게 영화의 미덕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영화는 주인공 "구원자" 캐릭터에 공감하며 울고 웃는 영화가 아니라, 구조라는 불가능한 미션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그 과정을 수행해 내는 다수의 수행자들을 묵묵히 지켜보아야 하는 영화이기에. 그래서일까, 백인남성의 영웅주의와 구원자 서사에 날 선 비판을 가하는 유색인 여성 (women of color) 비평가들과 외국인 평론가들이 영화에 더 후한 점수를 주었다. 영화의 미덕은 영웅주의의 증발이기 때문이다. 물론 스펙터클과 해피엔딩의 통쾌한 카타르시스도 그와 함께 증발했다. 영화를 보고 난 관객의 마음에는 기껏해야 안도감과 함께 무거운 질문들이 남는다. 중요한 것은 과정이었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매우, 고통스럽다. “The old men found the boys!” 두 영국인 동굴 다이버들이 태국의 해양경찰과 다이버들이 들어가지 못한 junction 9을 지나 소년들을 찾아내어 동굴 밖으로 나오자 관계자들이 소리친다. (숨 쉬기가 어려워 세번이나 쉬면서 영화를 보는 동안 유일하게 빵 터진 장면이다.) “Old men”을 어떻게 번역할 수 있을까? 직역은 물론 “노인들”이 되겠으나 원어 태국어의 뉘앙스를 살린 한국어는 무엇일까? 늙은이들? 어르신들? 아재들? 아무튼 중년을 지나 초로라고 표현해도 무색할 이 두 백인 남성들은 그냥 이렇게 후줄근하게 축소되어 불린다. 작전 회의를 할 때면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은 커녕 노안 안경을 코끝에 걸쳐 써야 하는 두 중년 남자들은 아이들에게 그닥 애틋한 눈길을 보내지도 않는다. 심지어 자신의 목숨이 위험한 순간으로 보여지면 동굴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아피찻퐁 위라세타꾼 감독과의 오랜 협력자이자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으로 셀룰로이드 필름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영화적 노스탤지아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준 태국 촬영감독 사욤부 묵디프롬 (Sayombhu Mukdeeprom) 역시 그들을 영웅으로 비추지 않는다. 카메라의 묵묵하고 겸허한 시선은 이 두 ‘노인’을 연기한 쟁쟁한 배우들에게 그럴싸한 클로즈업 한 컷을 선물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어른이다. 소강상태에 머물던 폭우가 다시 시작되어 동굴에 차오르는 급류를 보고도 담담히 “서두르자”- 한마디 하고 물 속으로 다시 뛰어들 수 있는. 그리고 그 현장에는 이 다이버들 외에도 너무나 많은 어른들이 있었다. 영화에는 다 나오지 않지만 실제 현장에는 백 여개의 정부기관에서 투입된 수 많은 공무원들, 9백명의 경찰, 2천명의 군인은 물론 구조팀에게 매일 2만끼니의 따뜻한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모인 7천명의 자원 활동가가 있었다. 물론 이 사람들이 모여 일을 할 수 있도록 지휘를 한 책임자들이 있었다. 첫날부터 밤을 새며 현장을 직접 지휘하는 시장은, 다이버 한명이 죽자 동굴에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고 선언하고,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다시 그 선언을 번복한다. 민간인 수자원 엔지니어는 빗물이 지하수로 변해 동굴로 들어가는 것을 막아야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물길을 바꾸는 중책을 자진하여 지휘한다. 마을에도 어른들이 있다. 농부들은 자신들의 논을 침수시키며 물길을 열어 동굴 안에 물이 불어나지 않게 시간을 벌고, 물길을 내기 위한 파이프가 부족하자 대나무를 베어 수관을 만든다. 그러나 아이들을 살려서 + 동굴을 데리고 나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 어른들은 전혀 다른 무게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릭과 존, 두 베테랑 다이버들은 아이들을 산채로 데리고 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생각해 내고, 동굴 다이버이자 해리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마취과 의사, 리차드 해리스Richard Harris (죠엘 에저튼 분) 를 호출한다. 해리의 의견도 두 사람과 같다. 6시간의 동굴 다이빙 동안 아이들은 반드시 익사할 것이다. 아이들을 살려서 동굴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해리는 두 다이버가 입 밖에 내기조차 힘든 방법을 자신에게 제안하려는 것을 눈치채고 소스라친다. 6시간의 다이빙을 견뎌낼 수 있도록 아이들을 마취시키고 팔다리를 묶어 한 명씩 데리고 나오는 방법이다. 6시간의 다이빙 동안 아이들이 중간에 깨어나 익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반복하여 마취제를 주사해 가며, 공기도 빛도 없는 수중 터널을 통과하는 구출 작전. 동의를 얻지 않는 마취는 엄연히 불법이며 아무도 시도한 적 없는 이 방법이 성공할 확률은 미지수이다. 하지만 때 이른 장마비는 시시각각 불어나는 중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이대로 고립되어 반드시 죽는다. 어른들은 촌각을 다투는 이 상황에서, 어쩌면 비윤리적이며,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는 이 작전을 집행하기로 결정한다. 극비리에 진행하기 위해 언론 보도를 중지하고 심지어 아이들의 부모들에게도 알리지 않는다. 작전 중 아이들이 죽을 확률이 살 확률보다 크다는 것을 인지한 당국은 다이버들에게 사면을 보장하고, 다이버들은 자신들의 목숨 또한 위태로울 것을 알면서 불어난 물 속으로 뛰어든다. 그렇게 그곳에는 자신과 타인의 삶을 송두리채 바꿀 수 있는 무거운 결정을 내리고 책임지는 어른들이 있었다. 이 결정이 옳은 것인지 아닌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한 명도 빠짐없이 구조해 낸 해피엔딩으로 이 결단은 “옳은 결정”이 되었지만 만일 그렇지 않았어도 세상이 그들에게 같은 평가를 내려 줄까. 아마 그렇지 못할 것이다. 아니, 분명 그렇지 못할 것이다. 그 순간 그들이 내릴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이었음이 분명하되, 이 선택이 윤리적으로 완벽한 결정이었을까. 법과 도덕과 의학의 어느 지점을 교차하는 이 무거운 질문에 나는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겠다. 그러나 나는 안다.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뒤늦게 구조팀에 합류한 다이버 크리스 쥬월 Chris Jewell (톰 베이트먼 분) 이 동굴의 에어 포켓 안에 길을 잃고 바보처럼 떠 있는 모습이다. 실제 다이버들이 커피 속을 헤엄치는 것 같았다고 증언한, 시각이 아니라 물 속에 매어 놓은 줄의 촉각에 의해 통로를 헤엄쳐 나가던 크리스는 동굴에서 줄을 잃고 길을 잃는다. 어두운 물 안에서 패닉하고, 급기야 자신의 심리 상태를 판단해 더 이상 나아가지 않기로 한다. 에어포켓 안에서 아이를 물위로 떠올려 보듬어 안은 채로 동료가 나타날 때까지, 아니 나타나길 바라며 침착하게 기다린다. 침착하게? 아니, 화면 속에는 보이지 않는 그의 떨림이 관객인 내게도 느껴진다. 내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과 그 이상을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부족함이 타인의 생명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 두려운, 나약하고 정직한 인간의 모습. 어른은 무엇인가.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으로 인한 결과를 책임지는 것. 그게 어른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기성세대가 이미 망쳐버린 세상을 표류해야 하는 어린 생명들을 지켜내기 위해서 이 시대에 어른의 의미는 확장되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 책임의 무게가 자신을 평생 짓누르는 트라우마가 될지라도, 올바르다고 생각되는 일을 하는 것. 완벽을 기대할 수 없겠지만, 피하지 않고, 오직 최선을 다해 애를 쓰는 것.
