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침실
- 감독
- 이형표
- 제작년도
- 1970
- 출연
- 최무룡, 문희, 백영민, 박지연, 박명옥, 이성호, 홍정인, 김진아
한국영화의 '퀴어함'이 장르나 소재, 영화사적 순간 등에 반영되는 양상을 분석합니다. * 본 글에는 <색깔있는 남자>의 반전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980년대 한국영화 산업은 여러 면에서 척박했던 시기로 회자된다. 양과 질 모든 측면에서 한국영화 산업의 첫 르네상스라 평가됐던 1960년대를 지나 1970년대와 80년대는 독재 권력의 감시 하에 정치적으로 혼란스럽고 검열이 극심해지면서 산업적 토대와 시스템이 허약해진 시기로 평가된다. 1970년대부터 대중추수적인 에로티시즘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 바보들의 행진 >(하길종, 1975)처럼 청춘을 다룬 영화들을 중심으로 주제와 형식 측면에서 저항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이 간간이 출현했다. 또한 1980년대 후반에는 한국영화의 전면적 시장개방이 일어나면서 한국영화 점유율이 급격히 떨어지긴 했지만, 영화제작업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검열제도가 심의제도로 전환되고 저항적인 학생영화운동을 포함해 새로운 영화세대가 부상하면서 독립영화와 코리안 뉴웨이브의 싹이 틀 수 있는 움직임들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 색깔있는 남자 >(김성수, 1985)가 개봉된 1980년대 초중반은 전두환 정권의 적극적인 3S(Sex, Screen, Sports) 정책, 선정성과 폭력성이 극대화된 1970년대 후반~1980년대 할리우드 장르 관습, 흥행작의 끝없는 시리즈화, 컬러 비디오라는 새로운 부가시장의 저예산 문법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면서 한국영화 산업 전반이 에로영화에 몰두한 것처럼 보인다. <색깔있는 남자> 역시 에로틱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다. 이 영화는 당시 대부분의 에로영화들처럼 다양한 정사 장면을 넣기 위한 지나치게 복잡한 인물 구도와 설득력 없는 급작스러운 반전, 컬러 비디오 시대에 걸맞은 화려한 색상과 조명, 줌 쇼트와 프리즈 프레임 등의 과도한 사용을 보여준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선정성을 목표로 두면서 느슨해진 서사 그리고 부족한 예산과 시스템을 메우기 위한 표현적 과장은 오히려 이 영화를 급진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이 지점에서 김형석 은 <색깔있는 남자>를 < 디아볼릭 >(앙리 조르주 끄루조, 1955)이나 < 원초적 본능 >(폴 버호벤, 1992)과 같은 놀라운 반전 서사를 가진 1980년대 대중영화의 숨겨진 걸작에, 이문우(「1980년대를 퀴어링하기」)는 범죄화하는 방식이긴 하지만 레즈비언을 가시화한다는 측면에서 퀴어적 독해의 텍스트로 위치시킨다. <색깔있는 남자>는 제목만 보면 김성수 감독의 전작, 장미희 와 이영하 주연의 < 색깔있는 여자 >(1980)의 후속작처럼 보이지만, 두 영화는 장르적 방향성이 완전히 다르다. <색깔있는 여자>가 신파적 특징이 강한 여성수난사라면, <색깔있는 남자>는 냉철하고 잔인무도하게 범죄를 저지르는 팜 파탈과 여성 착취적이고 이기적인 옴 파탈이 대격돌하는 스릴러 영화다. 이 영화는 당대 몇몇 에로영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선정적 재현을 위해 비규범적 성적 욕망과 관계를 소재로 가져온다. 유사 근친상간, 사도매저키즘, 양성애와 동성애를 직접적으로 묘사할 뿐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 있어서도 전통적 젠더 역할을 뒤집는다. 영화는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패션 디자이너 샤르망 최( 임성민 )의 귀국 기자회견으로 시작한다. 세련된 매너에 잘생긴 얼굴을 가진 그는 돌아오자마자 여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샤르망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여자들의 사랑과 욕망을 이용하는 데 거침이 없다. 샤르망은 공사 모두에서 누나 같은 변수린( 오수미 )의 돌봄과 지원을 당연하게 받고 있지만 정작 그의 집착 어린 사랑은 모른 척한다. 또한 그는 김여사( 홍명진 )의 애인 노릇을 하며 후원을 받아 패션사업을 키워나간다. 그러는 와중에도 다른 젊은 여자들과의 성적 관계를 거절하지 않는다. 저돌적으로 그에게 다가오는 부티크 직원( 오경아 )과 다른 여자들과 달리 자신에게 성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재미교포 사업가 주은몽( 오혜림 )이 그들이다. 모든 여자의 욕망의 대상인 샤르망은 이 모든 관계의 중심인 것처럼 보인다. 샤르망을 연기한 임성민은 TV와 스크린을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한 스타로 신성일 이나 남궁원 같은 이목구비 뚜렷하고 키 큰 ‘미남배우’의 계보에 있긴 했지만 훨씬 세련되며 때로는 유약하기도 한, 그래서 이성애 여성들에게도 위협적이지 않은 성적 대상이 될 수 있는 미묘한 스타성을 갖고 있었다. 임성민이 <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장길수, 1994)에서 수많은 여성의 이상형으로 꼽히는 (그래서 여성운동 활동가 강민주에게 전략적으로 납치당하는) 스타 배우 백승하로 캐스팅된 것은 그의 실제 스타 이미지에 일부 근거한 것이기도 했다. 매너 좋고 유약한 남성성에서 오는 그의 스타성은 에로영화의 선정적 노골성을 약화하는 데 도움을 줬다. 그런 면에서 임성민은 에로영화의 타겟 관객을 이성애 여성으로 확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수 있다. 실제로 여성 주인공들보다 임성민을 중심에 놓고 “에·놈·쌍쉬엘(Un homme sensuel)”이라는 카피를 전면에 내세운 포스터는 주인공 남성을 성적 대상으로 스펙터클화 하려는 의도를 명백하게 드러낸다. (좌) <색깔있는 남자> 포스터 (우) <색깔있는 남자> 중 배우 임성민 하지만 이 영화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샤르망은 자기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자신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옴 파탈이다. 