“물체가 움직이는 효과가 특수효과예요. 그래서 조연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특수효과 이문걸) 1) 영화 특수효과(Special Effect)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그렇다, 마술사이기도 했던 감독 조르주 멜리에스(Georges Melies). 그는 원-쇼트 필름(one-shot film)에서 우연히 ‘스톱 모션(stop motion)’을 발견해 마치 마술에서처럼 영화에서도 특수한 효과인 스톱 액션(stop-action), 이중 노출(double exposure), 원근감 트릭(perspective trick)을 사용해 영화를 만들었다. <신데렐라 Cinderella>(1899)에서는 스톱 액션을 써서 호박이 화려한 마차로 변하고 재투성이 아가씨의 누더기가 파티 드레스로 변하도록, <인디언 고무 머리 Indian Rubber Head>(1902)에서는 부분 마스킹을 이용한 분할화면(spilt-screen)을 활용해 자기 머리가 우스꽝스럽게 폭발하도록 했다. 그리고 모두가 알고 있듯이 <달세계 여행 A Trip to the Moon>(1902)에서는 원근 전환(perspective shift)과 많은 트릭 효과를 사용해서, 총알 우주선이 저 멀리 우주의 달로 발사되고 달세계에서 지구의 우산이 버섯으로 깜짝 변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렇게 시작된 특수효과는 오늘날의 관객들의 뇌리에는 컴퓨터 그래픽(Computer-generated imagery, CGI)을 사용하여 스펙터클한 화면 시각 효과(Visual effect)를 내는 할리우드식 공상과학 영화를 만드는 최첨단 기술로 떠오르기 마련이다. 1990년대 이후로 본격적으로 특수효과의 영역으로 진입한 컴퓨터 그래픽은 최근 한국영화에서도 <퇴마록>(박광춘, 1998)을 시작으로 <괴물>(봉준호, 2006), <신과 함께-죄와 벌>(김용화, 2017) 등의 판타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강제규, 2004), <웰컴 투 동막골>(박광현, 2009), <명량>(김한민, 2014)처럼 사극과 전쟁 영화, <화산고>(김태균, 2001), <악녀>(정병길, 2017) 같은 액션 영화는 물론 멜로드라마 <뷰티 인사이드>(백종열, 2015)에서도 수준급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시각효과는 대부분 광학효과를 만들어내는 후반작업을 의미하는 것으로 엄격히 말하면 특수효과의 일부분이다. 자연현상인 눈, 비, 안개, 지진부터 건물 파괴, 총격이나 폭발의 장면 등을 기계적 또는 화학적 방법으로 재현하는 것, 고속/저속촬영은 물론 애니메이션이나 미니어처 같은 촬영 방법을 함께 동원해 실감나는 장면을 연출하는 그 모두를 일컫는 것이 바로 특수효과이다. 그래서 특수효과를 담당하는 인력들은 영화 연출에 전반에 대한 미학적 기술적 인식은 물론이고 물리 법칙이나 화학 배합에 대한 지식을 장착해야 한다. (사진1) <5인의 해병>(김기덕, 1961)에서처럼 1960년대 전쟁영화에서는 특수효과랄 것도 없이, 실탄을 장착한 총기를 사용해서 실제 전투 장면을 연출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의 궁금증, 그렇다면 한국영화에서 이러한 특수효과는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상상과 공상의 장면을 구성하고 코믹한 효과를 주기위해 특수효과가 시작된 서구의 영화 제작과는 달리, 한국영화에서의 특수효과는 영화계가 본격적으로 활기를 띠는 1950년대 후반, 일제 강점기나 한국전쟁 등 민족의 수난을 소재와 주제로 한 영화들에서 시작되었다. <5인의 해병>을 연출한 김기덕도 회고한 바 있듯이, 연기자 주변의 땅바닥에 총이 맞아 튀는 효과를 내기 위해 군이나 경찰의 지원과 엄격한 통제 하에 명사수를 데려다 실제로 실탄 사격을 해댔다. 2) 이처럼 전쟁과 첩보, 군사, 액션영화에서 적과의 총격이나 전투 장면에 으레 등장하기 마련인 총격과 폭파 효과를 내던 것이 바로 한국 특수효과의 시초였다. 실제 총에 실탄을 장전해 연기자들이 목숨을 걸고(?) 영화를 찍던 1960년대 초, 중요하지만 또 위험한 소품인 총기나 무기류를 챙겨 관리하는 것이 바로 제작부 소품 담당의 주요 임무였다. 아직은 영화 엔딩 크레딧에 ‘특수효과’라는 명칭으로 오르지도 못한 채, 총기류와 폭약류를 전문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이가 바로 이문걸이다. 1996년 <크레이지 댄스)<박한순>을 마지막으로 약 7백여 편의 극영화, <배달의 기수>등 군 홍보영화와 <전우> 같은 4백여 편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특수효과를 담당했다. ‘보이는 모든 장면을 실감나게 만드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은 이문걸은 특수효과의 불모지에서 수많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이 분야를 개척한, 명실상부 1980년대까지 한국영화계에 독보적이고도 유일한 특수효과 ‘맨’이었다. 그러므로 한국 특수효과의 역사는 이문걸의 작품연보와 일치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사진2) 군홍보영화 <잃어버린 세월>(설태호, 1990) 촬영현장에서 왼쪽부터 특수효과 감독 이문걸, 감독 설태호, 촬영감독 팽정문 이문걸은 1935년 일본 나가노켄에서 태어나 해방 직후 한국으로 왔다. 1956년에 군에 입대하게 되는데 꼼꼼하고 부지런한 성격 덕분에 상병 계급이던 당시, 오히려 하사를 병기계 보로 두고 병기계 담당을 맡았다. 1960년 한흥영화사의 제작부에 들어가게 된 것은 영화계에서 일하던 동생 이예남의 권유 때문이었다. 병기계 담당을 하던 군에서의 경력이 인연이 되어 그는 자연스럽게 제작부에서 총기를 관리했다. 그가 제작부로 입사한 한흥영화사는 최관두가 이끌고 있었고 당시 제작부장은 김홍빈이었다. 1959년 창립한 한흥영화사는 정창화의 멜로드라마 <사랑이 가기 전에>(1959)로 영화제작을 시작했지만 주로 활극, 스릴러를 기획, 제작하면서 가히 ‘액션 스펙터클의 총본산’으로 불렸다. 김홍빈의 제작부에서 활동한 이문걸은 <지평선>(1961)의 정창화, <싸우는 사자들>(1962)의 김묵, <두만강아 잘 있거라>(1962)의 임권택, <창살 없는 감옥>(1963)의 강범구의 작품을 함께 했다. (사진3) <지평선>(정창화, 1961) 포스터. 이 영화에서 이문걸은 제작부에서 총기 담당을 맡으며 특수효과에 입문했다. (사진4) <싸우는 사자들>(김묵, 1962) 포스터. 이 영화에서 이문걸은 ‘소품’ 담당으로 처음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 <지평선>에서도 활약을 했지만 이문걸이 처음 크레딧에 이름을 올린 것은 한흥영화사의 10회 기념작 <싸우는 사자들>의 ‘소품’ 담당이었다. 휴전회담이 열리고 있는 한국전쟁 당시 철원지구에 잠입한 유격대의 활약상을 그린 이 작품은 여성 유격대원들의 전투장면과 포로수용소의 대폭파 장면이 압권이었다. ‘7백 여 명의 「엑스트라」 및 약 6백 자루의 권총, 「엠원」 소총, 「칼빙」소총, 자동소총, 다발총 등의 소화기를 동원하였고 TNT 폭탄 2백 「파운드」씩 두 번’을 사용해, 촬영 당시 ‘파편으로 경상을 입은 「엑스트라」가 21명’이나 될 정도로, 당시 한국영화에서는 처음 있는 특수효과를 실험해 전쟁 스펙터클을 구현해 낸 액션 영화였다. 3) (사진5) <두만강아 잘 있거라>(임권택, 1962) 중 독립군과 일본군이 펼치는 설원의 최후 전투 장면 일본군 시설을 파괴하는 학생독립단의 무력 항쟁을 그린 임권택의 데뷔작 <두만강아 잘 있거라>는 특수효과 ‘맨’ 이문걸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첫 촬영은 독립투사가 일본군 중대의 공격을 받는 장면이었다. 대관령에서 촬영한 이 장면을 위해 이문걸은 연기자들의 안전을 확보하고 실탄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총격 효과를 내는 특수효과를 실험한다. 마분지를 연필 굵기로 3cm씩 말아서 그 속에 특수 약품을 넣어 가짜 실탄을 만들었다. 그렇게 백여 개를 만들어 하나씩 특수전선을 연결한 후 땅속에 일정한 간격으로 묻어 선에 전기가 흐르도록 합선·폭발하여 흙이 튀면서 실탄이 맞는 특수 효과를 만들어 냈다. 4) 또 이 영화에서 놓칠 수 없는 장면은 만주로 가려는 독립군들의 마지막 격전, 두만강 도하를 목전에 둔 겨울 계곡에서 독립군과 일본군이 벌이는 전투이다. 영화 내내 어두웠던 흑백 시네마스코프의 화면은 눈 쌓인 설원을 활강하는 스키 부대의 활약이 돋보일 뿐만 아니라 엄청난 살상이 벌어지는 총격전은 비장할 만큼 눈부시기도 하다. (사진6) <증언>(임권택, 1973)의 탄착효과가 돋보이는 전투장면 (사진7) <증언>(임권택, 1973)의 한강 다리 미니어처 폭파 장면, 이문걸은 특히 <빨간 마후라>(1964)와 <대괴수 용가리>(1967)의 경험 이후에 다리 폭파를 연출하는 데 있어서는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임권택과 이문걸이 함께 만든 이러한 액션 미학은 <증언>(1973), <낙동강은 흐르는가>(1976), <임진란과 계월향>(1977), <아벤고공수단>(1982), <개벽>(1991), <장군의 아들3>(1992), <태백산맥>(1994)으로 이어진다. 점차 영화계 내서도 총격 효과를 내는 것, 화약을 다루는 것이 전문적인 영역으로 인식되면서, 이문걸은 자연스럽게 ‘특수효과를 개척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처럼 한흥영화사에서 탄탄하게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이문걸은 1963년 영화사가 폐업하자 <소만국경>(강범구, 1964)에서부터는 본격적으로 ‘특수효과’로 크레딧을 올렸고, 조수 5명을 데리고 독립했다. (사진8) <소만국경>(강범구, 1964) 총격 장면의 화약 효과 ‘제작부’나 소품‘으로 이름을 올리던 그가 특수효과로 독립하면서 시작한 것은 ‘가짜 실탄’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이 ‘가짜 실탄’은 하나하나 말아서 만들어야했던 불편한 ‘마분지 실탄’이나 다소 위험했던 공업용 뇌관을 대신할 수 있는, 보다 간편하고 좀 더 안전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실탄과 선을 직접 맨손으로 합선시켜야만 폭발시킬 수 있던 방법도 개선해서 버튼 하나를 눌러 수백 발의 실탄을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자동 폭발시킬 수 있는 전자식 ‘컨트롤 박스(control box)’도 그의 특수효과 팀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사진9) <빨간 마후라>(신상옥, 1964) 미니어처로 제작한 비행기와 한강 다리 장면 미니어처(miniature)를 제작해 물리적, 화학적 효과를 가미하는 촬영 방법은 데이비드 W. 그리피스의 <인톨러런스>(1916),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1927)에서도 사용했던 영화사 초창기부터 발달해온 오래되었지만 대표적인 특수효과 기법이다. <빨간 마후라>(신상옥, 1964)에서 이문걸은 동생 이예남과 함께 미니어처 작업을 처음 시도했다. 당시 주먹구구식의 미니어처를 만들어 야외에서 촬영해 폭파 장면을 찍었다. 이런 장면의 연출은 감독과 긴밀하게 소통해야하는 것은 물론, 폭파되어 전소될 건물을 짓기 위해 미술 담당 스태프에게 톱밥을 섞은 연한 석고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을 하고 여러 번 실험해 촬영 스태프와 합을 맞추는 과정을 거쳐야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때부터 그는 영화에서 여러 번 한강 다리를 폭파시키는 경험을 했는데, 다리 폭파(?)의 전문가가 되었다. (사진 10) <대괴수 용가리>(김기덕, 1967) 중 칠흑 같은 우주에서 별 사이를 비행하는 우주선 장면 (사진 11) <대괴수 용가리>(김기덕, 1967) 중 스크린 프로세스를 이용해 용가리가 서울 시내의 건물을 파괴하는 장면 (사진 12) <대괴수 용가리>(김기덕, 1967) 중 용가리와 대치하는 군의 포격 장면 (사진 13) <대괴수 용가리>(김기덕, 1967) 중 용가리가 한강 다리를 파괴하는 미니어처 장면 이문걸이 본격적으로 미니어처와 결합한 특수효과를 몸에 익힌 것은 김기덕의 한국형 공상과학 영화이자 괴수물 <대괴수 용가리>(1967)에서였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철사에 모형 비행기를 매달아서 자연스럽게 움직이도록 하는 공중전을 연출했고, 떨어지는 유성은 물론 반짝이는 별 사이를 비행하는 우주선을 영상화했다. 또 특수전선을 늘어놓고 순간적으로 전류를 흐르게 하여 번개가 치게 하고 미니어처로 만든 한강 다리가 폭파되는 장면을 거뜬히 해냈다. 이 영화에서 이문걸은 괴수물에 능숙한 일본의 특수효과 전문인력들에게 연화(煙花, 불꽃놀이 폭죽으로 사용되는 화약)로 영화 촬영용 폭약을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미니어처이다 보니 축소해 만든 건물이나 다리를 폭파하면 폭파 시간이 너무 짧은 것은 물론 눈으로 보기에도 작은 폭발로 보인다. 이를 스크린 상에서 용가리가 야기한 거대하고 웅장한 재난의 현장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특수카메라를 이용한 고속 촬영은 물론 스크린 프로세스를 이해한 특수효과 팀의 폭파 기술이 유기적으로 접목되어야 한다는 방법론을 체화했다. 그가 이때 연마한 미니어처 폭파 기술은 이후 <증언>에서의 한강 다리 폭파 장면은 물론, 1980년대를 풍미했던 <조선왕조 오백년>같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임진왜란의 해전을 재현하는 데에 사용되었다. (사진14) <갯마을>(김수용, 1965)에서 이문걸이 만들어 낸 새벽의 안개 장면 하지만 총기나 폭약으로 특수한 효과를 만들어내는 기술자로만 이문걸을 설명해서는 안 된다. ‘눈으로 보이는 모든 효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특수효과 담당자가 맡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프레임 속에서 바람이 불고, 눈비가 오고, 지진이 나게 하고, 물 위에 살얼음이 뜨게 만들었다. 연기자의 몸에서 피가 날 수 있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훨훨 공중을 날 수 있게 만들어야 했다. 우선 김수용의 <갯마을>(1965)에서의 안개 낀 바닷가 소나무밭 장면을 보자. 