샤르망은 사업 확장을 위해 공장을 구매할 자금이 필요하다며 김여사를 부추기고, 김여사는 기어이 병들고 늙은 (가학적 성욕을 가진) 남편( 변희봉 )을 복상사하게 만든다. 범죄와 그에 따르는 불안과 집착은 연쇄성을 갖게 되고 영화는 점점 에로보다는 스릴러에 집중한다. 자금을 확보한 샤르망이 김여사를 귀찮아한다는 것을 눈치챈 변수린은 그렇잖아도 질투 때문에 마땅치 않던 그녀를 차로 여러 번 치어 살해한다. 변수린의 범죄를 알게 된 샤르망은 자신을 향한 집착이 부담스러워지고 재미교포 사업가 주은몽과 새 삶을 계획한다. 주은몽은 다른 여자들과 달리 그에게 집착하지 않는 ‘쿨’한 여자다. 결국 그는 변수린을 기찻길에서 잔인하게 살해한다. 하지만 주은몽과 형사들은 그를 살인자로 의심하고 변수린이 살아있는 것 같은 이상한 징후들이 그를 불안에 휩싸이게 만든다. 마지막 장면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반전을 내놓는다. 그 반전을 예상하지 못한 건 영화가 반전을 위한 서사를 거의 쌓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디아볼릭>을 넘어선 파격적 혹은 허술한 반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완전히 주변부 인물, 즉 조연이었던 직원과 영화 후반부에 등장해 존재감이 미미했던 주은몽이 이 모든 계략을 지배하며 완전범죄를 저지른 레즈비언 커플이었음이 매우 급작스럽게 밝혀진다. 주은몽은 변수린에게서 벗어나고픈 샤르망의 욕망을 자극해 공장을 판매한 대금을 자신에게 투자하도록 유도했으며, 아마도 사적, 공적 공간 모두에서 프레임 바깥에 상시적으로 존재했을 직원은 온갖 정보를 수집해 완전범죄를 계획하고 변수린과 샤르망의 대화를 녹음해 변수린이 살아있는 것처럼 꾸밀 수 있었을 것이다. 변수린, 샤르망, 주은몽을 훔쳐보는 제3의 시선이 있다는 것을 종종 암시하지만 서사적으로 그 눈이 직원의 것일 거라는 예측을 하기는 어렵다. 프레임 바깥 존재인 그들의 비가시성과 유령성은 완전범죄와 ‘완벽한(예측 불가능한)’ 반전 서사를 가능케 하는 조건이다. 비가시적이고 유령적인 레즈비언 커플이 변수린의 유령을 위장하고 무대화할 때 과장되게 연출된 줌 쇼트, 화려한 번쩍이는 조명, 사각앵글 등은 그들 스스로 유령적 존재였다는 점을 돌이켜보면 매우 아이러니하다. 변수린이 김여사를 살해할 때 부띠크 직원을 용의자로 몰기 위해 그의 모습으로 변장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러한 과장과 위장은 1980년대 에로틱 스릴러의 문법이기도 하면서 자신들을 드러낼 수 없는 레즈비언 커플의 유령적 현현의 비틀어진 알레고리가 된다. 전말이 드러나는 에필로그, 즉 마지막 장면 바로 직전 쇼트에서 샤르망은 자신을 체포하려는 형사들에게서 도망쳐 기차를 향해 정면으로 달려간다. 기차와 부딪히기 직전 그의 신체는 프리즈 프레임 효과 속에서 동결된다. 기차의 헤드라이트 때문에 하얗게 날린 스크린은 종결보다는 다른 이미지와 서사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하얀 스크린과 샤르망의 신체가 한중간에서 찢겨나가기라도 하듯 바로 이어지는 쇼트에서 창문 양쪽이 열리고 하얀 커튼이 갈라지면서 그 사이로 누드로 침대에 누워 있는 두 여자, 부띠크 직원과 주은몽이 등장한다. 그녀들은 샤르망의 신체와 스크린(그리고 이성애 서사)을 찢고 나온 것처럼 보인다. 마치 < 에이리언 >(리들리 스콧, 1979)에서 에일리언과 접촉했던 남자 승무원의 배를 찢고 아기 에일리언이 나오는 장면이, 직유적으로 (불가능한) 남성출산을 가리켰던 것처럼 말이다. 이제까지 어떤 서사적 암시도 없었기에 그 반전은 그야말로 영화 전체를 헤집고 뒤집는 얼룩이 된다.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여자 등친 돈, 여자가 돌려받았을 뿐이야”라고 그럴듯한 범죄 동기를 던져줌에도 이 반전은 전혀 납득할 수 없다. 이 예측 불가능한 에필로그는 철학자 질 들뢰즈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회화를 분석하며 그의 회화가 구상이나 추상 어느 한쪽에도 속하지 않으며, 오히려 구상을 뒤흔들고 해체하는 힘의 운동(강도)에 가깝다고 분석한 것에 가깝다. 들뢰즈가 ‘돌발흔적’이라고 부른 것 말이다. 돌발흔적은 구상에 가까운 그림 위에 우발적이고 맹목적으로 던져진 국지적이고 질료적인 손의 흔적을 지칭한다. 어떤 면에서 이 영화에서 퀴어적인 것은 영화 내내 이어진 팜 파탈과 옴 파탈 간의 연쇄 범죄도, 비규범적 섹슈얼리티도, 레즈비언 커플이 가시화되는 에필로그도 아니다. 그보다는 국지적인, 흰 스크린 위의 얼룩과도 같은, 마지막 한 씬으로 영화 전체를 뒤흔들고 반향을 만드는 힘의 강도다. 무엇도 선명하게 의도되지 않고 혼탁하기 그지없다. 외삽도 내삽도 아닌 방식으로 존재하며 우발적으로 스크린을 찢어내며 등장한 돌발흔적. 레즈비언 커플은 그야말로 샤르망의 몸, (혹은) 스크린을 찢고 자진 탄생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태어나자마자 기존의 (이성애) 서사를 완전히 망쳐 놓는다. 영화는 새로운 영화를 시작하듯 “아... 색깔있는 남자여 안녕”이라는 대사를 던지며 웃는 주은몽의 얼굴로 다시 한 번 프리즈 프레임하며, 샤르망의 프리즈 프레임을 취소시키고, 그 자신의 얼굴로 끝을 낸다. 에필로그 ‘얼룩,’ ‘돌발흔적’에 그칠 수밖에 없던 레즈비언 커플은 기껏해야 하나의 씬, 비밀스러운 작은 침실에서만 가시화될 수 있었다. 최근 개봉을 앞두고 있는 두 편의 퀴어 장편영화 < 딸에 대하여 >(이미랑, 2023)와 < 럭키, 아파트 >(강유가람, 2024)는 사회와 공동체에 의해 지워버려야 하는 얼룩과 불쾌한 냄새로 취급되는 레즈비언 커플의 가족구성권 혹은 자기 자리와 공간의 확보를 다루고 있다. <색깔있는 남자>의 ‘에필로그’는 국지적인 것이 바탕을 바꾼다는 면에서 퀴어적으로 독해될 수 있지만 분명 한계가 있다. 반향을 만들어내는 얼룩의 자리는 강제된 것이고 실제로 그 자리 이외의 것은 거의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딸에 대하여>와 <럭키, 아파트>는 레즈비언 커플들이 더 이상 얼룩과 냄새로만 남아있지 않을 것이며, 돌발흔적은 오히려 전통적인 가족관계를 넘어 상상된 관계들과 공동체들의 이접 속에서 일어난다는 점을 말한다. 돌발흔적은 시대에 따라 다르게 촉지될 수 있다. <딸에 대하여>, <럭키, 아파트> 중 조혜영(영화평론가) l 영화적 순간들을 공유하고자 글을 쓴다. 영상문화 기획연구 단체 '프로젝트38' 연구원, 『원본 없는 판타지』(2020), Mediating Gender in Post-Authoritarian South Korea (2024) 등 공동 집필.