시동생 성칠(이낙훈)과 시어머니(황정순)은 마을 사람들이 잠든 안개 낀 새벽을 틈 타 주인공 혜순(고은아)이 상수(신영균)이 마을을 떠나보낸다. 부산 기장에서 촬영한 이 장면에서 감독은 ‘바다 전체에 안개(스모그)를 깔아 달라’는 불가능에 가까운 주문했다고 한다. 하지만 혹여 안개가 낀 바다를 연출하기 위해 바다 전체에 연기를 까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바람이 불 수 있는 야외공간을 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당시 스모그를 만들어내는 담당 스태프를 ‘쪼다통’이라 불렀다. 피우라는 시점에 해당 공간에 스모그를 채운다고 해도 바람이 불어 버리면 담당 스태프는 변명의 여지없이 ‘쪼다’ 소리를 듣기 마련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제안으로 이 장면은 바람이 거의 없는 기압이 낮은 새벽에 배를 타고 바다 위에서 숨을 참아가며 연막통을 터뜨려 만들어낸 것이었다. (사진15) <결사대작전>(고영남, 1969)에서 인천상륙작전을 경험한 이문걸을 이후 <오, 인천!>(1981)의 특수효과에서 눈부신 활약을 한다. (사진16) <들국화는 피었는데>(이만희, 1974) 포스터 (사진17) <의사 안중근>(주동진, 1972) 포스터 흑백 시네마스코프가 표준이던 시기 특수효과를 시작했던 이문걸은 영화를 촬영하기 이전에 연기자들과 동선을 맞춰보고 촬영지에 가서는 수차례 시험 폭파를 했다. 연기자의 안전을 위한 이유가 첫 번째였기는 하지만 필름 값이 너무 비쌌기 때문에 제한된 예산 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완벽한 폭파 시험뿐이었다. 1960년대 후반 컬러 시네마스코프가 점차 표준이 되어 가자 감독들은 특수효과에서 더 많은 폭파 불꽃을 시각화하기를 원했고, 총탄을 맞자마자 피가 나는 자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싶어 했다. <의사 안중근>(주동진, 1972) 같은 영화에서 안중근(김진규) 의사가 이등박문(박노식)에게 총격을 가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이를 위해서 이문걸은 피가 범벅된 화약과 함께 솜을 긴 대롱에 넣고, 에어스프레이(Air-spray)로 쏘아주는 방식을 사용했다. 전쟁 영화에서 총탄을 맞아 가슴에서, 머리에서, 철모에서 피가 흐르는 장면들은 분장과 이런 특수효과의 트릭들을 활용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1970년대는 대만과 홍콩영화와의 합작이 많아지고, ‘으악새 영화 혹은 참바라 영화’로 불리는 액션영화가 국내에서 많이 제작되던 시기, <돌아온 외다리>(이두용, 1974), <소림사의 결투>(채양명, 최현민, 1975), <국제경찰>(고영남, 1976) 같은 영화에서 이문걸은 배우들의 액션과 점프를 도와줄 수 있는 효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다양한 장비를 도입하는 노력을 하기도 했다. (사진18) <오, 인천! Oh, Inchon!>(테렌스 영, 1981) 포스터 이 영화 작업을 통해 이문걸은 할리우드식 영화제작 및 운영시스템과 선진 특수효과를 경험했다. (사진 19) <오, 인천! Oh, Inchon!>(테렌스 영, 1981) 폭격 장면 스틸 특수효과가 주요했던 전쟁영화 <오, 인천! Oh, Inchon!>(테렌스 영, 1981)은 이문걸의 작품연보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마찬가지로 이 영화의 크레딧에서 그가 특수효과를 담당했다는 흔적은 없다. 이 영화에 참여하게 되면서 이문걸은 <오, 인천!> 촬영에 참여해 할리우드식 영화의 제작 및 운영 시스템과 선진 특수효과를 경험하게 되는 값진 계기를 얻었다. 통일교 문선명의 제작으로 인천상륙작전을 다룬 이 작품은 <디어 헌터 Dear Hunter>(마이클 치미노, 1978)에서 특수효과를 담당했던 프레드 크래머(Fred Cramer) 팀이 도맡아 작업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촬영을 위한 무기류의 국내 반입이 쉽지 않았을 뿐더러 할리우드에서 촬영용으로 사용하던 흑폭약이나 화학 약품들을 한국에서 구하는 일이 녹녹치 않았다. 또 특수효과가 대부분인 로케이션 촬영이 상당수이고 계획대로 촬영할 수 있기 위해서 국내 여건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자 이문걸의 특수효과 팀이 합류했다. 실제로 이 영화의 촬영용 폭약은 대부분 이문걸이 직접 공수해 가능한 것이었고, 이문걸 팀은 촬영 상황에 따른 장비 응용력은 할리우드 특수효과 팀에 비해 월등했기 때문에 이 팀에 대한 신뢰는 점점 깊어져갔다. 5)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인천 등대 유리창을 깨어야 했는데 건설부 친구들이 꼭대기에 올라가는 사다리를 제대로 만들지 않아서 산소통을 끌고 갈 수가 없었다. 그러자 도리가 없어서 이문걸 씨가 고무줄에 베아링을 연결지어 쏘아 깰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상당히 효과가 있었다. 한국 측의 이문걸 씨나 박광남 씨도 상당한 실력자들이어서 미국 측도 만만히 볼 수가 없었다.” 6) 실사에 더 유능했던 할리우드 특수효과 팀과 미니어처를 제작해 한강 다리 폭파 장면을 촬영했으나 결국 감독 테렌스 영은 이문걸에게 맡겨 그 장면을 재촬영을 했을 정도로 그의 미니어처 폭파 기술을 인정했다. 또 할리우드 스태프들은 이문걸이 만든 콘트롤 박스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결국 이문걸 팀에게 컨트롤 박스를 얻어갔다. 총탄이 비 오듯 퍼붓고 여기저기서 폭탄이 터지는 아비규환의 전쟁터. 그리고 가슴에 총탄을 맞은 연기자는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이 모든 장면들은 진짜‘처럼’ 보이는 비장한 아름다움을 가져야하고 감독이 ‘컷’을 외칠 때까지 연기자들과 스태프들은 머리털 하나 다쳐서는 안 된다. 이문걸이 일생을 바친 특수효과란 “같은 양의 특수약품이더라도 방향, 습도, 위치에 따라 위력이 다르고 화면도 달라” 7) 지기 때문에 철저한 계산은 물론 수많은 경험치가 필요한, 자신은 물론 스태프의 목숨을 담보로 한 매번 위험천만한 작업이었다. 총기 소지가 힘들 뿐 아니라 탄약과 화약을 민간인에게는 공식적으로 판매하지 않는 한국에서 이문걸은 종종 ‘불법으로’ 일했다. 그는 40여 년 동안 참고할 만한 그 어떤 선례도 없는 가운데 영화 장면을 위해서 총을 개조하고 뇌관을 만들었다. 이문걸은 서늘한 간담을 뜨거운 열정으로 녹이며 임하는 작업 과정 속에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험과 현장 감각으로 한국영화의 명장면들을 만들어 낸 특수효과 ‘맨’이자 스크린의 마법사이다. * 이 글은 필자가 면담자로 참여한 구술, 「이문걸 편」, 『한국영화를 말한다 :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2』, 한국영상자료원 엮음, 이채, 2006를 참고해 재구성하였다. 1) 「이문걸 편」, 『한국영화를 말한다 :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2』, 한국영상자료원 엮음, 이채, 2006 참고. 2) 「김기덕 편」, 『한국영화를 말한다 :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1』, 한국영상자료원 엮음, 이채, 2005 참고. 3) ‘TNT 4백 「파운드」로 쾅!’, 조선일보, 1962년 8월 28일 4면. 4) 오홍근, ‘국내 유일, 그만둘 자유도 없어 영화 특수효과맨 이문걸 씨’, 중앙일보 1981년 2월 17일 6면. 5) 한재수, 오! 인천 그 실록 <2회>, 영화, 영화진흥공사, 1980년 1/2월호, 45~48쪽. 6) 한재수, 오! 인천 그 실록 <3회>, 영화, 영화진흥공사, 1980년 3/4월호, 43쪽. 7) 오홍근, 앞의 기사.
한국영상자료원에 제출한 10편의 나의 영화 목록은 자료원이 제시한 기한 내에 속하되‘극장에서 본 영화들’을 기준으로 했으며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이유들까지 작동한 결과 작성된 사실상 위부터 아래로의‘순위별’이며, 그러므로 최고의 영화는 홍상수 의 < 자유의 언덕 >이다. 다만 나는 내게 훨씬 복잡하고 중요한 영화여서 좀 더 오래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느끼는 <자유의 언덕> 대신 지금 이 자리에서는 리산드로 알론소의 < 하우하 >에 관하여 쓰기를 택했다. 나로서는 최상의 것 대신 최적의 것을 택한 것인데, 어떤 목록의 제시 이후에 그 목록에 관한 해명의 글이 요구되는 자리라는 점에서 최적의 예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특히 하나의 경험이 계기가 됐다.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 하우하 >를 본 몇몇 동료들은 내게 물어오곤 했다. “이 영화의 무엇이 좋았는가?” 올해 칸 영화제에서 <하우하>를 보고 난 뒤 내가 이 영화를 영화제 최고의 작품으로 꼽았기 때문일 것이다. 비교적 최초로 강력하게 호감을 표방한 자의 구체적인 의견이 궁금했던 것 같다. 더하여 그 질문은 대개 두 가지 반문을 괄호 안에 포함하고 있었다. 이 영화의 무엇이 좋았는가(그다지 좋지 않던데?), 이 영화의 무엇이 좋았는가?(좋은 것 같기는 하지만 무엇이 좋다고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던데?). 나는, 면밀하고 치밀하다 해도 사실상 이런 종류의 질문에 대한 화답으로는 거의 무용한 어떤 적극적 반론(나는 이만큼 정확하다) 혹은 작품과의 대면에서 발생한 불안정한 감각적 전압을 견디고 표현하는 지난한 과정은 회피한 채로 기존의 참조적이며 이론적인 용어들에 기대어 짐짓 우월한 지위를 점유한 척 하는 과시주의적 거드름(나는 이만큼 알고 있다)을 피우는 대신에, 거칠지만 솔직하고 미완적인 비평적 화답의 한 방편으로서 내가 이 영화를 관람하며 겪어 나간 순간순간 마다의 감각적 체험의 추이 자체를 복기하고 싶어졌다(나는 이만큼 느꼈다). 작품과 나 사이의 감각의 전압을 혹은 내가 작품에 빠져든 침잠의 상태를 할 수 있는 한 기록해보고 싶어진 것이다. <하우하>를 관람한 이들을 주요 대상으로, 설득 대신 수기를 택한 것이다. <하우하>를 보지 못한 독자들의 경우라면 상당한 난독증을 겪을 것이 예상되는데도 어쩔 수 없이 이런 방식을 택하게 됐다. <하우하>라는 영화 장면들의 흐름을 따라, 그 장면들을 보며 떠올랐던 나의 거칠고 정돈되지 않은 단상의 수준과 순서를 그대로 드러내며, 그러니 당연하게도 어떤 부수적이며 탈 맥락적인 또 다른 단상들의 개입까지도 허용하며, 그것들이 이 글의 구성에도 반영되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애석하게 부산에서는 일정상 영화를 다시 보지 못했으므로 기억의 흐릿함과 부정확함이라는 무능까지 포괄하면서, 그 체험의 시간을 돌아보려 한다. 처음, 보다 제목이 < 하우하 >였다(부산영화제에서의 상영 제목은 < 도원경 >이었는데, 이 제목을 듣자마자 멋진 번역이라고 무릎을 쳤다. 모국어로서 이보다 더 근사하게 의역하기란 어려울 것 같다. 이 제목은 앞으로도 유용될 만한 높은 가치가 있다. 그럼에도 혼선을 무릅쓰고 지금 구태여 <하우하>라고 적은 데에는,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마주했을 때 이와 같은 제목으로 인식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히 감독이 영화의 제목에 관하여 했던 어떤 말이 기억에 남아서다.“무엇보다‘하우하’라는 단어의 소리가 주는 느낌이 좋았다. 뭔가 인디언들의 지명처럼 들리기도 하고 이국적이면서도 불가사의한 것 같고, 처음 이 단어를 접했을 때부터 그 오묘함에 완전히 빠져 버렸다.”(씨네21,957호). 알론소의 이 말은 중요한 것 같다. 단지 작명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이 영화의 연출에 관한 감독의 어떤 감각성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뜻의 제목이 아니라 소리의 제목이며 기의의 제목이 아니라 기표의 제목이고 해석의 제목이 아니라 감각의 제목이다). 심신이 지쳐가던 칸 영화제 중반 즈음, 사물함을 열어 보니 이 영화의 전단지가 들어 있었다. 포스터를 보는 순간 잠시 멍해졌다. 어두운 밤 혹은 새벽, 검은 대지의 지평선 너머로 푸르스름한 별과 빛이 보이고 가까이에는 기도하는 것인지 절망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제복을 입고 칼을 찬 채 눈을 감고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비고 모르텐슨의 모습이 보였다. 포스터의 이미지만 보고도 이 영화와의 교감은 예감됐다. 그런 포스터들이 있다. 영화의 홍보가 전부인 것이 아니라 그 영화의 성질을 일견 담아내어 미리 느끼도록 하는 포스터들. 예컨대 홍상수 영화의 포스터는 내 느낌에 정확히 < 밤과낮 >부터 그런 중요한 존재물 혹은 일종의 부수적 예술 행위로 급상하였다. 가령 <밤과낮>의 포스터가 그렇다. 반바지를 입고 계단을 내려오는 어느 여자의 하반신, 계단 아래에 쪼그려 앉아 걸레질을 하다 말고 그걸 올려다보는 어느 남자의 어색한 자세와 시선, 그런데 그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담고 있는 저 불가사의한 분위기가 그렇다. 그런 불가사의한 분위기의 일종을 <하우하>의 포스터를 보며 느꼈다. 알론소의 전작들에 솔직히 그다지 큰 애정과 기대가 없는 편이었던 나는 어떤 막연한 기대에 부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극장에 들어섰고 첫 장면을 마주하자 그 즉시 전율이 일었다. 1.33:1의 화면비 안에 놓인 인물들의 정확한 자리 혹은 우아한 형상이 그 전율을 일으켰다. 나는 첫 장면에서 이미 이 영화에 관한 호불호가 갈린다고 확신한다. 이 장면을 아름다움의 성취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름다움을 가장한 위악적 제스처로 규정할 것인가, 나는 전적으로 전자라고 받아들인 관객이다. 알론소는 이 영화를 1.85:1로 촬영했으나 후반 작업 중 지금과 같은 화면비로 바꾸었다고 말한 바 있는데, 화면비를 바꾼 다는 건 컬러로 찍은 뒤에 흑백으로 바꾸는 것만큼이나 대단히 위험하고 모험적인 결정이다. 그런데 이 위험한 모험은 적어도 이 영화에 관한한 옳았던 것 같다. 1.85:1의 <하우하>가 아름다울 리 없다고 나는 짐작한다. 화면비는 단순히 화면의 크기나 모양이나 비율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형상과 화면이 서로 맺고 공유하고 결탁하여 일으키는, 이 말이 어쩌면 착란에 해당할지라도, 지각적으로는 밀도의 문제라고 나는 늘 느낀다. 화면비는 구도의 문제가 아니라 밀도의 문제인 것이며 어떻게 얼마나 채워져 있는가의 느낌의 문제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첫 장면, 바위위에 앉아 있는 아버지와 딸의 장면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딸은 카메라 쪽을 바라보고 앉았고 아버지는 뒤로 돌아 앉았다. 인물들은 정중앙의 정확한 자리에 꽉 차 있었다. 아름답게 꽉 차 있었다. 그들의 몸은 화면 안에서 중대한 권위와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화면의 모서리에서부터 그들 몸 까지 이어지는 어떤 거리와 여백 그리고 정중앙을 점유하고 있는 그들 몸의 밀도의 팽팽함 때문에, 나는 아직 감동의 원인을 찾아내기도 전에 감동부터 먼저하고 있었다. 