“나는 그렇게 일찍 ‘입봉’할 생각이 없었어요. 이게 내가 먹고사는 유일한 방법인데 조감독을 하면 그냥 그럭저럭 지낼 수가 있잖아요. 그때만 해도 내가 충무로에서는 꽤 똘똘한 조감독이어서 사람들이 권택이, 권택이 그러면서 나를 찾았으니까요. 그런데 감독 한번 해서 망하면 그걸 누가 다시 연출부로 데려다 쓰냐구요. 그때도 영화 한 편 찍고 사라진 사람들을 많이 봤으니까요. 나는 정창화 감독만 모시고 했잖아요. 여기저기 다니는 게 나한테 맞지도 않고. 그런데 < 장희빈 >을 찍을 때였어요. 그걸 창경궁에서 찍고 있는데 일정이 촉박해서 심지어 연출부들이 그때 막 궁궐 안에서 잠을 자면서까지 영화를 찍었어요. 장면을 찍는데 참, 이건 내가 잘못한 건데, 거기서 나와야 할 일정이 다 되어서 이제 떠나야 할 판국인데, 창경궁 바깥으로 일단 나가면 세트를 세울 수도 없고 도리가 없잖아요. 그런데 그날 분량을 다 못 찍고 해가 저물어가기 시작하니까 갑자기 정창화 감독이 막 찍기 시작하는 거야. 동선도 안 맞고, 시선도 틀리고, 그래서 내가 이건 잘못된 겁니다, 라고 말을 했는데, 거기 배우들도 있고, 스태프들도 있고, 사실 정창화 감독도 다 알면서도 그러는 건데, 그래서 속에 불이 나고 있는데, 거기다가 다 알고 있을 법한 조감독이란 놈이 그러니까 다 있는 앞에서 나한테 갑자기 화를 내는 거예요. 그때는 내가 맞는 데 망신을 당했다고 생각하니까 그러면 그만두겠다, 이러고 나온 거지, 그런데 내가 다른 감독 밑에서 해본 적도 없고 머리가 컸다고 생각하니까 다른 감독들도 나를 안 부르는 거야, 그때 조감독 하던 나를 유심히 바라보던 제작자가 그러지 말고 그냥 ‘입봉’을 해라, 해서 감독이 된 거예요” (「임권택, 임권택을 말하다」) <장희빈>(정창화), <요화 장희빈>(임권택) 정창화 의 < 장희빈 >은 1961년에 제작되었고 김지미가 사극 드라마 사상 첫 번째 장희빈으로 등극한 영화이다. 숙종으로는 김진규가 출연하였다. 이듬해 임권택 은 < 두만강아 잘 있거라 >로 ‘입봉’하였다. 그런 다음 스무 편의 영화를 더 찍었다. 1968년 임권택은 자신의 첫 번째 칼라영화 < 요화 장희빈 >을 찍었다. 물론 그해에 이 영화만 찍은 것은 아니다. ‘입체영화’ < 몽녀 >를 찍었고, (< 7인의 사무라이 >를 리메이크한) < 황야의 7인 >를 리메이크한 < 바람 같은 사나이 >를 찍었고, 첫 번째 다찌마와리 액션활극 < 돌아온 왼손잡이 >를 찍었다. 하지만 자신의 ‘오야지’(그때는 자신이 모시던 감독을 그렇게 불렀다)가 찍었던 영화, 그 현장에서 떠나야했던 영화, 그 영화와 같은 주인공의 이야기를 자신이 찍게 되었을 때 임권택은 틀림없이 약간 민망하지만 어떤 승리감을 느꼈을 것이며 또한 대결‘하는’ 의식을 가졌을 것이다. ‘오야지’라는 말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키고 싶다. ‘親父’라는 말. 자기 아버지라는 뜻. 영화 현장에서 연출부들은 자기가 모시는 감독을 다른 자리에서 감히 이름을 부를 수 없다 하여 ‘오야지’라고 불렀다. 아버지와 대결하는 장면. 약간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임권택은 <요화 장희빈>을 ‘연출하면서’ 정창화의 그림자를 벗어났다. 그런 다음 의도치 않게 한국영화 산업 안에서 스스로 망가지면서 자기 영화를 찾아가는 과정에 나서게 되었다. 헐벗은 연출. 가진 것 없이 버려지게 된 다음 다시 시작하는 계기. 그런 의미에서 <요화 장희빈>, 혹은 이 스물 한 번째 영화는 임권택에게 하나의 사건이다. 아니, 차라리 이렇게 말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 영화는 임권택의 내부에서 미처 종결되지 않았던 하나의 중단이 마침내 자기 손에 의해서 완성된 다음 끝난 것이다. 물론 과도하게 <요화 장희빈>에 대해서 (프로이드를 경유한) 아버지와의 대결이라는 드라마를 끌어들이는 것은 사태를 우스꽝스럽게 만들 것이다. 두 번째. 한국영화에서 첫 번째 칼라영화는 1949년에 만든 홍성기의 16mm 필름인 <여성일기>였지만 긴 시간 동안 한국영화에서 칼라영화의 시대는 미루어졌다. 그 시대를 시작한 것은 1961년에 거의 동시에 만들어진 두 편의 영화, 홍성기 의 < 춘향전 >과 신상옥 의 < 성춘향 >이었다. 임권택 이 ‘입봉’하기 전에 이미 시작된 칼라영화의 시대. 그러나 임권택은 자신의 칼라영화를 한참 뒤로 미루었다. 물론 그건 그의 예술적 결정이라기보다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필름 값은 영화 제작비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비쌌(을뿐만 아니라 역설적으로 그 비용이 부담스러울 만큼 제작 조건이 열악한 제작비로 영화를 만들고 있었)고 임권택은 기다려야 했다. < 요화 장희빈 >은 임권택의 첫 번째 칼라영화이다. 한 가지 더. 신기하게도 1968년에 찍은 임권택의 영화는 ‘갑자기’ 모두 칼라영화이다. 그런 다음 두 번 다시 흑백영화를 찍지 않았다. 같은 말이지만 되돌아가지 않았다. 혹은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이를테면 홍상수 는 가끔 흑백으로 영화를 찍었다. . 혹은 칼라로 작업한 다음 마지막에 흑백으로 전환한 < 북촌방향 >. (그래서 이 영화의 예고편은 칼라이다) 봉준호 는 칼라로 개봉한 다음 감독판이라는 이름으로 (직접 색 보정 작업에 참여해서) 흑백으로 전환한 다음 < 마더 >를 (다소 제한적인 방식으로) 다시 상영하였다. 일부 극장에서 102번째 영화 < 화장 >을 흑백으로 변환하여 상영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보지 못했다. 임권택 자신은 이 영화의 최종판은 칼라이며 흑백 버전의 <화장>에 대해서 “상업적인 이유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럴 수도 있는” 판본이라고 불렀다. 이 말의 무심함. <요화 장희빈> 한복의 색채 <요리사, 도둑,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에서 공간에 물드는 의상 그걸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 요화 장희빈 >은 누구라도 보자마자 그 색채감각이 아름답다는 인상을 받을 것이다. 이때 임권택 은 여기서 세트 미술의 도움 없이 오로지 한복의 색채만을 활용하여 영화 전체를 마치 붓으로 채색하는 것처럼 그려낸다. 이 말을 단지 비유적으로 사용한 것은 아니다. 영화에서 의상이 회화와 다른 점은 그것을 입은 사람들이 자신의 동선을 따라 화면 안을 자유로이 이동하면서 색채의 선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때 의상은 미장센의 일부이면서 종종 그로부터 독립된 어떤 존재감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어떤 존재감? 그렇다. 이를테면 롤랑 바르트가 섬세하게 파리를 거니는 마담 혹은 마드모아젤을 바라보면서 의상이라는 모드에 대한 기나긴 기호학적 분석을 그려낸 예. 혹은 삐에르 부르디외가 냉정하게 펼쳐 보인 계급적 취향의 차이라는 서로 나누어진 세계. 물론 맨 위에는 프로이드가 있다. 꿈속에서 나타난 의상보다 더 분명한 흔적이 달리 무엇이겠는가. 형상화라는 과정. 영화가 꿈은 아니지만 욕망이 진행되는 과정, 좀 더 프로이드적인 언어로 투사되는 과정에 이르면 둘 사이의 경계는 희미해진다. 이때 의상은 2차 가공 과정의 어떤 역할을 할(수 있을) 것이다.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감독들은 의상의 비밀을 처음 건드린 세대이다. 나는 지금 피터 그리너웨이의 바로크적인 의상(-미장센)을 떠올리고 있다.< 요리사, 도둑,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 >에서 요리사의 아내가 화장실에서 복도를 지나 자기 방을 지나친 다음 실외에 이르기까지 수평으로 이동하면서 동일한 디자인의 옷이 마치 공간의 색에 물들기라도 하듯 형형색색으로 바뀌는 장면을 떠올리고 있다. 홍상수 는 등장인물의 옷을 그 역할을 하는 배우의 집에 가서 고른 다음 그 배우의 일상생활을 영화 안으로 끌어들여서 등장인물과 배우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옷에 묻어있는 삶이라는 흔적. 