칼 드레이어의 후기 영화를 볼 때 이런 벅찬 경험을 종종 하게 된다. 내용의 전개와 무관하게 저 인물들의 밀도 높은 육체성이 화면에서 차지하고 있는 어떤 중대한 아름다움으로서의 권위와 지위가 그 감동적 경험의 요인이 되곤 하는 것이다. 물론 이 점은 성공적일 때에만 그러하다. 예컨대 자비에 돌란이 < 마미 >에서 과감하게 선택한 1:1의 화면비는 유효하지 않거니와 치장에 가까워서 영화 내의 밀도를 허투루 만들어버린다. <마미>의 화면비 선택은 형상을 그 화면안에‘어떻게 채울 것인가’하는 지점이 아니라 화면의 양 옆을‘얼마나 잘라낼 것인가’하는 것에 치중한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잠시 1.85:1의 화면비를 구사하는 대목에서야 <마미>는 가장 아름다운 화면을 보유하게 된다. 알론소가 <하우하>의 화면 네 모서리를 둥글게 구부려 놓은 건 물론 디자인적 발상인 것 같다. 누군가는 이걸 싫어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젠체하는 장난 짓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둥근 곡선을 이 영화가 현실 안에서 비현실을 껴안는 자세로서 갖춘 우아한 시각적 은유 또는 이 영화가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동화가 되기 위해 갖추었어야 할 충분히 필요한 시각적 보충물로 받아들였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화면의 조건과 배경에 얼마간 눈이 익숙해지자 그리고 아버지와 딸의 육체를 벗어나자 이제 파타고니아의 드넓은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것은 SF영화가 세계의 어떤 기원을 강조하려 할 때마다 선택하는, 시간이 무화된 지리적 풍경이다. 하지만 나의 감탄의 다음 대상이 그 광대하며 원시적인 풍경은 아니었다. 오히려 좁은 실내 장면을 보며 두 번째 감탄사를 뱉었다. 아버지와 딸이 머무는 작은 텐트 안 장면이다. 많은 사람들은 <하우하>를 보고 나서 존 포드의 < 수색자 >를 거론했다. 대표적으로 내가 칸 영화제 베스트 리스트를 청탁했던 평자 제임스 콴트는“형언하기 어려운, 알랭 레네가 연출한 것 같은 <수색자>”라고 <하우하>를 묘사했다. 충분히 공감할 만하지만 그건 <하우하>의 내용에서 기인한 감상이다. 공감할 순 있지만 내가 이 영화에 매혹된 이유는 아니다. <하우하>를 보며 내가 존 포드를 심각하게 떠올린 건 어느 한 대목인데, 딸을 찾아 나선 아버지라는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가 아니라, 딸이 떠나기 전 아버지의 잠자는 모습을 우두커니 보는 장면의 특정한 앵글에서였다. 그때 아버지와 딸을 각각 나눠서 찍고 있는 카메라, 거기서 느껴지는 어떤 기이한 애환과 존엄함이 문득 존 포드의 어떤 장면들의 무드를 떠올리게 한 것이다. 존 포드 영화의 앵글은 서사적으로 중요한 국면이 아닌 순간들에서조차 어떤 애환과 존엄함의 분위기를 엄중하게 품고 있는 경우들이 많다. 지금 당장 해명하기는 어렵지만 연달아 특정한 장면들이 떠올랐다. <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의 첫 장면과 <러틀리지 상사>에서 병사가 전장에서 호각을 불기 위해 화면 중앙에 우뚝 서 있던 그 장면들이 그 때 문득 스쳐 지나갔다. 그 인물들을 찍어내는 앵글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어떤 존엄함과 애환이, 서사적 흐름과 무관하게 닥쳐오곤 했던 그 무드가 딸이 아버지를 두고 떠나려 하는 그 순간에도 문득 내게도 느껴진 것이다. 그렇게 좁은 실내의 앵글이 별안간 존 포드를 상기시키며 흥분의 상태로 나를 몰아간 것이라면, 떠나간 딸을 찾기 위해 아버지 군너가 텐트를 걷고 외부로 나가자 이번에는 거기 버티고 있던 빛과 색들이 나를 쓰러뜨렸다. 딸은 젊은 남자와 함께 막사에서 도망쳤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딸을 찾아 나서려 한다. 그가 쓸쓸하게 제복을 주워 입고 칼을 차고 천막을 걷고 나와 맞은 그 새벽의 빛과 색 때문에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모든 것이 어둠과 빛의 교차였고 모든 색은 자기들의 원색을 생생하게 유지하고 있었으며 그로써 이 슬프고 힘겨운 순간에조차 영화는 도발적이었고 도취적이었다. 하늘은 짙은 청록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풀들은 녹색이었다. 저 멀리 산과 대지는 아직 칠흑같이 어두운 검정색이었고 덩그러니 놓인 텐트는 하얗고 하얀 흰색이었으며 텐트 옆의 모닥불은 주황색으로 활활 타고 있었고 그 옆에 갈색과 붉은 색이 반반씩 섞인 제복을 입은 이 사내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많은 영화를 촬영해 온 촬영 감독 티모 살미넨이 촬영을 맡았다는 사실은 그 뒤에 알게 되었다. 칸 영화제에서 내가 본 영화들 중 여기에 견줄만한 빛과 색의 마술을 부린 작품은 토미 리 존스의 < 홈즈맨 >(촬영 로드리고 푸리에토)과 예시카 하우스너의 <아모레 포르> 단지 두 작품뿐이다(촬영 마틴 쉴라츠). 우리는 오즈 야스지로가 미루고 미룬 끝에 선택한 아그파 필름의 저 냉랭하고 음험한 색이 그의 영화에서 어떤 기이한 영화적 인상을 불러일으키는지 알고 있다. 더러 누군가는 아키 카우리스마키가 오즈 야스지로에게 바쳤던 과장된 헌사를 기억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특히나 존경의 이유로서 오즈 영화의 그 붉은 색을 거듭 찬미했다. 그러한 특별하고 특정한 빛과 색의 효능이 <하우하>에도 있었다. 평론가 켄트 존스도 <하우하>를 보고 유사하게 느꼈던 것 같다. 그는 이 영화의“거의 모든 이미지가 색과 빛의 모험이며 어떠한 외양적 술수나 조작도 없이 마네의 천부적인 색의 가치를 수행해내고 마는 많은 대목들이 있다”고 찬사를 보냈다. 그러므로 이 새벽 이후에 이어지는 장면들이 오랫동안 낮 장면들이라는 사실은 내게 중요해 보인다. 이후에 군너는 쏟아지는 햇볕 아래 드넓은 대지를 대책 없이 해매고 돌아다니게 된다. 인상주의 화폭안에 담긴 듯 했던 강렬한 빛과 색은 이제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도래하기 전까지 잊히고, 한동안은 오직 백주 대낮의 태양 아래 쓰러지기 일보 직전으로 걸어다니는 군너의 처량한 여정뿐이다(문득, 정말 낮장면만 한동안 계속됐던가 의심이 든다. 내가 기억하고 있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 글은 이러한 기억과 망각의 활동까지도 포함하고 있으니, 그에 근거하여 계속 전개해보려 한다). 그러니 빛과 색에서 받았던 나의 감동은 그의 허무하고도 피로한 움직임과 동선에 기인하여 또 다른 축으로 옮겨와 있었다. 군너의 움직임과 동선은 이 영화의 화면비율과 또 다른 긴장의 국면에 놓이기 시작했다. 예컨대 그는 거의 매번 수평으로 움직이는 법 없이 수직 혹은 대각선으로 화면을 질러 다녔다. 수평과 수직의 동선이 이론적으로 어떤 인지적 차이를 가져오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거의 정사각형의 화면을 오르내리락 반복하는 그의 움직임이 갑갑하고 무용해서 더 피곤해 보였던 건 사실이다. 무료하기는커녕 손에 땀을 쥘 정도의 긴장감으로 넘쳐나는 장면들의 연속이었다. 군너의 반복적이고 지난하고 피곤한 물리적 여정이 그러한 긴장감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 물리적 여정은 지겹거나 단순하지 않다. 예컨대 군너의 그 한 낮의 여정은 파트 1과 2로 교묘하게 나뉜다. 파트 1, 군너는 말을 타고 딸을 찾아 다닌다. (그러다 딸과 함께 도망친 젊은이 코르토가 혼자 죽어가는 것을 발견한다. 딸의 행방은 묘연하다. 군너의 근심은 더해진다. 