취향이 보여주는 내면. 거기서 시작하는 영화. 박찬욱 은 의상을 등장인물 내면의 기하학적 조형이라고 생각한다. < 친절한 금자씨 >의 땡땡이 무늬가 있는 원피스. 마치 총에 맞아 뚫린 것 같은 구멍들. 임권택은 의상의 체계 안에 들어서는 순간 하나의 세계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위계질서가 있고 차려야 할 격식이 있으며 종종 의상이 인물을 규정한다. 그것은 신분의 기호이며 금지와 배제로 이루어진 기호들의 집합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명령의 신호이기도 하다. 종종 임권택은 그런 다음 서로 다른 의상의 세계 사이의 충돌이 빚어내는 긴장을 즐긴다. 그저 떠오르는 대로의 예. 일제강점하 가문의 성씨를 지키던 설씨 노인이 자살을 하자 그 장례식에 찾아간 일본인 다니는 예의를 표하기 위해 검은색 양복을 입고 찾아간다. 하지만 마당에 있는 모든 한국인은 흰색의 한복을 입고 있다. 흰색의 무리 속의 단 한 점의 검은 색. (< 족보 >) 승복을 입은 두 승려가 찾아가는 사창가 여인들의 과장된 노출의 의상들. (< 만다라 >) 씨받이로 들어간 소녀는 끝내 양반들의 의상을 입어보지 못한 채 아이를 임신한 다음 비밀리에 출산하고 쫓겨난다. (< 씨받이 >) <요화 장희빈>은 17세기 조선 시대 숙종이 왕위에 오른 다음 27년에 걸쳐 궁궐 안에서 넘쳐나는 여인들의 정념의 세계로 안내하는 길잡이로 의상을 활용하고 있다. 종종 그녀들이 입은 옷은 마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창문이 된 것처럼 투명해지기조차 한다. 임권택은 그녀들이 입은 옷을 때로 그녀들의 정념에 대한 환유처럼 입히기도 하고 혹은 그녀들의 태도에 대한 은유로 보이기도 한다. 교차하는 정념의 수사들. 그런 의미에서 <요화 장희빈>에서 그녀들이 입은 옷은 신분의 체계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질투와 분노, 사랑과 박해, 의심과 욕심 사이에서 생겨나는 욕망과 불안을 오가면서 몸과 마음을 봉합해내는 정념의 순환 회로이기도 한다. <요화 장희빈>과 <현기증>의 녹색 여기서 장희빈은 서로 다른 수많은 여인들, 그녀를 내친 인경왕후와 그녀를 다시 받아들인 인경왕후, 인현왕후와 (연잉군을 나은) 숙빈 최씨, 그녀들을 둘러싼 왕가의 친인척 여인들, 그녀들을 받드는 서로 다른 계층의 여인들, 그 주변의 수많은 궁녀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녹색의 한복을 입고 자기의 자리를 점유한다. 나는 여기서 과도하게 색채의 심리학에 의지할 생각은 없다. 대신 영화사에서 유명한 녹색을 환기시키고 싶다. 히치콕의 < 현기증 >에서 스카티 눈앞에 주디가 종탑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마들랜과 똑같은 머리 모양과 옷을 입고 마치 환생한 것처럼 나타났을 때 방을 가득 채운 녹색. 아니 차라리 넘쳐나는 것만 같은 녹색. 이 불안한 색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옮겨가면서 죽은 자가 다시 되돌아오는 것만 같은 환상을 만들어낼 때 히치콕은 영화에서 녹색이 갖는 새로운 의미를 거의 창조해내다시피 하고 있다. 물론 임권택 이 히치콕의 영향 아래 놓여있거나 혹은 <현기증>으로부터 결정적인 영향을 받은 것은 (아마도) 아니다. 하지만 < 요화 장희빈 >을 보고 있으면 그저 귀여웠던 한 소녀가 어느 자리에서부터 사악하고 요염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할 때 마치 그것이 그녀가 입은 기분 나쁜 초록색의 한복에서 나오는 것만 같은 느낌을 줄 때가 있다. 복장도착과도 같은 변신. 초록색 자체가 나쁜 기운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잘 알다시피 녹색은 평화의 상징이며 또한 생명을 지키고 환경운동을 하는 단체들의 ‘그린’이기도 하다) 한국영화에서 미신을 부추기고 불길한 신령들을 불러내는 무당들에게 자주 초록색 한복을 입히는 것은 이 색채에 대해서 한국 문화 안의 고유한 코드가 작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때 나는 의도적으로 마치 떠오르는 듯이 장희빈의 녹색 한복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건 그럴 수밖에 없다. 임권택은 장희빈과 다른 등장인물들의 한복의 색채를 체계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다. 그건 이후에도 그렇다. 임권택은 먼저 도식을 세우지만 영화 안에서 어떤 도식이 작동하기 시작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종종 부분적으로 자신의 도식을 위반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것은 단순하게 오래된 예술가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만은 아니다. 임권택은 마치 그 도식이 등장인물의 생명을 위협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갑자기 어느 순간 예외를 마련하거나 때로는 돌발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일시적으로 도식을 부수기도 한다. 그래서 가까스로 도식을 찾아냈을 때 혹시 이것이 그 안에서 예외의 규칙이 아닌지 의심하도록 유도한다. 임권택의 예술에 관한 원리가 있다면 그것은 경험이다. 하지만 오해하면 안 된다. 그 자신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에게 되돌아가서 그 안에서의 원리를 추론하는 이 경험의 표지들 사이에 생명이 감도는 순간을 임권택은 도식 안의 예외라고 규정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저 거기서 장희빈이 그 요염하고도 불길한 초록색 한복을 선택했을 때 그녀의 삶 안에서 그 순간들이 이루는 예외의 도식을 세울 수 있을 뿐이다. 어떤 예외의 도식? 유혹의 전술이 전개되는 순간이라는 도식. 누구를 대상으로? 숙종을 대상으로. 무엇을 목표로? 오직 상감마마와의 침실에서의 여흥의 시간을 위하여. 그래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원자 아기씨. 좀 더 간단하게 임신. 그 임신이 안겨주게 될 자리. 우리는 조선시대가 유교의 이데올로기 위에 세워져 있으며 가문을 잇는 선이 끊어지는 것은 제사에서 죽은 조상과 대면할 때 예외 없는 불효의 세계였다는 것을 한 번 더 환기해야 한다. 이 연쇄적인 계산의 논리적인 도식. 라디오 드라마 <장희빈> 녹음현장 (출처: 블로그 춘하추동방송) 하지만 < 요화 장희빈 >은 시각적인 드라마라기보다는 청각적인 해설의 영화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아마 그건 <요화 장희빈>이 고스란히 정창화 의 < 장희빈 >의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두 편의 장희빈 영화는 조선왕조실록에서 숙종의 재위 기간을 영화로 각색한 것이 아니라 1961년 1월 23일에 첫 방송을 시작해서 3월 4일에 36회로 종방(終放)한 라디오 드라마 <장희빈>을 영화로 옮긴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1960년대가 라디오의 시대였다는 것을 떠올려야 한다. 좀 더 실감나는 설명. 1970년대 거의 마지막까지 시내버스를 타면 기사들은 라디오 방송을 틀어놓고 예외 없이 라디오 드라마를 들었다. 그때 승객들은 놓칠세라 귀를 기울였고 마치 요즘 텔레비전 방송 드라마의 우여곡절에 전 국민이 매달리듯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장희빈>의 대본을 쓴 이서구 작가는 일제 강점하인 1920년 동아일보 창사와 함께 입사하여 사회부 기자로 경력을 시작했고 그런 다음 연극 모임인 ‘토요회’를 거쳐 라디오 방송에 입문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이서구 작가는 1957년부터 라디오 드라마에 전념했고 <장희빈>이 방송되는 시간에는 “장안의 길거리가 텅 비었고 특히 목욕탕 여탕은 말할 것도 없이 마찬가지로 텅텅 비었다”고 할 정도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그때 성우들은 지금의 탤런트들에 비교할만한 인기를 모았다. <장희빈>은 미처 방송이 끝나기도 전에 영화사가 판권을 샀고 정창화가 그 대본을 바탕으로 영화를 찍었다. 또 다른 이서구 작가의 사극 라디오 드라마 <강화도령>은 1963년에 동명의 제목으로 신상옥 이 영화로 찍었다. <장희빈>은 단지 드라마만 성공한 것이 아니라 주제가도 1960년대 가요의 고전으로 남았다. 이서구 작가가 작사를 하고 전오승이 작곡한 <장희빈>은 그 당시 ‘꾀꼬리의 여왕’이라고 불리던 황금심이 불러서 “이 노래를 듣기 위하여 드라마 시간을 기다리는 애청자들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잠시 멈춘 다음 당신께서 YOU를 검색하셔서 음미하듯이 이 노래를 들으면서 가사를 먼저 읽어주시기 바란다. <요화 장희빈>에는 이 노래가 거의 갑자기 기습하듯이 몇 차례이고 반복해서 흐른다. 조선 시대 사극에 덮어씌운 그 시절 엔카(演歌) 풍의 대중가요. “구중궁궐 긴 마루에 하염없이 눈물짓는 장희빈아, 님도 잃은 그 날 밤이 치마 그리워 치마폭에 목메는가, 대전마마 뫼시던 날에 칠보단장 화사하던 장희빈아, 칠보단장 푸른 한에 흐느껴서 화관마저 떨리는가” 아마 임권택 도 이 방송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이 라디오 드라마가 영화화된 영화의 조감독을 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그러나 이 라디오 드라마가 방송되던 1961년의 언저리가 아니라 그로부터 7년 후인 1968년에 다시 만들면서 왜 라디오 드라마를 참조했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이런 설명이 가능하긴 하다. 1960년대 후반부터 칼라영화가 적극적으로 도입되는 과정에서 성공한 흑백영화를 다시 칼라영화로 만드는 것이 하나의 상업적 모델이 되었다. 그때 대중들은 리메이크를 새로운 영화로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과거에 성공한 영화의 반복을 자신의 선택에 대한 만족의 보증이라고 여겼다. 물론 박스오피스에서 성공한 영화가 자신을 만족시킬 것이라는 바보 같은 공식은 지금도 작동되고 있는 대중적 신화이기는 하다. 이 모델은 거의 무차별적으로 대입되었다. 심지어 김기영 조차 흑백영화 < 하녀 >를 칼라영화 < 화녀 >로 다시 찍었다. 임권택은 단지 장희빈을 소재로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 요화 장희빈 >이 라디오 드라마이기라도 한 것처럼 진행시켜 나간다. 여기서 영화를 이끌고 가는 것은 장희빈이나 숙종이 아니라 영화 바깥의 목소리(voice_over_narration)이다. 물론 그때 한국영화에서 보이스 오버의 방식이 드문 것은 아니었다. 아니 그러기는커녕 종종 나태하다고 느낄 정도로 자주 사용되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 방법이 다르다. 좀 더 용기를 내서 말한다면 후일 임권택이 영화의 시청각 기호 위에 문자를 더하면서 자막을 입히는 방법으로 발전하게 되는 초기 이전(primitive)의 모델을 떠오르게 만든다. 여기서 그 목소리는 마치 변사처럼 영화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감정까지도 설명하기 시작한다. 같은 말의 다른 판본. 그 목소리는 (다소 따분한 표현이긴 하지만) 이야기 구석구석을 내려다보는 대타자의 음성이다. 말하자면 극영화에서 집행되는 다큐멘터리에서의 (빌 니콜스의 구분에 따르면) 신의 목소리로서의 방법. 하지만 내 귀를 붙잡은 순간은 그 목소리가 종종 영화의 감정을 연기하기 시작할 때이다. 그 목소리는 영화를 설명하다 말고 인현왕후가 장희빈의 음모에 떨어질 때 영화를 보는 나를 앞질러, 혹은 대신하여, 탄식하기도 하고 숙종의 어리석음에 대해서 분노를 하며 줄거리의 윤곽을 설명해야 할 순간에 스스로 감정을 대리하는 영화 안의 또 다른 영화적 존재가 된다. 이때 내가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 목소리가 단지 주인의 역할을 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영화 자신이 몸이 되고자 한다는 사실이다. 영화 안의 몸들을 대신하는 영화라는 몸. 영화의 기호들에 부여하는 뼈와 살, 무엇보다도 감흥을 불러내는 자율적인 장치. 그 안에서 영화가 스스로 느껴보기 시작한다. <요화 장희빈>의 신기한 변화는 거기서 시작한다. 왜냐하면 마치 그 목소리에 반응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등장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에 영화의 시청각 기호들이 불응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나는 신중하게 불응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누군가는 눈치챘겠지만 나는 이 개념적 표현을 노엘 버치에게서 빌려왔다. 버치는 영화에서 어느 순간 왜 단순한 화면에서 등장인물에게 쇼트의 방법론이 매개변수가 되기를 거절하고 자신의 리듬을 가지려 할 때 어떤 수단을 동원해도 ‘읽어내기’가 거의 불가능해지는가, 라고 질문하고 있다. 버치는 그 대답을 오즈에게서 가져온다. 영화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바라보는 것과 달리 그사이에 영화를 바라보는 것과 영화가 바라보는 것 사이의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임권택은 영화를 바라보는 과정을 관성에 내맡긴 채 영화가 바라보는 과정에 감흥을 부여하려고 한다. 이 말의 망설임. 아마 그래서 일 것이다. < 요화 장희빈 >은 제목과 달리 장희빈을 중심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래서 이 영화가 몹시 산만하게 느껴진다. 사료에도 장희빈의 출생 신분이 불명료하지만(그녀가 노비 출신인지, 아니면 몰락한 양반집 규수인지, 혹은 다른 자료에 따르면 중상인의 자제라고도 되어있든가 하지만) <요화 장희빈>은 조선왕조실록을 옮긴 영화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장희빈이 궁궐에 들어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장희빈의 모친 폐비 윤씨의 집으로 이야기가 찾아갈 때 그녀가 자란 환경을 어렴풋하게 가늠해볼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근대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조선 시대라는 생활조건의 외양 안에 감추어진 삶의 과정을 가늠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역사의 근거를 뒤로하고 드라마의 관점에서만 접근해도 장희빈의 배경을 지운 것은 그녀가 궁궐 안에서 경쟁자들을 상대로 목숨을 건 도약을 시도하는 그녀의 욕망의 힘을 끌어낸 증후를 모호하게 만들어버린다. 임권택 은 마치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독점적인 왕후의 자리를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 장희빈의 유일한 임무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 과정에 어떤 의심도 품지 않는다. 이 사태를 단순하게 공격하기 어려운 것은 종종 임권택이 장희빈을 주인공이 아니라는 듯이 제쳐놓고 진행하기 때문이다. 그건 처음부터 그렇다. 이야기는 숙종이 아직 세자였던 시절에서 시작하면서 마치 그를 따라 진행할 것처럼 이어진다. 장희빈은 이야기에 삽입되는 방식으로 갑자기 등장하고 난 다음 이야기의 중심으로 옮겨간다. 하지만 그녀가 항상 이야기의 중심을 점거하는 것도 아니다. 