하지만 그때 군너는 숨어 있던 원주민에게 총과 말을 탈취당한다. 때문에...) 파트 2, 군너는 이제 터벅터벅 걸어다녀야만 한다. 그는 더 느려졌고 더 피곤해졌으며 더 절망적이다. 말과 총을 잃어 버리는 사건 하나가 끼어 들어 내러티브 구조에 일단락의 임시적 균열을 일으키자, 그의 육체의 피로도와 심리의 긴장 상태는 급속하게 훨씬 더 아득한 늪으로 빠져 들었고, 동시에 그의 움직임과 동선과 속도감의 차원에도 더 큰 변화가 아니 더 큰 절망적 분위기가 배어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도대체 이 정처없고 무력한 수색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그렇게 생각할 때쯤 문제의 털빠진 들개가 나타나 그를 한 명의 노부인에게 인도한다. 그리고 나의 감동의 정체도 그 개의 출현을 따라 서서히 다시 또 바뀌기 시작했다. 이때 중요한 것이 있다. 영화 속의 시간도 낮이 아니라 밤으로 서서히 바뀌어 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제 다가올 장면들에서 내게 감동스러운 것은 동선도 움직임도 아닌 그 밤이며 비통한 음악의 자리이며 몸의 흔적이며 폐쇄적 공간이며 기이한 대화이며 그걸 거치자 엄습해 오는 우주적이며 상대적인 시간에 대한 멜랑콜릭함이며 현실에서 어느새 비현실로 옮겨간 시간의 차원적 전환성이었다. 예컨대 군너가 노부인을 만나게 되는 대목에서부터 그녀와 헤어져 돌아가는 대목 사이에서 그러한 것들을 느꼈다. 들개를 쫓다가 밤을 맞은 군너가 기진맥진한 채로 장검을 옆에 벗어 놓고 바위 위에 털썩 드러 누운 그 순간, 밤하늘의 별들이 무수하게 쏟아져 내렸다. 동시에 그 순간 기타리스트 버켓헤드가 연주하는 기타의 우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길고 험한 육신의 피로와 심리적 상처의 아픔을 기타의 연주가 대신 울고 있었다. 저 뒤로는 지금 일군의 별자리들이 반짝이고 있고 군너의 잠이 혼란스럽게 깊어질수록 별들은 대지를 향해 세상이 끝날 것처럼 무리지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 장면을 보며 어떤 앞선 장면을 기억해 낼 것이었다. 딸이 사라지기 직전, 영화 속 딸이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장면에서 그녀가 연인 코르토에게 했던 중요한 말이 있다. 아마도 그들이 사랑을 나눈 뒤쯤이었을텐데 풀밭의 돗자리에 앉아 딸이 코르토의 등에 새겨진 반점들을 보고 매만지며 “꼭 별자리 같다”고 말한다.“쏟아지는 별처럼 아름답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녀가 말하는 그것을 보지 못한다. 별자리 그리고 아름답게 쏟아지는 별들은 장면이 흘러 군너의 그 밤에 이르러서야 시각화 되는 것이다. 연인의 육체위에 새겨져 있던 그 아름답게 쏟아지는 별자리라는 모반에 관한 인상은, 딸을 찾는 아비가 바위 위에 지친 육신을 눕힌 그 밤에 이르러 실존의 풍경이 되어 있다. 누군가의 사랑은 누군가의 슬픔이 되었고 누군가의 등은 누군가의 하늘이 되었고 누군가의 모반은 누군가의 별자리가 되었다. 그 내부와 외부, 나와 타자, 육체와 우주의 기이한 설화적 이접이 나는 아름다웠다. 물론 이런 장면은 요설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이 요설을 과장되어서 허위적인, 단지 지나친 형식주의로서의 탐미적 자세라고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반문할 필요조차 없었다. 나 자신에게 기입되어 있던 감탄의 경험들이 깨어나는 걸 느낄수 있었다. 저 멀리 불꽃 축제가 열리고 미끄러지듯이 나아가는 자동차의 수평 움직임속에서 도노반의 <허디거디맨>이 음울하게 들려오는 < 조디악 >의 첫 장면. 바비 빈튼의 <블루벨벳>이 고즈넉하게 들려오는 가운데 정원의 한 남자가 뒷목을 짚으며 쓰러지고 풀숲의 잘린 귀로 카메라가 불길하게 이동해가던 < 블루벨벳 >의 첫 장면. 고되고 성스러우며 유머러스했던 종교적 여행길의 마지막에 이르러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 앞에 넙죽 업드려 경외를 바치는 그 순간 장엄하게 노래가 울려퍼지던 <새들의 노래>의 클라이맥스 장면. 시름에 젖은 여인이 슬로우 모션으로 국수통을 들고 좁다란 계단을 오르내리는 가운데 우베마야시 시게루의 현음악이 들려오던 < 화양연화 >의 국수집 장면. 그리고 수시로 그와 같은 순간들을 영화의 접히고 펼치는 접경지대로 사용하곤 하는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영화들. 그것들에 황홀해 한 만큼 <하우하>의 이 장면에서도 황홀했다. 그리고 영화는 나의 황홀을 뒤로 하고 또 다시 앞으로 나아 갔다. 음악과 풍경의 장면들이 지나가고 빛의 장면들이 다시 도래했다. 하지만 이 번에는 다소 다르게 돌아왔다. 군너가 동굴 안으로 들어가 노부인을 만나자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특별한 (어둠과) 빛의 효능이 이들을 감쌌는데 여기 특별하게 새로 개입해 들어온 것은 적절한 연극적 공간성이었다. 핀조명과도 같은 푸르스름한 한 줄기 빛을 받으며 군너와 노부인은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군너가 노부인에게 병정 인형을 주니 그녀가 좋아한다(군너의 딸은 그 병정 인형을 갖고 도망쳤지만 군너는 그 인형을 딸을 찾는 도중에 발견했다). 둘의 대화는 가까워졌다가도 조금씩 빗나간다. 이 노부인은 누구인가. 노부인은 군너가 잃어버린 딸의 노년의 모습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그렇게 애매해지는 사이에 어떤 사물과 제스처는 놀랍도록 다시 돌아와 자기 자리를 차지하면서 우리를 자극한다. 딸에게 그토록 중요했던 나침반과 병정 인형은 군너와 노부인 사이에서 화제에 오르고 마침내 첫 장면에서 딸이 아버지의 어깨에 살짝 고개를 기대었던 것처럼, 노부인이 군너의 어깨에 그렇게 기대며 같은 제스처를 보일 때, 마침내 나는 두 사람의 관계를 사실로서 일치짓고 확정짓는 것과 무관하게, 말하자면 사실관계와 무관하게 그 인상관계 때문에 아득한 애처로움을 느꼈다. 그리고 첫 장면에서 딸이 자신은 언제쯤 개를 가질 수 있는 것이냐고 물었던 질문을 떠올렸다. 지금의 노부인이 오로지 개를 가졌을 뿐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라는 걸 떠올렸다. 그리고 아직은 남아 있는 에필로그에서 현대의 어느 대저택에 사는 소녀가 털빠진 개를 또 한 마리 갖고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세 마리 개만이 실마리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이 즈음에 영화적 사태를 직감한다. 우리가 군너의 움직임과 동선을 좇아 다니는 동안 군너의 실종된 딸은 그녀의 삶을 살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군너가 그의 물리적 시간을 사는 동안 딸은 그녀의 서사적 시간을 살아갔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녀는 죽은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녀는 사라진 것이다. 그러니 앞에 있는 저 노부인이 군너가 그토록 찾아 해멘 그의 딸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거듭 말해도 그것은 사실 관계가 아니라 인상 관계로서 그러하다. 딸을 찾아 헤맨 군너의 시간관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그걸 가능하게 하는 시간관은 무엇인가. 