장희빈은 궁궐 바깥으로 두 번 쫓겨나는데 심지어 그녀가 첫 번째 쫓겨났을 때는 마치 영화가 잠시 동안 그녀를 잊은 것처럼 진행되기까지 한다. 그렇다고 장희빈이 다시 궁궐에 돌아왔을 때 그녀를 따라가는 것도 아니다. 어진 인현왕후는 숙종이 장희빈을 잊지 못하자 주변의 우려를 모두 물리치고 그녀를 다시 궁궐로 불러들인다. 이때 임권택은 다시 장희빈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인현왕후는 숙종에게 장희빈을 다시 불러들인 사실을 숨기고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부디 받아들여 달라고 간청한다. 영문을 모르는 숙종은 그러겠노라고 대답한다. 물론 우리들은 인현왕후가 몹시 위험하게도 장희빈을 다시 궁궐 안으로 끌어들였다는 사실을 즉각적으로 눈치챈다. 여기서 임권택은 마치 장희빈이 처음 등장하는 것처럼 진행한다. 인현왕후는 숙종을 모시고 내실로 인도하고 거기서 장희빈과 다시 해후하는 자리를 만든다. 인현왕후는 영화가 거의 절반에 이르렀을 때 처음 등장했고 그녀가 한 첫 번째 역할은 숙종과 장희빈을 다시 만나게 하는 시나리오 안의 기능에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숙종과 장희빈이 다시 해후하는 자리를 만들고 인현왕후가 다시 바깥으로 나갈 때 카메라는 그녀와 함께 문 바깥으로 나간다. 두 가지 눈여겨보아야 할 점. 첫째, 그렇게 되면 다시 방 안으로 돌아오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둘째, 순간적으로 여기서 임권택은 주인공을 바꿔치고 있는 것이다. 임권택은 이 영화가 <요화 장희빈>이 아니라 <인현왕후>이기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동선을 인현왕후를 중심으로 짠 다음 거기에 감정선을 더한다. 그런 다음 숙종과 장희빈이 포옹을 할 때 인현왕후는 여기까지 행한 그녀의 선의와 상관없이 창문 바깥에서 그걸 흘낏 바라본 다음 차마 더 이상 마주 보지 못한 채 외면을 하면서 그 소리를 들으며 벽에 기대어 슬픔에 가득 차 고통받는 모습을 보여준다. 핵심은 이 장면의 심리적인 설명이 아니다. 이 장면이 어떤 전환점으로 작용하면서 이제부터 영화는 인현왕후가 이 이야기의 진정한 주인공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를 따라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진정한 주인공이라는 것은 없다. 그러기는커녕 그 자리를 둘러싸고 새로운 등장인물들이 번갈아 분주하게 나타나고 퇴장한 다음 다시 나타나고 또 사라진다. 혹은 새로 나타났을 때는 중심으로부터 주변에 옮겨간 다음 제 할 일을 한다. 그 과정에서 누구라도 당황하게 될 만한 순간과 마주치게 된다. 숙종에게는 장희빈과의 사이에서 낳은 경종 이외에 숙빈 최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연잉군이라는 아들이 있다. < 요화 장희빈 >은 숙빈 최씨의 잉태의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 영화에서 임권택 이 숙빈 최씨를 인물들 사이의 원근법을 통해서 주변으로부터 중심으로 이동시키는 과정은 단순하게 수평으로 옮겨가는 대신 마치 층위를 오르내리며 상승과 하강을 거듭하면서 틈새 사이를 돌아다닌다. 이때 숙빈 최씨의 행위소를 작동시키는 원리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거기엔 이유가 있다. 숙빈 최씨의 행위는 항상 수동적 상황 안에서 능동적으로만 활동하기 때문이다. 의미심장하게도 숙빈 최씨에 관해서만 화면 바깥의 그 목소리를 어떤 언급도 하지 않는다. 장희빈이 숙빈 최씨를 야단치는 장면 앙갚음을 하듯 숙빈 최씨가 장희빈 뺨을 때리는 장면 여기에 좀 더 디테일하게 다가갈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 좀 전에 말한 누구라도 당황할만한 장면에 대해서 설명하겠다. 숙빈 최씨는 처음부터 눈에 들어오지만 단지 눈에 띄는 무수리 중의 한 명, 아니 오히려 무수리 전부를 대신하는 환유적 기능처럼 보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별달리 주목하지 않을 것이다. 임권택 은 무수리들을 집합으로 만든 다음 이동시키거나 아니면 배경에 보이는 미장센의 일부로만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 중의 누군가가 반복적으로 등장인물 곁에 다가온 다음 다시 멀어지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처럼 보였고 숙빈 최씨는 처음에는 정확히 그 자리에 있었다. 말하자면 시나리오 작법에서 말하는 중심을 이루는 혹성들을 배치한 다음 그 주변을 떠돌거나 오가는 위성들의 운동감. 첫 번째 등장하는 장면은 아니지만 장희빈이 숙종과 합궁을 한 다음 지위가 올라가자 궁궐에서 과장되게 자신을 과시하면서 걸어갈 때 숙빈 최씨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간다. 장희빈은 그녀의 버릇을 고쳐놓겠다면서 지나친 숙빈 최씨를 다시 불러 세워놓고 야단을 친다. 이 장면은 방점이 숙빈 최씨에 있지 않고 장희빈에 있다. 그래서 그녀가 자신의 힘을 통제하는 데 실패하는 사례의 장면처럼 보인다. 이 신을 주변으로 그녀는 심지어 숙종 앞에서마저 안하무인격인 무례한 태도를 내보이고 함부로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숙빈 최씨는 여기서 희생의 사례처럼 지나쳐간다. 하지만 장희빈이 그 방자함으로 인경왕후에게 쫓겨날 때 숙빈 최씨는 궁궐 대문 앞까지 따라와 마치 앙갚음이라도 하듯이 몇 차례이고 모질게 장희빈의 뺨을 때린다. 단지 여기서는 부채를 갚는다거나 균형을 맞춘다는 구성상의 계산 이상으로 누구라도 약간 멈칫할 만큼 폭력적이기 때문에 걷잡을 수 없게 과잉 하는 힘 앞에서 어리둥절해진다. 게다가 이 순간에 황금심의 주제가까지 흘러나오기 때문에 이 영화가 장희빈을 대하는 갑작스러운 동정심에 대해서조차 무언가 잘 조절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준다. 숙종과 인현황후의 생일상을 마련한 숙빈 최씨 임권택 의 계산은 거기에 있지 않다. 장희빈이 다시 궁궐로 돌아왔을 때 숙빈 최씨는 마치 그녀의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일시적으로 사라진다. 그녀가 다시 되돌아오는 순간은 숙종이 장희빈의 계략에 넘어가 인현왕후를 사가로 내친 다음 신하들의 이에 관한 간절한 읍소를 물리치고 다시 더 세월이 지나 백성들의 뜻을 알고자 미복을 하고 잠행을 나갔다가 아이들의 노랫소리를 들은 다음에야 후회를 시작하는 대목이다. 종종 숙종은 야심한 밤에 궁궐 안을 산책하는데 대비마마 거처에서 우연히 만난 장희빈을 다시 만나게 되는 것도 한밤중 창경궁의 연못 앞에서이다. 그러므로 숙종의 한밤중 산책은 이상하지 않다. 그날 밤도 숙종은 심란한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궁궐을 떠도는데 우연히 숙빈 최씨의 방 앞에서 멈춘다. 숙빈 최씨가 한밤중에 조촐한 생일상을 마련하고 절을 올리고 있어 연유를 묻자 오늘이 인현왕후의 생일이라 궁 안에 계시지는 않지만 모시는 마음으로 인사를 드리고 있다고 아뢴다. 숙종은 참으로 갸륵한 마음씨로구나, 라며 어디 네 이야기를 들어보자, 라고 한 다음 방 안으로 들어선다. 이 방에 들어서기 전에 숙빈 최씨는 이미 앞질러 상감마마를 뫼실 곳이 아니오니 자신이 마당에 나가 인사를 드리겠다고 몇 번이고 말하지만 숙종은 매번 그 청을 거절한 다음 방 안으로 들어선다. 이중의 거절. 주고받는 거절. 두 거절 사이에 놓인 불균형한 힘의 관계. 이 신에 이를 때까지 숙종은 숙빈 최씨에게 눈길 한 번 준 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야기가 여기서 이렇게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상상하기 어렵다. 아니, 차라리 방안에 들어설 때 이상하게도 여기서는 아무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이 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 신은 영화의 경제학에서 완전히 낭비된다. 