이것이 중요한데, <하우하>를 본 내가 이때쯤 직감하게 된 것은, 우리가 군너의 여정을 따라다니는 동안 실제로는 더없이 동화적이며 설화적이어서 상대적인 시간의 대지를 건너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근거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영화에서 밤 장면은 기껏해야 한 번 정도 등장한 것 같다(나는 여전히 나의 이 기억과 진술이 의심스럽다. 하지만 이 의심에 바탕해서 감상을 지속하려 한다. 며칠 밤이 등장했다 해도 사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밤과 낮의 등장 시간으로만 측량하자면 군너는 단 하루의 시간 동안 딸을 찾아 헤맨 것일 수도 있다. 이 영화는 그럴 경우 단 하루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하지만 알론소가 군너의 그 무수했던 밤들 중 오로지 어느 하룻 밤만을 특화한 것일 수도 있으니 이 영화의 시간이 하루라고 우린 단정지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럴 경우 이 영화는 하루처럼 보이도록 구성된 수많은 날들로 구성된 영화다. 물론 여기에는 군너의 변하지 않은 외양이라는 또 다른 모순점이 의도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어느쪽이건 군너가 그렇게 오래 낮의 장면들을 해메야 했던 이유 중에는, 그리고 우리가 그걸 보아야만 했던 이유 중에는, 구조적 혼돈을 통한 시간의 상대적 성립이라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밝음과 어둠으로 계산되는, 그리고 그것때문에라도 실제로는 계산이 아리송해지는 낮과 밤의 시간의 흐름과 군너라는 인물의 동선에 따른 물리적 시간의 흐름과 그에 따른 심리적 시간의 흐름이 동화적이고 설화적인 이 영화의 상대적 시간의 빅뱅을 가능케 하고 있다. 시간의 초점을 모순되게 하고 중첩시켜 상대화하는 것이다. 더 중요한 건 알론소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점時點이 중첩된다면 시점은視點 전환된다. 그리고 시점視點의 전환을 따라 시제의 전환까지 이루어진다. 기이한 건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이 비주얼이 아니라 보이스라는 데 있다. 노부인의 동굴을 나온 다음 군너는 힘없이 무릎을 꿇는다. 내가 포스터에서 보았던 바로 그 자세로 그는 절망한다. 내 기억으로는 바로 이때쯤 여인의 보이스 오버가 들려왔고, 군너의 저 여정을 설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번역된 영어 자막에 근거하자면) 과거형이었다. 노부인의 보이스 오버로 그렇게 이 영화의 내러티브를 정리해내자 이 영화는 갑자기 그간의 서사에서 완전히 돌아서, 군너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녀의 어떤 회상의 이야기인 것 같은, 그것도 그녀가 과거에 겪었던 회상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은, 시점 주체의 전환 및 시제의 전환이라는 인상을 갖게 된 것이다. 보이스 오버의 출현에 따른 시점視點과 주체와 시제의 변경이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영화에 그어지는 또 하나의 곡선이었다. 군너가 동굴을 빠져 나와 걷는 그때 목소리는 묻는다.“무엇이 삶을 움직이게 하고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그리고 잠시 뒤 군너가 대지에 무릎을 꿇을 때 그 말은 한 번 더 반복된다.“무엇이 삶을 움직이게 하고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 디졸브가 일어나 장면이 바뀌고 이 영화의 2부에 해당하는 짧은 에필로그가 등장한다. 동시대의 어느 대저택에서 어느 소녀는 잠이 깬다. 앞선 이야기는 꿈이었을까. 소녀는 개를 끌고 산책을 나가고 아버지를 만난다. 앞서 딸을 찾는 아버지 군너의 긴 수색이 있었다면 에필로그에는 아버지를 스쳐 지나간 딸의 짧은 산책이 있다. 소녀는 숲속에서 병정 인형을 줍지만 잠시 손에 쥐었다가 무심하게 호수에 휙 던져버린다. 병정 인형이 동심원의 파장을 일으키고 그 물결에 군너가 해멨던 19세기 파타고니아의 풍경이 잠시 비쳤다가 사라진다. 무엇이 삶을 움직이게 하고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 나는 생각했다. 다시, 보다 나의 두 번째 관람도 짧은 에필로그에 해당한다. 알론소의 인물들은 전작에서도 대체로 “외로운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종종 누군가를 찾아 나서거나 향해갔고, 광대한 풍경을 혹은 폐쇄된 장소를 느리고 오래 유영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주인공의 내용적 여정에 새롭게 인위적이고 구조적으로 어떤 성질과 상태가 부여됐다는 점일 것이다. 알론소는 아르헨티나 시인인 파비앙 카사스가 쓴 시나리오에서 자신이 취하고 싶은 것들을 취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혔는데, 개인적인 바람을 말하자면, 알론소가 카사스와 지속적인 작업을 이어갔으면 좋겠다. 카사스가 알론소 영화의 수준을 급상시켰다고 나는 생각한다. 알론소는 전작들에서 시각적 인위와 연관된 사건의 매듭을 고안하는데 매우 불철저하거나 무관심하거나 그렇게 무관심해야만 좋은 영화라고 믿는 경우들이 많았다. < 하우하 >는 다르다. 인물과 사건의 매듭이 전체 구조에 보다 긴밀하면서도 중요한 관계를 맺으며 영화 전체의 신비로운 리듬이 배가됐다. 그의 전작들은 인위적 구조에 무관심한 대신, 앵글에 담기는 장소의 리얼한 공기의 농축에 치중했는데, 자신이 취하고 싶은 만큼 완전치 못해서 원하는 만큼 충분히 물질적이지 못하거나 얼마간 지루했다. 알론소의 영화들은 무언가 조금씩 미비했고 그걸 자신의 형식적 진지함으로 덮곤 했다. 그런데 티모 살미넨의 참여가, 카사스의 시적인 개입이 알론소의 세계를 고양시킨 것 같다. 어쩌면 동시대의 감독들을 신중하게 의식한 긍정적인 결과일 수도 있겠다. <하우하>는 확실히 알베르 세라와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영화들을 의식하고 있다. 현실에 인위적 구조를 더하여 비현실을 풍요롭게 끌어안으면서 다시 현실 쪽을 바라보게 하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이 긍정적이면서도 은밀한 모사의 성취도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더 지켜보아야겠다. 다만 어떤 영화와 닮았는가 하는 것은 중요치 않을 수도 있다. 존 포드의 서부극에서부터 빅터 시외스트룀의 어드벤처물에 이르기까지, 이 영화와 닮았다고 거론되는 수편의 영화들에 관해 나는 들었지만, 그 지적들이 중요하게 들리지 않는다. 어떤 영화와 닮았는가 지적하는 것 보다는, 어떤 영화를 느끼는 방식으로 이 영화도 느낄 것인가, 묻는 건 어떨까. 알베르 세라의 미치광이 기사와 우스꽝스러운 동방 박사들을,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주정꾼들과 길 잃은 소년들을,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승려와 군인과 요괴들을 느꼈던 감상의 방식과 흡사하게 느껴보는 건 어떨까. 이른바, 불가사의함에 관한 시적 무드의 설화 내지는 동화라고 간주하며 감상해보는 것은 어떠할까. 나는 그렇게 느꼈다. 알론소의 영화가 얼마나 더 신비롭고 도발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는 내가 확신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단지 나는 이러한 감각의 과정들을 체험하며 <하우하>에 깊이 도취되었고, 좀처럼 거기에서 깨고 싶지 않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