임권택은 영화에서 중복을 허용하지 않는 영화감독이다. 나는 이미 이 신이 누구라도 당황할만한 순간, 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둘 사이의 음란한 충돌이 있다. 하나는 영화 바깥에서 온 것이다. 봉건 군주제에서 왕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이 말의 방점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에 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는 말의 안에는 해서는 안 된다, 의 경계가 법이 아니라 도덕에 놓여있다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영화 안에서 온 것이다. 숙종은 이미 인경왕후라는 공식적인 왕비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장희빈을 또 다른 애정의 대상으로 삼았다. 우리는 이런 사랑의 공식이 통속적인 궁중 연애풍 이야기에서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놀랍지는 않다. 문제는 그것이 놓여있는 자리에 있다. 지금 숙종은 애정의 대상이었던 장희빈과의 관계가 역전되어 자기 자신이 애정의 대상이 된 다음 그녀의 요구에 복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통을 받는 중이다. 우리는 계산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숙종의 고통은 착한 인현왕후를 내쫓았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의 자리에 있던 숙종은 자신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는 그 자리로 인하여 하지 말았어야 할 것을 한 다음 그것으로 인하여 고통받는 자신을 발견한다. 임권택은 고통받는 숙종을 등 떠밀어 숙빈 최씨의 방 앞까지 보낸다. 방에 들어선 숙종은 문득 생각난 듯 숙빈 최씨를 바라본다. 숙빈 최씨는 그 눈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즉각적으로 알아본다. 물론 우리들도 거의 관습적으로 이루어진 쇼트의 위치와 배우의 연기, 그리고 프레임의 크기 때문에 모를 수가 없다. 나는 일부러 둘 사이의 간격을 벌려 놓았다. ‘알아본다’, 와 ‘모를 수가 없다’, 의 차이. 이때 도덕적 주체였던 숙종은 갑자기 욕망의 주체에로 옮겨간다. 이 둘 사이의 간극을 아무런 경고도 없이 넘어갈 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이 떠오른다. 물론 한 명은 궁궐 바깥에서 장희빈으로부터 핍박을 넘어서서 생명의 위협까지 받고 있는 인현왕후이다. 숙종은 지금 둘 사이에서 고통받으면서 이제 이 관계를 셋으로 다시 하나를 추가하는 중이다. 인현왕후는 정말 견딜 수 있을까? 다시 하나가 더해지면 그녀는 돌아올 수 있을까? 둘 더하기 하나. 이때 무언가 인현왕후의 자리가 단지 좁아진다기보다는 지워지고 있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는 중요한 논점이 숨어있다. 인현왕후는 단 한 번도 숙종에게 욕망의 대상이었던 적이 없다. 나는 역사적인 사료를 뒤로하고 오로지 드라마의 관점에서만 이야기하는 중이다. 다른 한 사람은 장희빈이다. 숙빈 최씨와의 새로운 관계는 정확하게 장희빈과의 관계의 반복이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장희빈이 궁궐 바깥으로 쫓겨나갈 때 숙빈 최씨가 쫓아 나와 그녀의 뺨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몇 번이고 때리는 장면을 보았다. 숙빈 최씨가 다시 추가로 셈에 더해질 때 문득 장희빈이 둘이 되는 상황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물론 숙종은 그걸 계산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왕의 자리는 그 계산 바깥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숙종이 숙빈 최씨와 새로운 관계를 만들 때 상황이 해결되기는커녕 완전히 새로운 상황으로 돌입하게 될 것이라는 불길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미 장희빈이 숙종의 총애를 받은 다음 그녀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내내 보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임권택 은 그런 선택을 보여주어야만 했던 것일까. 상투적인 대답. 숙빈 최씨는 임신을 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장희빈은 그녀를 문초하던 중 갑자기 방문한 숙종의 면전 앞에서 그 장면을 보여주게 되고 결국 인현왕후를 다시 궁궐로 부르고 장희빈을 궐 바깥으로 쫓아내는 계기를 만들어주기 위해서이다. 즉각적인 반문. 숙종의 결정이 ‘못된’ 장희빈을 목격하고 ‘착한’ 인현왕후가 음모에 빠졌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그 어떤 순간도 이 장면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단지 숙종이 본 것은 자신이 새롭게 총애한 숙빈 최씨의 웃저고리가 벗겨진 채 매질을 당하고 있는 광경뿐이다. 그건 인현왕후와 아무 상관이 없는 장면이다. 임권택의 계산. 여기서 숙종은 비로소 욕망의 주체로서의 자신과 도덕의 주체로서의 자신을 일치시킨다. 그것이 마치 빼앗긴 권력을 되찾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는 그 자리에서 왕으로서의 명령을 내리고 모든 사태를 원상복귀 시키려 든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숙종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여기서 임권택은 단지 숙종을 도덕적 주체로 되돌려 놓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덕? 어떤 도덕?) 욕망의 주체로 회복시키기 위해서 이 장면 전체를 음란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음란하게? 그렇다. 장희빈과 숙빈 최씨 사이에서 벌어지는 분노와 질투의 감정은 오로지 그 두 사람이 숙종의 애정을, 좀 더 단도직입적으로 숙종의 성기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몸을 사이에 둔 이 무서운 경쟁. 이때 숙종은 여기서 도덕적 주체가 되기 위해 타자의 편에 서서(타자? 도대체 누구?) 타자의 주체가 되기를 바라야 할 어떤 이유도 없다. 나는 여기서 짓궂은 가정을 하고 싶어진다. 만일 장희빈이 인현왕후만 돌아오지 않으면 괜찮다는 정치적 계산을 한 다음 숙종에게 자신과 숙빈 최씨가 숙종의 몸을 공유하기를 허락한 다음 그저 둘 사이에서만 오가기를 제안한다면 숙종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때 인현왕후의 자리는 어디인가? 물론 다행히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때 임권택의 계산은 왕의 사랑이란 얼마나 역겨운 것인지를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다. 숙종은 욕망의 주체로서 자기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 도덕적 주체로서의 자리가 위험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런 다음 다소 음산한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그가 되찾은 정의란 도대체 무엇인가? 임권택 이 주인공 없는 이야기, 아니 차라리 중심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 요화 장희빈 >은 분명히 정의가 회복되고 모든 일은 사필귀정으로 되돌아가는 이야기이다. 그것은 대중들의 요구일 것이다. 하지만 임권택은 이 정의의 몫을 숙종에게 안겨줄 생각이 없다. 거의 이야기의 오점처럼 작동하는 숙빈 최씨의 임신. 임권택은 역사의 사료를 끌어들이는 척하면서 숙종이 권력을 통하여 자신의 주체를 되찾는 과정을 마치 오작동처럼 취급하고 있다. <요화 장희빈>은 매우 기이한 방식으로 권력의 사필귀정에 대한 부정이 있다. 임권택은 마치 모든 것이 제대로 제 자리를 찾아간 것처럼 만들면서 이야기의 주체를 텅 빈 상태로 내버려 둔다. 아니, 정확하게 그 자리에는 몸이 없는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그 목소리를 몸이 없기 때문에 영화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채 그저 바깥에서 떠돌 뿐이다. 대타자라는 그 무기력한 시선. 임권택에게 그 자리는 언제나 수수방관할 따름이다. 어쩌면 그 목소리의 주인보다 더 이 영화에서 공정하고 정의로운 이는 달리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그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 말의 반복. 없는 것과 마찬가지. 역사에서 알고 있는 자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그것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임권택에게 역사의 주인이란 없다. 아마도 그것이 <요화 장희빈>을 라디오 드라마처럼 진행시킨 진정한 이유일 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위험할지도 모르지만 이 영화 앞에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이 영화에는 영화가 없다. 하지만... (계속) 1968년 90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한국영화주식회사 각본 장천호 촬영 안윤혁 조명 정덕규 편집 김희수 음악 김용환 남정임 신성일 태현실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이두용 감독의 팬이었다. 어쩌다 시간 때우기 용으로, 이를테면 프로야구 중계가 우천으로 취소된 토요일 오후에 땜빵용으로 TV에서 방영된 한국영화들 가운데 이두용의 영화가 있었다. < 오빠가 있다 >와 같은 정체가 괴이한 액션 멜로영화도 내 마음을 홀리곤 했다. 지리멸렬한 스토리였으나 액션이 시작되면 거두절미 박력 있게 이어지는 화면 리듬이 경이적이었다. 역시 TV에서 본 < 최후의 증인 >과 같은 영화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극장에서 본 < 피막 >이나 < 물레야 물레야 >도 압권이었다. 나는 이두용의 신작을 1980년대 내내 기다렸다. 최재성 , 조용원 이 주연한 < 고속도로 >와 강수연 이 주연한 < 업 >을 보고 실망했다. 한 감독의 경력이 그렇게 허무하게 고꾸라진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 내시 >는 나를 감동시킨 마지막 이두용 영화였다. 국도극장에서 개봉한 이후 난 2번관 3번관을 쫓아다니며 이 영화를 일곱 번 관람했다. 거듭 볼 때마다 새로운 게 눈에 들어왔고 내 생애 처음 긴 평론을 쓴 영화도 이 영화였다. 신상옥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내시>는 사랑하는 여자를 되찾기 위해 내시 신분으로 위장해 궁으로 들어간 한 양반 출신 사내 서정호의 이야기다. 그와 정분을 나눴던 여자 자옥은 세도가인 아버지의 정략에 따라 궁에 들어가 후궁으로 간택된 후 이제 함께 얘기도 할 수 없는 신분이 되어 있다. 비련의 러브스토리가 핵심이지만 영화는 이것보다 곁가지 플롯이 더 흥미를 끄는 형태로 전개된다. 남궁원 이 연기하는 내시감은 서정호와 자옥을 연기하는 안성기 , 이미숙 남녀 주연배우 못지않게 플롯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역할인데 그가 봉사하는 왕실권력의 비정함과 타락이 영화의 주제이기도 하다. 서정호와 자옥 두 남녀 주인공은 종종 플롯의 흐름에서 사라진다. 그런데도 아무 지장이 없다. 이를테면 이런 장면이다. 한 궁녀가 임신하자 궁궐이 발칵 뒤집히고 내시감은 성 기능이 되살아난 내시를 찾아내기 위해 모든 내시들을 집합시켜 하의를 벗기고 검사를 한다. 관객은 이 상황에서 안성기 가 연기하는 주인공 서정호의 정체가 혹 밝혀지지 않을까 불안감을 느낀다. 내시들의 하체 검사가 끝나갈 무렵 서정호와 다른 한 명의 내시가 다른 곳에서 붙잡혀 끌려 나온다. 그 두 내시는 검사를 받지 않기 위해 저항하는데 강제로 서정호와 함께 끌려온 내시의 바지를 벗긴 어의가 그의 되살아난 성기를 확인한다. 호위 내시감이 가차 없이 그의 몸을 칼로 내려친다. 놀라운 것은 그 다음 화면이다.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주인공인 서정호의 반응화면을 잡기 마련이다. 안성기는 당대 최고의 스타였고 이 영화의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이 장면의 서스펜스는 서정호의 정체가 발각되느냐 여부에 있었다. 서정호의 반응화면은 나오지 않는다. 가차 없이 이두용 은 내시들이 하의를 추어 입는 멀리서 롱 숏으로 잡으며 이 장면을 끝낸다. 느닷없이 종결되는 그 호흡도 굉장하거니와 주인공의 존재를 잊은 듯 무심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이 장면 연출의 초점은 내시감이 봉사하는 왕실권력의 잔인함에 주어진다. 뼈를 깔끔하게 발라낸 생선살을 먹는 것과 같은 간편하고 유연한 커트감각의 맛이 이 장면에 있었다. < 뽕 >이나 < 물레야 물레야 >에서도 그랬지만 이두용은 줌렌즈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공간을 신축적으로 다룬다. 왕 앞에서 궁녀들이 공연을 하는 장면에서 궁녀들의 무리 가운데 유독 미모가 돋보이는 자옥의 클로즈업으로 시작한 화면이 쑥 빠지면 부채춤을 추는 다른 궁녀들이 둥그런 원을 그리며 있는 것이 보이고 카메라가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 쑥 들어가면 또 다른 궁녀들의 무리가 잡히는 식이다. 번거롭게 달리나 크레인을 쓰지 않고도 카메라가 능란하게 돌아다닌다. 카메라의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것도 아니다. 카메라는 이야기의 운반수단으로 겸손하게 숨어서 화면에 박력과 긴장을 불어넣는다. 텅 빈 화면에 누군가의 발이 슥 들어오고 그가 멀어져 갈 때까지 죽 지켜보는 것과 같은 극적인 앵글도 곧잘 나오지만 전체적인 화면들의 균형감은 잘 맞는다. 겨울공화국의 시대에 이 영화는 궁궐 내부에서 벌어지는 추문과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담았다. 영화의 말미, 동료의 죽음을 본 내시감은 칼을 들고 싸움에 나서며 감옥에 갇힌 서정호를 구해주고 도망치라고 충고한다. 서정호는 말을 듣지 않는다. 두 사람은 몰려드는 내시들과 병사들을 벤다. 크고 육중한 덩치를 지닌 내시감 역할의 남궁원 이 “물러들 가라. 아니면 내시라도 벨테다”고 손을 휘젓고 몸을 앞으로 내디디면 상대편 병사들이 우르르 뒤로 물러난다.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에서 곧잘 과장되는 움직임의 상응과 대비가 이 영화에서도 우람하게 이뤄진다. 내시감과 서정호가 싸울 때 왕과 자옥은 왕의 침실에서 정사를 나눈다. 격렬한 크로스커팅으로 성과 폭력이 클라이맥스에 전시된다. 영화는 곳곳에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는 새벽 궁궐의 롱 숏으로 끝난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 이두용 이 보여준 박력의 스타일은 한국영화사에서 유일무이하다. < 내시 >는 그것을 마지막으로 증명한 작품이었다.